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구독 221

추천

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5-11-25~2025-12-25
미술38%
연극20%
문학/출판13%
칼럼7%
인사일반7%
언론3%
문화 일반3%
사고3%
사회일반3%
사건·범죄3%
  • 93세 건축가 프랭크 게리 LA에 새 건축 공개[이번주 미술계]

    93세 건축가 프랭크 게리 새 건축 공개93세 건축가이자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프랭크 게리가 로스앤젤레스의 예술학교 콜번스쿨의 신관 건축 디자인을 공개했습니다. ‘콜번 센터’로 이름 붙여진 이 건물에는 공연장을 비롯해 음악가와 안무가들의 스튜디오가 마련되었습니다.눈길을 끈 것은 콘서트홀입니다. 구름의 형태를 본딴 음향 차단판이 천정에 매달려 있고 그 위에는 채광창이 있어 구름 사이로 빛이 내려오는 광경이 연출된다고 합니다. 2003년 이 지역에 들어선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도 프랭크 게리의 작품입니다.가디언 평론가도 “NFT는 예술인가?”NFT에 대한 관심과 주목이 커져갈수록 이것이 예술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평론가 필리파 스노우가 가디언에 ‘NFT는 예술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습니다.스노우는 최근 미국의 셀러브리티를 중심으로 유명세를 퍼뜨리고 있는 ‘보어드 에이프’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정형화된 형태를 AI를 통해 다양하게 변주한 최근의 NFT 디자인의 경향이 예술보다는 브랜드의 로고처럼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NFT 디자인이 작품 자체가 아니라 과시와 네트워킹만이 목적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5월 크리스티 경매 나오는 마릴린, 앤디 워홀 작품가 기록 세울까?앤디 워홀의 대표작 ‘샷 마릴린’ 시리즈 중 한 작품이 5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 출품될 예정입니다.유명 배우 마릴린 먼로의 얼굴을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제작한 이 작품은 워홀의 작업실에 놀러온 작가가 총을 쏜 일화로도 유명하죠.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 작품의 호가(asking price, 판매자가 최소로 넘기길 원하는 가격)가 2억 달러(약 2400억 원)라고 합니다. 그간 이 작품이 팔린 내역을 보면 그럴듯한 가격인데요. 미술 시장이 이번에도 높은 가격을 향해 치솟을지 주목됩니다.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323/112480748/1※‘이번 주 미술계’는 한 주 간 눈 여겨 볼만한 미술 소식을 정리해드리는 코너로 매주 금요일 발송되는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국내 미술관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창의성의 사례를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영감 한 스푼 뉴스레터 구독 신청 링크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51199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03-24
    • 좋아요
    • 코멘트
  • 노벨상 러 언론인 “우크라 난민 돕자” 메달 경매

    지난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러시아의 반정부 신문 ‘노바야 가제타’를 이끌고 있는 드미트리 무라토프 편집장(61)이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기 위해 자신의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그는 생명의 위협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각종 실정과 부정부패를 폭로한 보도를 이어온 공로로 필리핀 독립 언론 ‘래플러’의 창립자인 여성 언론인 마리아 레사(59)와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다. 무라토프 편집장은 22일(현지 시간) 웹사이트 성명, 텔레그램 게시물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상을 경매에 내놓을 수 있는지 여러 경매 업체에 문의하고 있다”며 성사되면 그 돈을 우크라이나 난민 펀드에 기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미 10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응급 치료를 받아야 하는 난민 및 어린이들과 메달을 나누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미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도 “정부가 언론을 폐간하려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소속 기자와 독자들의 뜻을 거슬러 먼저 신문의 불을 끄지는 않겠다”며 푸틴 정권의 탄압에도 우크라이나 침공의 참상을 상세히 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 정보 전쟁에서 도망가느니 스스로 내 발을 총으로 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바야 가제타는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부터 ‘특수 군사작전’을 주장하는 푸틴 정권의 행위를 ‘침공’ ‘전쟁’이라고 분명히 규정했다. 침공 다음 날인 지난달 25일에는 1면 기사의 제목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폭격하고 있다’로 달고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로 같이 내보냈다. 당시 무라토프 편집장은 화상 연설을 통해 “전쟁을 막을 사람이 없어 슬픔과 수치심을 느낀다. 우크라이나를 적으로 여기지 않으며, 우크라이나어 또한 적의 언어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푸틴 정권은 줄곧 노바야 가제타에 폐간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달 4일에는 러시아군의 민간인 살상 등을 ‘가짜 뉴스’로 규정하고 이를 전하면 최대 징역 15년형을 부과한다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무라토프 편집장은 1993년 여러 동료와 노바야 가제타를 만들었고 1995년부터 현재까지 편집장을 지내고 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03-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푸틴에 맞선 러 노벨상 수상자 “메달 경매, 우크라 난민 돕겠다”

    지난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러시아의 반정부 일간지 ‘노바야 가제타’를 이끌고 있는 드미트리 무라토프(61) 편집장이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기 위해 자신의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그는 생명의 위협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각종 실정과 부정부패를 폭로한 보도를 이어온 공로로 필리핀 독립 언론 ‘래플러’의 창립자인 여성 언론인 마리아 레사(59)와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다. 무라토프 편집장은 22일(현지 시간) 웹사이트 성명, 텔레그램 게시물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상을 경매에 내놓을 수 있는지 여러 경매 업체에 문의하고 있다”며 성사되면 그 돈을 우크라이나 난민 펀드에 기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미 10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응급 치료를 받아야 하는 난민 및 어린이들과 메달을 나누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미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도 “정부가 언론을 폐간하려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소속 기자와 독자들의 뜻을 거슬러 먼저 신문의 불을 끄지는 않겠다”며 푸틴 정권의 탄압에도 우크라이나 침공의 참상을 상세히 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 정보 전쟁에서 도망가느니 스스로 내 발을 총으로 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바야 가제타는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부터 ‘특수 군사작전’을 주장하는 푸틴 정권의 행위를 ‘침공’ ‘전쟁’이라고 분명히 규정했다. 침공 다음날인 지난달 25일에는 1면 기사의 제목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폭격하고 있다’로 달고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로 같이 내보냈다. 당시 무라토프 편집장은 화상 연설을 통해 “전쟁을 막을 사람이 없어 슬픔과 수치심을 느낀다. 우크라이나를 적으로 여기지 않으며, 우크라이나어 또한 적의 언어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푸틴 정권은 줄곧 노바야 가제타에 폐간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달 4일에는 러시아군의 민간인 살상 등을 ‘가짜 뉴스’로 규정하고 이를 전하면 최대 징역 15년형을 부과한다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무라토프 편집장은 1993년 여러 동료와 노바야 가제타를 만들었고 1995년부터 현재까지 편집장을 지내고 있다. 체첸 전쟁의 참상을 폭로해 2006년 총격으로 피살된 안나 폴릿콥스카야 기자를 비롯한 6명의 소속 기자가 의문사를 당했지만 굴하지 않고 푸틴 정권의 각종 실정을 준엄하게 비판해 언론의 존재 이유를 보여줬다는 평을 얻고 있다. 무라토프 편집장 은 지난해 노벨상 수상 소감에서 폴릿콥스카야 기자를 비롯한 러시아의 반체제 언론인에게 공을 돌린다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03-23
    • 좋아요
    • 코멘트
  • 총 맞은 ‘먼로 초상화’, 경매시작가 2400억

    미국 팝아트를 대표하는 앤디 워홀(사진)의 작품이 5월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다. 21일(현지 시간) 크리스티는 워홀의 1964년 작품 ‘샷 세이지 블루 매릴린’이 출품된다고 밝혔다. 크리스티는 작품 추정가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호가(asking price·판매자가 작품을 넘기길 원하는 가격)가 2억 달러(약 2400억 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역대 경매에 나온 예술 작품 호가 중 최고 기록이다. 만약 경매에서 호가 이상으로 작품이 팔리면 워홀 작품의 경매 낙찰가 중 최고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전 워홀 작품 낙찰가 최고 기록은 2013년 출품된 ‘실버 카 크래시’의 1억540만 달러(약 1280억 원)다. 경매가 아닌 거래로는 2017년 헤지펀드 사업가 케네스 그리핀이 같은 시리즈의 작품 ‘샷 오렌지 매릴린’을 최소 2억 달러에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전 경매에서 호가 1억 달러로 시작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는 4억5000만 달러(약 5470억 원)에 낙찰됐다. 이 작품은 유명 배우 매릴린 먼로의 사진 위에 실크스크린 판화 기법으로 색을 덧입힌 것으로, 워홀의 대표작 중 하나다. 가로세로 91cm 사이즈인 이 작품은 1964년 워홀의 작업실을 방문한 한 예술가가 쏜 총에 맞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예술가가 워홀에게 ‘쏴도(shoot)’ 되느냐고 물은 것을 워홀이 ‘사진을 찍어도(shoot)’ 되느냐고 물은 것으로 착각해 허락하자 그림 위에 총을 쏘았다는 것이다. 총알이 관통해 수리한 2점을 포함한 총 5점의 작품이 ‘샷 매릴린’ 시리즈로 불린다. ‘샷 매릴린’ 시리즈는 할리우드 인기 스타였던 먼로를 주제로 한 것에다 이처럼 극적인 이야기가 얽혀 있어 그간 높은 가격에 거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워홀의 잡지 ‘인터뷰’를 발행한 사업가 피터 브랜트가 1967년 ‘샷 블루 매릴린’을 5000달러에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1994년에는 그리스 선박 재벌 필리포스 니아르호스가 ‘샷 레드 매릴린’을 경매에서 360만 달러에 낙찰받았다. 2007년에는 한 헤지펀드 매니저가 ‘샷 터쿼이즈 매릴린’을 8000만 달러에 산 것으로 전해졌다. ‘샷 세이지 블루 매릴린’은 스위스의 예술 작품 딜러 도리스 아만이 글로벌 미디어 기업 콩데나스트를 창설한 미국의 출판계 거물 새뮤얼 어빙 뉴하우스로부터 매입했다. 이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영국 런던 테이트 미술관 등에서 전시됐다. 지난해 아만이 사망하자 경매에 나왔다. 현재는 ‘토마스 앤드 도리스 아만 재단’ 소유다. 재단 측은 작품 판매 수익금을 어린이 지원 등 자선 사업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WSJ는 이번 워홀 작품 경매가 최근 몇 달간 우크라이나 전쟁 등 변수에도 미술 시장이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해서 높은 관심을 이어갈 것인지 보여줄 지표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워홀은 평생 8000여 점의 작품을 창작했다. 그의 작품은 최근 수년간 매년 약 200점이 경매에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03-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파친코’ 작가 “내 피부색 집에 놓고 다닐 순 없어”

    소설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54·사진)이 1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아시아계 미국인은 항상 두려움에 떨었다’는 글을 기고했다. 지난해 3월 16일 미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6명의 아시아계가 총격으로 사망하는 등 각종 혐오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데도 미국 사회가 문제 해결을 외면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과 가족 또한 수없는 차별에 직면했다고 회고했다. 1977년 세 딸을 데리고 서울에서 뉴욕으로 이주해 금은방을 운영했던 그의 부모는 수차례 강도 및 절도를 겪었다. 이민진 또한 고등학생 시절 그 가게에 갔다가 마스크를 쓰고 총을 겨눈 강도 3명을 직접 맞닥뜨렸다. 그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총이 보인다”며 아직도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지하철역에서 낯선 남자의 공격을 받을 뻔했고 언니 역시 ‘칭크’(중국인을 가리키는 모욕적인 표현)라는 욕설을 듣고 지갑을 빼앗겼다. 예일대 재학 시절 퇴역 군인들이 “난 중국 여자가 좋다”며 자신의 몸을 움켜쥐고 성희롱을 했다고도 털어놨다. 그럴수록 남자처럼 입고 눈에 띄지 않으려 했지만 “내 피부색(인종·race)을 집에 놓고 다닐 순 없었다”고 했다. 그는 아시아계가 미국에 도착한 순간 차별과 혐오에 직면하는데도 피해자들이 알아서 조심하도록 하는 방식은 지속적이지도, 정당하지도 않다고 비판했다. 이어 “내 눈은 여느 아시아인처럼 작지만, 그 눈 너머에는 세상이 변하길 바라는 빛이 반짝인다”고 강조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03-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의정 활동만 49년’…美 공화당 하원의원 돈 영, 향년 89세로 별세

    미국의 최고령 현역의원인 돈 영 하원의원(공화·알래스카)이 18일(현지 시간) 사망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보도했다. 향년 89세. 1973년 하원에 입성해 49년간 의원을 지낸 그는 공화당 역사상 최장수 의원이며 상하원을 통틀어 최고령 현역 의원이었다. 알래스카주의 유일한 하원의원인 그는 ‘알래스카의 세 번째 상원의원’으로도 불렸다. 미 50개주는 모두 2명의 상원의원을 두고 있으나 하원 의석은 주민 수에 따라 결정된다. 알래스카는 주민이 많지 않아 하원 의석이 하나뿐이다. NYT는 상대적으로 작은 지역구를 대표했음에도 워싱턴 의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강인한 개척자 이미지를 구축했다고 평했다. 2020년 NYT 인터뷰에서 ‘언제까지 의원직을 수행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신과 유권자가 결정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기후 위기가 ‘사기’(scam)라며 알래스카의 석유 광물 벌목 산업을 옹호했다. 역시 환경 보호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탄핵에도 반대했으나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이 확정됐을 때는 공화당 의원 중 가장 먼저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19일 “그의 유산은 알래스카의 사회기반시설 및 그가 보호했던 원주민 부족을 통해 전해질 것”이라고 애도 성명을 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03-20
    • 좋아요
    • 코멘트
  • ‘파친코’ 작가 “아시아계 미국인들, 밖에 안나가거나 호신용품 갖고 다녀”

    소설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54)이 1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아시아계 미국인은 항상 두려움에 떨었다’는 글을 기고했다. 지난해 3월 16일 미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6명의 아시아계가 총격으로 사망하는 등 각종 혐오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데도 미 사회가 문제 해결을 외면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달 초 소셜미디어에서 아시아계를 상대로 최근 공격 증가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묻자 ‘집에만 머무르고, 나갈 때는 후추 스프레이를 들고 다니며, 여유가 없어도 무조건 택시만 탄다’는 등의 답변이 나왔다고 공개했다. 자신과 가족 또한 수없는 차별에 직면했다고 회고했다. 1977년 세 딸을 데리고 서울에서 뉴욕으로 이주해 금은방을 운영했던 그의 부모는 수차례 강도 및 절도를 겪었다. 이민진 또한 고등학생 시절 그 가게에 갔다가 마스크를 쓰고 총을 겨눈 강도 3명을 직접 맞닥뜨렸다. 그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총이 보인다”며 아직도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지하철역에서 낯선 남자의 공격을 받을 뻔했고 언니 역시 ‘칭크’(중국인을 가리키는 모욕적인 표현)라는 욕설을 듣고 지갑을 빼앗겼다. 예일대 재학 시절 퇴역 군인들이 “난 중국 여자가 좋다”며 자신의 몸을 움켜쥐고 성희롱을 했다고도 털어놨다. 그럴수록 남자처럼 입고 눈에 띄지 않으려 했지만 “내 인종을 집에 놓고 다닐 순 없었다”고 했다. 그는 아시아계가 미국에 도착한 순간 차별과 혐오에 직면하는데도 피해자들이 알아서 조심하도록 하는 방식은 지속적이지도, 정당하지도 않다고 비판했다. 이어 “내 눈은 여느 아시아인처럼 작지만, 그 눈 너머에는 세상이 변하길 바라는 빛이 반짝인다”고 강조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03-20
    • 좋아요
    • 코멘트
  • 용기가 필요한 당신에게 권하는 그림 [영감 한 스푼]

    여러분 안녕하세요.지난주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예술 세계를 소개하고 여러 독자분들이 흥미로운 의견을 보내주셨답니다. 아래 ‘구독자 의견’ 코너에서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그림이 단순히 대상의 묘사를 넘어 작가의 철학과 생각을 표현하는 장이 되었다는 이야기에 공감해준 분들이 계셔서 기뻤습니다.오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국 작가의 작품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예술이 등장하고 벌써 100년이 지났지요. (검은 사각형이 1914년 작품입니다.) 그 후 미술은 또 다시 엄청나게 다양한 갈래로 전개되어왔습니다. 그런 경향 중 하나로 한국의 현대 미술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말레비치의 절대주의가 단순히 작가의 행위 그 자체를 강조하는 것을 통해 문을 열었다면, 그 장 위에서 현대미술 작가들이 어떻게 자신만의 예술을 펼쳐 보였는지를 살펴보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그림을 보면서 시작하겠습니다.영감 한 스푼 미리 보기: 나의 눈으로 본 세상을 나만의 시각언어로 표현하다서용선1. 작업 활동 초기에 소나무를 그렸던 서용선 작가는 누가 봐도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 부었다.2. 그러나 절대적인 객관성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이런 생각을 과감하게 밀고 나가 역사의 이면(단종 역사화)과 도시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3. 사회가 정한 이데올로기(조선왕조실록)나 고정된 편견(도시의 겉모습)을 벗겨내고 나의 눈으로 본 대상의 속살을 그림으로써 작가는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보도블럭 격자와 건물 틈에 갇힌 뉴요커위 그림은 서용선 작가가 2019년 10월 미국 뉴욕 미드타운에 머물렀을 때 보고 느낀 바를 담고 있습니다. 제목에도 적혀 있듯이 56번가, 고층 빌딩이 화려하게 들어서 있는 맨하탄의 상업 지구를 표현한 그림입니다.보통 맨하탄이라고 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요? 정장을 갖춰 입고 바쁘게 걸어 가는 사람들, 반짝이는 태양빛이 반사되는 거대한 유리 빌딩들, 세계를 이끄는 도시의 돈 냄새… 이런 것들일 것 같습니다.그런데 이 그림은 그런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엉뚱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지요.저는 이 그림을 처음 마주했을 때,“그림 속 사람들이 참 불편해 보인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뉴욕이 주는 클리셰적인 이미지를 벗겨내고 한 번 그림을 같이 보겠습니다.이번 전시에 공개된 ‘생명의 도시’는 가로 6m가 넘는 대작이라,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림 왼쪽에 있던 인물의 모습인데요. 이 인물은 아래쪽 보도 블럭이 만들어낸 격자 위에 아슬아슬하게 발을 얹고 있습니다.또 오피스빌딩 내부로 빽빽이 들어선 은행 ATM기가 보이시나요? 그 가운데 간신히 생겨난 틈에 인물이 배치되어 있어서, 왼쪽에 놓인 검은 공간으로만 겨우 움직일 것처럼 꽉 짜여진 틀에 놓여 있는 모습입니다.오른쪽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보도블럭 격자를 마치 줄타기 하듯 올라서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금방이라도 밖으로 밀어낼 듯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는 체이스 은행의 로고.또 지하철 역 옆으로 간신히 열린 공간에도 빌딩숲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죠. 화려하고 정돈된 것처럼 보이지만, 저에게는 이런 도시가 만들어낸 격자무늬가 감옥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서용선 작가는 이 풍경에 대해 뭐라고 말했을까요?“이 공간은 제가 여러 차례 뉴욕을 드나들며 잠깐씩 방문을 했던 곳입니다. 그런데 그 거리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노동하다 퇴역한 사람,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배달해주는 사람, 약속 시간이 비어서 건물에 기대어 약간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전해졌고, 그것이 56번가 거리의 성격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그가 느낀 거리의 성격을 명확하게 언어로 제시하진 않았지만, ‘노동하다 퇴역’, ‘배달’, ‘빈 시간을 보낸다’라는 말에서 저는 ‘어중간함’이라는 키워드가 느껴졌습니다. 이 거리에 속한 사람 대부분은 사실 차를 타고 다닐 것입니다. 빽빽한 오피스빌딩을 거니는 사람들은 즉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틈바구니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저는 이해가 되더군요.제가 이 부분을 계속 집중해서 파고드는 까닭은 이렇습니다. 보통 뉴욕을 그린다고 하면 화려하고 반짝이는 것, 클리셰적이고 대표적인 것을 상상할 것입니다. 그런데 서용선 작가는 그 가운데서도 현장에 가면 보이는 어색하고 독특한 부분을 포착해 도시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지요.중요한 것은 사회나 시스템이 정한 의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의미로는 담을 수 없는, 나의 눈과 몸의 감각으로 볼 수 있는 더 생생한 의미를 온 힘을 다해 느끼고, 그것을 시각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작가 고유의 의미 체계와 작품 세계를 작가는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그렇다면 서용선 작가는 어떻게 이런 작품을 하게 된 것일까요?○ 아름다움에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을까?서용선 작가의 이야기를 계속 하기 전에 먼저 이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여러분은 아름다움에 객관적인 기준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쉽게 말하면, 객관적으로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이 있다고 보시나요? 저는 시대나 유행에 따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얼굴은 있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과 욕망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객관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트렌드에 맞는 얼굴이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성격이나 스타일로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름답게 보이기도 합니다.제가 왜 외모 이야기를 했냐면, 예술도 과거에는 객관적 아름다움, 눈이 번쩍 뜨일 것 같은 사실성을 추구한 시절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것이 20세기 초반 말레비치를 비롯한 여러 예술가들에 의해 깨어졌고 그 아름다움의 기준은 작가나 관객 등 여러 개별 주체에게 주도권이 쥐어지게 되었습니다.서용선 작가에게서도 이러한 과정이 있었음을 저는 수개월 전 대화를 통해 엿볼 수 있었습니다. 서용선 작가의 양평 작업실에 방문했을 때, 초기 작가가 그렸던 ‘소나무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1982년 저는 작가로서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때 나온 것이 소나무 그림입니다. 지금은 이 그림이 나의 궁극적 표현 방법으로 맞지 않았다는 걸 알기에 반성을 하지만 당시에는 절박했죠. 그걸 깨달은 계기가 있습니다.그 때 저는 소나무 그림으로 순수한 형상에 이르고 싶었습니다.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누가 봐도 깜짝 놀라는 명징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파리 선 하나하나를 정말 긴장해 호흡을 멈추고 그으면서 1년 간 작업을 했습니다.한여름 연구실에서 얼마나 집중을 했는지 선을 긋다 기절해 바닥에 떨어졌어요. 기가 다 빠진거죠. 엉덩방아를 찧고 나서, ‘아 이러면 안 되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저는 이 때 서용선 작가가 추구했던 그림이 바로 (흔히 존재한다고 믿는)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었을까, 추측했습니다. 그러면서 서용선 작가는 군에서 제대하고 그림을 그릴 때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학원에서) 분명 나의 눈에는 내가 그린 것이 맞는데, 선생님은 자꾸 저의 그림을 고쳐주셨어요. 고쳐진 그림도 그럴 듯 했지만 제가 본 것과는 분명히 달랐지요.그런데 두 그림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어요. 그 분은 키가 크고 저는 앉은키가 작았거든요. 눈높이와 보는 시점이 달랐던 거죠.사람은 눈꺼풀의 두께 차이로도 보는 것이 차이가 납니다. 즉 개개인이 보는 세상은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 땐 그것을 어렴풋이만 알았던 거죠.”개개인이 보는 다른 세상, 이 표현을 주목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즉 모든 사람이 보는 세상은 저마다의 가치가 있는데, 객관적인 아름다움을 주장하는 것은 그 모든 다른 가치를 부정하는 일이 됩니다.서용선 작가의 ‘소나무’는 (존재하지 않는) 객관적 아름다움에 발을 맞추려는 시도였다면, 작가는 작업실에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그게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맞는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것입니다.이 깨달음 뒤에 서용선 작가의 작품 세계는 한층 더 폭넓은 세계로 뻗어 나가게 됩니다.○ 문자에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살려내다앞서 작가가 일련의 경험을 통해 절대적인 객관성, 사회가 정한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탈피하는 과정을 보여드렸습니다. 그 다음에 작가는 이것을 한국의 역사 속 한 장면으로 확장시키기에 이릅니다. 바로 위 작품과 같은 ‘단종 시리즈’가 그것입니다.작가는 1987년부터 역사에는 왜곡된 기록 밖에 남지 않은 비운의 왕, 단종에 대한 이야기를 추적하며 그것을 작품으로 남깁니다. 시작은 1980년대. 개인적인 슬픔을 안고 우연히 찾은 영월에서 ‘이 물에 어린 왕이 빠져 죽었다’는 말을 듣고 단종에 대해 추적했습니다.흥미로운 것은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이 왕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설이나 설화처럼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고 있었다는 부분입니다. 작가는 이야기가 남은 지역을 직접 찾아 몸으로 느껴보고, 자료를 찾아보며 단종의 이야기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87년 처음으로 단종 시리즈를 발표합니다.이후 수십 년 간 이어진 단종 작품에서 왕권이라는 정해진 개념이나 이데올로기에서 외면 받은 사람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뉴욕이라는 이미지의 그림자 아래 저마다의 삶을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과, 권력의 그림자에 가린 인간 단종의 모습이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요.또 그 깊은 곳에는 작가 개인의 아픔도 서려 있습니다.“어릴 적 동생이 죽었을 때 우리 어머니의 오빠, 큰 아저씨가 조그마한 관을 지게에 지고 앞산을 걸어가는 장면을 5살 때 쯤 봤어요. 어린 아이가 그렇게 죽었으니 부모님은 완전히 넋을 놓으셨죠.당시 저는 너무 어렸지만 처연한 느낌은 남았습니다. 그 장면은 두고두고 나에게 남았죠. (처음 영월을 찾았다가) 서울로 오는 길에 어릴 적 그 장면이 오버랩 되면서, ‘이런 걸 그림으로 그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서용선 작가는 6.25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결국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이름도 없이 죽어야만 했던 사람들의 아픔이 작품 세계에 공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입니다.서용선 작가는 제게 ‘선을 긋는 것은 용기다’라는 말을 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작품 세계를 되돌아보며 이 말에서 ‘선을 긋는다’는 것은 결국 빈 종이 위에 선을 긋는 동작뿐이 아닌 것 같습니다.오히려 고정관념 속에 미처 조명받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 살아 숨쉬는 생명력, 이런 것들을 커다란 캔버스에 그려내고 그것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이 모든 것이 용기가 아닐까요?서용선 작가는 ‘개인의 몸이 삶의 중심이며 이것을 기반으로 각자가 자신만의 우주를 구축해 나간다’는 한국의 신자연주의 미술운동에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서용선 작가의 작품을 통해 나를 중심으로 뻗어 나가는 견고한 삶을 살아갈 용기를 가다듬어 보시길 바랍니다.한 줄로 보는 전시세상이 규정하지 않은 나만의 감각과 언어도 갈고 닦으면 고유의 아름다움과 가치가 될 수 있다.추천지수(별 다섯 만점) ★★★☆전시 정보정진국의 건축과 서용선 박인혁의 그림2022. 3. 9 ~ 2022. 3. 28토포하우스(서울 종로구 인사동11길 6)작품 수 14점※‘영감 한 스푼’은 국내 미술관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시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영감 한 스푼 뉴스레터 구독 신청 링크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03-19
    • 좋아요
    • 코멘트
  • 이란 인질로 감옥서 6년… 아내가 돌아왔다[사람, 세계]

    “아내가 차를 마시고 싶을 것 같아요. 만나면 가장 먼저 차를 타줄 겁니다.” 영국인 리처드 랫클리프(46)는 16일 이란의 감옥에서 6년 만에 풀려난 부인을 맞으러 공항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의 부인 나자닌 자가리랫클리프(44)는 2016년 딸을 데리고 이란의 친정을 방문했다가 영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당시 이란은 나자닌이 영국 자선단체 톰슨로이터재단에서 일하며 체제 전복을 모의했다는 혐의로 그를 테헤란 공항에서 체포했다. 곧 징역 5년형이 선고됐고, 갓 돌이 지난 딸은 친정에 보내졌다. 졸지에 부인과 딸을 볼 수 없게 된 리처드는 영국 총리와 이란 최고지도자에게 가족을 돌려보내 달라고 수차례 청원했다. 부부는 “체제 전복 모의를 결코 한 적이 없다”며 영국과 이란에서 동반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과 이란의 협상은 지지부진했다. 영국 정부는 리처드에게 “협상이 진행 중이니 잠자코 있어 달라”고 했다. 리처드는 외교 문서 등을 찾아보면서 부인이 이란에서 억울하게 간첩으로 내몰린 원인을 찾게 됐다. 문제는 영국이 이란에 갚지 않은 4억 파운드(약 6200억 원)였다. 1979년 이란 팔레비 국왕 정권은 무기 거래 목적으로 영국 은행에 4억 파운드를 넣어두고 있었다. 왕정 붕괴 후 이란 정부는 영국에 그 돈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으나 영국이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동참하며 돌려주지 않자 나자닌을 인질로 잡았다. 국가 간 빚 문제가 한 가족을 파탄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나자닌은 5년간 복역 후 지난해 출소했지만 곧 다시 감옥에 갇혔다. 돈을 돌려받지 못한 이란이 과거 시위 참여 전력을 이유로 그를 추가 기소해 1년형을 선고한 것이다. 리처드는 다시 영국 외교부 청사 앞에서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나자닌 송환을 요구하는 국내외 여론이 거세지자 최근 영국 정부는 이란에 ‘인도주의적 사용’을 조건으로 4억 파운드를 갚았다. 제러미 헌트 전 외교장관은 “리처드가 아니었다면 나자닌은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나자닌은 17일 영국 옥스퍼드셔 공항에서 가족과 재회했다. 어느덧 일곱 살이 된 딸은 엄마에게 보여줄 장난감을 가슴에 끌어안고 있었다. 리처드는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순 없지만 우리는 미래를 살 것”이라고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03-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중섭과 함께 유학했던 이 작가 유족, 작품-자료 500점 기증[이번주 미술계]

    ○ 윤중식 화백 작품-자료 500점 기증 근현대화가 고 윤중식 화백(1913¤2012)의 유족이 11일 서울 성북구 성북구립미술관에 고인의 작품과 자료 500점을 기증했습니다.평양 출신인 이 작가는 6·25전쟁 때 월남했습니다. 피란길에 부산에 도착했던 그는 이중섭의 제안으로 그의 집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이중섭과 일본 제국미술학교를 함께 다녔고 1943년 평양에서 이중섭, 김병기 등과 6인전을 열었습니다.농촌이나 전원과 같은 목가적 풍경을 강렬한 색채로 그린 그의 작품에는 지난 시절과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향수가 담겨 있습니다. 성북구립미술관 기증작에는 ‘아침’(1987년) ‘석양’(2005년) 등 주요 유화 71점과 피란길을 기록한 드로잉 28점이 포함됐습니다.○ NFT 작가 비플, 이번엔 갤러리에서 개인전그래픽 아티스트 비플이 3월 3일 뉴욕 맨하탄의 한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비플은 지난해 크리스티 옥션에서 ‘Everydays - The First 5000 Days’를 6900만 달러에 팔아 NFT에 관심을 촉발시킨 인물입니다.13점의 그림과 판화가 공개된 전시에는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회사들이 잔해로 남은 디스토피아적 세계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 가격은 7만5000~30만 달러 선. 그는 메타버스로 번 돈 대부분을 작품 제작에 투입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숲으로 이전한 디뮤지엄 개관전한남동에서 서울숲으로 자리를 옮긴 디뮤지엄이 개관전 ‘어쨌든 사랑: Romantic Days’를 엽니다.천계영 이은혜 이빈 이미라 원수연 박은아 신일숙 등 한국 순정만화 작가의 7개 작품 속 장면을 기준으로 7가지 사랑의 감정과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전시입니다.각각의 장면을 모티브로 사진, 만화, 일러스트, 설치 등 국내외 작가 23명의 작품 약 300점을 선보입니다.※‘이번 주 미술계’는 한 주 간 눈 여겨 볼만한 미술 소식을 정리해드리는 코너로 매주 금요일 발송되는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국내 미술관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창의성의 사례를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김민기자 kimmin@donga.com}

    • 2022-03-17
    • 좋아요
    • 코멘트
  • 뉴질랜드, 접종완료 관광객 ‘무격리 입국’ 허용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2년간 국경을 봉쇄해온 뉴질랜드 정부가 다음 달부터 백신 접종을 완료한 외국인 관광객의 입국을 순차적으로 허용한다고 16일 밝혔다. 다음 달 12일 오후 11시 59분부터는 호주 국민에게 국경이 개방되며, 한국을 포함한 비자 면제 협정 국가에서 온 여행객은 5월 1일 오후 11시 59분부터 입국이 가능하다. 여행객들은 자가 격리 없이 입국할 수 있다. 다만 백신 접종을 완료했더라도 출발지에서 코로나19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아 음성 확인서를 제출하고, 입국 당일과 5일 차에 신속항원 검사를 받아야 한다. ‘방역 모범국’으로 꼽히는 뉴질랜드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사망자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인 115명에 그치고 있다. 베트남 정부도 15일부터 외국인 관광객의 입국을 허용하며 한국 일본 영국 등 13개국 여행객에게 비자를 면제해 주기로 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한국인은 이날부터 비자 없이 15일간 베트남 체류가 가능하며, 백신 접종 완료 혹은 코로나19 완치 증명서와 함께 코로나19 음성 확인서를 제출하면 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03-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딸-손자 구하러… 우크라 사선 넘은 美아빠

    “어떤 아버지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나처럼 행동했을 겁니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딸과 여권조차 없는 8개월짜리 외손자를 구하기 위해 두 번이나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은 미국인 아버지 윌리엄 허버드 씨의 사연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고 AP통신 등이 13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미 북동부 매사추세츠주 피치버그에 사는 허버드 씨는 최근 두 번이나 우크라이나를 오가며 딸과 손자를 슬로바키아 국경 지대까지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그의 딸 에이슬린(19)은 2018년 키이우 무용대학에 입학했다. 이 학교는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를 배출한 명문으로 당시 이곳에 입학했다는 사실이 현지 언론에도 보도됐다. 에이슬린은 이곳에서 남자친구를 만나 지난해 아들 세라핌을 낳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당시 에이슬린은 집에서 출산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가정 분만을 할 때 출생 신고서를 받는 절차가 까다롭다. 이에 아직 출생증명서와 여권이 모두 없는 세라핌을 데리고 국경을 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허버드 씨는 딸의 출국을 돕기 위해 지난달 첫 번째로 우크라이나 땅을 밟았다. 친자확인 검사로 세라핌의 신분을 확인하고 여권을 만들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 와중에 러시아가 침공하자 그는 딸과 손자의 탈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우선 홀로 귀국했다. 기금모금 사이트 ‘고펀드미’와 지역 언론 등에 사연을 공개하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지지부진하자 다시 우크라이나행을 택했다. 그는 미국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비행기를 타고, 이곳에서 폴란드 바르샤바로 가는 비행기를 또 갈아탔다. 바르샤바에서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폴란드 남동부까지 갈 때는 기차, 도보, 모르는 이의 차를 얻어 타며 국경을 넘었다.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에서 수도 키이우까지 기차로 이동한 후에야 딸과 손자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세 사람은 피란민 수천 명과 함께 서쪽으로 이동해 11일 슬로바키아 국경 인근에 도착했다. 하지만 세라핌은 아직 여권이 없다. 허버드 씨는 “가족을 돌보는 것이 아버지의 일”이라며 딸, 손자와 함께 국경을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03-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딸과 손자 구하려 우크라 국경 두 번이나 넘은 美 아빠

    “어떤 아버지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나처럼 행동했을 겁니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딸과 여권조차 없는 8개월짜리 외손자를 구하기 위해 두 번이나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은 미국인 아버지 윌리엄 허버드 씨의 사연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고 AP통신 등이 13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미 북동부 매사추세츠주 피치버그에 사는 허버드씨는 최근 두 번이나 우크라이나를 오가며 딸과 손자를 슬로바키아 국경 지대까지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그의 딸 에이슬린(19)은 2018년 키이우 무용대학에 입학했다. 이 학교는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를 배출한 명문으로 당시 어린 미국 학생이 이 곳에 입학했다는 사실이 현지 언론에도 보도됐다. 에이슬린은 이 곳에서 남자친구를 만나 지난해 아들 세라핌을 낳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당시 에이슬린은 집에서 출산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가정 분만을 할 때 출생 신고서를 받는 절차가 까다롭다. 이에 아직 출생증명서와 여권이 모두 없는 세라핌을 데리고 국경을 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허버드 씨는 딸의 출국을 돕기 위해 지난달 첫 번째로 우크라이나 땅을 밟았다. 친자확인 검사로 세라핌의 신분을 확인하고 여권을 만들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 와중에 러시아가 침공하자 그는 딸과 손자의 탈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우선 홀로 귀국했다. 기금모금 사이트 ‘고펀드미’와 지역 언론 등에 사연을 공개하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지지부진하자 다시 우크라이나행을 택했다. 그는 미국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비행기를 타고, 이 곳에서 폴란드 바르샤바로 가는 비행기를 또 갈아탔다. 바르샤바에서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폴란드 남동부까지 갈 때는 기차, 도보, 모르는 이의 차를 얻어 타며 국경을 넘었다.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에서 수도 키이우까지 기차로 이동한 후에야 딸과 손자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세 사람은 피란민 수천 명과 함께 서쪽으로 이동해 11일 슬로바키아 국경 인근에 도착했다. 하지만 세라핌은 아직 여권이 없다. 허버드 씨는 “가족을 돌보는 것이 아버지의 일”이라며 딸, 손자와 함께 국경을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03-14
    • 좋아요
    • 코멘트
  • 홀로 1200km 피란길 우크라 소년 “희망이 나를 인도”

    러시아의 침공을 피해 혼자 기차를 타고 1200km를 이동한 11세 우크라이나 소년 하산 알 할라프가 11일(현지 시간)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열린 반전 집회에 참석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엄마는 내가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기를 바랐다. 엄마가 준 희망이 나를 이끌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할라프는 이달 초 우크라이나 남동부 자포리자에서 슬로바키아로 혼자 탈출했다. 그의 어머니는 남편과 사별 후 혼자 할라프를 포함한 아이들을 키웠고, 자신의 어머니까지 돌보고 있었다.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할라프의 어머니는 아들을 슬로바키아에 있는 친지 집에 맡기기로 하고 열차에 태웠다. 자신은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자포리자에 남았다. 할라프가 천신만고 끝에 슬로바키아 국경에 도착했을 때 그가 가진 것이라곤 여권, 비닐봉지, 손등에 적힌 친지 연락처뿐이었다. 경찰이 그를 발견했고 할라프는 곧 친척을 만날 수 있었다. 할라프는 이날 집회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돕고 있는 자원봉사자에게 큰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조만간 어머니를 다시 만나고 싶다며 “행복한 결말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도 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03-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나홀로 피란’ 11세 우크라 소년 “엄마가 준 희망이 나를 이끌어”

    러시아의 침공을 피해 혼자 기차를 타고 1200㎞를 이동한 11세 우크라이나 소년 하산 알-칼라프가 11일(현지 시간)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 열린 반전 집회에 참석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엄마는 내가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기를 바랐다. 엄마가 준 희망이 나를 이끌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하산은 이달 초 우크라이나 남동부 자포리자에서 슬로바키아로 혼자 탈출했다. 그의 어머니는 남편과 사별 후 혼자 하산을 포함한 아이들을 키웠고, 자신의 어머니까지 돌보고 있었다.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하산의 어머니는 아들을 슬로바키아에 있는 친지 집에 맡기기로 하고 열차에 태웠다. 자신은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자포리자에 남았다. 하산이 천신만고 끝에 슬로바키아 국경에 도착했을 때 그가 가진 것이라곤 여권, 비닐봉지, 손바닥에 적힌 친지 연락처뿐이었다. 다행히 경찰이 그를 발견했고 하산은 곧 친척을 만날 수 있었다. 하산는 이날 집회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돕고 있는 자원봉사자에게 큰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조만간 어머니를 다시 만나고 싶다며 “행복한 결말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도 했다. 슬로바키아 내무부 또한 페이스북을 통해 “미소와 용기, 결단력을 갖춘 이 소년은 모두의 마음을 얻었다”며 “진정한 영웅”이라고 칭송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03-13
    • 좋아요
    • 코멘트
  • 러시아에 버림 받은 작가의 선언, 불멸이 되다 [영감 한 스푼]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민 기자입니다.국제부에서 일하는 저는 요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최대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내 의지와 관계 없이 일상을 파괴 당하고 집을 떠나야만 하거나, 억울한 피해를 입는 장면들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러시아는 왜 그럴까? 푸틴은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하는데요.마침 러시아의 20세기 예술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어 직접 다녀왔습니다. 이 시기 러시아 예술이라고 하면 칸딘스키, 말레비치, 그리고 구성주의를 떠올리게 되죠.아쉽게도 이 전시에서 칸딘스키 작품은 3점, 말레비치 작품은 단 2점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전시를 소개할까 고민하다, 전시와 별개로 흥미로운 작가 카지미르 말레비치(1879~1935)를 다뤄보기로 했습니다.말레비치는 정치적 압박을 피해 우크라이나로 이주한 폴란드인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지금 러시아의 공습이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자랐는데요.이후 러시아로 이주해 국가적으로 인정받는 예술가가 되었다가 말년에는 감옥에 갇히고 예술 작품 제작을 금지 당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그리고 죽고 난 뒤 수십 년이 지나 미술사에 남을 불멸의 작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말레비치가 어떻게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을 예술 세계를 구축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영감 한 스푼 미리 보기: 시대를 정확히 읽은 눈으로 불멸이 되다카지미르 말레비치1. 말레비치는 프랑스의 입체파와 이탈리아의 미래파가 새로운 시대의 예술이라는 것을 정확히 읽었다.2. 이 두 가지 예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과감히 밀고나가 절대주의를 선언하고 예술 작품으로 선보였다.3. 이후 스탈린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의 예술은 반혁명적인 것으로 낙인 찍히고 탄압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진가를 인정 받아 불멸의 예술이 되었다.○ 검은 사각형 때문에 식음을 전폐한 남자(먼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말레비치 작품은 아래 두 점 밖에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다른 작품은 작가의 예술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다른 곳에서 가져온 자료입니다.)말레비치 작품이 아주 적은 숫자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대표작을 직접 볼 수는 있었습니다. 바로 위 사진에 있는 ‘절대주의’입니다.전시장에서는 말레비치와 함께 절대주의나 구성주의 작업을 했던 류보프 포포바, 알렉산드로 로드첸코, 엘 리시츠키 등 동료 작가의 작품이 함께 걸려 있었습니다.위와 같은 기하학적 추상이 잔뜩 걸린 공간에 들어서자 한 커플 관객의 반응이 재밌었습니다. ‘이게 뭐야’하는 난감한 웃음이 터진 두 관객은 귓속말로 “다음으로 넘어갈까?” 했거든요.아무런 맥락 없이 이 작품들을 맞닥뜨리면… 저라도 당황스럽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답니다.그런데 여기서 말레비치의 대표작을 소개해드리면 더 난감한 웃음이 터질 것 같습니다. 말레비치의 대표작은 바로 ‘검은 사각형’이기 때문이죠. 말 그대로 캔버스에 검은 사각형을 그린 것입니다.보여드릴게요. 어떤가요?이 비슷한 작품을 해외 미술관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사실 저도 그 때 그림 앞에 서서 작품을 자세히 뜯어보기가 민망했던 기억이 납니다.왜냐면 정말, 그냥 말 그대로 검.은.사.각.형.이니까요. 그 외에 구도가 어떻고 색감이 어떻고…이런 걸 말할 거리가 전혀 없는 그림입니다.굳이 찾자면, 물감이 많이 갈라졌네….정도요? 근데 이건 시간이 오래 지나 자연스레 생긴 현상이니 사실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말레비치는 그럼 어떤 의도로 이 검은 사각형을 그린 걸까요? 그가 이 그림을 그릴 무렵 알고 지낸 동료의 증언은 이렇습니다.“말레비치는 검은 사각형이 자신의 예술 커리어에 아주 중요한 작품이 될 것임을 직감했지만, 아직 그것의 의미를 온전히 머리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것을 말로 정리해내기 위해) 그는 1주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잠을 자지도 않았다.”(Anna Leproskaia)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검은 사각형의 의미를 ‘언어로 정리하기 위해’ 식음 전폐를 했다는 사실인데요. 이 황당한 그림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는 건지, 그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겠습니다.○ 그림은 곧 생각이다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은 1907년 열린 오페라 ‘태양에 대한 승리’의 무대와 의상 디자인을 할 때부터 어렴풋이 구상되었습니다. 위 그림은 1913년 오페라 공연의 무대 디자인인데, 태양(흰색)을 검은 사각형이 점령하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죠.그러나 이 형상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그가 남긴 글입니다. 말레비치는 ‘검은 사각형’ 작품과 함께 이 예술을 미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글을 남깁니다. 1915년 ‘입체주의에서 절대주의까지’(From Cubism to Suprematism)를 시작으로 여러 편의 글을 발표합니다.그 중 1920년 발표한 글의 일부를 가져와봤습니다.(영어 번역본을 한글로 옮겼고,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생략 및 의역한 부분이 있습니다.)“나는 흰 사각형을 그린 뒤 그것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행위 그 자체’의 의미를 서술할 수 있었다. (…) (또 검은 사각형의) 문제를 통해 세계속 대상을 창조하는 것이 붓이 아닌 펜으로 이뤄짐을 실험하게 된다.펜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을 붓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붓은 이미 낡았다. 마음을 이리 저리 움직이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펜이 더 날카롭다.나는 사고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영역은 내게 새로운 것이며, 이를 통해 인간의 두뇌라는 무한한 영역을 탐구하고자 한다.”우선 말레비치의 글 자체가 명료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고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포인트가 두 가지 있습니다. 바로 ‘펜’과 ‘사고의 영역’이라는 표현입니다.제가 이해한 것을 풀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먼저 미술사적인 맥락에서 말레비치의 말을 비추어 봐야겠죠.과거의 그림은 현실에 있는 것을 그대로 복사하는, 지금의 ‘사진’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말레비치는 그림은 그냥 종이 위에 물감일 뿐이고, 그것을 그림이라고 믿는 것은 사람의 생각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흰 캔버스 위에 흰 색을 칠하는 것을 통해 말레비치는 ‘그리는 행위’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흰 캔버스 위에 칠해진 흰 색은 눈으로 보면 아무런 흔적이 없지요.형태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작가가 그것을 그렸다는 행위는 분명히 존재하는 진실입니다. 그것을 인식하는 ‘생각’이 그림 속 형태보다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말레비치는 하고 있습니다.이 맥락에서 검은 색을 네모낳게 칠한 것은 말 그대로 ‘검은 사각형’에 불과하다고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그 사각형을 그리고 이름붙인 행위입니다. 마치 ‘내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너는 몸짓에 불과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죠.그렇다면, 그림이 천조각 위해 물감에 불과하다고 선언한 것이 왜 중요하냐는 의문이 남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 중요성은 시대적인 맥락에 있습니다.20세기 초 유럽은 산업혁명을 비롯한 기술의 발전과 유럽 밖 고대 문명의 발굴로 빠른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사람들이 수 백년 동안 고정된 가치 체계 내에서 정해진 삶을 살았다면, 이 때부터 개인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말레비치도 어릴 적 아버지가 사탕 공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 본 기억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뒤늦게 발견된 원고에서 그는 “공장 속 기계들이 커다란 생명체 같았다”고 회고합니다.이런 기계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에 매료된 이탈리아 작가들이 선언한 것이 ‘미래주의 예술’입니다. 이 작가들은 기계 문명을 통해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희망을 찬양하곤 했습니다.여기에 정해진 하나의 관점이 아닌 다양한 관점을 허용하는 ‘입체주의 예술’이 더해집니다. 말레비치는 이 두 가지 예술 사조를 통해 절대주의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말하는데요.조금만 상상력을 보태어 생각한다면, 즉 절대주의는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예술의 가치를 선언한 예술이며, 그 가치는 과거의 고정된 것이 아닌 작가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임을 인식한 초기의 예술 중 하나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개인이 종교나 국가의 부속품이었던 과거와 달리, 개인이 갖고 있는 인식과 자아를 예술에서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조금 관념적인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한 마디로 정리하면 말레비치는 예술을 통해 자신이 인식한 자아를 솔직하고 과감하게 선언했으며, 이를 통해 시대를 증언한 역사적인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스탈린 정권이 들어서다말레비치는 절대주의를 발표한 후 국가적인 인정을 받았습니다. 특히 1910년대 말 러시아의 10월 혁명 이후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았죠. 1919년에는 국가가 말레비치의 개인전을 모스크바에서 직접 열어주기도 했습니다.또 1927년에는 폴란드 바르샤바와 독일 베를린, 뮌헨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1928~1930년에는 우크라이나 키이우 예술대학교 교수가 되어 강의를 했습니다.그런데 베를린과 뮌헨에서 전시를 연 말레비치는 작품을 대부분을 그 곳에 두고 옵니다. 블라디미르 레닌의 죽음과 레온 트로츠키의 추방이 자신의 예술에 우호적이었던 사회 분위기를 바꿀 것임을 예감했기 때문입니다.실제로 스탈린 정권이 들어선 뒤 추상화는 ‘부르주아 예술’로 낙인 찍혔으며 러시아에 남아있던 말레비치의 작품과 원고는 압수당했습니다. 또 추상화 작품 제작을 금지 당하기에 이르죠.개개인의 자아를 선언한 작품이 소련에 들어선 독재주의 정권에 어울리지 않았다는 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릅니다. 이 대목에서 21세기에도 독재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오버랩 되기도 합니다.결국 말레비치는 자신이 선보였던 20세기의 가장 과감한 추상화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년의 그림은 완전히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였고, 56세에 암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그러나 유럽에 남아 있던 그의 예술은 후대 예술가와 비평가들에게 영향을 주면서 생명을 유지했습니다.그 미술사적 가치는 그의 작품을 압수하고 제작을 못하게 만들었던 러시아도 뒤늦게 인정을 했습니다. 말레비치가 1920년대 그린 검은 사각형이 뒤늦게 발견되고 에르미타주 국립미술관이 소장을 했거든요. 이 작품은 러시아의 사업가가 구매해 미술관에 기증했는데, 10월 혁명 이후 가장 값비싼 기증으로 기록되었다고 합니다.또 위 사진에서 보이는 ‘절대주의 구성’은 2008년 6000만 달러에, 2018년에는 8500만 달러(약 1045억 원)에 경매에서 팔리면서 러시아 작품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말레비치를 지원했던 동료에 의해 뒤늦게 작품이 온전하게 세상의 빛을 보기도 했습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지원했던 비평가이자 컬렉터 니콜라이 카르드지예프가 20년 동안 시도한 끝에 1993년 네덜란드 망명에 성공하면서, 말레비치의 작품과 드로잉, 스케치, 원고 수백 점을 갖고 간 것인데요. 이 작품들은 2003년 구겐하임 베를린 회고전을 통해 관객을 만났습니다.남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내고 시대를 정확히 직시했던 예술가, 그리고 그런 그를 이해했던 소수의 사람들이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를 불멸로 만들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저도 주변에 그런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그런 사람을 지지해 줄 용기는 있는지 말레비치의 삶을 통해 되돌아봅니다.한 줄로 보는 전시러시아 아방가르드 맛보기. 입장권 가격에 비해 너무 적은 작품 수와 6개 중 2개 전시관이 영상으로 처리되어 아쉬움.추천지수(별 다섯 만점) ★★☆전시 정보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2021. 12. 31 ~ 2022. 4. 17세종문화회관 미술관(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175)작품수 75점※‘영감 한 스푼’은 국내 미술관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시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영감 한 스푼 뉴스레터 구독 신청 링크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03-12
    • 좋아요
    • 코멘트
  • NYT 평론가 “NFT 예술이라는 개념은 없다”[이번주 미술계]

    NYT 평론가 “NFT 예술이라는 건 없다…디지털 인증서로 봐야”뉴욕타임스의 예술 평론가 블레이크 고프닉이 NFT 열풍이 휩쓸고 지나갔지만 그것이 과거 원근법이나 사진과는 달리 예술 자체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짚었습니다.고프닉은 NFT는 디지털 인증의 한 형태이지 ‘예술’로 볼 수 없다고 단언했는데요. 이와 관련해 미국 샌프란시스코미술관(SFMoMA)의 미디어아트 큐레이터 루돌프 프릴링이 “NFT 예술이 성립할 수 없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차라리 디지털 예술이라고 해야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NFT 아트 전시’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어 보인다고도 덧붙였죠.또 NFT 상품 중 절반 이상은 400달러 이하에 팔렸는데 이는 발행 비용도 못 건지는 수준이며, 팔리지 않는 상품이 더 많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앙리 마티스’전 판화 워크샵 가보니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앙리 마티스: 라이프 앤 조이’전에서는 판화를 직접 찍어보는 워크샵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일반인을 대상으로 시간대별로 실크스크린, 석판화, 리소그래프를 체험해볼 수 있습니다.전시장에서는 마티스의 판화 작품과 종이 오리기 기법으로 만든 컷아웃 작품이 수록된 아트북 ‘재즈’의 원본도 공개됩니다.▶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310/112257690/1박찬욱, 민병훈…사진&미디어아트 뛰어들다박찬욱 감독은 사진작품을 아트바젤에 내놓고, 민병훈 감독은 미디어아트 작가로 데뷔하고 있습니다. 영화감독들은 왜 예술로 뛰어드는 걸까요?박찬욱 감독은 여럿이서 만드는 영화가 때로 힘들어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사진을 찾게 된다고 말했습니다.민병훈 감독은 흥행 여부로 성패가 갈리는 스트레스에도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 예술을 한다고 말합니다.▶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20303/112133659/1※‘이번 주 미술계’는 한 주 간 눈 여겨 볼만한 미술 소식을 정리해드리는 코너로 매주 금요일 발송되는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국내 미술관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창의성의 사례를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하면 매주 금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영감 한 스푼 뉴스레터 구독 신청 링크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51199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03-10
    • 좋아요
    • 코멘트
  • ‘소련 개방 상징’ 맥도널드, 러 850개 매장 문닫는다

    옛 소련 붕괴와 함께 유입된 미국식 자본주의를 상징했던 대표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널드가 러시아 사업을 접는다.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러시아 영업을 계속하는 미 민간기업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이를 따르기로 했다. 스타벅스, 코카콜라, 펩시코 등 기타 미 식음료 기업 또한 러시아 영업을 중단했다. 크리스 켐프친스키 맥도널드 최고경영자(CEO)는 8일(현지 시간) 성명을 내고 “850개 러시아 매장의 영업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불필요한 인류의 고통을 못 본 척할 수 없다며 “언제 다시 러시아에서 매장을 열 수 있을지 예측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고 했다. 맥도널드는 소련 붕괴 직전인 1990년 모스크바 푸시킨 광장에 첫 점포를 열었다. 당시에도 햄버거를 먹기 위해 러시아인들이 매장 앞에 길게 줄을 섰다. 이번에 영업 중단을 발표하자 마지막으로 햄버거를 먹겠다는 시민들이 몰려들어 32년 만에 긴 대기 행렬이 만들어졌다. 비상사태를 막기 위해 매장 인근에 민병대까지 배치됐다. 미 대표 언론 뉴욕타임스(NYT) 또한 기자들의 안전을 우려해 러시아에 상주하는 모든 기자를 철수시키기로 했다고 8일 밝혔다. 1921년 러시아에 기자단을 상시 파견한 후 10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닐 맥파쿼 전 NYT 모스크바 지국장은 트위터에 “(옛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도, 냉전도 우리를 몰아내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2-03-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키이우, 요새로 변했다”… 시민들, 대전차 방어벽 구축 항전 태세

    상점을 돌보거나 사무실에서 일했던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이제 고국을 사수하는 데 손을 보태고 있다. 수도 키이우로 통하는 고속도로에는 ‘고슴도치’라 불리는 대전차 방어벽과 모래주머니, 콘크리트 블록 장애물이 놓였다. 8일(현지 시간) 미국 CNN방송이 보도한 키이우의 모습이다.○ “키이우는 요새가 됐다”CNN에 따르면 키이우 시민들은 한마음으로 도시를 요새로 만들고 있다. 자발적으로 육군 수비대에 입대한 민간인들은 큰 코트와 트레이닝복을 입고 검문소를 지켰다. 4시간씩 교대로 보초를 서며 추위에 얼굴이 빨개진 시민 올렉시 곤차렌코 씨는 “추위 정도는 괜찮다. 주민들이 따뜻한 수프를 가져다준다”고 CNN에 말했다. 특히 러시아 침공 이틀 만에 우크라이나인 4만 명이 육군 방위대에 자원입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키이우에서만 1만8000명이 일상을 포기하고 무기를 들었다. 군에 입대하지 못한 사람들도 화염병과 위장 그물을 만들고 도로 위 표지판을 색칠해 러시아군에 혼란을 주는 등 도움을 보태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8일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도 시민들이 항전 준비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크림반도를 통해 바다로 러시아군이 침공해 올 것을 우려해 해변에는 방어벽을 구축했고, 오페라극장 앞에도 대전차 장애물을 놓았다. 오데사 필하모닉 감독 갈리나 짓세르 씨는 “우리는 오데사를 히틀러에게도 내주지 않았다”며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체르노빌서 방사능 유출 가능성”우크라이나 원자력발전소들을 운영하는 국영 에네르고아톰은 9일(현지 시간) 러시아군이 점령한 체르노빌 원전 시설에서 “방사성물질이 유출될 수 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AFP통신은 체르노빌 원전 운영사 측이 “원전이 완전히 멈췄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체르노빌 원전에 대한 전력 연결이 중단된 이후 사용후 핵연료를 냉각할 수 없게 된 데 따른 것이라고 했다. 또 “극도로 위험한 상황”이라고 경고했다고 미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체르노빌 원전과 안전 감시 시스템을 통한 원격 데이터 통신이 끊어졌다면서도 “전력 손실로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러시아군은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체르노빌 원전 시설을 장악했다.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8일(현지 시간) 하원 청문회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당초 이틀 만에 키이우를 점령할 계획이었다”며 “그는 현 상황에 분노하고 좌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은 여전히 전쟁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며 “그는 민간인 사상자를 신경 쓰지 않고 우크라이나군을 분쇄하기 위해 전념할 것이다. 추악한 전쟁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번스 국장은 “우크라이나인들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장악하고 키이우에 안정적인 친러시아 정권을 세우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스콧 베리어 미 국방정보국(DIA) 국장은 “키이우가 10∼14일 안에 절망적인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이날 러시아군이 새로운 경로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로 접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러시아군이 동북부 체르니히우와 하르키우를 우회해 키이우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밝혔다. 키이우 북부에 배치된 64km에 이르는 러시아군 행렬이 여전히 정체 상태인 가운데 추가 병력이 키이우 인근에 도착하면 키이우 포위를 위한 러시아군의 움직임이 강화될 것으로 미 국방부는 내다봤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 2022-03-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요새로 변한 키이우…대전차·모래주머니 장애물 구축 ‘결사항전’

    상점을 돌보거나 사무실에서 일했던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이제 고국을 사수하는 데 손을 보태고 있다. 수도 키이우로 통하는 고속도로에는 ‘고슴도치’라 불리는 대전차 방어벽과 모래주머니, 콘크리트 블록 장애물이 놓였다. 8일(현지 시간) 미국 CNN 방송이 보도한 키이우의 모습이다.● “키이우는 요새가 됐다” CNN에 따르면 키이우 시민들은 한 마음으로 도시를 요새로 만들고 있다. 자발적으로 육군 수비대에 입대한 민간인들은 큰 코트와 트레이닝복을 입고 검문소를 지켰다. 4시간씩 교대로 보초를 서며 추위에 얼굴이 빨개진 시민 올렉시 곤차렌코는 “추위 정도는 괜찮다. 주민들이 따뜻한 수프를 가져다 준다”고 CNN에 말했다. 특히 러시아 침공 이틀 만에 우크라이나인 4만 명이 육군 방위대에 자원입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키이우에서만 1만8000명이 일상을 포기하고 무기를 들었다. 군에 입대하지 못한 사람들도 화염병과 위장 그물을 만들고 도로 위 표지판을 색칠해 러시아군에게 혼란을 주는 등 도움을 보태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8일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도 시민들이 항전 준비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크름반도를 통해 바다로 러시아군이 침공해 올 것을 우려해 해변에는 방어벽이 구축됐고, 오페라극장 앞에도 대전차 장애물이 놓였다. 오데사 필하모닉 감독 갈리나 지트서는 “우리는 오데사를 히틀러에게도 내주지 않았다”며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美 “푸틴의 추악한 전쟁 될 것”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8일(현지시간) 미 하원 청문회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당초 이틀 만에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는 것을 계획했다”며 “그는 현 상황에 분노하고 좌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은 여전히 전쟁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며 “그는 민긴인 사상자를 신경 쓰지 않고 우크라이나군을 분쇄하기 위해 전념할 것이다. 추악한 전쟁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번스 국장은 “우크라이나인들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장악하고 키이우에 안정적인 친러시아 정권을 세우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콧 베리어 미 국방정보국(DIA) 국장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이 2000~4000명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포위하면서 식량, 식수, 난방, 의약품을 차단한 것을 언급하며 “키이우가 10일에서 2주 안에 절망적인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이날 러시아군이 새로운 경로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로 접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러시아군이 동북부 체르니히브와 하리키우를 우회해 키이우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밝혔다. 키이우 북부에 배치된 64㎞에 이르는 러시아군 행렬이 여전히 정체 상태인 가운데 추가 병력이 키이우 인근데 도착하면 키이우 포위를 위한 러시아군의 움직임이 강화될 것으로 미 국방부는 내다봤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러시아군이 점령한 체르노빌 원전 시설에서 안전 감시시스템을 통한 원격 데이터 통신이 끊어졌다며 원전 안전에 대해 심각히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체르노빌 원전 시설을 장악했다 IAEA는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로부터 체르노빌 원전 관리와 관련한 직원 교대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정보를 받았다”며 “체르노빌 직원들은 식품과 식수, 의약품에 대해 매우 제한적인 접근만 허용되고 있으며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 2022-03-09
    • 좋아요
    •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