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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반러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영화가 이달 국내에서 잇달아 개봉한다. 전 세계적으로 러시아 가수의 공연이나 작가의 전시를 취소하는 등 러시아 예술 보이콧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러시아 영화 개봉이 바람직하냐를 두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첫 스타트를 끊는 건 13일 개봉하는 ‘행복을 전하는 편지’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여성 집배원 3명이 식탁에 둘러앉아 편지에 얽힌 다양한 사연을 옛날이야기처럼 풀어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함께 참전한 뒤 오랜 세월 우정을 쌓아온 전우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집배원에게서 전해 들은 노인은 그가 남긴 편지를 읽으며 추억을 회상한다. 영화에 제2차 세계대전 등 전쟁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장르가 드라마인 만큼 회상 장면에서 일부 나오는 것에 그친다. 21일에는 ‘팔마’가 개봉한다. 엄마와 이별한 뒤 아빠와 살게 된 9세 소년 콜리아와 공항 활주로를 맴도는 떠돌이견 팔마의 우정을 담았다. 1974년 러시아 모스크바 브누코보 국제공항에서 주인이 타고 떠난 비행기를 2년 동안 기다린 개 이야기를 토대로 제작했다. ‘팔마’ 배급사인 라이크콘텐츠 관계자는 “3월에 개봉하기로 하고 올 초 마케팅 계획을 잡아놨다가 전쟁이 발발하면서 개봉을 연기했다”며 “더는 연기하기 어려운 상황인 데다 드라마 장르라 러시아라는 나라가 강조되지 않기에 개봉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두 작품과 달리 13일 개봉하는 ‘파일럿: 배틀 포 서바이벌’은 전쟁을 정면으로 다룬다. 이 때문에 하필 이 시점에 러시아군(당시 소련군)을 다룬 영화를 개봉해 불필요한 오해를 살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영화는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독일군 점령지에 추락한 소련 공군 조종사의 생존기를 다룬다. 독일군에 맞선 소련 공군의 활약을 그리는 한편 부상으로 다리가 절단된 뒤에도 전투기를 타고 출격한 실제 전쟁영웅들의 공적을 기리는 내용도 포함됐다. 현재와 반대로 침공당했을 당시 소련군의 활약과 군인정신을 강조한 영화여서 지금 러시아군에 대한 악화된 여론을 희석시키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화를 수입·배급한 박수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오래전 수입 계약을 체결한 영화로, 러시아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영화를 수입하고 있다”며 “군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의 살기 위한 사투에 초점을 맞춘 영화인 만큼 어느 나라 군에든 적용 가능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반러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영화가 이달 국내에서 잇달아 개봉한다. 러시아 가수 공연이나 작가의 전시를 취소하는 등 전세계적으로 러시아 예술 보이콧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러시아 영화 개봉이 옳은 것이냐를 두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먼저 13일 러시아 영화 ‘행복을 전하는 편지’가 개봉한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무대로 한 이 영화는 여성 집배원 3명이 식탁에 둘러앉아 편지에 얽힌 다양한 사연을 옛날이야기처럼 풀어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함께 참전한 뒤 오랜 세월 우정을 쌓아온 전우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집배원에게서 전해들은 노인은 그가 남긴 편지를 읽으며 추억을 회상한다. 영화에 제2차 세계대전 등 전쟁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장르가 드라마인 만큼 회상 장면에서 일부 나오는 것에 그친다. 21일에는 또 다른 러시아 영화 ‘팔마’가 개봉한다. 엄마와 이별한 뒤 아빠와 살게 된 9세 소년 ‘콜리아’와 주인과 헤어진 뒤 공항 활주로를 맴도는 떠돌이견 ‘팔마’의 우정 이야기를 담았다. 1974년 러시아 모스크바 브누코보 국제공항에서 주인이 타고 떠난 비행기를 2년 동안 기다린 개 이야기를 토대로 제작됐다. ‘팔마’ 배급사인 라이크콘텐츠 관계자는 “3월에 개봉키로 하고 올 초 마케팅 계획을 잡아놨다가 전쟁이 발발하면서 개봉을 연기했던 영화”라며 “더는 연기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장르도 드라마로 러시아라는 나라가 강조되거나 하지 않아 개봉을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두 작품과 달리 13일 개봉하는 ‘파일럿: 배틀 포 서바이벌’은 전쟁을 정면으로 다룬다. 이 때문에 하필 이 시점에 러시아군(당시 소련군)을 다룬 영화를 개봉해 불필요한 오해를 살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영화는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독일군 점령지에 추락한 소련 공군 조종사의 생존기를 다룬다. 독일군에 맞선 소련 공군의 활약을 그리는 한편 당시 부상으로 다리를 절단하고도 다시 전투기를 타고 출격했던 실제 전쟁영웅들의 공적을 기리는 내용도 포함됐다. 현재와 정반대로 침공 당했을 당시 소련군의 활약과 군인정신을 강조한 영화인만큼 현재의 러시아군에 대한 악화된 여론을 희석시키는데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화를 수입·배급한 박수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오래 전 수입 계약을 체결한 영화로 러시아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영화를 수입하고 있다”라며 “군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의 살기 위한 사투에 초점을 맞춘 영화인만큼 어느 나라 군에든 적용 가능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한국영화가 더 발전하려면 다양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영화는 다양성을 더하는 작품이죠.” 영화 ‘쓰리: 아직 끝나지 않았다’(이하 쓰리)를 연출한 박루슬란 감독(41)은 1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소개했다. ‘쓰리’는 카자흐스탄에서 촬영했고, 주연배우들은 카자흐스탄인과 러시아인이 섞여 있다. 박 감독은 물론이고 주요 스태프는 모두 한국인인 특이한 영화다. 고려인 4세인 박 감독은 지난해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귀화했다. ‘쓰리’는 지난달 말 카자흐스탄에 이어 이달 21일 국내에서 개봉한다. 그는 “내 영화를 한국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돼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 감독이 연출한 두 번째 장편 ‘쓰리’는 202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의 재능 있는 신인감독에게 수여하는 ‘뉴커런츠상’을 그에게 안겨준 작품이다. 영화는 1970년대 소련에서 실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을 다룬다. 당시 담당 형사는 8명을 살해한 뒤 인육까지 먹은 살인마를 끈질기게 쫓아 검거했지만, 당국에 의해 해임됐다. 소련 당국은 이 살인마를 정신병원에 가두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1980년 개최된 모스크바 올림픽을 앞두고 끔찍한 사건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것을 우려해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 박 감독은 “내가 어렸을 때 문제의 살인마가 내가 살던 현재의 우즈베키스탄 지역으로 도망친 일이 있어 늘 기억하던 사건”이라며 “어른이 돼 사건 담당 형사를 만났는데 살인마가 지금도 병원에서 잘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흥미를 느껴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고 했다. 그는 2012년 첫 장편 데뷔작인 ‘하나안’에서 자신과 같은 고려인 이야기를 다뤘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선 고려인을 출연시키지도, 고려인 이야기를 다루지도 않았다. “한 선배가 얘기했어요. 고려인이라는 정체성에 갇혀 있으면 고려인 얘기밖에 안 나온다고요. 그 틀에서 벗어나야 성장할 수 있다고요. 생각해 보니 제가 고려인 이야기만 하려고 감독이 된 건 아니었어요.” 박 감독은 다만 고려인을 상징하는 인물인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1868∼1943) 이야기는 꼭 다뤄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현재 홍범도 일대기를 다룬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중이다. “홍 장군 영화를 만든 이후엔 제게 영화감독의 꿈을 심어준 공상과학(SF) 장르도 해보고 싶어요. 10명이 보면 10명 다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영화라는 게 결국 사람들 재밌으라고 만드는 거니까요.”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월 개발 중이라고 밝혀 긴장을 고조시킨 핵추진잠수함은 1950년대 미국에서 개발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과 소련이 치열한 군비경쟁을 벌이던 와중에 미 해군 하이먼 G 리코버 제독은 핵추진 장치를 개발했고 이를 잠수함에 탑재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개발된 것이 세계 최초의 핵잠수함 ‘USS노틸러스’. 1958년 노틸러스가 북극점 빙하 아래를 통과하는 데 성공하면서 장기간 수중 작전이 가능한 핵잠수함 시대가 열렸다. 저자는 1200t급 잠수함인 이억기함 부장과 2007년 실전 배치된 1800t급(214급) 잠수함 중 1번함인 손원일함 초대 함장을 지낸 예비역 해군 대령. 잠수함 부대 작전참모, 잠수함 전대장으로 근무했고 전역한 뒤론 독일 잠수함 건조 회사에서 5년간 이사로 근무한 잠수함 전문가다. 그는 최초의 핵잠수함 이야기는 물론이고 네덜란드 발명가 드레벨이 영국 해군에 고용돼 1620년 최초로 항해가 가능한 잠수함을 제작한 이야기, 1775년 최초로 공격용 잠수함 터틀이 만들어진 이야기 등 잠수함의 역사를 풀어낸다. 6·25전쟁 당시엔 잠수함이 한 척도 없던 한국 해군을 대신해 미군이 잠수함을 이끌고 한반도 해역에서 감시 작전을 했다. 1950년 10월 1일 USS펄치함은 영국 해병 특수부대원들을 북한으로 침투시키는 작전에 동원되며 실제 전투 임무에도 참가했다. 저자는 잠수함의 귀 역할을 하는 소나와 리튬 배터리를 포함해 잠수함 관련 전문 기술 이야기도 풀어낸다. 이 외에도 북한이 시험발사를 진행 중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북한이 개발 중인 3000t급 신형 잠수함의 실체 등 잠수함과 관련한 최신 시사 이슈도 분석했다. 2017년 침몰한 아르헨티나 잠수함 산후안함 승조원 44명이 인양 경비 문제로 지금도 907m 수심에서 잠수함에 갇혀 있는 사연 등 나라를 지키다가 산화했지만 유해조차 수습되지 못한 이들의 슬픈 이야기도 담겼다. 일반인도 잠수함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쓴 솜씨가 돋보인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지난달 21일 월트디즈니컴퍼니는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마블 히어로물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5월 4일 개봉한다고 발표했다. 팬데믹으로 방역지침이 자주 바뀌는 탓에 막판까지 개봉일을 저울질하던 과거와 달리 일찌감치 개봉일을 못 박는 자신감을 보인 것. 지난달 30일에는 파라마운트픽처스가 36년 만에 나오는 ‘탑건’(1986년) 후속편 ‘탑건: 매버릭’을 5월 25일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한다고 밝혔다. 영화사는 개봉 두 달 전에 선제적으로 개봉일을 알린 뒤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며 한국 관객들을 잡기 위한 공세를 펴고 있다. 할리우드 대작들이 봄 극장가를 점령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마블의 안티히어로물 ‘모비우스’를 시작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거장 마이클 베이 감독이 연출한 ‘앰뷸런스’가 6일 개봉했다. ‘앰뷸런스’는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선을 끊으며 할리우드의 저력을 과시했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쓴 조앤 K 롤링이 각본을 쓴 ‘신비한 동물사전’ 3편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도 13일 국내 개봉해 가족 단위 관객 공략에 나선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제작비가 2500억 원 가까이 들어간 대작 중의 대작이다. 블록버스터 치고는 비교적 적은 돈이 투입된 ‘앰뷸런스’도 제작비가 500억 원 가까이 되는 등 막대한 자금력으로 만든 화려한 작품들이 봄 극장가를 잠식할 태세다. 할리우드 대작들이 속속 개봉하는 데 반해 제작비가 100억 원 이상 들어간 한국 영화 대작들은 여전히 “최적의 시기가 오지 않았다”며 개봉을 미루고 있다. 이런 탓에 봄 극장가에서 할리우드 대작에 맞서는 한국 영화는 중·저예산 영화들뿐이다. 한국 영화 ‘다윗’들이 밀려오는 할리우드 ‘골리앗’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이달 개봉을 확정한 한국 영화는 ‘말임씨를 부탁해’(13일), ‘앵커’(20일), ‘소설가의 영화’(21일), ‘공기살인’(22일),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27일) 등으로 각각 제작비가 100억 원에 못 미친다. 이마저도 개봉일을 더 미룰 수 없어 개봉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앵커’ 제작사인 인사이트필름 신혜연 대표는 “‘앵커’는 이미 2020년 초에 촬영을 마쳤다”며 “시대가 빠른 속도로 변하는 만큼 개봉을 더 미루면 영화 내용이 구작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으로 우려돼 개봉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출연 배우에 대해 ‘미투 논란’이 불거진 데다 팬데믹까지 이어지면서 5년 만에 개봉한다. 영화 배급사인 마인드마크는 “학교 폭력과 관련한 사회적 이슈를 심도 있게 다룬 영화로 할리우드 대작들과의 차별성이 분명한 만큼 경쟁해볼 만하다고 생각해 개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다 만든 한국 영화 대작들이 할리우드 대작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고, 극장가가 팬데믹 이전 분위기를 회복하는 시점을 두고 눈치싸움을 하다 한꺼번에 개봉할 경우 경쟁 과열로 흥행에 참패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팬데믹 국면이 끝난 후 한국 영화계가 더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영화관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영화관 내 음료 외 취식 금지 지침을 해제해 영화관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겨야 관객이 영화관으로 돌아오고 한국 영화 대작도 안심하고 개봉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세계 각국 정보기관이 첩보수집 전쟁을 벌이는 중국 선양. 이곳에서 활동 중인 국가정보원 비밀공작 전담 블랙팀이 수개월간 한국에 허위보고를 한 사실이 밝혀진다. 재벌 총수를 수사하다 국정원 파견검사로 좌천된 검사 한지훈(박해수)은 그 내막을 조사하기 위해 특별감찰관으로 선양에 파견된다. 그는 일명 ‘야차’로 불리는 블랙팀 팀장 지강인(설경구)과 팀원들이 총격전까지 치르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각국 요원들과 첩보전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야차’가 8일 전 세계에 공개된다. 나현 감독은 5일 온라인 제작보고회에서 선양을 배경으로 한 것에 대해 “선양은 북한과 인접한 대도시로 늘 긴장감이 흐르는 곳인 만큼 첩보액션물 무대로 적격했다”고 말했다. 실제 촬영은 대만과 한국에서 했다. 인도 신화와 불교에 등장하는 야차는 사람을 잡아먹는 추악한 귀신이자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이중적인 존재인 ‘야차’ 지강인을 연기한 설경구는 이날 “지강인은 무모하고 폭력적이지만 정의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는 인물”이라고 했다. 이어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지강인이 감당 안 될 정도로 멋있어서 감독에게 ‘멋짐의 수위’를 좀 낮춰 달라고 했다”며 웃었다. 야차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글로벌 스타가 된 박해수가 출연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날 스스로를 ‘넷플릭스 공무원’이라 칭한 박해수는 야차에 대해 “눈과 귀가 호강할 수 있는 통쾌한 영화”라고 소개했다. 총격전 장면을 비롯해 각종 액션신을 실감나게 연출하고자 감독은 총기 36정, 총알 7700여 발을 사용하며 공을 들였다. 화려한 총격 액션에 이국적인 배경이 더해지면서 한국 영화라기보다 홍콩영화나 할리우드영화에 가까운 느낌을 풍긴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한지훈을 연기한 박해수는 화려한 액션으로 자칫 비현실적일 수 있는 영화 분위기를 현실로 끌어오는 균형자 역할을 한다. ‘오징어게임’의 진지한 상우와 달리 절제된 코믹 연기도 선보인다. 그는 ‘오징어게임’으로 스타가 된 데 대해 “해외 시청자들이 ‘야차’를 봐주시는 데 내가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감사할 듯하다”고 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새 영화로 ‘노인 죽이기 클럽’(Killing Old People Club·가제)을 발전시키는 중입니다. ‘오징어게임’보다 더 폭력적인 내용이 될 겁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세계를 들썩이게 만든 황동혁 감독(51·사진)이 ‘오징어게임2’ 이전에 제작할 것으로 보이는 차기작에 대해 입을 열었다. 4일(현지 시간) 미국 연예 매체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황 감독은 이날 프랑스 칸에서 열린 세계 최대 방송콘텐츠 마켓 ‘MIPTV’ 행사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차기작은 황 감독이 움베르토 에코(1932∼2016)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황 감독은 “이 프로젝트와 관련해 이미 25페이지 분량의 트리트먼트(시놉시스보다 더 구체화된 개요)를 써놓은 상태”라고 했다. 황 감독은 이 외에는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다만 “이 작품이 공개된 뒤에 나는 아마도 노인들을 피해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덧붙여 노인들이 희생자가 되는 내용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황 감독이 에코의 어떤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가 ‘노인 죽이기’라는 단어를 언급했고, 폭력성 수위가 높다고 말한 것으로 미뤄 볼 때 에코의 유작 에세이집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이 책에는 에코가 2011년 집필한 ‘늙은이들이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포함돼 있다. 에코가 미래를 상상해 쓴 이 글엔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에 가보면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죽지 않고 버티는 노인들”, “이들 탓에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아우성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죽인다. 자신의 부모도 예외는 아니다. 노인들이 숨기 시작하면서 ‘노인 사냥’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내 노인들은 전쟁을 부추겨 젊은이들을 죽이는 방법 등으로 역습에 나선다. 이 같은 내용으로 볼 때 황 감독이 초고령화로 인해 노인층과 젊은층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미래 사회에서 ‘노인 사냥’이 벌어진다는 설정으로 차기작을 만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편 황 감독은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오징어게임2’에 대해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 ‘오징어게임2’ 시나리오를 쓸 것이다”라며 “2024년 말까지는 넷플릭스에서 이 시리즈가 공개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새 작품으로 ‘노인 죽이기 클럽(Killing Old People Club·가제)’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오징어게임’보다 더 폭력적인 내용이 될 겁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세계를 들썩이게 만든 황동혁 감독(51)이 ‘오징어게임2’ 이전에 제작할 것으로 보이는 차기작에 대해 입을 열었다. 4일(현지시간) 미국 연예 매체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황 감독은 이날 프랑스 칸에서 열린 세계 최대 방송콘텐츠 마켓 ‘MIPTV’ 행사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차기작은 황 감독이 움베르트 에코(1932~2016)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황 감독은 “이 프로젝트와 관련해 이미 25페이지 분량의 글을 써놓은 상태”라고 했다. 황 감독은 이 외에는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다만 “이 작품이 공개된 뒤에 나는 아마도 노인들을 피해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덧붙여 노인들이 희생자가 되는 내용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작품이 영화인지, 드라마인지, 어떤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황 감독이 에코의 어떤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가 ‘노인 죽이기 클럽’이라는 단어를 언급했고, 폭력성 수위가 높다고 말한 것을 미뤄볼 때 에코의 유작 에세이집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 하는 방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이 책에는 에코가 2011년 집필한 ‘늙은이들이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짧은 에세이가 포함돼 있다. 미래를 예측한 이 글엔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에 가보면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죽지 않고 버티는 노인들”, “이들 탓에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아우성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할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젊은이들이 자식 없는 노인들을 죽이는 방법이 제시된다. 이를 위해 ‘제거 명단’부터 작성해야 한다는 등 ‘노인 사냥’ 방법도 나와 있다. 이 같은 내용으로 미뤄볼 때 황 감독이 초고령화로 인해 노인층과 젊은층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미래 사회에서 ‘노인 사냥’이 벌어진다는 설정으로 차기작을 만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편 황 감독은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오징어게임2’에 대해선 “이제 집으로 돌아가 ‘오징어게임2’ 시나리오를 쓸 것이다”라며 “2024년 말까지는 넷플릭스에서 이 시리즈가 공개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엄마들은 다 같지 않다. 자식에게 헌신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이 자식보다 먼저라고 여기는 엄마도, 무서운 집착을 보이는 엄마도 있다. 올봄 극장가에는 각양각색 엄마들을 다룬 영화들이 개봉했거나 개봉을 앞두고 있다. 관객에게 각자의 엄마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며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괴팍함 아래 숨겨둔 모성애 “뭐 한다꼬 자꾸 내려온다고 캐 싸.” 85세 말임(김영옥)은 아들(김영민)이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오겠다고 하자 버럭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그래 놓고는 장을 보러 간다. 찌개를 끓이고 고기를 볶고 계단 청소까지 해 놓는다. 13일 개봉하는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는 동네 사람들에게는 다정하지만 아들에겐 걸핏하면 화를 내고 위악을 부리는 엄마 이야기다. 뭐 하나 아들 하라는 대로 하는 법 없는 고집불통이지만, 모성은 누구보다 깊다. 아들을 기다리다 넘어져 병원에 실려 가도 아들이 걱정한다며 한사코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는다. 영화는 아들이 고용한 요양보호사 미선(박성연)과 말임, 아들 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어디에나 있는 노년의 엄마를 세밀화처럼 그려낸 85세 배우 김영옥의 연기는 관객들을 빨아들인다. 전기료를 아끼겠다고 밤중 불을 꺼놓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바람에 아들을 놀라게 하는 모습 등 감독이 살린 ‘생활 디테일’은 평범한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들며 웃음을 끌어낸다. 박경목 감독은 “모두의 가슴에 얹혀 있는 엄마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취지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뒤틀린 모성애가 주는 공포 이달 개봉하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 ‘UMMA(엄마)’도 눈길을 끈다. 한국계 배우 샌드라 오가 엄마 아만다 역을, 한국계 감독 아이리스 심이 연출을 맡았다. 장르는 예상 밖의 공포물. 미국 시골 마을에서 양봉을 하는 1세대 이민자 아만다에게 한국에서 살던 엄마의 유골함이 도착한다. 아만다는 엄마를 혐오한다. 그는 과거 엄마에게 충격적인 수준의 학대를 받고 자랐다. 아만다는 자신의 딸에게는 더없이 다정하다. 그러나 알고 보면 깊은 트라우마로 딸을 외부와 철저히 단절시키는 등 또 다른 방식으로 딸을 옭아맨다. 뒤틀린 모성애의 무서움을 공포물 형식을 빌려 보여준다. 20일 개봉하는 한국 영화 ‘앵커’의 소정(이혜영)은 딸 세라(천우희)의 메인 뉴스 앵커 자리에 집착한다. 딸의 기상 시간, 의상 등 모든 것에 관여하며 군림한다. 딸을 자신을 빛나게 해줄 수단으로 여기고 조종하려는 모습을 통해 광기로 변질된 모성애를 표현했다. 현재 상영 중인 스페인 영화 ‘패러렐 마더스’는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딸을 낳은 싱글맘 야니스(페넬로페 크루스)와 아나(밀레나 스미트)의 이야기를 다룬다. 야니스는 아이를 키우던 중 아이가 바뀐 사실을 알게 된다. 아나가 친딸로 알고 키웠던 야니스의 딸은 이미 돌연사했다. 야니스는 아이를 아나에게 돌려보낼 것인가. 영화는 강한 모성애를 지닌 두 여성에게 집중하는 동시에, 자신의 꿈이 최우선이어서 스스로도 “나는 모성애가 없다”고 말하는 아나의 엄마를 보여준다. 모성의 정도가 각자 다를 수 있고 거기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보여주는 스페인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담담한 연출력이 돋보인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세상의 엄마들은 다 같지 않다. 자식에게 헌신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과 꿈이 자식보다 먼저라고 여기는 엄마도 있다. 학대로 트라우마를 심어준 엄마도,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며 무서운 집착을 보이는 엄마도 있다. 봄 극장가에는 각양각색의 엄마상을 담은 ‘엄마 영화’가 개봉했거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각자의 엄마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며 포스트코로나를 준비하는 극장가에 미약하게나마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괴팍함 아래 숨겨둔 모성애“뭐 한다꼬 자꾸 내려온다고 캐 싸. 나는 개안아.” 85세 말임(김영옥)은 아들 종욱(김영민)이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오겠다며 전화하자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전화를 끊어버린다. 그래놓고는 장을 보러 간다. 찌개를 끓이고 고기를 볶고, 계단 청소까지 해놓고 아들을 기다린다. 13일 개봉하는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는 혼자 사는 엄마를 다룬다. 아들을 기다리다 계단에서 넘어져 병원에 실려가도 아들이 걱정한다며 한사코 아들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는다. 동네 사람들에겐 다정하지만 아들에겐 “오지 말라”고 화내며 위악을 부린다. 뭐 하나 아들 하라는 대로 하는 법 없는 고집불통이다. 영화는 혼자 있을 말임을 위해 아들이 고용한 요양보호사 미선(박성연)과 말임, 아들 가족간에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어디에나 있는 노년의 엄마를 세밀화처럼 그려낸 85세 배우 김영옥의 내공 꽉 찬 생활 연기는 관객들을 빨아들인다. 전기세를 아끼겠다며 한밤 중 불을 꺼놓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바람에 아들을 놀라게 하고 색색의 봉지로 싼 식재료들을 냉동실 가득 저장해놓고 얼리면 평생 가도 상하지 않는다고 믿는 모습까지. 감독이 되살린 ‘엄마 실생활 디테일’은 다소 뻔한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한편 공감과 웃음을 동시에 이끌어낸다. 박경목 감독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영화 속 이야기는 올해 91세가 된 우리 엄마 이야기”라며 “모두의 가슴에 얹혀있는 엄마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 공포가 된 뒤틀린 모성애할리우드 영화 ‘Umma(엄마)’도 이달 중 개봉한다. 한국어 발음 그대로 ‘엄마’다.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가 엄마 ‘아만다’ 역을, 한국계 감독 아이리스 심이 연출을 맡았다. 영화에는 “That’s my 엄마”라는 대사 등 ‘엄마’라는 단어가 종종 나온다. 장르는 예상 밖에 공포물이다. 딸과 단 둘이 고립된 채 살며 미국 시골마을에서 양봉을 하는 1세대 이민자 아만다에게 어느 날 한국에서부터 엄마의 유골함과 영정 사진이 도착한다. 아만다는 엄마를 극도로 혐오한다. 아만다는 과거 어머니에게 충격적인 수준의 학대를 받고 자랐다. 아만다는 반대로 자신의 딸에게 더 없이 다정한 엄마처럼 보인다. 그러나 알고 보면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의 깊은 트라우마로 집에서 일체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딸은 외부 세계와 철저히 단절시키는 등 또 다른 방식으로 딸을 옭아매며 학대한다. 엄마의 잘못된 양육방식이 한 사람의 정신을 얼마나 황폐화시킬 수 있는지, 뒤틀린 모성애가 얼마나 공포스러울 수 있는지를 공포물 형식을 빌려 보여준다. 20일 개봉하는 한국영화 ‘앵커’에도 집착형 엄마가 나온다. 배우 이혜영이 분한 ‘소정’은 딸 세라의 메인 뉴스 앵커 자리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세라가 위험천만한 일을 해서라도 더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길 바란다. 딸의 기상 시간, 옷차림, 식사, 발음까지 모든 것에 관여하며 군림한다. 딸을 자신을 빛나게 해줄 수단처럼 여기고 딸을 로봇처럼 조종하려는 엄마의 모습을 통해 광기로 변질된 모성애를 보여준다. ● 뒤바뀐 아이, 절절한 모성애지난달 31일 개봉한 스페인 영화 ‘패러렐 마더스’는 같은 날 같은 병실을 쓰며 각자의 딸을 낳은 두 엄마 이야기를 다룬다. 야니스(페넬로페 크루즈)와 아나(밀레나 스밋)는 퇴원한 뒤 열심히 아기를 돌본다. 두 사람은 모두 싱글맘이다. 야니스는 자신도, 아이 아빠도 닮지 않은 아이 외모에 의문을 품고 유전자 검사를 의뢰한다. 그 결과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신생아 치료실에 있던 두 아이가 뒤바뀐 것. 아나가 친딸로 알고 키웠던 야니스의 딸은 이미 돌연사했다. 야니스는 사실대로 말하고 아이를 아나에게 돌려보낼 것인가. 영화는 나이도 직업도 사는 환경도 다르지만 모성애만큼은 똑같이 지극한 두 여성 이야기에 집중한다. 동시에 배우로서의 자신의 꿈을 펼치는게 최우선으로 스스로도 “나는 모성애가 없다”고 말하는 아나 엄마도 보여주며 모성의 크기가 다를 수 있음을, 각자의 이유가 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불안함과 슬픔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는 크루즈의 명연기도 관전 포인트.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이에 앞서 지난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볼피컵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코다’는 쉬운 영화다. 보이는 게 다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을 거라는 생각을 접어뒀던 이유다. 이 영화는 감독이 심연에 숨겨놓은 메시지를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된다. 줄거리 서너 줄만 보면 이야기 전개가 다 보인다. 클리셰까지 갖췄다. 명작의 주적, 클리셰를 곳곳에 배치한 영화가 최고상을 받을 가능성은 낮지 않을까 한 것이다. 아카데미의 최고상을 타려면 모름지기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고급 은유가 어딘가에 깔려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범인(凡人)들이 지적 능력을 자책하게 만들거나 반대로 ‘예술 뽕’만 차오른 감독을 힐난하게 하는 그런 유의 영화 말이다. 전문가들은 ‘파워 오브 도그’의 수상 가능성을 높이 봤다. 이 영화는 클리셰를 깨부순다. 1925년 미국 몬태나주 초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겉모습은 서부극. 그러나 이는 고도의 위장술이다. 영화엔 총잡이, 결투 등 뻔한 장면이 하나도 없다. 그 대신 카우보이들의 리더 필과 그의 동생 조지, 남편과 사별한 후 조지와 결혼하는 로즈와 그의 아들 피터 등 네 사람의 심리 묘사가 매 장면을 꽉 채운다. 영화 속 대자연은 장엄함의 끝. 심리 묘사는 정교함의 절정이다. 한 모금씩 번갈아가며 나눠 피우는 담배, 눈빛만으로 숨 막히는 긴장감을 빚고 동성애 코드를 은유해내는 제인 캠피언 감독의 연출 솜씨는 마법이다. 감독은 영상으로 대작 시를 써내려간다. 그런 만큼 짐작의 영역이 많다. 명쾌한 답은 없다. 이 때문에 소름 돋는 반전마저 반전인지 모르고 넘어가는 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일부 관객에겐 ‘내 해석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영화를 다시 보고 되짚어본 뒤에야 ‘뒷북 전율’을 느끼고 호들갑을 떨게 된다. 자백하자면 필자 이야기다. ‘코다’는 해석이 필요 없다. 루비는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집 딸. 농아인인 부모, 오빠 등 가족 중 유일하게 듣고 말할 수 있다. 가족들과 일하며 입과 귀가 되느라 학교생활도 버겁다. 친구들은 장애와 비린내를 조롱한다. 그러다 합창단에 들어가 재능을 발견한다. ‘참스승’은 루비를 음대에 보내려 한다. 얼핏 클리셰 범벅이다. 그러나 클리셰를 활용할 뿐이다. 친숙한 설정으로 긴장을 놓게 하되 “영화 참 편하게 만드네”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도록 디테일로 차별화한다. ‘뻔한데 뻔하지 않게’ 줄타기 한다. 사실 클리셰와의 전면전에 나섰다가 영화가 산으로 가버리고 감독의 나 홀로 공감으로 끝나버린 영화를 여러 번 봐왔다. 클리셰를 배척만 할 수도 없는 이유다. 루비는 자신의 희생에 대한 불만을 곧잘 토로한다. 루비 부모는 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이기적인 면모도 보인다. 부모는 사타구니 가려움증 진료에 딸을 수어 통역사로 데려가고 “2주간 성관계를 하지 말라”는 진단에 “그렇게는 못 한다”고 손사래 치는 철없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현실적인 디테일을 더해 자애로운 부모, 천사 같은 딸이라는 클리셰를 영리하게 변주한다. 가장 큰 장점은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이래도 안 울면 사람도 아니다”라고 압박하는 클리셰 중무장 신파 영화를 많이 봐 왔다. 주인공들은 오열하는데 혼자만 울지 않는 짐승이 돼버린 경험이 숱하다. 반면 이 영화는 주인공들은 울지 않는데 관객은 대놓고 울게 된다. 여기엔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가 큰 몫을 한다. 딸의 콘서트에 가지만 부모에겐 무음의 현장일 뿐. 부모는 조금 당황하다 관객들 반응을 유심히 살핀다. 뒤늦게 박수를 치고 엄마는 환하게 웃는다. 감독은 이를 담담히 보여주되 음을 소거한다. 눈물의 선택권은 관객에게 던진다. 관객들은 협박당한 것처럼 운다. 한 편은 클리셰를 거부했고, 한 편은 적절히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두 전략은 모두 성공적이었다. 아카데미는 월드컵이 아니기에 ‘코다’가 이겼다고 ‘파워 오브 도그’ 제작진이 잔디를 쥐어뜯으며 울 일도 아니다. 다만 아카데미가 전초전으로 여겨지는 골든글로브에서 ‘코다’를 제치고 작품상을 받은 ‘파워 오브 도그’ 대신 ‘코다’에 힘을 실어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정치적 올바름’을 의식한 결과라고 하기엔 ‘파워 오브 도그’도 그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짐작건대 이번만큼은 ‘해석의 영역’에서 벗어난 장벽 낮은 영화에 힘을 실어준 게 아닐까. 뻔해서 모두가 즐길 수 있되 공들인 디테일로 모두를 울리는 보편적인 작품에 보내는 찬사 아니었을까. 완전히 다른 두 걸작이 벌인 대결과 이변은 영화제 이후로도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시상자의 흔한 농담 클리셰를 파괴하겠다는 듯 따귀를 날려버린 윌 스미스 덕(?)에 여운이 금세 휘발해버린 점은 아쉽지만 말이다.손효주 문화부 기자 hjson@donga.com}

《‘지옥’ ‘부산행’ ‘반도’를 흥행시키며 확장을 거듭해 온 ‘연상호 디스토피아’가 또 한번 영역을 넓혔다. 그의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년)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의 12부작 오리지널 드라마로 재탄생했다. 드라마 ‘돼지의 왕’은 18일부터 매주 금요일 2회씩 공개되고 있다. 현재 4회까지 공개됐다.》 원작자인 연 감독은 29일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원작은 내가 처음 쓴 장편 시나리오였다”며 “당시 한국 계급사회의 비극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기획했다”고 말했다. 96분 분량의 원작은 중학교에서 일어난 야만적이고 지능적인 폭력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중1 교실은 한국 사회의 축소판. 아이들은 물리적 힘과 성적, 집안 형편을 기준으로 계급화돼 있다. 교사는 통제의 효율성을 명분으로 이를 묵인한다. 세 요소를 모두 가진 최상위 계급은 ‘사냥개’, 이들의 먹잇감이 되는 약자들은 ‘돼지’로 묘사된다. 권력에 순응할 것인가, ‘돼지의 왕’이 돼 싸울 것인가. ‘돼지’들은 투쟁을 시도하지만 곧 무기력에 빠진다. 작품은 이듬해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칸 영화제 초청을 받았고 “충격의 수작”이라는 호평이 쏟아졌다. 드라마 역시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학교 폭력에 대한 현실감 넘치는 재현, 섬세한 심리 묘사로 호평을 받고 있다. 드라마 대본을 쓴 탁재영 작가는 이날 간담회에서 “나도 원작의 엄청난 팬”이라며 “원작을 좋아하는 분들이 드라마를 보며 배신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원작은 학교 폭력이 일어난 당시의 시점에 초점을 맞춘다. 성인이 된 이들의 비중은 작다. 반면 드라마는 20년이 지나 성인이 된 이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원작과 달리 가장 큰 피해를 당했던 경민(김동욱)은 성인이 된 뒤 가해자들을 연쇄 살인하고, 또 다른 피해자였던 종석(김성규)이 담당 형사가 돼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가 추가됐다. 탁 작가는 “원작의 메시지를 살리면서 재미를 더하려면 스릴러 같은 몰입감 있는 장르와의 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연 감독은 “원작을 만들었을 당시 관객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가해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느냐’였는데 그 답이 드라마에 있다”고 했다. 원작과 드라마 모두 학교 폭력을 묘사하는 수위가 매우 높다. 드라마는 가해자들에 대한 유혈 낭자한 복수 장면까지 더해져 일부 시청자는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 탁 작가는 “끔찍한 사건을 겪은 인물들이 트라우마로 인해 현재 하는 행동을 시청자들이 납득하려면 과거 사건을 현실감 있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드라마는 사적 복수의 정당성과 카타르시스만을 강조하진 않는다. 연 감독은 “(원작도 드라마도) 카타르시스를 통한 대리만족을 목적으로 만든 작품은 아니다. 그런 카타르시스가 정당한가, 피해와 가해를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가를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이라고 했다. 원작이 11년 전 나온 만큼 드라마는 현 시점에 맞게 설정과 배경을 많이 바꿨다. 다만 잔인한 학교 폭력과 가해자들, 이로 인해 정신을 갉아 먹힌 나머지 괴물이 된 이들은 그대로다. “사회가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어떤 의지가 존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의지가 있는지 개인적으론 잘 못 느끼고 있습니다. 11년 전 ‘돼지의 왕’이 보여준 디스토피아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죠. 폭력은 예전보다 오히려 더 고도화되고 복잡해진 거 아닐까요?”(연 감독)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어머니는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엄마 말을 들었어야 했나 봐요.” 27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현장. 남우조연상 시상자로 나선 배우 윤여정(75)이 겸연쩍게 웃으며 영어로 말했다. 그는 “지난해 내 이름을 틀리게 발음하는 이들에 대해 불평했는데 정말 죄송하다”며 “이번엔 내가 후보들 이름을 발음해야 하는데 용서해 달라”고 했다. 지난해 4월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을 당시 그는 “내 이름을 ‘유정’ 등으로 (틀리게) 부른다”고 했다. 그런 그가 1년 만에 남우조연상 후보들의 각양각색 영어 이름을 호명해야 하는 입장이 되자 이를 재치 있게 표현한 것. 검정 롱드레스를 입고 백발을 그대로 드러낸 노배우의 솔직한 고백에 객석에선 웃음이 터졌고 이내 박수가 쏟아졌다. 이날 윤여정은 왼쪽 어깨에 ‘#With Refugees’(난민과 함께)라는 문구가 인쇄된 파란 리본을 달았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진행하는 우크라이나와 난민 지지 캠페인에 참여한 것. 윤여정은 후보 5명을 소개한 뒤 빨간색 카드를 열어 수상자 이름을 확인하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미나리’는 아니에요”라고 농담한 뒤 수어로 “축하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표현했다. 객석에서는 감탄이 터져 나오다 곧 환호가 쏟아졌다. 이후 윤여정은 육성으로 호명했다. “트로이 코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애플TV플러스의 ‘코다’에 출연한 농아인 배우 코처가 무대에 올라서자 윤여정은 수어로 축하했다. 코처가 양손을 사용해 수어로 소감을 밝힐 수 있게 윤여정은 트로피를 대신 받아 들며 배려했다. 윤여정을 포함한 객석 참석자들은 두 손을 반짝이는 수어 박수를 보내며 축하했다. 농아인 배우가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은 건 두 번째다. 최고상인 작품상도 ‘코다’에 돌아갔다. 대사의 40% 안팎이 수어로 된 ‘코다’는 농아인 부모, 오빠와 살며 이들의 입과 귀가 돼주는 딸 루비가 음악을 하려는 꿈을 품고 집을 떠나려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 4명 중 루비 아빠 역의 코처를 포함한 3명의 배우가 농아인이다. OTT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건 처음이다. 높아진 OTT의 위상과 영화계의 판도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 벌어진 것. 지난해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에 이어 올해 샨 헤이더 감독의 ‘코다’가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작품상이 2년 연속 여성 감독 작품에 돌아갔다. 감독상 역시 OTT 넷플릭스 영화 ‘파워 오브 도그’를 연출한 제인 캠피언 감독이 받으며 지난해 자오에 이어 2년 연속 여성 감독이 수상했다. 여성 감독이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받은 건 이번이 세 번째다. 국제장편영화상은 작품상 후보에도 올랐던 일본 거장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에 돌아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실린 동명 단편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에는 박유림 진대연 안휘태 등 한국 배우도 출연했다. 백인 남성 중심으로 운영돼 ‘화이트 오스카’라 비판받았던 아카데미 측이 성별, 인종, 장애 등 다양성의 문을 한층 넓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촬영상 편집상 미술상 음향상 음악상 시각효과상까지 6개 부문 상은 SF영화 ‘듄’에 돌아갔다. 듄은 최근 수익이 4억 달러(약 4900억 원)를 돌파해 듄과 함께 작품상 후보에 오른 나머지 9개 영화의 수익을 합한 것보다 많은 수익을 거뒀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쇼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 27일(현지 시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윌 스미스(54)가 시상자를 폭행한 것. 장편 다큐멘터리 시상자인 배우 크리스 록(57)의 농담이 화근이었다.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핑킷 스미스(51)의 삭발한 머리를 보고 “영화 ‘지. 아이. 제인 2’가 당신을 기다린다”고 한 것. ‘지. 아이. 제인’(1997년)은 데미 무어가 삭발하고 출연한 영화. 스미스의 아내는 탈모증 진단을 받은 뒤 삭발했다. 스미스는 무대로 올라와 록의 뺨을 가격했고 “아내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말라”고 외쳤다. 스미스는 눈물을 글썽였고 생방송은 중단됐다. 덴절 워싱턴과 타일러 페리가 그를 진정시켰다. 이후 스미스는 ‘킹 리차드’에서 테니스 스타 윌리엄스 자매를 키운 아버지 역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 내 소명이다. 아카데미와 동료들에게 사과한다”고 했다. 아카데미는 트위터에 “어떤 형태의 폭력도 용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그의 남우주연상이 취소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견뎠다.” 25일 전체 8화 중 3화까지 공개된 애플TV플러스 드라마 ‘파친코’는 1화 도입부에 나오는 영어 문구처럼 견딤에 관한 대서사극이다. 견딤의 주체는 ‘선자’로 대표되는 여성과 그의 가족. 특히 내 새끼를 먹이고 살리겠다는 어미의 강인함은 그와 가족이 근현대사의 격동을 견뎌낸 힘의 원천이었다. 드라마는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에서 시작된다. 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가난한 하숙집 딸 어린 선자(전유나)의 얼굴은 절망의 시대에 떠오른 희망처럼 말갛다. 선자는 자신을 아끼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좌절하지만 곧 일어선다. 선자는 열다섯 열여섯 남짓한 어린나이에 오사카에서 온 수산물 중개상 한수(이민호)를 만난다. 그와 사랑에 빠져 임신하지만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아직 소녀에 불과한 그는 아이를 배 속에 품은 채 단단한 얼굴을 드러낸다. “허리가 뽀사지는 한이 있어도 내 아는 부족한 거 하나 없이 키울 깁니다.” 드라마는 어린 선자, 젊은 선자(김민하), 오사카에 사는 노년의 선자(윤여정)까지 70년 넘는 세월을 담아낸다. 선자 부모부터 선자, 아들, 손자까지 일본에 정착한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4대에 걸친 삶을 그린다. 1910년대부터 1989년까지 시대는 물론이고 선자의 손자가 일하는 뉴욕부터 오사카, 부산까지 공간을 수시로 넘나든다. 이 같은 구성은 이야기 전개에 역동성을 더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할리우드 제작진이 되살려낸 바다 갈대밭 등 일제강점기 조선의 풍경은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자연 다큐멘터리처럼 신비롭다. 활기 가득 찬 영도 어시장을 세공해 낸 제작진 솜씨는 박수를 보낼 만하다. 배우들 연기 역시 빼어나다. 선자 엄마 역의 정인지부터 김민하 윤여정까지…. 엄마 역을 맡은 세 배우는 절제에 절제를 거듭한 모성애를 보여준다. 일제의 만행은 노골적으로 보여주진 않는다. 선자가 오사카로 건너간 뒤 겪는 차별 등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고초와 이방인의 한을 그리는 데 주력한다. 억압의 시대를 이겨내는 한국인의 모습은 담담할 뿐 비장하게 그리지 않는다. 그래서 더 와 닿는다. 10대 때나 노년이 돼서나 제 핏줄에게 열심히 밥을 지어 먹이고 그러느라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는 선자는 모두의 어머니다. 역사 그 자체다. 한 어머니를 통해 한국의 민족사를 절제미를 살려 담아낸 미시사(微視史) 드라마의 걸작이라 할 만하다. 드라마가 공개되자 일본의 일부 누리꾼은 “한일합병은 한국 경제 성장에 큰 도움을 줬다”고 주장하는 등 파친코의 내용이 허구라며 비난을 쏟아냈다. 반면 외신은 극찬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이 조용한 작품은 우리 TV드라마를 부끄럽게 한다”라고 평했다. 미국 CNN은 지난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의 연기에 대해 “추가로 수상 논의를 해야 한다”며 찬사를 보냈다. 한편 10여 년 전 자신의 블로그에 한국 할머니들을 불법 촬영한 사진과 성희롱 글을 올려 논란이 된 솔로몬 역(선자의 손자)의 배우 진하는 26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내 행동을 후회하며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견뎠다. 가족들은 견뎠다.” 25일 전체 8화 중 3화까지 먼저 공개된 애플TV플러스 드라마 ‘파친코’는 첫 화 도입부에 나오는 자막의 영어 문구처럼 견딤에 관한 대서사극이다. 견딤의 주체는 ‘선자’로 대표되는 여성. 내 새끼들을 먹이고 살리겠다는 어미의 본능은 일제강점기부터 1989년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의 격동을 온몸으로 견뎌낸 강인함의 원천이었다. 드라마의 시작은 1915년 일제강점기의 부산 영도. 아이 여럿을 돌도 되지 않아 잃은 양진(정인지)은 이번만큼은 아이가 살수 있게 해달라며 무당에게 굿을 부탁한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선자다. 언청이에 다리를 절어 무시받기 일쑤지만 누구보다 사려 깊은 성품을 가진 아버지 밑에서 선자는 사랑받으며 자란다. 영도 앞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갈대밭에서 잠자리를 잡는 어린 선자(전유나)의 말간 얼굴은 절망의 시대에 내비친 희망이다. “니 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 내 뭔짓을 해서라도 이 세상 더럽은 것들이 니 건들지도 못하게 할끼다”라고 약속한 아버지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자 선자는 절망한다. 그러나 이내 일어선다. “선자 니는 할 수 있다. 니를 믿는다”라던 아버지 말을 되새기며 10대로 성장하고 한 남자를 만난다. 오사카에서 온 수산물 중개상 한수(이민호)다. 그와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지만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이 역시 선자를 완전한 절망을 몰아넣진 못한다. 아직 10대 소녀에 불과한 그는 아이를 뱃속에 품고서 “허리가 뽀사지는 한이 있어도 내 아는 부족한 거 하나 없이 키울 깁니다”라며 어미의 단단한 얼굴을 드러낸다. 드라마는 어린 선자, 1930년대를 사는 10~20대의 젊은 선자(김민하), 1989년 오사카에서 인생 말년을 보내는 노년의 선자(윤여정)에 이르기까지 80년에 가까운 세월을 담아낸다. 선자 부모부터 선자, 그의 아들, 손자에 이르기까지 한미일을 오간 4대에 걸친 격동의 가족사가 담겼다. 이를 담아내기 위해 1910년대부터 현재인 1989년까지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넘나든다. 선자의 손자가 일하는 뉴욕부터 선자와 그의 아들이 거주하는 오사카에 이어 도쿄 부산까지 공간 역시 3개국을 오간다. 배우 윤여정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시점과 공간 변환이 잦아 시청자들이 혼란스러워할 것을 우려했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이는 이야기 전개에 역동성을 더해 시청자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데 큰 역할을 한다. 할리우드 제작진이 고증한 뒤 되살려낸 일제강점기 조선의 풍경은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 미국 드라마가 담아낸 부산의 선창과 바다, 해변 마을 등 자연 풍광은 “한국이 이토록 아름다웠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이국적이고 신비롭다. 억압받는 일제강점기에도 사고파는 이들의 활기로 가득한 어시장을 되살려낸 제작진의 세공 솜씨는 박수를 보낼 만하다. 드라마의 백미는 배우들 연기에 있다. 양진부터 젊은 선자, 노년의 선자까지 엄마 역을 맡은 세 배우가 보여주는 모성애는 절제에 절제를 거듭한 흔적이 역력하다. 여러 번 삼켜낸 슬픔이 얼마나 큰 울림을 줄 수 있는지를 세 배우는 누구보다 잘 아는 듯하다. 선자의 손자로 일본에서 자란 뒤 10대 때 미국으로 건너가 교육을 받고 취업까지 한 손자 솔로몬 백을 연기한 배우 진 하는 경상도 억양과 일본어 억양이 절묘하게 섞인 어색한 한국어 연기를 실제 자이니치(在日·재일 한국인)처럼 소화해낸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드라마는 일제강점기를 다룬 그간의 한국 콘텐츠에서 고문 등 일제의 만행을 노골적으로 보여준 것과 달리 이를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선자가 오사카로 건너간 뒤 겪는 고초 등 당시 한국인들의 겪은 고초와 이들의 생존력, 한의 정서를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억압의 시대를 이겨내는 한국인들의 모습은 담담할 뿐 비장하게 그려지지 않아 오히려 가슴에 더 와닿는다. 10대 때나 노년이 돼서나 제 핏줄에게 열심히 밥을 지어먹이고 그러느라 온전히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는 선자의 모습은 시대를 떠나 모두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가슴 한 편이 먹먹해지는 이유다. 이 드라마는 선자라는 한 여성을 통해 한국의 민족사를 담아낸 미시사 드라마의 걸작이라 할만하다. 일제강점기를 담아낸 탓에 애플TV 트위터 등엔 일본 네티즌들의 항의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이들은 “한일합병은 한국 경제 성장에 큰 도움을 줬다”라는 등 파친코의 내용이 허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외신은 극찬을 쏟아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이 조용한 한국작품은 우리 TV드라마를 부끄럽게 만든다”라고 평가했다. 영국 BBC 역시 “눈부신 한국의 서사시”라고 극찬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중증 정신질환을 앓는 어머니의 증세가 급격히 악화돼 가는 와중에 딸은 정신없이 성(性)을 탐닉한다. 그것도 매춘이 이뤄지는 한 호텔에서 유부남과 말이다. 저자가 1998년 발표한 에세이인 표제작은 단순하게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문제의 딸인 저자는 해명한다. “쪼그라들어가는 어머니의 몸뚱이와 배설로 얼룩진 속옷의 이미지를 견뎌내려면 오르가슴이 필요했던 듯하다.” 갑자기 노인이 돼 버린 어머니의 모습은 강한 충격이었고, 이를 이겨내기 위해 더 강한 방어기제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2011년 생존 작가로는 최초로 프랑스 최고 작가들의 작품을 묶어 내놓는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된 저자는 프랑스 현대문학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 책은 총서에 포함된 선집 ‘삶을 쓰다’ 중에서도 저자의 주제의식이 분명하게 드러난 작품 12편을 다시 추려낸 ‘선집의 선집’이다. 저자가 2002년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게재한 글 ‘슬픔’은 그해 별세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를 기리는 내용이다. 부르디외의 업적에 의례적인 찬사를 보내는 언론의 보도 행태를 비판하고 그의 글들이 자신의 집필 활동에 얼마나 큰 용기를 줬는지를 말한다. 지인의 결혼 전 축하연에 간 하루를 그려낸 단편소설 ‘축하연’은 특유의 직설적인 문체가 두드러진다. 직접 경험한 개인적이고 내밀한 사건을 통해 시대와 사회를 담아내는 저자의 작품 세계가 한 권에 응축돼 있다. 다만 자신의 경험을 폭로하는 수위가 매우 높고 감정 표현이 거침없어 일부 독자는 거부감이 들 수 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배우 윤여정 주연의 애플TV플러스 드라마 ‘파친코’에 출연한 한국계 미국인 배우 진 하가 한국 여성 노인들을 촬영한 사진과 더불어 성희롱 글을 인터넷에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진 하는 이 드라마의 주연 중 한 명으로 극중 선자(윤여정)의 손자 솔로몬 백을 연기했다. 드라마가 공개된 25일 더쿠 등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진 하가 2010년부터 약 2년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올린 여성 노인 사진과 영어로 쓴 글들이 올라왔다. 이에 따르면 그는 “한국의 나이든 여성들은 꽃무늬 옷을 매우 열심히 입는다”며 “한국의 매혹적인 패션 트렌드를 보여주기 위해 ‘만개한 꽃(flowers in bloom)’이라는 제목의 사진 시리즈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썼다. 그는 국내 지하철, 백화점 등에서 꽃무늬 옷을 입은 여성 노인들을 촬영한 뒤 일부 사진에 “욕정(concupiscence)을 통제하기 힘들었다”는 글을 남겼다. 또 다른 사진에는 “이제 우리에게는 그녀의 오른쪽 젖꼭지를 똑바로 쳐다볼 구실이 생겼다”라고 쓰는 등 성희롱 글을 덧붙였다. 이에 일부 누리꾼들은 “파친코를 보지 않겠다”며 시청 거부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등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여성 노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논란이 더 커지는 분위기다. 진 하는 논란이 불거진 직후 자신의 SNS에서 해당 게시물을 모두 내렸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마블이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히어로는 어쩌면 인간 본성을 가장 잘 그려낸 캐릭터일지도 모른다. 무작정 정의롭지도, 밑도 끝도 없이 악하지도 않다. 완벽한 히어로로 분류하기도 애매해 정확히는 ‘안티 히어로’로 분류된다. 30일 개봉하는 영화 ‘모비우스’의 주인공 모비우스 이야기다. “이렇게 복잡하고 독특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늘 목말라 있었다. 기회가 주어져 감사하다.” 모비우스 역의 배우 재러드 레토는 24일 열린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모비우스’는 마블 원작 만화에서 ‘스파이더맨’과 대적하는 생화학자 모비우스 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첫 번째 실사영화다. 모비우스는 자신이 앓고 있는 희귀 혈액병을 치료하기 위해 동료 과학자 마르틴(아드리아 아르호나)과 함께 흡혈박쥐 연구에 나선다. 마침내 치료제 개발에 성공해 초인적인 힘을 얻는다. 세상을 구원할 힘을 갖게 된 것. 그러나 동시에 세상을 파괴하려는 본능으로 인해 예측불허의 히어로가 된다. 레토는 “100% 착한 사람은 없지 않나. 누구라도 악한 면이 있다. 모비우스의 이중적인 면에 매력을 느꼈다. 모비우스는 선과 악 사이의 흥미로운 회색지대에 있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이어 “도전적인 작업을 좋아한다. 한 작품에서 이렇게 극단적인 변신을 보여줄 수 있는 건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다. 내게는 완벽한 캐릭터”라고 덧붙였다. 레토는 앞서 영화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DC 코믹스의 대표 빌런 조커를 연기하며 히어로물과 인연을 맺었다. 2014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는 등 탄탄한 연기력을 자랑하는 그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천의 얼굴로 꼽힌다. 다니엘 에스피노사 감독은 이날 “마블 세계관의 진정한 아웃사이더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길 수 있게 돼 영광이다. 영화에 냉철하고 거친 리얼리즘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일본 내각정보조사실 고위 관료와 운전사가 차량 추락 사고로 사망한다. 그런데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다. 누군가 차량에 맹독성 가스를 주입했던 것. 두 사람은 추락 전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문제의 가스는 2001년 도쿄 도심에서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에 쓰인 독극물과 같은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는 과거 테러 사건 당시 테러 조직을 모두 소탕했고, 가스도 전량 압수했다며 사건 종결을 선언했었다. 하지만 과거 발표와 달리 20년 만에 같은 가스를 사용한 테러가 발생했다. 일본 영화 ‘극장판 시그널’은 2016년 tvN에서 방영한 김은희 작가의 드라마 ‘시그널’을 2시간 분량으로 영화화한 것이다. 2018년 일본 드라마로 리메이크된 데 이어 이번엔 일본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로 제작됐다. 영화는 러닝타임 제약 탓에 드라마처럼 아동 유괴 사건, 연쇄 살인 사건 등 여러 미제 사건을 촘촘히 다루진 못한다. 그 대신 맹독성 가스를 사용한 고위 관료 연쇄 살인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 집중한다. 현재의 미제사건수사팀 형사 사에구사(사카구치 겐타로)와 2009년의 형사 오야마(기타무라 가즈키)는 무전기로 현재의 정보와 과거의 정보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초월한 공조 수사를 벌인다. 원작인 드라마는 범죄 수사와 시공간을 초월한 선후배 형사들 간의 깊은 인연을 적절히 안배하며 전개된다. 하지만 영화에선 시간 제약상 주인공들의 인연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각기 다른 시공간에 있는 이들이 어떤 이유로 무전기로 연결돼 미제 사건을 공조 수사하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원작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각 캐릭터나 설정을 이해하기가 다소 어려울 수 있다. 영화는 버릴 건 버리는 대신 범죄 수사물과 오락물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사에구사의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과 총격 신, 차량 추격 및 폭발 신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액션에 방점을 찍고 한 사건에 집중해 원작을 변주한 만큼 드라마 팬들은 새로운 확장판을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방탄소년단 멤버 정국이 작곡에 참여한 영화 주제곡 ‘Film Out’도 또 다른 관람 포인트다. 31일 개봉.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