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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면담을 성사시키면서 국제사회가 갖고 있던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세탁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의 특사 격인 김영철을 백악관에서 직접 맞이하며 집무실에서 대화한 것 자체가 김정은이 그토록 원했던 ‘정상국가화 작업’에 긍정적 시그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 시간) 김영철을 백악관 집무실로 불러 80분간 대화했다. 회담 후 “그들은(북한은) 이전 (미국) 정부와 어떤 관계도 맺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었다”며 새로운 북-미 관계의 시작점에 있음을 밝혔다. 또 “그들은 한 국가로서 발전하기를 원한다.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 즉 ‘정상 국가’가 되기 위한 강한 의지를 보였고,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한 비핵화에 나설 경우 그런 과정을 돕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향후 북-미 간 ‘빅딜’을 통해 비핵화와 보상을 맞바꾸는 틀을 논의하겠지만, 이미 현 단계에서도 북한은 적지 않은 외교적 수확을 얻었다. 그동안 북한을 ‘불량국가’ ‘감옥 국가’ 등으로 칭했던 미국이 이젠 한 테이블에 앉는 동등한 외교 상대로 인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미국이 북한을 전복의 대상이 아닌 협상의 상대로 공식 인정했다는 것 자체가 북한에는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김정은은 젊고, 밝고, 변화에 적극적인 지도자상을 빠르게 만들어가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6·25전쟁 후 수십 년간 폐쇄된 국가로 지내왔던 북한은 지난해 핵무력 완성 선언 후 ‘전략국가’란 새 용어를 쓰며 국제사회 진입을 본격적으로 도모해왔다. 김정은은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 발사 성공 후 지난해 12월 노동당 제5차 세포위원장대회에서 “미국에 실제적인 핵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전략국가로 급부상한 우리 공화국”이라며 ‘전략국가’란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전략국가’는 결국 ‘정상국가’의 북한식 표현이며 미국에게 대우받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면서 “김영철 방미를 통해 북한 스스로 ‘열등 국가 콤플렉스’에서 상당 부분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북한이 김영철의 방미 보도를 늦추며 신중을 기하는 것도 이런 북-미 관계 변화의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 실장은 “70년 가까이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이었던 미국을 이젠 대화 파트너로 주민들에게 새로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세밀하고 새로운 선전선동술을 마련하기 위해 북한 당국이 고심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우리는 (싱가포르) 회담에 앞서 (사전에) 종전선언을 논의할 것이다. 회담에서 어떤 것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갖고 온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만난 뒤 기자들에게 “(김영철과) 70년이나 된 6·25전쟁을 끝내는 것에 대해 얘기를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에 따라 싱가포르 회담에서 종전선언이 나오거나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인 7월 27일에 맞춰 판문점에서 선언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3일 한미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1953년 정전협정이 서명됐던 판문점에서 7월 27일 남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영철과 1시간 20분가량 대화를 나누면서 대북 제재와 주한미군 감축 등 한반도 핵심 현안도 논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 수준의 (대북)제재는 유지될 것이지만 지금 대화를 하고 있는데 (북한을 향한) ‘최대의 압박(Maximum Pressure)’이란 용어를 더 이상 사용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감축 여부에 대해선 “모든 것에 대해 대화했다”며 김영철과 이 사안을 논의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 발언이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CVID)를 이행하면 주한미군 감축을 논의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자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2일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에서 “북한과의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며 일단 논란 확산을 경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12일 빅딜이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이날 사인(sign·서명)을 하지 않을 것이며, 과정(Process)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 뒤 “우리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갈 수도, 빨리 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는 “우리는 (북한) 원조에 많은 돈을 쓰지 않을 것이다. 한국 중국 일본이 참여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대북 지원 분담에 대한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워싱턴 조야에선 북-미가 갑작스레 의견을 좁혀 가는 데 대한 경계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북핵 프로그램과 관련한 양보를 얻어내기 전에 북한의 선전전에 또 다른 승리를 안겼다”고 지적했다. 2000년대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 미대사는 “북한이 트럼프에게서 모든 것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트럼프의 종전선언 검토에 신중한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2일 “설레는 마음으로 차분히 지켜보겠다”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군 내 ‘빅3’를 모두 교체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소식통은 “리명수 총참모장과 박영식 인민무력상이 각각 리영길 총참모부 제1부총참모장과 노광철 인민무력성 제1부상으로 교체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앞서 북한군 서열 1위인 총정치국장은 김정각에서 김수길로 교체된 바 있다. 이렇게 되면 북한군 서열 1∼3위인 총정치국장과 총참모장, 인민무력상이 모두 교체된 것이다. 이 소식통은 “올해 들어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남북관계 및 한반도 정세의 변화에 따라 군 수뇌부가 새로운 인물로 교체된 것으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군 내부의 온건파를 기용해 혼란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며 “특히 노광철 인민무력상은 온건파로 분류되던 인물”이라고 전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특히 김정은이 어떤 식으로든 비핵화를 최종 결단하면 군부 내 강경파가 불만을 가질 수도 있는 만큼 사전에 인사 조치를 단행했다는 것이다. 이번 인사 조치는 군 내 세대교체의 성격도 있어 보인다. 리영길 신임 총참모장은 올해 63세로 리명수 전 총참모장보다 21세나 젊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북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방미 기간 내내 그림자 수행하며 최근 북-미 회담장에 단골로 등장했던 ‘의문의 남자’가 북한 외무성 소속의 김주성인 것으로 확인됐다. 백악관은 1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영철의 만남 사실을 전하며 북측 수행원 이름을 공개했다. 여기에 김영철과 함께 백악관 집무실에 들어간 북한 인사를 ‘외무성 소속 김주성, 통역’이라고 밝혔다. 김주성은 지난달 초부터 숨 가쁘게 이어진 북-미 회담장마다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름과 소속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그는 지난달 9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평양을 찾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면담할 때 김영철과 함께 배석했다. 김영철 방미 기간엔 지난달 30일 폼페이오와의 만찬과 31일 회담, 1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백악관 대화에 모두 배석했다. 오히려 대미 라인 핵심이라는 최강일 외무성 북아메리카국 부국장은 대통령 집무실 밖에서 대기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최근 낸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김주성을 ‘1호 통역’(김정은 통역)을 담당하는 ‘노동당 국제부 8과 부원(출신)’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김정은이 2015년 형 김정철의 영국 런던행 때 김주성에게 “런던대사관에 중대 과업을 주려고 한다”며 김정철 근접 수행에 적합한 인사를 물었고, 김주성이 태 전 공사를 추천했다고 한다. 이날 백악관 행사엔 김성혜 당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도 따라갔다. 김성혜는 김영철 직속이며 특히 평창 겨울올림픽 직전 방한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밀착 수행했다. 백악관은 직책을 밝히지 않고 안평철, 맹성남도 수행단에 있었다고 밝혔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북한 매체들이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미국 방문을 일절 보도하지 않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지난달 29일 평양을 출발해 중국 베이징 도착, 30일 미국 뉴욕 도착 후 이틀 동안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만찬 및 고위급 회동을 가졌지만 북한은 1일 오후까지 이를 전혀 보도하지 않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판문점과 싱가포르에서 펼쳐지고 있는 북-미 실무회담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27일 전날 열린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전하며 “6월 12일로 예정되어 있는 조미 수뇌회담(북-미 정상회담)”이라며 미국과의 회담을 공식화한 이후 다시 침묵하고 있는 것. 이런 태도는 2000년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군 총정치국장이 이끄는 대미 특사단의 워싱턴 방문 때와는 180도 다르다. 당시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단 행보를 평양 출발, 워싱턴 도착, 빌 클린턴 대통령과의 만남, 귀환 등 총 6개 기사를 통해 꼼꼼히 전했다. 한 대북 소식통은 “당시엔 북-미가 사전 조율을 통해 ‘북-미 공동 코뮈니케’ 등 회담 성과물을 미리 마련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비핵화 해법 등 핵심 사안에 이견이 큰 만큼 방미 결과를 예단하기 어려워 보도를 자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현지 시간)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친서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상 간 친서엔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보단 상대방에 대한 호감과 관계 개선 의지를 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동안 워낙 ‘반전 행보’ 펼쳐 온 김정은이 평양 초대나 워싱턴 방문과 같은 파격 제안이나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 모델’의 콘셉트를 제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김정은의 친서가 지난달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1차 취소하며 “마음이 변하면 언제든 연락하거나 편지하라”고 했던 공개서한에 대한 답장 격인 만큼 북-미 정상은 일단 편지를 통해 1차 접촉한 셈이 된다. 김정은이 친서에 강한 대미 관계 개선 의지를 담을 것으로 보여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재개를 공식 선언할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평양 초청이나 워싱턴 방문 의사 밝힐 수도 김영철이 지난달 30일 뉴욕에 도착한 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의 회동 내용 못지않게 그가 가져온 김정은의 친서에 관심이 집중됐다. 국무부 고위 관계자가 30일 “편지를 전달한다면 놀랄 일”이라고 운을 뗀 뒤 트럼프 대통령은 31일 “친서 안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폼페이오 장관도 같은 날 북측 대표단과 마라톤 회의 후 “김영철이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갈 계획을 하고 있다”며 친서 전달을 공식화했다. 호건 기들리 백악관 부대변인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친서의 내용을 묻는 질문에 “봉인된 편지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의 친서 내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그 안에 비핵화 로드맵 등 구체적인 제안이 빼곡히 담길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정상 간의 친서는 원론적이고 총론적 성격의 덕담을 담는 게 보통이다. 이 때문에 친서에는 북한이 오랫동안 보여 온 대미 적개심 철회와 함께 관계 개선, 더 나아가 강한 비핵화 의지가 담길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미국이 최근 제시한 체제 보장과 경제적 지원 의사에 대한 감사의 뜻이 담겼을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영철이 지난달 29일 평양을 출발한 만큼 폼페이오와의 회담 내용 등 최근 변화된 상황이 서한에 반영되지는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평양 초청 메시지, 더 나아가 김정은의 워싱턴 방문 의지가 담겼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싱가포르 회담 후 2차 회담은 평양에서 갖자”거나 “워싱턴으로 갈 수도 있다”고 나올 수도 있다. 아무튼 김정은의 친서는 내용이 어찌됐든 간에 롤러코스터를 타며 전 세계를 들었다 놓은 북-미 두 정상이 이젠 신뢰를 조금씩이라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에 알리는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은 분명하다. 2000년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군 총정치국장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도 “적대관계를 청산하자”는 내용이 담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를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달해 관계 개선 의지에 대한 진실성을 강조했다. 줄리언 젤리저 프린스턴대 역사학과 교수는 AP통신에 “친서라는 형식의 냉정함이 외교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며 “트럼프나 김정은과 같이 돌발적 성격의 지도자에겐 (친서가) 감정을 억제하는 방법이다”라고 설명했다.○ 친서는 A4 용지 2장 분량일 듯 김영철이 트럼프에게 준 김정은 친서는 그리 길진 않은 듯하다. 김정은이 2월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통해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한 친서도 A4 용지 반 장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CVID 등 구체적인 비핵화 해법은 추후 실무회담으로 넘기고 주로 ‘좋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다. 내용을 영문과 한글로 1장씩 병기한 A4 용지 2장 분량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2000년 당시 조명록 제1부위원장은 백악관에 들어와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김정일의 친서를 전달했다. 하지만 김영철의 전달 방식은 하루 전까지도 공식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일정표를 통해 “1일 오후 1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백악관 오벌오피스(집무실)에서 만나 비공개 면담을 한다”고 공개했다. 이 자리엔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함께한다고 부통령실이 밝혔다. 친서 내용 못지않게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도 주목된다. 김정은의 ‘핵 협상 총책’을 홈그라운드인 워싱턴으로 불러들인 만큼 비핵화 방식이나 보상 수위 및 속도 등 쟁점 이슈를 거론하며 트럼프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김영철 면전에서 “김정은은 CVID에 나서라”고 강조할 것이라고 정통한 외교소식통들은 말했다.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 황인찬·한기재 기자}

“내가 이 자리까지 오는 데 30년 넘게 걸렸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72)은 1990년대 한 남북 회담장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빨치산이나 당 간부 집안 출신이 아닌 그가 1962년 군에 들어와 30년 넘게 대남 업무에 매달린 끝에 북측 협상 대표로 나온 감회였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55)의 감회도 남다를 것 같다. 지난해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초대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거쳐 국무장관에 오른 트럼프 행정부의 ‘신데렐라’로서 18년 만에 북한 고위급의 미국행을 이끌어냈다. 전직 정보 수장 출신으로 비핵화 논의를 이끌다 31일 뉴욕 ‘핵 담판’에서 마주하는 김영철과 폼페이오.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길을 걸어왔다.○ 말단으로 시작 vs 시작부터 초엘리트 김영철의 출신 성분은 구체적으로 알려진 게 없다.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하고 1962년 인민군 15사단 비무장지대(DMZ) 민경중대 근무로 군과 대남 업무를 시작했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김영철의 출신 성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건 그가 부하로 데리고 있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과의 관계로 유추할 수 있다. 정부 소식통은 “리선권은 ‘김영철의 오른팔’로 알려져 있지만 회담장에서 보면 김영철이 리선권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일정 선을 지킨다. 리선권 집안 배경이 김영철보다 좋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대북 전문매체인 38노스는 29일(현지 시간) 김영철의 ‘전기(biography)’를 소개하며 “1960, 70년대 김씨 일가의 근접 경호원으로 일했다”고 전했다. 38노스는 이어 “김영철은 일종의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심지어 여러 외국어를 능숙히 한다”고도 했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김영철은 정점으로 올라서기 위해 강경노선을 타며 온갖 경쟁자를 제쳐야 했다. 정찰총국장 시절 천안함 폭침을 주도한 것도 내부 권력투쟁에서 존재감을 부각시키려 했던 목적도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폼페이오는 상대적으로 탄탄한 엘리트 코스를 거치며 ‘출세 사다리’를 탔다. 미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대위까지 복무한 뒤 세계 최고의 명문인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그는 ‘하버드로리뷰’라는 법률지 편집장을 지냈는데 하버드대 로스쿨 학생 중에서도 극히 일부가 로리뷰 입성이 허락되고 그중에서도 편집장은 최고로 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바로 흑인 최초의 하버드로리뷰 편집장이다. 그는 변호사, 사업을 하다 2010년 캔자스주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당선된 뒤 내리 4선을 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군 출신에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했다면 워싱턴 정계에서도 최고의 자격이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과 ‘스펙’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폼페이오의 ‘꿈’은 이제 시작일 뿐, 백악관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번 협상에 북-미 관계는 물론이고 자신의 정치적 커리어가 달려 있다는 얘기다. 브루킹스연구소의 토머스 라이트 선임연구원은 최근 폴리티코 기고문에서 “폼페이오는 올해 55세. 대통령이 되려는 야망을 품고 있다. 국무장관직을 대통령이 되는 성공담의 한 길목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두 정보 수장 출신의 커리어 건 ‘뉴욕 회담’ 이런 김영철과 폼페이오는 31일 만나 최소 1박 2일 동안 접촉하며 김정은과 트럼프를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탑승시키는 ‘티켓 발권’(비핵화 합의)을 위해 총력전을 편다. 폼페이오가 3월 말과 9일 평양을 찾은 만큼 서로에 대한 탐색전은 어느 정도 마쳤다. 2차 평양 방문 때 폼페이오는 김영철을 “훌륭한 파트너”라고 불렀다. 하지만 지난주 ‘회담 취소와 번복’의 롤러코스터를 감안하면 안심하긴 어렵다. 대남 업무를 50년 넘게 해온 김영철과 변호사-의원-CIA 국장을 거친 폼페이오는 협상이라면 각 분야에서 어느 정도 반열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김영철은 협상장에서 고함을 치다가도 어느새 다가와 속삭이며 상대를 갖고 논다”는 건 정부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평가다. 라이트 연구원은 “(폼페이오는) 매우 강경하지만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도 건설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평이 있다”면서 “(장관 인준 때는 통과를 위해) 오랜 정적인 힐러리 클린턴과 존 케리 전 국무장관에게까지 손을 내밀었을 정도”라고 평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29일 오후 싱가포르의 대표적 휴양지 센토사섬의 카펠라호텔.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에 나선 조 헤이긴 백악관 부비서실장이 이끄는 미국 협상팀이 묵는 곳으로 알려진 이 고급 호텔의 경비는 30도 가까운 폭염 속에서도 삼엄했다. 호텔 관계자는 “(회담 사흘 뒤인) 15일까지 모든 예약이 꽉 차 있다”면서 기자가 아예 차량에서 내리지 못하게 막았다. 이유를 묻자 “보안 때문”이라고 짧게 답했다. 6·12정상회담이 코앞으로 다가온 싱가포르 현지의 긴장감은 벌써부터 팽팽했다. ○ 카메라 각도부터 비용 분담까지 전방위 논의 ‘김정은 집사’로 불리는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이 이끄는 북한 대표단과 헤이긴 부비서실장이 이끄는 미국 대표단은 이날 싱가포르 모처에서 만나 실무 접촉을 했다. 2주도 남지 않은 정상회담을 위한 의전·경호 협상이 막을 올린 것이다. ‘비핵화 해법’이란 의제가 아니라 회담이라는 이벤트를 위한 접촉이지만 판문점 접촉 못지않은 신경전도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모두 회담을 통해 성공했다는 이미지를 대외에 각인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사진을 찍으면 키가 큰 트럼프(188cm)가 김정은(170cm 전후)을 누르는 분위기가 나올 수 있어 북한의 고민이 클 것”이라며 “사진 및 영상 촬영 각도나 동선을 세심하게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비용 분담 문제도 실무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보통 정상회담은 현지 국가가 경비를 대는 것이 관례이지만 이번엔 제3국에서 열리는 터라 장소 대관비뿐만 아니라 오·만찬이 열릴 경우 식사비도 분담할 것으로 보인다.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린 4·27 남북 정상회담 때는 우리가 54억 원의 경비를 부담했다. 한 정부 당국자는 “이동, 숙박은 각자 분담하고 만찬 등은 공동 부담하는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 정부 부담은 극히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실무회담을 위해 북측은 대표단 8명이 중국 민항기를 타고 왔으며, 미국은 전용기를 타고 30명이 싱가포르를 찾았다. 규모나 교통편을 볼 때 북측 대표단이 ‘초라’한 셈이다. 하지만 실제 회담에서는 김정은이 대규모 수행단을 이끌고 고급 호텔을 이용하며 위세를 과시할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 때처럼 경호 인원들이 김정은의 차량을 에워싸며 뛰어가는 장면도 연출될 수 있다. 한 대북 소식통은 “미국이 정상회담 비용을 북한과 나눠 낸다고 발표하겠지만 북한이 비핵화에 성의를 보일 경우 대신 내주거나 미국이 북한을 ‘초청’하는 방식으로 전환해 부담을 덜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 4758km 김정은 특급 이송 작전 평양과 싱가포르의 직선거리는 약 4758km다. 김정은은 7, 8일 북-중 정상회담을 위해 전용기인 ‘참매1호’(IL-62)를 타고 평양과 직선거리로 359km인 다롄(大連)을 큰 탈 없이 다녀왔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이보다 13배 이상 멀다. 참매1호는 항속거리가 1만 km인 것으로 알려져 싱가포르까지 논스톱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경호 인력 등을 포함해 최소 100명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이는 수행단이 탑승할 별도의 여객기와 방탄 전용차 등을 태울 수송기가 함께 이동하는 것을 감안하면 중국 남부를 경유할 가능성이 높다. 수송기(IL-76)는 항속거리가 4000km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로 향할 경우 김 위원장과 함께 ‘공군 1호기’를 함께 타고 가 ‘역사적 그림’을 만들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나온다. 2011년 말 집권한 김정은이 중국을 제외하고 제3국에 처음 공개 방문하는 만큼 북한은 극히 예민한 경호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회담이 열리는 행사장 외곽은 싱가포르의 특공대와 경찰에 맡기되 내부는 북한 974부대, 호위사령부(963부대) 요원들과 미국 비밀경호국(USSS) 요원들이 공동 경호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싱가포르=유승진 채널A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7일부터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에 ‘비핵화 협상 드림팀’을 출격시켰다. 대표단장인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 외에도 백악관과 국방부에서 각각 대북 베테랑을 포진시켜 비핵화 해법 찾기 총력전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은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보좌관이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북 접촉 경험이 있는 몇 안 되는 고위급 관리인 후커 보좌관은 NSC의 한반도 이슈 안방마님 격이다. 2월 평창 겨울올림픽 폐회식에서 미 정부 대표단을 이끈 트럼프 대통령의 맏딸 이방카 백악관 보좌관을 수행해 방한하기도 했다. 앞서 2014년 11월 제임스 클래퍼 당시 국가정보국장(DNI)이 미국인 억류자 석방을 위해 방북해 김영철 당시 정찰총국장 등과 협상할 때도 함께했다. 랜들 슈라이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판문점으로 향한 것도 눈에 띈다. 국방 라인의 한반도 전문가인 그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2차 평양행에도 동행했다. 북한이 가장 걱정하는 체제 보장과 관련된 제안 설명에 나서는 한편으로 향후 북한이 도발에 나설 경우에 대한 경고 메시지도 전할 것으로 보인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북-미 정상회담 의제 조율을 위한 양측의 베테랑 실무 협상팀이 전날에 이어 28일에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만나 비핵화 로드맵과 관련해 ‘긍정적인 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이 합의문 초안을 작성할 경우 북측 실무 총책인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이번 주 내로 미 워싱턴을 방문하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세 번째로 평양을 방문하며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막바지 밑그림을 그릴 것으로 전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3월 초 ‘번개 승낙’으로 문을 열었던 북-미 회담이 지난주 잠시 좌초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남북 정상의 ‘번개 만남’을 통해 극적 반전을 이룬 데 이어, 판문점 실무 접촉을 거쳐 역사적인 비핵화 합의문의 틀이 빠르게 마련되는 분위기다.○ 이틀 연속 판문점에서 북-미 비핵화 실무 협상 28일 복수의 한미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가 이끄는 미국 협상팀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북한팀은 이날 판문점에서 만나 비핵화 로드맵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회의를 열었다. 전날 첫 번째 회담이 밤 늦은 시각 전에 끝난 것처럼 이날 두 번째 회담도 오후에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에는 검은색 구형 제네시스 차량이 경기 파주시 통일대교에서 미리 나와 대기하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군 호위차량을 따라 북측으로 향하는 모습이 동아일보 취재진에 포착되기도 했다. 해당 차량은 청와대 소유의 차량으로 미국 협상팀이 탑승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미 간 이날 판문점 접촉이 정확히 몇 시간 이어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후 미국 협상팀의 일원인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보좌관, 랜들 슈라이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등이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목격된 것을 감안하면 미국 협상팀은 북한과 ‘빠르게 협상’을 마치고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 한 미국 소식통은 “(실무회담이) 잘되어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당초 북-미 실무협상팀은 29일까지 회담을 할 예정이었지만 사흘 연속 회담을 이어갈지는 확실하지 않다. 한 외교 소식통은 “정부는 장소(판문점)와 차량 등 부대 지원만 해주고, 실제 회담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단 상황을 신중히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 김영철, 이번 주 워싱턴행 유력, 폼페이오의 3차 평양행 가능성도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비핵화 실무협상을 통해 ‘합의문 초안’을 완성해도 ‘성 김 대사와 최선희 부상’급에서는 싱가포르행 최종 도장을 찍을 수는 없다. 결국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재가를 받는 것이 필요한데, 이런 합의문 전달은 각 정상의 ‘특사’가 움직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 관계에 정통한 한 소식통에 따르면 “(비핵화 합의문은) 성 김과 최선희가 최종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결국 트럼프와 김정은의 재가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두 정상의 재가를 위해선) 결국 김영철이 백악관에 한 번 가야 하고, 폼페이오도 평양에 가서 (정상회담 합의문을 최종 확인받는) 마지막 과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북-미 협상팀이 마련한 비핵화 합의문의 초안이 늦어도 실무회담 마지막 날인 29일에는 마련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를 들고 김영철 통전부장이 이번 주 워싱턴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폼페이오 장관이 두 번 평양을 찾은 데 대한 ‘답방’ 형식으로 워싱턴을 찾는 의미도 있다. 폼페이오가 두 번 평양 노동당 본청을 찾아 모두 김정은을 만난 것을 감안하면 김영철 또한 백악관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합의한 ‘비핵화 합의문’을 들고 폼페이오 장관이 다시 3차로 평양을 찾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정은을 설득해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탑승하게 하는 확약을 받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성 김-최선희의 판문점 채널과 의전 문제를 조율하는 싱가포르 채널과는 별개로 미 중앙정보국(CIA)이 직접 나서는 제3의 채널도 가동 중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폼페이오 장관이 CIA 국장 시절 만든 별도의 트랙이 북한 정부와 다각도로 접촉하고 있다”며 “북-미 비핵화 논의를 실무 조율한 앤드루 김 CIA 산하 코리아미션센터장이 다시 한번 나서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황인찬 hic@donga.com·한상준·신진우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25일은 아마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 중 하나였을 것이다. 전날 오후 10시 42분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갑자기 북-미 정상회담을 일방 취소하면서 김정은의 ‘벼랑 끝 전술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25일 오전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통해 “아무 때나 마주 앉겠다”고 한 데 이어 급기야 오후엔 문재인 대통령에게 “만나자”고 SOS를 쳤다. 아무 반응 없던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유화적으로 변하자 23시간 만에 6·12 싱가포르 회담 카드를 다시 살렸다. 벼랑 끝 전술을 펴던 김정은이 ‘트럼프식 충격요법’에 하루 동안 천당과 지옥을 오간 셈이다.○ 시진핑, 다롄서 김정은의 싱가포르행 붙잡은 듯 현대 외교사에서 전례를 찾기 드문 트럼프와 김정은의 비핵화 밀당(밀고 당기기)은 이달 초 전조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7, 8일 중국 다롄(大連)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에서 나눈 ‘밀담(密談)’이 화근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다롄으로 온 김정은에게 미국을 믿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과 무슨 핵 협상을 하려고 하느냐. 지금 미국이 U-2 고고도정찰기를 북한 상공으로 띄워 (김정은 당신이) 뭐 하는지 다 감시하고 있는데 과연 백악관이 북한의 체제 보장을 하겠느냐”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 그러면서 중국 측이 파악한 미군의 최근 대북 정찰일지 중 일부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그래도 당시 ‘강화된 핵사찰’ 등 트럼프의 각종 비핵화 요구에 골치 아파 하던 김정은은 시 주석의 말을 듣고 트럼프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토로했다. 김정은이 시 주석 앞에서 했다는 “미국이 (비핵화 논의 국면에서) 승전국과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김정은의 싱가포르행 결심은 서서히 흔들린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인 징후는 다롄 회담 8일 뒤인 16일 김계관 1부상의 담화다. “조미(북-미) 수뇌회담을 재고려할 수 있다”며 북-미 정상회담 취소 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23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이벤트에 한국 기자단을 ‘지각 입장’시키며 한미 양측과 기 싸움을 벌인 김정은은 24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담화를 통해 “회담장에서 만나겠는지 아니면 핵 대 핵의 대결장에서 만나겠는지”라며 도발의 수위를 끌어올렸다.○ 김정은, 거부 못 할 ‘비핵화 번개’ 카드로 반전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최선희 담화를 보고 24일 오후 10시 42분(한국 시간) 회담 취소라는 초강수를 던지자 평양은 아연실색한 것으로 보인다. 취소 선언 다음 날인 25일 오전 7시 반 김계관을 시켜 “수뇌 상봉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가”라며 트럼프가 전원 스위치를 꺼버려 박동이 멈춘 싱가포르 북-미 회담에 대한 ‘심폐소생술’에 나섰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 정도에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이에 김정은은 가장 믿어 왔던 정보 라인을 가동시켰다. 판문점에 북핵 실무 총책임자인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보내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만나 ‘긴급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한 것. 한미 공조에 먹구름이 드리우는 걸 바라만 봐야 했던 문 대통령이 거절하기 힘든 ‘깜짝 제안’이었다. 24일 강원 원산의 철도 완공 현장에 이어 25일 원산 갈마관광지구 현장시찰에 나선 김정은은 이날 오후 문 대통령이 회담을 받아들이자 평양으로 돌아와 26일 판문점으로 향했다. 차로 이동했다면 이틀 간 원산∼평양(211km)에 이어 평양∼판문점(175km)의 장거리 주행을 불사한 것이다. 문 대통령을 판문점 통일각에서 만난 김정은은 표정이나 말에서 절박함을 엿볼 수 있었다. “장소도 이렇고 잘 못해 드려서 미안한 마음”이라고 한 건 인사치레라기보다는 갑자기 주말에 불러낼 정도로 사정이 녹록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아무튼 트럼프의 초강수에 대처하기 위해 문 대통령에게 던진 김정은의 SOS는 트럼프의 얼어붙었던 마음을 돌려놓는 데 일단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오후 10시경(한국 시간) 기자들과 만나 “(북-미 회담이) 심지어 12일이 될 수도 있다”며 김정은이 기다리던 말을 꺼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 기자가 “김정은이 당신과 게임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묻자 씩 웃으며 “모두가 게임을 한다”며 받아 넘겼다. 25일 전후 벌어진 김정은과의 1차 비핵화 수 싸움에선 이겼다고 스스로 여기는 듯한 표정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청와대로부터 김정은의 SOS 소식을 전해 들은 뒤 이런 반응을 내놓았을 게 확실하다”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해 급속히 냉각됐던 북-미 관계가 하루도 안 돼 회복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그야말로 한반도 정세를 놓고 두 정상이 롤러코스터 같은 기 싸움을 주고받은 것.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5일 오전 ‘김계관 담화’란 형식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면 좋은 시작을 뗄 수 있을 것”이라며 회담에 적극 나서자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으로부터 따뜻하고 생산적인 성명을 받은 것은 매우 좋은 뉴스”라고 화답한 데 이어 취소했던 다음 달 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예정대로 열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북-미 관계가 하루 사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모습이다. ○ 트럼프 “모두가 게임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북한으로부터 따뜻하고 생산적인 성명을 받은 것은 매우 좋은 소식”이라고 적었다. 김정은이 담화를 통해 북-미 정상회담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자 이에 즉각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 “북한의 행보가 어디로 흘러갈지, 장기적으로 번영과 평화를 가져다줄지 지켜볼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작심한 듯 북-미 정상회담 취소 후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트럼프는 북한과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모두가 게임을 한다(everybody plays games)”고 말했다. 전날 본인의 회담 취소에 이어 김정은이 회담 개최에 적극성을 보인 것을 모두 회담 재개, 더 나아가 비핵화 방식과 보상 조건 등을 놓고 벌이는 거래이자 ‘밀고 당기기’의 일환으로 표현한 것.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 심지어 (회담이 싱가포르에서 다음 달) 12일 열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궤도를 이탈했던 북-미 정상회담이 하루 만에 돌아온 모습이다. 트럼프의 유턴은 결국 김정은의 적극적이고 파격적인 유화적 메시지가 이끌어낸 측면이 있다. 김정은은 이날 오전 과거 날선 입장과는 정반대의 담화문을 내놨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비방전의 신호탄을 올린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내세우면서 사실상 ‘김정은의 메시지’라는 점을 강조하며 대화 재개를 적극 요청한 것. 김계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거론한 ‘커다란 분노와 노골적인 적대감’이라는 것은 사실 조미 수뇌 상봉을 앞두고 일방적인 핵 폐기를 압박해온 미국 측의 지나친 언행이 불러온 반발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이 너무 압박하지 않았다면 북한도 언행을 자제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또 “트럼프 방식이라고 하는 것이 쌍방의 우려를 다같이 해소하고 우리의 요구 조건에도 부합되며 문제 해결의 실질적 작용을 하는 현명한 방안이 되길 은근히 기대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다음 달 회담 부활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 북-미 정상이 다시 회담 개최를 향해 돌아앉은 모양새지만 핵심 의제인 비핵화 방법에 대한 이견은 여전하다. 김계관은 담화에서 “만나서 첫술에 배가 부를 리는 없겠지만 한 가지씩이라도 단계별로 해결해 나간다면 지금보다 관계가 좋아지면 좋아졌지 더 나빠지기야 하겠는가 하는 것쯤은 미국도 깊이 숙고해 봐야 할 것”이라며 미국의 일괄타결식 합의에는 거리를 뒀다. 비핵화를 하더라도 단계적, 동시적 보상 조치를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다음 달 12일 싱가포르 회담이 유지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북-미 회담 취소 후 하루 만에 두 정상이 대화 유지에 합의한 만큼 ‘공백’은 길지 않았다.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 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다”고 밝힌 북한이 비핵화 방법 논의에도 적극성을 보일 경우 싱가포르 회담 카드에 탄력이 붙을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북-미가 정상회담을 실제 준비하며 적지 않은 의견차를 확인해 결국 회담이 결렬됐던 만큼 추가적인 물밑 접촉을 통한 세밀한 정지 작업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보내는 편지로 회담 취소를 통보한 뒤 “김정은이 건설적인 대화를 위한 행동을 선택한다면 나는 기다리겠다”고 밝힌 것은 김정은이 직접 답변을 내놓으라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미국의 안전과 안보를 놓고 절대로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수용해야 한다고 다시 선을 그었다. 결국 북-미 대화가 다시 탄력받기 위해서는 김정은이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는 등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회담이 열리더라도 다음 달 12일 이후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황인찬 hic@donga.com·문병기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오후 10시 46분경 백악관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로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알린 뒤에도 미국의 압박은 계속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 서명식에서 “우리 군은 모두가 알다시피 필요하다면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한 데 이어 데이나 화이트 국방부 대변인은 “오늘 밤이라도 싸울 수 있도록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북한은 날이 개자마자 25일 오전 7시 26분경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명의의 담화를 통해 회담 개최를 바라는 입장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현 사태는) 관계 개선을 위한 수뇌상봉(정상회담)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가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단언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그 어느 대통령도 내리지 못한 용단을 내리고 수뇌상봉이라는 중대사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데 대해 의연 내심 높이 평가해왔다”고도 했다. 이는 북한의 입장이 사실상 180도 바뀐 것이다. 24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담화에서 “우리와 마주앉지 않는다면 구태여 붙잡지도 않을 것”이라며 “회담장에서 만나겠는지 아니면 핵 대 핵 대결장에서 만나겠는지”라며 위협했다. 김계관은 16일 담화에선 “일방적인 핵 포기만을 강요하려 든다면 조미 수뇌회담에 응하겠는가를 재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회담에 다시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회담이 장기간 표류할수록 불리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인 억류자 석방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카드까지 쓴 마당에 타이밍을 놓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을 다시 회담장으로 불러올 유인책이 마땅치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계관은 25일 ‘(김정은의) 위임에 따라’ 담화를 발표하면서 “(김정은) 위원장께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면 좋은 시작을 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며 김정은의 발언을 전하기도 했다. 최근 부하들의 담화를 통해 트럼프를 간접 압박했던 김정은이 “대화하자”는 ‘직접 메시지’를 날린 것이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4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하면서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핵심 참모진을 긴급 소집해 심야 대책회의를 갖는 등 긴박한 움직임을 보였다. 미국 발표 전까지만 해도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릴 것으로 확신했던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충격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서한이 공개된 직후인 이날 오후 11시 반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을 긴급 소집했다. 참석자들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핵심 멤버들로 사실상 대통령이 직접 NSC 회의를 주재한 것. 통상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나 핵실험 등 북한이 중대 도발에 나설 때에만 문 대통령이 직접 NSC 전체회의를 주재해왔던 만큼 이날 심야 회의는 청와대가 이번 회담 취소를 국가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악재로 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청와대와 정부는 이번 회담 취소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서한이 공개되기 한 시간 전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에 대해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기대한다”는 정부의 공식 환영 성명을 냈다. 청와대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에 큰 실망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9월 베를린 구상을 내놓은 뒤 올해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극단적인 대치관계를 대화 국면으로 끌어왔던 ‘평화 모멘텀’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북-미 관계가 당분간 대결 국면으로 치닫는 것이 불가피해진 만큼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판문점 선언의 동력도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병기 weappon@donga.com·황인찬 기자}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사진)가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사퇴했다. 북한이 최근 ‘3층 서기실의 암호’라는 자서전을 내고 김정은을 비판한 태 전 공사에 대해 “남조선 당국이 특단의 조치를 취하라”고 주장한 지 나흘 만이다. 태 전 공사는 “100% 자발적인 사의 표명”이라는 입장이지만, 최근 한반도 상황이 급변하면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처럼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24일 연구원과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태 전 공사는 전날 저녁 연구원을 찾아 지난해 1월부터 맡고 있던 비상임 자문연구위원직을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구두로 밝힌 데 이어 사직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연구원은 당일 사직을 처리했다. 태 전 공사는 사직 이유에 대해 “최근 (고위급 회담을 취소하는 등) 남북 관계가 막힌 게 나 때문인 것 같다. 내가 (남북 관계에) 걸림돌이 되는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태 전 공사가 김정은을 비판하자, 북한은 16일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천하의 인간쓰레기들까지 국회 마당에 내세웠다”며 태 전 공사를 맹비난했다. 이어 19일 대남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남조선 당국은 사태가 더 험악하게 번지기 전에 탈북자 버러지들의 망동에 특단의 대책을 취해야 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태 전 공사는 연구원에 “더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그만둬야겠다. 언젠가는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연구원이나 정부에 부담을 덜어주고, 개인적인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타이밍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연구원은 “태 전 공사가 자신 의사를 밝힌 것이지 압박은 없었다. 사표 수리도 본부(국정원) 문의 후 처리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태 전 공사는 24일 새벽 언론 인터뷰에서 “왜 사직하게 됐는지는 차후 남북 관계가 평가할 것”이라며 묘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실제로 올해 남북 관계가 대화 기조로 급변한 후 태 전 공사 활동에 제약이 가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왔다. 특히 북한이 한미 공군훈련인 ‘맥스선더’와 태 전 공사의 대외 활동을 문제 삼아 고위급 회담을 연기한 뒤 여권에서 태 전 공사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경협 의원은 17일 “(태 전 공사가) 북한에 대해 적대적 행위를 내질렀다”고 했고, 박범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18일 “근거 없는 발언으로 남북 간 평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주장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이벤트 취재를 위한 남측 공동취재단이 23일 오후 원산에 도착해 전날 도착한 다른 외신 취재단과 합류했다. 원산∼풍계리 현장의 약 437km 거리(철로, 도로 기준)를 철도와 버스, 도보로 이동해야 하는 만큼 김정은 북한의 첫 비핵화 행동인 ‘풍계리 이벤트’는 이르면 24일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남측 공동취재단 8명은 23일 낮 12시 반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정부 수송기인 공군 5호기(VCN-235)를 타고 원산으로 향했다. 전날 중국 베이징에서 우리 취재진의 원산행 고려항공 전세기 탑승을 불허했던 북한이 이날 오전 9시경 돌연 방북을 허가함에 따라 급히 정부 수송기를 타고 북한에 가게 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정상회담에서 밝혔던 ‘한국 기자단 참여’ 약속은 우여곡절 끝에 지키는 모양새가 됐지만 함께 약속했던 ‘전문가 참여’는 없던 일이 됐다. 한국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등 5개국 취재진은 이날 오후 전용열차를 타고 풍계리 핵실험장으로 출발했다. 풍계리 현장에 인접한 재덕역까지 12시간, 핵실험장까지 차량과 도보로 2시간 등 최소 14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여 취재진은 빠르면 24일 오전 현장에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한 북측 관계자는 “내일(24일) 일기 상황이 좋으면 (폐기 행사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북측은 취재진이 풍계리 현장에서 바로 기사를 송고하거나 사진을 찍어 보낼 수 없도록 휴대전화나 인터넷 접속 장비를 압수했다. 조선중앙TV가 생방송을 하지 않는 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장면은 녹화 중계될 것으로 보인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원산=외교부 공동취재단}
“삼성, LG를 봐라. 그들이 이룬 업적은 믿기지 않을 정도(incredible)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시작을 앞두고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갑자기 삼성, LG를 꼭 집어 언급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에 동의할 경우 ‘북한판 삼성, LG’가 나올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한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과 통일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당신의 장기 비전이냐’는 질문에 “우리는 지금 확실히 두 개의 매우 성공적인 한국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매우매우 성공적인 북한을 보게 될 것이고, 그리고 또 매우 성공할 남한도 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한다면 한국 못지않은 경제적 성공을 이룰 것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위대한 실험을 시작했던 과거에는 (지금의) 북한 못지않게 상황이 나빴다”면서도 “지금 삼성, LG, 그들(한국)이 만든 배를 보라. 그들이 이룬 업적은 믿기지 않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삼성과 LG란 이름을 정확히 언급한 것은 그만큼 이들의 왕성한 기업 활동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수입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하면서 “우리의 행동은 LG와 삼성이 바로 여기 미국에 주요 세탁기 제조 공장을 짓겠다는 최근 약속을 완수하는 강력한 유인책을 제고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래 한반도 모습에 대해선 “아마도 장래 언젠가 그들(남북)은 합치게 될 것이며, 원 코리아(one Korea)로 돌아갈 것”이라며 “남북이 원한다면 나는 좋다(okay)”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 선언을 넘어 공식석상에서 남북통일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한 정부 소식통은 “미국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유지가 아닌 통일 지지를 직접 밝힌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북한이 22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이벤트 취재를 위한 외신들의 방북을 허가하면서 비핵화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는 첫발을 뗐다. 그러나 당초 약속과 달리 한국 취재진의 방북은 불허했다.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 이행과 남북 관계 개선을 별도 트랙으로 다루면서 한반도 비핵화 논의의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지나친 대북 저자세가 ‘한국 패싱’을 야기했다는 지적도 있다.○ 영국 취재진 “방사선량 측정계 압수당해” 22일 오전 9시 45분경 중국 베이징(北京) 서우두(首都)공항에서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기자들을 태운 고려항공 전세기(JS622)가 원산을 향해 출발하며 ‘풍계리 이벤트’가 시작됐다. 16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북-미 정상회담 재고 입장을 밝힌 이후 북-미 간 냉기류가 형성된 가운데서도 풍계리 행사는 예정대로 이행하겠다는 것이다. 일부 언론 보도와 달리 북한이 비자 비용으로 1만 달러(약 1085만 원)를 요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초청을 받은 외신 기자들은 “수수료(fee)는 없었다”거나 “160달러를 사전에 냈고, 평소 (북한) 출장비 정도의 비용이 들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고가의 사증 비용 요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대량 현금 유입)에 저촉될 수 있다는 점을 북한이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 스카이뉴스 톰 체셔 아시아 특파원은 22일 오후 원산 도착 후 “(숙소인) 호텔에서 오찬 메뉴로 스테이크와 상어지느러미 수프, 자라튀김, 퐁뒤 등이 포함된 (뷔페식이) 제공됐다”며 “큰 홀에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 웨이’ 바이올린 연주가 흘러나왔다. ‘기괴한 잔치’였다”고 전했다. 체셔 특파원은 이어 “북한 당국자는 (현지) 법률을 지켜야 한다고 경고했다”며 “한 기자는 (당국자 설명에) ‘충분하게 집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적을 받았다”고 전했다. 스카이뉴스는 북측이 원산공항에서 “실험장은 안전하니 (방사선량 측정계가) 필요 없을 것”이라며 방사선량 측정계와 위성전화기를 압수했다고 전했다. ○ 한국 언론만 빼며 ‘한반도 운전석’ 노린 듯 김정은은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한 뒤 우리 기자들을 향해 “잘 연출됐습니까?”라고 물어 장내에서 웃음이 터진 적이 있다. 우리 언론과 첫 접촉인데도 거부감 없는 모습을 보인 것. 하지만 북한은 15일 “통신과 방송 1개사 4명씩 총 8명을 초청한다”고 알려 왔지만 22일 우리 기자단 명단 수령을 거부했고 베이징까지 간 취재진을 원산행 고려항공 전세기에 태우지 않았다. 북한이 풍계리 폐기 이벤트란 ‘국제적 약속’은 이행하면서도 한국 초청이란 ‘남북 간 약속’을 어긴 것은 결국 남북 관계에서 주도권을 확실히 틀어쥐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남한을 압박하며 북-미 간 중재 역할 강화를 유도하거나 대미 불만을 한국에 쏟아내며 미국을 간접 압박하겠다는 것. 총련계 조선신보는 22일 “조미(북-미) 대화에서 진전이 이루어지면 (남북) 고위급 회담을 중지시킨 사태도 저절로 해소되리라고는 볼 수 없다”고 전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북한이 23∼25일로 예고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이틀 전까지 한국 취재진의 명단 수령을 거부했다. 북한이 한국 언론을 제외한 외신들에는 입국 비자를 발급해준 것으로 알려져 한국을 배제하고 행사를 진행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21일 오전 판문점 연락 채널을 통해 다시 기자단 명단을 전달하고 판문점 연락 채널이 종료된 이날 오후까지 답을 기다렸지만 북한은 응답을 보내지 않았다고 통일부는 밝혔다. 북한은 우리 기자단 명단은 받지 않았지만 외신 취재기자들에게는 비자를 발급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소식통은 “한국을 제외한 미국과 중국 러시아 영국 등 외신 일부는 22일 오전 베이징 주중 북한대사관으로 집결하라는 공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은 외신은 미국의 CNN과 영국 APTN, 중국중앙(CC)TV 등으로 알려졌다. 일본 NHK는 북한이 22일 오전 10시 원산 갈마비행장으로 가는 특별 항공편을 편성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으로부터 방문 허가를 받지 못한 한국 기자단은 이날 일단 중국 베이징으로 출국해 북한대사관 근처에서 대기했다. 한국 기자단 일부는 이날 중국 베이징 북한대사관을 찾아가 별도로 방북을 위한 비자 신청을 할 계획이었으나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정부 관계자의 만류로 신청을 보류했다. 6·15 남북 공동선언 공동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북한을 방북하려던 민간단체 회원들의 방북도 무산됐다. 이날 통일부와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오후까지 남측위에 방북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다. 북한은 이달 4일 남측위에 “6·15공동행사 등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해외 위원장회의를 23∼26일 평양에서 갖자”고 먼저 제안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주 북한 당국에 방북 대표단 명단을 보낸 후 연락을 기다렸지만 공동회의 이틀 전인 이날까지 북한은 아무런 연락을 보내지 않았다. 남측위 관계자는 “북측과의 구체적인 논의 과정을 밝히기는 곤란하다”면서도 “(초청장이 안 온 것은) 최근 남북 상황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신진우 niceshin@donga.com·황인찬 기자}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할 수 있다고 밝힌 뒤 한미를 겨냥해 하루가 다르게 거친 언행을 쏟아내고 있다. 남북 고위급 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데 이어 올해 들어 처음 탈북 여종업원 송환을 요구했다. 급기야 한미 정상은 20일 통화를 갖고 북한이 이처럼 나오는 이유를 분석하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북한은 19일 북한 적십자회 대변인의 언론 문답을 통해 “우리 여성 공민(탈북 여종업원)들을 지체 없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으로써 북남관계 개선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월 9일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북측이 여종업원 송환을 요구했다고 알려지긴 했지만 북한 매체를 통해 송환을 공식 요구한 것은 올해 들어 처음이다. 대남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19일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등을 겨냥해 “남조선 당국은 사태가 더 험하게 번지기 전에 탈북자 버러지들의 망동에 특단의 대책을 취해야 할 것”이라고 다시 요구했다. 북한은 23∼25일에 열겠다고 밝힌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이벤트에 한국 기자단을 초청하겠다고 했지만 20일 오후 현재까지 방북을 허가할 것인지 답을 주지 않고 있다. 다만 풍계리 현장에 관측용 전망대가 세워지고 원산∼길주 열차 선로 등이 정비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폐기 행사 준비는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외교가에선 김정은이 북-미 회담의 판을 깨지 않는 수준에서 대미 협상력을 높이고 비핵화 논의에 불만을 가질 수 있는 군부 등 북한 내 강경파를 다스리는 ‘상황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0일 오전 11시 반부터 20분간 전화 통화를 하고 최근 북한의 태도 변화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의 여러 반응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있었다. 주로 트럼프 대통령이 질문했고 문 대통령이 답했다”며 “(통화가 진행된 건 워싱턴 현지 시간으로) 토요일 밤이다. 북-미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황인찬 hic@donga.com·한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