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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말고 그림책협회에 초점을 맞춰 질문해 주시면 안 될까요?”한성옥 그림책 작가(59)는 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나자마자 이렇게 물었다. 지난달 출범한 그림책협회 초대 회장(임기 2년)으로 선출된 터였다. 하지만 볼로냐 국제어린이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나의 사직동’, 2005년)된 데다 미국일러스트레이터협회상(‘시인과 요술 조약돌’, 2005년)을 수상한 작가와 어떻게 협회 이야기만 할 수 있단 말인가. 미국에서 낸 ‘시인과 여우’ ‘황부자와 금돼지’는 미국 초등학교 교재로도 선정됐다. ‘한국 그림책 1세대’인 그의 작품은 순간을 따뜻하고 섬세하게 포착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 “인정받는다는 건 감사하고 즐거운 일이죠. 한데 그림책 강의를 듣고 새로운 세계와 만났다며 기뻐하는 독자를 볼 때가 진짜 좋아요.”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미국 뉴욕주립대 패션전문학교(FIT) 일러스트레이션 학사,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 일러스트레이션 석사를 마친 그는 미국과 한국에서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갔다. ‘수염 할아버지’(2002년), ‘나의 사직동’(2004년)으로 한국어린이도서상도 받았다. 그런데 4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지독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뜻밖이었다. 날카롭기만 해 데면데면하게 지낸 아버지였다. “지병도 없던 분이 갑자기 떠나시자 멍해지는 거예요. 아버지도 가슴에 상처가 많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고요. 사는 게 혼란스러웠어요.” 3년 넘게 홀로 침잠했다. 그를 깊은 늪에서 끄집어낸 건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그림을 그린 작품이었다. 후배의 간곡한 요청으로 ‘시인과 여우’에 대해 강의하러 간 날이었다. 미국 작가 팀 마이어스가 이야기를 쓴 이 그림책은 그 자신이 너무나 잘 아는 내용이었지만, 강의를 하다가 새롭게 깨달았다. “시인이 버찌를 따 먹은 여우와 내기를 해요. 멋진 시를 쓰면 버찌를 차지하기로요. 계속 여우에게 퇴짜를 맞죠. 머리를 쥐어짜지만 시를 못 쓴 채 약속 장소로 나가는데, 달빛 아래서 여우를 본 순간 시가 튀어나오죠.” 뭔가 머리를 세게 내려치는 것 같았다. “시를 못 썼음에도 불구하고 여우를 만나러 가잖아요. 인생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길을 가는 거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는 요즘 에너지를 협회에 쏟고 있다. “그림책진흥법을 만들어 그림책이 독립된 장르가 되도록 하는 게 목표예요. 그림책과 동화는 엄연히 다른데 우리는 동화작가로 분류돼요. 이름을 찾아야죠.” 장르가 없다 보니 정부의 지원을 받기도 어렵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한국 작가들은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았다. 이수지, 백희나, 김희경, 유주연 작가 등이 볼로냐 국제어린이도서전과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BIB)에서 수상하는 등 권위 있는 상을 휩쓸고 있다. “출판물 가운데 저작권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장르가 그림책이에요. 한국 그림책의 잠재력은 어마어마하답니다.” 협회를 운영하고 법 제정까지 이뤄내는 건 만만치 않은 여정이다. 두렵지는 않을까. “영화계에서 스크린쿼터제를 위해 배우들이 삭발까지 했잖아요. 그 정도 각오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해요. 동료들과 ‘빠샤’를 외치며 함께 나가야죠. 하하!” 지금도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지만 출간은 회장 임기가 끝난 후 할 계획이다. “어린이와 어른이 다 같이 볼 수 있는, 통찰을 담은 책을 내고 싶어요. 나이를 먹으니 봄이 여름을 지나 어떻게 가을을 맞이하는지, 삶이라는 순환의 고리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더라고요.”(웃음)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이 작품은 뭘 의미하는 거지? 색채의 특징은 뭐야?” 최근 관람한 ‘프리다 칼로&디에고 리베라’전(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한 여성이 여중생으로 보이는 딸에게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 내고 있었다. 딸은 굳은 표정으로 오디오 가이드를 들은 후 약간 주눅 든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어지는 엄마의 말. “그대로 적어.” 두 사람이 와서 오디오 가이드를 하나만 빌린 경우 이어폰을 한 쪽씩 귀에 꽂고 함께 듣는 경우가 많은데, 엄마는 딸만 듣게 했다. 비슷한 상황이 이어지고 도저히 작품에 집중할 수가 없어 멀찌감치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취조 당하듯 그림을 보는 여학생에게 이 전시회는 수행평가 과제를 위한 괴로운 작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리라. 딱딱하고 무표정한 여학생의 얼굴 위로 발레 공연장에서의 기억이 겹쳐졌다. 발레 공연은 어린이 관객이 많은 편이다. 발레 학원에서 단체로 관람하기도 하고 부모가 발레를 배우는 자녀를 데리고 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됐을까. 바로 앞자리에 여자 아이와 엄마가 앉았다. 공연이 시작되자 아이는 이내 의자에 기대 졸기 시작했다. 엄마가 아이의 허리를 곧추세우며 손가락으로 무대를 가리켰다. 아이는 잠시 바로 앉는가 싶더니 다시 졸았다. 엄마도 지지 않고 아이 허리를 다잡았다. 잘 수도, 그렇다고 무시무시한 지루함을 참을 수도 없던 아이는 급기야 좌우로 허리를 마구 비비 꼬기 시작했다. 결국 엄마의 손바닥이 아이의 등짝을 철썩 내려치기에 이르렀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작은 활극’에 발레리나들의 사뿐사뿐한 동작은 마치 저 세상의 것처럼 멀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큰 맘 먹고 비싼 돈을 주고 왔으니 아이가 최대한 많이 보고 느끼기를 바랄 것이다. 건성건성 보거나 조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고 부아가 치밀어 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를 경험하게 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을까. 낯설었다거나 흥미로웠다거나 혹은 지겨워 죽을 뻔했다거나, 그 어떤 것을 느껴도 좋다. 대충 본 그림이, 잠결에 들은 음악이나 졸다가 눈을 떴을 때 본 장면이 의식 혹은 무의식에 남을 것이다. 기자도 어린 시절 졸다가 깨다가 하며 봤던 뮤지컬을 커서 다시 봤을 때 ‘어, 이런 장면이 있었나. 옛날보다 훨씬 재미있네!’ 하며 신선하게 감상했던 경험이 있다. 이제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전시장, 공연장을 찾는 가족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아이에게 강압적으로 감상을 강요하지는 말자. 아이가 전시회, 공연장이란 말만 들어도 손사래를 치고 기겁하는 건 부모가 원하는 바도 아닐 것이다. 그곳에서의 경험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던 시간으로 기억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관람 예의는 지키되 아이가 자유롭게 즐기게 해 줬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자라고, 문화 체험은 그렇게 쌓여 간다. 알게 모르게.손효림 문화부 기자 aryssong@donga.com}
“죽는 순간,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최근 종영한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여주인공은 꼬여 버린 사랑으로 가슴이 아파오자 주문처럼 되뇐다. 지금은 울고불고 해도 죽을 때 돌이켜보면 ‘별거’였던 문제는 과연 몇 개나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살아있는 존재의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고민도 버릇이다’(스기타 다카시 지음·이주 옮김·팬덤북스)의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20년간 고민에 휘둘렸단다. 그 결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문제를 고민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입사 시험에 합격할지는 어차피 기업 인사팀이 결정하니 그 자체를 고민하지 말고 서류 심사나 면접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방법을 고민하라는 것. 고민을 잘게 쪼개다 보면 내가 결코 어쩌지 못하는 게 나온다. 버려야 하는 고민이다. 필요한 건 결단력과 뒤돌아보지 않는 단호함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먹기만 하면 문제가 싹 해결되는 음식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용기를 주고, 하늘을 팡팡 날게 해준다면? 엉뚱잼잼 마녀는 얼렁뚱땅 잼을 만드는 게 특기다. 한데 빈 구석이 좀, 아니 제법 많다. 생일을 맞은 용 드랭을 위해 구렁이잼을 만들기로 마음먹지만 덩치 큰 구렁이를 잡는 건 만만찮은 일. 결국 지렁이로 대신한다. 드랭은 냠냠 맛나게 잼을 먹지만 이걸 어째, 요란한 재채기와 함께 불을 뿜고 만다. 몇 해 전 감기를 심하게 앓은 후부터 불을 못 뿜었던 드랭이 말이다. 알고 보니 지렁이 알레르기가 드랭의 불씨를 살려낸 것이다!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지만 그 덕분에 예쁜 용이 드랭을 쫓아다니게 됐다. 용기를 주는 당근잼이 필요한 토끼 폴린은 잼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밤에 핀 바닐라꽃을 따러 길을 나선다. 부엉이에게 잡힐 뻔한 위기를 맞지만 두더지의 도움으로 무사히 바닐라꽃을 따 온다. 자랑스럽게 바닐라꽃을 내민 폴린은 마녀가 정신없이 만들어준 잼을 안고 환호하며 떠난다. 어, 그런데 마녀의 창가에 뭔가가 하늘거린다. 아차, 바닐라꽃이다. 마녀는 건망증에 좋은 깜빡깜빡 호박잼 만들기에 나선다. 발랄한 상상력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가 사랑스럽다. 산타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이브에 감기 몸살로 앓아눕는다면 어떻게 될지, 아가들이 실제 걱정할(?) 수도 있을 법한 상황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숲 속 동물들과 마녀의 다채롭고도 생생한 표정은 웃음을 선사한다. 단숨에 읽기보다는 에피소드별로 중간에서 읽기를 멈추고 이후 이야기를 상상해 보면 놀이처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책고래아이들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며칠간을 쏟아지는 로켓탄 공격 아래서 보냈다.(중략) 한 시간가량 끊기지 않는 인터넷을 이용해 숙제를 끝낼 수 있었고 남부끄럽지 않은 점수를 받았다. 내게는 전형적인 한 주였다.’ 아프가니스탄의 한 학생이 대규모 공개 온라인 수업인 무크(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 수강을 마친 후 강의를 한 세바스천 스런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에게 보낸 e메일이다. 2011년 스탠퍼드대에서 시작된 무크는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를 포함해 미국 유명 대학으로 빠르게 번졌다. 의지와 인터넷만 있으면 어디서든 미국 명문대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무크에 세계는 열광했다. 하지만 빛이 있는 곳엔 그림자도 있기 마련. 수강생의 중도 포기율이 90%가 넘고, 영어라는 언어 장벽이 있는 데다 인터넷 장비가 없는 오지는 아예 접근이 불가능했다. 한 강의당 수강생이 수만 명에 달하다 보니 평가도 단답형, OX 등 쉽게 채점 가능한 문제 위주로 출제됐다. 댓글로는 깊이 있는 토론이 힘들었다. 논란이 격화될 때는 직접 경험해 보면 모든 게 명확해진다. 교육평가 분야에서 일해 온 저자는 행동에 나섰다. 철학 전공에 필요한 모든 수업을 단 1년 만에 무크로 이수하는 자칭 ‘자유학위 1년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저자의 학부 전공은 화학이다). 그 과정을 블로그에 연재한 뒤 책으로 묶었다. 무크의 탄생부터 개발 과정과 장단점까지, ‘무크의 A부터 Z’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무크가 뭐지?”라고 묻는 이의 손에 쥐여주기에 딱 좋다. ‘자유학위 1년 프로젝트’ 결과, 저자는 미국철학협회 콘퍼런스의 칵테일 모임에서 발표한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토론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무크의 가능성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저자는 강의에 대한 경험도 담았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다룬 ‘트로일로스와 크레시다’ 강의에 등장한 아킬레스와 ‘고대 그리스 영웅’ 강의에서 다룬 아킬레스가 비슷하지 않은 것을 저자가 궁금해하자 다른 수강생들은 셰익스피어가 희곡을 쓸 당시 아킬레스에 대해 있었을 법한 자료의 역사적 의미를 알려줬다. 하지만 저자의 경험은 너무 조금 소개돼 아쉬움이 남는다. 온라인 강의의 한계를 무크 역시 극복하지는 못했다. 기존 대학을 대체하기 힘들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그 대신 대안교육이나 학습자료로 활용될 여지는 높다. 몽골 고등학생인 바투식 먕간바야르가 MIT 무크를 상위 1% 성적으로 이수한 경험을 바탕으로 MIT에 합격할 수 있었다. 스탠퍼드대 대학원생이 직접 그를 지도해 가능한 일이었다. 젊은층이 아닌 고학력 중장년층이 주요 수강생이라는 점은 평생교육 프로그램으로서 무크의 역할을 보여준다. 주목할 점은 무크가 던진 화두다. 이 시대 대학이 제공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엄청난 액수의 등록금을 감수하고 치열한 경쟁 끝에 손에 쥔 졸업장은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가. 대학, 더 나아가 교육의 방식과 의미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만든 건 무크가 이뤄낸 가장 강력한 성과가 아닐까.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응당 그랬어야 했건만 다른 문화들을 좀 더 폭넓게 여행하고 경험하지 않았다는 점도 아쉽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정신과 전문의 올리버 색스는 삶을 돌아본 에세이 ‘고맙습니다’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어디로 갈지 찾아보는 이가 많다. 수많은 곳을 누비고 여행 에세이를 펴낸 ‘여행 고수’들은 원하는 여행이 어떤 것인지부터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레포츠, 휴식, 추억…방점은 어디? 사람마다 누리고 싶은 것은 제각각이다. 레포츠를 원할 수도 있고 그저 푹 쉬고 싶어 할 수도 있다. 김명철 작가(‘여행의 심리학’)는 “외향성, 우호성, 성실성, 개방성, 정서적 안정성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여행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를 쓴 태원준 작가는 레포츠를 좋아하면 라오스 방비엥을, 휴식을 원하면 태국 방콕을 추천했다. 태 씨는 “방비엥은 산과 강에서 고무튜브를 타는 튜빙과 철사를 몸에 연결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집라인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며 “방콕은 낮에는 카페에서 더위를 식히고 저녁에는 노천 주점과 맛집을 누비기 좋다”고 말했다. 가족 여행지로는 대만 타이베이를 권했다. 음식이 한국인 입맛에 잘 맞고 야시장과 쇼핑센터가 많아 남녀노소 모두 즐길 거리가 많다는 것.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의 저자 정지우 씨는 “여름엔 충북 단양군 일대의 삼림욕장이 바닷가보다 덜 붐빈다”고 귀띔했다. 낯선 이와 어울리기를 좋아한다면 게스트하우스나 에어비앤비, 카우치 서핑(현지의 빈방을 무료로 이용)을 이용해 볼 만하다. 단, 여성 홀로 에어비앤비나 카우치서핑을 이용한다면 혼자 사는 여성 호스트에게 요청하는 것이 안전하다. 아이와 여행한다면 ‘가족친화적’이라고 소개한 호스트에게 가는 것이 좋다.○ 욕심 버리면 즐거움이 쑥 정확한 정보를 알려면 ‘손품’을 팔아야 한다. 최미선 작가(‘사랑한다면 이탈리아’)는 “사람마다 평가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맛집, 숙소, 관광지에 대해 여러 인터넷 후기를 비교해 봐야 보다 객관적인 상황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날씨는 여행의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 위키피디아에는 도시별 날씨가 상세하게 나온다. 장은정 작가(‘나 홀로 제주’)는 “여행하는 나라의 기상청과 관광청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날씨는 물론 검증된 알짜 정보를 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방문지와 관련된 영화를 보거나 역사·문학·예술책을 읽으면 감동은 배가된다. 정지우 작가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사랑, ‘인투 더 와일드’는 청춘,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은 황혼을 각각 여행과 결부시키며 탐구해,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불멸의 산책’(장 크리스토프 뤼팽), ‘유럽 문화 기행’(위치우위), ‘인도 방랑’(후지와라 신야)은 깊이 있는 사유가 녹아 있다”고 소개했다. 일정에 얽매이지 말고 욕심을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최미선 작가는 “천천히 다녀야 마음에 남는 곳을 발견하기 때문에 파리, 로마, 피렌체 등 도시에서는 버스나 전철을 거의 안 타고 걸어 다닌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한국인이 즐기는 간식 ‘치맥’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한국인이 “다음에 커피 한잔해요”라고 말할 때 ‘다음’은 과연 언제일까. 외국인이 궁금하게 여기는 한국인의 일상을 세밀하게 소개한 책 ‘K-Style’(디자인하우스·3만 원)이 나왔다. 저자는 최정화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교수이자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 이사장.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프랑스어판을 출간한 데 이어 최근 영문판이 나왔다. 돌잡이와 한국식 나이 셈법을 비롯해 부모는 물론 조부모까지 3대가 참석하는 초등학교 입학식 풍경 등 한국의 독특한 문화를 풀어냈다. 문화비평가인 기 소르망이 집필 과정에 여러 조언을 했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을 비롯해 배병우 양현모 최수연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을 실었다. 제호는 강병인 한글 캘리그래퍼가 썼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초등학교 6학년이 돼 처음 ‘주번 완장’을 찼을 때가 기억난다. 등교할 때 질서 지도를 하던 게 다였지만 어쩐지 어깨가 쭉 펴졌다. 그런 게 완장의 힘이었나 보다. ‘프랑스 대통령의 모자’(앙투안 로랭 지음·양영란 옮김·열린책들)는 198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미테랑 당시 대통령의 모자를 주운 사람들의 ‘자신감 승천 소동’을 코믹하게 그렸다. 대통령이 단골 식당에 두고 간 모자를 갖게 된 재무 담당 직원은 회사에서 의견을 적극 개진하며 승진한다. 그가 깜빡 잊고 기차에 놓고 내린 모자를 손에 넣은 이는 작가로 데뷔하고, 다시 공원에서 모자를 주운 이는 신비한 향수를 만들게 되는데…. 잠재력을 끄집어내는 무언가는 제각각이다. 가족의 격려, 친구나 선후배 혹은 스치듯 만난 이의 한마디일 수 있다. 톡 건드려주면 자신감이 뿜어져 나오게 만드는 마법의 열쇠는 어쩌면 가까이 있는지 모른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진짜 뭐 없을까? 글쎄, 음, 고드름? 그걸로 어떻게 사람을 죽여? 새끼야, 고드름 그거 되게 뾰족해. 너도 공부 좀 해라. 씨발, 손 시리게 고드름은.’ PC방에서 살인 사건 뉴스를 본 고등학생 3명이 범행 도구를 찾을 수 없는 살인을 상상하다 엉뚱한 일에 휘말린다. 누가 누구인지 표기도 없다. 오직 대화로만 이어져 한 편의 연극을 보듯 빨려 들어가면 웃음이 빵빵 터진다. 단편 ‘고드름’이다.‘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등 영화 원작 소설로 알려진 김려령 작가(45)가 첫 단편소설집 ‘샹들리에’(창비)를 펴냈다.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16일 만난 그는 나이보다 훨씬 앳돼 보였다. 》○ “억눌러 온 것 모아 터뜨려” 책 제목은 7개 단편 중 하나에서 따오지 않고 그가 직접 지었다. “여러 개의 전구가 모여 하나를 이루는 샹들리에처럼 일곱 개 삶의 빛이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는 의미를 담았죠.” 청소년 소설이지만 성인이 봐도 단숨에 읽힐 정도로 흡인력 있고 탄탄하다. 집에서 일어난 찰나의 사고로 엄마를 잃은 이야기인 ‘이어폰’, 청소년 성폭력을 그린 ‘아는 사람’은 사실적이어서 가슴이 뻐근해진다. 작가는 20대의 두 자녀를 둔 어머니이기도 하다. “아동, 청소년 장편을 많이 쓰다 보니 스스로 금기시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때마다 단편을 쓰며 풀었어요. ‘아는 사람’은 성범죄자 대부분이 아는 사람이라는 점에 착안한 건데, 쓰면서 너무 아팠어요. 억눌렀던 걸 차곡차곡 담아냈다 터뜨린 게 ‘샹들리에’예요.” ‘그녀’ ‘미진이’ ‘만두’ 등에 나오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못마땅한 것 투성이다. 하지만 가슴에 쌓아두지 않는다. 툴툴거리고 욕하다 등짝을 얻어맞더라도 말로 다 뱉어낸다. 아이들이 모두 발산하는 캐릭터라고 말하자 그의 얼굴이 활짝 펴지며 목소리가 높아졌다. “딱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거예요. 10대 때는 아주 작은 게 고민이 되고 그래서 아픈 거잖아요. 그걸 말하라고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혼난다면 그건 혼내는 어른이 잘못한 거라고요.”○ “와서 딱 붙는 이야기 풀어내” 주인공들이 툭툭 뱉어내듯 말하고, 낄낄대며 장난치고, 때로 짜증내는 모습은 실제 10대를 보는 것 같다. 이런 감각은 어떻게 유지할까. “전철, 버스를 자주 이용하고 분식집에서도 아이들을 관찰해요. 재래시장도 수시로 가고요. 완득이 엄마도 시장에서 본 이주 노동자의 모습에서 모티브를 얻은 거예요.” ‘가시고백’ ‘너를 봤어’ ‘트렁크’ 등 독자를 사로잡는 작품을 꾸준히 써 온 그는 천생 이야기꾼이었다. 그는 오빠, 언니를 둔 삼남매 중 막내로, 쿵푸 유단자를 꿈꾸고 엄마가 슈퍼마켓 주인이 되기를 소망했던(자신이 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았단다) 소녀였다. 말을 얼마나 차지게 이어가는지 두 시간이 훌쩍 지난 것도 몰랐다. “생활에서 본 소재 가운데 딱 달라붙는 게 있어요. 그걸 글로 써요. 이야기가 저를 끌고 가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인위적으로 덤벼서 쓰려던 건 다 실패했어요.” 그는 ‘작가’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이 너무 커 버겁다며 스스로를 ‘글 좀 잘 쓰고 싶은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겸손이 아니라 겁이 많은 거예요. 책이 나올 때는 어떤 반응일까 늘 무서워요. 하지만 글을 쓸 땐 가장 자유롭고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어요. 모두 내 세상이죠.” 그러고는 특유의 시원스러운 웃음을 깔깔 날렸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손에 꼭 쥔 채 놓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한데 누군가가 억센 힘으로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낸 후 그걸 가져가 버리는 것 같은 일을 겪을 때가 있다. 손아귀에 힘을 줘도 버티기엔 역부족이다. 그림책 ‘빗방울이 후두둑’(전미화 지음·사계절)을 펼치면 거센 바람과 사납게 쏟아지는 비에 우산을 들고 버티는 여성이 보인다. 뛰어가는 사람들을 따라 달려가지만 우산은 금세 뒤집히더니 급기야 부러져 버린다. 여성은 결심한다. ‘에라 모르겠다! 천천히 걸어가자.’ 그제야 여름 소나기가 시원하게 느껴진다. 원색으로 큼직큼직하게 붓질한 그림이 후련함을 선사한다. 놓는 건 쉽지 않다. 그게 무엇이 됐든. 어쩔 수 없이 놓아야 한다면 그 뒤에 오는 감정을 찬찬히 마주해 보자. 속상함이든 안타까움이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언젠가 편안함이란 게 슬며시 따라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된 거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당신의 목소리와 머릿결의 감촉을 떠올리면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때가 있어요. 당신 방으로 찾아가고픈 그런 밤입니다.”(마거릿 미드·1901∼1978) “너의 사랑 속에서 행복할 때는 노래를 해. 우울할 때도 너의 사랑 때문에 세상이 여전히 살 만하고 말이야.”(루스 베네딕트·1887∼1948)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인 두 여성은 이렇게 사랑을 속삭였다. 나이 차(베네딕트가 미드보다 14세 많았다)도, 남편들의 존재도 상관없었다. ‘국화와 칼’ ‘문화의 패턴’으로 유명한 베네딕트와 ‘세 부족 사회에서의 성과 기질’ ‘마누스족 생태연구’ 등을 쓴 미드는 스승과 제자이면서 친구처럼 의지했다. 저자는 두 사람의 편지와 서류 등 방대한 자료를 분석해 성장기와 연구 과정은 물론이고 연애 및 결혼 생활까지 꼼꼼하게 정리했다. 이들의 학문적 성취뿐 아니라 내밀한 속마음과 상처까지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다. 홍역으로 한쪽 귀의 청력을 잃은 베네딕트는 수줍음이 많았다. 미드는 신경질적이고 차가운 부모보다는 자상한 할머니를 따르며 쾌활하게 자랐다. 자유연애 사상이 번졌던 당시, 미드는 남성은 물론이고 여성들과도 동시에 사랑을 나눴다. 결혼 중에도 여러 여성과 연애를 했고,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베네딕트 역시 남성과 함께 미드도 사랑했지만 동시다발적으로 거침없이 사랑을 발산하는 미드에게 질투를 느꼈다. 하지만 결국 이를 극복하고 서로에게 자유를 준다. “난 있는 그대로의 널 온전히 사랑해”라며. 성적인 매력뿐만 아니라 학문적, 인간적 유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관계였다. 미드를 문화인류학으로 이끌고 그의 성공을 도운 이도 베네딕트였다. 둘은 남성을 배제하는 여성운동에는 비판적이었다. 인류학과를 실질적으로 이끈 베네딕트 자신도 남성 교수 전용 식당조차 들어가지 못하던 상황이었지만. 1940년 소설가 펄 벅이 베네딕트에게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행동에 나서라고 촉구하는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하지만 인종주의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대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많은 민족을 만났고, 전통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부족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두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의 세세한 발자취를 따라가는 과정은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지만 역작이 탄생했던 과정을 속속들이 지켜볼 수 있다. 남태평양 사모아 제도의 마누아에서 눈병이 나고 벌레에게 뜯기며 습한 날씨에 지친 미드가 “다 때려치우고 지하철에서 동전이나 주워야겠어요”라며 베네딕트에게 호소하는 모습에서는 학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가 느껴진다. 베네딕트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자 미드는 베네딕트의 연구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그가 지도하던 대학원생도 맡는다. 미드는 베네딕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받은 그 완벽한 사랑은 절대로 갚을 수 없을 겁니다.” 베네딕트 역시 미드를 통해 지적 자극을 받아 더 큰 성공의 길로 나아갔음은 물론이다. 치열하게 연구하고 남성과 서로를 함께 사랑한 두 사람의 삶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때론 숨이 가빠질 지경이다. 이들이 발산했던 어마어마한 에너지의 크기를 가늠하기가 어렵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인터넷을 통해 얻은 단편적이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지식이 진리라고 믿는 태도가 극단주의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미국 올랜도에서 벌어진 총기 참사는 극단화되고 있는 사회의 슬픈 단면입니다.” 인식론 분야의 석학인 마이클 린치 미국 코네티컷대 철학과 교수(사진)는 ‘인간 인터넷’(사회평론) 출간을 기념해 15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현실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인간 인터넷’을 사람들이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 안으로 편입된 시대라고 정의했다.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된 시대가 지나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기능이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예견했다. “은유가 아니라 실제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인간의 뇌에 전극을 꽂아 인터넷에 접속하는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터넷을 통한 지식에 의지하면서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지식만을 받아들임으로써 열린 태도도 사라져 민주주의도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너무나 많이 알고 있지만 세상과 서로에 대한 이해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인터넷 시대의 역설입니다.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합리적인 근거가 무엇인지 요구하고 스스로도 이를 찾아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는 인터넷의 도움 없이 정보를 찾아보거나 그런 경우 어떤 방법이 가능할지 상상해보는 훈련을 해보라고 조언했다. “당연하게 여긴 것에 의문을 갖게 되고 ‘진짜 지식’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여지를 준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앎의 방식입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메일을 포함해 연락이 엄청 많이 왔어요. 며칠 동안 시끌벅적했죠. 딱 거기까지였어요. 달라진 건 없어요. 똑같이 집에서 책을 읽고 번역하고 있답니다.” ‘채식주의자’를 번역해 한강 작가와 함께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데버러 스미스 씨(29)는 1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차분하게 영어로 말을 이어갔다. 한국문학번역원 초청으로 이날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한 그는 “내 번역이 인정받은 건 기쁘지만 행운도 함께했다. 맨부커상은 작가와 번역가뿐 아니라 편집자, 에이전시의 공동 작업이 이룬 성과”라고 강조했다. “‘채식주의자’를 읽자마자 강렬한 이미지와 시적인 분위기에 사로잡혔어요. 3명의 화자가 등장하는 연작 소설 형식도 영국에는 없는 개념이라 더 신선하고 매력적이었어요.” ‘채식주의자’에 일부 오역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익숙한 표현이 늘어나면 오역의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답했다. “완벽함은 번역가들이 결코 이룰 수 없지만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입니다. 원작의 핵심적인 의미에 충실하려 노력했습니다.”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소주’, ‘만화’를 편집자는 ‘코리안 보드카’ ‘코리안 망가’로 표현하자고 했지만 한국어 발음 그대로 썼다. ‘채식주의자’ 이후 번역한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서도 ‘형’ ‘언니’를 그대로 옮겼다. “일본의 ‘스시’, ‘센세이(선생)’ 등을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써도 세계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한국의 단어 역시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해서 다른 나라 어휘를 이용해 번역하지 않았어요.” 그는 ‘김보라’라는 한국 이름을 갖고 있다. 노벨문학상에 대한 한국인의 높은 관심에 대해서는 당황스러워했다. “작가가 좋은 작품을 쓰고 독자가 즐기면 그 자체가 작가에게 보상이 되는 것 아닌가요? 상은 상일 뿐이에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만큼 번역이 아니라 직접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은 없을까. “번역가는 인물, 이야기, 배경을 구상하지 않아도 돼 다행이에요(웃음). 작가는 글을 쓰다 막히는 경우가 많지만 번역가는 10시간 일하면 어느 정도 분량의 작업을 할 수 있을지 예측 가능한 게 좋아요.” 그는 단기간에 한국어를 익힐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확실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할 줄 아는 외국어가 한국어뿐이라 외국어 습득 능력이 뛰어난지는 모르겠어요. 좋은 작품을 더 빨리, 더 많이 읽고 싶다는 강렬한 동기가 있었던 게 주효했던 것 같아요.” 그는 지난해 설립한 출판사 ‘틸티드 액시스’를 통해 아시아의 현대 작가 작품을 주로 번역해 출간할 예정이다. “한강 작가의 다른 작품이 번역되기를 기다리는 영국 독자들이 많아요. 다른 한국 작가의 작품이 궁금하다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답니다. 배수아 작가의 작품이 올해 10월, 내년에 차례로 나와요. 한유주 작가의 글도 내년에 출간하고요. 1년에 최소 한 권 이상 한국 작가의 책을 낼 겁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2016서울국제도서전이 15∼1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다. ‘책으로 소통하며 미래를 디자인하다’를 주제로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독일 등 20개국 346개 출판사가 참여한다.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맞아 프랑스가 ‘컬처 포커스’ 국가로 참가한다. ‘프랑스 대통령의 모자’를 쓴 소설가 앙투안 로랭, 탈북자의 여정을 그린 ‘열한 살의 유서’를 출간한 세바스티앙 팔레티, 요리책 ‘페랑디 요리 수업’에 참여한 셰프 앙투안 셰페르스가 한국 독자를 만난다. ‘스포트라이트 컨트리’인 이탈리아는 아동문학을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율리시스 무어’의 저자 피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는 이야기를 다방면에 걸쳐 빠른 속도로 전개하는 방식을 들려준다.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는 한국 문화의 세계화에 대해 논의한다. 문학살롱에는 ‘올해의 주목할 저자’로 선정된 신달자 시인을 비롯해 이문열 구효서 은희경 정유정 권비영 이기호 신현림이 참여해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이수지 한성옥 등 그림책 작가도 만날 수 있다. ‘훈민정음 반포 570주년 특별전: 1446년 한글, 문화를 꽃피우다’에서는 한글꼴 변천사를 소개한다. ‘구텐베르크 특별전’에서는 구텐베르크 박물관이 소장한 필사본과 고판본을 볼 수 있다. 2016디지털북페어코리아도 같은 기간 함께 열린다. ‘디지털4.0 시대, 미래 사회에서의 출판 콘텐츠 확장’을 주제로 콘퍼런스를 개최한다. 성인 5000원, 초중고교생 3000원.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시각장애인 체험을 한 적이 있다. 흰 지팡이로 장애물을 확인할 수 있는 데다 숙련된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곁을 지켰지만 눈을 가린 순간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었다. 앞에 벽이 있는 것 같은 착각에서 벗어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가운데 외부 정보의 80∼90%를 시각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이토 아사 지음·박상곤 옮김·에쎄)는 시각장애인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공간 인식법, 신체 사용법, 의사 소통법을 분석했다. 이들은 신발 바닥에서 느껴지는 진동을 통해 지하철의 급정거 여부를 예측하고 커피숍에서 주변 소리를 통해 화장실의 위치도 파악한다. 달은 다양한 모습으로 상상한다. 당연하게 인지했던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모습일 수 있음을 세세하게 알게 됐다. ‘다름’에 대해 또 하나 배웠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노동자를 대변하고 특권층과 권력에 맞선 언론 자유의 수호자. 선정적 기사 경쟁으로 ‘황색 저널리즘’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권력자. 상반된 캐릭터를 지닌 이는 동일한 인물, 조지프 퓰리처(1847∼1911·사진)다. 미국 기자라면 한 번쯤 꿈꾸는 퓰리처상을 만든 그의 삶은 지극히 이중적이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상당수가 처한 상황에 따라 행동이 확연히 바뀐다는 걸 고려한다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저자는 수년간 집요하게 퓰리처의 삶을 추적했다. 헝가리 출신 유대인인 퓰리처는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취재력과 감각적인 기사로 이름을 날린다. 명문가의 딸인 케이트 데이비스와의 결혼은 그가 사업가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심장을 바칠 신문사’ 인수를 꿈꾸었던 그는 결국 뉴욕의 일간지 ‘월드’를 손에 쥔다. 언론의 자유로운 비판 기능은 정치적 경제적 독립에서 비롯된다는 걸 잘 알았던 그는 시민들이 호응하는 기사를 적극 배치하며 신문사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킨다. 남편을 잃고 굶주림에 시달리던 여성이 갓난아기와 두 살배기 딸을 강에 던져버리고 투신한 사건을 1면에 올린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 그 자체였다. 탄탄한 경영을 바탕으로 ‘월드’는 부패한 기업인과 정치인에게 가차 없이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부와 권력을 거머쥐자 그는 바뀌었다. 약자 중의 약자인 신문팔이 소년들이 도매 가격을 낮춰줄 것을 요구하며 파업하자 경쟁사와 담합해 이를 짓밟는다. 미국과 스페인 간의 전쟁을 부추기는 보도도 일삼았다. 언론 자유를 부르짖던 유능한 기자이자 경영인이 부와 권력, 무너진 건강(시력을 잃고 온갖 통증으로 고생한다) 앞에서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존재로 변해가는 과정을 치밀하고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이 같은 인간의 다면성과 근대 언론사 및 미국사까지 아우르는 노작이다. 미국에선 2010년 출간됐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의 역사적 인물을 다룬 책 베스트5’에 선정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강남 화장실 살인 사건 피해 여성에 대한 추모는 역사적인 일입니다. 여성 살해는 숱하게 일어났지만 여성들이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냈으니까요.” 4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일본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上野千鶴子·68) 도쿄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국 사회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리쓰메이칸대 교수이기도 한 그는 “가해자의 정신질환도 원인이지만 약자인 여성을 공격했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매도한다”며 항의하는 남성들과 추모자 간에 몸싸움까지 벌어진 건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남성들이 하나로 결속된 게 아니라면 여성에게 입을 다물라고 할 게 아니라 폭력적 남성에게 그만하라고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 혐오의 구조를 통찰한 그의 저서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012년 출간)는 최근 2주간 3000여 권이나 판매되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날 마포구립 서강도서관에서 열린 강연에는 100명 모집에 500명이 넘게 신청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여성 혐오(misogyny)는 사회 구조가 남성 간의 유대로 이뤄지는 데서 비롯된다. 남성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에게 인정받아야 스스로를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성은 이 구조에서 배제되고 남성이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대상이 된다. “여성 혐오는 너무 오래 계속돼 누구도 쉽게 벗어날 수 없습니다. 공기와 중력처럼요. 이 구조를 깨려면 여성은 부당한 상황을 참지 말고 용기를 내 말해야 합니다.” 군복무, 가장으로서의 책임 등으로 남성도 살기 힘들다고 호소한다.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여성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운동을 해왔듯이 남성도 나서야 합니다. 남성의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남성 자신입니다. 단, 여성을 탓하고 공격하는 방법은 옳지 않습니다.” 위안부 배상금을 둘러싸고 한국에서 갈등이 고조되는 현상에는 일침을 가했다. “피해자끼리 싸우게 만든 아베 정권의 노회한 행동입니다. 한국 정부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일본 정부와 합의한 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일본 정부에 어떻게 하면 충분한 사과가 되는지 한국 정부가 정확히 요구해야 합니다.” 그는 일본의 우경화를 우려하면서도 집단 자위권을 행사하게 한 안보법 개정에 반대하며 젊은층을 중심으로 벌어진 시위에서 희망을 발견했다고 한다. “아베는 ‘일본의 도널드 트럼프’입니다. 헌법 개정, 원전 재가동 등 국민의 기대와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투표 연령을 만 20세에서 18세로 낮춘 후 처음 실시되는 다음 달 참의원 선거에서 변화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는 페미니즘은 여성이 남성만큼 강해지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인간은 아기라는 약한 존재로 태어나 노인이라는 약한 존재로 죽음을 맞습니다. 약한 사람이 약한 그대로 존중받는 것, 그게 페미니즘입니다. 사랑은 존중하고 또 존중받는 것입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벌써 왔어요? 진짜 빠르네요!” 지난달 31일 오후 4시경 서울 관악구의 한 아파트. 문을 열고 나온 중년 여성은 책을 보자마자 활짝 웃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이날 책을 주문해 받은 것. 기자가 택배회사 SLX의 강종원 기사(36)와 함께 한 당일 배송 현장은 분초를 다퉜다. 그는 관악구 내 난곡 등 6개 동에서 하루 평균 60여 건, 많게는 70여 건을 처리한다. 그는 “동선을 잘 짜서 한 건당 걸리는 시간이 평균 5분을 넘지 않도록 한다”고 말했다.○ 빨리, 더 빨리 올해 3월 알라딘, 예스24, 인터파크는 당일 배송 주문 마감 시간을 서울은 오후 2시에서 3시로 늘리는 등 지역별로 1시간씩 확대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당일 배송은 알라딘이 2006년 국내 처음으로 도입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이후 유통업계 전반으로 확산됐다. 이날 경기 파주시 알라딘 물류센터에는 부산, 광주 등의 마감 시간(낮 12시)이 다가오자 오전 11시 50분부터 “전 지역 집책(集冊·책을 고르는 작업) 되는 대로 바로 갖고 오세요” “부산부터 포장하세요”라는 안내 방송이 2, 3분 단위로 이어졌다. 11t 트럭에 실린 1500여 개 박스는 오후 1시 반경 SLX 광명물류장에 도착해 관악구, 동작구, 안양시 등 지역별로 분류돼 1t 트럭에 실렸다. 관악구의 중학교, 복지관 배송은 일찌감치 마쳤다. 사무실은 직원들이 퇴근하기 전인 오후 6시 이전에 도착하도록 동선을 짜는 게 필수다. 경쟁 심화로 택배 기사들의 업무 강도가 더 높아졌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숨 가쁜 사회+급한 성격=당일 배송 신선 식품도 아닌 책을 당일에 받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일단 숨 가쁘게 돌아가는 사회 구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회사원, 학부모 등은 급하게 책이 필요한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알라딘이 소개한 고객 반응이다. “급히 보고서를 써야 했는데 서점 갈 시간이 없어 난감했어요. 당일 배송으로 무사히 해결했답니다.”(회사원) “아이가 학교에서 급하게 필요하다는 책을 인근 도서관에서 찾아보니 모두 대출됐더라고요. 당일 배송 주문을 했죠. 정말 요긴했어요.”(학부모) 알라딘에 따르면 고객만족도지수는 올해 2월 62점에서 주문 시간을 확대한 후인 5월 65로 뛰었다. 조선아 마케팅팀 과장은 “1점 올리기가 정말 어려운데 3개월 만에 3점이나 오른 건 엄청난 폭의 증가”라고 설명했다. 한국인 특유의 급한 성격도 영향을 미친다. ‘느리게 더 느리게’ ‘느리게 걷는 즐거움’과 같은 책을 주문하면서 빨리 오지 않는다고 독촉하는 아이러니가 종종 벌어진다. 당일 배송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이유를 물으니 “아침에 주문한 책이 저녁에 와 있으면 기분이 좋다”, “갑자기 읽고 싶은 책을 그날 바로 볼 수 있어서 편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편리하고 빠른 서비스에 더욱 익숙해지고 있는 한국인의 성향이 당일 배송 확대에 영향을 미친 측면이 있다”며 “서점이 빠른 배송 외에도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더욱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주·광명=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오로지 자기 것만 챙기고 손톱만큼도 손해 안 보려고 해요. 그런데 하는 일마다 다 잘돼요. 자식들까지 명문대에 척척 붙었다니까요.” 지인이 회사 동료에 대해 말했다. 이어 “그러고 보면 선하게 살아야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그렇다. 인생은 공덕과 비례하지 않는다. 소설, 영화, 드라마에서 숱하게 변주되는 ‘권선징악’에 열광하는 건 일종의 판타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7개의 단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특별한 잘못이 없는데도 고통 속에 내던져진다. 화자의 시이모는 남동생이 빚 때문에 감옥에 갈 처지가 되자 대기업을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빚을 갚아야 했다. 이후 어머니가 몰래 자신의 이름으로 남동생의 보증을 서 빚더미에 휘말린다(‘이모’). ‘봄밤’의 수환은 어떤가. 스무 살부터 쇳일을 시작해 철공소를 차리지만 거래처의 횡포로 부도를 맞고, 재산을 빼돌린 아내는 잠적한다. 교사였던 영경은 전남편에게 아이를 뺏긴 후 알코올의존증 환자가 된다. 수환과 영경은 우연히 만나 부부가 되지만 수환의 류머티즘 관절염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사진을 배워서 찍고 싶어.” 관주는 여자친구 문정의 말에 카메라를 사주겠노라고 약속한다. 카메라는 문정의 손에 쥐어지지만 관주가 치러야 할 대가는 가혹했다(‘카메라’). 이들의 곁을 지키는 건 술이다. 커피 잔에 소주를 따라 마시고, 맥주 한 캔에 소주 두 병을 조금씩 섞어 30분도 안 돼 마셔 버린다. 보드카, 와인, 위스키까지. 술병은 뻥뻥 열린다. 꾸역꾸역 살아가게 만드는 숨구멍처럼. 제목 ‘안녕 주정뱅이’는 이들을 향한 위로처럼 들린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무심코 보아버린 한 장면이 인간을 꼬꾸라뜨리는 모습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애처롭지만 축축 처지지는 않는다. ‘이모’ ‘카메라’ ‘층’ ‘역광’ 등은 반전을 지닌 탄탄한 구조로, 책장을 넘기는 데 가속도가 붙는다. 술자리에서 먼저 일어선 적이 없다는 작가의 술 사랑도 찐득하게 스며 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한정된 시간은 삶을 곱씹어 보게 만든다. 지난해 82세로 세상을 떠난 신경과 전문의 올리버 색스가 생의 막바지에 남긴 에세이 4편을 담은 ‘고맙습니다’(원제 ‘Gratitude’·김명남 옮김·알마)는 자서전 ‘온 더 무브’를 64쪽으로 압축한 듯하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등 10여 권의 베스트셀러를 내고 신경 장애 환자를 몸과 마음을 다해 치료하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모국어 외에 다른 언어를 할 줄 모르고 다른 문화를 폭넓게 경험하지 않은 점이 아쉽단다. 원소주기율표를 사랑한 그는 수수한 회색 금속 비스무트(83번 원소)를 특히 좋아했지만 83이라는 나이는 끝내 맞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가장 강하게 느낀 감정은 고마움이었다.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읽을 때마다 매번 가슴이 묵직해지는 말이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