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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군대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 이후 ‘정의기억연대’의 회계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을 지켜보는 심정은 분노보다는 안타까움이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 평화 정의 등을 주창해온 인사나 단체의 위선이 드러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지난해 조국 사태가 자칭 진보인사들의 도덕성에 대한 눈높이를 땅바닥으로 낮춰 놓은 탓에 이제 웬만한 일에는 그러려니하는 국민이 많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운동은 그런 하류 좌파 단체나 인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조국을 비롯한 숱한 자칭 진보 인사들, 단체들은 입으로만 떠들었지 실제로 우리 사회의 진보와 평등 공존의 가치 실현을 위해 기여한 게 거의 없다. 말과 실생활이 정반대인 위선의 삶을 살아오면서, 좌파권력 네트워크가 창출하는 이권에 기생해 특권을 누려왔다. 하지만 정의연을 비롯한 위안부 인권활동가들은 30년 넘게 생업을 포기한 채 이 문제에 헌신했다. 위안부 문제는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의 생명권, 인권 문제다. 국제사회의 이슈가 되고, 세계가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게 된 데는 이들 단체의 공이 컸다. 그런 단체를 이끌어온 윤미향 전 이사장이 자신을 조국에 비유한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대응이었다. 진보나 여성인권을 위해 실제론 조금의 자기희생이나 투자도 하지 않은 인물과 스스로를 같은 부류에 놓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정의연의 솔직하고 투명한 설명을 촉구하는 대다수는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 정의연과 같은 생각을 갖고 지지해온 일반 국민이다. 그런 국민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 회계에 문제가 있었다면 깨끗이 반성하고 시정하면 된다. 횡령 같은 개인비리가 아닌 한 대다수 국민은 다시 힘을 실어줄 것이다. 미래통합당을 비롯한 보수진영도 회계 문제 이상으로 확대시켜 위안부 인권 운동 전체를 매도하거나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훼손시켜선 안 된다. 일제의 강제동원 사실마저 부정하는 극우 인사들이 다시 발호할 멍석을 깔아줘선 안 된다. 1990년대 초중반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이 잇따르면서 위안부 문제가 본격 외교문제로 대두될 당시 필자는 주무 기자 중 한 명으로 강제동원의 참상을 생생히 접했다.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결의안이 통과될 당시도 특파원으로 주무 기자였다. 일본군이 네덜란드인 여성까지 위안부로 끌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 돼 당시 호주에 거주하던 84세의 피해 여성을 인터뷰했다. 그녀는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거주하던 19세때 일본점령군에 의해 강제 수용소에 수용됐다가, 21세 때 군 위안부 수용소로 끌려가 어떤 참상을 겪었는지 생생히 들려줬다. 강제동원이 없었다면 네덜란드인 할머니를 포함해 그 수많은 피해자들이 다 허구를 들려줬다는 말인가. 윤 전 이사장은 “미래통합당과 친일언론에 당당히 맞서겠다”고 다짐했다. 언론이 회계불투명성을 비판한다고 해서 모든 보수언론이 그동안 위안부 문제에 대해 친일논조를 폈던 것처럼 주장한다면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필자가 ‘위안부’라는 검색어로 1990년부터 지난달까지 동아일보의 모든 기사를 검색해보니 근 30년간 3352건의 기사와 칼럼이 게재됐다. 전부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 대부분은 일본군 강제동원의 실상을 밝히고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2007년 당시 미 의회에서 위안부결의안이 통과된 것은 기적같은 일이었다. 미국 내 일본의 로비력은 상상도 하기 힘들만큼 막강했으나 뉴욕한인유권자센터, 워싱턴정신대대책협의회 같은 현지 교민 단체들이 수년에 걸쳐 미 의원들을 상대로 풀뿌리 유권자 운동을 펼친 힘이 컸다. 당시 감탄했던 게 교민들의 열성도 열성이지만, 철저하고 투명한 조직운영이었다. 의회상대 로비가 가능한 정치단체여서 더 엄격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1달러 한 장도 허투루 쓰지 않을 만큼 회계 투명성을 지켰다. 당국의 감독과 보고 의무가 워낙 엄격해 피곤하다는 하소연을 들었던 기억도 난다. 물론 윤 전 이사장 등이 친일파 운운한 것은 자기 방어 차원에서 나온 신경질적인 반응이었을 것이다. 진짜 한심스러운 대목은 김두관 의원을 비롯한 여권의 친일파 프레임 짜기 행태다. 여당은 총선 압승 직후 겸손 모드를 통해 무게감과 책임감 있는 면모를 풍겼다. 그런데 김두관류의 낡은 친일 프레임 공세는 자신들이 여전히 ‘찌질한 구시대 좌파’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스스로 외치는 듯한 모양새다. 최근 이광재 당선자, 청와대 대변인 등이 문재인 대통령을 태종 세종 등에 비유하자 문비어천가가 지나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필자는 태종 세종 비유를 들었을 때 아부 아첨 차원을 넘어선 집권세력의 집요한 욕구를 느꼈다. 즉 새 왕조를 열듯 나라의 틀을 바꾸겠다는 욕구다. 이 정부 출범 후 교과서와 헌법 등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려고 하고, 건국 기점을 바꾸려는 그런 모든 시도들에는 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 한미동맹, 경쟁·효율 중시 등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질서와 역사 해석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겠다는 욕구가 깔려 있다. 총선 압승이 그게 가능하다는 환상을 심어줬을 것이다. 하지만 케케묵은 친일 프레임 전략에 의존하는 행태는 이들이 그런 ‘재건국’을 이룰 역량을 갖추기는커녕 여전히 이념 편향적인 아마추어 386집단 수준에서 탈피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산사태처럼 터진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온갖 실정(失政)이 묻히고, 야당복(福) 전임자 복(福)이 겹친 게 총선 압승의 본질임을 다시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1987년 12월 16일 밤 많은 이들이 절망하고 분노했다. ‘6월 민주화 항쟁’ 반년 뒤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 끝에 얻어낸 직선제인데, 군부독재 2인자에게 828만 표나 몰렸다니…. 다행히 이듬해 총선에서 여소야대를 이뤘지만 또 한 번의 절망이 1990년 1월 찾아왔다. 제도권 민주화 세력의 양대 기둥 중 하나였던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이 5공 세력인 민정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합친 것이다. 당시 느낀 절망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회의감은 컸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런 일련의 흐름이 어찌보면 우리 현대사에서 새옹지마가 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는 직선제를 쟁취하고 민주화의 길을 열었지만 군부가 언제든 다시 총칼을 들이밀 수 있는 취약한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노태우 정권은 군부독재에서 민간으로 전환하는 과도기가 됐고, 3당 합당을 통한 민간정부 수립으로 이 땅에서 군부 쿠데타의 싹이 제거됐다. 광주민중항쟁을 짓밟고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을 비롯한 당시 하나회 중심 군부의 속성을 감안하면 그런 단계적 전환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우리가 거쳐 온 역사보다 훨씬 더 많은 피를 흘리는 민주화 과정을 겪었을 수도 있다. 이번 총선도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의 새옹지마가 될 수 있을까. 만약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이겼다면 황교안 대세론이 커졌을 거다. 보수진영은 ‘군대도 안갔다 오고, 평생 공안검사에 탄핵 정권에서 법무장관과 총리를 지낸 후보로는 위태롭다’고 속으로는 걱정하면서도 대세론에 밀려 대선 필패)必敗)의 절벽으로 행진했을 것이다. 근소한 차이로 졌을 경우에도 구시대 중진들이 당권·대권을 놓고 이전투구를 벌이며 대선 필패의 코스로 갔을 것이다. 벌써 홍준표 전 대표를 비롯한 일부 중진이 다음 대권을 입에 올리는데. 그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위치와 국민이 생각하는 그들의 위치가 너무도 차이가 커서 어이가 없을 정도다. 필자가 그동안 만나본 그런 정치인들의 특징은 아무리 똑똑하고 유능해도, 자신을 객관화시켜서 보는 능력이 일반인들보다 현저히 떨어진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돌이켜 보면 많은 이들이 마음속에서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드는데도 물결에 떠밀리듯 일이 진행되면 반드시 민심의 심판을 받게 되는 걸 현대사에서 수없이 목도해왔다. 그래도 어떻게 되지 않을까하는 요행은 이뤄지는 법이 없다. 황교안 대표가 선출됐을 때, 그리고 광주항쟁을 폭동이라 부르고, 상대 진영을 ‘김정은에 게 나라를 헌납하려는 세력’ 식으로 인식하는 낡은 패러다임의 인사들이 활개 칠 때마다 저래선 수구 이미지를 벗기 어려울 텐데라는 걱정이 나왔는데 역시 기우가 아니었다. 사실 극좌와 극우는 서로의 거울이다. 광화문에서 김정은을 찬양하는 극좌파나 조국 세력, 그리고 반대편의 극우 인사들 모두 일반 국민들의 눈에 자신들이 어떻게 비칠지를 알고 싶으면 상대방을 보면 된다. 통합당의 고질적 이미지는 30년전 3당 합당이 남긴 고약한 유산이다. 평생 민주주의나 인권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을 박근혜, 김기춘 같은 인물들이 21세기에 재등장한 것도 3당 합당 때 뒤섞인 독재시대 DNA의 찌꺼기가 발효된 것이다. 그런 점을 노려 좌파진영은 자꾸 ‘민주화세력 vs 산업화세력’의 이분법을 내걸고 통합당은 맥없이 그 프레임에 걸려든다. 사실 통합당에는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인사들이 다수 있고, 유신과 5공 출신들은 진작 정리됐는데도 통합당의 의식구조에는 ‘우리는 민주화의 반대편’이라는 콤플렉스가 똬리를 틀고 있다. 단적인 예가 통합당이 광주항쟁에 대해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것이다. 통합당은 왜 전두환의 변호인처럼 비치길 자원하는가. 전두환 노태우를 단죄해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은 바로 김영삼 정권 때다. 17일 후면 광주항쟁 40주년이다. 한국 현대사의 큰 획을 그은 역사인데 발포명령, 헬기사격 등 아직도 진실 규명이 미진한 대목이 남아있다. 통합당은 더 이상 진실 규명에 소극적이어선 안 된다. 광주항쟁을 비롯해 민주화를 폄훼하는 인사가 당내에 남아있다면 단호히 축출해야 한다. 민주화 투쟁은 여당, 좌파만의 역사가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위대한 유산이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통합당이 지향해야 할 좌표가 선명히 드러났다. 좌파 20년 집권을 막으려면 보수 텃밭이 아닌 중도층과 젊은 세대를 준거집단으로 삼아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 민주당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전략을 구사해왔다. 하지만 이념편향적인 운동권 출신들의 한계로 시야가 흐려져 진보와 ‘포퓰리즘·노조이기주의·불공정’의 차이를 제대로 읽지 못한 채 패착을 둬왔고 중원(中原)은 아직 열려 있다. 기적같이 이뤄낸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은 건전한 중산층이 주도했고 그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여전히 좌우 어느 쪽으로 쏠려 있지 않다. 통합당이 중도층의 중요성을 깨달으며 3당 합당의 잔재를 털어내고 다시 태어난다면 총선 참패가 새옹지마가 됐다고 회고할 날이 올 것이다.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4·15총선은 풍랑을 만난 배 안에서 치러진 선장 신임 투표나 마찬가지였다. 선장 친위그룹들은 압도적 신임 결과에 고무돼 “역시 우리가 옳았다”며 우쭐한다. 과연 그럴 일일까. 승인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중도파 20%가 내 손을 들어준 이유다. 미증유의 폭풍우 속에서 중도파 선원들이 일단은 현 선장을 밀어준 가장 큰 이유는 야당은 더 허탕일 것 같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2개월간 배 안의 모두가 합심해서 풍랑을 헤쳐 온 데 대한 구성원들 스스로의 자부심, 즉 자신과 공동체에 대해 느끼는 대견함이 현 시스템을 긍정하고 밀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연결된 것이다. 대한민국이 코로나 대응에서 올린 승점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 몫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 사회가 선방한 두 기둥은 신속하고 광범위한 진단검사와 시민의식이었다. 우리 사회는 직장 건강검진을 비롯한 의료 검사 시장이 급성장해 2000여 검사기관이 있다. 1980년대 병리과에서 진단검사의학과가 독립돼 전문의를 포함 1200여 명의 검사의학 전문가와 1만여 임상병리사가 양성돼 있다. 치열한 경쟁 환경 속에서 성장해온 국내 바이오업체들은 중국에서 지난해 12월 31일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고, 1월 12일 미 국립생물공학정보센터가 코로나19 유전자 염기서열을 공개하자마자 시약 개발에 착수했다. 대한진단검사의학회는 첫 확진자가 나온 1월 20일 당일 ‘코로나 TF’를 구성했다. 이 같은 민간 역량이 있어도 ‘행정과 규제’에 발목 잡히면 무용지물인데 우리에겐 2016년 메르스 사태 이듬해 도입한 신종 감염병 발생 시 새 진단 시약과 검사법의 긴급사용을 승인하는 제도가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질병관리본부의 적극적인 코디네이터 역할이 빛났다. 질본은 설 연휴 마지막 날 서울역 역사로 진단검사의학회와 시약 생산업체 관계자들을 불러 진단시약 긴급승인 신청을 요청했다. 통상 6개월 이상 걸리던 심사가 초스피드로 진행됐다. 그때부터 우리는 정치의 간섭이 없는 환경에서 대한민국의 전문가와 민간기관들이 얼마나 놀라운 경쟁력을 발휘하는지 목격했다. 영리를 위해서든 사명감이든 다들 밤을 새워 달려들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에 별달리 간섭하지 않았다. 이게 바로 칭찬받을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짜파구리 파티를 열거나, 섣불리 낙관적 발언을 뱉거나, 자화자찬을 해서 구설수에 올랐을지언정 뒤로 물러나 있어줬다. 사태 초기 중국인 입국 차단 문제에서 전문가 의견보다 정치를 앞세운 것을 제외하고는 전문가와 민간의 창의에 맡겨둔 것이다. 물론 사태 초기부터 언론과 전문가들이 메르스의 교훈을 상기시키며 전문가 존중과 투명한 대응을 연일 촉구한 영향도 컸을 것이다. 운도 따라줬다. 훨씬 선방하는 작은 배들도 있지만 선진국 거함(巨艦)들이 난파하는 장면들이 워낙 충격적이어서 상대적으로 우리가 잘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해졌다. 최근 57%까지 치솟은 문 대통령 지지율은 불과 한 달 반 전 41%였다. 만약 확진자가 쏟아지던 당시 총선이 치러졌다면 ‘전쟁 중에는 장수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표심과 ‘경종을 울리자’는 표심이 팽팽히 맞섰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정책은 달라진 게 없는데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바뀌며 순위가 올라간 셈이다. 게다가 여당은 아무리 저조한 성적을 내도 “그럼 박근혜가 더 낫다는 거냐”는 한마디면 금방 만회할 수 있는, 전임자복(福)·야당복을 누렸다. 게다가 미래통합당은 환골탈태와 쇄신을 이끌 새 인물이 안 보인다. 만약 설상가상으로 공천 탈락 후 무소속으로 당선된 구시대 중진들이 다시 얼굴을 내민다면 통합당은 다시는 중도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실 문 정권 압승의 1등 공신인 ‘민간과 전문가의 창의에 맡겨둔다’는 접근법은 문재인 정권 3년간의 국정운영 특질과 정반대다. 시장·민간 부문 불신자들로 가득한 문 정권은 지난 3년간 경제 산업 외교 교육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전문가와 시장을 윽박지르며 직접 컨트롤하려 했고 그 결과 대부분 과목이 낙제점을 면치 못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가장 ‘비(非)문재인적인 접근법’을 택한 코로나 대응에서 좋은 점수를 낸 것인데 문제는 앞으로다. 다음 대선이 후년 3월 9일이므로 내년 초부터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친문집단은 자기들이 누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고 보고 이른바 ‘촛불 과제’ 완수를 독촉할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이들이 총선 압승 공신이라고 착각해 호응하면 쇠락의 길이다. 일각에선 이번 총선 결과를 보수의 몰락, 진보의 대세화라고 해석하지만 틀렸다. 보수는 중도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은 것이다. 중도는 이번에 대거 진보 손을 들어줬을 뿐 좌파가 된 것은 아니다. 산토끼가 집토끼가 된 것이 아니다. 중도층이 여당의 손을 들어준 것은 정권의 코로나 대응 자화자찬에 현혹되거나 열광해서가 아니다. 다만 다른 선장 후보 진영이 워낙 형편없고 미증유의 태풍의 끝이 보이지 않으므로 발목을 잡아선 안된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위선과 특권의 대명사 격인 인사를 끝까지 옹호하고, 권력 핵심부의 비위를 파헤치려는 검찰총장을 벼랑으로 몰고, 평생 경제현장을 접해본 적조차 없는 좌파 이론가들이 만들어낸 경제 정책을 밀어붙여 실물 경제를 파탄으로 내몬 그런 행태가 국민의 추인을 받은 것으로 착각한다면, 총선 승리가 ‘친문 어젠다’를 밀어붙이라는 민의라고 착각해 마이웨이 액셀을 밟는다면, 훗날 총선 압승이 보약이 아니라 독이 됐다는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산 아랫마을에 여러 농장이 있다. 기후가 좋아 대부분 농장이 풍년인데, 한 농장만 최악의 흉작이다. 새 농장주가 새로운 농경법을 밀어붙인 결과다. 토양에 안 맞는 시대착오적인 농경법이라는 충고가 빗발쳤지만 농장주는 쇠고집이었다. 두고 보라고, 추수 때가 되면 내 방법이 옳았음이 증명될 것이라는 낙관론만 되풀이했다 그런데 추수 직전 산사태가 덮쳤다. 모든 농장이 다 묻혀버렸다. 작황 비교가 어려워진 것이다. 농장주는 낙제점이 분명했을 성적표가 산사태에 묻혀 무(無)채점으로 넘어가는 행운을 기대하게 됐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오묘하다. 산사태 상황을 유리하게 이용하기 위한 전략을 아무리 세밀히 세워도 예상 밖 변수가 등장하게 마련이다. 자기 편 내부의 오버하는 인간들, 과잉 충성파 등등이 돌출해 상황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기 일쑤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떨어져 나온 정봉주 손혜원 김의겸 등이 모인 ‘열린민주당’은 집권세력의 당초 시나리오엔 없었을 거다. 이들 조국 추종세력은 ‘팬덤’에 바탕을 둔 친문의 특질을 재확인시켜줌과 동시에 국민들에게 코로나19 사태에 묻혀버릴 뻔했던 총선의 본질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즉 이번 총선이 조국을 살리고 윤석열을 쳐내는, 그래서 조국 세력 부활의 문을 열어주는 선거가 될 수도 있음을 일깨워줬다. 내 한 표에 따라 울산시장 선거 개입, 유재수 감찰 무마 등 권력 핵심부 의혹 사건의 진실 규명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줬다. 조국 맹종 세력이 의도하지 않았을 아이로니컬한 결과다. 이들이 선거에 등장하면서 내건 일성(一聲)은 공수처를 동원한 윤석열 처벌이었다. ‘조국 수호’ 집회를 주도한 개싸움국민운동본부를 토대로 민주당 등이 결성한 더불어시민당은 전 국민 매월 60만 원 지급, 상장기업 시가총액 1% 환수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곧 철회하기는 했지만 친문세력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인지, 이들이 원하는 사회가 어떤 건지를 보여준다. 문제가 된 공약을 철회하고 잠시 온건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중도층을 쫓아내는 부작용을 걱정해서일 뿐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닐 것이다. 보통 시민이 일상생활에서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극단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집권세력 지지층의 핵심에 있으며, 누더기 선거법이 그런 세력의 의회 진출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민주당은 이들이 정말로 못마땅할까. 여야 거대 정당은 선거 때면 중도층 획득을 중심에 두고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온건 노선’에 실망한 강경 지지층의 투표율이 낮아지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친조국 세력의 선거판 등장은 투표 의욕을 잃었던 강경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어차피 나중엔 다 한편이 될 세력이다. 모당(母黨)은 상대적 온건 이미지로 중도를 잠식하고, 강경파 위성정당은 왼쪽 끝 세력의 투표율을 높여 범여당의 파이가 커지는 꿩 먹고 알 먹기다. 단, 여당은 친조국 세력이 너무 목소리가 커져서 ‘조국 프레임’이 형성되는 것은 원치 않기 때문에 일정한 거리 두기를 한다. 손혜원의 ‘효자론’에 “그런 자식 둔 적 없다”식으로 까칠하게 대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가진 자’ 대(對) ‘덜 가진 자’의 대립 구도를 통치의 핵심 전술로 삼으면서 중도층을 포섭하려는 집권세력의 전략은 긴급재난지원금 대상을 ‘소득하위 70%’로 넓힌 결정에도 관철됐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별로 없던 경제부총리가 기록으로라도 남겨달라고 할 정도로 반대했는데도 집권세력이 7대 3 분할을 고집한 것은 경제·사회 정책마저 전술전략으로 다루는 ‘기술자들의 분할 통치 감각’을 보여준다. 국민 30%에게만 지급한다면, 혹은 국민을 5대 5로 나눴다면, 또는 모두에게 지급한다면 도저히 끌어낼 수 없었을, 과반수를 내편으로 끌어당기고, 소수의 ‘가진자’를 고립시키려는 전략이다. 좀비처럼 부활한 조국 세력의 국회 진입 시도는 특정 정당 유불리를 떠나 우리 사회의 가치체계를 훼손시킨다.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정면으로 배반한 특권과 반칙 세력의 부활 움직임에 진보 인사들 사이에서도 혼란스럽다는 의견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조국 세력의 부활 기도에 대해 어떤 생각일까. 선거전략상 중도층을 겨냥해 거리를 두고 있지만 속마음은 그들의 편인 것은 아닌지, 인간적 안타까움과는 별개로 조국 일가의 반칙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지…. 현직 검찰총장을 단죄하겠다고 공언하는, 공수처라는 신생 국가기관을 자신들의 사병(私兵)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을 청와대와 법무부의 핵심 요직에 두고 있었던 문 대통령의 생각도 그들과 같은 것인지 국민은 투표 전에 알 권리가 있다. 소득주도성장이 옳았다고 여전히 믿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가속 페달을 밟을 것인지, 아니면 정책 기조를 전환할 것인지, 친중·남북관계 최우선 노선을 지속할 건지…. 국가 진로를 선택하는 중차대한 정초(定礎) 선거에서 국민들이 코로나 착시 없이 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야 선거 후 민의 왜곡 혼란과 소모적 갈등이 줄어든다.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문재인 정권이 코로나19 대응을 잘했다는 자기 홍보가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문세력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돌던 자화자찬은 이제 문 대통령이 직접 입에 올리고, 친여 좌파매체들이 확성기처럼 떠들어대는 수준이 됐다. 집권세력이 “잘했다”의 근거로 드는 주요 논리는 이렇다. ①전 세계가 한국을 칭찬하고 있다. ②선진국도 환자가 쏟아진다. 우리가 확진자가 많이 나온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③마스크 정책 실패라고 비난하지만 선진국보다는 낫다…. 그럴듯하지만 팩트나 논리를 따져보면 허점투성이 주장들이다. 우선 ①번. 일부 외신과 몇몇 정치인이 칭찬한 것은 한국의 방역 정책 전반이 아니다. 방역이라는 넓은 개념을 ‘바이러스 유입 차단’과 ‘진단-정보 공개 등 관리’로 나눠보면 해외의 평가는 100% 후자에 국한된다. 그런 글들의 핵심은 감염병 사태를 과소평가한 도널드 트럼프와 중국 시진핑 정권의 불투명성에 대한 비판이다. ②번, 즉 이탈리아 등을 보니 환자 폭증은 불가항력이었고 그나마 우리가 훨씬 낫다는 논리도 허점이 많다. 이탈리아는 유로존 채무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중국 자본이 대거 진출해 중국인 근로자를 고용한 의류 섬유 업체가 부지기수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에도 가장 적극적이며 한해 300만 명의 중국인이 찾는다. 사태 초기 중국발 직항편 착륙을 차단했지만 유럽의 특성상 경유항공편, 육로 해상 등 온갖 경로를 통해 인적 왕래가 이뤄진다. 친문세력이 이탈리아를 보라며 큰소리치는 것은 폭우에 창문 닫기를 거부해 피해를 본 1층 집 가장이 침수된 반지하층 옆집과 비교하며 “내 덕분에 피해가 적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탈리아는 방역·의료 시스템에서 우리와 비교가 안 된다. 유럽에서 가장 강경한 ‘의료사회주의’로 인해 의사는 빠져나가고 병원이 줄어들어 1000명당 병상수는 3.18개(한국은 12.27개)에 불과하다. 친여 인사들은 서유럽과 미국에서 환자가 속출하자 그 나라들이 중국을 차단했다는 점을 들어 “역시 입국 차단은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고 주장한다. 교묘한 팩트 장난이다. 중국발 코로나의 해외 확산을 두 단계로 구분해보면 1단계는 중국 내에서 감염된 사람이 해외에서 일으킨 감염이다. ‘중국 전역 창궐 시기+2주’ 정도다. 그 1단계 때 중국 제외 세계 1위 감염국은 단연 한국이었다. 반면 인구 2600만 명의 대만 등 중국을 차단한 대부분 나라는 이 시기를 조용히 보냈다. 지금 진행되는 2단계는 중국에서 온 감염자에 의해 감염된 사람에 의한 확산이다. 주로 이탈리아를 발원지로 해서 서유럽→미국 등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 차단 여부와 인과관계가 적은 2단계 감염 양상을 갖고 1단계 시기의 중국 차단 실효성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서유럽 국가들에서 최근 뒤늦게 감염이 확산되는 것은 생겐조약에 의해 인적 왕래가 열려 있는 이탈리아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초기에 중국인 입국을 차단했지만 중국 방문 미국인은 무대책으로 방치했고. 최근 유럽발 유입 차단도 한발 늦었다. 만약 우리가 1단계 시기, 즉 중국 내에서 감염병이 창궐하던 몇 주간이라도 중국발 입국을 전면 차단했다면 우리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수월하게 위기를 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교육수준에 바탕한 시민의식, 전국민이 순식간에 결집하고 모빌라이즈될 수 있는 역동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인터넷 인프라, 최고의 의료진, 전국 구석구석까지 순식간에 도달되는 행정네트워크,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구축해놓은 방역 시스템 등등 우리에겐 어느 사회보다 감염병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다. ③번, 즉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마스크 구하기가 더 힘들다는걸 보니 우리의 마스크 대란도 정부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주장은 마스크 대부분을 수입하는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는 지난해 기준 하루 300만 장을 만들어낸 마스크 생산대국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국내 확진자가 나오고 37일이 지나서야 수출 금지 조치를 취한 정책미스가 아니었다면 2월 한달간 겪었던 것과 같은 혼란상은 없었을 것이다. 엘리트 경제관료들이 무더기로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마스크를 보면서 국내용 물량 부족을 예상하지 못했을리 없지만, 당시 중국을 향한 청와대 기류를 아는 관가에서 중국행 마스크를 막자는 건의를 할 엄두를 내긴 어려웠을 것이다. 국제사회의 칭찬을 들어 마땅한 것은 신속하고 광범위한 진단과 격리·치료, 앱을 통한 동선관리 등 정보화 시스템이다. 이런 성과는 민주화 이후 자율과 경쟁을 통해 쌓아온 민간 역량의 산물이다. 만약 다른 정권이었다 해서 다르게 했을까. 우리의 민도와 의료 역량으로 보아 만약 초기에 청와대가 전문가의 조언과 표준운영절차(SOP)를 따라 선제적 방어조치를 취했다면 우리도 대만처럼 세이프 모드로 이 위기를 넘기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회경제적 비용도 지금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다. 코로나 감염은 12월초 발생해 1월에 이미 세계가 주목하는 사태가 됐다. 우리 정부가 초기에 모든 촉각을 기울여 역량을 투입했는지 의문이다. 과거 선생님들은 빵점의 0 아래에 작대기 2개를 긋곤 했다. 종이를 돌려놓으면 110점이 된다. 중국 정부가 지금 하고 있는 시진핑 찬양이 그런 식이다. 친문들도 “잘 대응했다” 프레임 만들기에 나섰고 일정 부분 먹혀드는 분위기다. 자화자찬은 자유지만 문제는 앞으로다. 중국에서 2차 확산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등 불길은 꺼지지 않고 있다. 만약 정부가 패착과 실기를 거듭한 초기 대응을 자화자찬하며 “전면적 입국 금지를 않고도 바이러스를 막아냈다. 세계가 평가하고 있다”(문 대통령)는 식의 안이한 생각을 한다면 만약 앞으로 만약 중국발 2차 확산이나 또 다른 전염병 사태가 터질 경우 똑같은 악수(惡手)를 둘 위험이 걱정된다.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과거 참사나 재난이 닥칠 때마다 “이명박 탓” “박근혜 탓”이라며 정권을 흔들어댔던 친문 세력들은 지금 코로나19 사태를 놓고 쏟아지는 문재인 정권 비판을 대하면서 어떤 기분이 들까. ‘아, 매사를 대통령 탓으로 몰아붙이는 건 참으로 비이성적인 행태였구나’라며 반성을 할까, 아니면 ‘그때와 우린 다르다’며 억울해할까. 필자는 사태 초기만 해도 야당이 문 대통령의 책임이라며 공세를 펴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설령 현 집권 세력이 매사를 정권 탓으로 몰아붙인 전력이 있다고 해도, 보수 세력은 그런 악습을 끊고 위기 극복에 힘을 보태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기 바랐다. 그런데 매 변곡점마다 뒷북 대응을 하면서, 온갖 궤변으로 책임을 회피하려 드는 집권세력의 행태는 “정권 탓하는 악습을 없애자”는 주장을 펼 의지를 약화시킨다. 요즘 집권세력은 문 대통령 책임론을 막기 위한 총력 선전전에 돌입한 양상이다. 그들이 주로 동원하는 논리는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된다. 즉 ①중국발 외국인 입국 차단을 안 했다고 비판하는데, 중국에서 오는 한국인을 그냥 놔둔 채 막아봤자 실효성이 없으므로 안 하는게 맞다 ②감염자가 많은 것은 방역정책이 실패해서가 아니라 진단을 신속히 많이 하기 때문이며 이는 오히려 문 대통령의 치적으로 칭송받아 마땅하다 등이다. 집권세력이 총선 때까지 집중 전파할 것으로 보이는 이런 논리들은 맹점이 많다. ①번은방역의 기본을 모르는 주장이다. 미세먼지가 극심한 날, 아무리 창문을 닫아도 공기는 들어온다는 이유로 창문을 다 열어놓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완전 밀폐는 불가능하다 해도 창문을 닫아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맨살로 땅에 넘어지는 것 보다 옷을 입고 넘어지는 게 상처가 덜하지 않은가. 한중 간에 엄청난 인적 교류가 있다는 걸 차단 불가 이유로 들기도 하는데 입국자 차단은 확산 초기 단기간만 단행했으면 되는 일이었다. 중국발 외국인은 차단하고 한국인은 자가 격리 또는 관찰했으면 됐다. 한중 간 인적 교류는 어차피 급격히 줄고, 중국 내 감염도 후베이성을 제외한 베이징 등 대부분 지역은 곧 통제 국면에 접어들어 일시적으로만 차단했으면 됐는데 이제는 다 실기했다. 친문들은 초기엔 확진자가 적다면서 정권의 대응을 칭송하더니 환자 수가 늘어나니 이번엔 진단을 많이 해서라며 “이렇게 투명하게 진단 시스템을 운영하는 우리 대통령”을 칭송한다. 하지만 선진화된 진단·방역능력을 현 정권의 공적인 양 자랑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우리 사회는 메르스 사태 이후 역학조사관제도를 정착시키고, 음압격리병상 수를 늘리고, 응급실에 선별진료소를 만들었다. 격리된 사람들, 문 닫은 의료기관에 예산을 지원하는 제도도 메르스를 계기로 생겼다. 그런 시스템 개선과 민간 전문가들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물이지 이 정부의 공로는 아니다. 마스크 수급, 중국인 유학생 입국, 대구의 병상을 비롯한 의료 인프라 부족 등 그간 심각한 문제가 된 이슈들은 현실화되기 최소 수일 전에서 몇 주 전에 언론이 경고하고 대비를 촉구했던 사안들이다. 그런데 정부는 마이동풍 하다가 실제 현실로 닥치고 나서야 허둥댔다. 물론 여기까지는 무능과 비효율의 영역이다. 이런 걸 다 대통령 탓이라고 비난하는 건 좌파들의 악습을 되풀이하는 행태다. 하지만 만약 정권 핵심부에서 정략적 고려에 의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묵살하는 일이 벌어졌다면 이는 정말로 대통령 책임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우한발 외국인 차단 늑장 결정, 입국 차단 중국 전역으로의 확대 거부 등에 시진핑 방한 등 방역의 본질에서 벗어난 고려가 개입됐다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무능과 게으름 차원을 넘어서서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 건강을 위협한 행위에 해당한다. 의사가 게으르거나 지식이 짧아서 수술을 잘못하는 건 무능의 차원이지만, 치료 이외의 다른 것을 염두에 두는 바람에 수술 방법을 잘못 선택했다면 이는 범죄다. 최고 결정권자의 판단은 본질 이외의 다른 것을 염두에 두면, 즉 사가 끼면 흐려진다. 게다가 최근엔 신천지와의 ‘정의로운 전쟁’으로 이슈를 몰고 가 방역실패 책임론을 덮으려는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독재시대에나 있을 법한 권력의 개입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신천지 강제 수사가 신도들을 숨게 해 방역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며 용기 있게 반대했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몇 시간 후 대검에 강제 수사를 요청하는 뉘앙스의 공문을 보냈다. “윗선 요구”라는 게 관계자 설명인데 국정조사나 검찰 수사로 그 경위가 밝혀져야 할 사안이다. 국민들은 정권의 책임, 신천지의 책임 등을 각각 합리적 비율로 배분해 판단하고 있다. 매사를 정권 탓으로 몰아가는 구태가 사라지고 온 국민이 정부를 응원하며 위기를 헤쳐 가는 사회가 되려면 집권세력부터 더 이상 정략적 의도를 개입시켜선 안 된다. 그런 의지를 보여줄 확실한 방법은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추미애 법무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등의 행태에 문 대통령이 분명한 비판을 가하는 것이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69년 전 2월 경남 거창에서 국군이 양민 719명을 학살했다. 군은 공비토벌 작전이었다고 주장했지만 희생자 중 14세 이하 어린이가 359명, 61세 이상 노인이 74명이었다. 이런 참극을 불러온 시발점은 국군 11사단장 최덕신이 하달한 ‘견벽청야(堅壁淸野)’ 작전 명령이었다. 견벽청야는 삼국지 손자병법 등에 나오는 전술로, 성을 견고히 지키면서 성밖 곡식을 모두 거둬들여 들판을 비우는 전법이다. 공비 토벌에 그럴싸한 전법 같지만 지리산 자락에 숱한 마을이 형성돼 있는 현지 여건에선 실현 불가능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일단 사단장이 내린 지시는 연대, 대대를 거치면서 절대 실행 해야만 하는 과제가 됐고, 압박감에 쫓긴 일선 지휘관은 주민을 집단 사살해 매장하는 극단적 방법으로 들판을 비우는 ‘청야’를 실행했다. 권력자가 조막만 하게 뭉쳐 굴린 눈이 아래에서는 산사태를 낼 수 있다. 1991년 경찰이 쇠파이프로 시위 대학생을 구타해 숨지게 한 것도 한 예다. 노태우 대통령은 ‘물태우’란 소리가 싫었는지 “법집행을 소홀히 하면 엄중문책하고, 법집행 과정에서 소신껏 일하다가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정상참작을 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 한마디가 일선 시위진압 현장에서는 쇠파이프로 커진 것이다. 공권력이 법질서가 흐트러질 만큼 너무 무르지도, 인명피해를 낼만큼 너무 과하지도 않게 대처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세상 일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공권력의 무게중심은 윗선의 한마디에 한쪽으로 쏠리기 일쑤다. 권위주의 정권일수록 일선에서의 ‘오버’ 위험이 커진다. 여당이 최근 다시 ‘조국 논쟁’에 휘말리게 된 것은 “마음에 큰 빚이 있다”며 끝내 조국에 대한 애정을 표출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과 무관치 않다. 대통령이 의도했든 아니든 ‘문빠’들은 조국과 공수처에 부정적이었던 금태섭을 겨냥해 일어섰다. 권력자가 던진 한마디가 광신도 지지자들의 봉기를 부추긴 대표적 사례가 수천만 명의 인명을 앗아간 중국 문화혁명의 홍위병이다. 최근 민주당은 김의겸 정봉주 문석균(문희상 국회의장 아들) 문제 등에서 운동권 출신 전략가들의 조직답게 좌파승리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자기 꼬리를 과감히 잘라냈다. 그런데 문빠들의 극성 앞에선 흔들리고 있다. 대통령이 굴려 보낸 눈 뭉치가 쇳덩이처럼 무겁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요즘 연신 기업 행사를 찾아가지만 투자는 살아나지 않고 기업 해외 탈출은 계속된다. 문 대통령은 기업 투자와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반드시 “포용성장 정책이 성공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공무원들은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굴려 보낸 소득주도성장·친노동·재벌개혁이라는 눈 뭉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이며 기업인을 혼내주고 노동계의 점수를 따는 일에 골몰하고, 기업인들은 계속 움츠러드는 것이다. 사실 대기업을 적폐로 간주하며 손볼 날만 꼽는 좌파 진영의 행태는 참으로 모순 되고 아이로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 집권세력의 명운은 자신들이 손가락질하는 대기업들의 성공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온갖 경제 실정(失政)에도 한국 경제가 근근이 버티는 것은 휴일 아침잠도 못 잘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쟁 속에서 신사업을 기획하고, 새 시장을 뚫으며 이윤을 창출해내는 기업 임직원들의 덕이 크다. 만약 삼성 현대 등이 좌파의 구박에 이젠 지쳤다며 해외시장 경쟁에서 퍼질러 주저앉으면 그러지 않아도 소득주도성장과 세금 퍼주기 정책으로 활력을 잃은 한국 경제는 바로 고꾸라지고 말 것이다. 돈 한 푼 벌어오지 않는 남편이 아내를 구박하고 내쫓으려 하지만 정작 그 가정이 지탱되는 것은 아내가 근근이 삯바느질이라도 해서 온 식구를 건사하는 덕분이라는 그런 줄거리의 옛 드라마들이 생각난다. 권력자들은 눈 뭉치를 굴려 보내면서도 자신은 발을 뺄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는다. 1951년 거창양민학살 사건 재판에서 연대장, 대대장은 무기징역과 10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사단장 최덕신은 직위해제에 그쳤다. 최덕신은 그 후 외무장관 서독대사 등으로 승승장구하다 돌연 월북해 김일성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지내다 1989년 자연사했다. ‘민주당만 빼고’ 칼럼 필자에 대한 공격의 불씨를 댕긴 민주당은 고발을 철회하고 지지자들이 나선 것이나, 대통령 앞에서 “(경기가) 거지같다”고 한 시장 상인이 문빠들에게 시달리자 청와대가 “문 대통령이 그분이 공격받는 것이 안타깝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하면서도 “지지층에 대한 반응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것도 적당히 발을 빼는 모양새다. 권력자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루려고 밀어붙이면, 필연적으로 어딘가에서 탈이 난다. 권력자의 한마디가 일선에선 지상명령이 되고, 한 상(床) 차려 올려 기회를 잡아보려는 이들까지 극성을 부리게 마련이다. 일선에서 과도하게 오버하는 이들이 나오지 않으려면 위를 향해 잘못된 방향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휴대전화 압수 등 압박과 감시, 거침없는 보복성 인사로 관료사회는 청와대가 내려 보낸 눈 뭉치를 무조건 받아 굴리는 조직이 돼 버렸다. 이런 분위기에선 청와대가 굴린 눈 뭉치가 눈사태가 되어 민생을 덮치고, 종국에는 정권까지 덮칠 수 있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중국 우한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의 여파로 감염병을 다룬 영화들이 인기다. 특히 미국 영화 ‘컨테이젼’과 한국 영화 ‘감기’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이용횟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한다. 2013년 개봉된 ‘감기’는 바이러스의 전염력을 긴박감 있게 그려내는데 중후반부터 엉뚱하게 전시작전권이 주요 내용으로 등장한다. 분당신도시에서 치사율 100%의 독감 바이러스가 발병해 정부가 분당을 봉쇄하자, 미군은 전폭기를 대거 출동시켜 아예 분당시민을 폭격하려 한다. 한국 대통령이 반대하지만 ‘전작권이 미군에 있어’ 속수무책이다. 지난해 말 개봉해 관객수 820만 명을 넘은 영화 ‘백두산’에서도 화산 폭발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는 한국 정부의 지휘본부를 미군이 장악한다. 미군은 자신들에게 전작권이 있다며 작전 중단을 명령하고 한국정부는 별다른 저항을 못한다. ‘감기’ 개봉 당시에도 지적한 바 있지만 전작권의 실체를 전혀 모른 채 만들었거나 고의로 왜곡한 내용들이다. 전시작전권은 미군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미 간에는 데프콘(DEFCON·방어준비태세)의 각 단계별로 한미연합사에 배속시킬 부대를 규정한 ‘포스 리스트(Force List)’가 있다. 데프콘 격상은 한미 양국 합의로 정한다. 한국 대통령이 동의 안 하면 지휘권이 넘어갈 수 없는 시스템인 것이다. 연합사령관은 양국 합참의장으로 구성된 군사위원회(MC), 그리고 양국 대통령이 대표하는 ‘국가통수 및 군사지휘기구(NCMA)’의 지휘를 받는다. MC와 NCMA는 모두 한미 양국 간 합의제로 운영된다. 어느 한쪽의 반대가 있으면 연합사령관은 어떤 작전도 할 수 없다. 숱한 여권 인사들이 전작권 조기 환수를 강조하지만 실제로 전작권이 어떤 시스템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는 게 전직 연합사 고위관계자의 분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장성진급식에서도 전작권 환수를 강조했다. 극적 재미를 위해 과장되게 악(惡)을 만들려는 제작진의 의도와 별개로 이런 허구를 정치권력은 교묘히 이용한다. 감기 개봉 당시 지금의 집권세력인 야당 측은 “전작권이 한국 국민들의 생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주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권력은 대중문화에서 형성된 이미지를 통치수단으로 활용한다. 최근 추미애 법무장관이 검사동일체 원칙을 비난하며 검사들에게 사실상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불복종을 부추긴 것도 마찬가지다. 무수한 영화·드라마에서 검사동일체 원칙은 재벌이나 부패한 정치인과 결탁한 검찰 상층부가 정의감 넘치는 일선 검사를 억누르고 사건을 덮어버리는 억압 수단으로 묘사된다. 추 장관은 검사동일체 원칙이 15년 전 법전에서 사라졌다고 강조했다. ‘15년전’ ‘법전’ 같은 구체적 설명까지 곁들인 탓에 뉴스에서 추 장관 발언을 처음 접했을 때는 실제로 검사동일체 원칙이 폐지된 줄 알았다. 그런데 법조인들 설명을 들어보니 사실과 달랐다. 검사동일체 원칙은 법전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폐지되지도 않았다. 검찰청법의 해당 조문 내용이 변화했을 뿐 검사가 상급자의 지휘에 따른다는 본질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검사동일체 원칙은 개별 검사의 소추권 남용을 막고 균형 잡힌 검찰권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며, 검찰은 통일적인 법집행을 위해 지휘감독 준수가 필요한 조직이다. 이는 다른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추 장관은 또 감찰권을 들먹이며 “(검찰이) 실감 있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아닌 것 같다”고 했는데, 독재정권 시절에도 그런 협박조의 표현은 쓰지 않았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검찰의 준사법기관적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실토한 셈이다. 추 장관의 억지 논리는 연일 이어진다. 국회에의 공소장 제출 거부 이유로 ‘인권 침해’를 들었는데, 5선 의원 출신인 그가 과거 법무부의 공소장 제출을 비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당 대표 시절 공소장 내용을 토대로 박근혜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는 데 앞장섰다. 적폐청산 수사 등의 공소장 내용을 거의 실시간으로 좌파 언론에 흘린 것도 주로 추 대표 시절 민주당이었다. 조국 장관 취임 직후 법무부가 소환을 비공개로 하겠다고 했고, 첫 적용 케이스로 조국 부인은 지하주차장을 통해 몰래 검찰에 다녀갔다. 그런데 다른 이들은 그런 인권 보호 혜택을 제대로 못 받고 있다. 예를 들어 4일 검찰에 소환된 옛 삼성미래전략실장처럼 ‘우리 편’이 아닌 인사들은 여전히 그대로 노출된다. 이런 일련의 행태는 잣대의 이중성, 내로남불 차원을 이미 넘어섰다. 권력을 가졌으니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하겠다는 오만이다. 공화제는 권력의 상호견제를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집권세력은 이를 존중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 하다. 요즘 추 장관과 국회 지도부의 행태는 ‘청와대 과천분소’ ‘청와대 여의도지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공동체가 지켜온 룰이나 시민과의 보이지 않는 계약 같은 건 안중에 없다. 오로지 상왕(上王) 같은 존재인 친문 핵심만 의식할 뿐이다. 권력의 분산과 견제, 공화제 같은 민주주의 가치를 체화하지 못한 인사들은 좌파건 우파건 독재 행태를 띤다. 그런 권위주의 세력이 주로 의존하는 수단은 교묘히 사실처럼 포장한 거짓 이미지와 선동이다. 87년 민주항쟁으로 군부독재를 축출한 지 30년이 넘게 흘렀건만 권력에 취해 오만해진 참주(僭主)정치 행태가 계속되고 있으니, 민주주의는 참으로 어려운 목표인 것 같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6·25 전쟁 발발 직후 북한 평양방송은 “남조선이 북침했기 때문에 자위 조치로 반격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인민군이 점령한 서울에 내려온 박헌영 등은 민족주의 인사들을 불러 선무공작을 요구한다. 하지만 동족을 상대로 일으킨 전쟁을 지지할 수 없다며 거부하자 박헌영 등은 “전쟁을 일으킨 건 이승만”이라고 주장한다. 바로 며칠 전 3·8선 전역에 걸친 인민군의 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된 것을 수많은 사람이 목격했는데도 뻔뻔하게 북침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박헌영도 그런 거짓말이 통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 아주 오랫동안 6·25 북침설은 심대한 위력을 발휘했다. 좌파 학자들은 교묘히 취사선택한 팩트들을 엮어 북침설, 남침유도설, 국지충돌확전설 등을 전파했고, 1980년대 한국 대학가에서 수많은 학생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북한정권, 특히 동족상잔을 일으킨 원흉으로 규정됐던 김일성을 보는 시각에 근본적 수정을 가능하게 했고, 그 결과 김일성을 우상시하는 수많은 주사파가 생겨날 수 있는 토양이 됐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진 일의 본질을 정반대로 색칠하는 선전술. 흑과 백을 뒤바꿔놓는 논리, 역사를 입맛대로 윤색하는 좌파 이론가들의 책략은 교묘하고 집요하다. 명백한 사실을 정반대로 선전하고, 비판에는 귀를 닫는다. 그러면서 회색의 논리들을 무수히 퍼뜨려 진실을 흐릿하게 만들어 버린다.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1·8인사에 이어 어제 검찰 중간간부 인사로 현 정권을 겨냥한 수사팀들을 사실상 공중분해시켰다. 하지만 정권의 언어로는 최고의 공정성을 지닌, 직제개편에 따른 공정한 인사라고 한다. 권력 핵심실세를 겨냥한 수사가 진행되는데, 만약 떳떳하다면 더 마음껏 수사해보라고 일부러라도 인사를 늦추면서 보장해주는 게 상식적 대응이다. 그런데 그 어떤 비난도 아랑곳없이, 그 어떤 명분이나 논리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노골적으로 수사간부들을 좌천시킨다. 필수 보직기간 1년을 규정한 인사규칙을 넘어서기 위해 직제개편까지 동원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 시기는 빨라도 7월 이후인 데다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사라지기 때문에 형사부를 급히 늘려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직제개편이 발등의 불인 것처럼 서둘렀다. 정년퇴임한 한 전직 고위 관료는 “수십 년 공직생활 내내 한번도 듣도 보도 못 하던 일들이 요즘 벌어진다”며 “하다못해 군사정부 때도 직제개편을 하려면 이해당사자 그룹 의견도 듣고 공청회도 하고 그랬다”고 말했다. 사적(私的)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일을 벌이면서도 개혁이라고 강변한다. 그들은 안다. 아무리 궤변과 억지라도 지지층에겐 스스로를 옹호하고 무장할 논리를 제공해주고, 결국은 진실을 회색으로 덮어버리는 효과가 생길 것임을. 실제로 청와대와 여당 인사들이 온갖 스피커를 동원해 흑백 바꾸기 논리를 펴면 곧 유시민 등이 나설 것이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수많은 기사가 유포될 것이다. 채널을 두세 번만 바꿔가며 퍼뜨리면 반신반의하던 이들도 따라오고, 확신편향에 빠진 지지자들이 여론을 형성해줄 것이다. 최근 ‘4+1’을 통한 법안 강행에서 검찰 인사까지, 일련의 독주 과정에서 집권세력이 주로 동원하는 논리는 ‘법대로’다. 그런데 법대로를 내세우면 불리할 것 같을 때는 법보다 국민여론, 정의가 우선이라며 집단의 힘에 의지한다. 누군가를 법이 정한 임기 때문에 쫓아내기 어렵게 되면 집 앞까지 찾아가 시위를 벌여 ‘정의를 구현’한다. 자기편이 다수결로 밀어붙일 때는 “법대로”를 외치다가 검찰이 법원 영장을 들고 오면 논리를 싹 바꿔 거부한다. 실정법과 국민정서법, 두 대립되는 것 가운데 언제든 편리한 걸 골라 쓴다. 그러면서도 전혀 부끄러움을 안 느낀다. 구시대적 선악 세계관으로 무장해 있기 때문이다. 추미애 장관은 김대중 정권 시절 언론사 기자를 향해 “사주의 지시로 글을 썼느냐. 사주 같은 놈”이라고 욕설을 했다. 자신들을 향해 제기되는 비판에는 무조건 비도덕적 동기가 숨어있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독선적인 사고방식이다. 외형적 합법과 선전술을 양대 무기로 삼은 정권의 폭주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가를 보여준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퇴행 조짐이 나타나고, 여러 나라에서 ‘선출된 포퓰리즘 독재자들’이 유사(類似) 전체주의 통치를 하고 있지만 미국 같은 선진국은 의회 사법부 싱크탱크 등 국가의 인스티튜션들이 권력자의 폭주를 견제해준다. 그러나 한국은 거의 일방 독주다. 행정부는 물론 입법 사법부도 정권에 충성을 바치는 이들이 길목을 차지했다.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행동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뺨칠 수준인데 죄책감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른다. 수오지심의 실종이다. 성현들은 수오지심이 없는 사람은 교화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4·15총선이 그래서 더더욱 중요하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우리는 1987년 민주항쟁 이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정권을 겪고 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어느 정권도 요즘 문재인 정부처럼 자신들이 원하는 걸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진 않았다. 이를 과감한 개혁추진이라 부를지, 폭주·독재라 부를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제 검찰 인사를 통해 문 대통령은 밀어붙이기의 신기록을 경신했다. 온 국민이 주목하고 있는데도, 설마 했던 일들을 과감히 해낸다. 그 심리에 대한 정치학자들의 해석은 둘로 갈렸다. 하나는 혁명을 수행하고 있다는 착각의 발로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두려움의 발로, 즉 이렇게라도 해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의 발로라는 해석이다. 문 대통령이 자신을 ‘혁명 대통령’이라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그제 문화예술인 신년인사회에서도 “지금 전 세계가 극우주의나 포퓰리즘의 부상 때문에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는데 우리는 촛불혁명으로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전 세계가 경탄하고 있다”고 했다. 요즘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게 바로 문재인 정부가 극단주의와 포퓰리즘으로 흘러간다는 우려인데, 대통령은 정반대로 현실을 보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켰다고 자주 강조하지만 오히려 ‘4+1’을 통한 선거법과 공수처법 강행 등 의정 농단, 그리고 이번 검찰 인사에 이르기까지 집권세력의 행태야말로 심각하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훼손시키고 있다. 만약 문 대통령이 혁명을 완수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젖어있다면, 사법개혁 적임자(조국)를 쫓아낸 검찰을 반(反)개혁, 수구적폐의 잔재로 여겼을 테고, 따라서 ‘윤석열 사단’ 해체는 반드시 필요한 역사적 결단이라고 자평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기득권 세력이 된지 오래면서 ‘주류세력 교체’를 외치는 시대착오적 여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인사들도 특수수사·공안 등 검찰 내 기득권 세력을 물갈이한 인사라고 정당화하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집권세력 내 운동권 출신 참모들은 변혁운동의 관점에서 주류세력 교체, 구(舊)질서 해체가 중요하지 그 과정에서 짓밟히는 숙의민주주의의 가치는 염두에도 없을 것이다. 또 하나의 관점은 두려움의 발로라는 해석이다. 즉, 권력을 빼앗기면 비참한 말로를 맞게 된다는 콤플렉스 때문에 정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선거법을, 빼앗겨도 안전할 장치로 공수처를, 그리고 지금 당장 목을 겨누는 수사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검찰 인사라는 칼을 휘둘렀다는 해석이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과 유재수 감찰 무마의 진실은 청와대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과 정권 실세들이 정말 무관하다면 그런 떳떳함을 공명정대하게 입증받기 위해서라도 검찰 수사를 격려했어야 정상이다. 수사팀을 무력화시키는 인사는 뭔가가 있으니 저런다는 의혹만 증폭시킬 뿐이다. 만에 하나 그런 의혹 사건들에 대통령이나 실세들이 조금이라도 개입돼 있다면 이번 검찰 인사는 수사 방해에 해당해 훗날 엄청난 후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집권세력은 항상 ‘합법’을 들먹인다. 합법적 인사권, 합법적 의사진행, 다수결 등등…. 법에 적시된 내용을 지켰다는 것인데, 법은 그 조항 자체가 전부가 아니다. 그 조항이 만들어진 취지와 그것에 반영된 선례 관습 경험을 모두 존중해야 한다. 취지와 선례 관습 경험을 짓밟은 채 활자화된 내용 자체만 지키는 건 형식적 합법을 빙자한 실질적 독재다. 쿠데타로 집권한 5공 세력조차도 일단 군복을 벗은 뒤에는 형식적 법절차를 밟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전두환 정권 7년을 민주주의·법치주의였다고 평가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나마 요즘엔 그런 법적 요건과 절차마저도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분위기다. 위헌소송이 걸려도 헌재나 대법원에 내 편을 다수 포진시키면 되고, ‘가진 자 대(對) 덜 가진 자’ 프레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떠나지 않을 노조·좌파단체 등 콘크리트 지지층과 강력한 지역 기반이 집권세력의 자만심을 키워주고 있다. 중도층은 어차피 자유한국당으로 가지 않고 떠돌 테고 선거에 임박해 선심 복지와 남북평화 이벤트 등으로 다시 붙잡을 수 있으며, 여론 선동력과 이벤트 기획 연출력도 최고 수준이라고 자신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베네수엘라가 아니다. 조국 사태 때 보여줬듯 한국의 중도층은 결코 맹목적이지 않다. 권력의 뻔뻔함이 도를 넘으면 그 어떤 당의정(糖衣錠)으로도 그 역겨운 냄새를 감출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조국 임명 강행에 이어 이번에 또다시 좌파 진영의 가치 토대를 약화시키는 악수(惡手)를 뒀다. 당장은 조국 아들 입시 비리를 ‘관행’이라고 옹호하는 민주당 영입 인재가 상징하듯 ‘집단적 확증편향’ 분위기 속에서 찬가가 울려 퍼지겠지만, 장기집권을 꾀하는 좌파 전략가들은 한숨을 내쉬고 있을 것이다. 훗날 운동권 내부에서는 문 대통령이 진보 진영 전체가 아니라 정권 핵심 몇몇을 살리려다 무리수를 뒀다는 준열한 내부 비판이 나올 것이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가정해 본다. 지금 대통령이 이명박 또는 박근혜인데, 여당이 범여권의 안정적 과반수를 보장하는 선거법 개정을 강행처리한 상황을…. 이·박 대통령이 자신의 핵심 지지단체 출신들로 책임자와 검사를 뽑을 수 있으며, 검찰 경찰 등 다른 사정기관이 정권 핵심과 관련된 사안을 인지해 파헤치려 할 경우 이를 사전에 보고하도록 하고, 사안 자체를 다 이첩하라고 언제든 명령할 수 있는, 그런 막강한 대통령 보위기관 창설을 강행하는 상황을…. 가정해본다. 청와대 실세들이 이·박 대통령과 친한 인사의 시장 당선을 위해 경쟁 후보 탈락 공작을 벌였다는 의혹이 불거진 상황을…. 대통령과의 인연을 등에 업고 경제부처 제왕 행세를 하던 고위공무원이 비리를 저지르다가 발각됐는데 청와대 실세들이 이를 덮어준 상황을…. 짐작하건대 이·박 정권에서 이런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면 수백 개 단체들이 범국민 투쟁본부를 조직해 연일 광화문광장을 메웠을 것이다. 또 상상해본다. 만약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다른 정권이 지금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대통령의 최종 결정은 어땠을까. 장담하건대 아무리 고집 센 대통령이라도 더 이상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진 않았을 것이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든 통치자는 민중 궐기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다. ‘차우셰스쿠 공포’라 불러도 좋다. 그래서 여론이 강하게 반대하고 거리를 시위대가 메우면 움찔하며 멈춰서기 마련이다. 그런데 노조를 비롯한 확고한 좌파 조직기반을 갖고 있는 권력자는 조금 다르다. 문재인 정권은 지지층만 확실하게 결집시켜 놓으면 아무리 반대가 거세도 돌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자신감은 보수층은 민중궐기 방식으로 조직화되기 어려우며, 만약 위기에 처하면 좌파정권에서 창출되는 숱한 이권을 누려온 좌파네트워크 종사자들이 나서서 맞불을 놓아줄 것이란 확신에서 나온다. 날치기 강행처리, 4+1 등등 온갖 변칙적 방법을 동원하면서도 ‘대의를 위해서는 절차나 과정의 하자는 불가피하다’는 운동권적 사고방식 덕분에 가책도 안 느낀다. 선명한 마이웨이가 총선, 대선에서 이기는 길이라는 확신 뒤에는 ‘가진 자 대(對) 덜 가진 자’의 대립 프레임이라는 막강한 무기가 있다. 계층 간 대립이 심할수록 노동자·서민 표방 정당이 유리하다. 실제론 그런 정책이 덜 가진 자를 더 덜 갖게 만드는 부작용을 빚을 수 있다 해도 선거에선 유리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런 대립 프레임을 확산시키는 데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아무리 실책을 거듭해도 40%가 훨씬 넘는 지지율이 나오는 것도 그 영향이 크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정략적 계산을 한다면 그 순간 이미 국가를 이끌고 갈 자격을 상실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지지세력만 바라보는 통치에는 국가는 염두에 없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지지세력을 거슬러 정치적으로 손해를 보면서도 국익을 위해 필요한 것은 했다. 심지어 공포정치를 폈던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도 1985년 학원안정법을 강행하려다 반대가 거세지자 거둬들였다. 최고 권력자가 한발 물러서는 것은 공동체의 분열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다수로 밀어붙이는 것을 자제하는 이유는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뭐든 밀어붙이면 된다는 그릇된 자신감은 욕심을 키워 개혁을 변질시킨다. 괴물이 된 공수처법이 좋은 예다. 공수처는 장단점이 있는데 설립에 찬성한다면 이는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 견제와 권력층 부패 청산을 위해서다. 그런 목적에 충실한 공수처를 만들면 되는데, 공수처를 대통령의 홍위병 조직처럼 변질시킬 수 있는 내용들을 굳이 고집한다. 공수처장 인선에서 대통령의 영향력을 철저히 배제하고, 인적 구성과 활동의 중립성 독립성을 보장해도 공수처 설립 목적 달성에는 아무 지장이 없을 텐데, 정권의 충견처럼 사용하겠다는 욕심이 발동해 개혁의 본뜻 자체를 훼손시켰다. 모든 걸 마음대로 밀어붙일 수 있다고 과신하는 대표적 인물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런 트럼프가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인 것은 그에겐 참으로 행운이다. 만약 그처럼 충동적이고 독선적인 인물이 견제 시스템이 부실한 절대권력 국가의 통치자였다면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백악관의 노골적인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줄줄이 탄핵 청문회의 증언대에 서서 대통령을 고발하는 공직자들이 있기에 트럼프의 독주는 극단으로 치닫지 않은 채 자제되고, 결과적으로 정권의 ‘폭망’이 예방되는 것이다. 문 대통령도 조국 일가의 문제와 청와대 실세들을 파헤치는 검찰과 언론의 역할에 훗날 감사해야 할 것이다. 현재 드러난 정권 실세들의 행태가 만약 아무런 브레이크 없이 정권 후반기까지 이어졌다면, 줄줄이 감옥으로 갈 대형 비리와 적폐들을 무수히 빚었을 것이다. 더 이상 일방적으로 폭주하지 말라고, 그러다가 정권이 비극을 맞을 수 있다고 검찰과 언론이 경고음을 울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국가는 수많은 기둥이 떠받친다. 행정 입법 사법부 자체는 물론이고 그 조직 내 간부 한명 한명이 모두 국가의 기둥이며 기관, 즉 인스티튜션(institution)이다. 그런 각각의 기관이 주어진 본분을 포기하면 국가는 흔들린다. 그런 위기 징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 현장이 10일 밤 국회였다. 국가의 핵심 기관 중의 한 명인 국회의장이 정파의 행동대장을 자임했다. 올 10월 “3분의 2를 어느 당에 몰아줬으면 한다” “검찰개혁을 할 사람을 뽑아야 한다” 등등 중립성을 의심케 하는 발언들로 징후를 보이더니 이번에는 화장실 간다며 의사봉을 넘기는 등 아예 내놓고 나섰다. ‘4+1’이라는 변칙적 모임을 통해 예산안을 강행 처리한 것도 어이없지만 그 혼란 와중에 집권당 대표를 포함한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챙기기는 제3세계 폭동 현장에서 상점 TV를 들고 나오는 이들의 흥분된 얼굴을 떠오르게 한다. 자유한국당이 어깃장을 놓아 할 수 없이 4+1 모임을 했다고 강변하는데, 설령 그랬어도 예산안 논의 속기록은 남겼어야 하지 않는가. 한국당이 속기록 남기는 것도 방해했단 말인가. 정의당을 비롯한 군소정당들도 분명 헌법기관인데 정치적 반대급부를 얻기 위해 집권당 들러리를 자임하는 행태는 ‘정의’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더 한심스러운 모습은 한국당의 김재원 국회 예결위원장이다. 현장에선 “세금 도둑”이라고 고함치더니 실제론 지역구 실리는 다 챙겼다. 상점 약탈을 막겠다고 나선 자경대장이 가장 큰 TV를 들고 나온 셈이다. 김 위원장의 그런 행태를 묵인한 채로는 황교안 대표가 아무리 농성을 하고 새 원내대표가 혁신을 외친들 감동이 없을 것이다. 가장 걱정스러운 대목은 정권이 원하는 대로 슈퍼 팽창 예산을 안겨주는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 관료들이다. 역대 경제 관료들은 재정건전성을 신앙처럼 여겼다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올 5월 “국가채무비율 40%의 근거가 뭐냐”고 되물은 이래 경제 관료들의 사전에서 재정건전성은 사라져버렸다. 군사정권 시절 국방비를 깎은 예산실장에게 권총을 들이대도 버텼다는 일화 등은 전설로만 남게 됐다. 국방부 통일부 등에 이어 경제 관료들마저 국가의 기둥으로서 본분을 포기해버린 것이다. 물론 장관, 국장도 생활인이고 직장인이다. 자리 보전과 다음 인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자리들은 한명 한명이 국가의 인스티튜션이고 마지막 보루다. 그런 국가의 기둥들이 어쩌다 본분을 포기한채 정권의 시녀처럼 돼버린 것일까. 답을 풀 실마리를 유재수 감찰 무마와 울산시장 하명 수사 의혹 사건에서 찾을 수 있다. 두 사건은 이 정권 실세들의 특질을 보여준다. 영화 ‘친구’를 떠올리면 된다. 즉 의리와 보복이다. 유재수와 송철호에 대한 ‘배려’는 이 정권 출범 후 노골적인 캠코더 인사들에서 돋보였던 ‘의리’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10월 조국 법무부 장관이 사퇴했을 때 여권 핵심에서는 그 후에도 한동안 윤석열을 사퇴시켜야 한다는 주장들이 계속 나왔었다. 당시엔 감정적 복수 차원으로 보는 해석이 많았지만 실제론 검찰이 유재수와 울산시장 사건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을 어떻게하든 막아보려는 절박한 움직임이었을 수 있다. 요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검찰에 대한 특검론까지 들고나올 만큼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에서 보스를 보호하려는 2인자가 연상된다는 반응이 많다. 정상적 조직이 조폭류와 다른 점은 윗선의 지시가 절차와 명분, 법률에 어긋나면 각 이행단계에서 브레이크가 걸린다는 점이다. 그런데 지금 이 정부와 주요 기관들에서 그런 게 실종된 이유는 바로 노골적인 보복의 영향이다. 조국 사태 당시 동양대 총장이 조 후보 측에 불리한 발언을 했을 때 시중에선 농담 비슷하게 저러다 찍히겠다는 얘기를 했다. 하지만 이 정부 교육부처럼 설마 바로 그 직후 중인환시리에 대규모로 치고 들어갈 거라고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현 정부를 수사했던 검사들에 대한 불이익, 김경수 사건 재판장에 대한 온갖 압박, 현 정권에 불리한 자료가 유출될 때마다 자행된 색출 작업…. 과거 독재정권들은 정당성이 취약하다는 콤플렉스 때문인지 보복을 할 때 감추는 시늉이라도 했다. 하지만 이 정권은 거리낌이 없다. 공식 응징이 어려우면 친문이라는 다중이 인터넷을 무기로 나선다. 10일 전해 들은 요즘 중앙부처 분위기다. “고위 공무원들 사이에 조금이라도 밉보이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두려움이 팽배하다. 핸드폰 임의제출 공포 때문에 서로 문자도 잘 안 보낸다. 시키면 군말 없이 하되 누가 뭘 시켰는지 일일이 다 기록해 놓는다. 이런 분위기에서 국가를 위해 직을 걸고 새로운 정책을 입안하고 관철하려고 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 정권 실세들이 두루 등장하는 텔레그램 내용 등은 그들에겐 선악의 판단 기준이 법과 양심이 아니라 피아 구분이었음을 보여준다. 목적 달성만이 중요할 뿐 과정 같은 것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충성과 의리로 뭉친 그들이 2년 반 동안 ‘개혁 비협조자들’을 응징하고 ‘적폐’에 대해 가차없는 보복의 칼날을 휘두르는 동안, 대한민국의 기적을 만들어 온 국가의 기둥들이 속절없이 안에서부터 무너져 온 것이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이제 부산에서부터 육로로 대륙을 가로지르는 일이 남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한-아세안 정상회의 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신남방정책에 이어 북방정책에의 의지를 담은 것이다. 육로로 북한 중국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향한다는 비전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모든 지도자가 품었던 꿈이다. 꿈이 몽상에 그치지 않으려면 그 비전이 외교 정책에 대한 냉철한 평가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임기반환점을 맞아 19일 가진 국민과의 대화에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국정 분야로 ‘남북관계’를 꼽았다. 하지만 냉정히 평가하면 남북관계는 매우 저조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대 이벤트는 많았고 남측이 온갖 양보를 했으나 대화와 교류는 막힌 상태다. 남북관계는 떼쓰는 불량청소년과 달래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대는 어른의 관계처럼 흘러왔다. 특히 도를 넘어선 대북 저자세는 안보 분야로까지 전염됐다. “우리가 강한 것은 최강의 무기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전문가이기 때문”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부당한 간섭에 반기를 든 미 해군장관의 결기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우리 군이 통일부가 남발해온 북한 옹호 궤변 대열에는 동참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 바람 역시 무너졌다. 문 대통령은 “불과 2년 전인 2017년만 해도 한반도는 자칫하면 전쟁이 터지지 않을까하는 위험지대였다”며 “그러나 지금은 전쟁의 위험은 제거되고 대화 국면에 들어섰다. 남북관계는 제가 굉장히 보람을 많이 느끼는 분야”라고 말했다. 물론 2017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 때와 비교하면 긴장이 완화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그해 하반기 구축된 강력한 유엔 대북 제재, 그리고 북한이 핵과 ICBM 개발 완성단계로 접어들며 추가 실험 없이 협상 모드로 전환한 데 따른 것이다. 2018년 1월1일 김정은 신년사 이후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대화국면에서 문 대통령의 역할이 컸지만, 만약 다른 정권이었다 해도 대화 국면이 열렸을 것이다. 어쨌든 비핵화와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기대가 이렇게 어그러진 단초는 작년 6·12 싱가포르 북-미 회담이었다. 문 대통령은 회담 직후 “6·12 센토사 합의는 세계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극찬했지만, 당시 합의가 형편없는 수준이었음을 이제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내용 대부분이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수준이었다. 당시 트럼프는 한반도 문제, 비핵화 문제에 대해 초보적 지식도 없는 상태였다. 원샷에 해결지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덥석 정상회담을 잡아놓고 보니,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적대시 정책’의 폐기, 주한미군 핵우산 평화협정 등 동북아 안보체제 전체에 칡뿌리처럼 맞물린 복잡한 것임을 뒤늦게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전기 작가에게 김정은과의 회담에 대해 “어마어마하게 성공적인 회담이었다”며 “오바마가 그 정상회담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면 노벨상을 5개는 탔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아마도 나는 외교 대통령으로 알려질 것”이라고도 자평했다니, 이 정도면 진짜 과대망상에 빠져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트럼프는 또 “내가 아니었다면 전쟁이 나서 1억 명이 죽었을 것”이라고도 했다는데, 자신이 전쟁위기를 만든 장본인이었음을 감안하면 참으로 뻔뻔한 논리다. ‘전쟁 대(對) 평화’ 프레임이 과장되게 설정돼 실패한 외교결과물 마저 성공으로 분칠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북핵 실적이 이처럼 저조한 것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 과대평가, 비핵화로 견인할 당근과 채찍 전략의 부재, 그 바탕이 되어야 할 한미동맹 약화 등이 원인인데 문재인 정부는 정반대로 처방하고 있다. 한미동맹도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는 주한미군 분담금 50억 달러라는 억지를 쓰고, 친문 진영에선 미군 지상군 철수론이 공공연히 나오는 게 현주소다. 그나마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연기는 문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잘 내린 용단 중 하나로 평가될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내 뜻대로 한다는 마이웨이 고집을 꺾은 첫 사례라 할만 하다.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이 “승리를 거뒀다”고 자랑하든 말든 일일이 반응할 가치조차 없다. 아베 정권이 그럴수록 국제사회에서 용렬함만 두드러져 보일 뿐이다. 외교를 국내 정치용으로 이용하는데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가 아베 총리다. 이렇게 한미일 세 나라 모두 지도자가 각자 자신의 외교실적을 자화자찬하면서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성향을 보이고 있고, 그 결과 3자가 서로 부딪치고 있다. 외교는 상대가 있는 게임인데 각자 자신이 세팅하는 것을 최선이라고 여기고 상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정책의 일관성을 순식간에 깨기 일쑤다. 외교 안보는 국가이익(내셔널 인터레스트)을 수호하고 이익균형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 책임자들이 생각하는 내셔널이 특정 정부인지, 영원한 국가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국제질서는 민주화·자유무역의 확산 시대를 거쳐 2000년대 들어 경쟁적으로 자유화 쪽으로 가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엔 공정무역질서 확보를 명분으로 내건 패권 무역이 본격화하고 있다. 전후 한국의 지속적인 안정적 성장이 가능했던 국제환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국제질서가 펼쳐지고 있다. 이런 격변기에 외교안보 실적을 셀프 과대평가했다가는 임기 후반기마저 훗날 후회할 시간들로 채우게 될 위험이 크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지소미아는 한일(韓日)이 풀어야 할 문제로 한미동맹과 전혀 관계없다”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발언은 정부 외교안보팀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왜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 진퇴양난의 수렁에 빠졌는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한마디다. 정 실장의 발언은 좌파진영의 논리와 맥을 같이 한다. 그 논리는 대체로 두 개로 구성된다. 즉, <① 지소미아는 한일 간 문제이고 주로 일본이 혜택을 본다. 우리에게 보복을 한 일본에게 더 이상 선물을 줘선 안된다 ②지소미아는 2016년 체결됐는데, 지소미아가 없을때도 우리 안보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그러므로 꼭 필요한 게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무지에서 비롯된 피상적 논리다. ①번부터 살펴보자. 물론 문법적으로만 따지면 한일 지소미아는 한일 간 약속이다. 하지만 미국이 나서서 동북아 지소미아 체제가 완성한 뒤 한미일 안보 협력의 상징이 됐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연결고리가 됐다. 한국이 일본과 다투다가 지소미아를 꺼내든 순간 한미 간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국이 지소미아 폐기를 꺼낸 것은 미국을 자극해서 우리 측 역성을 들게 하겠다는 의도도 있었을 텐데, 동맹외교를 전혀 모르는 아마추어들의 오판이었다. 워싱턴 소식통은 어제 통화에서 “미국에서는 한국의 태도에 대해 ‘미국의 이익을 위협하는 도발을 통해 미국이 반응하게 만드는 북한의 브링크맨십(벼랑끝 전술)을 떠올리게 한다’는 반응이 있다”고 전했다. 체결 전에도 안보에 별문제가 없었으므로 지소미아는 없어도 된다는 ②번 논리도 말장난이다. 한일 지소미아는 한국이 1989년 일본에 첫 제안했지만 진전이 없다가 2000년대 중반 북한 핵실험 여파로 일본이 한국에 제안해 2012년 국무회의에서 의결됐고, 절차문제로 체결이 보류되었다가 2016년 11월 정식 체결됐다. 즉 북핵·미사일 실험이 본격화되고 동해상 발사가 다반사로 벌어지면서 정보 교류 필요성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커져온 것이다. 물론 지소미아를 통해 한일 간에 오가는 군사 정보가 국가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그런 수준은 아니다. 지소미아가 없다고 해서 당장 큰 장애가 생기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는 일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일본에 카운터펀치로 지소미아 폐기를 꺼냈으나 상대에게 주는 타격은 별게 없고, 괜히 한미동맹을 때려버린 셈이다. 워싱턴 소식통은 “지소미아가 이대로 폐기되면 미국의 한국에 대한 신뢰와 커미트먼트(commitment·약속, 헌신)가 약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방위비, 무역협상 등 여러 전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구나 지금 한반도의 명운이 달린 북핵 문제는 미국의 경제적 이익과 재선에만 골몰하는 트럼프 혼자 주무르고 있고, 북한은 한국을 상대도 안 한다. 미국과의 신뢰마저 깨지면 우리 이익을 설득할 통로마저 사라진다. 아무리 좌파진영이 지지기반인 정권이라 해도 한미동맹을 악화시킨 채 정상적으로 나라를 끌고 가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일부 좌파인사들은 한미동맹이 약해진다 해서 실제로 피해를 볼게 뭐 있느냐, 전쟁이 나겠느냐는 주장도 한다. 매우 단선적인 생각이다. 한미동맹이 흔들리고 주한미군 철수 운운하는 소리만 나와도 한국 내 외국자본이 빠져나가고 투자를 기피하고, 관세 등 무역관계는 더 빡빡해진다. 안보동맹은 국민의 일상과 경제 안정성을 담보하는, 당장 먹고 사는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폐기결정을 번복하기도 어렵게 되어버렸다. 일본이 아무 성의 표시도 안 하는 상태에서 아베에게 완승을 안겨주는 모양새가 된다. 이러기도 저러기도 힘든, 문대통령으로선 어떤 선택을 하든 후폭풍이 불가피한 처지인 것이다. 탈출구가 없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일정 기간을 정해 한국은 지소미아를 임시 연장하고 일본은 수출통제 조치를 임시 중단하되, 일정 기간 내에 타협을 이루지 못하면 지소미아 폐기와 수출통제로 원상복귀(스냅백)한다는 조건을 붙이는 것이다. 하지만 남은 시간과 일본의 태도로 보아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8월 22일 의기양양하게 지소미아 폐기를 결정할 당시 결정 참여자들 가운데 이런 진퇴양난을 예상한 이가 있었을까. 국가안보실 정의용 실장, 김현종 2차장은 통상 전문가 출신이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역시 주특기가 안보외교는 아니다. 정권 핵심부의 기조에 영합하려는 성향이 강한데다 안보 문제는 문외한들로 구성된 외교안보팀, 동맹의 개념조차 모르는 386 참모, 대일 강경책이 지지율에 미칠 효과만 계산하는 여당 지도부 등의 합작품으로 지소미아 폐기가 결정됐다. 그들은 이처럼 거센 미국의 반발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무역협정은 맺었다가 폐지하고 또 만들고, 손익에 따라 언제든 밀고 당길 수 있지만 안보는 다르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특히 목숨을 걸고 함께 싸워주겠다는 약속인 동맹은 깊은 신뢰와 가치 공유 없이는 지탱할 수 없다는 걸 간과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조국 사태에 이어 또다시 외통수 상황에 처했다. 통치자가 어느 쪽을 선택해도 실점을 할 수밖에 없는 곤궁한 상황에 처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인데, 불과 수개월 사이에 패착을 연거푸 뒀다는 것은 의사결정 과정의 문제를 시사한다. 논의 참여자들 전체가 동일한 가치관으로 일렬종대 한 채, 합리성과 전문성이 아니라 미리 정해놓은 이념적 잣대를 유일한 기준으로 삼다 보니 그런 외통수 패착이 거듭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냉동 컨테이너 트럭에 숨어 영국으로 밀입국하려던 베트남인 등 39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먼 나라 일이지만 가슴이 먹먹해지는 뉴스다. 인간의 삶과 국가, 정치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어느 나라에 태어나느냐만큼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게 또 있을까. 제3세계에 태어나 가난을 벗어나려다 허망하게 죽어간 생명들도 모두 한 번뿐인 생명이었다. 국가가 가난해지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국민 개개인의 삶은 태풍에 부서지는 조각배 신세가 된다. 특히 전쟁 학살 기아 같은 국가적 재난이 닥칠 때 어린이 여성 등 사회의 약한 고리가 가장 큰 피해를 당한다. 긴 안목으로 보면 역사의 물줄기는 정의와 대의(大義)를 향해 진보한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수많은 역류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 역류의 시간, 불의(不義)의 기간은 역사의 관점에선 단기(短期)일지 몰라도 그 시대를 사는 이에겐 삶 전체를 지배하는 시간이다. 수많은 개인들이 역류에 휘말려 어이없이 생을 망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역류는 필연일까. 그렇지 않다. 근현대사는 대부분의 역류가 지도자와 정치인들의 탐욕이나 오판, 독선, 무능의 결과로 발생함을 숱하게 보여줘 왔다. 지도자가 달랐다면 피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었을 역사의 비극은 무수히 많다. 그런데 독선적 이념이나 권력욕에 사로잡혀 국민을 파멸의 길로 내몬 정치인들도 대부분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지난달 27일 아르헨티나 대선 역시 선거에서 다수의 선택이 반드시 국가의 운명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게 이뤄지는 것은 아님을 보여줬다. 우리에겐 내년 4월 총선과 2022년 대선이 앞으로 오랫동안 한국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분기점이다. 내년 총선에서 가장 궁금한 점은 ‘경제를 망친 집권당은 중간평가 성격의 선거에서 진다’는 정치권의 ‘속설’이 유효할지 여부다. 그 속설을 현 경제상황에 대입하면 여당의 전망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그래서일까, 집권 세력이 총선 필승을 위해 투입하는 에너지는 과거 어느 정권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막대하고, 그 방향은 두 가지 큰 축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 하나는 좌파 인프라 강화이고, 또 하나는 현금성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정부와 지자체의 위원회 등에 수많은 좌파 활동가들이 진출했다. 시민사회 단체와 협동조합 등 다양한 조직들에 권력의 떡고물이 떨어졌다. 민노총 등 거대 조직들은 몸집을 불렸고, 지자체들은 복지센터 건립 등 명분으로 거액을 지원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동 단위마다 자치지원관이란 자리까지 만들고 있다. 이처럼 지역·직능별로 사회 전체를 촘촘히 커버할 좌파 생태계 구축의 비용은 물론 대부분 국민 세금이다. 중산층 직장인들이 “우리가 좌파활동가들 먹여 살리려고 뼈 빠지게 일해 세금을 내느냐”고 통탄하든 말든 총선에서 좌파 인프라가 가동되면 그 영향력은 막대할 수 있다. 현재의 좌파 인프라는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던 17년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집권 세력이 의지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수단은 경제 실정(失政)의 피해자들을 달래 ‘내편’으로 붙잡아 둘 현금성 복지 확대다. 그간 이 정권이 확대해온 온갖 장려금, 지원금, 수당 등의 일회성 복지는 열거하기도 힘든 수준이다. 예산규모가 2017년 400조에서 3년 만에 513조(2020년 예산안·미확정)로 늘어날 만큼 재정이 확대됐는데 증가액 중 상당부분이 인프라 확충과 경기부양이 아니라 개인 단위에 살포되는 일회성·시혜성이다. 과거 정부 여당이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사업을 남발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이번 정부처럼 막대한 현금성 복지를 지속적으로 뿌려 온 경우는 없었다. 남미의 몰락사를 보면 이런 현금 복지는 실제로 표로 연결됐다. 하지만 대부분 국민이 고등교육을 받은 한국에서도 과연 통할까. 현금복지의 주 수혜층은 여당에는 어차피 집토끼인 경우가 많다. 상당수 중도층은 현금성 복지의 직접 수혜층은 아니다. 떡고물이 떨어지면 받긴 받아도,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며 씁쓸해한다. 그런 국민이 바로 숙의민주주의의 주역인 중산층이며, 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을 결정하는 국민이다. 선거를 앞둔 정권들이 주로 하는 건 증시와 부동산 경기 부양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경제 시스템이 너무 반대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기업의 비용을 낮춰야 할 때 높였고, 경기가 돌아가지 못하게 족쇄가 많아졌고, 기업의 M&A와 구조조정, 인력개편은 더 어려워졌다. 이런 상태에서 증시 부양은 자금이 해외로 유출될 수 있고, 부동산 경기 활성화 정책도 택하기 어렵다. 정부 여당 입장에서 진정한 필승 대책은 경제 활성화이고 그러려면 시장 위주로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어려운 구조적 조건에 봉착해 버렸다. 여태 취해온 정책들이 정반대 방향이었으며, 그런 방향을 후견해 온 지지 세력의 틀을 깨고 정책 대전환을 하기엔 지지세력 의존도가 너무 큰 상황이다. 이 때문에 집권 세력은 그 한계가 너무도 뚜렷하고, 폐해가 너무도 클 현금성 복지와 좌파 인프라 지원에 더욱더 중독되듯 빠져들 것이다. 야당이 예산안과 온갖 기금, 공공사업 발주를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지 못하면 국민 혈세는 ‘21세기판 막걸리와 고무신’에 무한정 쏟아져 들어갈 것이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문재인 대통령도 많이 놀랐을 게다. 조국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뒤 드러난 그의 실체에 많이 놀랐겠지만, 14일 그를 경질하고 난 직후 또 한번 놀랐을 것이다. 대통령이 사직서에 사인을 한 지 22분 만에 서울대에 복직신청을 하고, 다음날 자신의 사직을 ‘영웅의 퇴장’처럼 묘사한 ‘조국 법무부 장관의 마지막 부탁’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릴 만큼 ‘담대한’ 인물일 줄은 문 대통령도 미처 몰랐을 것이다. 남들 같으면 두 번째 복직신청을 하는 것도 망설였을테고, 설령 신청한다해도 신청기한이 한달이므로 며칠 말미를 두고 세간의 시선이 좀 잠잠해진 뒤 냈을 것이다. 굳이 그의 정신세계를 분석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다만 수오지심과 사양지심 차원에서 상식 수준과는 너무도 다른 특이한 의식구조라는 정도로 넘어가자. 정말로 중요한 대목은 문 대통령이 조국 사태를 통해 민낯을 드러낸 친문 세력의 실체를 명확히 인식하고 극복할 수 있는지다. 법무부 인권국장, 검찰개혁추진단장이라는 고위직을 맡고 있는 민변 출신 변호사의 저잣거리 주정뱅이들의 싸움에서도 듣기 어려운 수준의 과거 SNS 글들과 험한 입은 권력 주변 좌파인사들의 수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유시민 등 ‘책사’들도 처참하게 밑천을 드러냈다. 그들은 연일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냈지만 궤변의 신기록만 경신했을 뿐, 아무런 설득력도 참신한 논리도 통찰도 담지 못했다. 그들이 이번에 유일하게 새로 드러낸 특질은 찌질함이다. 유시민은 조국사태 초기부터 “조 후보자만큼 모든 걸 가질 수 없었던 소위 명문대 출신 기자들이 분기탱천한 것”등의 발언으로 난데없이 열등감 코드를 들고나왔는데 어쩌면 자신의 내면을 노출시킨 것일 수도 있다. 그러더니,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는 검사가 여기자를 좋아해서 (피의사실을) 술술 흘려줬다는 패널 발언이 나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일련의 흐름들의 키워드는 열등감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에 좌파권력의 떡고물을 기대하며 살아온 자들의 수준을 봤을 것이다. 자기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민주화 투쟁 때는 몸을 사리다가 뒤늦게 민주투사로 자처해온 인사들의 위선도 봤을 것이다. 친문 세력은 진영의 이익을 위해서는 공정, 정의 등 진보의 가치는 언제든 내던질 수 있는 집단임을 천명했다. 가치연대가 아니라 이권연대, 이익연대에 불과함을 드러냈다. 그들은 대중의 분노를 불지펴 동원해내고 프레임을 만드는 투쟁 단계에선 유능하지만 막상 정책실행이나 관리능력에선 미숙하기 그지 없다. 대중적 갈증과 분노를 기반으로 집권했지만 그 연장선상에서 만들어낸 정책들이 실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다. 게다가 이번에 그들은 궁극적 관심사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 아니라 정권 재창출을 통한 권력유지임을 드러냈다. 지난달 9일 조국 임명 강행 직전 문대통령이 고민할 때 내각과 청와대 일부에서 원활한 국정운영과 중도층 확보를 위해서는 조국을 포기해야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여당 지도부와 운동권 출신 참모들은 임명 강행을 강력히 건의했다. 그들에겐 원활한 국정운영 보다는 정권 재창출의 바탕이 될 핵심 지지 세력이 훨씬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문 대통령은 임기 중반도 넘기기 전에 9회말 위기의 투수 같은 곤경에 처했다. 다만 한때 후계자로 고려했을 조국, 그리고 ‘영남 후보 필승론’에 따라 조국과 더불어 거론됐던 유시민의 허상을 미리 알게 된 건 문 대통령에게도 결과적으론 다행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이제 당연히 대통령이 택해야 할 코스는 진영정치에서의 탈피, 친문 수장 역할에서의 탈피, 그리고 준거집단을 중도를 아우르는 국민 대다수로 넓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조국 사퇴 직후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느닷없이 언론을 비판한 대통령을 보면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비관론이 생긴다. 언론의 검찰발 받아쓰기에 조국이 억울하게 당한 측면이 있다는 뉘앙스가 풍기는데, 역대 어느 대통령도 민의에 밀려 백기를 들면서 이런 원망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동아일보가 8월 20일자 1면에 특종 보도한 ‘고교 때 2주 인턴 조국 딸, 의학 논문 제1저자로 등재’ 기사 취재 기자의 취재기를 소개한다. “조 장관 내정 소식을 접하고 ‘진보적 가치와 아이의 행복이 충돌할 때 아이의 행복을 위해 양보하게 되더라’는 조국의 과거 발언이 떠올랐다. … 조 장관 딸이 인터넷 유료 사이트에 올린 자기소개서와 이력서 등을 8만4500원을 주고 샀다. 자기소개서에는 ‘단국대 의료원 의과학연구소 소속 인턴십의 성과로 논문에 이름을 올렸다’는 내용이 있었다. 고교 재학생이 의학논문 저자가 될 수 있었을까? 이런 의문에 학술 논문 사이트를 뒤져가며….(중략)” 몇 주동안 수백 편의 논문을 뒤지고 병리학전문가와 공동저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녀 조각조각의 팩트들을 모아 건져낸 기사였다. 문 대통령은 언론에 깊은 성찰과 개혁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말 성찰하고 기존의 틀에서 빠져 나와야 할 사람은 대통령이다. 그러지 않으면 좌파 이익연대 세력들은 자신들의 잇속을 계속 보장할 인물을 또다시 들이밀 것이고 제2, 제3의 조국이 생길 것이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최근 외국인 한국 전문가, 투자 전문가 등이 문재인 정권의 성향을 어떻게 규정해야할지 토론을 벌였는데 결론은 ‘소셜 내셔널리즘(social nationalism)’으로 모아졌다고 한다. 좌파 민족주의, 즉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 성향과 민족주의가 결합된 특징을 지닌다는 의견들이었다. 소련 식의 사회주의나 종북 등으로 매도하는 그런 이념몰이, 색깔논쟁 수준의 논의가 아니니 오해 말기 바란다. 외국인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은 문재인 정권의 성향이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는 다르다는 점이었다. 이들이 가장 주목하고 우려한 점은 남북분단 일제강점 등의 역사·지리적 조건에 따른 민족주의가 평등주의 성향과 결합해 서민 대중을 선동하면 엄청난 폭발적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지난 주말 서초동 촛불집회를 보면서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리사회엔 FTA나 주한미군, 남북관계처럼 이념·진영에 따라 정반대의 견해를 가질 수 있는 사안들이 많다. 하지만 조국 사태는 그럴 사안이 아니라는 게 보통 사람들의 상식이었다. 그 누구도 조국 가족이 누린 특권 특혜와 위선이 정의와 공정에 어긋난다는데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텐데, 어떻게 조국 수호를 외치는 이들이 또 저렇게 있을까…아노미적 혼란을 느낀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아함은 두 가지 점을 인식하면 풀린다. 첫째는 우리 사회 좌파 진영의 조직력과 동원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이다. 민노총 등 노동운동 조직 외에도 한국사회에는 수를 헤아리기 힘든 좌파 단체 모임들이 있다. 그들의 투쟁 노하우와 전략은 군부독재시절부터, 자금·조직력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부터 쌓여왔다. 그들에게 정권은 중요한 물적 토대다. 좌파 정권이 창출되면 행정부와 공공기관 간부직 진출, 프로젝트 수주, 지원금 등등 거대한 좌파 산업이 생겨난다. 우파에 정권을 빼앗긴다는 건 그런 생존의 토대가 흔들리는 사변이다. 둘째, 모든 대중 집회가 어떤 가치나 대의를 위해 모이는 것이라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4·19혁명, 6월민주항쟁처럼 가치, 정의감 등 양심적 동기에 의해 거리에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철저히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모이는 경우도 많다. 원시시대 부족 간 전쟁을 예로 들어 보자. 자기 부족이 더 도덕적이고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싸우지 않으면 부족이 멸절한다는 위기감에서 기꺼이 목숨을 바쳐 싸운다. 그런 몰가치적 투쟁에는 조국이 공정 정의 같은 가치를 짓밟았다는 사실은 중요치 않다. 친문 인사들은 어떤 가치가 아니라 그저 문재인 정권을 지키기 위해 모인 것이다. 지금 검찰 개혁을 외치고 있는 이들 중 상당수는 만약 현 정권이 박근혜 정부이고 검찰이 권력 핵심 인사를 수사하는데 박 대통령이 무소불위 검찰을 질타하며 검찰개혁을 압박했다면 “검찰수호”를 외쳤을 것이다. 2년 넘게 진행된 적폐청산 수사 때 그 숱한 과잉수사와 인권침해, 피의사실 공표 논란에도 불구하고 친문진영에서 검찰을 질타한 이가 누가 있었나. 물론 집회 참가자중에는 검찰 과잉수사 피해자들, 사법 개혁 소신을 오랫동안 주창해온 이들도 적잖게 있었지만 다수는 문재인을 지키기위해 나선 친문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유시민 등 친문인사들과 여당 지도부에서 궤변사(史)의 신기원을 경신하는 발언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그런 부족 간 전쟁에 임하는 차원으로 보면 된다. 부족 간 전쟁에서 중요한 건 전투력이지, 논리와 이성 합리성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런데 친문이 공정 정의를 짓밟은 조국 특혜를 옹호하다보니 공정 정의라는 진보의 핵심 가치들을 팽개친 결과가 되어버렸다. 문 대통령부터 조국 임명을 강행하고 검찰을 압박함으로써 자신이 내걸었던 인사 원칙과 검찰 독립 등의 가치들을 저버리고 말았다. 공동체 전체를 아우르는 지도자가 아니라 진영의 수장을 자임한 셈이다. 유연성이 없으면 원칙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원칙마저 버린 것이다. 집회 참가자숫자를 놓고 과장을 일삼지만 민심, 여론의 가늠자는 참가자 숫자가 아니다. 자발성과 참여 동기의 순수성, 참가에 따르는 불이익 감수,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일반 시민들의 반응이다. 6월민주항쟁이 온 국민의 항쟁이었던 것은 가두시위를 벌이는 학생들 숫자 때문이 아니었다. 모든 택시가 멈춰 서서 경적을 울려주고 빌딩 창문마다 직장인들이 손수건을 흔들며 응원하고, 행인들이 최루탄 속에서도 박수를 쳐주는 그런 지지가 민심의 척도였다. 좌파가 공정 정의 같은 진보의 가치와 결별하면 어떻게 될까. 어차피 기층 민중은 계급·계층적 이해관계에 따라 투표하므로 조국을 수호하고 핵심 지지층만 잘 다지면 된다는 생각이 집권세력 내엔 팽배한 것 같다. 베네수엘라같은 사회에선 그런 게 통할 것이다. 그러나 교육 수준이 높은 나라에서는 계급적 이익 못잖게 시대정신과 가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민중들이 계급적 이익만으로 투표한다면 어느 나라든 노동자·서민 기반 정당이 항상 집권할텐데, 선진국은 그렇지 않은 것은 누가 그 시대에 요구되는 가치를 구현하느냐에 승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친문은 이번에 공정 정의 같은 가치를 팽개친 채, 오로지 재집권을 목표로 한 전투력 응집력 동원력 넘치는 부족 이상도 이하도 아닌 집단이 돼버렸다. 우파가 공동체에의 헌신, 자기희생. 도덕성 등 보수의 가치를 팽개치면 몰락하듯이, 진보의 가치를 벗어던진 좌파에게 미래는 없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문재인 대통령도 조국 임명 강행이 패착(敗着)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누가 뭐라든 내 소신대로 한다’가 트레이드마크인 문 대통령이지만 이번엔 적잖이 흔들렸던 것 같다. 임명 강행이 ‘까먹는 게임’이 될 것임이 훤히 내다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임명 강행을 택한 것은 항복(임명 취소)을 택하면 조국 개인을 우상시하는 핵심 지지층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여권 책사들의 선거공학적 분석이 ‘마이웨이’ 본능에 불을 지폈을 것이다. 임명 강행 전날 밤 당정청 고위 회의에서는 내각과 청와대의 고위급 인사 2명이 임명 강행에 무리가 따른다는 의견을 개진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당과 청와대 관계자들은 견고한 핵심지지 세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범진보층, 그리고 한일 갈등 정국이 내년 총선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점 등을 들어 임명 강행을 고집했다고 한다. 물론 문 대통령도 조국 의혹을 덮은 채 계속 갈수는 없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제시한 논리가 “명백한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다”였다. 문 대통령도 내심으론 ‘위법 확인 여부’가 임명 강행의 논리적 근거로 억지스럽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역대 청문회 낙마자 가운데 위법이 확인돼 낙마한 경우는 거의 없었고, 청문회의 본질이 그런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런 논리를 편 것은 훗날 ‘탈(脫)조국’시에도 쓸 수 있는 양수겸장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임명 강행 열흘이 지나도 조국 사태가 사그라들지 않는 상황이지만 집권세력도 예상 못 한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임명을 강행한 건 결국은 만회가 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만회 시나리오는 ‘여권 내 기득권 청산 이벤트와 세대교체 → 선거법 개정을 통한 좌파 연대 → 무당파로 이탈한 지지층 재흡수를 통한 정권 재창출’의 구도일 것이다. 하지만 설령 문 대통령은 그런 시나리오대로 실점을 어느정도 만회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한국 사회가 조국 사태로 인해 받은 심대한 폐해는 오랫동안 만회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 폐해는 첫째, 기득권층에 대한 대중의 혐오와 계층 간 불신의 심화다. 조국 가족이 누려온 특권이 드러나면서 ‘기득권층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특권을 누리고 있구나’ ‘역시 우리 사회는 썩었다’…등등 혐오·반감이 더 깊어졌다. 둘째, 공동체 리더십의 훼손이다. 조국 가족의 문제는 일부 뒤틀린 특권층의 일탈이라 쳐도 국가 통치자가 미리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장관으로 발탁하고 임명한 것은 인사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뿌리부터 흔든 일이다. 최순실 사태로 큰 상처를 입은 국민들에게 더 큰 실망을 안겨준 것이다. 셋째, 공정한 경쟁 시스템에 대한 신뢰 상실이다. 경쟁 과정이 공정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어야 결과에 승복할 텐데, 조국 딸이 입시생이던 시절엔 그런 방법이, 또 다른 시절엔 또 다른 형태의 방법이 동원돼 특권층들은 어느 시대든 항상 나무에 먼저 올라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순간 공동체의 기반은 무너진다. 그럼에도 집권세력엔 조국 사태가 필패(必敗)의 사건은 아닐 수 있다. 그들이 예상했던 대로 민주당 이탈층은 부동층으로 남고 한국당으로는 가지 않고 있다. 여권은 적당한 시기에 조국을 정리하고 대대적인 기득권 청산 모드로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당내 386 기득권으로 불리는 인사들도 자진불출마 선언 등의 형식을 통해, 도마뱀의 꼬리가 ‘나를 잘라 주십시오’ 하듯이 당 쇄신에 자기 목을 내놓을 것이다. 그들은 그런 집단이다. 지도부가 결정하면 기꺼이 시위를 주도하고 감옥행을 택했듯이 자기를 던질 줄 안다. 공천을 포기해도 진보진영의 재집권이 자신의 번영을 뒷받침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더구나 조국 사태가 심화시킨 기득권층의 반칙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집권세력에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당장은 집권세력과 가면 벗겨진 강남좌파의 부도덕성에 실망한 중도성향 중산층들이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득권에 대한 서민 대중의 더 깊어진 혐오감이 선거에서 좌파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좌파진영으로선 조국은 좌파의 가면을 썼던 기득권층, 즉 강남우파로 정리하면 그뿐이다. 조국은 그동안 누려온 특권의 실태를 대중에게 노출시킴으로써, 특권문화에 대한 대중의 분노에 불을 지피는 의도치 않은 전과(戰果)를 올린 셈이다. 보수진영이 조국만 물러나면 그걸로 승리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여든 야든 조국으로 상징되는 기득권·특권·반칙과의 단절과 청산을 과감히 보여주지 못하는 쪽이 패자가 될 수 있다. 조국 사태로 대한민국 공동체는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받았지만 이 사태를 초래한 집권세력은 기층민중 대(對) 특권층 대립 구도를 심화시켜 전화위복의 역전 득점을 노릴 것이다. 조국 논란이 조국 사태라 불려 마땅한 이유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2주전 칼럼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조국 전 민정수석을 지명하는 등 계속 마이웨이를 고집하면 많은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고 썼다. 예상대로 문 대통령은 조국 지명을 강행했고, 며칠 만에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임명을 강행하기도 철회하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일거다. 임명 강행 시엔 넘어야할 장애물이 너무 많다. 우선 법무장관이 검찰 수사 피의자가 되는 초유의 상황이 닥칠 수 있다. 현재 조 후보자에 대해선 ①논문 부정(업무방해 혐의 등) ②웅동학원 재산 처분 의혹(강제집행 면탈, 사기혐의 등) ③사모펀드 투자 및 업체의 관급공사 수주 ④의전원 교수의 의료원장 취임 ⑤교육부의 미성년논문 조사팀에 대한 민정수석실 감찰 ⑥부동산 위장매매 등등 여러 의혹이 제기돼 있다. 수사와 진상규명 없이는 의혹을 벗기 힘든 내용들이다. 윤석열 검찰이 적극 나선다면 전대미문의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법무장관은 검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갖고 있다. 개별사건 지휘권은 없지만 수사내용은 보고 받는다.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면 개별사건을 지휘할 수도 있는데, 이는 2005년 강정구 교수 사건 때 외엔 전례가 없다. 특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시중에선 자칫하다간 법무장관이 아니라 ‘법무부 교정시설 식구’(수감)가 되는 거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만약 청와대가 검찰 수사도 없이 “불법은 없었다”고 결론짓고 임명을 강행한다면 어떻게 될까. 여당에서 최근 “특혜가 아니고 보편적 기회였다” “누구나 신청하고 노력하면 접근할 수 있는 기회”라는 등의 발언이 나오는 등 “부적절한 일이지만 불법은 없었다” 쪽으로 몰아가려는 기류가 강하다. 청와대가 그런 결론을 내면 이는 조 후보자 딸이 시험 한 번 치르지 않고 누린 최고의 코스가 국민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던 기회였다는 뜻인데, 그런 ‘보편적이고 합법적인 기회’를 놓친 대다수 국민은 게을러 제 밥을 찾아먹지 못했다는 결론으로 귀결돼 버린다. 허탈해하는 젊은이와 학부모들을 ‘피해자’가 아니라 열려있던 합법적 공간을 이용하지 못한 ‘곰바우’로 만드는 것이다. 여당은 민심 격노를 두려워하지만 섣불리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리질 못하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임명을 강행해도 일본 아베 신조 정부가 또 도발하고 김정은-트럼프가 대형 이벤트를 만들어주면 바뀌리라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판일 수 있다. 곧 국감이 다가오고 총선으로 이어진다. 임명철회는 문 대통령으로선 두 가지 이유에서 고개를 흔들 것이다. 첫째 386운동권의 상징 같은 인물의 추락은 상상하기도 싫을 것이다. 차기 대선 플랜에도 영향을 미친다. 집권세력과 지지진영에서 나오는 철회 불가론의 두 번째 근거는 사법개혁의 무산 우려다. 그러나 따져보면 그런 우려들은 타당하지 않다. 첫째 이 정권 지지세력 일부에선 조국을 386 학생운동권의 상징처럼 여기는데 이는 과장된 것이다. 조국은 1980년대 초중반 전두환 군부독재시절 학생운동사에서 별로 족적이 없다. 이미 1987년 6월 항쟁으로 직선제가 쟁취되고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한 1990년에서야 사노맹 사건에 등장한다. 주사파의 대부였던 김영환은 “조국은 운동권의 축에도 못낀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자녀입시, 사모펀드, IMF 때 부동산 투자 논란 등은 조 후보자가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진 것을 미안해하며 절제하고 나누는 그런 신독(愼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왔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문재인 정권의 도덕적 담론의 축이 되기엔 부족한 것이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그의 퇴진을 자신의 아바타의 추락으로 여길 필요가 없다. 조국이 없으면 사법개혁이 위태로워질 것이란 논리도 허구다. 조국이 주도한 사법개혁안은 검찰의 직접 수사권은 거의 그대로 둔 채 경찰의 힘을 키워주는, 즉 시민 입장에선 공권력의 수사 총량만 심대하게 늘리는 기형적 타협안이다. 검찰공화국 탈피를 위한 실질적인 사법개혁안은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의원입법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그 누구를 법무장관에 앉혀도 검찰독립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만 확고하면 더 완성된 사법개혁을 이룰 수 있다 이렇게 정치적·이념적 진영논리를 벗어나면 해법은 너무도 뚜렷이 보인다. 진보의 이미지에 먹칠을 했고, 숱한 의혹으로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인사를 고집해야 할 이유는 없다. 문 대통령이 택해야할 길은 너무도 명확히 보이는데, 정반대로 가려는 기류가 강하다. “후보자에 대해 제기된 모든 의혹은 한점 남김없이 규명하겠다. 그 결과 만약 불법이 드러나면 즉시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하겠다. 하지만 진실이 완전히 규명되기 이전엔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후보자에게 일할 기회를 주자”는 식의 논리를 들이대며 임명을 강행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태의 수습이 아니라, 두고두고 짐이 될 것이다. 어제 한일 정보보호협정 폐기 결정에서도 보이듯 지지세력만 바라보며 마이웨이 하려는 성향은 대통령 자신의 가장 큰 장벽인 것 같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최고 통치자는 신념을 끝까지 밀고 가야 합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문재인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이 사석에서 한 얘기다. 청와대의 위기 상황에 대한 얘기 끝에 나온 말이다. 노 대통령은 참모들이 반론을 펴면 격렬하게 논쟁을 벌였지만 최종적으론 자기 생각을 접는 경우가 많았다. 문재인 비서관은 그런 점에선 조금 철학이 달랐던 것 같다.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2년 3개월간 정말로 ‘끝까지 신념을 밀고 가는’ 대통령을 목도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누가 뭐라든 내 뜻대로 한다’가 트레이드마크다. 결국 조국 전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에 임명할 것이라 하니, 문 대통령의 소신은 역대 누구도 따라가기 힘든 수준이다. 법무장관은 이념·정치적 중립성, 객관성, 권위와 신중함이 절실히 요구되는 자리인데, 우리 사회 이념 스펙트럼에서 한쪽의 거의 끝부분에 서 있는 인사를 기어코 써야겠다는 것이다. 조 전 수석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큰 최근 검찰 간부 인사는 ‘내 맘대로 한다’가 대통령 측근들도 공유하는 특질임을 보여준다. 정권이 싫어하는 수사에 관여한 검사들을 이렇게 중인환시리에 무더기로 좌천시킨 전례는 찾기 힘들다. 과거 정권들은 아무리 내부적으로 곪고 독재를 해도, 여론과 야당의 시선을 의식해 원하는 게 100이면 80 안팎만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정권은 거의 100% 관철하려 하는 게 특징이다. 이는 사회를 선악 이분법으로 나눠, 자신의 반대론자를 악의 위치에 놓는 사고방식의 산물이다. 비판세력의 눈은 의식할 가치가 없다고 마음먹은 결과다. ‘명분, 신념, 결집된 지지세력’이라는 삼위일체만 있으면 돌파하지 못할 게 없다는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하다.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필연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만 하겠다’로 이어진다. “남북 경제협력으로 평화 경제가 실현된다면 단숨에 일본 경제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되는데 이는 위험한 징후 세 가지를 보여준다. 첫째, 청와대의 시스템 장애다. 즉흥적 발언이 아니었는데 참모들은 사전에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정치인인 대통령의 관점을 외교·경제·전략 보좌진이 걸러줘야 했는데 아무도 그런 말을 못하는 분위기였을 것이다. 이는 정권 내 길항 기능의 마비를 뜻한다. 최고 통치자가 좀처럼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는 걸 학습한 참모들은 점차 고언을 포기하게 된다. 대통령의 발언 후 현직 장관급 인사마저 지인들에게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입 밖에 내긴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두 번째 징후는 1980년대 민족해방계열(NL) 시각의 부활 조짐이다. NL은 한국 사회의 핵심 모순을 분단으로 봤고, 주적은 분단을 고착화하려는 미국 일본 등이고 극복 주체는 민족으로 봤다. 세 번째 위험한 징후는 총선과 재집권을 목적으로 한 민족주의 드라이브의 과열이다. 논리적 설득력만 염두에 뒀다면 문 대통령도 그런 발언을 안 했을 것이다. 남북경협이 일본을 이겨낼 동력이 될 만큼 이뤄지려면 북한 비핵화와 평화체제가 완비되어야 하는데 최소한 수년 이상 걸리는 작업이다. 극복해야 할 문제와 대안 간에 시간적 격차가 너무 크다. 당장 수돗물이 안 나오는데 황허 강물을 끌어오면 된다고 하는 격이다. 극일은 시간이 걸린다. 일본이 수십, 수백 년 쌓아올린 기초과학 연구개발을 우리는 새로 투자하는 건데, 정부가 집중 지원하면 시간이 단축은 되겠지만 기술 특허가 독점화되어있는 부분을 국산화한다는 게 간단치는 않을 것이다. 부품·소재 국산화를 해도 경쟁력을 가져야 자생할 수 있다. 방위산업이 아닌 모든 부품·소재·장비를 국가예산으로 상용화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많은 기업들이 엄청난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지만 친일 매도 분위기에 눌려 내놓고 말은 못 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런 낱낱의 사실관계는 어쩌면 청와대에겐 무의미할지 모른다. 문 대통령은 국민 일반이라기 보다 핵심 지지층을 겨냥해 장기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분단모순을 극복해 하나 된 한반도의 힘으로 제국주의를 물리친다는 수십 년전 이상론의 21세기판인 것이다. 집권세력은 민족주의 드라이브가 남북관계 이벤트와 맞물린다면 총선·재집권의 특효약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정략적 확신과 그것이 대의라는 주관적 신념이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비전은 몽상과 다르다. 비전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고 주변국 관계, 세계정세를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동방정책의 주역인 서독의 빌리 브란트는 1957년 서베를린시장 시절부터 참모인 에곤 바르와 발언 하나하나를 협의하며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다. 일관되면서도 신중한 메시지가 수십 년 쌓여 훗날 독일 통일이라는 열매로 이어진 것이다. 열광하는 지지층만 바라보며 신념과 명분으로 무장한 채 마이 웨이 하는 현상을 과거 정권들에서 여러 번 목도했는데, 그 결말은 비슷했다. 최근엔 박근혜 정권의 2016년 4·13총선 공천파동이 한 사례다. 대통령의 독선은 총선 참패를 불렀고 탄핵으로 이어졌다. 대통령발(發) 뉴스에 평범한 사람들마저 “어”하며 어이없어하는 현상, 그것은 매우 위험한 적신호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