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조종엽 차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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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종엽 차장입니다.

jjj@donga.com

취재분야

2025-11-24~2025-12-24
문학/출판30%
역사21%
정치일반10%
문화 일반10%
사회일반10%
칼럼7%
검찰-법원판결3%
인사일반3%
산업3%
만화3%
  • [책의 향기]제3국의 시선으로 본 북한과 김정은

    때로는 당사자들보다 옆에서 지켜보는 이가 상황을 더 냉정하게 볼 수도 있다. 북핵 문제도 그렇다. 사활이 달린 우리나, 중요한 전략적 이해가 걸린 미국 중국의 전문가가 꼭 객관적이리라는 법은 없다. 때로 그들의 전망이나 분석은 날씨 예측보다는 기대나 숨은 의도가 담긴 점성술사의 해설에 가깝다. 이 책은 그런 혐의에서 꽤 벗어나 있다. 저자는 영국 노동당 국제위원회 위원이며, 유럽의회 의원(1984∼2009) 자격으로 북한을 약 50차례 방문했다. 북한의 간략한 역사, 경제 성장과 위기, 탈북자와 인권 문제, 개혁의 바람이 부는 시장, 김정은의 전략, 국제관계 등이 압축적으로 담겼다. 저자는 북한의 미사일이 탄두 결합, 대기권 재진입, 유도장치 기술 등을 완벽히 보유했는지 불확실하다고 말한다. “미국은 북한의 능력을 부풀리고 있으며 북한은 부풀려진 능력을 훨씬 더 크게 부풀리고 있다. … 북한의 과장된 주장은 피해망상증이거나 경제적 이익을 노리거나, 혹은 둘 다에 해당하는 (미국의) 세력이 뒷받침한다.” 저자는 또 한편 “미국은 북한이 남한이나 일본을 공격하면 평양을 날려버리겠다고 협박해왔지만 지금까지 남한과 일본을 보호한 미국의 핵우산은 미국 본토를 희생하는 수준이 아니었다”며 “워싱턴이나 시카고가 위협받고 있는데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핵 억지력을 확장할지는 의문”이라고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운신의 폭이 좁다는 얘기다. 물론 눈에 걸리는 부분도 없지는 않다. 저자는 “북한이 2002년 말 이전에 핵무기 부품을 실제로 보유했는지 분명하지 않다”고 했지만 제네바 합의 파기 전부터 준비하지 않았다고 보기에는 북한의 핵무장 속도가 너무 빨랐다. 어쨌든 이런 것들은 이제 와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다. 한반도 주변 4대 강국보다는 이해관계가 덜한 유럽 전문가라는 면에서도 저자의 시각은 존중할 만하다. 명징하고 간결하게 맥을 짚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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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유재란 유적지에 공원 만들어 교육장 활용을”

    “임진왜란 정유재란 7년 전쟁의 종전 7주갑(420년)이 되는 올해 이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된 것을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김병연 ‘임진정유 동북아평화재단’ 이사장(전 주노르웨이 대사)은 2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중일 공동 연구서 ‘정유재란사’(범우사) 출판기념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유재란사’는 정유재란의 실상과 민중의 수난 등을 조명한 국제 학술 논총이다. 재단 이사를 맡고 있는 이대순 전 호남대 총장은 “정유재란 당시 농부는 호미를 던지고, 어부는 배를 버리고 이순신 장군 산하에서, 또 의병으로 일본군을 물리쳤다”며 “정유재란 유적지에 평화공원을 조성하고 비참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모색하는 교육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 책임을 맡은 조원래 순천대 명예교수는 “고령의 기타지마 만지(北島万次·전 일본 교리쓰여대 교수) 선생이 투병 중 책에 실린 논문 ‘정유재란과 전라도의 민중’을 보내고 안타깝게도 돌아가셨다”며 “집필에 참여한 학자 15명의 노고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김문환 전 국민대 총장,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 이세중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인요한 연세대 교수, 이정현 국회의원, 조세영 국립외교원장이 축사를 했다. 또한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 유경현 대한민국헌정회 부회장, 이정빈,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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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전국 시군구마다 ‘작은 도서관’ 1곳씩 신설

    내년부터 전통시장이나 경로당, 노인복지관, 구청·주민센터, 아파트 주민시설에도 ‘작은 도서관’이 새로 설치될 것으로 전망된다. 평화, 인권을 비롯한 특정 주제에 특화된 작은 도서관도 문을 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9년 ‘생활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의 일환으로 전국 대부분 시군구마다 작은 도서관을 1곳씩 새로 설치하거나 리모델링을 지원한다. 기존 작은 도서관도 리모델링하고 서고, 열람·모임 공간을 조성하거나 인테리어를 개선한다. 면적 99∼263m²의 작은 도서관이 우선 지원 검토 대상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작은 도서관 226곳(신규 설치와 리모델링 합산)에 221억여 원을 투입한다. 또 낡은 공공 도서관을 리모델링(50개)해 개방형 열람실을 만드는 등 주민 친화적 서비스 기능을 보강하는 데도 200억 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주민 수요에 따라 북카페나 독서모임·인문학 강좌를 위한 다목적 시설, 공방(工房) 등을 조성한다. 이 같은 도서관 확충은 주요 선진국 대비 도서관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공공도서관 기준 1개관당 인구수가 미국은 약 3만4000명(2016년), 독일 1만1000명, 일본 3만9000명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5만 명(이상 2017년)에 이른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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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사랑으로 다지는 이웃 情… 아파트숲서 ‘골목 문화’ 꽃피우다

    《 책과 사람의 향기를 함께 맡을 수 있는 곳, ‘작은 도서관’. 1960년대 새마을문고를 시작으로 꾸준히 발전해 온 ‘작은 도서관’은 책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열고 만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함께 사는 사회’의 풀뿌리이자 모세혈관인 셈이다. 정부 정책에 따라 내년 전국에 200곳이 넘는 작은 도서관이 새로 태어난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그동안 모범적으로 운영해 온 작은 도서관들을 조명한다. ‘작은 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 》 아파트촌 한가운데 자리한 서울 성동구 응봉근린공원에서 지난달 20일 작은 축제가 열렸다. 천연 염색, 재생종이 엽서 만들기, 민화 책갈피 만들기, 책 낭독, ‘그냥 멍때리기’ 등 아기자기한 프로그램에 인근 주민 300명이 몰렸다. 소문을 듣고 경기 남양주시에서 찾아온 이도 있었다. ‘나랑 같이 놀자’(19회)라는 제목의 이 축제를 주최한 곳은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공원 안의 작은 사립도서관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책엄책아)다. 재개발로 옛 모습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면서 ‘골목 문화’가 사라진 이 동네에서 ‘책엄책아’는 사람들이 만나는 ‘골목’이 되고 있다. “경기도에 살다가 2014년에 여기 아파트로 이사 왔을 때는 좀 삭막하다고 느꼈어요. 이웃과 교류할 공간도 마땅치 않고, 서로 만날 의지도 없는 것 같고…. 그런데 책엄책아에서 이웃이 생기고, 삶에 활력도 생겼죠.” 아이 둘을 키우는 최희정 씨(36)의 말이다. 최 씨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들러 바느질과 인문학 공부를 함께하는 도서관 동아리 ‘꽃마리’ 등에서 활동한다. 책엄책아의 핵심은 동아리다. 낭독 모임, 민화 그리기, 그림책 공부 모임 등 8개 동아리에서는 각각 4∼14명의 회원이 활동한다. 특히 성인 동아리가 활발하다. 부모들은 책엄책아에서 아이를 함께 키운다. 인근 신축 아파트에 살며 두 아이를 키우는 김경희 씨(42)도 이 작은 도서관의 단골이다. “어느 아이가 ‘책 읽어주세요’ 하면 누구 아이인지 따지지 않고 읽어주는 게 자연스러워요. 아이가 여러 부모를 대하면 정서적으로 더 안정되고, 부모들은 육아하며 어려운 점을 서로 상의하니 가족 같은 분위기죠.”(김경희 씨) ‘책 읽어주기 품앗이’를 하던 엄마들이 재능을 발전시켜 ‘책놀이 활동가’가 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아이를 키우며 2004년부터 책엄책아를 이용하던 김은하 씨(44)는 7∼8년 전부터는 책을 매개로 바느질을 가르치는 강사로 활동한다. 김 씨는 “책엄책아에 다니며 아이만 큰 게 아니라 나도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고 성장했다”고 말했다. 어른 그림책 학교를 비롯해 도서관의 다양한 프로그램마다 30∼40명이 참여한다. 이는 여러 소모임으로 이어진다. ‘우리, 마을 문화기획자에 도전한다’ 강좌 수강생들이 만든 소모임이 ‘몰랑’이라는 무크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동명의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책엄책아는 2001년부터 성동구 행당동에서 작은 도서관을 운영한 작은 도서관계의 ‘큰형님’ 가운데 하나다. 행당동 시절 왕십리광장에서 연 ‘나랑 같이 놀자’ 축제에도 주민 1000명이 모여드는 등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2016년 지금의 금호동3가로 이전했다. 현재 도서관은 성동구가 공간을 지원했고, KB국민은행과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의 도움으로 리모델링했다. 도서관을 이용하다 사서로 일했던 우미선 책엄책아 대표(52)는 행당동 시절 도서관 이용자들이 소아병동이나 장애인복지시설에서 했던 책읽기 봉사 모임을 다시 준비하고 있다. 우 대표는 “아파트는 익명성이 강한 환경이지만 사람이 사람을 만나 교류하고 싶은 건 어디나 마찬가지”라며 “작은 도서관은 책을 매개로 건강한 문화를 이웃과 나누는 곳”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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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파트 숲에도 ‘골목’이 있다…공원 안의 작은 도서관 ‘책엄책아’

    아파트촌 한가운데 자리한 서울 성동구 금호동3가 응봉근린공원에서 지난달 20일 작은 축제가 열렸다. 천연 염색, 재생종이 엽서 만들기, 민화 책갈피 만들기, 책 낭독, ‘그냥 멍 때리기’ 등 아기자기한 프로그램에 인근 주민 300명이 몰렸다. 소문을 듣고 경기 남양주시에서 찾아온 이도 있었다. ‘나랑 같이 놀자’(19회)라는 제목의 이 축제를 주최한 곳은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공원 안의 작은 사립 도서관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책엄책아)다. 재개발로 옛 모습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면서 ‘골목 문화’가 사라진 이 동네에서 ‘책엄책아’는 사람들이 만나는 ‘골목’이 되고 있다. “경기도에 살다가 2014년에 여기 아파트로 이사 왔을 때는 좀 삭막하다고 느꼈어요. 이웃과 교류할 공간도 마땅치 않고, 서로 만날 의지도 없는 것 같고…. 그런데 책엄책아에서 이웃이 생기고, 삶에 활력도 생겼죠.” 아이 둘을 키우는 최희정 씨(36)의 말이다. 최 씨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들러 바느질과 인문학 공부를 함께 하는 도서관 동아리 ‘꽃마리’ 등에서 활동한다. 책엄책아의 핵심은 동아리다. 낭독모임, 민화 그리기, 그림책 공부모임 등 8개 동아리에서는 각각 4~14명의 회원이 활동한다. 특히 성인 동아리가 활발하다. 부모들은 책엄책아에서 아이를 함께 키운다. 인근 신축 아파트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김경희 씨(42)도 이 작은 도서관의 단골이다. “어느 아이가 ‘책 읽어 주세요’ 하면 누구 아이인지 따질 것 없이 읽어주는 게 자연스러워요. 아이가 여러 부모들을 대하면 정서적으로 더 안정되고, 부모들은 육아하며 어려운 점을 서로 상의하니 가족 같은 분위기죠.”(김 씨) ‘책 읽어주기 품앗이’를 했던 엄마들이 재능을 발전시켜 ‘책 놀이 활동가’가 되는 드물지 않다. 아이를 키우며 2004년부터 책엄책아를 이용하던 김은하 씨(44)는 7~8년 전부터는 책을 매개로 바느질을 가르치는 강사로 활동한다. 김 씨는 “책엄책아에 다니며 아이만 큰 게 아니라 나도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고 성장했다”고 말했다. 어른 그림책 학교를 비롯해 도서관의 다양한 프로그램마다 30~40명이 참여한다. 이는 여러 소모임으로 이어진다. ‘문화기획자에 도전한다’ 강좌 수강생들이 만든 소모임이 ‘몰랑’이라는 무크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동명의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책엄책아는 2001년부터 성동구 행당동에서 작은 도서관을 운영한 작은 도서관계의 ‘큰형님’ 가운데 하나다. 행당동 시절 왕십리 광장에서 연 ‘나랑 같이 놀자’ 축제에도 주민 1000명이 모여드는 등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2014년 지금의 금호동3가로 이전했다. 현재 도서관은 성동구가 무상 제공한 시설을 KB국민은행과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의 도움으로 리모델링했다. 도서관을 이용하다 사서로 일했던 우미선 책엄책아 대표(52)는 행당동 시절 도서관 이용자들이 소아병동이나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책읽기 봉사를 했던 모임을 다시 준비하고 있다. 우 대표는 “아파트는 익명성이 강한 환경이지만 사람이 사람을 만나 교류하고 싶은 건 어디나 마찬가지”라며 “작은 도서관은 책을 매개로 건강한 문화를 이웃과 나누는 곳”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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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왕조 멸망 9년만에 臨政이 공화주의를 받아들인 이유는?

    조선이 국권을 잃은 지 불과 9년 만인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공화정을 채택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서울대 국제대학원 국제학연구소(서울 관악구)는 ‘근대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공화·Republic의 성립과 진화’ 학술대회를 30일 오후 1시 국제대학원에서 연다. 이기훈 연세대 교수는 발표문 ‘식민지 시기 공화 담론의 확산’에서 “공화주의 사상은 3·1운동을 계기로 급속히 확산했다”며 “특히 ‘민족대표’의 등장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전제하고 위임의 합법성을 표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학술대회에서는 ‘미군정의 조선임시정부 헌법 초안 속에 나타난 공화주의’(박태균 서울대 교수), ‘이승만 정부 시기의 공화담론’(오제연 성균관대 교수) 등 모두 7편이 발표될 예정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주관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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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극 탐험대 유물-연구자료 등 80여점 전시

    남극의 환경과 역사, 유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해양박물관은 27일부터 기획전시 ‘남극―정물, 궤적, 유산’을 연다. 전시에서는 남극 탐험대의 유물과 남극을 기록한 이미지, 기후환경 연구 자료 등 80여 점을 볼 수 있다. 영상전시 ‘스틸 라이프’는 로버트 스콧(1868∼1912)과 어니스트 섀클턴(1874∼1922)이 이끈 남극 탐험대 원정기지 내부를 남극유산신탁(Antarctic Heritage Trust)이 생생한 영상으로 만든 작품이다. 뉴질랜드 캔터베리박물관 소장 유물도 전시에 나온다. 스콧 탐험대가 남극 원정 캠프에서 만든 신발과 램프, 섀클턴 탐험대가 사용한 나침반과 카메라 등이다. 주강현 관장은 “남극 탐험의 궤적과 자연의 위대함, 환경의 미래를 전시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3월 3일까지. 부산 영도구 국립해양박물관.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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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잊혀진 전쟁’ 정유재란, 韓中日 공동연구서 나왔다

    2017년 정유재란 7주갑(420년)을 맞아 한국 중국 일본 학자가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를 담은 책 ‘정유재란사’(범우사·7만 원·사진)가 최근 발간됐다. 책을 펴낸 ‘임진정유 동북아평화재단’(이사장 김병연)은 “불안한 동북아 정세 아래 한반도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정유재란을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뜻에서 한중일 학자들이 공동연구에 나섰다”며 “역사학자들이 연구와 교육, 전적지 보존을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뜻을 모았고 먼저 주제별 논문을 책으로 집대성했다”고 밝혔다. 정유재란은 1597년 화의 결렬로 일본군이 조선을 재침하며 일어났다. 1592년 임진왜란과 비교해 일본군의 침략 목표나 삼국의 작전 방향, 전투 양상이 달랐다. 조선의 피해 또한 훨씬 컸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아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기도 한다. 책 ‘정유재란사’는 1부 ‘정유재란의 배경과 전쟁의 실상’, 2부 ‘전쟁의 참상과 조선민중의 수난’으로 구성했다. 학자 15명(한국 12명, 일본 2명, 중국 1명)의 논문 17편을 실었다. 연구책임을 맡은 조원래 순천대 명예교수는 “명군 내부의 갈등구조와 일본군의 해상전투 양상을 밝히는 게 앞으로의 과제”라고 말했다. ‘임진정유 동북아평화재단’은 정유재란을 재조명하는 한편 한중일 3국이 전쟁에서 교훈을 얻어 미래지향적 평화 공존을 강화하고 공동번영을 이루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김 이사장은 “정유재란 전적지에 ‘임진정유 동북아 평화공원’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단은 28일 오후 2시 반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정유재란사’ 출판기념회를 연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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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몸집 큰 동물의 수가 적은 이유? 먹고 살기 힘들어서

    먼저 제목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좀 단순하게 정리하면 열역학 제2법칙 탓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동물은 먹이에서 공급받은 에너지의 일부를 주위에 복사열로 내놓는다. 생명 유지에도 열량을 사용한다. 애초에 먹이의 영양분을 모두 소화흡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몸의 살로 축적한 부분만 위 단계의 포식자가 먹을 수 있다. 먹이 사슬은 생명체를 부양하는 에너지 효율이 썩 좋지 않다. 큰 상어나 호랑이는 그래서 몹시 희귀하다. 그보다 더 큰 사냥 동물은 살아남을 재간이 없다. 먹이사슬의 밑바탕에 있는 식물의 광합성 효율도 생각보다 낮다. 재료로 사용하는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희박하기 때문이다. 1978년 처음 출간됐고, 올해 재출간돼 번역된 생태학 입문자의 참고서 같은 책이다. 식생 지도가 마치 국경처럼 비교적 뚜렷한 경계선을 갖고 있는 까닭, 바다의 대부분이 사막처럼 영양물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유, 생물 종이 이토록 다양한 원인을 차근차근 서술한다. ‘생태학’은 생태주의 운동을 뒷받침하는 연구로 오해하기 쉽지만 엄연히 생물과 환경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다루는 과학이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동식물학 교수로 일했던 저자(1930∼2016)는 집필 당시 학계에서 정보 이론을 활용해 다양한 종으로 구성된 복잡한 시스템(생태계)이 안정적이라고 주장한 걸 비판했다. 먹이를 빼앗아 생존하려는 동식물과 정보를 자유로이 전달하는 채널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요즘 분위기와는 온도차가 있지만 온실가스 증가 우려가 지금만큼 본격화되기 이전에 일찌감치 경고를 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인간이 지구 대기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관측되는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우려했다. 바다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는 하지만 그 속도가 하염없이 더디기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녕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4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그 영향을 체감하고 있다. 요즘처럼 변화가 빠른 시대에 40년을 살아남은 책인 만큼 생태학의 여러 흥미로운 요소를 독자에게 전하는 솜씨가 빼어나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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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서재]영웅문과 웹소설

    스마트폰으로 즐겨보는 한 무협지가 최근 종결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3년 가까이 이 무협지로 버스에서 무료함을 달랬으니 아쉬움이 큽니다. 이런 소설은 애플리케이션으로 서비스하지만 처음 등장한 플랫폼을 따라 그냥 ‘웹소설’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기자의 무협지 입문은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최근 별세한 홍콩의 진융 작가(1924∼2018)의 ‘영웅문’이었습니다. 학창시절 이 시리즈를 읽다가 밤새운 얘기, 시험 망친 얘기, 수업 시간에 혼난 얘기가 한동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가득했으니 되풀이하지는 않겠습니다. 신간 ‘웹소설의 충격’(이이다 이치시 지음·요다)은 일본 웹소설 시장을 본격 분석한 번역서입니다. 책 가운데 ‘웹소설 선진국 한국’이라는 제목의 글은 “한국도 라이트 노벨을 비롯한 장르문학 시장이 최근 10년간 상당히 커졌는데 매체나 평론가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고 꼬집었습니다. 틀리지 않은 얘기네요. 만약 진융 작가가 오늘날 신인이었다면 ‘웹소설’로 데뷔했겠지요? 호흡이나 문체는 달랐겠지만 조회수는 어마어마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 시대의 ‘영웅문’은 웹소설에서 찾아봐야겠습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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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평생 결실 古비석 탁본700점 연구용 기증

    돌도 늙는다. 천년을 넘게 가는 석비(石碑)도 종국에는 풍화를 견디지 못하고 음각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글자를 알아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탁본이 중요하다. 한데 옛 탁본은 비석의 일부분만 담은 것이 적지 않다. 탁본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작업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사료로서 한계도 있다. 21세기에는 21세기의 탁본이 필요한 이유다. 19일 한국학중앙연구원(경기 성남시) 장서각에서 만난 구본혁 씨(70)의 얼굴에는 햇볕이 남긴 검붉은 시간의 흔적이 역력했다. 그는 30년 넘게 산과 들로 전국의 고비(古碑)를 찾아다니며 탁본을 했고, 그 결과물인 탁본 700여 점을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최근 기증했다. 구 씨는 황해 옹진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조부모의 등에 업혀 피란했다. 조부모는 능성 구씨 일가가 있는 충남 보령 청라면에 터를 잡고 산자락 아래 돌밭을 일궜다. 구 씨는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한학(漢學)을 공부했다. 초등학교만 졸업할 수 있었지만 할아버지가 구해 온 서첩으로 서예를 배웠다. 인근에서 글씨를 잘 쓴다고 소문이 났다. 26세 되던 해 서울로 올라와 서실(서예교습소) 강사로 취직했다가 이내 동대문구 이문동에 서실을 차렸다. 1975년 어느 날 고향 어른이 산중에서 동춘당 송준길(1606∼1672) 필적의 비석을 발견했다며 탁본을 떠달라고 부탁했다. “솜방망이로 먹물을 찍어 살짝 두드릴 때마다 종이에 글자가 한자 한자 모습을 드러내는 게 정말 매력적이더군요.” 주말마다 비를 벗 삼아 살았다. 처음에는 그도 명인의 필적을 찾았지만 5년가량 지나자 역사적 가치가 있는 비석을 모두 탁본해 사료집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생겼다. 도굴꾼이나 간첩으로 오해받아 경찰이 쫓아온 일도 적지 않았다. 비석이 있는 절 주지 스님의 탁본 허락이 안 떨어지면 몇 년 뒤 새로운 주지 스님에게 허락을 받았다. 비석에 먹물 한 방울 남지 않는 그의 솜씨와 정성을 본 주지 스님이 다른 절에 소개장을 써주기도 했다. 서가협회전에서 특선도 했지만 작품 활동보다 탁본이 더 좋았다. 서실에서 번 돈은 족족 전국을 누비는 활동비로 들어갔다. 하루는 주머니가 빈 걸 안 아내가 큰아이를 들쳐 업고 나가더니 어딘가에서 돈을 빌려왔다. “이거 가지고 다녀와요.” 탁본의 장첩(粧帖)도 거의 아내가 만들었다. 그렇게 비석 500여 기의 탁본 700여 점이 탄생했다. 반평생을 바친 결과물이다. 안승준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서연구실장은 “전통시대 탁본에 비할 수 없이 뛰어난 선본(善本)으로 사료적 가치가 월등하다”고 평가했다. 구 씨는 기존 비문 판독의 오류 등을 지적한 ‘한국석비고찰(韓國石碑考察)’을 2005년 자비로 내기도 했다. “정부나 산하기관이 발간한 국보도록, 문화재대관 등에 건비연대를 비롯해 잘못된 정보가 오늘날까지도 수두룩합니다. 비석에는 분명 뚜렷이 새겨져 있는데 판독을 안 했거나 못 해서, 일제강점기 편찬된 ‘조선금석총람’이 잘못 기재한 것을 확인 없이 그대로 따른 탓입니다.” 구 씨는 “중요한 옛 비석이 비각이 없어 비바람을 맞거나, 몰상식한 관광객들이 던진 돌에 훼손된 걸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며 “후학들이 탁본 자료를 잘 연구해 역사를 올바로 밝혔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의 연구 결과는 연구원 심의를 거쳐 학술 자료집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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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신 사전’ 출간비 모금 두 달 만에 1억 원 훌쩍 “이거 실화냐”

    요리, 여행 등을 소재로 ‘덕후’를 위한 책을 만드는 ‘The Kooh’ 편집장 고성배 씨(34)는 올 6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텀블벅’을 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후원금액의 0 개수를 잘못 본 건 아닐까.’ 고 씨는 자신이 갖고 싶은 책을 200∼300권 제작해 독립출판물 전문서점 등을 통해서 판매해 왔다. 그러다 올 4월 한국 전래 귀신이나 괴물을 일러스트와 함께 담은 책 ‘동이귀괴물집’을 만들겠다며 텀블벅에서 후원자를 모집했다. 목표 금액은 200만 원. 한데 두 달 만에 후원자 8881명이 1억4537만6000원을 냈다. 무려 9200권을 선판매한 셈이다. ‘연결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말이 가장 잘 들어맞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크라우드펀딩’이다. 크라우드펀딩이 활성화되면서 문화예술계 지도가 바뀌고 있다. 특히 소규모 문화예술 창작자들이 숨어 있던 후원자, 소비자를 만나면서 숨통이 트이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은 다수의 개인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으는 방식을 의미한다. 자금력이 부족한 스타트업 기업이 온라인 플랫폼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창작자가 추진하려는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올리고 목표 후원 금액이 달성되면 나중에 후원자들에게 창작물로 보상하는 ‘리워드’ 방식이 일반적이다. 국내 크라우드펀딩 업체 10여 개 가운데 문화예술 후원이 많이 이뤄지는 곳은 텀블벅이다. 2011년 설립해 성공한 프로젝트는 약 8000건(누적 후원금 500억 원). 총 프로젝트 가운데 30% 가까이가 문화예술 분야다. 고 씨는 “전래 판타지 캐릭터를 원하는 독자가 이렇게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창작을 계속하는 데 정말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크라우드펀딩은 마니아들이 존재하는 서브컬처(Sub-Culture·주변부 문화) 분야에서 특히 힘을 발휘한다. 취미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 동호회가 있지만 판매 목적 활동은 제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크라우드펀딩을 활용하면 수요 예측도 가능하다. 국내 미발매된 셜록 홈스 소재 보드게임의 한글판 출시 프로젝트로 최근 2100여 명으로부터 1억1300여만 원을 후원받은 창작자는 “상상도 못한 결과”라고 크라우드펀딩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창작 비용이 부족한 젊은 예술가들에게도 작지 않은 힘이 되고 있다. 건축 전공 연구자 등으로 구성된 ‘CFL(Context Free Lab.)’은 크라우드펀딩으로 1500여만 원을 모아 지난달 초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국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전시를 열었다. 현대미술 작가 8인의 베니스 비엔날레 도전기를 담은 예술 다큐멘터리 ‘Sleepers in Venice’의 후반 작업 제작비도 모금에 성공했다. 크라우드펀딩은 팬층을 모으는 플랫폼이 된다. ‘프리즘오브’(11호 발간 예정)는 한 호에 한 영화만 자세히 다루는 형식의 잡지다. 텀블벅에 발행 프로젝트를 산발적으로 올리다 8호부터는 고정적으로 올리고 있다. 발행인 겸 편집장 유진선 씨(26)는 “호별로 최대 2500명, 평균 600∼700명이 우리 잡지를 후원했다”며 “후원자인 독자와 바로 소통하면서 요구를 확인하기 편해 고정 독자층을 모으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기성 아티스트와 출판사가 새로운 팬을 확보하는 기회로 크라우드펀딩을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장수 밴드 ‘크라잉넛’은 정규 8집 ‘리모델링’ 제작비 일부를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마련하고, 지난달 27일 기념 공연을 했다. 크라우드펀딩을 많이 활용하는 젊은층과 접점을 확대하려는 시도다. 출판사 창비는 맨부커상을 받은 퀴어 소설 ‘아름다움의 선’을 최근 번역 출간하면서 후원 프로젝트를 올려 200명의 후원을 받았다. 건물이나 배경을 그려 웹툰 작가 등이 활용하도록 판매하는 ‘스케치업’ 후원 프로젝트가 최근 활성화되는 등 창작 관련 새로운 시장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등장하기도 했다. 이용제 계원예술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는 “문화예술 창작자는 늘 생존 문제로 위태로운 것이 현실인데 크라우드펀딩으로 기존에 없던 시도를 해볼 만한 바탕이 마련되고 있다”며 “후원자에게 유형의 보상을 줄 수 있는 분야뿐 아니라 기초 연구처럼 무형의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까지 후원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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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결이 만드는 새로운 가치’…크라우드펀딩으로 숨통 트이는 문화예술계

    요리, 여행 등을 소재로 ‘덕후’를 위한 책을 만드는 ‘The Kooh’ 편집장 고성배 씨(34)는 올 6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텀블벅’을 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후원금액의 0 개수를 잘못 본 건 아닐까.’ 고 씨는 자신이 갖고 싶은 책을 200~300권 제작해 독립출판물 전문서점 등을 통해서 판매해 왔다. 그러다 올 4월 한국 전래 귀신이나 괴물을 일러스트와 함께 담은 책 ‘동이귀괴물집’을 만들겠다며 텀블벅에서 후원자를 모집했다. 목표 금액은 200만 원. 한데 두 달 만에 후원자 8881명이 1억4537만6000원을 냈다. 무려 9200권을 선판매한 셈이다. ‘연결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말이 가장 잘 들어맞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크라우드펀딩’이다. 크라우드펀딩이 활성화되면서 문화예술계 지도가 바뀌고 있다. 특히 소규모 문화예술창작자들이 숨어 있던 후원자, 소비자를 만나면서 숨통이 트이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은 다수의 개인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으는 방식을 의미한다. 자금력이 부족한 스타트업 기업이 온라인 플랫폼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창작자가 추진하려는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올리고 목표 후원 금액이 달성되면 나중에 후원자들에게 창작물로 보상하는 ‘리워드’ 방식이 일반적이다. 국내 크라우드펀딩 업체 10여 개 가운데 문화예술 후원이 많이 이뤄지는 곳은 단연 텀블벅이다. 2011년 설립해 성공한 프로젝트는 약 8000건(누적 후원금 500억 원). 총 프로젝트 가운데 30% 가까이가 문화예술 분야다. 고 씨는 “전래 판타지 캐릭터를 원하는 독자가 이렇게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창작을 계속하는데 정말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크라우드펀딩은 마니아들이 존재하는 서브컬처(Sub-Culture·주변부 문화) 분야에서 특히 힘을 발휘한다. 취미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 동호회가 있지만 판매 목적 활동은 제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크라우드펀딩을 활용하면 수요 예측도 가능하다. 국내 미발매된 셜록 홈스 소재 보드게임의 한글판 출시 프로젝트로 최근 2100여 명으로부터 1억1300여만 원을 후원받은 창작자는 “상상도 못한 결과”라고 크라우드펀딩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창작 비용이 부족한 젊은 예술가들에게도 작지 않은 힘이 되고 있다. 건축 전공 연구자 등으로 구성된 ‘CFL(Context Free Lab.)’은 크라우드펀딩으로 1500여만 원을 모아 지난달 초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한국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전시를 열었다. 현대미술 작가 8인의 베니스비엔날레 도전기를 담은 예술 다큐멘터리 ‘Sleepers in Venice’의 후반 작업 제작비도 모금에 성공했다. 크라우드펀딩은 팬 층을 모으는 플랫폼이 된다. ‘프리즘오브’(11호 발간 예정)는 한 호에 한 영화만 자세히 다루는 형식의 잡지다. 텀블벅에 발행 프로젝트를 산발적으로 올리다 8호부터는 고정적으로 올리고 있다. 발행인 겸 편집장 유진선 씨(26)는 “호별로 최대 2500명, 평균 600~700명이 우리 잡지를 후원했다”며 “후원자인 독자와 바로 소통하면서 요구를 확인하기 편해 고정 독자층을 모으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기성 아티스트와 출판사가 새로운 팬을 확보하는 기회로 크라우드펀딩을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장수 밴드 ‘크라잉넛’은 정규 8집 ‘리모델링’ 제작비 일부를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마련하고, 지난달 27일 기념 공연을 했다. 크라우드펀딩을 많이 활용하는 젊은 층과 접점을 확대하려는 시도다. 출판사 창비는 맨부커상을 받은 퀴어 소설 ‘아름다움의 선’을 최근 번역 출간하면서 후원 프로젝트를 올려 200명의 후원을 받았다. 건물이나 배경을 그려 웹툰 작가 등이 활용하도록 판매하는 ‘스케치업’ 후원 프로젝트가 최근 활성화되는 등 창작 관련 새로운 시장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등장하기도 했다. 이용제 계원예술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는 “문화예술 창작자는 늘 생존 문제로 위태로운 것이 현실인데 크라우드펀딩으로 기존에 없던 시도를 해볼 만한 바탕이 마련되고 있다”며 “후원자에게 유형의 보상을 줄 수 있는 분야뿐 아니라 기초 연구처럼 무형의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까지 후원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 작지만 함께하면 의미있는 행동, ‘참여형 크라우드 펀딩’ “처음에는 우리 얘기에 관심이나 있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멋진 프로젝트 응원합니다’라는 댓글이 달리더니 한 달 만에 100만 원 목표액을 채웠죠. 지금도 믿기지 않는 경험이에요.” 유시현 양(18)은 지난해 7월 뉴스를 보다 궁금증이 생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문정왕후의 어보와 함께 비행기에서 내린 것. 해외에 뺏긴 우리나라 문화재가 16만여 점에 이른다는 사실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유 양은 대구청소년창의센터에 함께 다니는 친구 4명과 의기투합해 지난해 8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오마이컴퍼니’에 해외 소재 문화재의 실상을 알리고 후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후원자들에게는 일본 도쿄 오쿠라호텔 뒤뜰에 있는 이천오층석탑과 프랑스에서 소장 중인 직지심체요절 등 주요문화재를 형상화한 배지와 롤케익을 선물했다. 한 달 만에 100만 원을 모금한 이들은 세금 등을 제외한 89만 원 전액을 올해 1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기부했다. 유 양은 “올해 9월에는 대구남부경찰서와 함께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를 후원하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했는데 160만 원 넘게 모였다”며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작지만 의미 있는 행동을 하는 것만큼 보람 있는 일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사회 이슈에 참여하는 캠페인성 프로젝트가 활발해지고 있다. 그동안 후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이들에게 특히 큰 힘이 된다는 평가다. 올해 1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와디즈’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후원을 위한 예술작품이 담긴 휴대전화 케이스’라는 펀딩이 시작됐다. 전문작가들이 위안부 소녀의 밝은 모습을 그린 휴대전화 케이스를 후원자들에게 선물하고, 수익금 전액을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 전달했다. 다가오는 겨울을 앞두고 유기동물들의 방한용품 구입을 위한 금액을 마련하는 ‘미미야. 이번 겨울은 따뜻할거야’(텀블벅)나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파란장미’(와디즈) 등 다양한 참여형 펀딩이 진행되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참여형 크라우드 펀딩의 증가는 사회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시민들이 많아졌다는 의미로, 한국 시민사회의 성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조종엽기자 jjj@donga.com유원모기자 onemore@donga.com}

    • 2018-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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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서재]짧은 90년대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1917∼2012)은 20세기가 1차 세계대전(1914년 발발)과 함께 시작돼 소련의 붕괴(1991년)로 끝났다며 ‘짧은 20세기’라고 규정했습니다. ‘지극히 자의적인’ 10년 단위 구분을 해볼까요? 한국은 아마도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로 시작해 1997년 외환위기로 끝나는, ‘짧은 90년대’를 보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신간 ‘한국의 세대 연대기’(최샛별 지음·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는 1970년대생을 ‘X세대’로 봤습니다. X세대는 문화적 시각으로 성격을 규정하는 특이한 세대죠. 앞선 ‘베이비붐 세대’나 ‘86세대’와도, 뒤의 ‘촛불 세대’나 ‘88만 원 세대’ 같은 규정과도 다릅니다. 그들의 청년기 역시 봄 비슷한 시절은 생각보다 짧았던 겁니다. 최근 발간된 ‘우리 시대의 스테디셀러’(이근미 지음·이다)를 보니, 1990년대에는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로마인 이야기’ 등 대중적 역사서와 함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 스테디셀러로 등장했습니다(출간일 기준). 자기계발서의 이 같은 인기는 당시까지는 전에 없던 사건이었죠.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긴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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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웃고 울며 견뎌낸 삶, 한 컷 사진에 다 있소

    소가 나무 아래서 풀을 뜯는다. 안개가 자욱하다. 평화로운 전원 풍경으로 보일 수도 있는 사진이지만 앞에 선 주름 가득한 남자의 눈빛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밀짚모자를 쓰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초로의 이 남자는 피로함과 짜증스러움, 권태로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권태균(1955∼2015)의 사진 ‘소 주인’(1982년 경북 안동 촬영)이다. 남자는 무얼 잃어버린 것일까? 권태균은 사진전 ‘노마드’를 2010∼2013년 열었다. 엮은이는 “‘노마드’ 시리즈는 1980년대 산업화의 격랑에 휩싸여 전통과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이 땅의 사람들을 담고 있다”고 했다. 1988년 출범한 이래 사진 출판의 외길을 걸어온 눈빛출판사가 한국 현대 사진 역사 70여 년의 궤적을 정리한 책이다. 다양한 세대와 장르의 사진가 80여 명의 작품이 담겼다. 부제 ‘한국 사진의 작은 역사 1945∼2018’에 걸맞게 책을 펴면 광복을 맞은 1945년 8월 15일 당일 오후 전남 광양경찰서 무덕전(武德殿)에서 열린 시국수습군민회의 사진이 먼저 독자를 맞는다. 눈빛출판사가 1989년 낸 이경모(1926∼2001)의 사진집에 실렸던 것이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노산 이은상(1903∼1982)을 비롯한 남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건물 안에 둘러앉았고, 밖의 아낙네도 창틀 안으로 상체를 들이민 채 귀를 기울이고 있다.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던 광복의 풍경이다. 첫 장인 ‘역사를 말하는 사진’은 이처럼 사진이 격랑의 현대사를 얼마나 함축할 수 있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전화(戰禍)에 휩싸인 서울, 4·19혁명 당시 발포하는 경찰, 5·18민주화운동 시민과 계엄군의 모습은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역사를 웅변한다. 여러 사진 속 얼굴은 한국인의 초상이기도 하다. 엮은이는 1956년 리얼리즘을 표방한 사진 그룹 ‘신선회’의 결성을 “사진사(史)적 대사건”으로 평가했다. 신선회의 좌장 격인 이형록(1917∼2011)의 사진 ‘거리의 구두상’(1956년 서울 남대문시장) 속 남자는 광이 나는 신사화를 늘어놓고 팔면서 정작 자신은 낡은 신발을 양말도 없이 신은 채 바지 밑단을 걷어붙였다. ‘자매들’(1958년 서울 면목동) 속 여자아이들은 지프차가 먼지를 내며 달리는 신작로에서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동생을 포대기로 업어 돌보고 있다. 거장 최민식(1928∼2015)이 찍은 가난한 이들의 얼굴과 김기찬(1938∼2005)이 포착한 1970, 80년대 서울 골목의 정겨운 풍경을 거쳐 사할린 한인의 눈물을 담은 새고려신문(사할린 한인신문) 이예식 기자(69)의 사진까지, 어느 한 장 뺄 것 없이 참으로 오래도록 들여다보게 만든다. 심규동(30)의 2016년 사진 ‘고시텔’ 속 다리를 쭉 뻗지 못하는 청년의 모습은 오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한국 사진이 여기 다 담겨 있다’는 듯한 자신만만한 제목 값을 한다. 눈빛출판사 대표이기도 한 엮은이는 “사진은 다른 예술 장르 못지않게 부단히 한국인의 삶의 흔적을 기록해 온 주요 매체이며, 광복 이후 면면한 전통의 계보 속에서 앞선 세대의 사진을 극복하며 발전해 왔다”고 말했다. 눈빛출판사는 20일까지 ‘스페이스 22’(서울 강남구 강남대로)에서 창립 30주년 기념전을 연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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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의대생은 어떤 공부할까… 맛보기로 듣는 의학 강의

    청소년이나 일반인을 위한, 의대 수업의 ‘맛보기’ 같은 책이다. 세포, 순환계, 호흡계, 비뇨기계, 소화기계, 내분비계, 신경계 순으로 인체의 구조와 기관의 작동 원리를 그림과 함께 소개했다. “코와 입의 공간을 아래쪽으로 연장시켜 보면 코가 입의 위쪽에 자리하고 있으니 당연히 기관(氣管)이 식도의 뒤쪽으로 지나가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식도가 기관의 뒤쪽에 놓여 있습니다.” 음식물이 기관으로 잘못 넘어가려 하면 사레가 들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행히 우리 몸에는 그런 일을 방지할 수 있는 ‘후두덮개’가 있다. 후두덮개가 제 기능을 못해 음식물이 기관으로 넘어가면 폐렴이 생길 수 있다. 평상시 단위 무게당 혈류량이 가장 많은 장기는 신장이다. 뇌보다 7배 넘게 많다. 이는 신장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 보여준다. ‘고대인들은 뇌와 심장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세포막의 이온 통로란 어떤 것일까’ 등 여러 의학적 지식이 담겼다. 단국대 의대 교수로 ‘아이들은 왜 수학을 어려워할까?’ 등을 집필하기도 했던 저자는 “사실 의대 수업이 정말 극복 못할 만큼 어려운 건 결코 아니다”라며 “무척 어렵고 낯선 용어를 끝없이 외워야 하는 무료한 학문 같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연구와 실험 속에서 찾아낸 재미있는 과학적 사실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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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도서관에 날개를]귀농·귀어 부모들 책에 반색… “문화시설 큰 고민 하나 덜었어요”

    《완도에서 신지대교, 장보고대교, 약산연도교 등 연륙교 3개를 건너면 조약도가 나온다. 전복 굴 미역 톳 다시마 양식이 활발한 인구 약 3500명의 섬이다. 삼문산에 자생하는 약초를 뜯어먹고 자란 흑염소도 유명하다. 완도 매생이 절반은 이 섬에서 난다. 주민들의 벌이가 괜찮다는 소문이 나자 “약 5년 전부터 젊은층 인구가 부쩍 늘고 있다”고 이승길 약산면 총무계장(51)이 귀띔했다.》 그러나 귀농·귀어(歸漁)를 고려하는 젊은 세대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 중 하나는 아무래도 문화시설 부족이다. 박성진 씨(41)도 도시에서 생활하다 고향으로 돌아온 주민. 미역과 매생이 양식을 하며 초등학생 아이 둘을 키운다. “완도읍에 영화관 생긴 게 지난해입니다. 전에는 영화 한 편 보려면 목포 장흥까지 나가야 했지요. 우리 섬은 아이들이 많은 편이어서 공부하고 놀 수 있는 시설이 절실해요.” 올해 초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이 섬에 작은도서관을 지을지를 심사하기 위해 찾자 마을이 술렁였다. 구릿빛 피부에 굵은 팔뚝을 가진 약산면(전남 완도군) 청년회원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KB국민은행의 후원을 받아 작은도서관을 만들기 위한 심사 자리에서 청년회원들은 “도서관이 생기면 정말 열심히 운영하겠다”고 다짐했다. 청년회는 회의실로 쓰던 청년회관 2층을 내놨다. 기존 집기를 철거할 때, 책장을 들여놓고 리모델링할 때 섬 청년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그렇게 준비한 ‘약산 진달래 작은도서관’이 지난달 31일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학교 도서관을 빼면 조약도(약산도)에 처음으로 생긴 도서관이다. 광주가 고향인 노현정 씨(33)는 도서관 개관식에서 “여기가 고향인 남편만 보고 내려오기는 했는데 문화시설이 없어 사실 많이 망설였다. 작은도서관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이런 시설이 늘면 섬으로 들어오는 젊은이도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기뻐했다. 언니 집에 놀러왔다가 남편을 만나 약 3년 전 섬에 들어온 동생 현경 씨(31)도 말을 거들었다. “원래 소설책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한데 도서관이 없더라고요.” 자매는 그동안 친정에 갈 때마다 서점에서 책을 사오거나 스마트폰으로 e북을 봤다. “이제는 종이책 페이지 넘기는 맛을 제대로 다시 보겠네요.” 남편과 함께 귀향한 정순화 씨(35)는 “책을 사려고 강진까지 한 시간가량 차를 타고 나갔는데 도서관이 생겨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귀어 2년 차로 아이 셋을 키우는 청년회원 박수희 씨(40)는 도서관이 지역공동체에도 소중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작은도서관이 주민들이 마주치고 노하우도 공유하며 단합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도서관 개관을 가장 반기는 건 역시 아이들과 청소년들이다. 박제희 군(14)은 “TV에 PC방이나 영화관, 서점이 나오면 부러웠다”고 했다. 약산중 2학년 권혁 군(14)은 “주말이면 30분마다 오는 버스를 타고 완도읍에 있는 도서관까지 책을 빌리러 나갔다”며 “도서관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조약도=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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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오가는 두루미처럼 사상의 단절 깨고 싶어”

    “제가 좋아하는 영미권 음악가, 작가, 철학자들은 다들 뿌리 깊은 역사적 연속성에서 나오는 자부심과 멋이 있더라고요. 한데 한국에서는 음악이든 뭐든 전통의 단절을 느꼈습니다. 일제강점과 전쟁을 겪은 탓이겠지요.” 밴드 멤버에 대한 선입견은 만나자마자 깨졌다. 록 밴드 ‘전범선과 양반들’의 전범선 씨(27)는 출판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 “우리 역사에 연속성을 부여하고, 이런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전통을 이은 ‘조선 록’을 표방하며 활동해 온 전 씨는 밴드 ‘꿈의 파편’의 전 멤버 고한준 씨(26)와 함께 최근 ‘두루미출판사’를 차리고 첫 번째 책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8900원)를 냈다. 두 사람을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지난달 29일 만났다. ‘나의 단발…’은 동아일보 최초의 여성 기자 허정숙(1908∼1991)이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와 ‘신여성’, ‘별건곤’ 등에 쓴 글 10개를 골라 묶은 책이다. 허정숙은 당시 여성들의 단발운동을 주도하고 여러 여성단체를 만든 대표적 사회주의 여성운동가. 주세죽, 고명자와 함께 1920년대 ‘조선 공산당 여성 트로이카’로 불리기도 했다. 전 씨는 “신여성을 비난하는 이들의 모순과 위선을 고발한 허정숙의 글은 오늘날 페미니즘의 주장과도 같고, 단발은 탈코르셋 운동의 시작과 같은 것”이라며 “약 100년 전 글임에도 현재 청년 세대에게 호소력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주의만 남고 모두 숙청당해 사라졌잖아요. 남쪽도 독재 치하에서 사상이 오랫동안 억압됐죠. 남북이 각자 정권을 세우기 전, 조선에 존재했던 다양한 사상이 검열 등으로 ‘씨가 말랐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를 재발견하고자 합니다.” 두 사람은 ‘나의 단발…’을 필두로 배제된 사상가들의 글을 담은 ‘두루미사상서’ 시리즈를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두루미’라는 출판사 이름은 남북을 자유로이 오가는 두루미처럼 사상의 단절을 깼으면 좋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2013년 서울 홍익대 앞의 같은 클럽에서 공연하다 서로 역사, 철학 분야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고 친해졌다. 전 씨는 영국 옥스퍼드대 대학원에서 미국 혁명사상사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입대한 후 올 9월 제대했다. 고 씨는 건국대 철학과를 다니며 동서양 철학 고전 읽기에 푹 빠졌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서로 좋은 책을 추천해 주다 고 씨가 1970년대 출간됐던 문학사 책을 복간하자고 제안하면서 의기투합했다. 고 씨는 “우리 세대도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인데 절판돼 구하기 어렵더라”며 “직접 복간하자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앞으로 헌책방도 차릴 계획이다. 밴드, 출판, 책방 모두 안정적인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다. “배고픈 분야만 골라서 한다고요? 열심히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죠.”(고 씨) “문화예술계에 뼈를 묻으려고 ‘조선 땅’에 돌아왔습니다. 제가 하려는 일이 공부를 이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전 씨)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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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학농민혁명, 3·1운동 이어진 전국적 항쟁”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항일 의병운동과, 내년 100주년을 맞는 3·1운동으로 이어지는 전국적 농민항쟁이었습니다. 특정 지역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기념하고, 세계사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하는 일이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동학농민혁명 법정 기념일’을 ‘황토현 전승일’인 5월 11일(1894년 당시 음력 4월 7일)로 최근 결정하면서 2004년부터 이어진 기념일 제정 논의가 14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동학농민혁명 법정기념일 선정위원장을 맡은 안병욱 한국학중앙연구원장(70·사진)은 12일 “기념일 후보로 제시된 여러 사건들 모두 의미가 크지만, 황토현 전투는 동학농민군이 관군에 대승을 거둔 중요한 전환점으로 의의와 상징성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전북 4개 지방자치단체가 추천한 ‘무장기포일’(4월 25일·고창군)과 ‘백산대회일’(5월 1일·부안군), ‘황토현 전승일’(정읍시), ‘전주화약일’(6월 11일·전주시) 등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여는 등 오랫동안 심사해왔다. 안 원장을 포함해 조광 국사편찬위원장, 이승우 동학기념재단 이사장, 이정희 천도교 교령, 이기곤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이사장 등 선정위원들은 여러 차례 회의를 거친 끝에 황토현 전승일로 의견을 모았다. 황토현 전승은 동학농민혁명의 절정 격이다. 물론 앞서 고부에서의 첫 봉기나 무장현 재봉기, 백산대회 등은 농민혁명에서 중요한 기점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 시점에서 봉기가 멈췄다고 가정한다면 혁명이 본격화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안 원장은 설명했다. 이후 전주화약 역시 일련의 혁명적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고, 결국 일본군에 패퇴했기에 황토현 전승이 지닌 의의에는 못 미친다고 봤다. 안 원장은 “학술적으로는 ‘갑오농민전쟁’ 또는 ‘1894년 농민전쟁’이라는 표현이 옳다”면서도 “농민전쟁이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생경하고, 관련 특별법 역시 ‘동학농민혁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 원장은 역사연구단체인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으로 일하던 1989년부터 동학농민혁명이 100주년을 맞던 1994년까지 5년에 걸쳐 ‘1894년 농민전쟁 기념사업’을 학술적으로 이끌기도 했다. “자주적, 독립적 개혁을 추진한 동학농민혁명은 우리 민족이 근대로 전환하는 분수령 같은 사건입니다. 만약 개별 지자체가 이벤트성 기념행사에 치우친다거나 예산 타내기에만 골몰한다면 조상들이 살신성인한 의미를 훼손할 수도 있습니다. 기념일 제정을 계기로 유적지 보존과 후대 교육이 더욱 활발해지기를 바랍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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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동맹, 기생, 독살… 숲은 소리없는 전쟁터

    살벌한 전장이다. 조르고, 찌르고, 탐색하고, 속이고, 독을 살포한다. 싸우다 동맹을 맺는다. 구원을 요청하고 대가를 준다. 한데 전장은 고요하다. 전투의 주인공이 나무와 풀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숲은 평화로운 치유의 공간이지만 식물들은 그 안에서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인다. 일본 시즈오카대 교수인 식물학자가 식물이 환경, 다른 식물, 병원균, 곤충 등과 어떻게 싸우고 협력하면서 살아가는지를 조명했다. 식물의 싸움은 박진감이 넘친다. 책에 따르면 용수(뽕나뭇과 상록교목) 같은 식물은 원래 있던 식물에 올라타 자라는 전략을 택했다. 덩굴로 나무를 칭칭 휘감으면 원래 있던 나무는 햇볕을 받지 못해 시든다. 나무를 졸라 죽이는 것처럼 보여 교살식물이라고 부른다. 세상에서 가장 큰 꽃으로 알려진 라플레시아는 줄기도 잎도 없다. 그 대신 기생뿌리라는 기관이 포도과 식물의 뿌리를 파고들어가 영양분을 빨아먹는다. 기생식물이다. 지하에서는 화학전도 벌인다. 대부분의 식물은 뿌리에서 다양한 화학물질을 방출해 다른 식물의 싹이 트는 걸 방해한다. 숲의 풍성한 나무들은 이러한 전투에서 살아남은 강자들인 셈이다. 약자에게는 약자의 생존전략이 있다. 사막에 사는 선인장, 빙설에 견디는 고산식물은 숲 대신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길을 택했다. 길가에 우거진 볏과 잡초 가운데는 마치 공기를 압축해 출력을 높이는 터보 엔진처럼 이산화탄소를 압축해 광합성 능력을 비약적으로 높인 것이 많다. 식물과 병원균의 전쟁은 ‘피가 마르는’ 공방전이다. 식물은 침투한 병원균이 방출하는 특정 물질을 감지해 방어체계를 가동한다. 병원균이 방어체계를 고장 내는 억제인자를 방출해 이에 맞서면 식물은 억제인자를 재빨리 감지해 방어체계가 작동되도록 체계를 수정한다. 그러면 병원균은 다시 새로운 억제인자를 발달시킨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싸움이다. 병원균의 침범을 막지 못한 세포는 스스로 사멸하는 방법으로 식물을 지키기도 한다. 공존과 협력도 한다. 독보리는 네오타이포듐속(屬) 사상균이 체내에 살게 해주고 균이 만드는 독소는 가축들로부터 독보리를 지켜준다. 콩과 식물은 뿌리혹을 만들어 뿌리혹박테리아가 살도록 하고 박테리아는 공기 중의 질소를 식물이 흡수할 수 있도록 암모니아로 고정시킨다. 공생이다. 놀랄 만큼 기발한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식물은 보통 독을 생산해 곤충을 물리친다. 하지만 쇠무릎지기라는 식물은 오히려 곤충의 탈피를 촉진하는 성장호르몬과 같은 물질을 만들어 천적인 유충이 빨리 성충이 되도록 돕는다. 유충의 성장 기간을 단축시켜 자신이 먹히는 기간을 줄이는 것이다. ‘빨리 먹고 떨어지라’는 전략이다. 식물은 지금과 같은 지구 환경을 만들어낸 존재다. 식물은 약 30억 년 동안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어 오존층을 만들어냈다. 지구에 쏟아지는 자외선이 감소하면서 수많은 생물이 출현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인류가 화석연료를 태워 이산화탄소를 대량 배출하고 기온을 높이는 한편 오존층에 구멍을 뚫어 지구 환경을 식물 탄생 이전으로 되돌리고 있다고 꼬집는다. 저자 말마따나 그런 방식으로 다른 생물을 멸종시키고 승자가 되어 인류가 얻을 세계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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