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정양환 부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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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양환 기자입니다.

ray@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칼럼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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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북미7%
국제일반7%
국제경제3%
국제인물3%
여행3%
  • 초갈등 한국 사회, 교회가 나서 푼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한국 사회의 치유를 위해 한국교회총연합 주최로 ‘2019 국민미션포럼―초갈등사회 한국 교회가 푼다’가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빌딩 컨벤션홀에서 열렸다. 포럼에서는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과 정치의 역할’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도 ‘초갈등사회 예수님이 답하다’로 기조강연을 펼쳤다. 소 목사는 “한국 사회는 기울어진 사회구조로 폭발 일보 직전의 초갈등사회를 겪고 있다”며 “교회가 우리 사회를 한 공동체로 만드는 캠페인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기념예배에선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가 설교를 맡기도 했다. 이날 참가자 일동은 ‘초갈등사회 극복을 위한 한국 교회 선언문’도 발표했다. 김수읍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대표회장과 박서원 한국교회평신도단체협의회 대표회장, 박요셉 전국17개광역시도기독교연합회 총무, 김명기 국민일보 목회자포럼 사무총장, 김호현 대한예수교장로교회총회 예장보수 총무 등이 공동 발표했다. 이들은 공동선언문에서 “정부는 대통령 직속 갈등조정통합위원회(가칭)를 설치하고, 국회는 갈등관리기본법 제정에 나서라”며 “한국 교회도 회개하고 자각하며 평화의 도구로서 사명을 감당할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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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인류의 멸망… 복제인간과의 공생은 가능할까

    21세기에 나온 디스토피아소설 가운데 최고가 아닐까. 이런 허언장담은 꽤나 주관적이다. 애트우드는 올해 ‘증언들’로 두 번째 부커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잘나간다. 1985년 작 ‘시녀이야기’ 이래 내놓는 책마다 화제. 작가의 명성에 현혹됐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소설은 재미와 깊이를 동시에 지녔다. 설정만 미래라 해놓고 무협활극을 펼치지도, 문학성 나부랭이에 매달려 읽는 맛을 저버리지도 않았다. 뭐, 살짝 어중되는 대목도 간간이 눈에 띄지만. ‘미친 아담’은 2003년 출간한 ‘오릭스와 크레이크’, 2009년의 ‘홍수의 해’에 이은 3부작의 마지막 권. 이 시리즈는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가 멸망한 직후가 배경이다. 완벽한(?) 복제인간들과 현 인류의 극소수만 겨우 살아남은 지구는 어떤 모습으로 흘러갈까. 그들의 힘겨운 생존투쟁이 희망이란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가 주된 관심사다. 재밌게도 작가는 이 SF소설을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이 아니라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이라 불렀다고 한다. 다소 엉뚱하지만 이해는 간다. 관련 분야를 오랜 기간에 걸쳐 심도 있게 취재했다는데, 그 덕에 ‘현실감 넘치는 공상’이 됐다는 측면에서 사변(思辨)이란 정의가 그럴 듯하다. 특히 자본에 휩쓸려 타락하는 세상을 그려내는 붓놀림은 설득력이 충만하다. 게다가 여타 SF에서 보기 힘든 세밀한 심리 묘사를 켜켜이 쌓아올리는 공력도 역시나 싶다. 아쉬움도 없지 않다. 1, 2권에 비하면 3권은 뭔가 좀 약하다. 강력한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린 뒤에 가벼운 잽으로 마무리 지으려는 모양새랄까. 물론 이미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은지라 그 정도로도 충분히 케이오는 가능하겠지. 하지만 반전과 스케일이란 중독에 빠져있는 우리로선 웬만한 조미료로는 자극이 쉽게 오질 않는다. 굳이 작가 탓을 할 것까진 없지만 괜히 입맛이 다셔진다. 하나 더. 소설 앞부분엔 친절하게도 이전 줄거리가 달려 있다. 그래도 역시 전작들을 읽어야 제대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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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사람이면 100사람 다 생각 달라… 나만 옳다고 하면 아무도 안 바뀌어”

    “달빛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둘 다 비추어줍니다/좋고 싫은 것은 없습니다/다만 있을 뿐입니다/우리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할 뿐입니다.”(‘있는 그대로’에서) 시큼한 가을비 내리던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낙산묘각사 처마 끝에 매달린 빗방울은 괜스레 울적해 보였다. 주지인 홍파 스님(76·대한불교관음종 총무원장)은 “마음과 느낌의 문제”라며 “거기서 번뇌가 시작되니 지금 이 순간 이 한 생각을 접어라”고 했다. ―그게 맘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양을 하는 거죠. 마음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느낌은 외부 작용으로 발생하는 감각입니다. 이를 혼동하지 말고, 있는 대로 지켜볼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게 깨달음이죠.” ―이달 초 출간한 책 ‘아침이 힘든 당신에게’도 그런 가르침을 담으셨나요. “2017년부터 일주일에 3번쯤 아침마다 불자들에게 1분짜리 음성메시지를 보내왔어요. 그걸 ‘아침 해우소’라 부릅니다. 현대인은 걱정이 너무 많아요. 그걸 쏟아내고 하루를 시작하잔 뜻입니다. 그게 괜찮았는지, 주위에서 책으로 엮자고 요청이 많습디다.” ―요즘 유행하는 힐링 서적 같습니다. “내면을 다스리는 게 바로 힐링이죠. 청자 가운데 군인이나 경찰, 학생이 많습니다. 열심히 사는데도 불안하다 하소연해요. 그 불안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뜻대로 다 풀리면 좋죠. 그럼 걱정이 없을까요. ‘마음을 다스리고 싶다’고 마음먹는 순간,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게 시작입니다.” ―낙산묘각사는 외국인 템플스테이로 유명합니다. 비슷한 조언을 하시나요. “말보단 명상을 권합니다. 외국인 신청자는 대학교수, 외교관 등 남부럽지 않은 지식인이 많습니다. 그들이 왜 절을 찾을까요. 현대인은 다들 머릿속엔 해결책이 있어요. 마음을 못 붙잡는 거죠. 수백 마디 말보단 가슴으로 한번 느껴야 합니다.” ―외국인 템플스테이 전국 1, 2위를 다투는 비법치곤 소소합니다. “몇 년 전부터 프랑스 항공사 기장이 자주 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여기부터 온다더군요. 최근엔 자기 딸까지 데리고 왔어요. 여기만 오면 맘이 편하대요. 그게 기본입니다. 우리 절은 하나만 지킵니다. ‘객을 벗으로 여기라.’ 인연은 높낮이가 없습니다.” ―‘일제강점기 징용희생자 유골 반환위원회’ 대표로도 활동하십니다. 바쁜 걸론 누구 못지않으신데요. “20년이 넘었죠. 그간 1000기 이상 모셔왔어요. 여전히 일본에 산재한 유해가 10만 기쯤 됩니다. 공공 지원이 간절한데, 정부는 자꾸 형식과 절차에 매달려요. 한일 관계는 참 복잡합니다. 명분만 좇다간 실리를 잃어요. 신뢰와 노하우를 가진 민간단체를 믿고 밀어주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세상사 이치와 비슷합니다. “현대인은 백이면 백 다 생각이 달라요. 그러니 산 좋아하면 산에 가고, 바다 좋아하면 바다 가면 됩니다. 바다로 가는 이를 붙잡고 산이 좋다 강요한다고 바뀌나요. 내 심지 굳은 건 좋지만, 나만 옳다 하면 안 되죠. 받아들일 줄 모르면, 나도 너도 바뀌지 않습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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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 한끼 도시락에 서리 맞으며… 고독한 수행자로 돌아간 스님들

    “불꽃 속에서 연꽃을 피워내는 수행이 될 것입니다.” 11일 오후 경기 하남시(위례신도시) 대한불교조계종 포교도량 부지. 겨우 오후 2시를 넘긴 시간인데도 햇볕은 벌써 자취를 감춰 냉기가 물씬했다. 하지만 뒤편 산마루에서 한때 군부대 법당의 흔적인 오랜 불상이 내려다보기 때문일까. 1000여 명의 기도 소리가 퍼지며 찬찬히 온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자승 전 조계종 총무원장 등 저명한 스님 9명이 참여해 화제를 모은 ‘상월선원(霜月禪院) 동안거 결사’가 이날 오후 3시 입재 법회와 함께 열렸다. 결사에 참여한 자승 전 원장과 성곡 도림 재현 진각 심우 호산 무연 인산 스님은 미소로 객을 맞이하면서도 시종일관 결연한 표정이었다. 대형 임시막사로 지은 상월선원은 서리를 맞으며 달을 벗 삼는다는 뜻. 외부와 접촉을 끊고 묵언수행에 들어가는 스님들에게는 하루 한 끼 도시락을 제공한다. 게다가 특별한 난방도 없이 1인용 텐트와 침낭만 주어진다. 지객(知客) 소임을 맡은 호산 스님은 “최고령 성곡 스님(73세) 등의 건강이 가장 걱정이지만, 9명 모두 함께 육체적 정신적 추위와 배고픔을 이겨내려는 간절함으로 무아(無我)가 되고 하나가 되겠다”고 말했다. 결사에 앞서 거행한 법회에는 조계종 종정인 진제 스님이 법문을 보내왔다. 호산 스님이 대독한 법문을 통해 “상월선원 결사는 생로병사라는 윤회의 흐름에서 벗어나 생사해탈의 대오견성(大悟見性)하기 위한 것”이라며 “종단의 여러 소임을 맡았던 이들이 다시 수행의 고향으로 돌아와 수행자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며 격려했다. 이날 법회에는 불교계 안팎에서 많은 인사가 참석해 결사에 임하는 스님들을 축원했다. 중앙종회의장인 범해 스님과 동국대 이사장 법산 스님,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이 함께했다. 김순례 윤종필 이은재 국회의원과 대한체육회장인 이기흥 중앙신도회장, 윤성이 동국대 총장 등도 참석했다. 불교와 인연이 깊은 소리꾼 장사익 씨는 스님들의 안녕을 비는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하남=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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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정스님 10주기 추모집 ‘낡은 옷을 벗어라’ 출간

    “너를 돌아다보면/울컥, 목이 매이더라/잎이 지는 해질녘/귀로(歸路)에서는/앉을자리가 마땅치 않아/늘 서성거리는/서투른 서투른 나그네.”(시 ‘내 그림자는’에서) 내년 원적 10주기를 맞는 ‘무소유’ 법정 스님(1932∼2010)의 미출간 원고를 모은 추모집이 세상에 나왔다. 불교신문사는 7일 “큰 스승 법정 스님이 1963∼77년 불교신문에 게재했으나 책으로 엮지 않은 원고 68편을 모아 10주기 추모집 ‘낡은 옷을 벗어라’(사진)를 출간했다”고 밝혔다. 당시 불교신문 주필과 논설위원으로 재직했던 스님은 ‘소소산인’ ‘청안’ 등 다양한 필명으로 글을 썼다. 책에 실린 68편은 다양한 글들이 섞여 있다. 60년대 쓴 원고에는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는 설화 형태의 글 13편과 시 12편이 포함돼 있다. 이후 글들은 불교의 발전을 염원하는 다양한 칼럼과 서평 등 산문이 많다. 불교신문사는 “‘낡은 옷을…’은 원고를 11개 분야로 정리해 스님의 문학성과 사상적 흐름을 살필 수 있는 기회”라 했다. 이번 추모집은 법정 스님의 유지에 따라 출간하지 않으려다 스님의 가르침을 연구 및 계승하는 차원에서 내놓기로 했다. 불교신문 사장인 정호 스님은 “법정 스님이 1993년 발족한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의 승인과 협조를 얻었다”며 “수익금은 불교 포교와 장학기금으로 쓸 것”이라고 전했다. “처마 끝에서 그윽한 풍경소리가 되살아나도록 해야겠습니다. 법당에서 울리는 목탁소리가 고요 속에 여물어 가도록 해야겠습니다. 하여 문명의 소음에 지치고 해진 넋을 자연의 목소리로 포근하게 안아주어야겠습니다.”(산문 ‘볼륨을 낮춥시다’에서)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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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대통령과 슬픈 시기 함께할 것”… 프란치스코 교황 ‘추모 서신’ 보내

    프란치스코 교황이 31일 모친상을 당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애도의 메시지를 담은 서신을 보냈다. 교황은 천주교 부산교구를 통해 보낸 메시지에서 “대통령의 사랑하는 어머니 강 테레사(고 강한옥 여사 세례명) 자매님의 부고를 듣고 슬픔에 잠겼다”며 “이 슬픈 시기에 영적으로 대통령과 함께하겠다”고 추모했다. 또한 “모친께선 그리스도교 신앙의 모범을 보이셨고 극진한 선하심을 유산으로 남기셨다”며 “주님께서 무한한 자애심으로 유가족들을 돌보시길 기도한다”고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가 담긴 서신은 이날 오전 손삼석 천주교 부산교구장이 집전한 장례미사에서 낭독된 뒤 문 대통령에게 전달됐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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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도 죽음도 마음에 달려… 나만 옳다는 착각 버리세요”

    《“혹시나 길이라도 잃을까 봐…, 손님은 나와 맞는 게 당연하고.” 의외였다. 요즘 세상에 대문 밖 마중이라니. 23일 오후 서울 성북구 전등사 회주인 동명 스님(69)은 바깥에서 한참을 기다린 눈치였다. 죄송한 맘에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쉽게 찾는다” 했더니, “큰스님은 말년에도 객을 나와 맞았다. 그게 인정이고 가르침”이란다.》  그 큰스님은 바로 해안 스님(1901∼1974)을 일컫는다. 부처님 가르침을 만방에 전하는 불교 전등회(傳燈會)를 만든 고승이다. 올해로 전등회는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이에 동명 스님은 최근 전북 부안군 내소사에 스승을 기리는 심인탑(心印塔)을 세우기도 했다. ―심인탑이란 어떤 뜻인가요. “불법으로 깊이 들어가면 어렵고, 이름대로 ‘마음에 도장을 찍는다’고 여기면 무방합니다. 큰스님이 열반한 곳에 마음을 심어놓잔 바람이죠. 스승께선 ‘생사어시 시무생사(生死於是 是無生事)’를 중요한 가르침으로 남기셨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이것(마음)에서 나왔으나, 마음에는 생사가 없다는 얘기죠.” ―솔직히 알쏭달쏭합니다. “단박에 알아듣는 게 더 이상하지요, 허허. 그러니까 삶도 죽음도 세상 모든 일이 마음에 달렸다, 그렇다고 마음에 얽매이면 안 된다 정도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뭣보다 깨달음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없어요. 모두가 마음을 지녔으니 공부하고 참선하면 불법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심인탑에도 그런 큰스님의 정신을 담았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인가요. 탑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정성을 많이 들였지요. 7년 정도 걸렸나 봅니다. 국보 제101호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을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높이가 5.5m, 기단 한 변이 4m로 국내 승탑 가운데 가장 큰 규모죠. 훗날 예술적, 문화재적 가치도 고려했습니다. 스승에 대한 존경과 효심도 깃들어 있고요.” ―외람되지만, 불가에선 연(緣)에 얽매이지 말라지 않나요. “하하,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끊으라는 건 사소한 인연이에요. 나라 사랑이나 부모 공경이 어찌 사소한 일이겠습니까. 스승에 대한 존경도 마찬가지죠. 승려가 속세에서 벗어났다고, 숭고한 가치를 저버리란 얘긴 아닙니다. 그럼 호국불교 정신이 어떻게 가능했겠어요. 세상을 버리는 게 깨닫는 길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언제나 중생과 함께 숨쉬셨습니다.” ―해안 스님도 사부대중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셨다면서요. “어떤 만남도 소중히 대하셨습니다. 거동조차 힘드실 때, 한 할머니가 찾아왔어요. 아들 장가가는 데 길일을 정해 달라는 거예요. 속에서 천불이 나는데, 스님은 얘기를 끝까지 경청하고 호응해 주십디다. 뒤에 말씀이 ‘쓸데없어 보여도 그분에겐 중요한 일이다. 불법을 묻지 않는다고 존중받을 자격이 없진 않다’고 하셨어요. 세월이 흐른 뒤에야 무릎을 딱 쳤죠.” ―큰스님을 위한 또 다른 계획도 있습니까. “시일이 좀 걸려도, ‘수행관’을 건립하려 합니다. 누구나 찾아와 수행할 수 있는 도량이지요. 이건 큰스님만을 위한 건 아닙니다. 불가에 몸을 둔 이로서 당연히 할 일이지요. 요즘 세상이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지요? 의견이 갈리는 건 나쁘지 않으나, 상대를 무시하고 경청하지 않는 건 큰일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상처가 참 많아서 그렇긴 한데…. 결국은 마음에 달린 문제예요. 나만 옳다는 착각이 포용과 화해를 가로막습니다.” 전등사를 나서다 문득 궁금했다. “언제 큰스님 생각이 많이 나십니까.” 동명 스님은 잔잔히 미소로 해안 스님의 시 ‘멋진 사람’을 들려줬다. ‘… 산창(山窓)으로 스며드는 솔바람을 듣는 사람이라면/구태여 불경을 아니 외워도 좋다.’ 문득 하늘이 참 높아 보였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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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막서 묵언수행… 90일간의 고행길

    자승 전 조계종 총무원장 등 불교계에서 저명한 스님들이 한겨울에 야외 천막에서 90일 동안 안거하며 수행한다. 겨울에 여러 스님들이 1일 1식하며 함께 묵언 수행하는 것은 한국불교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대한불교조계종에 따르면 다음 달 11일 오후부터 경기 위례신도시 포교도량 부지에서 2019년 동안거 ‘상월선원(霜月禪院) 천막결사’가 시작된다. 상월은 서리를 맞으며 달을 벗 삼는다는 뜻에서 지었다. 이번 결사에는 자승 전 원장을 비롯해 정묵 동광 성곡 진각 호산 심우 재현 도림 등 9명이 참여한다. 전현직 중앙종회 의원들이 많다. 최고령인 성곡 스님은 세수 73세다. 중앙종회 사무처장으로 이번 결사의 지객(知客) 소임을 맡은 호산 스님은 “난방도 없는 천막에서 한겨울을 보내는 것이라 스님들 건강이 제일 걱정이다. 따뜻한 물 등을 준비해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다. 고행은 그뿐만이 아니다. 외부와는 아예 접촉을 끊고, 바깥에서 하루에 한 번 넣어주는 도시락으로 버틴다. 옷은 한 벌만 허용하고, 삭발과 목욕도 할 수 없다. 물품도 침낭 1개와 치약, 칫솔, 효자손 정도. 천막 안에서도 일절 대화를 할 수 없다. 만약 견디지 못하고 퇴방하면 출가수행원으로 살지 않겠다는 서약서도 미리 제출할 예정이다. 일찍이 전례가 없는 수행에 나서는 이유는 뭘까. 일각에선 최근 조계종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자 ‘이벤트’를 벌인단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호산 스님은 “가장 우려하는 게 그 대목이다. 하지만 다른 뜻이 있다면 조용히 칩거하는 게 낫지, 왜 굳이 이런 큰일을 벌이겠느냐”고 답했다. 호산 스님에 따르면 자승 스님의 결의가 이번 결사의 도화선이었다. 총무원장을 물러난 뒤 백담사 무문관(無門關) 수행에 들어갔던 스님은 주위에 서울역 노숙 정진의 뜻을 밝혔다. 이에 스님들이 동참 의사를 밝혔고, 장소를 원각사지가 있는 서울 탑골공원으로 바꿨다가 여의치 않자 위례신도시 부지로 재차 바꿨다. 이곳이 조만간 사부대중을 위한 포교도량을 지을, 뜻깊은 장소라 본 것. “스님 개개인으로는 수행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목마름이, 불교계에는 새로운 중흥의 전기를 마련하길 바라는 순수한 마음입니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한국불교가 이렇게 생사를 내놓고 노력한다는 점만 알아주시면 바랄 게 없습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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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코 사라지지 않을 악플 방조도 범죄일 수 있다[광화문에서/정양환]

    “우린 앞으로도 악플(troll·악성댓글)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 그래, 이젠 인정하자. 쳇바퀴처럼 돌고 돈다. 다 부질없어 보인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열흘이 넘었다. 스물다섯 살의 안타까운 낙화(落花). 눈부신 스타가 아니라도 허망하기 이를 데 없다. 많이들 먹먹했고 시렸다. 서로가 이유를 목말라했다. 당연히 얽히고설켰겠지만…. 악플에 대한 비난이 가장 거셌다. 그럴 만했다. 고인은 무슨 사격표지판 같았다. 여성 아이돌답지 않다고, 좀 다르게 행동했다고. 온갖 해괴망측한 댓글이 쏟아졌다. 그가 받았을 내상은 감히 가늠조차 어렵다. 그러니 악플 비난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이참에 제대로 대처하자는 목소리가 국내외에서 힘을 얻는다. 남미의 한 매체는 부고를 전하며 자극적이나 분명하게 짚었다. “얼마나 더 죽을 때까지 악플을 내버려둘 것인가.” 한데 착각이었다. 시궁창은 여전히 더러웠다. 악플은 유유히 흘러넘친다. 그의 연인이던 래퍼에겐 저주의 화살이 하늘을 뒤덮었다. 같은 걸그룹 동료에겐 ‘추모의 글’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리지 않았다 힐난했다. 내내 빈소를 지켰단 게 알려진 뒤 잦아들긴 했지만. 친구를 잃고 가슴이 찢어진 이 앞에서조차 악플러들은 그들의 감정이 중요했다. 이런데도 악플을 무찌르자고? 왜 서구에선 악플을 트롤이라 부를까. 북유럽 신화가 기원인 이 상상 속 괴물은 그리 강력하진 않다. 흉측한 외모지만 상위 몬스터는 아니다. 다만 악랄할 뿐. 근데 확실한 강점을 지녔다. 재생 능력이 탁월하다. 잡아도 없애도 또 나온다. 21세기 악플러가 트롤인 이유다. 그럼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개운하진 않지만 차선은 있다. 되도록 마주치지 않는 거다. 물론 여러 전문가들이 제안한 정화(淨化) 운동을 폄하할 맘은 없다. 근데 너무 오래 걸린다. 법 제정만 바라보기도 지친다. 몰라야 상처도 안 받는다. 중요한 건 개인에게 내맡겨선 안 된다. 온갖 경로로 뚫고 오는데, 홀로 귀를 닫아도 한계가 있다. 악플러만 욕할 거 없다.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먼저 자아비판부터. 어쭙잖게 언론사 녹을 먹고 있으니, 관련 없다 책임 회피할 생각 없다. 앞으로 댓글 가지고 기사화하는 것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겠다. 인터넷 반응을 방패 삼아 숨지 않겠다. 포털사이트에도 부탁드린다. 아마 댓글 자체를 없애는 건 어려울 터. 적어도 보고 싶은 사람만 로그인하고 보게 만들면 안 될까. 생채기는 막진 못해도 거기에 휩쓸리진 않게. SNS 업체도 마찬가지다. 자유로운 소통 공간이라지만. 언젠가부터 “생각을 독점하는 기업”(미 칼럼니스트 프랭클린 포어)으로 변질되고 있다. 편의라는 명분 아래 개인성(individuality)은 무시되고 의견은 일방향으로만 흘러간다. 악플은 그걸 자양분 삼아 배를 불린다. 이번 일 역시 공염불로 끝날지 모른다. 머지않아 또 다른 쓰라린 아픔을 목도할까 두렵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다. 쳇바퀴에 갇힌 우리가 불쌍해서라도. 침묵한 다수는 그 악의에 동의하지 않기에. “익명은 결코 해방구가 돼선 안 된다. 악플은 강력 범죄다. 방조 역시 범법 행위로 인식해야 한다.”(2016년 영 정책연구센터) 정양환 문화부 차장 ray@donga.com}

    • 201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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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보이지 않는 폭력은 어떻게 여성을 억압하는가

    낯선 랩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 이런 충격이었을까. ‘밀크맨’은 정말 놀랍다. 별로 두껍진 않지만 빽빽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소설은, 뭐라 덧붙이기가 머뭇거려진다. 원작 자체가 그런 건지 번역이 의도한 건지 모르겠는데, 극도로 쉼표를 자제한 만연체 문장은 숨이 가쁘다. 아니, 잘금잘금 읽는 이의 호흡을 앗아간다. 그러곤 작가만의 템포에 길들이더니 그대로 폭탄을 투척한다. 와우. 1970년대 북아일랜드가 배경인 ‘밀크맨’을 굳이 초창기 랩에 비교한 이유는 또 있다. 날이 제대로 섰기 때문이다. IRA(아일랜드공화국군)가 곧장 떠오르는 북아일랜드 독립운동이 첨예하던 시절. 그런데 막상 소설은 영국이니 뭐니 구체적 단어는 전혀 쓰지 않은 채, ‘우리’ ‘저들’ ‘길 이쪽’ ‘저 너머’ 등의 표현만으로 당시의 무지막지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담았다. 게다가 더 중요한 건, 이 소설이 억압과 차별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있단 점이다. 18세 여성 주인공 주위를 언젠가부터 ‘밀크맨’으로 불리는 중년 남성이 맴돈다. 우유배달부라 불리지만, 그는 저항군에서 상당한 지위를 갖고 있는 ‘이쪽’의 권력자. 게다가 때는 여성 인권에 무지하던 시절. 접촉만 없었을 뿐, 자신을 물건처럼 소유하려는 밀크맨과 그를 당연한 듯 용인하는 사회 앞에서 주인공은 피폐해져 간다. 실은 그래서인지 ‘밀크맨’은 정독이 꽤나 만만찮다. 화법 자체가 책 3분의 1쯤 지나서야 겨우 적응이 될랑 말랑한데, 주인공의 미묘한 감정을 온전히 따라잡기 쉽지 않았다. ‘성 인지 감수성’이 떨어져서 그런가 하는 자책감마저 생겼다. 먼저 소설을 읽은 여성 유명인사들은 극찬을 쏟아냈던데, 괜히 주눅도 들었다. 그런 몇몇 난관에도 ‘밀크맨’은 너무나 읽는 재미가 강력하다. 개인적으로 ‘언더그라운드’(1995년)를 연출한 영화감독 에밀 쿠스트리차의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착시가 일었다. 깊고 무거운 주제를 이토록 리듬감 있게 풀어낼 수 있다니. 지난해 ‘맨부커상’ 수상작이란 타이틀이 아니더라도, 놓치면 두고두고 아쉬울 ‘어쩌면-올해의 소설’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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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생충’ 美서도 호평… 아카데미상 기대 커져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한국 영화 최초로 오스카를 거머쥘까. 최근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기생충’이 큰 호응을 얻으며 미국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영화는 1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영화관 1곳과 로스앤젤레스 2곳에서 개봉했다. 뉴욕에선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 사례였다. 미 매체 인디와이어는 “주말 표까지 모두 팔렸다. 영화를 보고 싶다면 로스앤젤레스로 가라”고 전했다. ‘기생충’은 공식 개봉 전 선보이는 ‘선 개봉일’부터 반응이 심상찮았다. 선 개봉일 하루에만 12만 달러(약 1억4232만 원)를 벌어들였다. 현지에서는 18일부터 상영 극장이 늘어날 계획이다. 영화 평점 사이트에서도 열기가 뜨겁다. 로튼토마토에서는 신선도 99%(100%가 최고), 메타크리틱에서 평점 9.5점(10점 만점)을 받았다. LA타임스는 “유쾌함으로 시작해 파괴로 끝나는 ‘기생충’은 관객이 숨쉬기도 힘들 만큼 매순간 살아 있다”며 극찬했다. 현지 반응이 뜨거워지자 벌써부터 내년 2월 열리는 제92회 아카데미상 수상에 대한 기대도 올라가고 있다. 지난달 영화진흥위원회는 기생충을 내년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부문(외국어영화상) 한국영화 출품작으로 선정했다. 현재 외국어영화상은 93개 작품이 출품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후보작 5편은 내년 1월 중순경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봉 감독은 “한국영화가 20년 넘게 (세계적)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한 번도 오스카 후보에 오른 적 없단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현지 언론의 질문에 “좀 이상하긴 해도 별일 아니다. 어차피 아카데미는 로컬(지역) 시상식이다”라고 가볍게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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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기 예수 형상에 절로 미소… 인골 장식엔 구원의 갈구 서려

    《“가톨릭 신자건 아니건 상관없습니다. 아주 잠깐 머물더라도 우리 교회를 나설 땐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그게 종교가 세상에 끼치는 선함이 아닐까요.” 미소가 근사했다.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체코 프라하 ‘승리의 성모와 프라하 아기 예수 성당’에서 만난 파벨 폴라 신부는 말 한마디도 참 예쁘게 했다. 해마다 세계에서 45만여 명이 찾는다는 이곳의 명물 아기 예수처럼.》  체코와 오스트리아는 솔직히 순례자가 몸살 나기 십상이다. 그만큼 볼 게 지천이다. 주요 관광지만 돌아도 은총이 쏟아진다. 한데 뷔페처럼 뭘 먹었는지 헷갈린다. 오늘 마주한 성당이 어제 만난 성당이 아니라 자신하기 어렵다. 그래도 가다듬고 보면 각자에게 맞는 보석이 널려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돌아보고, 21세기 수도원의 흐름도 짚을 수 있다. 그 대신 딱 하나만. 시간이 빠듯하면 건너뛰어도 되니 찬찬히 걸으시길. 풀 냄새 돌담 냄새 스쳐 지나지 말고.○ 아이는 의구(依舊)한데 인골도 그 자리에 바로 무장해제다. 진중한 성당에서 입꼬리가 올라가다니. 겨우 45cm인 자그만 조각상이 이리도 따사로울 줄이야. ‘프라하의 아기 예수’는 실은 위치가 애매하다. 관광 핵심 구시가에서 트램(노면전차) 타고 네댓 구역은 간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면 필수코스라 꼽기 힘들다. 근데 마주하면 잘 왔다 싶다. 2층에 전시한 한복도 앙증맞다. 아기 예수는 바비인형처럼 때맞춰 옷을 갈아입는다. 왜 그리 두근거릴까.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하느님이 아기의 모습으로 당신의 친밀함을 보여 준다”(2009년)고 했다. 폴라 신부도 고개를 끄덕였다. “심판과 희생도 숭고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그것만이 아니죠. 아가의 순수하고 인간적인 형상에 끌리는 게 아닐까요.” 하나 더. 성당을 관장하는 가르멜회는 1971년부터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어린이들을 돕고 있다. 유치원과 학교도 운영한다. 이렇게 깊은 뜻을 실천하니 후광이 살아있다. 아기 예수는 17세기 스페인에서 만들어졌단다. 그러나 아기 예수는 미래를 비추기에 더 아름답다. 반면 쿠트나호라에 있는 ‘세들레츠 해골 성당’은 완벽하게 극단에 서 있다. 들어서자마자 눈살이 찌푸려진다. 끝도 없는 인골. 피라미드처럼 쌓인 뼈 무덤은 그러려니 했다. 두개골로 문양을 꾸며놓은 건 뭔 악취미람. 하지만 잠깐 공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이 해골들은 주로 14세기 흑사병으로 숨진 3만여 시신에서 수습했다 한다. 고통 아래 마지막까지 구원을 갈구했을 터. 성당은 ‘하느님의 집’이다. 인간을 위한 화장실도 마련치 않는다. 그곳에 빈부귀천 상관없이 의탁한다면 그보다 더한 축복이 있을까. 성당에 새겨진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더는 유효하지 않다. 그들은 생사를 뛰어넘어 영원의 안식처를 몸 바쳐 이뤄냈다.○ 위스키와 포도주, 그리고… 오스트리아에서 들른 두 수도원은 다소 생경하다. 왕실에서 지은 건물답게 거창하고 화려하다. 묵상과 검박함을 기대했다간 실망스럽다. 빈에서 약 79km 떨어진 ‘성 베네딕토 멜크 수도원’은 특히 북적댄다. 움베르토 에코(1932∼2016)가 소설 ‘장미의 이름’의 영감을 얻은 곳으로도 유명하니. 심지어 900여 명이 수학하는 명문 사립학교까지 운영한다. 학생과 관광객 물결에 수도자는 드문드문. 이 땅의 수호성인 레오폴드 3세가 지은 ‘아우구스티노회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도 엇비슷하다. 왕궁이나 대형 박물관 같다. 물론 둘 다 볼 것 많아 좋긴 한데…. 솔직히 수도원에서 담근 위스키나 와인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렇지만 이런 ‘개방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미덕이다. 문 걸어 잠그고 자기들만 깨달으면 뭐하나. 클로스터노이부르크는 포도주 수입의 10% 이상을 사회사업에 쓴다. 젊은 미술가를 지원하는 ‘성 레오폴드 평화상’도 주관한다. 열린 종교는 갈수록 강해진다. 멜크 역시 시대와 발맞춰 간다. 문화관광담당인 마르틴 로테네더 신부는 “비(非)가톨릭 신자라도, 심지어 이슬람교도여도 수도원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학교도 신입생 선발 때 종교를 따지지 않는다”고 했다. 위스키가 켜켜이 꿀처럼 달달해졌다.프라하·빈=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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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크리스마스에 풀어놓은 기묘한 이야기

    “I‘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 Just like the ones I used to know….” 참 ‘잔인한’ 성탄절 노래다. 하 소설가의 이 책 말이다. 소설에도 등장하는 빙 크로스비의 목소리가 머금은 푸근한 캐럴은 기대 마시길. 그런 낭만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메마르고 건조하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오히려 짙은 물안개가 가득 차 축축할 정도. 실재일까 환영일까 분간이 안 갈 만큼. 얘기는 평범하게 시작한다.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은 세 자매 가족. 오랜만에 시간이 비어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마트에서 고기 사고 케이크 사고. 어느 집안에나 있을 적당한 투덕거림과 공명. 그렇게 나눈 와인 몇 잔 뒤, 막냇동생은 묘한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어느 벽촌 리조트에서 겪은 ‘기묘한’ 시간을. 이 체험이 정말 기묘한지도 애매모호하다. 스크루지가 만난 유령처럼 명확하다 단언하긴 힘들다. 진짜 유령인지, 창밖 나방인지, 옆방 꼬마인지도 불분명하다. 심지어 실제 겪은 일인지, 화자가 본인이 맞는지도 헷갈린다. 시스루(see-through)처럼 속 비치는 옷이 여러 벌 겹쳐지며 의외의 문양을 만든 형국. 그다지 튈 것 없는 현실의 조합이 다층적 판타지로 승화하는 광경을 목도한다. 실은 ‘크리스마스캐럴’은 좀 의외다. 작가가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라는데, 이전 작품들과 뭔가 결이 다르다. 담담한 문장과 독특한 시간 구성이 엮어내는 특유의 맛은 여전하나, 등장인물 혹은 삶을 바라보는 거리감이 살짝 달라졌다. 물론 굳이 판가름을 내릴 필요는 없지만, 이런 낯섦이 더 반갑긴 하다. 문득 궁금하다. 끝내 막냇동생이 찾지 못한 손목시계는 어디로 갔을까. 그 비싼 장신구는 손목을 감싸고 있긴 했나. 아니 그는 그걸 되찾고 싶긴 한가. 희멀건 흔적만을 남긴 채 떠난 게 물건인지 세월인지 자아인지. 성탄절 산타 할아버지는 그 답을 선물로 주실 순 없으려나. 우리의 굴뚝은 이미 사라졌건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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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굴곡진 역사의 고비마다, 신앙은 위안과 희망의 버팀목

    《‘시간이 흘러가도, 영원(eternity)은 존재한다.’ 지난달 22일 오전(현지 시간). 폴란드 바도비체는 꽤나 쌀쌀했다. 광장엔 패딩 차림도 눈에 띄었다. 그래서일까. 성(聖)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 생가로 스며든 햇볕은 유난히 따스했다. 그 유혹에 굴복해 다가선 2층 창가. 골목 너머 성모마리아대성전(basilica) 벽엔 해시계와 위 글귀가 새겨져 있다. 어쩌면 어린 카롤(교황의 속명)은 진작부터 그 불멸의 계시에 이끌린 게 아닐까.》 ○ “나는 행복합니다. 당신들도 행복하십시오.” 바웬사 전 대통령, 로만 폴란스키 감독, 축구선수 레반도프스키…. 폴란드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많다. 한데 순례길에서 만난 ‘원톱’은, 2014년 시성(諡聖)된 요한 바오로 2세였다. 성당이나 박물관, 수도원은 당연지사. 소금광산이나 아우슈비츠수용소에도 흔적이 빼곡하다. 살짝 과식한 기분까지 들었다. 물론 굴곡진 이 땅의 역사를 마주하면 웬만큼 수긍이 간다. 몽골 침략, 종교전쟁, 제2차 세계대전. 주변 강대국에 휘둘리고 공산체제에 억눌렸던 아픔. 신앙은 버팀목이자 지렛대였다. 현재도 인구의 97.6%가 가톨릭신자일 정도니. 변곡점마다 고국을 찾아 “우리는 다르지 않다”고 설파한 교황은 그들에게 위안과 희망의 화신이었다. 쳉스토호바에 있는 야스나구라 성 바오로 은수자회 수도원의 성화 ‘검은 성모(Black Madonna)’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쭙잖은 잣대로, 제작 시기도 불분명한(5∼8세기 추정) 가로세로 81.3×121.8cm의 이 작은 그림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스토리가 더해지며 아우라가 폭발한다. 목발을 짚고 들어왔다 치유를 맛봤다는 기적의 데자뷔는 접어두자. 체코 신학자 얀 후스(1369∼1415) 추종자들이 흠집 냈단 마리아의 오른뺨 칼자국이 백미다. 수도회 소속인 시몬 수사는 “여러 전문가가 시도했지만 지워지질 않았다”고 했다. 용서하되 잊지 말아야 할 민족에게 이만큼 구심점이 될 아이콘이 또 있겠나. 지금도 이 단아한 수도원을 해마다 500만여 명이 찾는 이유다. 다시 ‘상처’를 떠올려본다. 교황 생가 박물관엔 1981년 바티칸에서 저격당했을 당시 권총이 전시돼 있다. 굳이 왜. 그는 병상에서 일어선 뒤 터키 저격범을 찾아가 용서를 베풀고 선처를 호소했다. 2005년 선종 때 남긴 한마디.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십시오.” 몸소 자비를 실천한 지행합일(知行合一) 앞에 고개를 조아릴 뿐이다.○ 아픔을 함께 버텨낸 이웃이자 눈물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21세기에 모든 국민이 하나의 종교라니. 교황이나 성화가 훌륭한 구심점이라 해도, 이런 단일대오는 범상치 않다. 어쨌든 ‘선택’은 결국 기층민중의 손에 달렸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비엘리치카에서 만난 소금광산은 의미심장했다. 197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뽑힌 이곳은 지하로 327m까지 파고 내려간 대형 광산. 13세기부터 채굴을 시작했는데, 약 200km에 이르는 통로를 따라 2000여 개의 방이 있단다. 흥미로운 건 곳곳에 세워진 성당이다. 17세기 ‘성 안토니오 성당’ 등 아름다운 경전이 어두컴컴한 지하로 빛을 인도한다. 뭣보다 101m 깊이에 있는 ‘성녀 킹가 성당’은 눈이 동그래졌다. 가로세로 54×17m에 높이가 약 11m. 이걸 광부들이 일일이 파내고 다듬었다니. 어떤 예술작품보다 아름답지만, 그들의 피땀 눈물 역시 암염에 깊이 배어 있다. 발걸음마다 가슴이 뻐근해졌던 오시비엥침(독일어 아우슈비츠) 수용소도 마찬가지다. 후대에 심은 가로수 가득한 마당은, 멀리서 보면 한 폭의 그림이다. 한데 섬뜩한 전기철조망을 피해 건물에 들어서면 냉기가 뒷목을 파고든다. 특히 어린 희생자의 꼬까옷은 자꾸만 눈에 밟혔다. 여행가는 줄 알았던 부모는 아마 아이에게 가장 예쁜 옷을 꺼내 입혔으리라. 이 나라 백성들이 신앙을 저버릴 수 없던 까닭이 여기 있지 않을까. 높다란 첨탑도, 끝 모를 땅굴도, 그리고 가스실도…. 어디 하나 서글픈 넋의 흔적이 지워지질 않았기에. 그리고 그 절망의 고통 곁엔, 동료 수감자를 대신해 죽은 콜베 신부(1894∼1941) 같은 존재가 있었기에. 폴란드에서 천주교는 높이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권능이 아니었다. “따뜻한 밥 한 끼”(시에파크 수녀)처럼 일상을 함께 숨 쉬는 공기였다.바도비체·쳉스토호바·비엘리치카·오시비엥침=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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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세군중앙회관 ‘정동1928아트센터’로 4일 재개관

    서울 중구에 있는 구세군중앙회관이 복합문화공간 ‘정동1928아트센터’(사진)로 재탄생한다. 구세군한국군국(사령관 김필수)은 1일 “중앙회관을 역사와 문화, 예술을 위한 복합공간인 ‘정동1928…’로 새롭게 단장해 4일 개관행사를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트센터는 전시갤러리를 비롯해 공연홀, 콘퍼런스룸, 이벤트홀 등이 갖춰진다. 건물 앞마당은 시민들을 위한 열린 문화공간으로 조성한다. 개관을 앞두고 사전 기획행사로 연극 ‘대한제국의 꿈’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서울시기념물 제20호인 구세군중앙회관은 1928년 구세군사관학교로 건립돼 그간 구세군 선교와 교육, 사회봉사 등에 이용돼 왔다. 구세군은 개관에 맞춰 4일 오후 2시부터 학술강좌 ‘삼일운동과 구세군독립운동가’를 연다. 오후 6시에는 개관식 및 미술전시회 ‘필의산수 근대를 만나다’를 개최할 예정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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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산 통도사’ 산문 열린 지 1374년… 佛心모아 축제 열다

    “남쪽 축서산(영축산의 옛 이름) 기슭 신지(神池)에 독룡(毒龍)이 거처하며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다. 용이 사는 연못에 금강계단을 설치하고 사리와 가사를 봉안하면 불법이 오랫동안 머물러 천룡(天龍)이 그곳을 옹호하게 되리라.” 자장율사(590∼658)가 중국 당나라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받았다는 가르침의 일부다. 현대인에겐 설화나 다름없는 얘기지만, 여기엔 상당한 의미가 있다. 7일 창건 1374년을 맞은 경남 양산시 통도사가 주창하는 ‘대중과 함께 열어가는 불교’라는 창건이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통도사는 선덕여왕 15년(646년) 음력 9월 9일에 자장 스님이 영축산에 금강계단을 세우고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봉안하며 산문을 열었다. 바로 이 창건일을 맞아 여는 큰 법회가 개산대재(開山大齋)다. 지금이야 양산도 작지 않은 도시지만 당시엔 도읍인 경주에 비하면 한참 변방이었다. 신라에서 손꼽히던 고승인 자장율사가 굳이 이곳을 선택해 불교의 으뜸 보물을 모신 이유가 뭘까. 통도사 주지인 현문 스님은 “이곳이 부처님이 직접 불법을 설하신 인도 영축산과 닮았기 때문이란 말도 있지만, 서민들과 함께 숨쉬는 ‘민중불교’로 나아가려는 목적이 컸다”고 설명했다. 이런 정신을 받들어 지난달 13일 한가위 때부터 다양한 행사를 펼쳐온 개산대재는 5일부터 한층 볼거리가 풍성해진다. 5일 오전에 열리는 ‘영축삼보이운’이 그 시작이다. 법당이나 다른 곳에 모셔져 있던 괘불을 법회 장소로 옮겨오는 이 행사는 주위에 늘어선 불자들과 함께 장관을 이룬다. 이후 스님들의 바라춤과 더불어 모셔온 괘불에 공양을 올리는 ‘괘불헌공’도 중요한 행사다. 개산일인 7일은 더욱 장엄한 행사들이 통도사를 수놓는다. 자장율사를 추모하는 ‘영고재’와 개산대재 ‘법요식’, 역대 고승의 부도를 모신 부도원에 차를 올리는 ‘부도헌다례’가 오전 10시부터 이어진다. 현문 스님은 “통도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오른 것도 이런 ‘현재성의 가치’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며 “개산대재는 통도사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자리에서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문화유산임을 여실히 보여 준다”고 강조했다. 서민 속에 숨쉬고 있다는 건 부대행사만 봐도 느낄 수 있다. 5일 대규모 의례로 바쁜 와중에도 지역 어르신을 위한 ‘만발공양’과 젊은 세대를 위한 ‘청소년 댄스경연대회’가 열린다. 6일에는 최근 인기가 급상승한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공연도 있다. “대중과 함께”라는 창건이념을 제대로 반영한 셈이다. 통도(通度)에는 ‘모든 진리에 회통해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지역과 계층을 가리지 않고, 모든 방편을 동원해 모두를 행복하게 하려 했던 자비사상의 본질적 표현이다. 통도사 개산대재가 한 사찰을 넘어 한국 불교 전체의 소중한 행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문 스님은 “좋은 전통을 새롭게 드러내고 더욱 발전시켜 현재에 머물지 않는 통도사로 거듭나는 기회로 삼겠다”고 다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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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찬송가 1000곡 봉헌, 필생의 작업 매진 합니다”

    문성모 강남제일교회 담임목사(65·사진)가 최근 새롭게 작곡한 찬송가 6곡을 발표하는 등 ‘한국 찬송가 1000곡 봉헌’에 매진하고 있다. 서울대 국악과에서 작곡을 전공한 문 목사는 지금까지 한국 고유의 찬송가를 300곡 이상 작곡했다. 2011년 ‘우리가락찬송가와 시편교독송’이란 찬송집도 출판했다. 특히 2013년 부산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에서 소개한 찬송가 ‘혼자 소리로는 할 수 없겠네’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독일과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의 찬송집이나 기도집에도 실렸다. 문 목사는 최근 ‘독생자를 보내주신’ ‘나의 생명 주인 되신’ ‘애굽에서 해방된 날’ 등 신곡 6곡을 발표했다. 다음 달 12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 강남제일교회 예음홀에서 ‘제3회 문성모 신작 찬송가 봉헌예배’가 있을 예정이다. 문 목사는 “올해 초 평생 찬송가 1000곡을 하나님께 봉헌하겠다고 기도한 뒤 작곡에 몰두하고 있다”며 “앞으로 700곡 정도를 써야 하는데 일주일에 1곡씩 써도 15년이 걸리는 대작업”이라고 했다. 문 목사는 대전신학대학 총장과 서울장신대학 총장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기독교학회장과 한국실천신학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한국교회음악작곡가협회 이사장, 베아오페라예술원 이사장, 한국음악평론가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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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사 한 명에 신도 100명이 딱… 그래야 제대로 소통하지요”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에서) 17일 오전. 아주 잠깐, 서울 강남구 A빌딩 앞에서 멈칫했다. 요즘 세상에 교회는 금방 찾았다. 스마트폰이 재깍 알려준다. 근데 너무 ‘교회’스럽지 않다. 창문에 붙은 커다란 글씨는커녕 십자가도 안 보였다. 손바닥만 한 팻말 하나가 전부. 내부 역시, 50평 남짓. 정갈하되 단출하고, 소담하며 따뜻하다. 하긴, 그래서 더 김수연 목사(71)답다. 서울 강남구 ‘한길교회’ 담임목사인 그는 세간에선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로 더 낯익다. 전국에 학교마을도서관과 작은도서관을 330여 개나 세웠다. 매주 방방곡곡을 누비다 보면 목회자 업무는 다소 느슨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김 목사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아무리 빡빡해도 주일엔 반드시 돌아온다. 교회에서 모든 피로를 잊고 평화와 안식을 찾는다”고 못 박았다. ―교회가 아담합니다. 너무 바깥 활동에 치중한 거 아닙니까. “허허, 그럴 리 있나요. 1987년 교회 창립한 뒤 허투루 운영한 적이 한시도 없습니다. 조그만 물품 하나도 제가 챙깁니다. 쓸고 닦는 것도 가족이 다 하죠. 30년 넘게 일부러 이 정도 규모로 유지했습니다. 수백 명씩 몰려와도 다른 교회 추천하며 신도 수를 조절했어요.” ―교세를 확장해도 모자랄 판에 줄이다니요. “그게 제 지론이에요. ‘Twenty families are enough(스무 가정이면 족하다).’ 4인 가정이면 80명, 조부모 합쳐도 120명. 목사 1명에겐 신도 100명 안팎이 딱 맞습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라 하죠. 그 ‘말씀’이란 커뮤니케이션이 아닐까요. 목회자와 신도가 제대로 소통하려면 그 정도가 좋습니다. 괜히 덩치만 키워 위세를 떨치는 이익집단이 되면 안 돼요.” 실제로 한길교회는 예배 뒤 꼭 치르는 행사가 있다. 간이의자를 치운 뒤 식탁을 차린다. 그리고 다 함께 ‘점심 한 끼’를 먹는다. 시시콜콜 정담과 세상사는 얘기를 나눈다. 그 옛날, 대소사마다 모두가 모여들던 시골 마을처럼. ―미국 개척시대에 서부의 한 마을을 이끌던 목사가 떠오릅니다. “그렇게 고생스럽진 않습니다, 하하. 양을 돌보는 목자가 더 맞겠네요. 한 마리마다 애정을 갖고 제대로 돌보는 겁니다. 목동은 쉴 만한 물가와 푸른 초원으로 인도하는 게 사명이죠. 목사도 마찬가지예요. 교회는 이웃과 지역사회에 유익을 끼치는 신앙공동체여야 합니다. ‘한길’이란 함께 신을 향해 걸어가는 하나의 큰길을 일컫는 거죠.” ―설교문도 하나하나 직접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당연하죠. 진솔하게 속내를 털어놓아야 신도들도 수긍합니다. 바빠서 밤을 새워도 단 한 자도 남의 손을 빌리지 않습니다. 물론 매주 새로운 글을 쓰는 게 정말 어려워요. 똑같은 말만 할 순 없으니까요. 그래도 뭐든 목사가 본을 보여야죠.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고, 믿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래라 저래라 훈수만 두는 종교인은 세상에 필요 없습니다.” ―목회자들은 자주 인용하는 성경 구절이 있던데요. “누가복음에 나오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입니다. 이웃과 나누면 언젠가 그 복이 돌아옵니다. 산간벽지를 찾아가 책을 나누는 ‘작은도서관…’ 운동도 그런 믿음이 바탕이 된 겁니다. 저 보세요. 사재고 뭐고 다 털어 ‘작은도서관…’에 쏟아부었습니다. 처음엔 주위에서 그러다 굶어죽는다고 걱정했어요. 하지만 지금껏 삼시 세 끼 챙겨먹고 마음도 풍족합니다.” ―요즘 특별히 자주 전하는 말씀도 있으세요. “음…. 아무래도 시국 얘기를 안 할 수 없겠죠. 안타깝게도 진영논리가 일반인들까지 물들였어요. 다 좋은데, 제발 상대를 존중하라고 당부합니다. 남의 말은 경청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내 얘기는 들어주길 바랍니까. 그건 가족이라도 불가능해요. 아, 곁다리로 하나 더 덧붙입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싹 다 지워버리라고. 함부로 말 퍼 나르고 타인 맘 아프게 하는 것만큼 헛된 일이 없습니다.” 문을 나설 즈음, 김 목사는 함 시인의 시 한 구절을 들려줬다. “뭐든 이웃과 나누는 맘은,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며. 그가 작은도서관 보급 활동을 통해 세상과 나눈 책 수백만 권이, 밥 한 끼가 머금은 온기 역시 그러할 터. 문득 한길교회 안 작은 십자가가 세상 어느 첨탑의 그것보다 커 보였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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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일 문여는 소태산기념관에 ‘평화 화두’ 담아”

    “현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화두는 ‘평화’라고 봅니다. 그런데 최근 사회지도층에 대한 젊은이들의 분노에서 알 수 있듯, 평화를 이루려면 ‘평등’이 전제가 돼야 합니다. 새롭게 건립한 원불교소태산기념관에는 그런 정신개벽의 이념이 깃들어 있습니다.” 원불교가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10년간 추진해온 서울 동작구 원불교소태산기념관이 21일 개관한다. 오도철 교정원장(사진)은 18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대종사께서 펼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의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소태산(少太山)은 원불교 교조인 박중빈 대종사(1891∼1943)의 호다. 기존 서울회관을 허물고 재건축한 소태산기념관은 10층 규모인 비즈니스센터와 원불교 서울교구청·한강교당으로 이뤄져 있다. 서울교구청·한강교당은 위에서 보면 원불교 상징인 일원상(一圓相), 측면에서 보면 솥을 형상화했다. 오 원장은 “정사각형 형태로 사람을 표현한 비즈니스센터와 함께 사람과 우주를 태극 띠로 묶은 형상”이라고 설명했다. “소태산기념관은 2016년 열린 원불교 100주년 기념대회에서 선포한 ‘정신개벽 서울선언문’을 실현하는 거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질을 선용하고 환경을 존중하는 상생의 세계, 강약이 진화하는 평화의 세계, 서로 감사하고 보은하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기념관을 베이스캠프 삼아 교업을 세계화하는 데 힘쓰겠습니다.” 원불교는 21일 개관식과 함께 서울교구청·한강교당 봉불식을 거행한다. 20일에는 소태산홀에서 원앙상블이 연주하는 봉불음악회도 개최한다. 이 밖에 원불교 선묵화 전시 ‘깨달음의 얼굴’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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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산 통도사, 내달 창건일 앞두고 ‘괘불헌공’ 등 행사 다채

    올해 창건 1374년을 맞는 경남 양산시 통도사가 다음 달 7일 개산대재(開山大齋)를 앞두고 한가위부터 다채로운 행사를 선보였다. 개산대재란 산문(山門)을 연 창건일을 맞아 여는 법회를 일컫는다. 선덕여왕 15년(646년) 자장율사가 영축산에 금강계단을 쌓아 부처 사리와 가사를 봉안한 음력 9월 9일이다. 이날 자장율사를 기리는 영고재와 법요식 등이 성대하게 열린다. 통도사에서는 추석부터 다양한 관련 행사가 펼쳐졌다. 13일 합동 차례를 시작으로 ‘괘불 조성 체험’ ‘가족과 함께하는 공연마당’ 등을 통해 사찰을 찾은 이들과 뜻싶은 시간을 가졌다. 16일부터 다음 달 20일까지는 사진 및 도자기 작품 특별전시, 경내를 가득 채운 국화로 꽃 공양을 올리는 국화장엄도 관람할 수 있다. 다음 달 5, 6일에는 대형 행사들이 줄을 잇는다. 산문에서 괘불을 모시는 행사인 ‘영축삼보 이운’과 공양을 올리는 ‘괘불헌공’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6일 오후 1시엔 최근 가장 ‘핫’한 가수 송가인을 초청해 공연도 펼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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