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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일본 도쿄 주오구의 한 약국. 병원 처방전을 들고 온 40대 남성이 지갑에서카드를 꺼내 접수대에 설치된 기계에 올려놨다. 카드 인식을 마치고 4자리 비밀번호를 누르자 접수가 완료됐다. 약사가 종이 건강보험증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던 종래의 본인 확인 방식이 디지털화된 것이다.》일본에서 ‘디지털 주민등록증’ 격인 마이넘버 카드에 건강보험증을 결합한, 이른바 ‘마이넘버 보험증’이 전격 도입됐다. 이날부터 기존 종이 건강보험증 신규 발급이 전면 중단됐고, 유예기간 1년이 끝나는 내년 12월부터는 종이 건강보험증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아날로그 문화를 고수해 온 일본이 디지털화를 촉진하기 위해 야심 차게 실시하는 국책 사업이다. 일본 정부는 의료 디지털화를 전자 정부 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마이넘버 보험증 정책 성공에 사활을 걸고 있다. 향후 마이넘버 카드 하나만 있으면 모든 정부 사무를 디지털로 처리할 수 있게 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갖고 있다. 하지만 개인정보 노출에 민감하고 디지털화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일본에서는 정부의 마이넘버 카드 정책에 대한 반발이 여전하다. ● “편리하다” “불안하다” 반응 엇갈려 약국에서 마이넘버 카드를 사용한 40대 남성은 “병원, 약국에서 간편하게 접수시킬 수 있고 접수 시간도 짧아졌다. 주민표(한국의 주민등록등본) 발급받을 때도 편리하다”라며 마이넘버 카드의 장점을 꼽았다. 병원이나 약국에서 신분증을 제시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지금까지 반드시 기초자치단체에서 발급하는 종이 건강보험증을 보여줘야 했다. 병원 직원은 접수대에서 환자 이름, 생년월일, 유효기간, 발급 일련번호 등을 일일이 눈으로 확인하며 기록했다. 하지만 마이넘버 보험증은 마이넘버 카드 인식 기계에 갖다 대기만 하면 환자 정보가 곧바로 의사 컴퓨터에 표시된다. 얼굴 인식 기능도 갖춰 본인 확인을 보다 확실하게 할 수 있다. 환자가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하면 다른 의료기관 진료 이력, 약 처방 명세 등도 확인이 가능하다. 응급 상황에 구급대가 곧바로 진료 및 투약 이력을 확인해 신속한 처치에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 마이넘버 카드는 여전히 낯선 존재다. 이날 해당 약국에는 30분간 9명의 환자가 방문했는데, 마이넘버 카드를 사용한 사람은 40대 남성 1명뿐이었다. 약국에서 만난 70대 여성은 “평생 건강보험증을 문제없이 잘 쓰고 있는데 왜 바꾸는지 모르겠다. 기계는 어렵고 복잡하다”고 말했다. 카드를 갖다 댄 뒤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되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 보였다. 실제로 마이넘버 카드가 있으면 아무 병원이나 약국 혹은 온라인에서 간단한 등록 절차를 거쳐 보험증으로 쓸 수 있다. 그래도 주요 구청 마이넘버 상담 창구에는 사람이 몰리는 추세다. 도쿄의 대표적인 주택가 지역인 네리마구의 구민사무소에는 이날 하루에만 주민 50여 명이 몰려 마이넘버 카드 발급을 신청하거나 건강보험증 연동 여부를 문의했다. 사실 일본은 이미 2021년부터 마이넘버 카드에 건강보험증 기능을 넣어 운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존 종이 보험증에 익숙한 국민의 거부감이 컸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6월 현행 종이 보험증을 폐지하고 마이넘버 카드와 보험증의 일원화를 의무화하는 법을 제정했다. 마이넘버 카드를 쓰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지자체가 발급하는 ‘자격 확인서’를 발급받아 쓸 수 있다.● 유력 총리 후보도 못 피해 간 논란 일본은 한국 같은 주민등록번호 제도가 없었다. 이 때문에 납세, 연금, 은행 거래, 의료 정보, 보조금 지급 등이 제각기 따로 관리됐다. 무엇보다 전자정부 전환에 걸림돌이 됐다. 일본 정부는 행정 효율성을 높이고 디지털화를 실현하기 위해 2016년부터 일본판 주민등록번호 제도인 마이넘버를 도입했고 IC칩이 내장된 마이넘버 카드 발급을 시작했다. 당시 일본 언론들은 한국의 주민등록번호 제도와 앞선 전자정부 구현에 관심을 보였다. 모든 일본 국민 및 거주 외국인에게 12자리 마이넘버가 부여됐지만, 마이넘버 카드 보급은 더뎠다. 민감한 개인 행정 정보를 12자리 번호로 통합 관리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사태를 겪은 뒤 마이넘버 카드가 있어야만 10만 엔(약 90만 원)의 재난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보급이 본격화됐다. 2022년에는 경제 부양 대책으로 마이넘버 카드 신청자에게 최대 2만 엔(약 18만 원) 상당의 포인트를 지급하며 신청자가 더욱 많아졌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올 10월 기준 일본 전체 인구의 75.7%가 마이넘버 카드를 소지하고 있다. 마이넘버 카드 보급 확산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민의 불안은 여전하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마이넘버 카드로 발급받은 주민표, 호적증명에 타인의 정보가 등록된 사례가 확인됐다.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 등록된 은행 계좌가 다른 가족이나 엉뚱한 사람 명의로 등록된 경우는 13만 건 이상 나왔다. 이름이 잘못 표기되거나 한자 이름이 깨진 채 주민표 등에 출력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잇따른 사고에도 디지털 행정 책임자였던 고노 다로(河野太郎) 전 디지털상은 마이넘버 카드에 문제가 없다며 건강보험증 일원화를 밀어붙였다. 결과적으로 일원화는 실현됐지만, 고노 전 디지털상은 지지율이 추락했다. 올 9월 사실상 일본 총리를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고노 전 디지털상은 후보 9명 중 8위에 그쳐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2021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총리에게 불과 1표(1차 투표 기준) 뒤진 2위였지만, 마이넘버 카드 논란이 유력 총리 후보자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마이넘버에 사활 건 일본 정부 일본 정부는 마이넘버 보험증 성공에 사활을 걸고 있다. 마이넘버 카드를 다른 나라에 뒤처진 디지털화를 따라잡기 위한 핵심 정책으로 보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는 국회에서 “(마이넘버 보험증은) 본인의 보건의료 정보를 활용해 적절한 의료 제공에 크게 이바지하는 것”이라며 장점을 알렸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국민이 이용하는 게 중요하다”며 “국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알려 이용 활성화를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4%에 불과했던 마이넘버 보험증 이용률은 올해 15%로 높아졌다. 보급 속도가 느리진 않지만, 여전히 국민 다수가 이용하는 서비스라고 말하긴 어렵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나가쓰마 아키라(長妻昭) 대표 대행은 “(종이 보험증 발급 중단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아날로그를 남겨 둘 필요가 있지 않나”라며 반발했다. 일본 정부는 내년 봄부터 스마트폰에 마이넘버 보험증 기능을 탑재해, 카드를 갖고 가지 않아도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한다. 내년부터는 난치병 환자들에게 지급한 ‘수급자증’도 마이넘버 보험증으로 통합한다. 또 내년 3월부터는 마이넘버 카드에 운전면허증도 결합해 IC 카드에 면허 정보를 디지털로 심을 예정이다.이상훈 도쿄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 주요 대학 중 40%가 내년에 등록금을 인상하거나 올릴 계획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3일 보도했다. 국제 경쟁력 강화가 시급한 일본 대학들이 교육 및 연구 비용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서둘러 등록금 인상에 나서는 모습이다. 니혼게이자이가 536개 대학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15개 대학이 “등록금을 이미 올렸거나 인상을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인상 이유로는 교육 및 연구 환경 유지 개선 등을 거론했다. 인건비 등 비용 증가에 대한 대응, 설비 노후화 대처 등을 꼽는 곳도 적지 않았다. 등록금 인상 의지를 밝힌 대학의 90%는 사립대였다. 도쿄 유명 사립대인 게이오대는 법학부 기준 올해 신입생 등록금이 141만3350엔(약 1321만 원)이었으나 내년에는 147만3350엔(약 1377만 원)으로 4.2% 인상하기로 했다. 와세다대 역시 올해 등록금을 지난해보다 5.3% 올렸다. 최근 20년간 등록금이 묶인 국립대들도 속속 인상 채비에 나서고 있다. 도쿄대는 현재 53만5800엔(약 500만 원)인 등록금을 내년에는 64만2960엔(약 600만 원)으로 20% 정도 올리기로 했다. 도쿄대는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고통스럽게 결정했다”며 “고등교육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교육 환경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인상 배경을 설명했다.등록금 인상 대학의 절반가량은 장학금을 확충하고 등록금 인하 및 면제를 강화할 계획이다. 내년에 등록금을 올리는 도쿄대는 등록금 전액 면제 대상을 연 소득 400만 엔 이하에서 600만 엔 이하로 확대한다. 와세다대도 총 43억 엔 규모의 상환 의무 없는 장학금 조성에 나섰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2일(현지시간) 일본제철이 미국 US스틸을 인수하는 것에 전적으로 반대한다고 밝혔다.트럼프 당선인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 계정에서 “나는 한때 위대하고 강력했던 US스틸이 외국 기업, 이번 경우 일본제철에 인수되는 것에 완전히 반대한다”고 말했다.그는 “우리는 일련의 세제 혜택과 관세 조치들로 US스틸을 다시 강하고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며 “대통령으로서 나는 이 거래가 이뤄지지 않도록 막겠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에 반대한다는 뜻을 수 차례 언급했지만, 당선 후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한 건 처음이다. NHK,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3일 이 소식을 발빠르게 전하며 US스틸 인수 성사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일본 외상은 이날 “미일 간 상호 투자 기회를 확대하고 경제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것은 서로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일본제철은 미국 철강산업의 상징적 존재인 US스틸을 149억 달러(약 20조9000억 원)에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물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도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인수에 난항을 겪어왔다.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는 앞서 20일 바이든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계획 승인을 요청한 바 있다. 이시바 총리는 일본이 미국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국가라는 점을 설명하며 “4년간의 성과에 그림자가 지지 않도록 인수 계획 승인을 부탁한다”고 요청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1987년 주요 7개국(G7) 중 1인당 국내총생산(GDP) 1위는 일본(2만1112달러)이었다. 36년이 지난 지난해, 일본은 G7 회원국 중 1인당 GDP가 최하위(3만3811달러)로 내려앉았다. 금융 위기와 경기 둔화, 저출산 고령화, 생산성 저하…. 겉으론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헤어나오기 어려운 장기 불황에 빠진 일본 경제는 여전히 반등 모멘텀을 잡지 못하고 있다.1%대 저성장이 고착화될 것이란 우려 속에 한국 경제도 ‘일본화(日本化·Japanification)’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는 차원을 넘어, 사회 전반의 활력 저하로 세대 간 갈등과 비관론이 확산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실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이제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GDP(3만5562달러)가 일본을 따라잡았다지만, 이대로 저성장이 굳어지면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경제, 사회적 쇠퇴가 진행될 것이라는 우울한 관측도 나온다.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전 일본은행 총재(재임 2008∼2013년)는 일본 경제 거품과 붕괴, 재도약을 위한 다양한 실험을 목격하며 경제 정책에 참여한 ‘잃어버린 30년’의 산증인이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저서 ‘일본의 30년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는 저성장으로 접어든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시라카와 전 총재는 “일본 성장률 저하는 인구 감소와 일본 기업 경쟁력 약화가 근본 원인이지,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탓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 부진도 경기 순환적 침체인지, 구조적 문제인지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에게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 저성장에 들어서는 한국 경제에 주는 시사점 등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달 29일 화상 인터뷰와 이를 보충하는 서면 인터뷰도 진행했다.》―일본 장기 불황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나. “1990년대 이후 일본 성장률 하락은 크게 3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거품 경제가 붕괴했고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생산가능인구(15∼65세) 감소, 글로벌화와 기술 변화에 대한 대응이 늦었다. 버블 붕괴와 인구 감소에 따른 저성장은 기존의 경제학 교과서에는 쓰여 있지 않은 내용이었다.” ―‘잃어버린 30년’ ‘디플레이션에 빠진 일본’ 같은 서구의 오해가 글로벌 금융위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등에 대한 대응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이 있다. “일본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저성장 원인이 물가 하락, 즉 디플레이션에 있다고 진단한 것이다. 이 진단이 옳다면 중앙은행은 디플레이션 위험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판단되면 공격적 금융완화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로 해외 학자들을 중심으로 그런 처방이 나왔다. 나는 그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일본 성장률 저하는 인구 감소와 기업 경쟁력 약화 등 구조적 문제가 원인이지, 디플레이션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는 일본화에 대한 교훈을 잘못 얻고 있다.” ―일본은 대담한 통화정책, 기동적 재정정책, 거시적 구조개혁을 앞세운 아베노믹스에 나섰다. 어느덧 12년이 됐다. “아베노믹스라고 표현했지만, 내용은 대규모 금융완화뿐이었다. (결과를 보면) 물가는 오르지 않았고 성장률도 상승하지 않았다. 일본 경제가 직면한 문제와 해결책을 근본적으로 잘못 설정했다. 일본 전체에 필요한 과제 해결을 위해 에너지를 썼어야 했는데도, 에너지가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한다. 장대한 실험 결과 이제는 디플레이션이 저성장 원인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줄었다. 그 대신 인구와 생산성 증가율 상승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일본의 지난해 경제 성장률은 1.9%였고, 올해도 플러스 성장 중이다. 물가 상승률도 2%대다. 이 정도면 ‘잃어버린 30년’은 끝난 것 아닌가. “아직 그렇게 판단되지 않는다. 설령 임금과 물가가 2%씩 오른다고 해도 실질 임금은 오르지 않았다. 국민들이 더 부유해진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생산성 상승이다. 일본에서 생산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는 아직 안 보인다.” ―일본 정부는 최근 수년간 최저임금을 크게 올리고 기업에도 임금 인상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임금은 노동 시장의 수요 공급으로 결정된다. 정부 압력이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결국 중요한 건 생산성이다. 생산성 성장을 웃도는 임금 인상은 오래가기 어렵다.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일손 부족 현상이 심각한 일본에서 (낮은 수준조차) 임금을 주지 못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수익성이 낮다는 뜻이다. 생산성이 낮은 기업이 높은 임금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상황에 따라 파산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생산성 낮은 기업이 퇴출되고 생산성이 높은 기업이 생겨나는 새로운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한국과 일본은 어떻게 대응했다고 보는가. 한국은 빠르게 회복했지만, 일본은 저성장이 지속됐다. “(한국의 상황을) 자세하게 알지는 못한다. 다만 고통스러운 구조개혁 속도 차이가 (한국과 일본이 다른 길을 간) 원인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지금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장기 고용 제도가 지속되고 있는데, 고용 안정 측면에서 보호받는 노동자들에겐 긍정적이지만 경제 변화에 적응하고 노동력을 재분배하는 의미로는 부정적이다. 이런 게 일본 성장률 하락 요인이 됐다. 일본에서는 2010년대 초반 삼성과 경쟁하던 전기 제조업체들이 경쟁력 저하는 엔고 탓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실제로 엔화가 약세로 돌아섰음에도 일본 전자업체 경쟁력은 회복되지 않았다. 결국 일본 기업 경쟁력 약화가 근본적 원인이었다.” ―이제는 한국이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가격 상승 및 가계부채를 감안해 기준금리를 쉽게 낮추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과, 고령화 및 재정적자 확대 우려를 고려해 완화적 통화 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시각이 맞선다. “추세적 잠재 성장률 하락 문제는 금융 완화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금융 시스템이 불안해지면 경제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 현 부채 증가 상황과 추세를 살피면서 (이를 감당할) 충분한 체력을 갖추고 있는지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이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잠재 성장률 둔화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했다. 이는 일본 경제 문제점 및 해결책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IMF 보고서를 직접 읽어보지 못했다. 한국에 그런 논의가 있다면 일본이 직면한 상황, 특히 내가 일본은행 총재 시절 경험했던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일본 경제가 침체하는 구조적 요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이를 두고 일본은행이 해야 할 일은 하지 않는다고 큰 비판을 받았다.” ―그렇다면 중앙은행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인가.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다. 원인이 어쨌든 간에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면 금융 긴축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다. 또 하나는 금융 시스템이 불안정해졌을 때 ‘최후의 대부자’로서 금융 시스템 안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잠재 성장률을 끌어올릴 순 없다. 문제는 잠재 성장률 저하와 경기 순환적 침체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막연하게 경기가 나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과거와 같은 고도 경제성장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는 걸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중앙은행이 대응하겠다고 나서면 결국 영원히 금융완화를 지속하겠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한일 양국 공통 과제 중 하나가 저출산이다. 특히 한국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일본이 한국보다 먼저 저출산 문제를 경험하고 있지만, 일본 역시 충분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인구 감소 문제의 심각성을 아직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배워야 할 가장 큰 교훈은 ‘조기에 대처하라’는 것이다. 사회적 관행을 재검토하는 것도 중요하다. 인구 감소는 종합적인 사회 문제 축소판이다. 출산율 저하 배경 중 하나는 가사, 육아 부담이 여성에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남성의 가사, 육아 참여가 중요하다. 미래에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논의하고 필요한 검토를 해야 한다.” ―이웃 나라 중앙은행 총재 출신으로서 한국 경제에 조언을 한다면…. “한국 경제에 대한 지식이 제한적이라 조언을 하기 조심스럽다. 실제로 일본이 서구로부터 받은 많은 조언은 잘못됐다. 그것을 떠올리면 내가 한국에 같은 일을 할까 봐 걱정된다. 어느 나라든 고유한 사회 관행 등이 존재하는데, 이를 무시한 채 조언하면 안 된다. 다만 다른 나라 경험에서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될 만한 걸 찾아내는 노력은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일본과 한국은 공통점이 많다. 고도 성장에서 안정적 성장으로 전환된 뒤 급속한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를 겪고 있다. 유교 문화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사회 모습도 비슷하다. 양국이 현재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인 인구 감소에 대해 서로 고민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노력에 대해 전문가들끼리 논의한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시라카와 마사아키 전 일본은행 총재1949년 일본 후쿠오카현 출생. 도쿄대 경제학과를 나와 1972년 일본은행에 입행했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고 일본 은행 이사를 거쳐 2008년 부총재에 올랐다. 그해 3월 야당 다수 참의원(상원)에서 일본은행 총재 인사안이 부결돼 총재 직무대행이 됐고, 한 달여 뒤 총재로 공식 취임했다. 돈을 무제한적으로 푸는 ‘아베노믹스’에 이견을 표명하면서 임기 만료 전인 2013년 4월 사임했다. 현재는 아오야마가쿠인대 특별 초빙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는 29일 “내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는 가운데 한국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자주 열어 한일관계를 크게 비약하는 해로 만들자는 데에 (의견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이시바 총리는 이날 국회 연설에서 지난달 1일 취임 이후 외교 성과를 언급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시바 총리는 “일미한(한미일) 3개국 정상회담도 했다”고도 밝혔다.앞서 윤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는 지난달 초순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가 열린 라오스와 이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개최된 페루에서 각각 정상회담을 열어 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확인한 바 있다. 페루에서는 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이시바 총리가 한미일 정상회의를 개최했다.이시바 총리는 납북 일본인 피해자 문제가 이시바 정권의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하면서 “미일,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지속적인 협력을 확인했다”고 언급했다.앞서 이시바 총리는 지난달 4일 취임 후 첫 국회 연설에서 한일관계에 대해 “현재 전략 환경 아래서 한일이 긴밀히 협력해 나가는 것은 쌍방의 이익에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 외무성이 테러, 분쟁 등에 대한 자국민 보호와 경제외교 업무 강화를 위해 20여 년 만에 대규모 조직 개편에 나선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8일 보도했다. 일본인 및 일본 기업이 해외에서 과거보다 규모와 피해가 커진 사건 사고에 휘말릴 때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취지다. 외무성은 테러와 분쟁 등 사안별로 대응하도록 한 기존 영사 업무에 변화를 줘 평시와 유사시로 구분해 담당 부서를 개편한다. 해외 체류 자국민이 큰 사건을 당했을 때 대응하는 ‘해외 국민 긴급 사태과’와 평상시 국민 보호를 담당하는 조직을 영사국에 각각 신설한다. 일본 정부는 올 9월 자국 기업이 많은 중국 선전에서 일본인학교 초등학생 피습 사건이 있었던 점을 고려해 유사시 사건 발생 시점부터 수습까지 일관성 있게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출 방침이다. 긴급한 업무를 다루는 조직을 따로 분리해 빠른 대응이 가능하게 구성하겠다는 것. 외무성은 경제외교와 관련해 국제 경제질서 구축 전략과 인공지능(AI), 디지털, 친환경 정책 수립을 담당하는 경제외교전략과를 설치한다. 또 경제안보를 담당하는 경제안전보장과를 신설해 인원을 늘리고, 일본 기업의 개발도상국 진출을 돕기 위해 주요 재외 공관에 ‘경제광역담당관’을 둘 계획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부처 간 업무 중복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의 산업통상자원부에 해당하는 경제산업성은 기존 부서를 개편해 무역경제안보국을 설치했고, 내각관방에도 경제안전실이 있다. 외무성은 해당 조직을 경제 외교의 중심으로 두겠다는 구상이지만 부처 간 엇박자가 나거나 유기적 협조가 이뤄지지 않으면 오히려 정책 추진에 장애가 될 수 있다. 한편 외무성은 경제국에 있던 유럽연합(EU) 경제 담당 조직을 유럽국으로 옮겨 EU를 상대로 정치·경제를 통합한 외교를 추진한다. 자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미국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과의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조직 개편은 영사 담당 부서의 격을 높여 영사국을 신설한 2004년 이후 최대 규모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한국과 일본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불면(不眠) 대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21년 통계에 따르면 일본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 28분으로 33개 회원국 중 최하위, 한국인(7시간 41분)은 뒤에서 2등이다. 한밤에도 조명 밑에서 골프를 치고 새벽에 음식 배달을 시켜 먹는 한국과 “24시간 싸울 수 있습니까”라는 자양강장제 광고로 잠들지 않는 샐러리맨을 칭송하던 일본은 비슷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푹 잘 수만 있다면 고가의 매트리스를 구입하고, 비싼 건강식품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사람들 역시 양국 모두 많다.》숙면이 건강에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밤잠을 아껴 가며 공부하고 일을 해야 성실하다고 인정받는 ‘근면 신화’도 굳건하다. 잠은 왜 중요할까. 어떻게 하면 숙면을 취할 수 있을까. 세계적인 수면 학자인 야나기사와 마사시(柳沢正史) 일본 쓰쿠바대 국제통합 수면의과학 연구기구(IIIS) 기구장(교수)을 12일 이바라키현 쓰쿠바대 캠퍼스에서 만나 잠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과 일본은 세계적으로 수면시간이 짧은 나라로 알려졌다. “세계적으로도 특이하다. 중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는 이렇지 않다. 일본도 1960년만 해도 지금보다 1시간 이상 오래 잤다. 유럽과 비슷한 수준으로 잔 것이다. 이후 고도 경제 성장이 본격화되면서 수면시간이 급격히 줄었다. 24시간 영업하는 가게도, 밤에 활동하는 젊은이도 많아졌다. 한국도 비슷하지 않나.” ―한일 모두 ‘4당5락(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낙방한다)’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반대다. 7락8당(7시간 자면 떨어지고 8시간 자면 붙는다)이다. 제대로 안 자면 안 된다. 두 나라는 가치관이 비슷한 것 같다. 잠자는 시간을 아껴 노력하는 것을 미덕으로 보는 문화가 있다. 특히 가치관이 형성되는 중고교 학생 때 그런 환경을 접하니 평생 그런 생각을 갖고 산다.” ―한국에서는 ‘잘 거 다 자면 언제 성공하나’라는 생각이 강하다. “그러니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지 않겠나. 일본도 비슷하다. 고등학생들 보면 다들 졸려 한다. 공부 효율이 떨어지고,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수면시간이 줄어드는 악순환이다.” 야나기사와 교수는 “일본인과 서양인은 수면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일본인은 일하고, 공부하고, 사람 사귀고, 학원 다니고, 취미 생활 하느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 그러니 ‘아까운’ 수면시간을 헐어 열심히 살고, 남는 시간에 잠을 잔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7시간이든 8시간이든 수면시간을 먼저 확보하고, 남는 16∼17시간을 쪼개 생활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밤샘하며 공부하고 일하면 능률이 오를까. “절대 아니다. 얼마 전 일본에서 전국 1등으로 꼽히는 명문고 학생 50명 정도가 연구실 견학을 왔다. 나는 고교생을 만나면 몇 시간 자는지 물어본다. 보통 일본 수험생은 6시간 이하가 대부분이고, 5시간 이하도 드물지 않다. 그런데 이 학교 학생들은 다들 7, 8시간씩 잔다고 했다. 우등생들은 잠을 안 자고 공부하면 효율이 떨어진다는 걸 안다.” ―얼마나 자야 충분한가. “연령대에 따라 다르다. 20대 젊은이라면 8시간도 부족하다. 60세가 넘으면 7시간 미만도 괜찮다. 또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다. 자신에게 충분한 수면시간을 알고 싶다면, 최소한 4일 연속 아무 방해도 받지 말고 잘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오래 자 봐라. 첫날은 대부분 많이 자는데, 이틀째 이후에는 첫날만큼 오래 자지 않는다. 사흘째 이후에는 더 짧아진다. 그렇게 해서 몸이 편해지는 수면시간이 자신의 필요 수면량이다.”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나는 게 좋은가. “오후 11∼12시에 잠들고 오전 7시 정도에 깨는 게 표준이지만 어디까지나 일반론이다. 야행성이라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게 더 좋다. 자신에게 맞는 수면량이 얼마나 되는지, 자신이 아침형 인간인지 올빼미형인지 살펴보고 자신의 일정 등을 고려해서 정하면 된다.” ―나이가 들면서 깊게 잠들지 못한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많다. “정상이다. 수면의 노화 현상이다. 20대라면 깊게 푹 잘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얕게 자고, 중간에 깨서 화장실 가는 경우도 많아지면서 잠을 깊이 못 잔다. 체력이 떨어지듯 수면의 질도 나이가 들수록 떨어진다.” ―낮잠을 자는 건 건강에 좋은가. “영어로 파워 냅(power nap)이라고 하는데, 방법이 있다. 늦어도 오후 2시 전에, 점심 식사 후 15∼20분 정도 낮잠을 자는 건 좋다. 30분 이상 낮잠을 자면 깊은 수면에 빠지니 일어나기 어렵고 깨어나면 머리가 멍한 상태가 지속된다. 중요한 건 낮잠은 어디까지나 응급처치일 뿐이란 점이다. 이상적으로는 밤에 충분히 잠을 자면 낮에 졸리지 않으니, 낮잠이 필요 없다.” ―업무 특성상 교대근무로 취침 시간이 매일 바뀌는 직장인도 많다. “교대근무를 하면서 건강하게 수면을 취하는 건 정말 어렵다. 생물학적으로 생체 리듬에 어긋나는 생활이다. 솔직히 뭐라고 하기 참 어렵다. 다만 현실적으로 교대근무를 피할 수 없다면, 최대한 잘 수 있을 때 자 두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수면 부족이 되지 않도록 졸릴 때 참지 말고 자야 한다.” 현대인들이 잠들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스마트폰이다. 자기 전 잠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손을 갖다 대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런저런 콘텐츠를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제대로 잠들어 보겠다고 스마트폰을 끄거나 침실 밖에 두기도 하지만, 버릇돼 다시 스마트폰을 가져와 머리맡에 두고 만지작대는 경우도 많다. ―스마트폰은 ‘수면의 적’인 것 같다. “어떤 전문가는 절대 침실에 스마트폰을 두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금기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뭘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가장 안 좋은 건 게임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팅도 좋지 않다. 요즘 유행하는 쇼츠(짧은 동영상)는 계속 보면 뇌 속의 도파민이 분비돼 뇌의 흥분 상태가 지속되고 잠이 오지 않는다.” ―금기시할 필요가 없다면 뭘 보면 좋은가. “너무 짧지 않고 느긋하게 지속되는 동영상을 멍하게 보고 있으면 힐링이 된다는 분이 꽤 많다. 나는 지루한 논문을 스마트폰 파일로 읽다 보면 금방 졸음이 쏟아진다. 또 장기 해설 프로그램을 보는 게 취미인데, 장기 한 수 한 수를 해설해 주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보면 졸린다. 그런 식으로 졸음을 유발하는 뭔가를 찾아 취침 루틴으로 만들어 봐라. 의지가 약해 게임, 채팅, 쇼츠 감상밖에 못 하겠다면 스마트폰을 스스로 금지하길 권한다.” ―스마트폰의 밝은 빛도 수면에 안 좋지 않나. “블루라이트(푸른 빛)가 멜라토닌 호르몬을 억제해 각성 작용을 일으켜 좋지 않다고 한다. 다만 요즘 스마트폰은 블루라이트 자동 차단 기능이 있어서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집 조명이다. 일본 주택은 거실에 하얀 조명을 너무 밝게 켜 놓는다. 수면에는 스마트폰보다 천장 조명이 더 해롭다.” ―그렇다면 집을 어둡게 해도 되나. “침실은 기본적으로 어두워야 한다. 어두우면 불안하다는 분도 계시는데, 그러면 발밑을 비추는 약한 부분 조명을 쓰고, 암막 커튼을 적절히 사용하면 된다. 잠자리에 들기 전 적어도 오후 7∼8시부터는 어둡게 하고, 흰 조명보다는 노란 조명이 좋다. 일본인은 태평양전쟁 때 겪은 등화관제 트라우마가 있지 않나 싶다. 또 어두우면 가난하고 불쌍하고, 밝으면 풍요롭다고 생각한다. 서양에선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숫자로는 100럭스 미만, 어두운 밤길 가로등 아래 수준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일본 주택 건축 조도 지침은 500럭스다. 너무 밝다.”(한국은 거실에 300∼400럭스 안팎의 조명을 권유하는 업체가 많다.) ―한국에서는 침구 등 비싼 수면 제품이 인기를 끈다. “가격과 상관없이 자기 취향에 맞는 제품을 쓰면 된다. 특정 베개를 쓰면 과학적으로 잠을 깊이 잘 수 있다고 홍보하는 제품이 많은데, 광고에 불과하다. 수면 기술이라는 말에 너무 현혹되지 말라.” ―불면증 때문에 수면제를 먹고 자는 사람도 많은데…. “신뢰할 만한 의사 처방을 받아 복용하는 건 안전하다. 습관이 되기 쉬운 약도 있는데, 의사와 상의해 적절한 시기에 졸업한다는 생각으로 복용하면 된다. 너무 과도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마음대로 복용량을 늘리거나 임의로 끊는 건 좋지 않다. 다만 잠들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만큼은 피하는 게 좋다. 술에 취해 잠들 순 있지만, 수면의 질이 매우 나빠진다. 술을 마셔야 잠이 든다면 병원에서 수면제를 처방받는 게 좋다.”야나기사와 마사시 교수1960년 도쿄 출신. 국립 쓰쿠바대 의학박사. 미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 의료센터 교수를 거쳐 세계 최대 수면 연구소로 꼽히는 ‘쓰쿠바대 국제통합 수면의과학 연구기구(IIIS)’를 이끌고 있다. 수면과 잠이 깨는 걸 조절하는 신경전달 물질 ‘오렉신(orexin)’을 발견했다. 수면 관련 유전자 및 불면증 연구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2023년 생명과학 브레이크스루상 등을 수상했고 유력한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로도 꼽힌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26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회의 계기에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일본 외상과 약식 회담을 했지만 사도광산 추도식 문제에 대해 유감 표명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두 장관은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불거진 문제가 양국 관계 발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고 양국 협력의 긍정적 모멘텀을 이어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만 밝혔다. 외교부는 이날 사도광산 추도식 협의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보여준 태도에 대해 전날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사도광산 추도식 논란이 불거진 뒤 우리가 직접 일본에 ‘유감’ 표명 입장을 밝힌 건 처음이다. 하지만 정부는 추도식 다음 날인 25일 유감을 표명했고 이 사실도 하루 뒤에야 공개했다. 또 주한 일본대사 등을 ‘초치’(항의를 위해 외교부 본부 등으로 불러들이는 것)하는 등의 방식이 아닌, “주한 일본대사관 측과 접촉해 이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고만 했다. 정부가 그동안 일본 측이 사도광산 추도식 협의·진행 과정에서 보여 온 무성의한 태도에 ‘로키(low-key)’ 대응을 유지하다가 ‘외교 참사’ 등 비판 여론이 커지자 ‘뒷북 대응’ ‘저자세 외교’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日 어떤 태도에 유감인지 말하기 어렵다”강인선 외교부 2차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한일 정부가 긴밀히 소통해 왔음에도 일본 측이 우리 측에 제시한 최종 추도식 계획은 사도광산 등재 당시 한일 간 합의 수준에 부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사도광산이 등재됐던 7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 대표가 했던 약속 중 하나는 한국인 노동자를 진심으로 추모하며 추도식을 매년 개최하겠다는 것”이라며 이같이 밝힌 것. 그러면서 우리가 추도식에 불참한 결정 자체가 “일본에 강한 유감을 표명한 것”이라고도 했다. 다만 외교부는 이번 유감 표명이 ‘초치’가 아닌 접촉 형식이었다고 이날 전했다. 통상 일본이 독도, 교과서 등 과거사 도발 시 우리 외교부는 외교적 항의 성격이 담긴 주한 일본대사관 고위 당국자 초치를 해 왔다. ‘한국 정부가 유감을 표명한 일본 정부의 태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묻자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말하기 어렵다”고만 했다. 오히려 정부는 이번 추도식 논란이 더 큰 한일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관계 관리 필요성을 강조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날 외교부 고위 관계자도 “양국이 도움이 되는 관계 발전의 모멘텀을 잃지 않고 지속해 나간다는 입장은 이어진다”며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한일 관계 미래 협력은 협력대로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다른 정부 소식통은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을 앞둔 만큼 한일 관계 발전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라며 “우리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전제로 우리 정부가 약속 받은 핵심 조치들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방치해 초기 대응을 잘못했고, 그 후속 조치까지 늦었다는 비판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이번 논란이 커지지 않길 바라며 지나치게 신중하게 접근하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은 꼴”이라고 토로했다.● 日 “한국, 사실에 근거해 판단하길” 주장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 측의 추도식 불참 이유에 대한 질문에 “한국 측 설명에 코멘트할 입장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의 전략 환경하에서 한일이 긴밀히 협력해 가는 것은 쌍방의 이익에 있어 중요하다”며 “한일 간에는 어려운 문제도 있지만 계속 긴밀하게 의사소통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언론을 통해 사도광산 추도식에 불참한 한국 정부의 책임론을 더 강하게 제기하는 모습이다. 이날 아사히신문은 외무성 간부가 전날 교도통신 기사 정정 후 “추도 행사는 이미 끝났다. 어쩔 도리가 없다”며 “한국 측이 오해했다는 걸 분명히 알게 됐으니 한일 관계에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외무성 간부는 “(추도식과)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원래 관계가 없다. 연결시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며 “한국 측이 사실에 근거해 판단하길 바란다”고 언급했다고 신문은 전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 측의 무성의한 태도로 논란을 빚은 사도광산 추도식을 둘러싸고 일본 정부가 갈수록 수위를 높여가며 책임을 회피하고 한국을 비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쿠이나 아키코(生稲晃子) 일본 외무성 정무관이 2022년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는 교도통신 보도가 오보로 알려진 뒤, 한국이 해당 정무관 참석만을 이유로 추도식에 불참했다는 취지로 주장하며 책임을 떠넘기는 분위기가 역력한 것이다.26일 아사히신문은 이날 외무성 간부가 전날 교도통신 기사 정정 후 “추도 행사는 이미 끝났다. 어쩔 도리가 없다”며 “한국 측이 오해했다는 걸 분명히 알게 됐으니 한일 관계에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외무성 간부는 “(추도식과) 야스쿠니 참배는 원래 관계가 없다. 연결시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며 “한국 측이 사실에 근거해 판단하길 바란다”고 언급했다고 신문은 전했다.사도광산 추도식을 둘러싸고 양국은 이견을 보이며 갈등 조짐을 보인 가운데, 일본 측은 예상보다 강한 메시지를 내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 측이 유화 정책을 편 뒤 일본이 도발을 감행하고, 한국이 이에 대응해 강경책을 시행하면 이를 꼬투리 잡아 일본이 거세게 반발하며 양국 관계가 경색되는 과거의 냉각 패턴이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이런 패턴은 과거에도 수 차례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인 1998년에는 양국 역사에 획을 그은 ‘김대중-오부치 선언’(1998년)이 나왔지만 2001년 일본이 침략을 미화한 역사 교과서 검정을 통과시켰다. 최상용 당시 주한 일본대사는 사실상의 소환인 일시귀국을 했다.이명박 전 대통령 때인 2008년에는 정상회담을 통해 셔틀외교를 복원했지만, 일본이 곧바로 독도 영유권 명기 교과서 해설서 발표로 관계가 냉각됐다. 2011년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로 정면 충돌한 뒤 이듬해 이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자 일본 측이 대사를 일시귀국시키며 급격히 얼어붙었다.한편 외교부는 26일 “추도식 관련 한일 협의 과정에서 일본이 보여준 태도에 대해 25일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사도광산 추도식을 둘러싸고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유감’이라는 단어를 쓴 건 이번이 처음이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 정부가 전날(24일) ‘사도광산 추도식’에 우리 정부가 불참한 것에 대해 “아쉽다”고 25일 밝혔다. 추도식에서 추모사 대신 내빈 인사 형식을 통해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강제 동원이나 이에 대한 사죄를 언급하지 않는 등 진정성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에도 ‘반쪽 행사’ 파행 책임을 한국 정부에만 돌린 것이다. 이날 공교롭게도 이쿠이나 아키코(生稲晃子)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의 2년 전 참의원 시절 야스쿠니 신사 참배 사실을 보도했던 일본 교도통신은 해당 보도가 오보라고 밝혔다. 사도광산 관련 일본의 약속 위반 등 무성의한 조치가 이어질 때 문제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하고 방관해 ‘외교 실패’ 지적을 받은 우리 정부는 이날도 추도식에 대해 일본 정부를 비판하거나 유감을 표명하는 등의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정부 내부에서도 “무능 외교”라는 비판이 나왔다. 다만 외교부는 교도통신의 오보 입장에 대해 “추도식 불참은 일본 측 추도사 내용 등 추도식 관련 사항이 당초 사도광산 등재 시 합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한국 측이 (추도식에) 참가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殘念)고 생각한다”고 했다. 우리 정부의 불참 결정에 사실상 불만스럽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 일본 아사히신문은 “한국이 정무관급 이상을 보내 달라고 해 보내줬더니 왜 이렇게 된 것이냐”고 외무성 간부가 투덜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사죄’ 빠진 추도식에 침묵한 정부, 뒤늦게 “日이 합의 미달해 불참”[日 ‘사도광산’ 적반하장]日, 추도사 등 핵심조치 무시해놓고 “韓 불참 아쉽다” 되레 불만 제기용산 “외교부에 자율 주고 간섭안해”… 日대표 야스쿠니 참배 오보 논란도“행사 대응이나 그 내용에 대해 신중한 검토와 대응을 요구하는 취지로 한국 측에 요청했다.” 하야시 장관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우리 정부가 ‘사도광산 추도식’에 대해 “(일본) 현지 관계자가 정중하게 준비해 개최한 행사에 참가하지 않고 자체 행사를 열기로 한 경위”를 언급하며 이같이 밝혔다. 전날 일본 측이 주최한 사도광산 추도식을 사실상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축하하는 경축식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에도 우리 정부의 추도식 불참 결정에 대해서만 불만을 드러낸 것. 전날 추도식에서 일본 정부는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강제동원이나 사죄 표현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기쁨’이나 ‘활약’이라는 단어만 썼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이날 일본 정부가 추도식에 보인 모습에 대한 비판이나 외교 조치 없이 ‘로키(low-key)’ 대응을 유지했다. 일본이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전제로 우리에게 약속한 핵심 조치들을 무시해 “뒤통수를 맞았다”는 비판까지 나오지만 ‘신중 모드’로만 일관해 지나치게 저자세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실도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사도광산 추도식에 대한 구체적 협의와 추진 일정에 대해 외교부에 자율성을 주고 간섭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 소식통은 “유감이나 항의를 전달할 몇 가지 대응 선택지가 검토되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사도광산이 한일 관계 정상화 기조를 뒤흔들어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있어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는 이번 추도식 논란이 한일 간 외교 갈등으로 확산되지 않게끔 관리하려는 뜻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내년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인 데다 한일 관계 정상화에 한미일 안보 공조 강화 등 흐름 등까지 의식하고 있다는 것. 특히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한미일 공조 등에 있어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한일 관계를 다져놓아야 한다는 기류가 반영됐다고 한다. 정부 소식통은 “물론 (일본의 행동이) 성에 차진 않지만 양국 모두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데는 이견이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이런 (적반하장식) 태도가 계속된다면 정부도 뭐라도 하긴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정부는 일단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 초치 등을 비롯한 여러 유감 및 항의 표시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의 소환 가능성도 거론된다. 대사의 일시 귀국은 상대국 정부에 불쾌감과 항의를 표명하는 사실상 가장 강한 외교적 수단이다.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회의 참석을 위해 이탈리아로 향한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현지에서 이와야 다케시(巖屋毅) 일본 외상과 회담을 갖고 우리 정부의 유감 혹은 항의의 뜻을 전달하는 방안도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날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인근에선 우리 정부 주최로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이 열렸다. 한국 정부 측은 이날 추도식에서 참석자 발언이 없을 것이라고 공지했다. 하지만 일부 일본 기자들은 박철희 대사에게 “왜 어제 추도식에 불참했냐”는 등 목소리를 높이며 물었다. 박 대사는 일본어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만 남긴 채 자리를 떠났다. 이쿠이나 정무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보도한 교도통신이 25일 “오보였다”며 사과하자 우리 정부는 “정부가 일본 측 추도식에 불참하고 자체 추도 행사를 개최한 것은 과거사에 대해 일 측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22일 교도통신 보도 등을 근거로 이쿠이나 정무관의 신사 참배 이력에 대해 일본 측에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는 24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사실이 없다는 일본 정부 주장에 대해 “2022년 7월 참의원 당선 및 임기 개시 이후인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사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제강점기 일본 사도광산에 끌려간 조선인 노동자를 추모하는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이 25일 한국 정부 주최로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인근에서 열렸다. 한국 정부 관계자와 한국인 유가족들은 전날 모욕에 가까운 행사 진행으로 파행을 빚은 일본 측 주최 추도회에 불참했다. 사도광산 인근 조선인 기숙사였던 ‘제4상애료’ 터에서 열린 추도식에는 한국 유족 9명,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를 비롯한 주일 한국대사관 관계자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일본 측은 전날 추도사 없이 내빈 인사로 대신하면서 강제동원 및 사과를 언급하지 않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자축 행사로 추도식을 변질시켰다. 한국 정부 추도식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 추도사 낭독, 묵념, 헌화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박 대사는 추도사에서 “80여년 전 사도광산에 강제로 동원돼 가혹한 노동에 지쳐 스러져 간 한국인 노동자분들의 영령에 머리 숙여 깊은 애도를 표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이어 “사도광산의 역사 뒤에는 한국인 노동자분들의 눈물과 희생이 있었음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며 “추도식이 가혹한 환경 속에서 경험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신 모든 한국인 노동자를 기억하는 진정한 추도의 날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고 강조했다. 추도식에 참가한 유가족들은 대체로 차분하게 추도식에 참가했다. 일부 유족은 행사 도중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눈물을 닦기도 했다. 공식 추도식 후 유가족들은 각자 별도의 추도 시간을 가졌다. 한 유족은 “우리 자손들이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 기대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겠다”며 기도를 했다. 한국 정부 측은 이날 추도식에서 박 대사 등의 발언이 없을 것이라고 사전에 밝혔다. 일부 일본 기자들은 박 대사에게 “왜 어제 추도식에 불참했냐” “별도 추도 행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목소리를 높이며 물었다. 박 대사는 일본어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만 남긴 채 자리를 떠났다. 일부 일본 기자들은 주일 한국대사관 관계자에 “왜 일본어 통역을 제공하지 않느냐” “추도사 원고를 일본어로 달라”고 항의했다. 전날 일본 정부는 추도식에서 한국어 통역은 커녕 자국어인 일본어 인사 원고도 제공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전날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외무성 관계자를 참석시켰지만, 이 관계자는 현장에서 한국 기자를 밀치며 취재를 방해했다. 사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여기는 일본입니다. 일해 주신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런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24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을 주최한 나카노 고(中野洸) 사도광산 추도식 실행위원장은 조선인 노동자 등을 추도하는 자리에서 감사를 표하는 게 적절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결과적으로 추도식은 이름뿐이고 세계유산 등록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나카노 위원장은 이날 개회사에서 “사도광산에 관여한 모든 분에게 광산이 세계의 보배로 인정받았음을 보고드릴 수 있어 기쁘다”며 “광산에서 열심히 일한 노동자들의 활약 덕분”이라고 말했다. 차별과 고통을 받았던 조선인 강제노역은 ‘활약’이 됐고, 엄숙해야 할 추도 대신 ‘기쁨’이 강조됐다. 이날 추도식은 오후 1시 개최 예정이었지만, 오전 10시 40분이 넘어서야 ‘사도광산 추도식장’ 임시 간판이 설치됐다. 니가타시와 사도 곳곳에 세계유산 등록을 경축하는 포스터 등이 걸렸지만, 추도식 안내는 어디에도 없었다. 추도식장은 오전 11시 반부터 입장객 접수를 했다. 일본 측은 이때도 자국 정부 대표인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 외 참석자와 식순을 공개하지 않았다. 출입이 가능해진 낮 12시 이후 배포된 안내문과 의자에 붙은 이름표를 보고 식순과 주요 참석자 파악이 가능했다. 식순에 ‘추도사’ 순서는 없었다. 아라이 마리 사도시의회 의원은 “한국인분들이 고생했고 아픔이 있었다는 걸 공감한다는 말이 먼저 나왔어야 한다. (추도식에) 감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이날 불참한 한국 정부는 25일 오전 9시 사도광산 인근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별도 추도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한국 측 추도식엔 박철희 주일 대사, 한국 유가족 9명 등이 참석한다.사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 있는 인사가 24일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에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해 논란이 되자 정부가 행사에 불참했다. 이날 추도식에 참석한 이쿠이나 아키코(生稲晃子)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은 내빈 인사에서 “광산 노동자 중에는 1940년대 일본의 전쟁 중 노동자에 관한 정책에 기초해 한반도에서 온 많은 분이 포함돼 있었다”며 “전쟁이라는 특수한 사회 상황하에서라고 해도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면서 갱내의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에서 곤란한 노동에 종사했다”고 밝혔다. 약 1500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인 노동자가 강제 동원돼 차별받은 사실은 물론이고 사죄나 유감의 표현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 추도식은 앞서 7월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우리 정부에 매년 개최하겠다고 약속한 핵심 조치였으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 인사를 참석시키면서 첫해부터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하는 파행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일본은 오히려 추도식 직전인 이날 주한 일본대사관을 통해 배포한 입장을 통해 “한국과 정중한 의사소통을 실시해 왔다. 한국 측이 불참한다면 유감스럽다”며 행사 파행의 책임을 우리 정부에 돌렸다. 외교부는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 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 전날인 23일 “추도식을 둘러싼 양국 외교당국 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추도식 이전에 양국이 수용 가능한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불참 계획을 밝혔다. 당초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23일 일본에 도착한 정부 당국자들과 유가족 9명은 25일 사도광산 옛 기숙사 터에서 별도 추도식을 가질 예정이다. 정부는 22일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 추도식 참석 일본 대표로 발표한 이쿠이나 정무관의 이력이 논란이 되자 일본 측에 인사 교체를 요청했으나 일본이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추도식에서 일본 대표의 추도사 내용에 추모와 반성 등의 의미를 담아 달라는 정부 요청에도 일본은 명확한 입장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동안 일본이 참석자를 포함한 추도식 준비 과정에서 강제 노역을 한 조선인 노동자를 기리는 진정성 있는 조치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이를 우리 정부가 사실상 방관하면서 ‘총체적 외교 참사’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日대표 ‘강제동원-사죄’ 언급 안해… 정부, 日 약속위반에 “협의”만[사도광산 외교 참사]야스쿠니 참배전력 日대표 논란에… 정부 “日 고위급 참석” 안일 대응전시물에 ‘강제’ 표현 빠져도 방관日, 한국측 좌석 치워달라 요청 거부… 되레 “韓 불참 유감” 파행책임 돌려“광산 노동자 중에는 1940년대 일본의 전쟁 중 노동자에 관한 정책에 기초해 한반도에서 온 많은 분이 포함돼 있었다.”24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 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에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한 이쿠이나 아키코(生稲晃子)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은 ‘내빈 인사’라는 형식으로 사도 광산에서 일한 조선인 노동자를 언급했다. 이를 ‘추도사’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는 조선인 노동자를 포함한 광산 노동자들이 “갱내의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에서 곤란한 노동에 종사했다”고 했지만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 동원됐다는 역사적 사실은 물론이고 사죄나 유감 표현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강제 노역-사죄 언급 없이 오히려 “불참 유감”이는 양국 합의로 올 7월 세계문화유산 등재 확정과 동시에 사도광산 인근에 설치한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관의 전시물보다도 후퇴한 것이다. 당시 일본 측은 전시물에 모집, 알선, 징용에 조선총독부가 관여한 사실을 적시했다. 또 “한반도 출신 노동자는 일본 출신자와 비교해 위험한 작업에 종사한 사람 비율이 높았다”며 차별받은 내용도 넣었다. 우리 정부는 전시물에는 ‘강제’라는 표현이 없었지만 간접적으로나마 강제성을 보여 줬다고 평가했다.하지만 이쿠이나 정무관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이력을 문제 삼아 우리 정부가 불참한 이번 행사의 ‘내빈 인사’에는 이런 내용조차 없었다. 추도식은 ‘개회-묵념-개회사-인사-내빈 인사-헌화-폐회’ 순으로 40여 분간 진행됐다. ‘추도식’ 명칭과 달리 ‘추도사’라는 식순 자체가 없었다. 이쿠이나 정무관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이력을 문제 삼아 우리 정부와 유족이 불참해 좌석 절반 이상이 텅 비어 있었다. 정부는 빈자리가 된 의자를 치워 달라고 했지만 일본 측은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일본에서는 오히려 한국 때문에 행사가 파행됐다며 책임을 한국에 돌리는 분위기가 크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의 한 간부는 “일본 측은 성심성의껏 대응해 왔다. 심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외무성의 한 간부는 교도통신에 “한국이 국내 여론에 과잉 반응하고 있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정부, 진정성 없는 日 조치에도 안일 대응”정부는 7월 일본이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전 조선인 강제 노역 관련 전시시설 마련 등 일본의 ‘선제적 조치’를 이끌어냈다는 점을 성과로 내세워 왔다. 하지만 전시물의 ‘강제’ 표현을 비롯해 추도식 준비 과정 등 일본의 약속에 대한 이행 전반이 어느 것 하나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고, 결국 한국 정부와 유가족들이 추도식을 ‘보이콧’했다.특히 일본이 후속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논란이 된 2015년 군함도 등재 당시처럼 우리 정부가 ‘뒤통수’를 맞은 모양새가 되면서 총체적인 외교 부실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정부 소식통은 “일본의 약속 이행에 진정성이 없다는 논란이 계속 제기됐지만 우리 정부가 안일하게 대응한 측면은 있다”고 했다. 전시시설 설치, 추도식 개최 등 큰 틀의 약속 이행 여부 외 일본의 세부적인 후속 조치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것.당초 양국이 합의한, 매년 7, 8월경 개최될 예정이던 추도식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추도식의 명칭도 추도 대상이 불분명한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확정됐다. 유족의 참석 경비도 전부 한국 정부가 부담했다. 추도식이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됐다’는 것을 관련된 분들에게 보고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하나즈미 히데요 니가타현 지사의 발언에도 정부는 “일본과 협의 중”이라는 반응만 보였다.일본 정부는 추도사에 강제 징용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사죄나 유감 등을 언급해 달라는 정부의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고 추도식 이틀 전인 22일에야 정부 대표를 통보했다. 그럼에도 외교부는 이쿠이나 정무관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이력 논란이 불거진 22일 밤 “일본 정부의 고위급 인사 참석이 필요하다는 우리 정부의 요구를 일본이 수용해 외무성 정무관이 참석한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사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 있는 인사가 24일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에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해 논란이 되자 정부가 행사에 불참했다. 이날 추도식에 참석한 이쿠이나 아키코(生稲晃子) 정무관(차관급)은 내빈 인사에서 “광산 노동자 중에는 1940년대 일본의 전쟁 중 노동자에 관한 정책에 기초해 한반도에서 온 많은 분이 포함돼 있었다”며 “전쟁이라는 특수한 사회 상황하에서라고 해도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면서 갱내의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에서 곤란한 노동에 종사했다”고 밝혔다. 약 1500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인 노동자가 강제 동원돼 차별받은 사실은 물론이고 사죄나 유감의 표현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이 추도식은 앞서 7월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우리 정부에 매년 개최하겠다고 약속한 핵심 조치였으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 인사를 참석시키면서 첫해부터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하는 파행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일본은 오히려 추도식 직전인 이날 주한 일본대사관을 통해 배포한 입장을 통해 “한국과 정중한 의사소통을 실시해 왔다. 한국 측이 불참한다면 유감스럽다”며 행사 파행의 책임을 우리 정부에 돌렸다.외교부는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 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 전날인 23일 “추도식을 둘러싼 양국 외교당국 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추도식 이전에 양국이 수용 가능한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불참 계획을 밝혔다. 당초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23일 일본에 도착한 정부 당국자들과 유가족 9명은 25일 사도광산 옛 기숙사 터에서 별도 추도식을 가질 예정이다.정부는 22일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 추도식 참석 일본 대표로 발표한 이쿠이나 정무관의 이력이 논란이 되자 일본 측에 인사 교체를 요청했으나 일본이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추도식에서 일본 대표의 추도사 내용에 추모와 반성 등 의미를 담아 달라는 정부 요청에도 일본은 명확한 입장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그동안 일본이 참석자를 포함한 추도식 준비 과정에서 강제 노역을 한 조선인 노동자를 기리는 진정성 있는 조치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이를 우리 정부가 사실상 방관하면서 ‘총체적 외교 참사’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과거사 문제에서 한국이 먼저 조치를 취하거나 양보하면 일본이 호응할 것이라는 이른바 ‘일본이 물컵의 절반을 채울 것’이라는 선의에 기댄 현 정부 대일 외교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외교가에서 나온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여기는 일본입니다. 일해 주신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런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24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을 주최한 나카노 고(中野洸) 사도광산 추도식 실행위원장은 조선인 노동자 등을 추도하는 자리에서 감사를 표하는 게 적절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결과적으로 추도식은 이름뿐이고, 세계유산 등록을 자축하는 자리였다.나카노 위원장은 이날 개회사에서 “사도광산에 관여한 모든 분에게 광산이 세계의 보배로 인정받았음을 보고드릴 수 있어 기쁘다”며 “광산에서 열심히 일한 노동자들의 활약 덕분”이라고 말했다. 차별과 고통을 받았던 조선인 강제노역은 ‘활약’이 됐고, 엄숙해야 할 추도 대신 ‘기쁨’이 강조됐다.이날 추도식은 오후 1시 개최 예정이었지만, 오전 10시 40분이 넘어서야 ‘사도광산 추도식장’ 임시 간판이 설치됐다. 니가타시와 사도 곳곳에 세계유산 등록을 경축하는 포스터 등이 걸렸지만, 추도식 안내는 어디에도 없었다.추도식장은 오전 11시 반부터 입장객 접수를 받았다. 일본 측은 이때도 자국 정부 대표인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 외 참석자와 식순을 공개하지 않았다. 출입이 가능해진 낮 12시 이후 배포된 안내문과 의자에 붙은 이름표를 보고 식순과 주요 참석자 파악이 가능했다. 식순엔 ‘추도사’ 순서는 없었다.아라이 마리 사도시의회 의원은 “한국인분들이 고생했고 아픔이 있었다는 걸 공감한다는 말이 먼저 나왔어야 한다. (추도식에) 감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이날 불참한 한국 정부는 25일 오전 9시 사도광산 인근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별도 추도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한국 측 추도식엔 박철희 주일 대사, 한국 유가족 9명 등이 참석한다.사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2035년 배치를 목표로 일본과 영국, 이탈리아 3개국이 공동 개발하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참여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아사히신문이 21일 보도했다. ‘오일 머니’가 풍부한 사우디가 참여하면 자금 조달이 수월해지고 긴박한 중동 정세에도 관여할 수 있는 지렛대가 생길 수 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와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19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별도의 정상회담을 열고 사우디의 참여 여부를 논의했다. 영국 정부는 회담 뒤 “3국 정상이 차세대 전투기 공동 개발 프로젝트(GCAP)에 파트너 국가의 참여 확대를 논의했다”고 발표했다. 세 나라는 2022년 말 차세대 전투기 공동 개발을 결정했으며, 사우디는 이후 3국에 참여 의사를 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세 나라는 2022년 12월 일본 항공자위대 F-2 전투기, 영국·이탈리아 유로파이터의 후속 모델이 될 차세대 전투기를 함께 개발해 2035년까지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사업엔 영국 BAE시스템스와 롤스로이스,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등이 참여한다. 영국과 이탈리아는 자금 확보 측면에서 사우디의 참여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반면 일본은 신중한 견해를 내비쳐 왔다. 사우디가 참여하면 협의에 더 시간이 걸려 가뜩이나 지연되고 있는 프로젝트가 더 늘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미국 제재 대상인 러시아·중국 기업과의 무기 거래로 연계된 의혹이 있는 사우디에 대한 거부감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하지만 갈수록 중동 정세가 복잡해지면서 사우디와의 안보 협력이 중요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일본 내에서도 찬성론이 커지는 상황이다. 사우디는 그간 무기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들여왔지만 최근 미국 의존도를 낮추면서 수입국을 다양화하고 자체 방위산업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올 3월 무기 수출 제한 관련 지침까지 개정하며 차세대 전투기 수출에 공들여 왔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인 일본은 1967년 ‘무기 수출 3원칙’을 내세우며 스스로 무기 수출을 제한했다. 하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시절인 2014년 금지를 완화한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으로 대체했고, 올 3월 수출 가능 범위를 확대하며 무기 수출국으로 탈바꿈하려 하고 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 정부가 일정 수준 이상 근로소득이 있는 고령자의 연금 수급액을 깎는 ‘감액 제도’를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은퇴 뒤 일정액 이상 돈을 번다는 이유로 연금을 삭감하는 현 제도가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초고령사회가 된 현실에 맞지 않다는 이유다. 20일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25일 사회보장심의회(후생노동성 자문기구)에 이런 내용의 연금 제도 개정안을 제출한다. 일본 정부는 내년 정기국회 처리를 목표로 제도 개정을 추진한다. 한국 역시 일을 한다는 이유로 국민연금이 깎이는 고령자가 적지 않아 정부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 “450만 원 이상 벌어도 연금 안 깎아”일본에선 현재 65세 이상 고령자가 급여와 후생연금(한국 국민연금과 유사)을 합쳐 월 50만 엔(약 450만 원) 이상을 받으면 50만 엔 초과분의 절반만큼 연금을 깎거나 아예 지급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연금 30만 엔을 받는 65세 이상 고령자가 월 40만 엔 급여를 받으면 연금 10만 엔을 감액해 총 60만 엔만 가져간다. 후생노동성은 연금 감액 기준선을 현재 월 50만 엔에서 62만 엔(약 560만 원) 혹은 71만 엔(약 640만 원)으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준선이 62만 엔으로 높아지면 월 40만 엔 급여에 연금 30만 엔을 받는 65세 이상 근로자는 연금 감액분이 절반 이하(10만 엔→4만 엔)로 낮아진다. 기준선이 71만 엔으로 높아지면 이 근로자는 연금 삭감 없이 수급액 전액을 받는다. 현재 일본에서 일하면서 연금을 받는 65세 이상은 약 308만 명이다. 이 중 50만 명이 기준액을 초과한 연금 감액 대상이다. 이렇다 보니 ‘일해 봤자 연금만 깎인다’고 여겨 근로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게 일본 정부의 판단이다. 일각에선 고령자 근로 의욕 고취를 위해 감액 제도 자체를 없애자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이 경우 연금 재정이 부족해질 수 있어 일본 정부는 감액 기준액을 높이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 감액 제도를 없애면 연 4500억 엔의 재원이 필요하다는 게 일본 정부 계산이다. 기준액 인상에 따라 필요한 재원은 고소득 직장인 연금보험료를 올려 충당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갈수록 일손이 부족하고 고령자도 늘어나는 일본은 고령자를 근로 현장에 붙잡아 두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강구 중이다. 일본의 법정 정년은 60세이지만 근로자가 원하면 기업은 재고용, 계약직 전환 등의 방식으로 65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20년부터는 기업이 근로자가 70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법으로 규정했다. ● 한국도 ‘감액 제도’ 폐지 추진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재직자 노령연금 감액 제도’가 있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일정액 이상 소득이 있는 노령연금 수급자는 많게는 100만 원 이상 연금이 깎인다. 올해 기준 월 298만9237원 이상 소득이 있는 63세 이상 고령자가 대상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연금 삭감 대상자는 11만9821명이며, 총 삭감액은 지난해 기준 2168억 원이다. 우리 정부는 감액 제도 폐지를 추진 중이나 이를 두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찬성하는 쪽에선 “일할 의욕을 꺾고 고령 근로 장려와도 어긋난다”며 완화 또는 폐지를 주장한다. 반대 측은 “국민연금의 소득 재분배 기능을 해치고 연금 재정 확보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반박한다. 감액 제도를 완화 또는 폐지하더라도 연금 재정 안정을 위해 그만큼 연금보험료를 늘리는 ‘패키지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노후에 일해서 돈 번다고 연금을 깎는 감액 제도의 완화를 권고한다. 미국이나 영국 등은 일을 한다는 이유로 연금액을 깎는 제도가 없다. 미국의 경우 1999년까지 69세 이하 연금 수급자에 대한 감액 제도가 있었지만 2000년 폐지됐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일본 정부가 현재 5.5% 수준인 전체 전원(電源) 대비 원자력발전소 비중을 2030년까지 20∼22%로 늘릴 계획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9일 보도했다. 인공지능(AI) 등으로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탈탄소와 안정적 전력 공급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면 원전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게 일본 정부의 판단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런 내용을 담은 에너지 기본계획을 올해 안으로 정리해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한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확정한 ‘녹색 전환 기본 방침’에서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상정하지 않았던 원전 건설을 ‘부지 내 재건’으로 추진한다고 명기한 바 있다. 올해는 재건 관련 계획을 보다 구체화해 계획에 담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 전까지 원전 비중이 30%에 이르렀다. 하지만 해당 사고 이후 모든 원전의 가동을 중단시켰다. 이후 조금씩 원전을 재가동했으나 현재 5.5% 수준에 그친다. 현재 일본에 있는 원전 60기 가운데 재가동 중인 원전은 13기이다. 이를 22%로 늘리려면 가동 원전을 2배 정도 늘려야 한다. 일본은 최근 후쿠시마 원전과 가까운 동북부 미야기현 오나가와 원전 2호기를 동일본대지진 이후 13년 만에 재가동하는 등 원전 재가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재가동에 필요한 원자력규제위원회 심사와 현지 주민 동의를 얻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목표 달성은 쉽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편 경산성은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신재생 에너지의 목표 비율도 올릴 계획이다. 현재 계획에 따르면 2030년 재생가능에너지 비율을 36∼38%로 정하고 있는데, 2040년에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이 비율을 더 높이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이를 위해 ‘지열(地熱) 발전’ 개발 지원에 나선다. 일본 정부 산하 기구가 민간 대신 지열 발전에 알맞은 장소를 찾아 굴착 및 지하 구조를 확인하는 초기 조사를 한다. 일본은 현재 남서부 지역인 규슈 오이타현 등 화산 활동이 활발한 일부 지역에서 지열 발전소를 가동하고 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의 국민 시인으로 꼽히는 다니카와 슌타로(谷川俊太郞)가 13일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아사히신문 등이 19일 보도했다. 향년 92세. 1931년 도쿄에서 태어난 고인은 ‘20억 광년의 고독’ ‘살다’ 등의 시로 일본어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메시지로 일본 국어 교과서에 다수의 시가 실렸다. ‘우주 소년 아톰’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애니메이션 곡도 작사했다. 그가 펴낸 다수의 시집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에서 번역 출간됐다. 그는 시인 김지하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사형 구형을 받았을 때 세계 유명 지식인들과 함께 구명 운동에 나섰다. 2015년에는 한국 대표 시인 신경림과 함께 쓴 시집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를 한일 양국에서 출간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내년 영업이익 전망을 최대 30% 이상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하면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일본을 압박하고, 이 과정에서 최대 수출품인 자동차가 타깃이 된다는 우려가 일본 재계에 확산되고 있다. 18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노무라증권은 일본 자동차 업체 스바루의 내년 영업이익이 올해보다 35%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마쓰다(33%), 미쓰비시(21%), 닛산(13%) 등도 각각 올해 대비 두 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모로 마사히로(毛籠勝弘) 마쓰다 사장은 “(미국에 대한 대응책은) 개별 회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업이익 대폭 감소를 걱정하는 곳들은 대부분 미국에 생산 거점을 두지 않거나 생산량이 소규모인 업체들이다. 미국은 현재 일본 등에서 수입하는 승용차에 2.5%의 기본 관세율을 적용하고 있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10∼2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놨고, 1기 행정부 때는 25% 관세를 물릴 수 있다고 공언해 왔다. 일본은 지난해 미국에 148만 대의 자동차를 수출했다. 일본 전체 자동차 수출의 34%에 달하는 규모다.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과 엔저 심화로 값도 저렴해 지난해 일본 자동차의 미국 판매량은 전년 대비 16% 증가했다. 자동차는 일본 전체 수출의 12%를 차지하는 최대 수출 품목이라 관세 인상이 현실화하면 일본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일본의 수출 가격 경쟁력을 꺾기 위해 엔화 환율을 고평가하는, 이른바 ‘신(新)플라자합의’를 추진할 경우 사실상 일본의 모든 제품으로 영향이 번질 수 있다. 도요타, 혼다, 닛산 같은 메이저 업체들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대체 협정인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맺고 있는 멕시코를 통한 우회 수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 닛산은 연간 30만 대, 혼다는 20만 대의 자동차를 멕시코에서 생산하고 있다. 도요타는 대미 수출을 염두에 두고 멕시코 생산 거점에 14억5000만 달러(약 2조217억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다만 일각에선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이 장기적으로 일본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이 검토 중인 전기차 구매 보조금 폐지 방안은 중국산 전기차의 미국 진출 확대를 막아 결과적으로 일본 자동차의 진출 공간을 열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하이브리드 차에 강한 일본으로서는 전기차 개발을 위한 시간 여유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