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유윤종 전문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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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 분야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푸치니: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등의 책을 썼습니다.

gustav@donga.com

취재분야

2025-11-13~2025-12-13
음악67%
칼럼10%
문학/출판10%
문화 일반7%
연극3%
기타3%
  • 슈만의 ‘다비드동맹 무곡집’ 한날 저녁 두 곳서 나란히

    11일 서울 저녁은 청년 슈만의 재기와 환상에 취한다. 로베르트 슈만 초기 피아노 작품의 대표작인 ‘다비드동맹 무곡집’을 미국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이진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나란히 연주한다. ‘다비드동맹’이란 슈만이 당대 음악계에 도전하기 위해 내세운 가상의 동맹이다. 그는 24세 때 ‘음악신보’를 창간해 음악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음악계 선배들에게 날카로운 펜을 들이댔다. ‘피상적인 기량만을 추구’하는 음악가들이 공격 대상이었다. 쇼팽, 베를리오즈, 연인인 클라라, 세상을 떠난 베토벤 등이 상상 속 ‘동맹’ 회원이었다. 이런 이념을 작품으로 구현한 곡이 27세 때의 ‘다비드동맹 무곡집’이다. 이 곡에서 슈만은 ‘플로레스탄’과 ‘에우제비우스’라는 자신의 두 아바타를 내세웠다. 격정적이고 대담한 에우제비우스, 부드럽고 시적인 플로레스탄의 모습이 엇갈리면서 자유롭고 낭만적인 열여덟 개의 춤곡을 엮어낸다. 예술의전당에서 이 곡을 연주하는 케너는 ‘정경화의 음악적 동반자’로 알려진 피아니스트. 그와 정경화가 지난해 발매한 프랑크와 드뷔시의 바이올린 소나타 앨범 ‘보 수아’(아름다운 저녁)는 “안락한 터치 속에서도 예민한 반주”(BBC 뮤직매거진)란 찬사를 받았다. 이번 공연 전체의 주제는 ‘유머레스크’다. 하이든의 소나타 C장조에서부터 쇼팽의 마주르카, 폴란드 작곡가 파데레프스키의 ‘여섯 곡의 유머레스크’까지 피아노곡에 담긴 유머의 모습을 탐구한다. 3만∼7만 원. 같은 날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연주하는 이진상은 지난해 3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부임하면서 음악계에서의 역할이 한층 주목받고 있다. 그는 2009년 스위스 취리히 게자 안다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하면서 슈만상, 모차르트상, 청중상 등 특별상까지 모두 휩쓸었다. 그는 ‘공장에 간 피아니스트’로도 알려졌다. 완벽한 소리에 대한 갈증으로 피아노 제작 기법 자체에 심취하게 됐다는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스타인웨이 피아노 제작을 공부한 뒤 함부르크의 스타인웨이 공장에서 직접 피아노 제작과정을 익혔다. 이번 리사이틀에서는 ‘다비드동맹 무곡집’을 비롯해 브람스 ‘피아노를 위한 4개의 소품’ 작품 119, 멘델스존 ‘무언가(Songs without words)’ 하이라이트를 연주한다. 4만 원.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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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떤 위험 앞에 서 있나

    2001년 9월 11일. 여객기 두 대가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화염과 함께 빨려 들어가는 순간, 세계는 21세기가 이 사건과 함께 규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급한 판단이었다. 진정한 20세기가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를 뒤흔든 암살자의 총성으로 시작된 것처럼, 진짜 21세기는 2008년 9월 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날 시작됐다. 이 사건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를 규정하고 있다. “대공황은 히틀러를 낳았고, 금융위기 10년은 트럼프를 낳았다”라는 이 책의 선전문구는 맞다. 트럼프뿐 아니라 브렉시트를 비롯한 시대의 모습이 이 사건으로 만들어졌다. 앞으로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누구도 모른다. 지난 세기의 대공황과 나치독일 경제의 전문가였던 저자에게 오늘의 세계는 한 세기 전과 ‘평행이론’적 성격을 갖는다. 단순한 역사의 반복이라면 대처하기가 오히려 쉬울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다양한 요소가 서로 의존하는, 훨씬 복잡해진 세계다. 2008년 금융위기와 그 파장을 분석한 ‘백서’격의 책은 여럿 나왔다. 이 책 역시 금융위기의 전사(前史)에서부터 글로벌적인 영향과 이후의 대응방식을 거시적·미시적 관점에서 조감한다. 그런 만큼 이 책이 강조하는 초점도 명확하다. 세계 각 지역 간의 의존성, 경제와 정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사회적 구성 요인들의 상호 영향 및 그로 인해 높아지는 예측불가능성에 저자는 확대경을 들이댄다.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촉발한 위기의 진앙은 미국이었지만 훨씬 많은 충격이 가해진 곳은 남부 유럽이었다. 미국의 고위험 모기지 증권 상당 부분을 유럽 대형 금융기관들이 떠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크게 흔들린 유럽에서 정치가들은 위기를 유예하면서 대중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금욕적’ 처방에 이끌렸고, 그 결과 극우 정당들이 약진했다. 트럼프의 등장도 이런 배경과 궤를 같이한다. 2009년 트럼프는 폭스뉴스에 출연해 “오바마 대통령이 대단한 일을 해냈다. 골치 아픈 문제를 물려받아 대단히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6년 뒤에도 ‘강력한’ 대통령에 대한 그의 열정은 남았다. 변한 것이 있다면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후한 평가가 적대감으로 바뀐 점이다. 한국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가장 큰 위기에 놓인 국가였다. 금융 시스템이 고도로 국제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과 300억 달러의 통화 스와프 협정을 체결한 것은 국면의 전환점이 됐으며, 한국은 위기를 가장 잘 극복한 ‘베스트 프랙티스’ 그룹에 속한 것으로 저자는 평가한다. 그럼에도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의 앞날에 우려를 잊지 않는다. “더 변덕스러운 미국, 부상하는 중국, 공격적인 러시아… 이런 와중에 한국은 극명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냉전의 종식은 유럽에 유럽연합이라는 기본적인 구조물을 남겼지만 동아시아에는 이에 상응하는 제도적 구조물이 세워지지 않았다. 이 책을, 정치와 지정학적 측면에서 세계화의 물결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서로 읽어 주기 바란다.” 경제위기가 글로벌 차원의 대(大)충돌을 낳았던 20세기는 반복될 것인가. 저자가 확실한 답을 내놓는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순투성이 금융시스템은 개선되지 않았고, 미국 중심의 1극체제는 ‘헤게모니 없는 세계지배’로 재편되고 있다. 이 책은 푸른 하늘을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는 기술자와 군인들이 내리는 판단과, ‘공포의 균형’에만 의존해야 할지도 모른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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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 음악, 그림에 담은 독도… 세계인의 가슴에 ‘한국땅’ 새겨야죠

    “뚜∼.” 정박을 알리는 긴 뱃고동 소리. 멀미를 잊으려 질끈 감고 있었던 눈을 번쩍 떴다. 2시간의 거센 출렁임은 무엇이었냐는 듯, 맑고 화창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회색 바위로 된 ‘고독한 섬 두 개’라는 상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수천 갈매기의 합창과 유월의 초록, 화사한 들꽃들로 초여름 독도는 환하게 피어나 있었다. 호주 시인 댄 디즈니(서강대 영문과 교수)가 넋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와, 한마디로 아름답군요!” 원로화가 민정기 화백이 맞장구쳤다. “예전에도 와봤지만 인상이 완전히 다르네.” 화가, 작곡가, 첼리스트, 소프라노, 해금 연주가, 미술평론가. 시인…. 각자의 영역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해 온 예술가들이 22일 국토의 소중한 막내 독도에 발을 디뎠다. 독도와 동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뭉친 예술가와 학자들의 모임 ‘라메르에릴(La Mer et L‘^Ile·바다와 섬)의 여섯 번째 독도 탐방 행사였다. 이 모임의 이사진을 포함한 16명이 방문에 동행했다. 선착장을 떠나 일반 관람객 출입을 통제한 동도(東島) 통행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찔한 계단이 이어졌다. 어느 순간 앞서 가던 일행이 ‘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서도의 완전한 모습이 거짓말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4K UHD가 필요 없는, 무한 해상도와 크기의 화면이었다. 깊은 사파이어 빛의 바다 위에 독도는 끝없이 긴 세월을 어제 얘기처럼 들려주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김호득, 이종송, 이이정은 화가가 스케치북을 펼쳤다. 민 화백은 “예전과 빛의 느낌이 다르다”며 이곳저곳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디즈니 시인도 전망 좋은 곳에 털썩 주저앉아 시작(詩作) 노트를 꺼내들었다. 문득 친근하면서도 애절한 해금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해금 연주가 고수영이 연주하는 선율은 동요 ‘섬집아기’였다. 엄마가 일하러 간 사이 파도의 자장가에 곤히 잠든 아이를 묘사하는 선율. 외롭게 바다의 한쪽 끝을 지켜온 독도에 대한 애잔한 단상을 불러일으켰다. 환상을 일깨우는 선율에 화가들의 손놀림도 빨라졌다. “자, 아쉽지만 이제 내려가야 한다는군요. 배가 곧 들어와요.” 이함준 라메르에릴 이사장(전 외교안보연구원장)의 한마디에 발걸음이 다시 부산해졌다. “뭘 그리셨나?”라는 일행의 궁금증에 김호득 화백(영남대 명예교수)은 대범하게 윤곽을 스케치한 서도를 보여줬다. “이걸 바탕으로, 굵게 붓질한 모필 작품을 그리려고 해요. 아, 그런데 고개를 들어 쳐다볼 때마다 풍경이 바뀌데. 꼭 다시 오고 싶을 거야.” 이이정은 화가도 대범한 붓질이 드러나는 스케치를 보여줬다. 그는 “갈매기 소리가 들리는, 갈매기의 자유가 느껴지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독도 탐방에 앞서, 전날인 21일 울릉도에 도착한 일행은 숙소에서 이 이사장의 강의로 독도의 역사적 의미와 오늘을 탐구했다. 울릉도에서만 보이는 속도(屬島)로 늘 우리 역사와 함께였던 독도의 어제와, 잊을 만하면 국내 정치용으로 독도 이슈를 꺼내드는 이웃 나라의 속내가 질문과 토론으로 이어졌다. 이 이사장은 “우리가 실효 지배하고 있는 한 독도는 우리의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다만 이 독도와 동해에 대해 더 많은 시와 노래, 그림이 나오고, 그 예술작품들을 더 많은 사람이 감상할수록 독도는 더 논할 필요도 없는 우리의 것으로 세계인의 가슴에 새겨질 것입니다.” 라메르에릴은 2012년 ‘독도사랑문화예술인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뒤 해마다 두 차례 이상 독도와 동해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콘서트를 열고 전시회를 개최해 왔다. 2014년에는 세계인이 더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라메르에릴로 이름을 바꿨다. 2016년부터는 홍콩과 싱가포르 호주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체코 중국 등 해외에서도 연주회와 전시회를 열면서 ‘한국의 섬 독도’가 가진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다. 이번 탐방에 참가한 디즈니 시인은 부인이 울릉도 출신의 한국인이라 오래전부터 울릉도와 독도에 관심을 가져왔다. 하지만 독도뿐 아니라 울릉도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내 시는 도형적인 면이 강한데 독도에서 여러 편의 ‘시 그림’을 스케치해 뒀다”고 말했다. 그가 완성할 시는 최한별 작곡가(2017년 바젤 국제콩쿠르 3위 입상)가 노래로 작곡해 라메르에릴 콘서트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라메르에릴은 광복절인 8월 1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제14회 정기연주회 겸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음악회를 연다. 연극배우 원영애(극단 독립극장 대표)의 음악극 형식으로 진행하며, 이정면 곡 ‘해금과 현악4중주를 위한 목포의 눈물’과 임준희 곡, 최정례 시 ‘소프라노, 해금, 대금과 현악3중주를 위한 독도환상곡’을 초연한다. 이번 독도 탐방의 결실로 얻을 작품들은 이후의 콘서트와 전시회로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미국 뉴욕, 보스턴과 캐나다 토론토에서 순회공연도 계획돼 있다.독도·울릉도=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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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이콥스키 콩쿠르 김기훈 2위-김동현 3위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 2016년 우승자인 바리톤 김기훈(27)이 28일(한국 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서 동시 폐막한 국제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남자성악 부문 2위를 수상했다. 서울국제음악콩쿠르 2018년 우승자인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20)은 바이올린 부문 3위에 올랐다. 문태국(25)은 첼로 부문 4위를, 올해 처음 열린 금관 부문에서는 호르니스트 유해리(23)가 7위를 차지했다. 김기훈은 연세대 음악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독일 하노버 음대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2016∼2019년 독일 하노버 국립오페라단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했다. 김동현은 예원학교를 졸업하고 201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기악과에 영재 입학했다. 차이콥스키 청소년 국제콩쿠르 1위와 루마니아 에네스쿠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2위를 수상했다. 이날 바이올린 부문 1위는 세르게이 도가딘(러시아), 피아노 1위는 알렉상드르 칸토로프(프랑스), 첼로 1위는 즐라토미르 풍(미국), 남자성악 1위는 알렉산드로스 스타브라카키스(그리스)가 수상했다. 1958년 창설된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폴란드 쇼팽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국제음악콩쿠르로 꼽힌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9-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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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회 동아국악콩쿠르 시상식… 거문고 부문 금상에 김진서 씨-홍세인 양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초심을 떠올리며 연주했습니다. 부족함이 많은데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27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막을 내린 제35회 동아국악콩쿠르에서 일반부 거문고 부문 금상을 수상한 김진서 씨(25·서울대 4년)는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동아일보사가 주최하고 중앙대·동아꿈나무재단 후원, 롯데그룹 협찬으로 10일부터 중앙대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올해 동아국악콩쿠르는 일반부 8개 부문(대금, 해금, 작곡, 가야금, 피리, 판소리, 거문고, 가야금병창·민요)과 학생부 6개 부문(작곡, 가야금병창·민요 제외)으로 열렸다. 본선 진출자 71명 가운데 일반부 7명, 학생부 6명의 금상 수상자를 포함해 43명의 입상자가 나왔다. 시상식은 27일 오후 2시 반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작곡 부문 수석에게 시상되는 전인평 국악작곡상은 올해 금상이 나오지 않아 은상 수상자인 황승민 씨(24·이화여대 대학원)가 받았다. 민속국악기사(대표 조대석)가 제공하는 거문고를 부상으로 받는 ‘민속국악기상’은 일반부 금상 수상자인 김진서 씨와 학생부 금상 수상자인 홍세인 양(17·국악고 3년)에게 돌아갔다. 동아국악콩쿠르 14개 부문의 심사 결과와 심사평은 28일부터 확인할 수 있다. 본선 실황 영상은 7월 중순부터 동아국악콩쿠르 홈페이지에서 유료로 서비스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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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헝가리 BFO 내한콘서트… 오지 않는 이들을 기다리는 노래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BFO) 내한공연 첫날인 2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오른 지휘자 피셰르 이반의 손에는 마이크가 들려 있었다. “우리는 참담한 사고가 일어난 부다페스트에서 왔습니다. 헝가리 국민과 부다페스트 시민들, 단원들과 저는 유족들께 위로를 전하고자 합니다. 애도의 노래를 하겠습니다. 오지 않는 이를 기다리는 노래입니다.” 그는 손을 저어 지휘하기 시작했다. 청중이 멈칫, 했다. 현악 연주자들의 조주(助奏) 위에 단원들이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장일남 곡, 김민부 시의 가곡 ‘기다리는 마음’이었다. 청중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피셰르는 ‘기다리는 마음’이 끝나더라도 박수를 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그 대신 곡이 끝난 후 1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정적을 이어가며 희생자를 애도했다. 피셰르는 노래를 강조하는 지휘자로 알려져 있다. BFO는 내한 무대를 비롯한 여러 콘서트에서 앙코르로 노래를 불러 왔다. 2016년 내한 공연에서는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 일부 연주를 목소리로 대신하기도 했다. 피셰르는 행동주의자로도 이름이 높다. 1989년 그와 BFO가 헝가리에 몰려온 동독 난민들을 위해 열었던 깜짝 콘서트는 국경 탈출로 이어지며 철의 장벽 붕괴의 단초가 되었다. 아데르 야노시 헝가리 대통령도 이날 공연 프로그램북에 추모 글을 기고했다. 조성진 협연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에 이어 교향곡 7번을 연주한 공연은 현악을 중심으로 한 일치감과 리듬의 자유가 어우러진 명연이었다. 한 관객은 “추모의 분위기로 시작했지만 뒤에는 기쁨의 폭탄이 터진 것 같았다”고 말했다. 피셰르와 BFO는 2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 이어 26일 부산문화회관, 27일 대구콘서트하우스, 28일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조성진 협연으로 공연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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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년 음악감독 맡는 오스모 벤스케 “서로의 소리 듣는 서울시향 만들 것”

    “실내악단(체임버 앙상블)과 같은 연주가 나의 이상입니다. 지휘자 지시만 따르는 연주가 아니라 단원들이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조화를 이루는 연주를 말합니다.” 내년부터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는 핀란드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66·사진)가 24일 오전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뒤 자신의 계획을 밝혔다. 2015년 서울시향을 처음 지휘했고 이후 세 번 더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춘 벤스케는 “서울시향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있으며 갈 준비가 되어 있는, 잠재력이 엄청난 오케스트라”라며 “지휘자의 음악적 조언에 매우 예민하고 빠르게 반응하고 소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평했다. 벤스케는 “연초부터 서울시향과 세 가지 전략목표를 함께 의논하고 추진해 왔다”며 말문을 열었다. 콘서트홀 건립과 음반 녹음, 세계적 음악축제 진출로 악단의 위상을 공고히 한 뒤 이를 바탕으로 서울시민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간다는 계획이다. 그는 “악단의 목표는 매번 더 나은 연주를 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실제 연주 공간에서 연습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서울시향 콘서트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은경 서울시향 대표는 “콘서트홀이 만들어지면 ‘서울시향 전용’ 개념이 아니라 모든 시민을 위해 음악 교육 등이 이루어지는 시민의 홀이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벤스케는 자신이 음악감독으로 있는 미국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와 명예지휘자로 있는 핀란드 라티 교향악단을 지휘해 스웨덴의 세계적 음반사인 BIS에서 음반을 발매해 왔다. 그는 서울시향과의 음반도 BIS에서 발매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모든 서울시민에게 가까이 다가서겠다며 “작은 편성으로도 곳곳에 찾아가고, 완전한 오케스트라 편성으로도 지금까지 연주를 듣기 어려웠던 곳에 찾아가 음악을 선물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부터 미국 오케스트라 역사상 최장기 파업과 직장폐쇄를 겪었던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의 치유와 재성장을 앞장서 이끈 ‘오케스트라 건설자(Orchestra Builder)’로 알려져 있다. 강 대표는 “화합을 이끌어온 리더로서 벤스케 음악감독의 역량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벤스케는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와 라티 교향악단에서도 늘 악단 행정 부문과 단원들이 하나 되는 ‘원 팀’을 강조해 왔다”고 화답했다. 그의 서울시향 취임 연주는 내년 2월에 열릴 예정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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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지적이고 날카로운 음악 비평

    제목은 ‘경계의 음악’이지만 저자에게 비판의 대상은 경계가 없다. 유명 지휘자는 ‘갈피를 못 잡을 정도로 들쭉날쭉하고 앞뒤 조리가 닿지 않는’ 연주를 들려준다며, 저자가 호의를 가졌던 피아니스트도 ‘훌륭한 작품을 무자비하게 꼬챙이에 꿰어 두들겨 패고 짓밟는다’며 회초리를 맞는다. ‘음알못’들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고명한 이름들이다. 이들을 꼽아 보며 때로 공감하고 때로 부르르 떠는 것도 음악 팬인 독자가 가질 수 있는 재미다. 저자의 동료라 할 음악이론가들도 창날을 피할 수 없다. ‘베토벤은 4온스만큼, 바그너는 2온스만큼 고귀하다는 식이라니, 음주운전자 혈중 알코올 수치라도 된다는 말인가.’ 악성(樂聖)들의 신전 위칸에 모셔진 작곡가들조차 호된 소리를 듣는다. 문학평론가이자 문명비평가였던 저자는 1986년 이후 ‘더 네이션’지의 음악평론가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이 책은 특정한 주제 없이 그가 접한 콘서트에, 음악축제에, 신작에 대해 날카로운 펜을 든 평론들의 모음이다. 거의 매번 가차 없는 독설을 퍼부으면서 평론가로서의 평판을 유지했다는 것은 그의 음악적 지식도 문학과 문명에 대한 것 못지않게 해박했으며 관점이 냉철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독설이 그의 목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높게 평가하는, 그를 움직이는 음악적 체험은 무엇이었을까. “음악에 대한 경험을 ‘우리가 자양분을 취하는 외부의 경험과 연결시켜’ 음악 그 자체로부터 이격(離隔·띄워놓기)시킴으로써 우리의 지성을 자극”하는 체험을 저자는 높이 평가한다.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가 대표적으로 그렇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시각은 로고스(logos·논리) 우위적이며 친(親)모더니즘적이고, 묘한 방식으로 계몽적인 미학자 아도르노의 지점에 가깝다. 다만 모든 음악 팬이 이러한 관점에 설득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텍스트에 거리를 두며 읽은 독자를 이 저자는 더 기뻐했을 듯하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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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 한해 연주 일정만 90차례… 세계 건반계 ‘급성장주’

    우즈베키스탄의 피아니스트 베조드 압두라이모프(28)는 ‘급성장주’다. 올해 7월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리스트 소나타 B단조와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으로 이 축제 첫 개인 리사이틀의 문을 연다. 스위스 루체른 음악축제에서는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을 협연한다. 올해 3월 개막한 통영국제음악제에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협연을 시작으로 세 차례나 연주를 가지며 한국 청중과 친밀해진 그가 20, 2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가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그는 서울시향과 2017년 프로코피예프의 협주곡 3번을 협연한 바 있다. 앞선 내한의 협연곡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에 연주하는 차이콥스키의 협주곡 1번도 ‘파워엔진 장착’이 필수로 꼽힌다. 압두라이모프는 2014년 유라이 발추하가 지휘하는 이탈리아 공영방송(RAI) 교향악단과 이 곡 앨범을 발매한 바 있다. 음반전문지 그라머폰은 “충만하며 예리한 해석”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서울시향과 리허설을 갓 마친 그를 19일 만났다. ―2009년 런던 국제 콩쿠르 우승으로 세계무대에 데뷔한 지 10주년을 맞이한 것을 축하한다. 올해 연주 일정이 꽉 찬 듯하다. “올해 90차례 정도 연주를 소화한다. 바쁜 게 맞다.(웃음) 새로운 장소, 새로운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를 만나는 경험이 즐겁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프로코피예프 3번, 차이콥스키 1번 등의 연주로 사랑받아 왔다. 모두 힘이 돋보이는 레퍼토리들이다. 더타임스와 그라머폰은 이 곡들의 연주에 대해 ‘면밀한 해석’ ‘깊이가 느껴진다’고 평했다. “거대할 뿐 아니라 매우 섬세한 곡들이다. 프로코피예프의 협주곡은 언뜻 괴상하고 냉소적으로 들리지만 작곡가 자신은 매우 서정적으로 연주했다. 나는 독일 프랑스 레퍼토리도 자주 연주한다. 이번 시즌의 주력 레퍼토리는 쇼팽 전주곡집, 리스트 B단조 소나타 등이다.” ―서울시향과 연주하는 차이콥스키 협주곡 1번은 작곡가의 스승 루빈슈타인도 ‘연주 불가’라고 했다. “차이콥스키가 곡을 수정한 뒤 루빈슈타인이 그 말을 철회하지 않았는가. 곡의 핵심인 1악장에는 극적인 성격과 아주 서정적인 성격이 아름답게 어울린다.” ―음반 녹음 계획이 궁금하다. “올해 많은 녹음이 있다.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을 녹음하고, 리스트 소나타 독집도 녹음한다. 첼리스트 트룰스 뫼르크와 실내악 녹음도 있다.” ―3월에 한 주 동안 통영에서 세 번이나 연주회를 가졌다. “한국에 올 때마다 젊은 청중들의 열정과 사람들의 친절에 즐거워진다. 아름다운 통영도 늘 기억하고 있다.” 20, 21일 콘서트에서 슈텐츠가 지휘하는 서울시향은 차이콥스키의 협주곡 외에 라흐마니노프 ‘죽음의 섬’, 스크랴빈 교향곡 4번 ‘법열의 시’로 이어지는 ‘올 러시안’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1만∼9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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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를린 필의 깜짝 제안 “이건 앙상블로 불러주세요”

    “이번에 연주할 저희 실내악단 이름은 ‘베를린 필하모닉 이건 앙상블’로 하겠습니다.” 올해 초 ‘이건음악회’ 행사 담당자는 이런 메일을 받았다. 30회를 맞는 이건음악회를 기념하기 위해 단원들이 새로운 이름을 만들기로 생각을 모았다는 전갈이었다. 이 담당자는 “2016년 이건음악회에서 연주한 베를린 필 단원들이 행사 취지에 크게 공감했고 청중의 열렬한 반응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이름으로 그 마음을 표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30회를 맞는 이건음악회가 ‘베를린 필하모닉 이건 앙상블’과 함께 일곱 차례의 콘서트를 연다. 이건음악회는 건축자재기업 이건이 주최하는 무료 클래식 콘서트. 1990년 이건산업 합판공장에서 체코의 아카데미아 목관5중주단 초청 공연으로 시작해 재즈밴드 ‘마커스 로버츠 트리오’, 피아니스트 김선욱 초청 연주회 등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열었다. 세계 최고의 관현악단으로 꼽히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3년 전 바이올리니스트 로마노 토마시니를 주축으로 한 악단 내 실내악 앙상블 ‘베를린 필하모닉 카메라타’의 단원들을 중심으로 이건음악회에 출연해 열렬한 반응을 얻었다. 이번 ‘베를린 필하모닉 이건 앙상블’은 베를린 필하모닉 카메라타를 중심으로 트럼페터 안드레 쇼흐, 쳄발리스트 크리스티안 리거 등이 가세했다. 올해 공연은 7월 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을 시작으로 6일 아트센터인천, 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9일 광주문화예술회관, 10일 부산문화회관, 11일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린다. 그리그 ‘홀베르 모음곡’, 타르티니 트럼펫 협주곡 D장조, 비발디 ‘사계’ 등을 연주한다. 지난달부터 ‘티켓 응모 이벤트’를 진행했고 초청 대상자는 21일 발표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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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틴이 공들이는 ‘시베리아 트랜스 음악제’ 한국 소개

    미국 뉴스채널 CNN을 매개로 세계를 들썩거리게 한 실내악단 세종솔로이스츠가 러시아 정부가 지원하는 ‘트랜스 시베리아 아트 페스티벌’을 한국 무대에 소개한다. 러시아 현역 바이올린계를 대표하는 거장 바딤 레핀,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함께하는 ‘2019 힉엣눙크! 갈라 콘서트’다. 7월 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힉엣눙크(Hic et Nunc!)’란 라틴어로 ‘여기 그리고 지금’이라는 뜻. 세종솔로이스츠가 2017년 인천을 기반으로 시작한 음악제다. 세종솔로이스츠는 지난해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트랜스 시베리아 아트 페스티벌’에 초청돼 이 페스티벌 음악 감독인 레핀과 클라라 주미 강 협연으로 모스크바, 크라스노야르스크, 노보시비르스크의 공연 3회를 전석 매진시켰다. 이번 공연은 한국 청중 앞에서 당시의 환호를 재현하는 무대. 트랜스 시베리아 아트 페스티벌은 2014년 창립된 뒤 러시아 각지에서의 호응 및 러시아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프랑스, 이스라엘, 일본 등지에서 공연을 펼쳐왔다. 협연자이자 트랜스 시베리아 아트 페스티벌 음악 감독인 레핀은 17세 때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주인공. 베를린 필을 비롯한 세계 정상급 악단들과 협연 무대를 펼쳐왔고, 에코 클래식 상과 BBC 뮤직 어워드 등 세계 대표 음반상을 수상했다. 클라라 주미 강은 2009년 서울국제음악콩쿠르, 2010년 인디애나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왔다. 세종솔로이스츠는 1994년 줄리아드음악원의 강효 교수가 8개국 출신 젊은 연주자들을 모아 창단했다. 카네기홀과 링컨센터 등 세계에서 500회 이상 연주회를 펼쳐왔고, 대관령국제음악제와 미국 애스펀 음악제의 상주 악단으로도 활동했다. 2002년 크리스마스와 이듬해 추수감사절에는 CNN이 초대한 특별 공연이 생방송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패르트 ‘타불라 라사’, 마스네 ‘타이스의 명상곡’, 라벨 ‘치간’ 등에 이어 이구데스만의 ‘두 대의 바이올린과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위한 코베리아 환상곡’이 한국 초연되고 차이콥스키 ‘현을 위한 세레나데’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2만∼12만 원. 7월 4일 인천 인천대 대강당에서도 같은 내용의 콘서트가 열린다. 5만 원. 올해 ‘힉엣눙크’ 축제는 6월 29일 인천 엘림아트센터에서 열리는 플루티스트 김수연의 ‘김수연과 프렌즈’ 공연으로 시작해 7월 5일 세종솔로이스츠가 인천대 대강당에서 여는 비발디 ‘사계’ 무대로 막을 내린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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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을 바꾸고 싶다면 생각을 바꿔라 [책의 향기]

    보험 광고 문구가 아니라도 ‘마음이 합니다’라는 말은 진실이다. 마음이 바르게 작동하지 않으면 우리의 일상과 삶 전체가 제대로 항해할 수 없다. 두 책은 ‘올바른 마음 사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어 한층 안전하고 안락한 삶의 항로를 제시한다. 두 책 모두 제목이 알려주지 않는 것이 있다. ‘비욘드 앵거’는 화내는 남성들을 위한 처방전이다. 인류의 절반인 여성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는다. 성차별 의식 때문이 아니라 우선 한쪽 성(性)으로 논의를 국한해 내실 있는 진단을 끌어내려 했을 것이다. 화내는 남성을 옆에 둔 여성에게 더욱 유용한 내용일 수도 있다. ‘방탄 사고’는 제목만으론 트라우마와 고통들로부터 자아를 지켜내는 방법을 다룬 것처럼 여겨진다. 실제 후반부 6, 7장은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다. 하지만 책의 대부분은 심리적 요인이 우리의 건강과 의료 행위에 미치는 영향, 나아가 비합리적인 의료 행위에 속지 않는 법을 다룬다. 원제 ‘Wunder wirken Wunder’(기적이 기적을 일으킨다)가 그 중심 내용에 가깝다. ‘비욘드 앵거’부터 들여다보자. 얌전한 남편은, 아빠는 분노로부터 자유로운 걸까? 분노를 터뜨리는 모습만이 분노의 얼굴은 아니다. 늘 불만스럽고, 지나치게 경쟁하고, 다른 사람의 견해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분노의 얼굴이다. 늘 분노에 찬 남자는 뭐가 이유일까? 인생의 어느 단계에 두려움과 수치심이란 두 그림자가 결합한 결과일 수 있다. 어떻게 할까. 폭탄에서 뇌관을 제거하는 게 먼저다. 실망을 느낄 때마다 상대방에게 알리면 그 감정이 모였다가 분노로 쏟아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모든 일을 통제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어느 정도는 이끌려가는 태도도 중요하다. 가족 간 갈등은 임상심리학자인 저자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다. 가족 안에서의 고정 역할을 때로 거부하는 것은 폭탄이 터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겉보기보다 괜찮은 해법이다. ‘방탄 사고’의 저자는 독일의 현직 의사이자 실제 무대에 서는 마술사, ‘웃음 트레이너’다. 마음과 치유에 관해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논의를 시작하는 지점은 우리도 잘 아는 ‘플라시보(가짜 약) 효과’다. 실제 환자가 가짜임을 알고 있는 경우에도 가짜 약은 효과가 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상처에 ‘호’ 해주던 게 실제 치료에 효과가 없는 걸 안 뒤에도 ‘호’는 통증을 가라앉히는 마법의 주문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저자는 어디까지나 의사다. 신비와 현실을 엄격히 구분한다. 긍정적 마음은 기적을 일으키지만, 맹목적인 믿음은 올바른 치료의 기회를 빼앗는다. “놀라운 의술을 소개받았을 때는 빨간 망토 이야기에서 배운 것을 떠올리세요. 자기가 할머니라는 늑대를 만났을 때 빨간 망토가 한 것처럼 질문해야 합니다. 왜 그렇게 비싼가요? 왜 보험 적용이 안 되죠? 증거는 있나요? 그렇게 치료받은 사람을 소개해줄 수 있나요?” ‘부정적 목소리를 지우고 기쁨이 넘치는 삶과 대면하라’는 6장에서부터 이 책은 ‘비욘드 앵거’의 논지와 만난다. 적당한 스트레스를 삶의 엔진으로 삼고, 스킨십에서 위로를 받고, 음악과 춤을 사랑하는 사람은 삶이 퇴화하지 않을 것이다. ‘우연은 대뇌에게는 모욕’ ‘바이올린 연주가 마술을 걸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필요한지는 옆방 사람만이 안다’ 같은 통찰과 유머 넘치는 문장들이 독자를 빵빵 터뜨리면서 집중력을 유지하게 만든다. 읽는 재미만으로도 손에 쥘 가치가 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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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당한 스트레스를 엔진으로 삼고…안락한 삶 위한 ‘마음 사용법’

    보험 광고 문구가 아니라도 ‘마음이 합니다’라는 말은 진실이다. 마음이 바르게 작동하지 않으면 우리의 일상과 삶 전체가 제대로 항해할 수 없다. 두 책은 ‘올바른 마음 사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어 한층 안전하고 안락한 삶의 항로를 제시한다. 두 책 모두 제목이 알려주지 않는 것이 있다. ‘비욘드 앵거’는 화내는 남성들을 위한 처방전이다. 인류의 절반인 여성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는다. 성차별 의식 때문이 아니라 우선 한쪽 성(性)으로 논의를 국한해 내실 있는 진단을 끌어내려 했을 것이다. 화내는 남성을 옆에 둔 여성에게 더욱 유용한 내용일 수도 있다. ‘방탄 사고’는 제목만으론 삶을 지킬 수 있는 트라우마와 고통들로부터 자아를 지켜내는 방법을 다룬 것처럼 여겨진다. 실제 후반부 6, 7장은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다. 하지만 책의 대부분은 심리적 요인이 우리의 건강과 의료 행위에 미치는 영향, 나아가 비합리적인 의료행위로부터 속지 않는 법을 다룬다. 원제 ‘Wunder wirken Wunder’(기적이 기적을 일으킨다)가 그 중심 내용에 가깝다. ‘비욘드 앵거’부터 들여다보자. 얌전한 남편은, 아빠는, 분노로부터 자유로운 걸까? 분노를 터뜨리는 모습만이 분노의 얼굴은 아니다. 늘 불만스럽고, 지나치게 경쟁하고, 다른 사람의 견해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분노의 얼굴이다. 늘 분노에 찬 남자는 뭐가 이유일까? 인생의 어느 단계에 두려움과 수치심이란 두 그림자가 결합한 결과일 수 있다. 어떻게 할까. 폭탄에서 뇌관을 제거하는 게 먼저다. 실망을 느낄 때마다 상대방에게 알리면 그 감정이 모였다가 분노로 쏟아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모든 일을 통제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어느 정도는 이끌려가는 태도도 중요하다. 가족 간 갈등은 임상심리학자인 저자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다. 가족 안에서의 고정 역할을 때로 거부하는 것은 폭탄이 터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겉보기보다 괜찮은 해법이다. ‘방탄 사고’의 저자는 독일의 현직 의사이자 실제 무대에 서는 마술사, ‘웃음 트레이너’다. 마음과 치유에 관해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해왔다고 할 수 있다. 논의를 시작하는 지점은 우리도 잘 아는 ‘플라시보(가짜약) 효과’다. 실제 환자가 가짜임을 알고 있는 경우에도 가짜 약은 효과가 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상처에 ‘호’ 해주던 게 실제 치료에 효과가 없는 걸 안 뒤에도 ‘호’는 통증을 가라앉히는 마법의 주문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저자는 어디까지나 의사다. 신비와 현실을 엄격히 구분한다. 긍정적 마음은 기적을 일으키지만, 맹목적인 믿음은 올바른 치료의 기회를 빼앗는다. “놀라운 의술을 소개받았을 때는 빨간 망토 이야기에서 배운 것을 떠올리세요. 자기가 할머니라는 늑대를 만났을 때 빨간 망토가 한 것처럼 질문해야 합니다. 왜 그렇게 비싼가요? 왜 보험 적용이 안 되죠? 증거는 있나요? 그렇게 치료받은 사람을 소개해줄 수 있나요?” ‘부정적 목소리를 지우고 기쁨이 넘치는 삶과 대면하라’는 6장에서부터 이 책은 ‘비욘드 앵거’의 논지와 만난다. 적당한 스트레스를 삶의 엔진으로 삼고, 스킨십에서 위로를 받고, 음악과 춤을 사랑하는 사람은 삶이 퇴화하지 않을 것이다. ‘우연은 대뇌에게는 모욕’ ‘바이올린 연주가 마술을 걸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필요한지는 옆방 사람만이 안다’ 같은 통찰과 유머 넘치는 문장들이 독자를 빵빵 터뜨리면서 집중력을 유지하게 만든다. 읽는 재미만으로도 손에 쥘 가치가 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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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古음악의 대가가 펼치는 바로크 음악의 향연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주연한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1991년)은 골수 음악 팬들만의 것으로 여겨졌던 ‘바흐 헨델 이전·독일 바깥’ 바로크 음악에 대한 관심을 대중화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드파르디외가 연기한 작곡가 마랭 마레와 그의 스승 생트콜롱브의 음악은 물론이고 생소한 바로크 악기 ‘비올라 다 감바’에 대한 관심도 이 영화 이후 전 세계에 걸쳐 훨씬 높아졌다. 이 영화의 모든 음악을 담당한 옛 음악 연주의 대가 조르디 사발이 ‘세상의 모든 아침’에 나오는 주요 작품들을 연주한다. 2017년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옛 켈틱(Celtic) 음악을 선보인 지 2년 만의 내한이다. 이번에는 그가 이끄는 합주단 ‘르 콩세르 데 나시옹’과 합창단 ‘라 카펠라 레이알 데 카탈루냐’가 함께한다. 1941년생인 사발은 바르셀로나 음악원을 나와 독학으로 비올라 다 감바 등 옛 악기와 옛 음악을 탐구했다. 스위스 바젤의 ‘스콜라 칸토룸 바실리엔시스’에서 수학한 뒤 이곳에서 연구하며 학생들에게 옛 음악 연주 기법을 가르쳤다. 1987년 ‘라 카펠라…’를, 2년 뒤 ‘르 콩세르 데 나시옹’을 창단한 뒤 대중에게 바로크 음악의 원형을 살리는 연주를 전파해 왔다. 영화 ‘세상의…’의 흥행은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알리아 복스’ 레이블로 중세음악에서 고전주의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의 음악을 음반으로 발매하고 있다. ‘세상의…’ 콘서트는 22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전반부에는 영화 ‘세상의…’를 수놓은 마레의 비올 모음곡, 생트콜롱브 ‘두 대의 비올을 위한 작품집’ 일부 등을 소개한다. 후반부에는 비발디 ‘사계’ 중 여름, 헨델 수상음악 등 예전부터 귀에 익은 바로크 음악들을 연주한다. 22일 연주에 합창은 참여하지 않는다.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25일 대전 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는 합창이 가세해 페르골레지 ‘스타바트 마테르’(성모 애가)와 헨델 ‘딕시 도미누스’(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등 바로크 교회음악의 걸작을 연주한다. 한화가 주최하는 ‘한화클래식 2019’ 프로그램으로 기획됐다. 2만∼5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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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튜브는 클래식을 싣고… 거실서 ‘귀호강 눈요기’

    #1. ‘클래식의 구원자’를 자처하며 자신의 악단 ‘무지카 에테르나’와 함께 인기몰이 중인 그리스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는 내한한 일이 없고 예정도 없다. 그러나 그의 지휘 모습은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하다. 그가 지난해 수석지휘자로 취임한 남서독일방송(SWR) 교향악단이 그가 지휘한 콘서트 영상을 악단 유튜브 채널에 올려놓기 때문. 8개월 전 공개한 말러 교향곡 3번 전곡 영상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곧 내려졌지만 그 뒤 올라온 2분짜리 하이라이트 영상도 6만 명이 감상했다. #2. 7월 27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서울시향과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을 연주하는 지휘자 디마 슬로보데니우크는 많은 지휘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그가 수석지휘자로 있는 스페인의 갈리시아 교향악단이 유튜브 채널을 적극적으로 운영하기 때문. 그가 지휘하는 시벨리우스를 유튜브로 들어본 팬들은 ‘오르간 같은 투명한 음색이 인상적’이라고 평했다. 유튜브의 강풍이 클래식 콘서트 팬들에게도 불고 있다. 최근에는 720p 화질의 HD 영상을 넘어 1080p 화질의 풀HD 연주 영상이 대세다. 음질도 전송속도 192kbps가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무손실 음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음향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수준이다. 몇 년 전까지도 유튜브를 통한 음악 감상은 ‘모바일 기기용’으로 치부됐지만 최근에는 크롬캐스트를 비롯한 미디어 기기를 TV에 접속하고 음향기기나 사운드바와 연결하면 순식간에 거실을 공연장으로 만들 수 있다. 요즘은 유튜브 접속 기능을 내장한 TV도 출시되고 있다. 풀HD 영상을 제공하는 블루레이 영상 음반이 장당 3만∼4만 원 이상임을 고려하면 더욱 극적인 감상 환경의 변화다. 독일 교향악단들은 특히 유튜브를 통한 연주 소개에 적극적이다. 프랑크푸르트의 HR(헤센주 방송)교향악단, 쾰른 귀르체니히 교향악단, 도이체 라디오 필하르모니 등이 연주 영상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용하고 있다. 네덜란드 대표 방송사인 아브로트로스가 운용하는 ‘아브로트로스 클래식’ 채널도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로테르담 필하모닉, 네덜란드 방송교향악단 등 이 나라 대표 오케스트라들의 명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창구로 자리 잡고 있다. 국내 연주단체 가운데 연주회 전체 영상을 가장 활발히 제공하는 곳은 KBS교향악단이 꼽힌다. 주요 콘서트 영상과 연주자 인터뷰 등을 제공한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공연 전 음악평론가들이 연주곡을 미리 설명하는 ‘콘미공’(콘서트 미리 공부하기) 영상을 최근 유튜브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서울 예술의전당은 2013년 공연물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중계하는 ‘SAC on Screen’ 사업의 영향으로 유튜브 콘텐츠가 풍성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해마다 4월 개최하는 교향악축제 영상 등 700여 개의 영상을 갖추고 있고 구독자가 1만5000명을 넘는다.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채널도 3100명이 구독하는 인기 유튜브 채널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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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한 앞둔 부다페스트 오케스트라 “다뉴브강 희생자 위해 추모 연주”

    헝가리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BFO) 음악감독 피셰르 이반이 이달 말 예정된 내한공연 중 최소 1회를 다뉴브강 유람선 사고 희생자를 위한 추모 음악회로 열겠다고 밝혔다. 피셰르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한 메시지에서 “이번 참사에 대해 부다페스트 시민 및 헝가리 국민들과 함께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이렇게 밝혔다. 그는 희생자 유가족들도 콘서트에 초대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공연기획사 빈체로 관계자는 “본 프로그램에 앞서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추모곡을 연주할 예정이며 곡목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BFO 내한 콘서트는 2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6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28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열린다.유윤종 문화전문 기자 gustav@donga.com}

    • 20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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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머릿속 창고’ 해마로 기억의 비밀 풀 수 있을까

    우리가 저장하는 가장 귀한 것은 금붙이도, 명화나 도자기도 아니다. 그것은 기억이며, 이 소중한 보물은 ‘나’를 구성하는 토대이기도 하다. 저자는 ‘기억’에 관해 신경심리학적으로 알려진 지식을 낱낱이 다룬다. 뇌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짐작하겠지만 이 책이 말하는 ‘해마(hippocampus)’는 바다가 아니라 대뇌 속에 있다. 1564년 해부학 교실에서 이 부위를 처음 발견한 이탈리아 의사가 바닷속 해마를 닮은 모습에 착안해 이름을 붙였다. 해마에 대한 관심을 폭발시킨 것은 1953년 ‘H.M 씨’라고만 알려진 헨리 몰레이슨의 수술 이었다. 의사는 그의 뇌전증을 치료하고자 몰레이슨의 해마를 완전히 제거했다. 이후 그는 3년 이내 일어난 모든 일을 기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방금 일어난 일도 잊어버렸다. 조금 전 무엇을 먹었는지도, 자신의 나이도 몰랐고 화장실에 가는 길도 매번 알려주어야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억을 저장하는 창고가 해마일까. 3년 동안 기억을 여기 넣어두었다가 다른 큰 창고로 옮겨두는 것일까. 어느 정도는 맞다. 해마의 역할은 기억이 ‘성숙해져서’ 대뇌피질에 고착될 때까지 붙잡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해마의 역할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뇌 곳곳에 작은 조각으로 저장된다. 이 조각들을 꺼내어 기억으로 조립하려면 해마가 일해야 한다. 해마를 제거한 몰레이슨의 경우 수술 3년 이전의 일을 기억할 수는 있었지만 소리, 냄새, 분위기 등이 통합된 생생한 경험으로 기억해 낼 수 없었다. 두 저자는 노르웨이의 신경심리학자와 저널리스트 자매다. 한국인에게 세월호라는 트라우마가 있다면 노르웨이인에게는 2011년 7월 22일이라는 트라우마가 있다. 여름캠프에 간 청년 69명을 테러리스트 한 사람이 학살한 우퇴위아섬 사건이다. 비극적인 일이지만 뇌 연구에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이 사건을 겪은 여러 사람이 사실과 다른 ‘가짜 기억’을 갖게 되었다. 쌍둥이들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었다. 그 이유를 파고드는 시선도 흥미롭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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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담벨레니 그리스 문화국장 “그리스 ‘최고 중의 최고’ 보물만 엄선했죠”

    “그리스가 보유한 고대의 보물은 그 숫자가 엄청나죠. 그러나 이번에 한국에서 전시하는 350점은 그중에서 단연 최고 중의 최고(the cream of cream)입니다.” 그리스 문화부가 국가 간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소개하는 그리스 국보급 유물들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왔다. 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그리스보물전, 아가멤논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진행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서울에 온 폴릭세니 아담벨레니 그리스 문화체육부 문화유산국장(사진)은 “서양문명의 발상지로서 그리스의 위치를 이번 전시를 통해 생생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그리스 전역 24개 박물관이 자랑하는 최고의 유물들을 모아 전시한다. 그중에서도 자랑할 만한 보물을 꼽아보길 부탁하자, 그는 “모든 유물들이 최고의 가치를 지녀 하나를 말하기 주저된다”면서도 “아르골리스미케네 고고학박물관에서 온 ‘아가멤논의 황금가면’은 특히 쉽게 만날 수 없는 보물”이라고 귀띔했다. “이번 전시회는 특히 그리스 땅에서 명멸한 두터운 문명의 역사를 시대별로 조감할 수 있게 설계됐습니다. 해외에서는 그리스 하면 아테네로 대표되는 도시국가만 생각하기 쉽죠. 그러나 그 기층을 이루는 선사시대 에게해 문명에서부터 서구 민주주의의 기원을 이룬 도시국가들, 정복전쟁을 이뤄낸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 대왕까지 그리스 문명의 발전과 변천을 정밀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는 15세기에 비잔틴제국이 오스만제국에 점령된 이후 오랜 이민족의 지배를 받았다. 해외로 반출된 유물도 많다. 반환의 필요성이 제기되지 않을까. “한국도 그런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는 서구 문명의 기반이 된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고, 근대 이후 불법적으로 빼앗긴 것이 아니라면 오래전에 해외로 간 문화재는 그곳에서 가치를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엘긴 마블’로 알려진 파르테논 신전의 일부(현 런던 대영박물관 소장)는 제 위치로 돌아와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테살로니키박물관 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한국미술 교류전을 개최해 한국 문화와 한국인들의 따뜻함을 잘 알고 있다며 웃음 지었다. 그리스보물전은 9월 15일까지 열린다. 1만5000원(청소년 1만1000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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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로크 바이올린 여제’ 레이철 포저가 선사하는 사계의 선율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집 ‘사계(사계절)’는 천의 얼굴을 가졌다. 악보에 빠르기나 장식음, 저음악기의 종류 등이 기록되지 않아 연주마다 전혀 다른 느낌의 ‘네 계절’을 선사한다. 바로크 협주곡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바로크 협주곡의 재인식을 가져온 작품이 바로 이 곡인 데다 인기와 음반의 종류에서 ‘최고, 최다’를 자랑하기에 그 다양성은 한층 선명하다. ‘바로크 바이올린 여제’로 불리는 영국의 레이철 포저(51)가 12일 서울 LG아트센터에 이 ‘사계’를 들고 온다. 2002년, 2009년에 이어 세 번째 내한이다. 그가 지난해 채널클래식스 레이블로 브레콘 바로크 악단과 협연한 음반(사진)은 2018년 영국 그라머폰지 ‘올해의 아티스트’ 상을 안겼다. 13년 전 직접 창설해 포저의 수족과 같은 브레콘 바로크와 달리 이번은 그가 15년 동안 객원 리더로 활동해온 계몽시대 오케스트라가 호흡을 맞춘다. 이번 공연에서도 포저는 독주와 함께 음반에 쏟아 넣었던 아이디어와 노하우를 투사하며 악단을 이끌 것이다. 음반으로 이번 공연의 면모를 미리 예측해볼 수 있는 이유다. 앨범에서 포저는 신기함을 의식적으로 추구하지 않는다. 강약대비나 빠르기에서는 중용을 선택했다. 그러나 기교의 정밀함과 다채로운 세부의 뉘앙스는 단연 독보적이다. 고급스럽고 편하다. 고(古)악기 등장 이전의 이무지치나 베를린필판 ‘사계’에서 저음 화음악기는 있는 듯 마는 듯했다. 악보에 명확히 역할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크 전통을 되살린 연주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존재가 주목받게 되었다. 이 음반에서 쳄발로, 류트, 오르간 등 저음악기는 배경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끊임없이 즉흥연주를 펼치며 바이올린과 대화한다. 그러나 연주를 단연 빛나게 만드는 요소는 포저의 바이올린 솔로가 지어내는 정밀한 윤곽과 오묘한 즉흥성이다. 가을 1악장 반복 부분마다 8분음표를 16분음표 두 개로 나누거나 부점을 넣는 등 새로운 표정을 더하는 부분이 재미를 배가한다. 영국 더타임스는 포저의 ‘탄력 있는 프레이징, 명쾌함, 질감과 강약대비의 오묘함’에 찬사를 보냈다. 이번 공연에서는 ‘사계’ 외에 코렐리, 만프레디니, 제미니아니 등 바로크 작곡가들의 합주협주곡과 비발디 류트 협주곡 D장조도 연주한다. 4만∼11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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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숫가… 호젓한 야외… 여름밤 수놓는 클래식 선율

    유럽 클래식 팬들에게 여름은 음악축제의 계절. 가을에서 겨울까지 대도시 공연장을 명연주로 빛낸 음악가들은 여름을 맞아 자연이나 호젓한 중소도시를 배경으로 열리는 음악축제에서 휴가와 함께 음악을 즐기는 팬들을 만난다. 유럽의 유명 음악축제를 찾아 먼 길을 나서는 이들도 많아졌다.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 피아니스트 베조드 압두라이모프 등이 올해 세계 음악축제의 주요 얼굴이다.○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오페라축제 7월 17일∼8월 18일. 호숫가에 설치된 무대에 고정 무대장치를 짓고 두 해 동안 한 작품만 공연한다. 1946년 시작된 뒤 이탈리아 베로나 오페라축제와 함께 야외 오페라의 상징으로 꼽힌다. 지난해까지 2년 동안 비제 ‘카르멘’을 공연한 데 이어 올해와 내년에는 베르디 ‘리골레토’를 무대에 올린다. 올해 무대는 아직 공사가 한창이다. 무대감독과 연출을 독일 연출가 필리프 슈퇼츨이 맡았다. 대중음악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출발해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을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 상징적이면서 도전적이고 화려한 무대를 만들어 내기로 유명하다. 새로 제작하는 ‘리골레토’에 대해 슈퇼츨은 “호화로운 스펙터클과 실내극적인 앙상블을 극적으로 대비시키겠다. 연회 장면에는 서커스를 넣고, 납치와 폭우 같은 극적인 장면을 제대로 묘사하겠다”고 설명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축제 7월 20일∼8월 31일. 1920년 연극축제로 시작했지만 오페라와 관현악 콘서트가 주를 이룬다. ‘지휘계의 이단아이자 혁명아’로 불리는 그리스 출신 테오도르 쿠렌치스와 그의 페름 교향악단이 모차르트 오페라 ‘이도메네오’를 반주해 눈길을 끈다. 이 밖에 러시아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와 그의 남편인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가 출연하는 칠레아의 오페라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 메조 체칠리아 바르톨리가 주연을 맡은 헨델 ‘알치나’가 올해 오페라 분야의 화제작으로 꼽힌다. 쿠렌치스는 7월 26일에는 지난해 수석지휘자로 취임한 남서독일교향악단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을 연주한다.○ 스위스 루체른 음악축제 8월 16일∼9월 15일. 세계 일류 교향악단의 수석급 단원들이 총집합한 ‘오케스트라의 올스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이 축제의 트레이드마크다. 8월 16일 개막 공연은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뒤를 이어 이 오케스트라를 맡고 있는 리카르도 샤이 지휘로 ‘풀 라흐마니노프’ 콘서트가 펼쳐진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을 29세의 우즈베키스탄 피아니스트 베조드 압두라이모프가 협연하고, 교향곡 3번과 ‘보칼리제’도 이날 연주된다. 압두라이모프는 7월 19일 개막하는 스위스 베르비에 음악축제에서도 개막 무대를 맡아 리스트 소나타 B단조와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연주한다. 그는 서울에서 6월 20일 마르쿠스 슈텐츠 지휘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 협연 무대를 갖는다. 쿠렌치스가 지휘하는 페름 교향악단은 9월 13일 체칠리아 바르톨리 협연으로 모차르트 ‘황제 티토의 자비’ 하이라이트 콘서트를 연다. 올해 루체른 음악축제에는 한국인 연주가의 활약이 두드러져 눈길을 끈다. 9월 10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가 피아니스트 미하일 리피츠와 리사이틀을 갖는다. 슈만의 소나타와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2번을 연주한다. 12일에는 독일 유학 중인 여성 연주가 4명으로 이뤄진 에스메 콰르텟이 멘델스존과 슈베르트의 4중주를 연주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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