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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엔 뚜렷한 서사가 없다. 영화 속 세상은 멈춰있는 듯하다. 일상이 그저 무심하고 느리게 흘러갈 뿐. 청춘의 남녀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별다른 로맨스도 없다. 인간적인 호감을 갖게 되는 모습만 어렴풋이 그려진다. 그런데 104분 동안 가만히 보게 된다. 무심함과 무자극 느림은 이 영화를 계속 보게 만드는 힘이다. 24일 개봉하는 ‘창밖은 겨울’ 이야기다. 영화의 무대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 옛 진해시 일대다. 진해는 벚꽃으로 유명한 봄의 도시지만, 영화엔 익숙한 진해의 봄 대신 다소 낯선 늦가을과 초겨울이 담겼다. 영화는 서울에서 영화감독을 하다가 고향 진해로 와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는 석우(곽민규)와 버스터미널 매표소 직원이자 유실물 보관소 업무를 하는 영애(한선화)의 일상을 따라간다. 석우는 터미널 대기실에서 발견한 고장 난 MP3를 유실물 보관소에 가져다준다. 석우는 영애에게 MP3 주인이 왔느냐고 틈만 나면 묻는다. 거의 쓰는 사람이 없는 MP3에 집착하는 그가 영애는 조금 신기하다. 영애는 MP3는 누군가 잃어버린 게 아니라 버린 거라고 말한다. 유실물 보관소 가득한 물건들도 대부분 찾아가지 않는 만큼 버린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 석우는 “잃어버린 것”이라며 찾아올 사람이 있을 것이란 미련을 품는다. 두 사람은 문제의 MP3를 고칠 수리점을 찾아 진해 골목을 곳곳을 다닌다.영화 속 시간이 멈춘 듯한 진해 곳곳의 풍경은 이 별것 없는 이야기를 계속 지켜보게 만든다. 도시인 듯 시골인 듯한 소도시 특유의 모습과 버스 터미널, 골목골목 들어선 작은 집, ‘이용원’ ‘인판사(인쇄소)’ 등 과거에 머물러있는 공간까지 모든 것이 오래된 이 한적한 소도시는 그 모습 자체로 잔잔한 매력을 빚어낸다. 두 사람이 오래된 공간에서 천천히 걷는 모습만 봐도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다.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이상진 감독은 “진해가 고향이다. 20년 가까이 살았던 만큼 자연스럽게 영화 무대가 되는 것 같다”며 “진해가 완전 시골도 아니고 도시도 아니어서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런 부분들에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주요 소품인 유실물 보관소에 놓인 MP3는 잃어버린 것인지 버린 것인지 모를 청춘의 꿈같다. 31세 석우는 영화감독의 꿈을 버린 것일까. 잠시 잃어버린 것일까. 배우 곽민규는 늘 생각에 잠겨있고 좀처럼 표현을 하지 않는 석우 캐릭터를 통해 경계에 선 청춘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강하고 톡 쏘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온 배우 한선화는 이번엔 가장 평범한 모습을 그려내느라 공을 들였다. 진해 현지의 노인 등 평범한 사람들을 보조출연자로 캐스팅하는 등 진해의 모습을 사람들까지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 한 감독의 연출 솜씨가 돋보인다. 북적이고 시끄러운 대도시를 벗어나 여전히 아날로그 세상에 머물러있는 소도시를 잠시나마 조용히 여행하는 느낌을 주는 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아 이제 진짜 겨울이네요” “그러네요. 제법 추워졌어요” 등 평범하기만 한 무자극 대사가 가진 매력을 담아낸 작품으로 겨울 초입 혼자 보기 좋은 영화다. 손효주기자 hjson@donga.com}

“‘왜 나야? 다른 배우 많잖아?’ 이 말부터 나오더라고요.” 배우 유해진(52)이 1997년 ‘블랙잭’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 후 25년 만에 처음 왕 역을 제안받고 감독에게 한 말이다. 그는 23일 개봉하는 영화 ‘올빼미’에서 조선 16대 왕 인조로 열연했다. 현대극과 사극을 막론하고 그는 주로 코믹한 캐릭터를 맡아왔다. 사극만 좁혀 보면 영화 ‘왕의 남자’(2005년)에선 광대 육갑 역을,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년)에선 해적에서 산적으로 전향(?)하는 철봉 역을 맡아 천민을 연기해왔다. 그런 그에게 웃음기라고는 없는 데다 최고 신분인 왕 역을 제안한 이는 ‘왕의 남자’ 조감독 출신의 안태진 감독.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최근 만난 유해진은 “안 감독은 나를 택한 이유로 ‘조금 다른 왕이었으면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하면 확 다르겠지’라고 되받아쳤다”며 웃었다. 영화에서 유해진은 왕 그 자체다. 상영 25분이 지나서야 왕실의 보일 듯 말 듯한 얇은 막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그는 언뜻 비치는 존재 자체로 관객이 자세를 고쳐 앉게 만든다. 평소 코믹한 이미지는 모두 털어냈다. 권력에 눈이 멀어 광기에 휩싸인 인조를 지금껏 본 적 없는 왕 캐릭터로 탄생시켰다. 그는 “원래 시나리오에는 인조가 ‘짠’ 하고 등장했다”며 “아무리 영화라도 대중이 가진 유해진에 대한 이미지가 있지 않으냐. 관객에게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 서서히 나타나는 것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어 “시사회에서 내가 처음 나올 때 관객들이 실소를 터뜨리진 않더라. 나를 왕으로 받아들이는구나 싶어 안심했다. 정말 걱정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인조실록에 실린 인조의 장남 소현세자(1612∼1645)의 죽음에 관한 기록에 상상을 더한 스릴러물이다. 병자호란 후인 1637년 청나라에 인질로 갔다가 8년 만에 돌아온 소현세자는 인조 23년(1645년), 귀국 한 달여 만에 사망한다. 사인은 학질(말라리아). 그러나 시신 외관으로 볼 때 인조가 의관 이형익을 시켜 독침을 놓아 죽인 것이라는 독살설이 제기돼왔다. 영화에는 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유일한 인물로, 빛이 없을 때만 희미하게 볼 수 있는 궁중 시각장애인 침술사 경수(류준열)라는 가상의 인물이 등장한다. 주로 어스름한 시간을 배경으로 세자가 죽어가는 모습과 진범을 찾는 과정이 팽팽한 긴장 속에서 그려진다. 권력욕에 부정마저 버린 비정한 아버지이자 왕위를 뺏길지 모른다는 병적인 불안감에 시달리는 왕을 연기하는 유해진은 숨이 막히는 수준까지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유해진은 “인조를 연기할 때 더도 덜도 말고 역사에 기록된 내용만을 생각했다”며 “광기를 표현할 땐 무대에서 연극 한 편을 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그는 안면 마비로 한쪽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거나 입이 비뚤어져 말할 때 웅얼거리는 모습까지, 실제 환자처럼 연기한다. 그는 “주변에 안면 마비를 앓는 분들 모습을 참고했다”며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이 잘 나오지 않는 인조의 모습은 저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모습”이라고 했다. 시사회를 통해 왕으로 분한 유해진을 접한 평단은 극찬했다. 그럼에도 베테랑 배우는 관객에게 정식으로 영화를 선보이기에 앞서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왕 역할을 한 번쯤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어요. 관객들이 ‘이야, 뭐? 유해진이 왕을 한다고? 어떻게 하나 한번 보자’ 이런 생각만 안 하고 편하게 보셨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웃음)”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아니 왜 나야? 다른 배우들 많잖아?’ 섭외를 받고 이 말부터 나왔죠.” 배우 유해진(52)이 1997년 ‘블랙잭’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 이후 25년 만에 처음 왕 역할을 제안받고 감독에게 한 말이다. 그는 23일 개봉하는 사극 영화 ‘올빼미’에서 조선 16대 왕 인조로 열연했다. 현대극과 사극을 막론하고 그는 주로 코믹한 캐릭터를 맡아왔다. 사극만 좁혀보면 ‘왕의 남자’(2005년)에선 광대 육갑 역을,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년)에선 해적에서 산적으로 전향하는 철봉 역을 맡는 등 천민을 연기해왔다. 그런 그에게 인조 역을 제안한 이는 ‘왕의 남자’ 조감독이었던 안태진 감독. 안 감독은 그의 장편영화 데뷔작 ‘올빼미’의 주인공 인조에 기존 이미지로 볼 때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유해진을 섭외하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해진은 “안 감독은 나를 택한 이유로 ‘조금 다른 왕이었으면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렇지 내가 하면 확 다르겠지’라고 했다”라며 웃었다. 영화에서 유해진은 왕 그 자체다. 웃음기를 쫙 뺀 채 등장한 그는 왕 역할에서 조금도 겉돌지 않는다. 기존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는다. 영화 상영 25분이 지나서야 왕실의 보일 듯 말 듯 한 얇은 막 뒤에서 등장하는 그는 존재 자체로 관객이 자세를 고쳐 앉고 몰입하게 만든다. 그는 권력욕에 눈이 먼 나머지 광기에 휩싸인 인조를 지금껏 본 적 없는 왕 캐릭터로 새롭게 해석해냈다. 그는 “원래 시나리오에는 인조가 ‘짠’하고 등장하는 설정이었다”며 “아무리 영화라도 대중이 가진 유해진에 대한 이미지가 있지 않으냐. 관객에게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 서서히 나타나는 것으로 바꾸자고 내가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어 “시사회에서 보니 내가 처음 나올 때 관객들이 실소를 터뜨리진 않더라”며 “나를 왕으로 받아들이고 계시구나 싶어 안심했다. 정말 걱정을 많이 했다”고 했다. 영화는 인조실록에 실린 인조의 장남 소현세자(1612~1645)의 죽음에 관한 역사적 사실에 상상을 더한 스릴러물. 병자호란 이후인 1637년 청나라에 인질로 갔다가 8년 만에 돌아온 소현세자는 인조 23년(1645년) 귀국 한 달여 만에 사망한다. 사인은 학질(말라리아)로 기록돼있지만 시신 외관으로 볼 때 인조가 의관 이형익을 시켜 독침을 놓아 죽인 것이라는 독살설이 제기돼왔다. 영화는 빛이 없는 경우만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는 궁중 내의원 시각장애인 침술사 경수(류준열)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유일한 인물로 등장시킨다. 주로 어스름한 시간을 배경으로 세자가 죽는 모습과 진범을 찾는 과정이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그려진다. 권력욕 앞에 부정마저 버린 비정한 아버지이자 언제 왕위를 뺏길지 몰라 병적인 불안감에 시달리는 왕을 연기하는 유해진은 이 긴장감을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일등 공신이다. 유해진은 “인조를 표현할 때 더도 덜도 말고 역사적 기록에 나오는 내용 그대로만 가지고 연기하자고 생각했다”며 “인조의 광기를 표현할 땐 영화 촬영 현장이라기보다 무대에서 연극 한 편을 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했다. 그는 안면마비로 한쪽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거나 증상 악화로 한쪽 입이 비뚤어지면서 말을 할 때 웅얼거리는 모습까지 자연스럽게 소화해냈다. 그는 “주변에 안면마비를 앓는 분들의 모습을 참고했다”며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인조의 마지막 모습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모습이다”라고 했다. 처음 왕을 맡은 그의 모습을 시사회를 통해 먼저 접한 언론과 평단은 성공적인 연기 변신이라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관객들에게 정식으로 영화를 선보이기에 앞서 베테랑 배우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왕 역할을 한 번쯤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했었어요. 어떤 모습일지 저도 궁금했거든요. 관객들이 ‘이야 뭐? 유해진이 왕을 한다고? 어떻게 하나 한번 보자’ 이런 생각만 안 하고 그냥 편하게 와서 보셨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웃음)”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1945년 말 정식 등록된 국내 출판사는 45개에 불과했다. 그런데 1948년 말이 되자 792개로 폭증한다. 광복이 출판계에도 해방을 부른 것. 쏟아져 나오는 책을 팔 곳이 부족하자 길거리 좌판이 등장했다. 노점책방 전성시대가 열린 것. 당시 대구에서 노점책방을 연 김원대는 “동아일보 같은 신문 서너 가지를 벌여놨는데 아주 잘 팔렸다. 우리말로 된 출판물은 가져다 놓기 무섭게 팔렸다”고 회고했다. 특정 분야 책을 파는 전문서점의 시초는 일제강점기이던 1923년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문을 연 행림서원이다. 한의학 서적을 전문적으로 간행한 출판사이자 서점으로 ‘향약집성방’ 등 조선시대 의서 복간에 힘쓰는 한편 한의서를 대량 공급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데 앞장섰다. 저자는 골목책방을 3년간 운영하기도 한 책·서점 전문가다. “나에게 서점은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숨어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라는 예찬론을 펼치며 서점 뿌리 찾기에 나선다. 1899년 7월 황성신문에 실린 청일전쟁을 다룬 역사서 ‘중동전기’ 광고를 보면 ‘정두환지전’ 등 ‘지물포’를 뜻하는 지전(紙廛)을 책 판매처로 소개한다. 이는 지물포에서 근대 서점이 태동했음을 보여준다. 1963년 문을 연 뒤 서울의 대표적인 약속 장소로 자리매김했던 당시 국내 최대 서점이자 서점문화 혁신의 상징 ‘종로서적’, 1980년대 민주화 물결과 함께 곳곳에서 생겨난 사회과학서점 등 서점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겼다. 전국 곳곳에서 약속 장소로 사랑받던 서점 상당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시대, 누구나 갖고 있는 서점에 대한 추억을 오랜만에 소환시킨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회색 머리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일명 ‘테크노 가방’. 세기말 ‘사이버 감성’으로 무장한 채 등장한 24세 신인 배우 유지태를 스타로 만든 영화 ‘동감’(2000년)이 22년 만에 리메이크됐다. 장진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원작은 2000년의 99학번 인(유지태)이 무선기기로 1979년에 사는 77학번 소은(김하늘)과 연결된 뒤 시간을 초월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리메이크된 동명의 영화에서는 2022년의 21학번 무늬(조이현)와 1999년의 95학번 용(여진구)이 연결된다. 원작에선 과거에 사는 대학생이 여성이었지만 이번엔 남성으로, 현재에 사는 이들의 성별도 바뀌었다. 용과 무늬 역시 무선기기로 연결된다. 용은 첫눈에 반한 99학번 신입생 한솔(김혜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조언을 구한다. 무늬 역시 짝사랑하는 친구 영지(나인우)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두 사람은 꿈, 사랑, 우정에 관한 여러 고민을 나누며 가까워진다. 그러다 용은 믿기 힘든 미래에 대해 알게 되고 좌절한다. 원작과 같은 전개다. 무늬가 말하는 ‘썸’ 같은 단어를 용이 알아듣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22년간 숱한 신조어가 쏟아졌음이 실감 난다. ‘방가방가’ 등 1999년 유행어는 추억을 소환한다.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을 비롯해 곳곳에서 당시 아이템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철저한 고증. 통이 큰 리바이스 엔지니어드진과 티셔츠 위에 단추를 잠그지 않고 걸쳐 입은 큰 셔츠 등 1999년 ‘세미 힙합’ 패션을 고스란히 되살렸다. 비교적 가까운 과거여서 차별화가 쉽지 않은데도 서은영 감독은 미묘한 차이를 세공해 내며 당시의 질감을 구현했다. 같은 학생회관 건물의 색감을 시대에 따라 다르게 표현해 전혀 다른 분위기로 연출했다. 시대는 다르지만 청춘의 싱그러움은 매한가지. 현재와 과거의 같은 듯 다른 풋풋함을 담아내느라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다만 사랑은 소중하다는 메시지가 직설적으로 전달되는 부분에선 촌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원작의 감성을 꼼꼼히 되살렸지만 원작을 뛰어넘지 못한 건 다소 아쉽다. 16일 개봉.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회색으로 염색한 머리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이른바 ‘테크노 가방’. 세기말 ‘사이버 감성’으로 무장한 채 등장한 24세 신인배우 유지태를 스타로 만든 영화 ‘동감’(2000년)이 22년 만에 리메이크됐다. 장진 감독이 시나리오를 집필한 원작은 2000년에 사는 99학번 지인(유지태)이 무선기기로 1979년에 사는 77학번 소은(김하늘)과 우연히 연결된 뒤 시간을 초월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이야기. 리메이크된 동명의 영화는 2022년의 21학번 무늬(조이현)와 1999년의 95학번 용(여진구)이 연결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원작에선 과거에 사는 대학생이 여성이었지만 이번엔 남성이다. 현재에 사는 이들 성별도 바뀌었다. 용과 무늬는 원작처럼 각자가 가진 오래된 무선기기를 통해 연결된다. 용은 한눈에 반한 99학번 신입생 한솔(김혜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무늬에게 조언을 구한다. 무늬 역시 짝사랑하는 오랜 친구 영지(나인우)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용과 무늬는 꿈과 사랑 우정 등 여러 고민을 나누고 조언하며 가까워진다. 그러다 용은 무늬를 통해 믿기 힘든 미래에 대해 알게 되고 좌절한다. 원작과 같은 전개다. 무늬가 말하는 ‘썸’이나 ‘헐’ 등을 용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22년간 숱한 신조어가 쏟아졌음이 실감 난다. 1999년 유행한 ‘방가방가’ ‘찌찌뽕’ 등의 유행어는 추억을 소환한다. 당시 개봉한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 등 곳곳의 99년 소환 아이템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철저한 고증. 통이 큰 리바이스 엔지니어드진과 티셔츠 위에 단추를 잠그지 않고 걸쳐 입은 큰 셔츠 등 99년에 유행한 ‘세미 힙합’ 패션을 고스란히 되살렸다. 99년이 현재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과거여서 차별화하기 어려움에도 서은영 감독은 미묘한 차이를 세공해내며 특유의 질감을 구현했다. 같은 학생회관 건물의 색감을 시대에 따라 다르게 표현해 전혀 다른 분위기로 연출하는 등 명확한 시대 구분이 가능하게 했다. 시대는 다르지만 청춘의 싱그러움은 매한가지. 현재와 과거의 같은 듯 다른 풋풋함을 담아내느라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다만 사랑은 소중하다는 등의 메시지가 주인공 입을 통해 직설적으로 전달되는 부분에선 촌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원작과 그 감성을 꼼꼼히 되살렸지만 원작을 한 단계 뛰어넘지 못한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16일 개봉.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러닝타임이 길게는 3시간이 넘는 ‘길고 긴 영화’가 잇달아 개봉한다. 쇼트폼 콘텐츠가 각광받는 등 콘텐츠 소비 형태가 점점 더 짧은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시대의 흐름을 보란 듯 역행하는 영화들이다. 포문을 연 건 9일 개봉한 마블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블랙 팬서’(2018년) 후속편으로 러닝타임은 2시간 41분이다. 올해 국내에서 개봉한 국내외 상업영화 중엔 재개봉작을 제외하면 ‘시맨틱 에러: 더 무비’(2시간 57분), ‘더 배트맨’(2시간 56분) 이후 가장 길다. 16일엔 ‘한산 리덕스’가 개봉한다. 7월 개봉해 726만 명을 모은 ‘한산: 용의 출현’의 감독판으로 러닝타임은 2시간 30분이다. ‘한산: 용의 출현’보다 21분 늘어났다.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대작 중에선 단연 가장 길다. 끝판왕은 다음 달 중순 개봉하는 ‘아바타: 물의 길’이다. ‘아바타’(2009년) 후속편으로 3시간 10분 내외로 알려졌다. 관심은 긴 영화의 흥행 여부다. 올해 3월 개봉한 ‘더 배트맨’은 관객 90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영화계에선 쇼트폼 콘텐츠가 확산되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인기로 영상을 10초씩 빠르게 건너뛰며 혼자 보는 문화가 퍼지는 등 팬데믹 기간 급변한 콘텐츠 소비 방식을 간과한 채 긴 러닝타임을 고수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반대로 긴 러닝타임의 극장용 영화가 짧은 영상 대세 시대에 흥행으로 가는 차별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오를 대로 오른 관람료(주말 일반관 1만5000원)를 내고 영화관에 갈 거면 볼거리가 가득한 데다 러닝타임도 길어 영화관에 간 김에 오랜 시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똘똘한 한 편’을 보려는 선택과 집중형 관객이 많을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로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과 심해 지상 공중을 넘나드는 화려한 액션, 상상력의 절정을 보여주는 압도적인 볼거리, 보는 재미를 끌어올리는 예술적 경지의 음악, 철학적 메시지, 개그 등이 어우러지면서 2시간 41분이 1시간 반처럼 지나간다. 볼거리와 서사의 대향연에 상영시간 내내 입을 다물기 어려울 정도.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금속인 비브라늄을 유일하게 보유한 최강국 와칸다가 비밀의 수중 국가 탈로칸과 전면전을 치르는 내용의 이 영화는 OTT 전성시대에도 극장이 필요한 이유를 단번에 납득시킨다. ‘아바타: 물의 길’을 연출한 제임스 캐머런 감독도 긴 러닝타임이 흥행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으로 자신해왔다. 그는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화상으로 한국 관객들을 만나 “쉽게 볼 수 있다면 특별함은 사라진다. 쉽게 경험하지 못하기에 손꼽아 기다리고 친구와 함께 가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여정을 떠날 수 있는 그런 영화가 있다”며 “아바타가 바로 그런 영화”라고 자신했다. ‘아바타: 물의 길’ 주요 장면을 18분 분량으로 편집한 영상이 공개된 이후 스케일과 기술이 압도적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국내 관객 중엔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는 쾌감을 극대화하고자 개봉일까지 일부러 영화관을 찾지 않겠다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김시무 영화평론가는 “OTT의 확산은 짧은 콘텐츠를 빠른 속도로 소비하도록 만들었지만, 정반대로 재미가 있으면 시리즈 10편을 몰아보는 등 매우 긴 영화나 마찬가지인 시리즈에 익숙해지게 만들기도 했다”며 “빈틈없이 꽉 채운 영화라면 아무리 길어도 흥행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러닝타임이 길게는 3시간이 넘는 ‘길고 긴 영화’가 올해 막바지 잇달아 개봉한다. 쇼트폼 콘텐츠(짧은 분량의 영상)가 각광받으며 콘텐츠 소비 형태가 점점 더 짧은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시대의 흐름을 보란 듯 역행하는 영화들이다. 문제의 이 긴 영화들이 긴 영상 시청을 주저하는 MZ세대를 대거 극장으로 불러 모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긴 영화 개봉의 포문을 연 건 9일 개봉한 마블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2018년 개봉한 ‘블랙 팬서’ 후속편으로 러닝타임은 161분이다. 9일 현재를 기준으로 올해 국내에서 개봉한 국내외 상업영화 중엔 재개봉작을 제외하면 ‘시맨틱 에러: 더 무비’(177분) ‘더 배트맨’(176분) 이후 러닝타임이 가장 길다. 16일엔 ‘한산: 리덕스’가 개봉한다. 올 7월 개봉해 관객 726만 명을 모은 ‘한산: 용의 출현’을 감독 확장판으로 재편집한 것으로 2시간 30분 분량이다. 임진왜란 당시인 1592년 7월 벌어진 한산대첩을 다룬 ‘한산: 용의 출현’보다 21분 늘어났다.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대작 중에선 단연 가장 길다. 김한민 감독은 분량을 늘린 이유에 대해 최근 “‘한산: 용의 출현’보다 깊이 있는 시각을 담았다. 조선 수군과 왜군의 대치 상황을 더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이순신의 고뇌도 더 담고 싶었다”고 했다. ‘긴 영화’계의 끝판왕은 다음 달 중순 개봉하는 올해 최고 기대작 ‘아바타: 물의 길’이다. 할리우드 리포트 등 최근 외신 보도에 따르면 ‘아바타’(2009년) 이후 13년 만에 나오는 후속편인 이 영화는 무려 3시간 10분에 이른다. 지난달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주요 장면을 18분 분량으로 편집한 영상이 공개된 이후 스케일이 압도적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영화팬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관람 팁이 공유되고 있다. 콜라 등 음료 섭취는 최대한 자제하고 팝콘만 먹으라는 등의 팁이다. 개봉하자마자 영화를 본 뒤 상영 중 화장실에 다녀와도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는 시간대를 알려주겠다는 글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다. 문제는 이런 긴 영화들이 짧은 영상이 대세인 시대에 흥행할 수 있느냐는 것. 실제로 올해 3월 개봉한 2시간 56분 분량의 ‘더 배트맨’은 국내에선 관객 90만 명을 모으며 흥행에 참패했다. 유튜브나 틱톡 등을 통한 쇼트폼 콘텐츠가 확산되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인기로 영상을 10초씩 빠르게 건너뛰며 혼자 보는 문화가 퍼지는 등 팬데믹 기간 급변한 콘텐츠 소비 방식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긴 러닝타임을 내세우다가 참패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때문에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도 긴 러닝타임이 흥행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19년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3시간 1분에 달하는 분량에도 1397만 관객을 모으며 역대 국내 박스오피스 5위까지 올랐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팬데믹 이전이어서 가능했던 이야기라는 것. 정반대로 혼자 보는 짧은 영상이 대세가 된 시대에 여럿이 어우러져 보는 긴 러닝타임의 극장용 영상이 오히려 흥행으로 가는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왕 오를 대로 오른 영화 관람료(주말 일반관 기준 1만5000원)를 내고 영화관에 갈 거면 볼거리가 가득한데다 러닝타임까지 길어 영화관을 찾은 김에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똘똘한 한 편’을 보러 가려는 관객들이 많을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로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캐릭터별로 뚜렷한 서사와 심해와 지상, 공중을 넘나드는 화려한 액션과 인간 상상력의 절정을 보여주는 압도적인 볼거리, 개성 넘치는 캐릭터, 보는 재미와 몰입감을 끌어올리는 예술적 경지의 음악, 중간중간 녹인 개그 등이 어우러지면서 2시간 41분이 1시간 반처럼 지나간다. 볼거리와 서사의 대향연 덕분에 상영시간 내내 마스크 속 입을 벌리게 된다.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금속인 비브라늄을 유일하게 보유한 최강국 와칸다가 비밀의 수중 국가 탈로칸과 전면전을 치르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이 영화는 OTT 전성시대에도 극장이 필요한 이유를 제대로 보여준다. ‘아바타: 물의 길’을 연출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긴 러닝타임이 흥행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 번 자신해왔다. 그는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화상을 통해 한국 관객들을 만나 “영화적 경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쉽게 볼 수 있다면 더 이상 특별함은 사라진다. 쉽게 보지 못하기에 손꼽아 기다리고 친구와 함께 가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여정을 떠날 수 있는 그런 영화가 있다”며 “아바타가 바로 그런 영화”라고 자신했다. 국내 관객 중엔 ‘아바타: 물의 길’을 보며 영화적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10월 11월엔 영화관 방문을 아껴둔다는 이들이 많을 정도로 기대가 높다. 김시무 영화평론가는 “OTT의 확산은 짧은 콘텐츠를 더 빠르게 소비하도록 만들었지만, 정반대로 시리즈 10편을 한자리에서 몰아보게 하는 등 러닝타임이 매우 긴 영화나 마찬가지인 긴 시리즈에 익숙하게 만든 부분도 있다”며 “빈틈없이 꽉 채운 영화라면 러닝타임이 아무리 길어도 흥행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다국적 해상연합훈련에 참가했다가 복귀하던 해군 잠수함 ‘한라함’이 괌 근해에서 정체 모를 어뢰에 피격된 뒤 실종된다. 누구도 살아 돌아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부함장 강도영 중령(김래원)은 승조원 절반을 이끌고 생환한다. 도영은 하루아침에 국민영웅이 된다. 하지만 도영은 뭔가 불안해 보인다. 도영에게 의문의 전화가 걸려온다. 한라함 생존 장병 집과 놀이터 등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것. 의문의 목소리는 축구 경기장과 워터파크에도 폭탄을 설치했다고 한다. 폭탄은 단순 시한폭탄이 아니라 소음에 반응하도록 설계돼 소음이 커질 때마다 폭발까지 남은 시간이 절반씩 줄어든다. 관중 함성, 워터파크 호루라기 소리 등 모든 소음이 기폭제 역할을 한다. 흔해빠진 일상 소음이 순식간에 치명적인 무기가 된 것. 폭탄의 특성과 설치 여부를 혼자만 아는 도영은 희생자를 줄이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영화 ‘데시벨’은 소음 반응 폭탄이라는 신선한 소재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소음이 커질 때마다 ‘삐빅’ 하며 시간이 마구 줄어드는 폭탄을 보면 관객도 숨죽이게 된다. ‘사운드 테러 액션’을 표방한 영화답게 각종 소음과 폭발음은 긴장감과 몰입감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의문의 목소리 주인공은 한라함 무장관으로 근무하다 생환한 대위 태성(이종석). 태성이 무슨 이유로 자신의 상관이던 도영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는지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연출력은 수준급이다. 말 못 할 비밀이 있는 듯한 김래원의 묵직하면서도 초조함이 묻어나는 연기와 과도하게 비장해질 여지가 많은 역할을 냉철하게 소화한 이종석의 연기는 사실감을 끌어올리는 일등공신이다. 잠수함 내부를 현장감 넘치게 구현했고, 어뢰 발사 장면이나 어뢰를 피하기 위해 잠수함이 고속 기동하는 장면 등 수중 상황을 실제 작전처럼 실감나게 연출한 점도 몰입도를 높인다. 무엇보다 각종 일상 소음과 폭발음으로 귓전을 때린 뒤 순식간의 음소거로 긴장감을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등 소음과 고요함을 영리하게 활용하며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황인호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110분 내내 늘어짐이 없도록 꼼꼼히 채우려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다만 일부 설정이 천안함 피격 사건을 둘러싼 음모론을 연상케 하는 등 논란의 여지를 남긴 점은 아쉽다. 후반부 과도한 슬로 모션 활용도 다소 눈에 걸린다. 그럼에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연출과 신선한 소재, 배우들의 빈틈없는 열연이 이를 대부분 상쇄하는 만큼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16일 개봉.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올해 9월 8일 인도네시아에서 개봉한 영화 ‘7번방의 기적(Miracle in Cell No.7)’은 이름값을 제대로 해냈다. 한국 영화 ‘7번방의 선물’(2013년)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지난달 말까지 관객 585만 명을 모으며 인도네시아 역대 박스오피스 5위에 올랐다. 손익분기점 140만 명을 크게 웃돈 것. 매출은 192억 원에 달했다. 홍보마케팅 비용을 합친 총제작비가 21억 원이었던 것에 비춰 보면 초대박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앞서 베트남에서도 한국 영화 리메이크작의 흥행 소식이 전해졌다. ‘극한직업’(2019년)의 베트남판 ‘극이직업’(매우 쉬운 직업)이 올해 4월 말 개봉한 후 2주간 베트남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것. 원작의 주인공 형사들이 치킨집을 위장 운영하는 것과 달리 베트남판은 베트남 국민음식 ‘껌떰’ 가게를 운영하는 것으로 설정을 바꿔 현지 관객을 공략했다. 그 결과 관객 86만 명을 모으며 올해 베트남에서 개봉한 자국 영화 중 3위에 올랐다. ○ 흥행 입증된 한국 영화 리메이크 봇물 올봄 전 세계가 엔데믹 국면으로 접어든 이후 팬데믹 기간 개봉하지 못했던 한국 영화 리메이크작이 세계 곳곳에서 개봉하고 있다. ‘7번방의 기적’이나 ‘극이직업’처럼 대박을 터뜨리는 작품도 속속 등장하며 세계 어디에서나 호환 가능한 K스토리의 저력을 증명하고 있다. 올해 2월 25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된 프랑스 영화 ‘레스틀리스(Restless)’는 할리우드 대작들을 제치고 같은 달 26일부터 닷새간 영화 부문 스트리밍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이 영화는 2014년 개봉한 ‘끝까지 간다’를 리메이크한 것. 9월엔 ‘수상한 그녀’(2014년)를 스페인어판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 북미와 멕시코에서 개봉됐다. 영화 ‘청년경찰’(2017년)은 일본 NTV 드라마 ‘미만경찰 미드나잇 러너’로 리메이크돼 올해 6∼9월 방영됐다. 이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11.2%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영화 리메이크 판권 판매 수출액은 194만2500달러(약 27억6200만 원). 2020년 99만7126달러(약 14억2000만 원)에 비해 2배 가까이로 늘어난 것으로 최근 5년 새 최고치다. 통상 리메이크 판권을 판매할 때 국내 투자배급사 등 원작자 측이 개봉 후 수익 일부를 분배받는 식으로 계약하는 점, 판권 판매 계약 실적이 영진위에 모두 보고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판권 판매 관련 수익은 이를 크게 웃돌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해외 영화사들은 다 만든 영화의 개봉을 미뤄야 했던 팬데믹 기간, 본의 아니게 생긴 시간을 활용해 한국 영화 중 흥행이 증명된 작품의 리메이크 판권을 미리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팬데믹 기간 ‘오징어게임’을 선두로 K콘텐츠가 메가 히트 수준의 인기를 끌며 위상과 신뢰도가 동시에 올라간 것을 계기로 리메이크 판권 확보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진 분위기다. ‘7번방의 선물’ 배급사인 NEW의 자회사로 해외 판매를 전담하는 콘텐츠판다의 이정하 이사는 “팬데믹 기간 한국에서 흥행이 입증돼 리메이크를 할 경우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 추세가 눈에 띄게 강화됐다”며 “팬데믹 기간 해외 바이어들의 리메이크 판권 구매 관련 문의가 특히 많았다”고 했다. ○ 북미, 유럽, 중동까지… 리메이크 대륙별 ‘도장 깨기’동남아나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위주였던 리메이크 판권 구매 국가는 팬데믹 기간을 기점으로 북미 등 전 세계로 빠르게 확대되는 추세다. ‘수상한 그녀’나 ‘써니’(2011년) ‘7번방의 선물’ ‘끝까지 간다’ 등 리메이크 시장 대어(大魚)에 속하는 작품들은 사실상 전 대륙에 걸쳐 리메이크되며 ‘대륙별 도장 깨기’에 나선 모양새다. ‘7번방의 선물’은 필리핀, 튀르키예, 인도네시아에서 리메이크판이 개봉된 것을 비롯해 지난해 스페인에 리메이크 판권이 판매됐다. 인도와 아랍어(중동) 판권도 판매돼 제작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 일본과도 판권 판매를 논의 중이다. ‘끝까지 간다’ 역시 프랑스와 중국, 필리핀에서 영화 개봉 및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공개된 것을 비롯해 일본판 제작도 진행 중이다. 미국, 인도와도 판권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특히 ‘수상한 그녀’는 리메이크 판권을 사간 뒤 현재 기획개발 중인 독일과 영어 버전 제작을 준비하고 있는 미국 등 리메이크판이 개봉됐거나 리메이크가 추진 중인 버전만 총 9개에 달한다. 미국 아마존은 지난해 액션 영화 ‘악녀’(2017년)의 판권을 구매한 뒤 TV시리즈로 리메이크를 준비하고 있다. ‘끝까지 간다’의 투자배급사인 쇼박스 안정원 해외사업팀 이사는 “팬데믹 기간 ‘오징어게임’이 뜨면서 수많은 국가에서 기존보다 더 다양한 장르의 한국 영화에 대해 판권 구매를 문의하고 있다”며 “리메이크 판권에 관심을 갖는 국가가 다양해지는 경향이 확실히 두드러진다”고 했다.○ K스토리 독창성에 전 세계 열광해외에서 한국 영화 리메이크에 나서며 K스토리에 열광하는 이유로는 다양성과 독창성이 꼽힌다.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할리우드는 이야기 창작을 최소 7, 8명 이상이 함께 하는 집단 창작 시스템을 갖췄다”며 “이런 시스템에선 이야기가 둥글어지고 튀는 이야기는 거의 수용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어 “한국은 혼자 또는 소수가 이야기를 만드는 구조여서 그만큼 참신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7번방의 선물’ ‘수상한 그녀’ 등 리메이크 인기작들이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내용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강성률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갈수록 살기가 어려워지면서 세계인이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K스토리에서 보편적인 위안을 얻는 듯하다”며 “할리우드가 가족 이야기를 전 세계에 보편화시켰는데, 한국은 이를 활용하면서도 할리우드와 전혀 다른 문법으로 구성하는 점, 특히 비극적 정서를 깔고 있는 점이 세계인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10년간 세계 영화계 주류인 미국 할리우드 영화가 ‘어벤져스’ 시리즈로 대표되는 마블 영화, ‘배트맨’ 시리즈를 앞세운 DC 영화 등 제작비 1500억 원이 넘는 대규모 프랜차이즈 영화와 저예산 독립 영화로 양극화된 것도 K스토리가 인기를 얻게 된 요인이다. 액션 코미디 로맨스 등 중간급 영화가 귀해진 영화 시장에서 K스토리가 이를 채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공동제작으로 리메이크 주도K스토리가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 영화 리메이크 방식이 판권만 판매하던 것을 넘어 아예 한국 원작자 측이 해외에서 제작을 주도하는 공동제작 방식으로 고도화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베트남판 극한직업이 대표적이다. 이 영화의 공식 국적은 베트남. 그러나 자세히 보면 한국 영화로 볼 만한 부분이 많다. 영화는 CJ ENM이 베트남 현지에 만든 합작 법인 CJ HK가 베트남 현지 제작사와 함께 만들었다.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마더’(2009년)도 미국에서 공동제작 방식을 통한 리메이크가 추진되고 있다. 국내 투자배급사 NEW도 스릴러 영화 ‘숨바꼭질’(2013년)을 일본과 이 같은 방식으로 리메이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원작자 측이 직접 리메이크판 제작에 참여할 경우 원작이 가진 고유의 결을 비롯해 흥행의 핵심 요인을 그대로 가지고 가면서도 현지 특색을 반영해 적정 수준 변주하는 현지화 전략으로 흥행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고경범 CJ ENM 해외사업부장은 “한국 영화시장은 이미 포화돼 성장에 한계가 있는 만큼 한국에서 이미 검증된 이야기로 리메이크를 주도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사업을 확대하는 것”이라며 “베트남 등 아시아는 물론이고 튀르키예 등 세계 곳곳에서 공동제작 성공 사례가 축적되면서 다음 리메이크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영화 스토리텔링, 세계 모든 사람에 감동… 판권확보 경쟁 치열” 인도네시아 제작자들이 본 K영화“한 편에 인간애-우정까지 담겨… 최근에만 리메이크 5편 개봉” “리메이크판이 관객을 꽤 모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한국 영화 ‘7번방의 선물’(2013년)의 인도네시아판인 ‘7번방의 기적’을 연출한 하눙 브라만티오 감독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영화의 흥행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9월 8일 현지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관객 585만 명을 모으며 인도네시아 역대 박스오피스 5위에 올랐다. 인도네시아에 아직 1000만 관객 영화가 없는 점을 고려하면 압도적인 수준이다. 팬데믹 이전인 2018년 기준 한국의 연간 영화관 관객 수는 2억1639만 명인 데 비해 인도네시아는 5000만 명가량으로 4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이에 비춰 보면 585만 명은 엄청난 기록이라 할 만하다. 브라만티오 감독은 “원작 ‘7번방의 선물’은 연출이 워낙 훌륭했고 연기력 역시 굉장해 원작과 같은 수준을 구현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크게 흥행할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고 했다. 브라만티오 감독이 당초 예상한 관객 수는 100만∼150만 명. 그는 “이 영화의 흥행이야말로 나에겐 진짜 기적”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판은 아동을 유괴하고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주인공 용규(류승룡)와 딸 예승(갈소원)의 절절한 이별 장면이 비중 있게 들어가는 원작과 달리 감옥에서의 코미디에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브라만티오 감독은 “슬픈 장면보다 웃긴 장면에 집중했음에도 관객들은 함께 어우러져 울고 웃으며 영화를 보더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인도네시아 현지 제작사이자 배급사 ‘피티팰컨’의 프레데리카 프로듀서는 “한국 영화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세계 모든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킨다”며 극찬했다. 그는 ‘7번방의 선물’을 리메이크하게 된 이유로 “이야기가 훌륭했다”며 “부녀의 끈끈한 관계와 인간애, 우정이 한 영화에 모두 담겨 있다”고 했다. 엔데믹 국면을 맞아 인도네시아 영화시장에서 한국 영화 리메이크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진 분위기도 전했다. 피티팰컨은 귀신을 보는 남자 이야기를 그린 한국 영화 ‘헬로우 고스트’(2010년)의 인도네시아판도 내년에 개봉한다. 그는 “최근에만 한국 영화 리메이크작이 5편이나 나왔다”며 “한국 영화 판권 확보 경쟁은 때로 심각할 정도로 치열하지만 훌륭한 이야기를 찾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고 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육아휴직을 하다가 1년 만에 복직한 30대 여성 정아(박하선)는 ‘제자리로 돌아간 느낌’에 안도한다. 그러나 이도 잠시, 복직하자마자 14개월 된 딸을 봐주던 친정엄마가 쓰러진다. ‘돌봄 공백’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린 것. 베이비시터를 구해보지만 업체에서 보낸 이는 부부가 원치 않았던 조선족 여성 화자(오민애). 남편 우석(오동민)은 “조선족은 불안하다”며 반대하지만 아이가 잘 따르는 모습에 부부는 일단 그를 채용한다. 그런데 사고가 난다. 낮에 집에 가보니 화자가 아이를 데리고 연락도 없이 사라진 것. 화자는 저녁이 다 돼서야 돌아온다. 아이 허리엔 멍이 들어 있다. 화자는 해고된다. 정아는 아이를 이웃에 맡겨놓고 일하며 살얼음판 같은 하루하루를 보낸다. 10일 개봉하는 ‘첫 번째 아이’는 뿌리 깊은 사회문제인 돌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다. 한 가정이 겪는 일에 초점을 맞추며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것이 맞벌이 부부에게 얼마나 큰 공포인지를 그려낸다. 어린이집은 언제 입소 순번이 돌아올지 가늠조차 못 한 채 한참을 대기해야 한다. 정아의 복직 후 아이를 돌보는 문제가 발목을 잡으면서 부부는 대놓고 싸우진 않지만 날이 설 대로 서 있다. 특히 엄마라는 책임감을 짊어진 정아는 매일이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다. 실제 딸을 키우는 워킹맘인 배우 박하선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아직도 엄마나 여자에게 더 부담이 지워지는 부분이 있다”며 “하지 않으면 안 될 이야기라고 생각해 출연하게 됐다”고 했다. 박하선은 복직 후 화려한 메이크업으로 한껏 꾸며보지만 육아의 고단함, 가정과 직장에서 모두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화려함을 뒤덮고 마는 워킹맘의 모습을 절제된 연기로 표현하며 공감을 이끌어낸다. 영화는 워킹맘의 딜레마만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조선족에 대한 불신 등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화자 역의 배우 오민애는 “화자가 사회적 편견 탓에 위축돼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관객이 한 번에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연기의 중점을 뒀다”고 했다. 육아휴직에 들어간 정아를 대신해 대체 인력으로 채용된 계약직 직원 지현(공성하)이 복직한 정아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며 계약 연장에 사활을 거는 모습도 그린다. 허정재 감독은 “첫 장편영화에 사회의 여러 단면을 정리해 담고 싶었다. 영화는 전반적인 사회 문제를 조금씩 다 다루고 있다”며 “보는 사람에 따라 각자 다른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각종 행사가 취소되는 가운데 영화계와 가요계도 예정됐던 행사를 취소하며 추모에 동참하고 있다. 영화 투자배급사 쇼박스는 31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 예정이던 배우 마동석 주연의 영화 ‘압꾸정’ 제작보고회를 취소했다. 쇼박스는 “비극적 사고로 온 국민이 애도하고 있는 만큼 행사를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용산구에서 축하 행사 성격이 짙은 제작발표회를 하는 것이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건 신부(1821∼1846)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탄생’ 제작보고회 역시 11월 3일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연기됐다. 넷플릭스도 2일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열기로 한 새로운 시리즈 ‘더 패뷸러스’ 제작보고회와 4일로 예정된 시리즈 공개 날짜를 늦췄다. 한 영화사 관계자는 “제작발표회를 하면 웃으며 분위기를 띄우기 마련인데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터뷰나 무대 인사 일정도 줄줄이 취소하고 있다. 가요계 역시 신규 앨범 발매나 콘서트를 연기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아이돌 그룹 엑소 멤버 첸의 새 앨범을 31일 발매하기로 했지만 날짜를 늦췄다.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하이브도 11월 4일로 예정된 회사 설명회를 연기했다. YG엔터테인먼트는 지난달 30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소속 아티스트의 프로모션 및 콘텐츠 공개 일정을 당분간 연기한다”고 밝혔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다음 달 3일 국내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걸리버 리턴즈’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올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해진 인물의 이름이 나온다. 기획자이자 시나리오 공동 작가로 이름을 올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44)이 그 주인공. 영화의 원작은 소설 ‘걸리버 여행기’(1726년)다. ‘걸리버 리턴즈’에서 걸리버는 릴리퍼트 공화국이 인근 대국 블레퍼스큐의 침공을 받자 이에 맞서 싸우기 위해 릴리퍼트로 돌아온다. 그러나 돌아온 걸리버는 “산처럼 큰 사람”이라는 전설과 달리 보통 체격을 지녔다.》 ‘걸리버 리턴즈’를 제작한 우크라이나의 올레흐 호다추크 프로듀서(47·사진)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2017년 4월 당시 젤렌스키가 이끌던 ‘크바르탈95’ 스튜디오에서 우크라이나 독립(1991년 8월 24일) 30주년을 앞두고 젤렌스키와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논의했다”며 “젤렌스키가 12개 아이디어를 내놨는데 그중 걸리버를 실제 거인이 아니라 용기가 거인만큼 거대한 인물로 설정한 애니메이션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실제 애니메이션에선 “덩치가 크다고 거인이 되는 건 아니란다. 커다란 포부와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거인이 될 수 있단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걸리버 리턴즈’는 2019년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배우이자 제작자로 활약했던 젤렌스키가 이끈 크바르탈95 스튜디오가 제작한 첫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호다추크 프로듀서는 “젤렌스키와는 2013년 한 체육관에서 만나 알고 지냈다”며 “우크라이나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애니메이션을 탄생시켜 보자는 같은 목표가 있어 협업하게 됐다”고 했다. 이 애니메이션에는 ‘모아나’ ‘엔칸토’ 등 디즈니 애니메이션 제작진도 참여했다. 그는 “우리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애니메이션 전문가를 모았다”며 “젤렌스키는 최고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예산을 늘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고 했다. 젤렌스키는 애니메이션 제작이 한창이던 2019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애니메이션은 지난해 완성됐고, 우크라이나의 30번째 독립기념일인 지난해 8월 24일 우크라이나에서 먼저 개봉했다. 우연찮게도 애니메이션의 전 세계 배급이 본격화되던 올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애니메이션 속 상황은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최첨단 무기와 압도적인 병력을 앞세워 공격을 퍼붓는 대국 블레퍼스큐는 러시아를, 작은 나라 릴리퍼트는 우크라이나를 연상시킨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전세를 역전시키고 결사 항전하며 블레퍼스큐군을 패퇴시키는 지도자 걸리버를 보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떠오른다. 호다추크 프로듀서는 “우연의 일치지만 애니메이션 속 이야기는 우크라이나가 직면한 상황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다”며 “애니메이션 속 상황과 현실이 얼마나 비슷한지 하나하나 비교해 보고 매우 놀랐다”고 했다. ‘걸리버 리턴즈’는 미국을 포함한 73개국에서 정식 개봉했거나 스트리밍 서비스 중이다. 전 세계 상영 판권 판매 등 수익은 전액 우크라이나 지원에 쓰인다. 호다추크 프로듀서는 한국 관객에게 간곡하게 말했다. “어려운 시기에 우크라이나를 지지해줘서 고맙습니다. 걸리버 세계로 떠나는 한국 관객들의 여행은 우크라이나의 승리에 작은 기여를 하게 될 겁니다. 당신의 지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나의 조국 우크라이나는 반드시 승리할 겁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다음 달 3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걸리버 리턴즈’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올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로 등극한 이의 이름이 두 번 등장한다. 애니메이션 기획자이자 시나리오 공동 작가로 이름을 올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44)이다. ‘걸리버 리턴즈’의 원작은 조너선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1726년). ‘걸리버 리턴즈’에서 걸리버는 릴러퍼트 공화국이 인근 대국 블레퍼스큐의 침공으로 위기에 처하자 블레퍼스큐에 맞서 싸우기 위해 릴리퍼트로 돌아온다. 그러나 돌아온 걸리버는 “산처럼 큰 사람”이라는 전설과 달리 보통 체격. 이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우크라이나의 올레그 코다추크 프로듀서(47·사진)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2017년 4월 당시 젤렌스키가 이끌던 ‘크바르탈95’ 스튜디오에서 젤렌스키와 함께 우크라이나 독립 30주년(1991년 8월 24일) 프로젝트를 두고 논의를 했다”며 “젤렌스키가 총 12개의 아이디어를 내놨는데 그 중 실제 거인이 아니라 용기가 거인만큼 거대한 새로운 걸리버 애니메이션 아이디어가 가장 좋았다. 그래서 이를 추진키로 했다”고 했다. 실제로 애니메이션에선 “덩치가 크다고 거인이 되는 것은 아니란다. 커다란 포부와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거인이 될 수가 있단다”라는 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걸리버 리턴즈’는 2019년 대통령 당선 전 배우이자 제작자로 활약한 젤렌스키가 이끌던 크바르탈95 스튜디오가 제작한 첫 장편 애니메이션.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유명한 스튜디오로 손꼽히는 크바르탈95가 우크라이나 독립 30주년을 앞두고 시작한 대형 프로젝트였다. 코다추크 프로듀서는 “젤렌스키와는 2013년 한 체육관에서 만나 알고 지내던 사이”라며 “우리에겐 우크라이나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에 부합하는 애니메이션을 탄생시켜보겠다는 같은 목표가 있어 협업하게 됐다”고 했다. 이 애니메이션에는 ‘모아나’ ‘엔칸토’ 등 디즈니 애니메이션 제작진도 참여했다. 그는 “우리는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전문가를 모았다”며 “젤렌스키는 최고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계획된 예산 늘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애니메이션 제작이 한창이던 2019년 젤렌스키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애니메이션은 지난해 최종 완성됐고, 우크라이나의 30번째 독립기념일인 지난해 8월 24일엔 우크라이나에서 먼저 개봉했다. 우연찮게도 올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하면서 애니메이션 속 상황은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온갖 첨단 무기로 무장한 채 공격을 퍼붓는 대국 블레퍼스큐는 러시아를, 이에 맞서는 작은 나라 릴리퍼트는 우크라이나를 연상시킨다. 눈에 띄게 불리한 전세를 역전시키고 결사 항전하며 블레퍼스큐군의 패퇴를 끌어내는 걸리버를 보면 자연스럽게 젤렌스키가 떠오른다. 코다추크 프로듀서는 “우연의 일치지만 애니메이션 속 이야기는 현재 우크라이나가 직면한 상황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다”며 “우리는 애니메이션 속 구체적인 상황과 현실 상황이 얼마나 비슷한지 하나하나 비교해보고 매우 놀랐다”고 말했다. ‘걸리버 리턴즈’는 현재 미국을 포함한 73개국에서 정식 개봉했거나 스트리밍 서비스되고 있다. 전 세계 상영 판권 판매 등의 수익은 전액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종식을 촉구하고 및 우크라이나의 전후 재건을 지원하는 일에 사용된다. 코다추크 프로듀서는 한국 관객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한국 관객들의 걸리버 세계로의 여행은 우크라이나의 승리에 작은 기여하게 될 겁니다. 당신의 지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 관객들이 꼭 ‘걸리버 리턴즈’를 보길 바랍니다. 모두가 이 애니메이션을 좋아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반드시 승리할 겁니다.“손효주기자 hjson@donga.com}

21일 공개돼 세계 5위에 오른 넷플릭스 영화 ‘20세기 소녀’는 매의 눈으로 보지 않아도 빈틈이 보인다. 클리셰는 거의 모든 장면에 있다. 전개 방향도 훤히 보인다. 반전도 쉽게 맞힐 수 있는 수준. 영화 속 1999년은 여러 번 윤색된 끝에 순정만화처럼 미화돼 있다. 어떤 면에선 ‘레트로 판타지’ 같다. 그런데 밉지가 않다.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 뜯어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가도 수그러든다. 레트로를 표방한 이 영화는 1983년생 보라(한효주)가 1999년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고1 소녀 보라(김유정)는 절친 연두(노윤서)가 첫눈에 반한 같은 학교 남학생 현진(박정우)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해 연두에게 매일 e메일로 보낸다. 심장수술을 위해 미국으로 떠난 연두가 현진을 볼 수 없다며 아쉬워하자 ‘첫사랑 동태 보고’를 시작한 것. 현진을 집중 관찰하다 보라는 현진의 절친 운호(변우석)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곧 연두가 돌아오고, 보라는 뭔가 일이 잘못됐음을 알게 된다. 영화는 한국 영화 ‘연애소설’(2002년)은 물론 일본 영화 ‘러브레터’(1999년), 대만 영화 ‘나의 소녀시대’(2016년) 등 아시아의 유명 청춘 로맨스물을 재조합한 듯하다. ‘응답하라’ 시리즈, ‘스물다섯 스물하나’(2022년) 등 레트로 드라마 대표작과도 겹치는 부분이 많다. 1999년 고등학생이라고 하기에 주인공 김유정은 비교적 최근 스타일의 메이크업을 하고 나온다. 학생 역할 배우 대부분이 당시 촌스러운 스타일을 하고 있는 반면 주인공들은 현재와 큰 차이 없이 세련됐다. 1999년임에도 2022년 같은 모습이 때때로 튀어나오는 것. 보라와 운호의 사랑이 싹트는 곳은 하필 또 방송반이다. 드라마 ‘겨울연가’(2002년)부터 ‘스물다섯 스물하나’, 지난달 개봉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까지 수차례 등장한 ‘첫사랑 배출의 산실’이다. 놀이공원, 삼각관계,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의 혼란 등 청춘 로맨스물 하면 떠오르는 클리셰도 모두 담았다. 특히 “난 행복했어. 너와 함께한 모든 순간이”라는 식의 웹소설에 나올 법한 대사는 영화를 레트로 판타지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엔 마치 자신의 시절이 실제 그랬던 것처럼 문제가 될 만한 요소들을 너그럽게 수용해 가며 계속 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세부 장치가 대표적. ‘1010235’(열렬히 사모) 등 암호 같은 번호를 상대방 삐삐에 보내 마음을 전하는 장면은 삐삐 세대의 기억을 일깨워 몰입을 이끈다. 20대 이하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진 하이틴 로맨스물에 90년대가 더해지면서 40대, 50대도 영화를 즐기게 된다. 대중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90년대를 낭만의 시대로 여기며 동경하는 20대 이하 세대와 그 시절을 겪은 30∼50대가 공유할 영화가 오랜만에 나온 것. 보라가 공중전화로 통화할 때 중간중간 들리는 동전 떨어지는 소리는 동전이 모자라 애태웠던 기억을 소환한다. 주인공들이 e메일 도입 초창기 처음 계정을 만드는 장면은 당시 허세 가득한 아이디로 메일 주소를 만들었다가 마흔이 넘어서까지 아이디에 발목 잡힌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미숙 이정재 주연의 영화 ‘정사’(1998년) 비디오 케이스, 여학생들이 머리를 묶던 ‘곱창 밴드’ 등 추억의 아이템이 잊을 만하면 등장한다. ‘추억팔이’라 해도 속속 모습을 드러내는 아련한 추억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클리셰도 해명의 여지가 없지 않다. 방송반, 삼각관계는 그간 첫사랑을 다룬 콘텐츠에서 대중이 선호해 온 설정으로 입증된 것. 이런 클리셰를 배제하고 완전히 새로운 첫사랑 서사를 만드는 건 대중의 욕망에 배치돼 상업성을 잃을 수 있다. 다만 그렇다고 클리셰를 한가득 끌어올 것까지야 있었느냐는 아쉬움은 남지만 말이다. 영화는 과거의 아련함과 학창시절 청량감을 표현하기 위한 색감 보정 등 영상미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가장 예쁜 색으로 보정된 과거는 유토피아 같다. 탄탄한 스토리나 치밀한 연출보다 예쁘게 보이는 것에 치중했다는 비판이 일부에서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대중이 레트로 영화에 원하는 건 과거를 날것 그대로 살려내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현재는 고통스럽고 미래는 두려운 만큼 과거라도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모습으로 보정하고, 그곳에 의지해야 살아갈 힘이 생긴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이 영화가 곳곳의 빈틈에도 세계 5위를 기록한 건 대중의 이 같은 ‘레트로토피아’에 대한 열망을 잘 읽어내서가 아닐까.손효주 문화부 기자 hjson@donga.com}

“영화는 반응이 화끈하죠. 영화가 안 좋으면 화살이 마구, 이만큼 날아오잖아요. 그런데 이건 영화가 아니니까 지금도 반응을 잘 모르겠어요.”(웃음) 천만 영화 ‘왕의 남자’(2005년) 등을 연출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인정받은 이준익 감독은 드라마 데뷔작 ‘욘더’가 공개된 이후 다소 긴장한 기색이었다. ‘욘더’는 14일과 21일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을 통해 6화가 모두 공개된 드라마다. 25일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그는 내년 상반기 이 드라마가 글로벌 OTT의 파라마운트+를 통해 세계에 공개되는 것을 언급하며 “망신만 당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욘더’는 안락사가 합법화된 2032년을 배경으로 한 공상과학(SF)물이다. 안락사 집행 전 특수 장치로 뇌에서 기억을 통째로 빼내고, 이 기억을 바탕으로 죽은 이를 가상인간으로 부활시키는 이야기를 다룬다. 드라마에서 안락사를 택한 이후(한지민)는 스스로 가상인간이 되는 길을 택하고, 죽은 후 남편 재현(신하균)과 자주 찾던 잣나무 숲에서 그를 기다린다. 재현은 그런 아내를 진짜 아내로 인정해야 할지를 두고 혼란에 빠진다. 2010년 뉴웨이브문학상을 수상한 김장환 작가의 소설 ‘굿바이, 욘더’가 원작이다. 이 감독은 “11년 전 원작을 봤는데 삶과 죽음을 주제로 이런 과감한 설정을 다룬 것이 굉장히 신선했다”며 “8년 전쯤 시나리오를 썼는데 판타지 성격이 과해 망하겠다 싶어 다 엎었다. 이번엔 욕심을 덜고 가장 작은 것에서 가장 깊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드라마로 만들자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완전히 새로 썼다”고 했다. 드라마는 메타버스에서 아바타 형태로 존재하며 불멸하는 것이 과연 행복한 것인지 존재론적인 질문을 수차례 던진다. 이 감독은 “이 드라마는 자극적이고 장르적 긴장감을 주는 킬링타임용이 아니라 세이빙(saving)타임용”이라며 “영원한 것은 과연 아름다운 것인가를 고찰하며 소멸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스스로의 내면과 만날 수 있게 하는 드라마”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항상 아름다운 만남을 꿈꾸지만 아름다운 이별은 외면하죠. 인간의 삶이 더 숭고해지려면 아름다운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해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첫 드라마 도전으로 2시간 안팎으로 제한되는 영화 러닝타임의 압박을 처음 벗어났다. 그는 “영화는 2시간 안에 압축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정말 심했다”며 “이번엔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 삶과 죽음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침착하고 깊이 있게 전달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추석 연휴를 제외하면 가을은 전통적으로 극장가의 비수기다. 그러나 아무리 비수기라고 해도 현재 관객 수는 처참한 수준이다. 이달 1∼23일 극장 관객은 498만 명.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같은 기간(1121만 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팬데믹이 기승을 부린 2020년(344만 명), 2021년(391만 명)보다는 늘었지만 예상보다 저조한 수준이다. 국내 첫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로, 지난달 28일 개봉한 ‘인생은 아름다워’는 관객 98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손익분기점(220만 명)에 턱없이 부족하다. 같은 날 개봉한 코미디 영화 ‘정직한 후보2’ 역시 올해 두드러졌던 후속편 흥행을 이어갈 것이란 기대를 받았지만 관객은 88만 명에 머물고 있다. 외화도 비슷하다. 할리우드 액션 스타 드웨인 존슨의 히어로물 데뷔작으로 관심을 모은 ‘블랙 아담’은 19일 개봉 후 5일간 43만 명이 관람했다. 엔데믹 시작 국면인 5월 개봉한 마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5일간 350만 명을 모은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지난달 7일 개봉한 한국영화 ‘공조2: 인터내서날’만이 관객 689만 명을 모으며 나 홀로 선방하고 있다. 극장업계는 할리우드 대작이나 국내 인기작을 재개봉하며 관객 끌어오기에 발 벗고 나섰다. CGV는 최근 영화 팬의 메카로 불리는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 마블 히어로물 등 디즈니 계열 영화만 상영하는 전용관을 열었다. 이곳에선 2015년 개봉해 1000만 관객을 모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등 여러 작품을 재상영하고 있다. 롯데시네마는 ‘탑건: 매버릭’을 개봉 4개월이 지난 현재도 상영하며 마지막 한 명의 탑건 팬까지 모으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6월 29일 개봉) 역시 두꺼운 팬덤을 확보해 주요 영화관들이 지금도 상영 중이다. 하지만 가족 단위 관객을 불러올 한국영화 대작 개봉이 연말까지 거의 없어 업계에선 ‘보릿고개’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12월 중순 개봉하는 ‘아바타: 물의 길’이 연말 한국영화 대작이 자취를 감추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아바타’(2009년) 후속편으로, 제작비 3600억 원이 투입된 이 대작은 아바타 제작진이 13년간 칼을 갈며 만든 작품이다. “아바타와의 맞대결은 피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12월 등판할 한국영화 대작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그린 ‘영웅’이 유일하다. 동명의 뮤지컬을 영화로 만든 ‘영웅’은 ‘아바타: 물의 길’ 개봉 일주일 후 극장에서 상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바타 효과’로 관객 수가 단기간에 늘어날 순 있어도 ‘아바타: 물의 길’ ‘영웅’ 외 대작이 없어 연말 특수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영화사 관계자는 “10, 11월에 ‘자백’ ‘리멤버’ ‘나를 죽여줘’ ‘미혹’ ‘귀못’ 등 중저예산 한국영화 개봉이 몰린 것도 아바타와의 정면승부는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아바타에 대한 관심이 식어야 대작 개봉 일정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외계 기술을 방불케 하는 컴퓨터그래픽(CG)과 현란한 액션으로 중무장한 할리우드 대작 영화가 19일 개봉했다. 영화 ‘블랙 아담’이다. 대작이 실종된 가을 극장가에 홀로 출정한 만큼 극장가를 평정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영화의 배경은 기원전 2600년 고대 국가 칸다크. 왕의 폭정으로 고통받던 노예 테스 아담(드웨인 존슨)에게 어느 날 스피드, 체력 등 6가지 신(神)의 능력이 주어진다. 칸다크 백성들을 구할 영웅이 된 것. 그러나 아담이 이런 능력을 복수에 남용하면서 마법사들은 그를 영원의 바위 아래 가둔다. 이야기는 그가 5000년 후 깨어나며 본격화된다. 그는 칸다크를 점령한 용병조직 인터갱을 쓸어버린다. 아담이 용병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리면 용병은 불타오른 뒤 재가 된다. 총탄에 미사일까지, 아담 몸에 맞기는커녕 마구 튕겨 나간다. 최첨단 공격 헬기도 그 앞에선 종이 쪼가리. 모든 공격을 무력화하고 온몸이 무기인 히어로계 끝판왕이다. 그의 폭주를 막기 위해 나타나는 건 세계의 안정을 위해 활약하는 히어로팀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대마법사 ‘닥터 페이트’(피어스 브로스넌) 등 4인이다. 인터갱 대 아담,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대 아담의 정면 대결은 최대 관람 포인트다. 숨 돌린 만한 장면 없이 상영시간 대부분을 화려한 액션 장면으로 채웠다. 아담의 치고받고 다 쓸어버리는 무적의 퍼포먼스가 시각적 쾌감을 최고치로 끌어올린다. 중동 국가 칸다크를 백인 군사조직이 장악하는 건 정치적 해석이 가능하지만 살짝 건드리고 넘어가는 것에 그친다. 배트맨, 슈퍼맨 등 비교적 엄숙한 분위기에서 철학적인 메시지를 다루는 기존 DC 영화들과 달리 이번 영화는 DC 영화치고는 단순하다. 주인공들의 미국식 개그, 히어로들의 대결 방식도 마블 영화를 연상시킨다. 마블 영화스러운 DC 영화를 보는 것도 관람 포인트가 될 법하다. 무엇보다 분장을 하지 않아도 이미 슈퍼 히어로 같은 드웨인 존슨이 히어로로 분했다는 것만으로도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블랙 아담’은 영화 말미 아담이 스스로 붙이는 이름으로 암시될 뿐 영화에선 언급되지 않는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외계 기술을 방불케 하는 컴퓨터그래픽(CG) 기술과 한시도 눈을 못 떼게 만드는 고난도 액션으로 중무장한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 영화가 19일 개봉했다. 영화 ‘블랙아담’이 그 주인공. 한국 영화 대작은 물론 할리우드 대작마저 실종된 가을 극장가에 홀로 출정한 만큼 극장가를 평정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영화의 배경은 기원전 2600년 고대 국가 칸다크. 광산 채굴 노예로 살며 왕의 폭정으로 고통받던 테스 아담(드웨인 존슨)에게 어느 날 용기, 스피드, 체력 등 신들의 6가지 능력이 주어진다. 칸다크 백성들을 구할 히어로가 된 것. 그러나 아담은 이 힘을 사적 복수에 남용하고, 마법사들은 그를 영원의 바위 아래 가둔다. 이야기는 아담이 5000년 뒤 깨어나면서 본격화된다. 그는 칸다크를 점령한 용병조직 인터갱을 마구잡이로 죽인다. 아담이 인터갱 용병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리면 용병은 불타오른 뒤 금세 재가 된다. 총탄에 미사일까지 아담 몸에 맞기는커녕 마구 튕겨 나간다. 최첨단 공격 헬기도 전투기도 종이 쪼가리처럼 찢어버린다. 모든 공격을 무력화하는 히어로계의 끝판왕 캐릭터인 것. 그의 폭주를 막기 위해 나타나는 건 세계의 안정을 위해 활약하는 히어로군단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대마법사 ‘닥터 페이트’(피어스 브로스넌) 등 4인이 그와 맞선다. 인터갱 대 아담,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대 아담의 정면 대결은 최대 관람 포인트. 할리우드 최첨단 기술을 모두 끌어모아 한꺼번에 폭발시킨 듯 화려한 액션 등 볼거리로 가득하다. 숨돌린 만한 장면 없이 상영시간 대부분을 관객을 압도하는 액션 장면으로 채웠다. 최첨단 기술의 대향연인 펼쳐지는 것. 아담의 치고받고 다 쓸어버리는 무적의 퍼포먼스가 시각적 쾌감을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덕에 단순하고 다소 유치한 이야기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동 국가의 모습을 한 ‘칸다크’를 백인 주축 군사조직이 장악한다거나 이들을 절대악으로 묘사하는 것 등은 정치적 해석이 가능한 부분. 그러나 살짝 건드리고 넘어가는 수준이다. 배트맨, 슈퍼맨 등 비교적 엄숙한 분위기에서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동시에 다루는 기존 DC 영화들과 달리 이번 영화는 DC영화 치고는 가볍고 단순한 편. 주인공들의 스몰토크와 미국식 개그 , 히어로들의 맞대결 방식, 블랙 아담의 초능력 시현 장면 등도 마블 영화를 연상시킨다. 마블 영화스러운 DC영화를 보는 것도 관람포인트가 될 법하다. 무엇보다 별다른 분장을 하지 않아도 이미 슈퍼 히어로 같은 드웨인 존슨이 처음으로 히어로로 분했다는 것만으로도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제목 ‘블랙 아담’은 영화 말미 테스 아담이 “이름이 촌스럽다“며 스스로 붙이는 이름이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13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의 파라마운트+ 브랜드관에서 공개한 드라마 ‘아메리칸 지골로’는 기시감을 느낀 이들이 적지 않다. 1980년 북미에서 개봉해 리처드 기어를 당대 스타로 만든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했기 때문이다. 원작은 물론 42년 만에 리메이크 드라마를 만든 건 미국 영화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79). 원작 영화는 그가 제작해 첫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후 ‘탑건’(1986년) ‘더 록’(1996년) ‘아마겟돈’(1998년)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2003∼2017년) 등을 제작하며 할리우드 큰손으로 자리매김했다. ‘할리우드의 미다스 손’ 브룩하이머를 최근 동아일보가 단독으로 e메일 인터뷰했다. 브룩하이머는 ‘탑건’ 속편인 ‘탑건: 매버릭’을 36년 만에 내놓은 데 이어 ‘아메리칸 지골로’를 드라마화한 이유에 대해 “10년 전부터 논의해 왔던 것으로, 시간 제약 탓에 담지 못했던 주인공 줄리언의 인생사를 다루고 싶었다”며 “OTT와 케이블 채널이 부상한 만큼 드라마로 만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로스앤젤레스(LA) 부촌을 무대로, 몸 파는 남성을 뜻하는 ‘지골로’ 줄리언(기어)이 상류층 여성들과 보내는 화려한 일상을 주로 담았다. 줄리언이 살인죄 누명을 쓰는 장면도 나오지만, 이는 로맨스 완성을 위한 보조 장치에 그친다. 반면 드라마는 그가 제작한 ‘CSI’ 시리즈처럼 범죄 수사물 성격이 짙다. 줄리언(존 번솔)이 복역하던 중 진범이 밝혀져 15년 만에 출소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브룩하이머는 “줄리언이 누명을 벗은 이후 이야기로 시작하면 그가 삶을 재건해가는 모습을 잘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했다. 줄리언이 미성년자 시절 지골로로 키워지는 모습이나 누명을 씌운 인물을 찾아가는 과정도 두루 보여준다. 아동학대와 빈곤 등 사회적 문제도 녹였다. 브룩하이머는 “줄리언을 범인으로 몰았던 선데이 형사와 (줄리언과 사랑에 빠진 유부녀) 미셸 이야기도 자세히 담았다”고 했다. 영화에서 지골로는 화려한 면에 치중한 반면 드라마는 현실적이고 초라한 면을 부각한다. 브룩하이머는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하는 등 시대가 변하며 성 노동자도 큰 영향을 받았다. 줄리언 같은 이가 설 자리가 남았느냐는 의문 역시 드라마가 짚는 주요 포인트다. 상류층 성 노동자라는 ‘서브 컬처’와 누명 쓴 사람이 기회를 얻는다는 보편적인 줄거리를 함께 다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선 원작 영화의 ‘지골로’란 단어가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아메리칸 플레이보이’로 이름을 바꿔 1985년에야 개봉됐다. 드라마는 원제를 그대로 살렸다. 브룩하이머는 “전 세계가 같은 타이틀을 쓰는 건 좋은 일”이라고 했다. 최근 브룩하이머는 자신이 제작했던 인기작을 여러 방식으로 되살리는 작업에 애쓰고 있다. 1980년대 에디 머피를 스타로 만들었던 영화 ‘비버리 힐스 캅’ 시리즈 4편도 제작하고 있다. 그는 “각색을 검토하는 과거 작품이 더 있다”고 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히트한 ‘탑건: 매버릭’ 개봉을 앞두고 6월 한국을 찾기도 했다. 할리우드에서 ‘단짝’으로 불리는 톰 크루즈와 함께 레드카펫 등 각종 행사에 참석하며 한국 사랑을 과시했다. ‘탑건: 매버릭’은 국내에서 816만 명 넘게 관람하며 올해 개봉 외화 관객 수 1위를 지키고 있다. “당시 한국 팬들이 보여준 환대는 압도적이었어요. 충성심 높은 팬들을 볼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제 작품을 한국에서 따뜻하게 맞이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죠. 탑건3를 제작할 계획은 아직 없습니다.” 브룩하이머는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과 배우 이정재,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을 배출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한국 영화계에도 큰 관심도 보였다. “한국 콘텐츠에서 믿기 어려울 정도로 수준 높은 작품들이 나오는 모습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혁신적이고 독특한 감각을 작품에 불어넣는 사람들과 일하는 걸 정말 좋아합니다. 한국 감독,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고 싶은 생각이 있냐고요? 물론이죠.”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