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유윤종 전문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구독 112

추천

클래식음악 분야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푸치니: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등의 책을 썼습니다.

gustav@donga.com

취재분야

2025-11-13~2025-12-13
음악67%
칼럼10%
문학/출판10%
문화 일반7%
연극3%
기타3%
  • [책의 향기]현대 국가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나

    제목만으로는 세계가 앞으로 직면하게 될 변동과 대처 방법을 알려주는 미래 예측서처럼 보인다. 책을 열면 다른 내용과 먼저 만나게 된다. 문명사를 분석한 책 ‘총, 균, 쇠’로 낯익은 저자는 핀란드, 일본, 칠레 등 7개 국가가 현대에 직면했던 위기들을 소개하고 이 나라들이 어떤 이유로 위기를 맞았으며 어떤 요인으로 위기를 극복했는지를 분석한다. 국가의 위기와 관련된 요인들은 12개 항목으로 요약된다. 위기에 빠졌다는 국민적 합의, 국가적 책임의 수용, 정확한 자기평가 등이다. 이 요인들을 개인들의 위기와 관련된 12개 요인과 비교해 한층 실감 있게 와 닿는다. 핀란드는 1917년 독립과 함께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겪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소련과 두 차례의 전쟁을 치렀다. 1억7000만 명 대 370만 명의 싸움이었고 남자 스무 명 중 한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독립을 지켜냈다. 무엇이 비결이었을까. 12개 항목 중 핀란드는 ‘책임 수용’ ‘강력한 정체성’ ‘정확한 자기평가’ ‘유연성’을 뚜렷이 보였다. 부족했던 ‘동맹의 지원’ ‘본받을 사례’ ‘지정학적 제약으로부터의 자유’를 지혜롭게 보완했고, 세계무대에 우뚝 설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의 부흥, 정치적 격변과 인권 탄압을 겪은 칠레와 인도네시아, 분단과 세대 갈등을 극복한 독일, 영연방의 일원에서 동쪽 세계의 일원으로 국가 정체성을 재정립한 호주, 마지막으로 미국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을 소개하며 12개 요인을 통한 극복 방법을 분석한다. 제목에서 기대한 ‘미래 세계의 예측’은 마지막 11장에 등장한다. 핵무기, 기후변화, 자원 고갈, 불평등을 최대 위기 요인으로 꼽은 점은 새롭지 않다. 새로운 것은 현재 세계가 직면한 이 문제들도 ‘12개 요인’의 분석틀을 거치는 점이다. 첫 항목부터 꼽아 보자. 인류는 현재의 위기를 인정하고 책임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6-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4번 도전 끝에 승무로 금빛 영예

    “올해 처음 전통 부문으로 동아무용콩쿠르에 도전한 만큼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30일 열린 제49회 동아무용콩쿠르 본선에서 한국무용 전통 부문 일반부 남자 부문 금상을 수상한 박철우 씨(22·한국예술종합학교 4년)는 후련하다는 듯이 밝게 웃음 지었다. 그는 5년 전인 2014년 제44회 동아무용콩쿠르 한국무용 창작 부문 고등부로 처음 도전해 동상을 안았다. 이듬해 결과도 동상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한 뒤 일반부로 도전했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창작보다 전통 부문이 제게 더 맞는 게 아닌가 싶어 부문을 바꾸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지 바꾼 데서 그치지 않고, 소화할 수 있는 조언은 전부 듣고 다른 분들의 춤도 연구하며 온 힘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그는 이번 콩쿠르 본선에서 전통춤 가운데서 가장 길고 어렵다는 평을 받는 승무를 추었다. “춤에 대해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저에게는 오히려 즐거웠습니다.” 그는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춤 공부를 위해 고향인 충주를 떠나 서울에서 혼자 살아왔다. 할아버지는 연극배우로 활동했고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의 제자인 예인 집안이다. “집안 분위기에 따라 자연스레 춤에 젖어들었고, 어릴 때도 춤을 출 때 행복했어요.” 이번 콩쿠르 본선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인 박숙자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은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디딤이 거칠거나 하는 면이 보이지 않았다. 계속 정진하면 좋은 재목으로 클 것”이라고 그의 춤에 기대를 나타냈다. 심사위원 명단과 본선 채점표는 동아닷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콩쿠르 실황을 담은 동영상도 추후 동아닷컴에 공개한다.■ 수상자 명단 ◇일반부 ▽한국무용 전통(여) △금상 손효진(한국예술종합학교 졸) △은상 허여진(성균관대 졸) △동상 김현결(한예종 졸) ▽한국무용 전통(남) △금상 박철우(한예종 4년) △은상 노하늘(한예종 3년) △동상 정찬민(한예종 졸) ▽한국무용 창작(여) △금상 강주희(경희대 3년) △은상 김세연(경희대 4년) △동상 최다빈(한예종 대학원 1년) 김은경(한예종 3년) ▽한국무용 창작(남) △금상 노연택(세종대 4년) 박철순(한예종 대학원 2년) △동상 박기환(한예종 4년) 김동현(한예종 졸) ▽현대무용(여) △은상 함초롬(경희대 졸) △동상 박서란(전북대 졸) 김지혜(세종대 3년) ▽현대무용(남) △금상 김영웅(세종대 1년) △은상 박진호(세종대 3년) △동상 박용휘(중앙대 3년) ▽발레(여) △은상 김민정 △동상 신수연(경희대 2년) ▽발레(남) △은상 국찬우(국민대 4년) △동상 김동근(한양대 4년) ◇고등부 ▽한국무용 전통 △금상 이예진(국립국악고 3년) △은상 정다연(경북예고 3년) △동상 조민아(오금고 3년) ▽한국무용 창작 △금상 김건우(고양예고 3년) △은상 이승연(서울예고 3년) △동상 이동환(국립국악고 3년) ▽현대무용 △금상 이채원(부산예고 2년) △은상 김정윤(서울예고 2년) △동상 설은주(계원예고 2년) ▽발레 △은상 서윤정(서울예고 3년) 유승민(선화예고 3년) 이명현(유스발레컨서바토리) ◇중등부 ▽발레 △금상 이승민(선화예중 3년) △은상 김태령(선화예중 3년) △동상 김수민(선화예중 3년) △장려상 박유진(유스발레컨서바토리) 차예율(하안중 2년) 김서연(계원예술학교 3년) 강채연(예원학교 3년) ◇초등부 ▽발레 △금상 방수혁(대현초 6년) △은상 이다경(배곧한울초 6년) 박현우(개운초 6년) △장려상 조수민(동답초 5년) 이나흔(압구정초 6년) 김로희(내발산초 6년) 김수민(부안초 6년) 김지은(예봉초 6년) 홍태이(정자초 6년) 이세령(당촌초 6년)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5-3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평창대관령음악제 오케스트라, 올해 더 화려해진다

    16회째를 맞는 올해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주제는 ‘다른 이야기(A Different Story)’다. 새로움을 추구하겠다는 다짐이자, 이야기를 들려주듯 흥미롭게 음악을 풀어 나가겠다는 아이디어로 읽힌다. 7월 31일부터 8월 10일까지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 콘서트홀과 뮤직텐트를 중심으로 12개의 메인 음악회와 교육 프로그램, 찾아가는 음악회가 열린다. 메인 음악회는 개막 공연 ‘옛날 옛적에’를 시작으로 ‘못다 한 이야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폐막 공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까지 이야기 한 편씩을 들려주는 듯한 제목을 붙였다. 지난해 좋은 반응을 얻은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는 올해 더 공을 들였다. 단원 대부분을 세계 유명 교향악단의 정단원으로 구성했다. 8월 3일 콘서트에서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니 악장으로 활동하는 박지윤이, 10일에는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제2바이올린 수석인 이지혜가 악장을 맡는다. 3일에는 지난해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을 지휘했던 드미트리 키타옌코가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을 들려주고, 이 음악제 예술감독인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 2번을 협연한다. 10일에는 서울시립교향악단 악장을 지낸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프가 지휘자 파블로 곤살레스와 불가리아 작곡가 블라디게로프의 협주곡을 선보인다. 음악을 통한 나눔도 풍성하다. 찾아가는 음악회는 원주와 춘천 외 고성, 삼척, 양구, 강릉, 정선, 평창, 인제, 태백에서 열린다. 올해 두 해째 예술감독을 맡는 손열음 예술감독은 28일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강원도민과 거리를 좁히는 것이 큰 과제였다. 원주나 춘천과 그 밖의 지역 사이 문화적 간극이 큰데, 찾아가는 음악회로 이를 좁히고 싶다”고 말했다. 8월 3일, 10일 오후와 저녁에는 ‘이 시대의 소리’를 표방하는 작곡가 여섯 명의 쇼케이스가 열린다. 올해 처음 선보이는 무대다. 손 예술감독은 “현대음악 분야에는 일종의 사명감이 든다. 진보적인 작곡가들을 데려와 이 시대의 소리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홈페이지 참조.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5-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佛 피아니스트 프랑수아프레데리크 기 “45분간 이어지는 베토벤 소나타의 정점 ‘하머클라비어’”

    “하머클라비어 소나타는 피아노 소나타의 절대자이며, 베토벤에게도 궁극의 소나타입니다.” 프랑스 피아니스트 프랑수아프레데리크 기(50)에게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29번 ‘하머클라비어’는 그가 연주하는 동기이자 목적이다. 그가 21년 전 처음 음반으로 발매한 베토벤 소나타도 이 곡이었다. 내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앞두고 전 세계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고 있는 그가 30일 서울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이 ‘최애곡(最愛曲)’을 선보인다. 늦봄의 캠퍼스에서 그를 만났다. 2017년부터 해마다 두 차례씩 금호아트홀에서 베토벤 소나타 리사이틀을 열어 온 그는 지난해 본보 인터뷰에서 ‘베토벤이 중요한 이유는 그의 보편적인 휴머니즘’이라고 설명했다. ―베토벤 소나타 중에서도 특히 ‘하머클라비어’에 천착해 왔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머클라비어는 고전 피아노 소나타의 정점을 이룬 곡이죠. 45분이나 되는 장대한 작품이고, 피아노 솔로곡의 규모를 변화시켰습니다. 이후에도 베토벤은 피아노소나타 3곡을 썼지만, 그 곡들은 클래식 소나타 이후의 다른 세계로 넘어간 곡입니다.” ―장대한 만큼 연주도 쉽지 않을 텐데요. “모든 것이 이전을 뛰어넘습니다. 더 크고 복잡하고 더 기교적으로 새롭습니다. 느린 악장은 9번 교향곡을 연상시키며, 짧은 연결구를 지나 마지막 악장 푸가로 넘어가죠. 우주 탄생의 ‘빅뱅’에 비유할 만한 부분입니다. 이 푸가는 ‘바흐를 넘어선 극단’과도 같고, 내면의 광기랄까, 번득임까지 드러냅니다.” ―그렇게 힘든 곡을 사랑하는 건가요. “시즌마다 연주합니다. 내게는 ‘침대 머리맡에 있는 책’과 같은 친근한 작품이죠.(웃음) 백 번 이상 쳤고 세 번 음반으로 내놓았습니다.” ―프랑스인으로서 베토벤을 연주하는 것은 어떤 느낌입니까. “국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스승 리언 플라이셔는 대(大)피아니스트 아르투어 슈나벨의 제자이고, 슈나벨은 테오도르 레셰티츠키, 그 위로는 리스트,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사제관계였습니다. 이런 위대한 전통에 연결돼 있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번 연주회에서 그는 ‘하머클라비어’ 외에 베토벤의 소나타 19, 20, 11번을 연주한다. 그가 서울에서 펼쳐 온 베토벤 소나타 대장정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내년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두 차례의 연주로 끝을 맺는다. 워싱턴, 파리, 리우, 몬테카를로,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쿄 등에서도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를 펼치고 있는 그는 내년 5월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파리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하고 솔로도 겸해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곡 전곡을 연주한다. 5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5-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피아니스트 기 “쉽지 않은 베토벤 ‘함머클라비어’를 고집하는 이유는…”

    “함머클라비어 소나타는 피아노 소나타의 절대자이며, 베토벤에게도 궁극의 소나타입니다.” 프랑스 피아니스트 프랑수아프레데리크 기(50)에게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는 그가 연주하는 동기이고 목적이며 알파와 오메가다. 그가 21년 전 처음 음반으로 발매한 베토벤 소나타도 이 곡이었다. 내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앞두고 전 세계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고 있는 그가 30일 서울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이 ‘최애곡(最愛曲)’을 선보인다. 늦봄의 캠퍼스에서 그를 만났다. 2017년부터 해마다 두 차례씩 금호아트홀에서 베토벤 소나타 리사이틀을 열어온 그는 지난해 본보 인터뷰에서 ‘베토벤이 중요한 이유는 그의 보편적인 휴머니즘’이라고 설명했다. ―베토벤 소나타 중에서도 특히 ‘함머클라비어’에 천착해 왔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함머클라비어는 고전 피아노 소나타의 정점을 이룬 곡이죠. 45분이나 되는 장대한 작품이고, 피아노 솔로곡의 규모를 변화시켰습니다. 이후에도 베토벤은 피아노소나타 3곡을 썼지만, 그 곡들은 클래식 소나타 이후의 다른 세계로 넘어간 곡들입니다. 이후에 이 곡과 비교할만한 규모의 곡은 리스트의 소나타와 피에르 불레즈의 소나타 2번 정도입니다. 불레즈도 ‘함머클라비어’를 모델로 2번 소나타를 썼죠.” ―장대한 만큼 연주도 쉽지 않을 텐데요. “모든 것이 이전을 뛰어넘습니다. 더 크고 복잡하고 더 기교적으로 새롭습니다. 느린 악장은 9번 교향곡을 연상시키며, 짧은 연결구를 지나 마지막 악장 푸가로 넘어가죠. 우주 탄생의 ‘빅뱅’에 비유할 만한 부분입니다. 이 푸가는 ‘바흐를 넘어선 극단’과도 같고, 내면의 광기랄까, 번득임까지 드러냅니다.” ―그렇게 힘든 곡을 사랑하는 건가요. “시즌마다 연주합니다. 내게는 ‘침대 머리맡에 있는 책’과 같은 친근한 작품이죠.(웃음) 백 번 이상 쳤고 세 번 음반으로 내놓았습니다.” ―프랑스인으로서 베토벤을 연주하는 것은 어떤 느낌입니까. “국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스승 레온 플라이셔는 대(大)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의 제자이고, 슈나벨은 테오도르 레셰티츠키, 그 위로는 리스트,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사제관계였습니다. 이런 위대한 전통에 연결돼있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워싱턴, 파리, 리우, 몬테카를로,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쿄 등에서도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를 펼치고 있는 그는 내년 5월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파리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하고 솔로도 겸해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곡 전곡을 연주한다. “베토벤의 협주곡은, 특히 1번부터 4번까지의 곡들은 베토벤 자신이 지휘도 하고 솔로도 하며 연주할 의도로 만든 곡들이죠. 이 곡들을 지휘하며 연주하는 것은 그 의도에 맞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단원들 쪽을 보며 지휘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니 마치 한 가족 같은 친밀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물론 어려움도 있다, 지휘는 팔을 들며 업비트(up beat)로 휘저어야 하고, 피아노는 건반을 내려찍어야 하니 그 둘을 함께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며 그는 웃음을 지었다. 그는 한때 지휘자가 되기 위해 피아노를 포기하려 생각한 때도 있었다. “90년대에 내면에서 지휘를 향한 욕구가 강하게 일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브루크너, 말러, 바그너의 대규모 오케스트라 곡들이었죠. 피아노 음악을 주로 쓴 작곡가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스승인 레온 플라이셔 선생님이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에게 배울 수 있는 추천서를 써줬죠. 그런데 그때 라로크 당테롱 음악축제에서 피아노를 연주해달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망설이다가 거기로 갔습니다. 내면적으로 매우 중요하고도 오묘한 시기였고, 그때 페스티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이제 진짜 피아니스트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와 협주곡에서 그치지 않는다. 현악 연주자들과 함께 하는 실내악은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첼리스트 그자비에 필립과 함께 연주한 베토벤 첼로 소나타 음반은 그라머폰 매거진 ‘이달의 음반’으로 선정됐다. 바이올리니스트 테디 파파브라미와 함께 연주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도 찬사를 받았다.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전곡 음반은 ‘지그잭’ 레이블로 2013년 발매됐다. “피아니스트의 딜레마는 건반에 해머(양털을 다진, 현을 치는 나무망치)가 달린 악기를 쓴다는 거죠. (타악기적인 속성이 크다는 뜻) 그래서, 현을 긋는 악기나 가수들과 함께 연주할 때 다른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가 특히 사랑하는 악기는 그윽하고 웅숭깊은 첼로와 비올라다. 내년에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노투르노’를 연주하면서 베토벤이 첼로나 비올라를 위해 쓴 곡은 모두 섭렵하는 셈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30일 연주에 앞서 23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베토벤소나타 16, 18, 24, 26번을 연주했다. 2017년과 2018년에는 올해 4월로 역할을 끝낸 신문로 금호아트홀에서 연주했다. “지난해까지도 좋았지만 올해는 더 환상적이에요. 홀의 음향이 훌륭하죠. 뿐만 아니라 대학 캠퍼스에서 연주한다는 느낌도 너무 좋아요. 배움이 이뤄지는 곳에서 베토벤을 소개하는 것은 훌륭한 체험이죠.” 그는 연세대 음악동우회 회원들이 표를 예매해서 연주회에 함께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매우 기뻤다고 말했다. “연주회에 온 젊은 학생들의 눈에 하트가 어리는 걸 보았어요. 그런 것은 이 세상의 고귀함을 느끼는 체험이죠. 매우 열정적이고, 음악을 잘 받아들이는 따뜻한 분위기의 청중을 경험했습니다.” 30일 연주회에서 그는 ‘함머클라비어’외에 베토벤의 소나타 19, 20, 11번을 연주한다. 그가 서울에서 펼쳐온 베토벤 소나타 대장정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내년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두 차례의 연주로 끝을 맺는다. 5만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5-27
    • 좋아요
    • 코멘트
  • [책의 향기]목숨 걸고 미국으로… 그들은 왜 국경을 넘는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왜 한사코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려는 것일까. 밀입국이 가장 기승을 부린 2000년에는 멕시코인 150만 명 이상이 국경을 몰래 넘어 미국으로 들어가려다 체포되었다. 적발되지 않은 수는 훨씬 많다. 미국에는 간단한 문제일 수 없다. 게다가 수많은 밀입국자가 범죄조직과 죽음의 계약을 맺고 마약 운반에 가담한다. 저자는 멕시코 이민자 3세로 미국 쪽 국경도시 엘파소에서 성장했다. 국경 맞은편에 멕시코 도시 시우다드 후아레스가 있다. 한반도 위성사진처럼 세계의 빛과 그림자가 갈리는 곳이다. 2010년 후아레스는 매일 8명이 피살되면서 ‘세계 살인 수도’로 낙인찍혔지만 같은 해 엘파소는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선정되었다.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하면서 저자는 국경 문제에 파고들었고, 이를 현장에서 체험하고자 국경순찰대원이 된다. 섭씨 46도의 열기 속에 시체를 거두어야 하는 일이다. 2016년까지 16년 동안 국경순찰대는 황무지에서 일어난 사망 사건 6000건 이상을 처리했다. 물 한 방울도, 햇빛을 가릴 나무 한 그루도 없는 평원에서 길을 잃은 멕시코인들은 생명을 잃어 간다. 순찰대의 눈에 뜨인 사람들은 대부분 짐을 내동댕이치고 황무지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그 경우 순찰대가 하는 일은 그들의 물을 땅에 쏟아버리고 음식을 뜯어 짓밟거나 불태우는 것이다. 물과 음식이 없이는 생명도 없는 것을 잘 알기에, 이들은 포기하고 근처 마을을 찾아 자수하기 마련이다. 하루는 죽은 삼촌의 시체 옆에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던 열여섯, 열아홉 살 형제가 발견된다. 도로로 나가 종일 손을 흔들지만 아무도 차를 멈춰 주지 않는다. 그래서 길 위에 돌덩어리를 올려놓고, 결국 순찰대에 발견된다. 멕시코인에게 순찰대보다 힘든 존재가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다. 이들에게 돈을 주면 국경을 넘을 때 망을 봐준다. 마리화나를 지고 국경을 넘으면 금액을 깎아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체포되면 영원히 미국 땅을 밟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카르텔에도 목숨을 위협받는다. 마음고생이 심했던 저자는 해외 학위 프로그램을 핑계로 국경순찰대를 그만둔다.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던 그에게 다시 ‘국경’이 다가온 것은 카페 건물 관리인인 호세 때문이었다. 호세는 어머니의 부음을 접하고 고향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붙잡힌다. 불법 체류자였던 것이다. 저자가 미국에 있는 그의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고 당국에 선처를 호소하지만 호세는 추방되고, 다시 들어오려다 또 붙잡힌다. 가족에게 돌아갈 수 없게 된 호세의 눈으로 ‘경계’에 선 존재들을 돌아보며 끝을 맺는다. 책에 ‘트럼프’란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저자가 국경에서 각종 경험을 한 시기는 트럼프 등장 이전이다. 저자는 무엇을 호소하려 했을까. 입국을 원하는 멕시코인들을 무작정 받아들이기란 불가능하다.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것이 저자의 의도도 아니다. 그 대신 동유럽인의 2차 세계대전사를 연구한 역사가 티머시 스나이더의 말을 빌려 이 가엾은 이들에 대한 ‘존중’ ‘기억’을 호소한다. “하나하나의 죽음은 모두 고유한 삶을 의미한다. 희생자가 거대한 숫자의 일부분으로 인식되면 역사에 버림받는 것과 같다.” 워싱턴포스트와 아마존이 선정한 2018년 ‘올해의 책’이다. 원제는 ‘The line becomes a river’(선은 강이 되고).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5-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팔색조 첼리스트’ 케라스, 24일 앙상블 레조난초와 협연

    캐나다 출신 프랑스 첼리스트 장기엔 케라스(52)가 독일 함부르크의 실내악단 ‘앙상블 레조난츠’와 협연 무대를 갖는다. 24일 오후 8시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 케라스는 전방위 연주자로 불린다. 바로크에서 고전 낭만을 지나 21세기 음악까지, 흔치 않은 레퍼토리의 넓이를 가졌다. 그 다양한 면모는 한국 무대에서 여러 차례 발휘됐다. 2010년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와 협연무대를 가지면서 날렵한 기교와 상상력으로 충만한 작품 해석이 화제를 몰고 왔고, 2013년 네덜란드 로테르담 필하모닉과의 협연 무대 및 2017년 바이올리니스트 이자벨 파우스트,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멜니코프와 함께한 이른바 ‘아르모니아 문디 음반사 3인방’ 리사이틀도 격찬을 받았다. 이달 무대를 통해 케라스에 대해 남아 있던 마지막 갈증이 해소된다. 앙상블 레조난츠는 2010년 케라스를 상주 아티스트로 초빙한 뒤 다양한 형식의 호흡을 이뤄왔고, 둘은 서로 뗄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케라스와 앙상블 레조난츠가 협연한 대(大)바흐의 차남 C P E 바흐의 첼로 협주곡 음반은 2018년 프랑스 황금디아파송상 ‘올해의 협주곡 음반’ 부문을 수상했다. 이번 무대에서는 이 음반에 실린 C P E 바흐의 협주곡 A단조와 함께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 1번, 20세기 작곡가 베른트 알로이스 치머만의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협연한다. 독일어로 ‘공명’이라는 뜻을 가진 앙상블 레조난츠는 1994년 창단되었다. 연주자 18명이 동등한 발언권을 가진 ‘민주적’ 실내악단으로도 알려졌다. 클래식 아티스트는 물론이고 록 뮤지션이나 클럽 DJ와도 벽을 허물고 함께 공연한다. 옛 거대 방공호를 개조한 전용 공연장 ‘레조난츠라움’에서는 관객들이 음료를 마시며 자유롭게 실내악을 듣는 ‘어번 스트링’ 시리즈를 DJ들과 함께 진행하며 젊고 새로운 관객층을 만들어내고 있다. 2017년 함부르크에 전 유럽의 시선을 빼앗은 새 공연장 ‘엘필하르모니’가 문을 연 뒤 앙상블 레조난츠는 엘필하르모니 체임버홀의 상주단체가 되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케라스와 세 곡을 협연한 뒤 끝 곡으로 하이든 중기의 유쾌한 면모가 돋보이는 교향곡 48번 ‘마리아 테레지아’를 선보인다. 4만∼10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5-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피아노계 대모 이경숙… 일흔다섯, 새 잔치가 시작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음악원장을 지낸 이경숙 피아니스트(75·연세대 명예교수)가 9월부터 미국 필라델피아의 커티스 음악원 교수로 활동한다. 1924년 설립된 커티스 음악원은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작곡가 새뮤얼 바버, 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먼, 게리 그래프먼, 랑랑, 유자왕,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 등 쟁쟁한 음악가를 대거 배출했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첼리스트 조영창, 플루티스트 최나경, 바이올리니스트 김수빈도 이 학교 동문이다. “지난해 11월 제안을 받았어요. 모교 교수가 된다는 것은 이 학교 졸업생으로선 꿈이자 영광이죠. 꽤 오래 생각했는데, 최초의 커티스 한국인 교수로 힘이 다할 때까지 뛰어보자고 결심했어요.” 그의 집안은 ‘커티스 가족’이다. 첫딸인 바이올리니스트 엘리사 리 콜조넨(45), 둘째 딸인 피아니스트 김규연(34)도 커티스 동문이다. 엘리사의 남편인 비올리스트 로베르토 디아스(59)는 2006년부터 이 학교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커티스는 원래 교수나 실내악 연주자보다 솔로 연주자를 양성하는 학교였어요. 지금은 실용성을 더 가미했고, 미국 주요 오케스트라 수석들은 커티스가 ‘꽉 잡고’ 있죠.” 그는 “어릴 때 유명한 학교인 줄도 모르고 전액 장학금을 준다고 해서 무작정 시험을 보고 들어갔다”며 웃었다. “필라델피아엔 유명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오페라가 있고, 도시 분위기가 그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돌아가요. 그 단체들이 커티스를 둘러싸고 있죠. 학교에 다닐 때 명지휘자 유진 오먼디의 연주를 주말마다 보러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그는 미국 대학 학기 중인 5∼9월에는 커티스에서 활동하고 겨울에는 서울에서 지낼 예정이다. 그가 5년 전부터 석좌교수로 힘을 쏟아온 서울사이버대 활동도 계속한다. “서울사이버대는 피아노 전공 학생이 400명이나 돼요. 나이 제한이 없고, 여러 이유로 피아노를 놓았던 사람들이 이곳에서 좋은 피아노 선생님이나 생활음악 반주자가 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죠.” 서울사이버대에서의 활동을 인정받아 2016년 러시아 그네신 음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도 받았다. 그는 필라델피아로 주 활동무대를 옮기기 전 마지막으로 6월 20일 경기 성남시 티엘아이아트센터에서 독주회를 연다. 쇼팽 발라드 전 4곡,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을 연주곡으로 골랐다. “슈베르트 소나타 21번은 30대 때부터 10년마다 한 번씩 치기로 결심한 곡이죠. 어렵지만 신비할 정도로 애착이 가는 곡이에요. 내가 이 곡과 함께 어떻게 발전해 가는지 느끼는 게 참 재밌어요. 나이도 있으니 이젠 5년마다 한 번씩은 연주하려고 해요.” 독주회는 4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5-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개인 의료정보는 어떻게 돈이 되는가

    1980년대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약국들은 전산망으로 연결되었다. 컴퓨터의 도움으로 처방전과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수많은 업무에서 크게 손을 덜게 되었다. 이윽고 새로운 사업 형태가 생겼다. 처방전 정보를 수집해 제약업계에 파는 데이터 업체들이 나타난 것이다. 이 업체들은 약국이나 병원이 정부 보험기관이나 민간 보험회사에 자료를 전송하는 업무를 대행한다. 데이터는 모이고 쌓여 의료 부문의 빅데이터를 만들어낸다. 데이터는 제약업체를 비롯한 고객들에게 팔려 나간다. 이 빅데이터는 의학의 진보에 기여할 수도 있다. 데이터 업체들이 내세우는 명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모인 데이터가 실제 공중 보건에 기여한 사례는 ‘측은할 정도로’ 적다. 그 대신 이 방대한 정보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된다. 대표적인 예로 의사들의 처방 내용을 파악해 제약회사가 이윤을 늘리도록 하는 데 쓰인다. 일반 환자가 성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데이터는 개인 정보를 삭제한 채 제공된다. 그러나 정보기술의 발달에 따라 삭제된 정보를 복원하는 일도 간단해지고 있다. 개인이나 기업, 기관이 특정인을 공격하기 위해 건강정보를 빼내는 일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실제 1970년대 초 닉슨 행정부가 이런 일을 시도했다. 여기까지는 미국 얘기다. 그런데 저자는 14개 장 중 한 장을 온전히 한국의 사례에 할애한다. 2013년 한국의 의약 관련 단체들이 설립한 기관이 연간 30만 달러(약 3억5700만 원)를 받고 다국적 데이터 업체에 환자들의 정보를 판매한 사실이 드러났다. 물론 환자들의 동의는 구하지 않았다. 집단소송이 제기됐고,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빅데이터는 유토피아를 만들 수도, 디스토피아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의료 문제에 한정하지 않고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과 관련된 미래의 여러 문제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5-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지적이고 풍성한 임동혁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앨범(사진)을 워너 클래식스에서 내놓았다. 알렉산드르 베데르니코프 지휘 BBC 교향악단 협연. 그라머폰지 ‘편집자의 선택’을 받은 쇼팽 전주곡집 이후 4년 만이며, 협주곡 음반으로는 첫 녹음이다. 스승이자 후원자인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함께 연주한, 네 손을 위한 ‘교향적 무곡’도 함께 실었다.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2번은 피아노협주곡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작품이다. 당대 최고 기교파 피아니스트였던 라흐마니노프의 테크닉이 남김없이 녹아들었고, 길고 풍성한 멜로디와 이 작곡가 특유의 감상성이 짙게 발휘되어 있다. 임동혁은 10대 때 선보인 지적이고 냉철한 면모를 지금까지 변함없이 유지해 왔다. 작품의 서정적인 면과 즉물적인 면을 독창적으로 해석해 서로 교묘하게 섞여들도록 만드는 것이 그의 무기다. 그런 점에서 스승인 아르헤리치를 닮아 있다. 이 음반에서도 그렇다. 첫 악장의 노래하는 듯한 두 번째 주제에서 그는 속도를 확 늦춘다. 개성 강한 임동혁의 루바토(왼손 리듬을 오른손과 다르게 자유롭게 펼쳐내는 것)가 정밀하게 들여다보인다. 강약 차이는 줄여 오히려 묘한 긴장을 유발한다. 이지적이면서도 현악부와 풍성한 대화가 살아나면서 라흐마니노프의 감상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3악장의 느린 주제도 마찬가지다. 이 곡에서 빠른 부분은 양손을 쫙 펼쳐 거의 모든 손가락이 동시에 건반을 짚으면서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1악장, 속도가 빨라지면서 A음을 옥타브로 겹쳐 셋잇단음표로 치는 부분부터 ‘절정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손목의 ‘바운스’가 귀에 짝 붙는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녹음은 마이크를 피아노와 악단에 가까이 붙여 확대경과 같은 느낌을 준다. 저음이 강해 차가운 터치의 날이 뭉툭해졌지만 새로운 느낌이어서 나쁘지 않다 후반부의 ‘교향적 무곡’은 7일 임동혁과 아르헤리치가 예술의전당 ‘벳푸 아르헤리치 페스티벌 인 서울’ 무대에서 선보여 찬사를 받은 그 곡이다. 아르헤리치는 지난해 독일 함부르크에서 임동혁과 이 곡을 함께 친 뒤 ‘내 생애 최고의 교향적 무곡 연주는 리미첸코(아르헤리치가 임동혁을 부르는 애칭)와 함께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음반은 7일 임동혁과 아르헤리치의 공연을 맞아 한국에서 먼저 발매됐다. 전 세계 발매는 9월 중순. 지난해 다닐 트리포노프, 예브게니 수드빈, 데니스 마추예프 등이 이 협주곡의 만만치 않은 경쟁 앨범을 내놓은 바 있다. 임동혁의 새 앨범은 이들 사이에서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 화제반이 될 것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5-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6월 클래식계, 클라라 슈만 탄생 200주년 맞아 기념행사 풍성

    봄을 지나 여름으로 향하는 클래식 공연계의 최대 주제어는 탄생 200주년을 맞은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1819∼1896)이다. 그와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연애와 결혼은 음악사를 넘어 인류사에 빛나는 사랑 이야기를 낳았고, 그는 슈만뿐 아니라 후배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의 창작열까지 자극한 ‘뮤즈’로 칭송돼 왔다. 그러나 남편의 존재를 잊더라도 클라라는 당대 유럽에서 가장 빛나는 콘서트 피아니스트였고, 피아노 3중주 등 여러 명곡을 쓴 작곡가였다. 쇼팽과 멘델스존,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 등도 그의 재능에 열렬한 칭송을 보냈다. 클라라의 생일은 9월 13일이지만 그를 기리는 무대는 6월에 가장 풍성하다. 2017년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6월 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5월 16일 울산 현대예술관 대공연장을 시작으로 10개 도시에서 펼치는 ‘나의 클라라’ 투어의 마지막 날이다. 클라라의 노투르노(밤 음악) F장조, 로베르트 슈만의 환상곡 C장조, 로베르트가 죽은 뒤 클라라에 대한 열렬한 연모에 빠졌으나 이를 정신적 사랑으로 승화한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 3번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선우예권은 13일 서울 신사동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클라라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고 대중적으로 그의 곡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아 곡을 선별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알아갈수록 더욱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흥미로운 음악가”라고 말했다. 4만∼10만 원. 피아니스트 윤홍천은 1주일 뒤인 6월 8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비엔나의 저녁’이라는 제목으로 리사이틀을 갖는다. 비엔나(빈)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피아니스트가 비슷한 나이에 빈에서 체류하면서 장래를 모색했던 슈만 부부와 지인들의 면모를 탐구하는 저녁이다. 클라라의 재능에 경탄했던 리스트가 클라라의 가곡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그대의 눈 속에서’ ‘비밀스러운 속삭임’, 클라라의 ‘스케르초’, 로베르트 슈만의 ‘유모레스크’ 등을 연주한다. 윤홍천은 최근 독일 욈스 클래식스 레이블로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앨범을 발매하며 세계 비평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5만 원. 서울시립교향악단은 6월 2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핀란드 지휘자 욘 스토르고르스의 지휘로 슈만 교향곡 1번 ‘봄’을 연주한다. 클라라와 결혼에 성공한 로베르트 슈만이 넘치는 행복감을 인생의 봄에 빗대어 표현한 기념비적인 첫 교향곡이자 사랑의 산물이다. 김한이 협연하는 닐센 클라리넷 협주곡도 연주한다. 1만∼7만 원. 세계 음반계도 클라라 열풍에 뛰어들고 있다. 올해 2월 바이올리니스트 태스민 리틀이 발매한 클라라의 ‘세 개의 로망스’ 음반은 영국 음반 전문지 그래머폰과 독일 프레스토 클래시컬이 ‘이달의 음반’으로 선정하는 등 주목을 받았다. 이어 피아니스트 마리아 비토신스키의 ‘클라라 슈만과 가족’ 앨범, 클라라의 피아노곡과 그가 콘서트에서 연주한 로베르트 슈만, 베토벤, 멘델스존 등의 곡을 묶은 피아니스트 라그나 시르머의 ‘클라라 슈만, 마담 슈만’ 앨범도 잇따라 발매되고 있다. 슈만 부부가 사랑을 꽃피웠던 독일 라이프치히시 당국은 올해를 클라라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클라라19’ 축하연도로 정하고 대대적인 기념행사에 들어갔다. 생일 전날인 9월 12일부터 29일까지는 ‘클라라 슈만 축제주간’을 갖는다. 음악감독 안드리스 넬손스가 지휘하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피아니스트 라우마 스크리데 협연으로 클라라 슈만의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하고, 이외 다양한 실내악 연주와 길거리 축제 등이 마련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5-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에스메 콰르텟 “우리끼리 에스메 주식회사라고 불러요”

    지난해 4월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여성 4중주단, 위그모어 실내악 콩쿠르 우승!’이라는 빅뉴스가 세계 유수의 클래식 전문지들을 장식했다. 북부 독일의 뤼베크 국립음대 실내악 석사과정 재학생 네 명으로 이뤄진 ‘에스메 콰르텟’이었다. 이후 1년 동안 기쁜 소식이 이어졌다.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음악축제의 ‘HSBC 수상자’로 선정되어 3년간 금융그룹 HSBC의 후원을 받으며 프랑스 전역에서 활동을 펼치게 되었다. 올해 9월 12일에는 세계 최고 권위의 음악축제 중 하나인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데뷔 콘서트를 갖는다. 오랜만에 고국에 온 배원희 하유나(바이올린), 김지원(비올라), 허예은 씨(첼로)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다. “위그모어 콩쿠르 우승이라니, 아득한 꿈으로 생각했었죠. 다섯 차례의 콩쿠르 경연 동안 그날그날 최선을 다하자고 서로 얘기했어요.”(배) 옛 프랑스어로 ‘사랑받다’는 뜻의 에스메 콰르텟은 네 명 중 가장 성격이 적극적인 배원희 씨가 창단을 주도했다. 나란히 독일에서 유학 중이었지만 처음부터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팀을 결성하고서는 뤼베크음대 교수인 바이올리니스트 하이메 뮐러(전 아르테미스 4중주단 단원)를 찾아갔다. 뮐러 교수는 연주를 듣자마자 “우리 학교에 들어와!”라고 외쳤다. “뮐러 교수님은 영감으로 가득 찬 분이셔요. 레슨하실 때 춤추고 노래하고, 간명한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바로 네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시죠.”(허) 네 사람은 성격이 뚜렷하게 다르다. 바이올린 두 사람은 뮐러 교수처럼 직관적인 인식에 강하고, 아래 성부를 담당하는 김지원 허예은 씨는 ‘말로 설명하기’와 세부 표현에 더 공을 들이는 편이다. 네 사람의 ‘역할놀이’도 늘 웃음 빵빵 터지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우리끼리 에스메 주식회사(Esm´e Co, Ltd.)라고 불러요. 원희 언니는 문제를 해결하는 대표님, 유나는 프랑스어와 홍보에 능해서 이사죠”(허). “저는 대리였는데 얼마 전 비행기를 놓치고는 인턴으로 떨어졌어요, 후후.”(김) “정식 국내 데뷔 콘서트는 내년 아시아 순회연주 프로그램으로 열게 됩니다. 우선 프랑스를 중심으로 펼쳐질 에스메의 활약을 지켜봐 주세요!”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5-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고난 속에 빛나는 정직과 사랑의 가치

    가정의 달에 나온 이 책은 한 소년의 성장기이기도 하고, 성장한 소년이 아버지에 대해 쓴 평전이기도 하다. 유럽에서 호주 시골로 이민 온 주인공의 가족, 그리고 아버지의 친구가 된 단치우 형제. 어른 주인공 넷 중 세 사람은 불륜과 배신으로 괴로워하고, 두 사람은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두 사람은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결정으로 치닫는다. 여기까지 보면 광막한 자연을 배경으로 한, 더없이 잔혹한 이야기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것은 이 책이 펼쳐내는 드라마의 겉모습일 뿐이다. 이민 노동자로 사회의 하층에 있지만 정신의 존엄을 잃지 않는 꿋꿋한 사람들이 있고, 포기하지 않는 헌신과 애정이 있으며, 훗날 철학자로 자라나는 저자의 인간에 대한 통찰이 있다. 책장을 덮은 뒤에는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나무의 윤곽을 뚜렷이 그려내는 빛, 여름 풀잎과 조화를 이루며 다양한 색을 띤 흙길, 죽은 한 그루 레드검 나무’로 표상되는 호주 평원의 풍경이 한동안 눈앞에 어른거린다. 루마니아계 유고인으로 독일에 징용된 저자의 아버지 로물루스. 독일 소녀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전후 유럽의 피폐와 아내의 천식을 피하고자 바다를 건넌다. 고향 친구를 찾다가 단치우 형제와 밀접한 사이가 된다. 얼마 뒤 아내는 우울증에 빠지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치닫기 시작하는데…. 이 집안의 아이가 보낸 유년기가 순탄하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목숨을 끊었을 것으로 여긴 어머니의 시신을 찾으러 마을 사람들과 함께 늪을 헤매고, (피는 흘리지만 비교적 멀쩡한 모습으로 어머니는 돌아온다) 배신한 사람을 쏘겠다며 총을 멘 아버지와 새벽길을 동행하고, 착란에 빠져 헛것을 보는 어른들을 안심시켜야 했다. 그래도 저자가 기억하는 그 시절에는 인간과, 심지어 동물의 체온까지 넘쳐난다. 집안의 질서를 꿰고 있는 꾀쟁이 앵무새 잭, 그리고 개와 고양이들이 있고, 주말 오후 티타임에 초대해 준 노부인 자매와 그밖의 푸근한 이웃들이 있었다. 책벌레였던 호라 아저씨는 슈바이처와 의학자 제멜바이스, 철학자 러셀의 고귀한 이상을 이 소년에게 각인해 준다. 아내의 부정과 정신질환에 시달렸던 아버지야말로 이 소년에게 인간에 대한 통찰을 전해 준 가장 강력한 존재였다. 그는 정직함만이 인간의 강인함을 만든다고 굳게 믿었다. ‘정직은 득이 된다’는 이해타산적인 정의를 경멸하고, 서로의 가치를 이해하는 고결한 사람들의 공동체를 갈망했다. 그 아버지를 포함해 이 책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모두 삶의 풍파에 휘청거렸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그들은 불행의 희생자였고 낙담도 했지만 결코 불행이 그들을 위축시키지는 못했다.” 책을 읽으며 ‘개 같은 내 인생’ ‘길버트 그레이프’ 같은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영화를 떠올렸다. 주인공 각자 어리석음과 약점이 있지만 따뜻함과 삶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를 읽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책은 2007년 에릭 바나가 주연한 리처드 록스버러 감독의 ‘로물루스, 나의 아버지’로 영화화됐다. 원서는 ‘Romulus, My Father’라는 제목으로 1998년 출간돼 그해 호주 언론이 선정한 ‘올해의 책’을 휩쓸었다. 우리말 제목은 저자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읽은 추도사에서 책이 시작된 점에 착안한 것이다. 저자는 멜버른대 인문학부 교수이자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명예교수이며 영어권 도덕철학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5-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내한공연 英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와의 대화… 봄에 찾아온 ‘겨울 나그네’

    슈베르트 3대 가곡집 ‘겨울 나그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백조의 노래’ 완주. 영국테너 이언 보스트리지(55)가 10, 12,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선보일 대작업이다. 현존 최고 독일 가곡 해석가로 불리는 보스트리지는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역사학자이며 그의 책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한국어를 포함해 세계 13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음악 칼럼니스트 노승림 씨(영국 워릭대 문화정책학 박사)와 함께 보스트리지를 만나 슈베르트 3대 가곡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전 인터뷰에서 ‘겨울 나그네는 음울한 노래만으로 볼 수 없다’고 얘기하셨습니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나 ‘백조의 노래’에 대해서도 우리가 놓치기 쉬운 부분은 없을까요. “‘겨울 나그네’에는 기쁨과 우울, 불행, 행복의 기억들이 복합적으로 들어있습니다. 깊이 가라앉았다가 다시 환희를 떠올리는 등 극단적인 감정들이 엇갈리죠. ‘아름다운…’의 줄거리는 1820년대의 ‘제스처 놀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몸짓을 보고 그것이 나타내는 인물이나 말을 알아맞히는 놀이죠. 이 가곡집에서 주인공들은 이와 같은 가식과 제스처를 펼쳐냅니다. 물방앗간 아가씨는 순진하지 않은 주인공입니다.” ―슈베르트는 오페라 작곡가를 꿈꿨지만 금전 문제로 많은 작품을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의 가곡집들을 자신이 못 쓴 오페라에 대한 대안으로 볼 수 있을까요.(노승림) “슈베르트가 그런 의도를 감췄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곡들은 ‘오페라와 다른 방식으로’ 극적이라고 봅니다. 슈베르트는 오페라와 리트 형식을 분명히 구분했습니다.” ―당신은 이 곡들이 본디 테너를 위해 작곡된 작품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슈베르트 생전 이 곡들을 초연한 포클은 음역이 바리톤이었는데요. “‘겨울 나그네’ 같은 경우는 두세 곡이 높은 A(라) 음까지 올라가는 등 굉장히 높은 음이 자주 등장합니다. 포클이 초연할 때도 음역을 내려서 불렀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당신의 첫 ‘아름다운…’ 음반은 해석이 꽤 단순한 편이었습니다. 이후 해석이 바뀐 것이 흥미롭습니다.(노승림) “음반이란 공연과 달리 청중의 반응과 교감하며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미학적 측면에 신경을 쓰면서 아주 극히 일부만을 보여주었던 것 같습니다.” ―‘겨울 나그네’의 마지막 곡 ‘거리의 악사’에서는 밥 딜런처럼 목소리를 긁는 창법 등 독창적인 시도를 할 수 있다고 책에 썼습니다. 이번 공연에서도 독창적인 시도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앞에도 음반과 실제 연주의 차이를 얘기했지만, 이 문제는 공연 당일의 청중과 내 기분, 그리고 분위기에 달린 것 같습니다.(웃음)” 이번 공연은 가을에 본공연이 열리는 서울국제음악제의 봄 프로그램으로 기획됐다. 10일(‘겨울 나그네’), 12일(‘아름다운…’), 14일(‘백조의 노래’) 오후 8시 열린다. 피아노 줄리어스 드레이크. 9만∼12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5-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英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 “슈베르트 3대 가곡집이 갖는 의미는…”

    슈베르트 3대 가곡집 ‘겨울 나그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백조의 노래’ 완주. 영국테너 이언 보스트리지(55)가 각각 10, 12,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피아니스트 줄리어스 드레이크와 함께 선보일 대작업이다. 영국인인 보스트리지는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1925~2012)를 잇는 현존 최고의 독일 가곡 해석가로 불린다. 그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옥스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역사학자이며 그가 쓴 책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는 한국어를 포함해 세계 13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지난해 서울시립교향악단 ‘올해의 음악가’로 선정돼 말러 가곡을 포함한 여러 차례의 콘서트를 갖기도 했다. 음악 칼럼니스트 노승림 씨(영국 워릭대 문화정책학 박사)와 함께 보스트리지를 만나 슈베르트 3대 가곡집이 갖는 의미와 작품 해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15년 만에 만나 반갑습니다. 예전 인터뷰에서 ‘겨울 나그네는 단지 음울한 노래만으로 볼 수 없다’고 얘기하셨는데,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겨울 나그네’에는 기쁨과 우울, 분노, 불행, 행복의 기억들이 복합적으로 들어있습니다. 깊이 가라앉았다가 다시 환희를 떠올리는 등 극단적인 감정들이 엇갈리죠. 우울한 쪽에만 초점을 맞춰 두어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노승림: 그와 비슷하게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나 ‘백조의 노래’에 대해서도 해석에 대해 놓치기 쉬운 부분은 없을까요. “‘아름다운…’의 줄거리는 1820년대 유럽에서 유행했던 ‘제스처놀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서로의 몸짓을 보고 그것이 나타내는 등장인물이나 말을 알아맞히는 놀이죠. 이 가곡집에서도 주인공들은 이와 같은 가식과 제스처를 펼쳐냅니다. 이에 따르면 물방앗간 아가씨는 순진하지 않은 주인공입니다. 더 깊이 파고들면 이 노래는 성적인 관심을 나타내며, 성장을 두려워하는 소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백조의 노래’ 같은 경우 앞의 두 작품과 달리 슈베르트가 하나의 곡으로 작곡하지는 않았죠. “‘백조의 노래’는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7곡은 루트비히 렐슈타프의 시에 곡을 붙였고, 8~13곡은 하인리히 하이네, 마지막 곡은 자이들의 시에 곡을 붙였죠. 앞부분 일곱 곡은 틀림없이 베토벤의 유산을 물려받은 작품입니다. 베토벤이 이 시에 곡을 붙이려다 못하고 세상을 떠났죠. 아마 슈베르트가 베토벤의 제자 신들러를 통해 그 사실을 알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두 부분은 각각 개별적으로 작곡했지만, 사람들이 하나로 생각하도록 이 작품들을 묶어 출판한 출판인(토비아스 하즐링거)은 매우 현명한 사람이었습니다.”―노승림: 슈베르트는 본래 오페라 작곡가를 꿈꿨다고 하는데,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많은 작품을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의 가곡집들을 자신이 못 쓴 오페라에 대한 대안으로 볼 수 있을까요? 이 곡들을 오페라적인 발성으로 부르는 건 어떨까요? “물론 이 가곡들은 드라마틱합니다. 무대를 설정할 수 있고, 그런 표현을 그릴 수 있습니다. 슈베르트 본인이 그런 것을 의도했을 수도, 그런 해석을 유도하거나 그런 의도를 감췄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 곡들이 ‘오페라와 다른 방식으로’ 극적이라고 봅니다. 본질적인 구조가 완전히 다릅니다. 슈베르트가 남긴 오페라 아리아들을 들으면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오페라와 리트 형식을 분명히 구분해서 작곡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그가 그처럼 훌륭한 오페라 아리아들을 작곡할 수 있었다는 점이 놀랍기도 합니다.” ―당신은 이 곡들이 본디 테너를 위해 작곡된 작품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슈베르트 생전에 이 곡들을 처음 초연한 미하엘 포클은 음역이 바리톤이었는데요. “슈베르트가 출판한 악보는 테너 음역입니다. 지금 바리톤들이 부르려면 음역을 바꿔서 불러야 합니다. 슈베르트는 작곡할 때 실제로 바리톤 음역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 합니다. ‘겨울 나그네’ 같은 경우는 두세 곡이 높은 A(라) 음까지 올라가는 등 굉장히 높은 음이 자주 등장합니다. 포클이 초연할 때도 음역을 내려서 불렀을 것이 틀림없습니다.”―당신의 책에 따르면 ‘겨울 나그네’를 슈베르트가 작곡할 때는 당시 메테르니히로 대표되는 유럽의 정치적 억압이 작품에 반영되었다고 했습니다. ‘물방앗간’에도 이런 정치적 상황을 암시하는 대목이 있을까요. “최소한 ‘겨울 나그네’처럼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정치적인 작품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훨씬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작품입니다.”―노승림: 당신의 첫 번째 음반 ‘물방앗간 아가씨’ 해석은 꽤 단순한 편이었습니다. 이후 해석이 바뀐 것이 흥미롭습니다. “맞습니다. 나도 가끔씩 그 음반을 들어보곤 하는데 그렇게 들립니다. 연주를 반복해서 하면서 나의 생각이나 노래 방식이 바뀐 것도 있겠지만, 음반이란 것이 원래 청중들의 반응과 교감하면서 등장인물의 성격과 감정을 실시간으로 발전시키는 공연과 달리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다른 특징, 특히 아름다운 미학적 측면에 신경을 쓰면서 아주 극히 일부만을 보여주는 바람에 그 부분이 부각이 안 되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겨울 나그네’의 마지막 곡 ‘거리의 악사’에서는 밥 딜런처럼 목소리를 긁는 창법 등 독창적인 시도를 할 수 있다고 책에 썼습니다. 이번 공연에서도 독창적인 시도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앞에도 음반과 실제 연주의 차이를 얘기했지만, 이 문제는 공연 당일의 청중과 내 기분, 그리고 분위기에 달린 것 같습니다.(웃음)”―지금 쓰고 있는 책이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화제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오페라 극 속의 역할들에 대한 책을 쓰고 있고, 전쟁 및 인종과 성별 문제를 다루는 강의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 영국은 모두가 브렉시트 걱정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제인 오스틴이나 스탕달 등의 고전을 읽으면서 잊어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은 가을에 본 공연이 열리는 서울국제음악제의 봄 프로그램으로 기획됐다. 10일(겨울 나그네), 12일(아름다운…), 14일(백조의 노래) 오후 8시 열린다. 9만~12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5-09
    • 좋아요
    • 코멘트
  • 여섯 남자의 6色 아리아… ‘카사노바 길들이기’ 갈라 콘서트

    지난해 국내 최고 흥행을 기록한 오페라는? 예전 같으면 이름도 생소했을 오페라 콜라주 ‘카사노바 길들이기’였다. 모차르트부터 푸치니까지 오페라 역사 속의 인기 아리아를 모아 새로운 스토리를 입히고 젊은 남자 성악가 여섯 명을 출연시킨 이 무대는 2016년 초연 때부터 큰 화제를 몰고 왔다. TV 크로스오버 오디션 프로그램으로도 낯익은 멋진 남자 여섯은 윤택함과 무게감을 갖춘 목소리, 호소력 있는 가창뿐 아니라 특히 돋보이는 연기와 무대매너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이 여섯 남자가 갈라 콘서트 무대로 팬들 앞에 돌아온다. 19일 오후 5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카사노바 길들이기 갈라 콘서트’. 바리톤 김주택, 테너 김현수 정필립, 베이스 손태진 고우림 한태인이 김덕기 지휘 코리아쿱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춘다. 1부에서는 비제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김주택), 베르디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정필립) 등 ‘카사노바 길들이기’ 무대에서 들었던 오페라 명(名)아리아를 들려주고, 2부에서는 ‘카사노바 길들이기’에 나오지 않는 명아리아와 토스티 ‘이상’(김현수) 등 이탈리아 가곡을 소개한다. 앙코르를 빼고도 무려 25곡을 들려주는, 빈틈없이 꽉 채운 무대다. 오페라 콜라주 ‘카사노바 길들이기’는 지난해 6월 24일부터 1주일 동안 서울 KBS홀에서 공연되면서 알기 쉽고 흥미로운 줄거리와 몰입감을 주는 출연진, 세계 오페라 역사상의 명아리아를 가득 포장해 넣은 구성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주인공인 영화감독 준(김주택)은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외치는 ‘바람의 남자’. 그에게 완벽한 이상형인 여성 수지가 나타나지만, 그녀를 조감독 지민(김현수, 정필립)이 짝사랑하고 있었으니…. 이번 무대의 중심을 이루는 김주택은 이탈리아 베르디 국립음악원을 심사위원 만장일치 최고 점수로 졸업했고 프랑스 툴루즈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명물인 라페니체 극장에서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등에 주역으로 출연하고 있다. 4만∼11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5-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AI-빅데이터 연구하는 피아니스트 “예술가는 기술과 사회 연결하는 고리”

    피아니스트 박종화(44·서울대 교수)가 8년 만에 피아노 리사이틀을 갖는다. 2011년 리사이틀도 ‘7년 만’이었다. 그 대신 이번 프로그램은 베토벤 디아벨리 변주곡, 브람스 파가니니 변주곡 등 심오하고도 기교적으로 난해한 무거운 곡 두 곡을 커다란 박스 두 개처럼 배치했다. “변주곡은 예술적 자유와 도전을 상징합니다. 주어진 주제를 반복적으로 탐구하고 각각의 변주마다 고유한 특성을 부여하기 때문이죠. 동양 철학의 사상과도 비슷하고, 어쩌면 ‘윤회’를 음악적으로 묘사하는 것 같아요.” 그와의 대화도 늘 자유와 도전을 주는 변주 같다. 일상에서 만나는 보통의 담화 소재를 훌쩍 넘어서기 일쑤다. 그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라는 최신 지적 흐름에 흠뻑 빠져 있다. 서울시와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이 공동 운영하는 도시데이터사이언스연구소에서 빅데이터 연구를 하고 있고, 감성적 연주가 가능한 인공지능 개발도 삼성 미래기술육성사업 지원 과제로 연구했다. 인공지능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피아노와 함께 그를 사로잡았던 주제다. 인공지능이 음악을 만들고 ‘감성적’인 연주까지 한다면 그건 바람직한 미래일까. “기술이 발달하면 기계가 스마트해지고 예전에 인간이 하던 일을 대신하게 되죠. 인간은 역할을 빼앗길까요? 아닙니다. 인간은 더 높은 단계의 일을 하게 됩니다. 에디슨이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땀으로 이뤄진다’고 했죠. 99%의 ‘땀’을 인공지능에 주고 사람은 영감에 천착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는 “예술가는 늘 기술과 사회를 연결해주는 고리였다”고 말했다. “신기술이 개발돼 처음 사회에 침투할 때 예술가가 먼저 이 기술로 ‘장난’을 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그랬죠. 전자기술로 소리를 합성하게 됐을 때 먼저 슈톡하우젠 등의 실험적인 전자음악이 나왔는데, 그걸 보고 전자회사들이 키보드를 만들어 아프리카 오지 사람들까지 쉽게 음악에 접근할 수 있게 만들었죠.” 하지만 새로운 기술도 사회의 가치관이 성숙해지는 것과 보조를 맞춰야만 바람직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그가 연주가인 제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뭘까. “대학교라는 훌륭한 ‘지식의 성당’이 있으니 다니는 동안 한껏 오감을 열고 살라고 권합니다. 음악학이나 각종 인문학 등 복수전공도 권하지만 거기까지는 조금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그 대신 들을 수 있는 것은 다 듣고 읽을 수 있는 것은 다 읽으면서 열린 생각을 가지라고 당부합니다.(웃음)” 11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3만∼5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5-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인간의 집은 어떻게 진화해 왔나

    인간은 집을 어떤 것으로 느끼는가. 어떤 이득을 얻기 위해 집을 상상하고, 그 생각에 맞추어 집을 짓는가. 인간의 진화와 집의 발달은 어떻게 보조를 맞춰 왔나. 우리가 살면서 가장 많은 재화를 투여하는 ‘집’을, 저자는 진화생물학과 인지심리학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풀어내려 시도한다. 집은 대체로 인간에게 편안함과 안전, 통제의 느낌을 주는 공간이다. 바깥세상에서의 고투를 회복하기 위해 가는 곳이기도 하다. 수많은 동물이 집을 짓지만, 인간의 집짓기가 말벌이 집을 짓는 것처럼 본능 속에 프로그래밍되어 있지는 않다. 인간의 집이란 철저히 문화와 대뇌 활동의 산물인 것이다. 유인원들이 복잡한 집을 짓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의 주택은 비슷한 종들 중에서도 특화된 문화이기도 하다. 저자는 고고학자 글린 아이작의 이론을 인용해 200만 년 전 인류가 음식과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이야기를 나누는 ‘근거지’를 갖고 있었다며 그것이 집의 기원일지 모른다고 소개한다. 그러나 그 근거지는 오늘날의 주택보다는 회사의 원형에 가깝게 여겨진다. 존 업다이크가 ‘텔레비전은 원시시대의 불’이라고 설명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거기엔 빛, 소리, 억제된 움직임, 그리고 집중이 있다. 현대에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가족이 모여 앉듯이, 150만 년 전 ‘불’이 가족과 결합하면서 오늘날의 집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인류학자 허디는 인간을 ‘협력적 양육자’로 보는 관점을 내세운다. 이런 관점에서는 ‘육아실’이 인간이 집을 갖게 만든 시작이 된다. 책 서두에 제시한 관점과 담론은 풍성하지만, 본론으로 나아갈수록 증명된 이론보다 가설에 가까운 주장이 많고, 확실한 관점들은 이미 알려진 내용들과 여럿 겹친다. 이런 점에서 인지신경과학을 토대로 하는 음악학(Musicology) 이론서들과도 어딘가 닮아 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5-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스모 벤스케 “열정과 역량 뛰어난 악단… 앞날에 큰 기대 갖고 있다”

    ‘지휘 강국’ 핀란드를 대표하는 지휘자 중 한 사람인 오스모 벤스케(66·미국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사진)가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이끌어갈 새 음악감독으로 선임됐다. 서울시립교향악단 강은경 대표이사는 2일 취임 1주년을 맞이하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벤스케를 2020년 1월부터 활동하는 임기 3년의 음악감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취임연주회는 2020년 2월에 열린다. 벤스케는 2003년부터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재직해 왔으며 핀란드 라티 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거쳐 라티 교향악단 명예지휘자도 맡고 있다. 핀란드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연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으며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집 두 종을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및 라티 교향악단과 함께 음반사 BIS에서 발매했다.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교향곡 1, 4번 음반은 2013년 독일 음반평론가협회상과 2014년 그래미 교향악부문상을 수상했다. 벤스케는 이날 공개한 영상메시지에서 “객원지휘자로서 서울시향과 여러 차례 호흡을 맞췄는데 할 때마다 즐거웠다. 서울시향은 열정과 역량, 좋은 음악을 만들려는 의지로 가득 찬 악단으로 앞날에 큰 기대를 갖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강 대표는 “벤스케는 한 오케스트라와 인연을 맺으면 20년 이상 전력투구하며 악단을 세계 수준으로 견인해 ‘오케스트라 빌더(Orchestra Builder)’라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시향과도 이 같은 성장을 이루기를 기대한다”고 선임 이유를 밝혔다. 서울시향은 2016년 지휘자추천자문위원회를 발족한 뒤 교향악단, 단원, 관객 및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음악감독 선정 작업을 펼쳐왔다. 강 대표는 “벤스케는 2015년 이후 네 차례 서울시향을 객원 지휘했는데 이때마다 관객과 평론계의 큰 호평을 받았으며, 어떤 레퍼토리든 서울시향만의 색깔을 내면서도 단원들까지 크게 매료시켜 왔다”고 덧붙였다. 서울시향은 2005년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정명훈 지휘자가 2015년 12월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와의 법정 공방 속에서 사퇴한 뒤 음악감독 또는 예술감독 자리가 공석으로 이어졌다. 2017시즌부터 티에리 피셔와 마르쿠스 슈텐츠 등 두 수석객원지휘자 중심 체제로 운영돼 왔다. 강 대표는 “올해로 만료되는 두 수석지휘자와의 계약을 2020년까지 1년 연장했으며, 올해 1월 활동을 시작한 홍콩 출신 부지휘자 윌슨 응 외에 다른 부지휘자 1명도 연내 추가 선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 대표는 영·유아부터 노년기까지 전 연령을 대상으로 하는 ‘생애주기별 예술교육 시스템’을 올해 완비해 운영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5-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서울시향 새 음악감독에 오스모 벤스케 선임…‘친화적’ 지휘자로 인정받아

    ‘지휘강국’ 핀란드를 대표하는 지휘자 중 한 사람인 오스모 벤스케(66·미국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음악감독)가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이끌어갈 새 음악감독으로 선임됐다. 서울시립교향악단 강은경 대표이사는 2일 취임 1주년을 맞이하는 기자간담회를 갖고 벤스케를 2020년 1월부터 활동하는 임기 3년의 음악감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벤스케는 클라리네티스트로 음악 인생을 시작했으며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클라리넷 수석을 지냈다. 핀란드 시벨리우스 아카데미에서 지휘를 배웠고 1982년 브장송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국제적 지휘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2003년부터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재직해왔으며 핀란드 라티 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거쳐 라티 교향악단 명예지휘자도 맡고 있다. 그는 핀란드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연주로 특히 높은 평가를 받아왔으며,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집 두 종을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및 라티 교향악단과 함께 음반사 BIS에서 발매했다.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교향곡 1, 4번 음반은 2013년 독일 음반평론가협회상과 2014년 그래미 교향악부문상을 수상했다.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와는 베토벤 교향곡 전집도 발매했으며 최근에는 말러 교향곡 전집을 연속해서 발매하고 있다. 이들 전집도 베토벤 교향곡 4, 5번 앨범이 그라머폰 ‘편집자의 선택’으로 선정되는 등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지난해 발매된 말러 교향곡 6번 앨범은 영국 음악전문지 BBC 매거진이 ‘벤스케가 악단을 확고하게 장악해 압도적인 클라이맥스로 몰아간다’고 찬사를 보냈다. 벤스케는 이날 공개한 영상메시지에서 “객원지휘자로서 서울시향과 여러 차례 호흡을 맞췄는데 할 때마다 즐거웠다. 서울시향은 열정과 역량, 좋은 음악을 만들려는 의지로 가득 찬 악단으로 앞날에 큰 기대를 갖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강 대표는 “벤스케는 한 오케스트라와 인연을 맺으면 20년 이상 전력투구하며 악단을 세계 수준으로 견인해 ‘오케스트라 빌더(Orchestra Builder)’라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시향과도 이 같은 성장을 이루기를 기대한다”고 선임 이유를 밝혔다. 서울시향은 2016년 지휘자추천자문위원회를 발족한 뒤 교향악단, 단원, 관객 및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음악감독 선정 작업을 펼쳐왔다. 강 대표는 “벤스케는 2015년 이후 네 차례 서울시향을 객원 지휘했는데 이 때마다 관객과 평론계의 큰 호평을 받았으며, 어떤 레퍼토리든 서울시향만의 색깔을 내면서도 단원들까지 크게 매료시켜왔다”고 덧붙였다. 벤스케는 2015년 베토벤 교향곡 5번, 2018년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5번, 2019년 시벨리우스 교향곡 6, 7 번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서울시향과 선보여 왔으며 가장 최근인 시벨리우스 교향곡 연주는 “물 위를 부유하는 듯한 대목을 이지적 균형감으로 조형하면서 은근한 유동감으로 일렁이게 만드는 등 지휘자의 해석이 돋보였다”(음악 칼럼니스트 황장원)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는 또한 라티 교향악단과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또한 라티 이전에 상임지휘자를 지낸 아이슬란드 교향악단 등 어디서나 상세하고도 자상한 지시로 단원들과 융화를 이루는 ‘친화적’ 지휘자로 인정받아왔다. 서울시향은 2005년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정명훈 지휘자가 2015년 12월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와의 법정 공방 속에서 사퇴한 뒤 음악감독 또는 예술감독 자리가 공석으로 이어졌다. 2017년 시즌부터 티에리 피셔와 마르쿠스 슈텐츠 등 두 수석객원지휘자 중심 체제로 운영돼 왔다. 강 대표는 “올해로 만료되는 두 수석지휘자와의 계약을 2020년 까지 1년간 연장했으며, 올해 1월 활동을 시작한 홍콩 출신 부지휘자 윌슨 응 외에 다른 부지휘자 1명도 연내 추가 선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시향은 내년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올해 10월 중 국내 최초로 러시아 대륙 순회공연을 열 계획이다. 강 대표는 영·유아부터 노년기까지 전 연령을 대상으로 하는 ‘생애주기별 예술교육 시스템’을 올해 완비해 운영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5-02
    • 좋아요
    •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