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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북한이 18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했다고 러시아 법무부가 밝혔다. 이 조약의 체결에 따라 러시아에 벌목공으로 파견 나왔다가 작업장을 탈출해 숨어 있는 수천 명의 북한 근로자가 북송돼 가혹한 처벌을 받을 위험에 직면하게 됐다. 러시아 법무부에 따르면 방북 중인 알렉산드르 코노발로프 법무장관은 최근영 북한 최고재판소 제1부소장과 형사공조 분야 주요 협정인 ‘형사사법공조 조약’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17일 체결했다. 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라 양국은 ‘사람의 소재 또는 동일성의 확인’ ‘서류, 그 밖의 기록 및 정보의 제공’ ‘증거물의 제공’ ‘부동산 수색을 포함한 자산의 수색 및 압수’ 등을 공조하게 된다. 범죄인 인도조약은 형사 범죄를 저지른 자가 다른 나라로 도주했을 경우 그 나라에 범인 체포와 인도를 요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요즘 북한 매체들은 지난달 평양 대동강변에 건설한 미래과학자거리와 과학기술전당을 두고 세상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것들이라고 입이 마르게 자랑하고 있다. 북한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한다. 내 보기에도 건물들이 크고 외관도 그럴듯했다. 이 거리를 건설하느라 전 국민은 물론 해외 파견 인력도 역대 최악의 수탈을 당하긴 했다. 하지만 “저 정도로 쥐어짜면 저런 규모의 거리를 만들 여력은 아직 북한에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 정도 능력도 없을 줄 알았다. 한국 언론은 ‘김정은의 무리한 치적 쌓기용 건설’이라고 평가절하한다. 틀린 비판은 아니지만 그것이 왜 하필 과학기술 분야일까 하는 점은 관심 밖인 것 같다. 나는 그 거리에서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김정은의 강열한 의지를 엿보았다. 김정일 사망 4개월 뒤인 2012년 4월 15일, 김정은은 자신의 시대를 선포하는 첫 공개 연설에서 ‘지식경제강국 건설’을 공언했다. 그때는 단지 홍보용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후 김정은의 행보를 보니 빈말은 아니었다. 2013년 은하과학자거리를 건설했고, 다음 해엔 은정과학자거리를 건설했다. 모두 과학기술자들을 위한 대규모 주택단지다. 이외 김일성대 교직원 아파트, 과학자 전용 휴양소 건설 등 사례는 많다. 왜 집만 지어 주냐는 궁금증도 당연히 있겠지만, 김정은이 자기 딴엔 과학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으로 보인다. 어쨌든 김정은 집권 4년 동안 과학자, 기술자들에게 쏟은 관심과 투자는 다른 분야에 대한 투자와 비교해 볼 때 너무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많다. 그렇다고 핵, 미사일 종사자들만 혜택을 받은 것도 아니다. 21세기가 지식 정보화 시대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과학 기술에 대한 김정은의 관심은 시대의 흐름과 일치한다. 지금은 인재 1명이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다. 얼마 전 중국에 가봤더니 해외 인재가 귀국하면 일시금으로 20만 달러를 주는 등 각종 파격적 혜택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한국도 근대화 흐름을 놓쳐 식민지가 되는 수모를 당했지만 이후 세계의 찬사를 받을 만큼 성공적인 산업화 사회를 만들었고, 지식 정보화 사회에도 비교적 잘 적응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최고 수재들이 너도나도 의대에 진학해 쌍꺼풀 수술이나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미래가 마냥 밝지만은 않다. 역사는 과학기술과 기업이 앞서 가는 나라는 항상 번영한다는 교훈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북한의 기업 환경은 어떤가. 이 부문도 믿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과거엔 개인이 기업을 운영하려면 국영기업 소속이란 외피를 써야 했지만, 올해부턴 독자적으로 사람을 고용하는 10명 미만 소기업 형태도 등장했다. 정말 빠른 변화다. 김정은의 과학기술 중시와 활발한 창업이 언제까지 계속될진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아무리 선견지명이 있다 한들 현재 환경에선 실패가 눈앞에 예고돼 있다. 북한은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이다. 인터넷도 없고 유학도 갈 수 없다. 전기 등 기초적 인프라도 안돼 있는 산업 환경에서 설사 획기적인 기술이 나온들 그림의 떡이다. 정말 지식경제강국을 만들고 싶다면 이제 김정은이 해야 할 최대 과제는 북한과 세계를 연결하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미션일까. 요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설이 솔솔 흘러나온다. 해외 정상이라고는 만나본 적이 없는 김정은에게 유엔의 수장이 찾아온다는 것은 엄청난 홍보 호재임은 분명하다. “김정은이 너무 위대해 유엔 사무총장도 머리 숙이고 찾아온다”는 식으로 선전할 순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라면 북한은 비전이 없다. 김정은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세계로 나가야 할 것이다. 내가 김정은이라면 할 수 있는 제안이 많을 것 같다. 가령 지구촌이 이슬람국가(IS)의 잔혹한 테러로 분노하면서도 정작 지상군을 보내겠다는 나라가 없는 현실에선, IS의 공격에서 가장 안전한 북한은 이런 제안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지상군을 파병해 서방국가를 도와 싸우겠다.”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테러 국가, 악의 축으로 인식돼 있는 북한의 이미지는 어떻게 변할까. 김정은에게도 지구촌의 슈퍼맨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중동 사람들이 코리아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 걸리긴 하지만, 설마 IS가 ‘노스’와 ‘사우스’를 구분 못해 북한이 기뻐할 일을 할 것 같진 않다. 물론 김정은에게 그럴 의지나 용기가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 총장이 방북한다면 김정은의 그릇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충돌이 18, 19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또 벌어졌다. 18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날 “남중국해에서의 인공섬 건설을 중단하라”고 중국에 촉구하자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곧바로 “인공섬 건설은 주권 행위”라며 받아쳤다. 또 중국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같은 날 사설에서 “중동이란 ‘말벌집’을 건드렸던 미국이 남중국해라는 또 다른 ‘말벌집’을 건드리려 한다”고 강력 비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국제법에 따라 해결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지난주 필리핀 정부는 중국을 의식한 듯 ‘APEC 회의에서 남중국해 문제를 언급 않겠다’고 했으나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태도를 바꿨다.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17일 필리핀에 도착하자마자 마닐라 만에 정박한 필리핀 해군 함정 ‘그레고리오 델 필라르’에 승선했다. 그는 이 함정 위에서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4개국의 해양안보 강화를 위해 미국이 총 2억5900만 달러(약 3263억 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처럼 양국의 군사동맹 의지를 강조한 것은 남중국해 문제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AP통신이 풀이했다. 중국도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남중국해에서 주변국들이 ‘불법 점거하고’ 있는 섬을 무력으로 빼앗을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류전민(劉振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17일 기자들 앞에서 “중국은 주변국가에 불법으로 침탈당한 도서와 암초를 수복할 권한과 능력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이 해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극도의 자제력을 발휘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는 중국이 현재 남중국해 문제에서 선의를 보이고 있다는 의미와 함께 앞으로 무력 동원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18일 중국은 남해 함대가 남중국해에서 군사훈련을 하는 장면을 공개하기도 했다. 중국 인민해방군 기관지 제팡(解放)군보엔 전투기가 활주로에 착륙하는 장면을 비롯해 조종사, 관제탑 표정 등이 담긴 사진이 실렸다. 중국 언론도 미국을 향해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환추시보는 사설을 통해 “파리 테러를 비롯한 유럽 혼란은 결국 미국 책임”이라며 “중동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미국뿐 아니라 전 유럽에 침투해 마드리드 런던 파리 등을 공격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말썽꾸러기가 유리창을 깨는 것과 비슷한 경솔하고 우악스러운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며 “중국이 이를 제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날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이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태평양 국가들이 대화와 협의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좁히자”라고 말했다. 하정민 dew@donga.com·주성하 기자}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이 이슬람국가(IS)격퇴 공동전선을 선언했지만 실효성이 의문이다. 지금까지 미국 주도의 동맹국들은 IS 근거지를 수천 차례 공습했지만 IS는 요지부동이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도 “공습만으론 IS 격퇴가 불가능하다”고 단정 지었다. 그 이유에 대해 IS에 인질로 잡혀 지난해 10개월 동안 잡혀 있으면서 수많은 IS 전사를 만나본 프랑스인 니콜라스 에냉은 16일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IS는 공습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6일 프랑스군이 IS의 수도 락까를 폭격했지만 더 많은 민간인이 사망할수록 ‘무슬림을 학살하는 서방의 기독교 적들’이란 선전 효과를 얻을 수 있어 자신들의 동조 세력이 오히려 늘어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 1년여의 공습으로 IS 대원 수천 명을 죽였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이상의 조직원이 새로 합세했다는 관측도 있다. 미국도 공습을 통해 IS가 점령한 영토를 탈환하기는 불가능하며 IS의 공세도 막기에 역부족이란 점을 인정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지난달 IS가 시리아와 국경 사이의 요충지인 코바니를 재탈환하기 위해 공세를 재개하자 “도시 안팎에서 집중적인 공습 작전을 수행하고 있지만, 공습만으로 코바니를 지켜 낼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시인했을 정도다. 공습 비용도 엄청나다. 공습 초기 6개월 동안 미군은 2320회의 출격으로 18억3000만 달러(약 2조1400억 원)를 썼다. 한 번 출격할 때마다 790만 달러(약 9억2000만 원)를 날리는 셈이다. 미 전략예산평가센터(CSBA) 소속 토드 해리슨 연구원은 “3만 달러짜리 픽업트럭 1대를 부수는 데 50만 달러를 투입한 셈”이라며 “공습 성과만 놓고 봐도 비용 대비 효율이 처참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지상군 투입 대신 이라크 정부군과 시리아 온건 반군을 훈련시켜 IS와 싸우게 하겠다는 전략도 비참할 정도로 실패하고 있다. 올 초 미국은 터키에서 1년 안에 시리아 온건 반군 5400명을 훈련해 시리아로 파병하겠다는 방안을 실행에 옮겼지만 모집 인원은 10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 마저도 훈련을 마치고 9월에 시리아로 돌아간 1진 70여 명은 도착하자마자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로 IS와 동맹관계인 ‘알 누스라 전선’의 공격을 받고 와해됐다. 같은 달 떠난 2진은 도착 첫날 알 누스라 전선에 자진 투항해 미군이 제공한 전투 차량 12대를 포함한 신형 무기와 탄약을 전부 넘겨주었을 정도다. 미국은 온건 반군 훈련 프로젝트를 위해 5억 달러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헛수고가 됐다. 미군이 훈련한 이라크군은 여전히 IS 깃발만 봐도 군 장비를 버리고 도주하기에 급급하다. 결국 IS를 격퇴할 지상군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실정에서 서방의 ‘IS 궤멸’은 여전히 요원한 꿈에 불과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13일 밤(현지 시간) 발생한 프랑스 파리 테러가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최고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44)의 직접 지시에 따라 치밀하게 계획된 테러였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또한 이번 테러는 IS 근거지인 시리아에서 기획됐고, 프랑스 인접국인 벨기에에서 준비를 마친 뒤 파리에서 실행에 옮겨진 것으로 전해졌다. 16일 AP통신에 따르면 이라크 정보당국은 테러 발생 하루 전인 14일 프랑스 등 서방 국가들에 보낸 긴급 공문을 통해 알바그다디가 IS 공습에 참가한 국가들과 이란, 러시아를 겨냥해 테러 공격을 지시했다는 첩보를 알렸다. 알바그다디는 자신의 조직원들을 향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IS와 싸우는 연합국 안에 들어가 즉각(immediately) 총격을 가하고 폭탄 공격을 시작하며 인질극을 벌일 것을 명령했다는 게 첩보의 내용. 이 공문을 입수한 AP는 테러 공격이 임박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언제 어디서 테러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내용은 빠져 있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프랑스 정보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AP에 “이런 수준의 경고는 언제나(all the time), 매일(every day) 받고 있다”고 말해 정보 가치가 떨어지는 첩보였음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복수의 이라크 정보당국 관계자들은 AP와의 인터뷰에서 테러범들이 IS 수도 격인 시리아 락까에서 작전 수행을 위한 훈련을 받은 뒤 프랑스로 들어갔다는 구체적인 내용도 프랑스 측에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프랑스 내 잠복 조직이 테러범들과 접선했고 테러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을 지원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번 작전에 가담한 인원은 모두 24명으로 이 중 19명은 공격에 참여했고, 나머지 5명은 병참과 계획을 담당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보도는 이브라힘 알자파리 이라크 외교장관이 1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시리아 사태 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들에게 “우리 정보당국은 유럽 국가와 미국 이란, 특히 프랑스가 곧 (테러 공격의) 표적이 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해 각국 정부에 전달했다”고 밝힌 것을 뒷받침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프랑스 파리 테러범들의 신분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숨진 7명 중 1명은 파리 근교에 살던 무슬림 출신 청년이며 시리아 국적의 다른 한 명은 지난달 난민들 사이에 뒤섞여 그리스 땅을 밟은 뒤 파리로 들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즉, 프랑스 내부에서 자라난 자생적 테러리스트와 이슬람국가(IS)가 파견한 테러범이 서로 공모해 동시다발 테러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유럽 각국이 우려했던 ‘테러분자의 난민 위장 입국’이 현실화하면서 일부 국가가 다시 난민 수용을 거부하는 등 난민 포용 정책에도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드러나는 테러범들의 신원 프랑스 조사 당국은 15일(현지 시간) 바타클랑 극장 테러 용의자 중 한 명은 파리에서 남쪽으로 25km 정도 떨어진 외곽에서 살던 알제리계 무슬림인 이스마엘 오마르 모스테파이라는 29세 청년이라고 발표했다. 당국은 테러범들이 자폭했던 극장 콘서트홀에서 잘려진 손가락으로 모스테파이를 테러범으로 특정했다. 모스테파이는 8차례의 범죄 전과가 있지만 수감 경력은 없다. 당국의 조사를 받은 그의 형은 “동생과 수년째 연락이 되지 않았는데, 그가 2010년경부터 극단적 이슬람 추종자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당국은 그가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몇 달간 시리아로 건너가 IS에 가담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극장에서 자폭한 테러 용의자 중 한 명이 모스테파이의 또 다른 형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축구 경기가 벌어지던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 외부에서 자폭한 범인은 시리아 난민 출신으로 확인됐다. 그는 지난달 2일 여러 난민과 함께 그리스 레로스 섬에 도착해 ‘아마드 알모하마드’라는 이름으로 여권을 발급받았다고 CNN은 전했다. 경기장 테러범의 지문과 이 여권의 지문이 일치한다는 것. 이 같은 사실은 난민으로 위장 입국한 테러범이 모스테파이와 같은 이민자 출신의 프랑스 국내 자생적 테러리스트들과 합작해 테러를 저질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서로 만나 테러 장소 선정과 실행 방식, 무기와 차량 보장 등 세세한 부분에서 협업했다. 당국은 벨기에에 숨어든 IS 조직도 이번 사건에 개입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바타클랑 극장에 범인들이 타고 온 검은색 폴크스바겐 폴로 승용차가 벨기에에 거주하는 프랑스인 남성이 빌린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프랑스 당국은 사건 직후 파리 외곽에서 테러범이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검은색 승용차를 발견했다. 차에는 AK 자동소총 3정이 버려져 있었다. 범행 차량이 테러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것은 테러범 일부가 살아서 현장을 빠져나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벨기에 당국은 테러 발생 직후 사건 용의자 7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지만 이들이 어떤 행위에 가담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유럽의 문 도로 닫히나 전 세계에 충격을 안긴 이번 파리 테러로 9월 시리아 출신 세 살배기 어린이 알란 쿠르디의 시신 사진이 공개되면서 대폭 열렸던 유럽의 난민 수용 문이 다시 닫히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폴란드의 콘라트 지만스키 EU 담당 장관은 14일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파리 참사 이후 EU 집행위원회의 난민과 이민자 재배치 계획을 이행할 수 없다”고 밝혔다. 난민 수용에 비교적 적극적이던 독일도 입장이 바뀌고 있다. 기독사회당(CSU)의 당수를 지냈던 마르쿠스 죄더 의원은 트위터에 “파리 테러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이제는 불법적인, 통제되지 않는 난민들을 수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년 시리아 난민 1만 명을 수용하겠다고 밝힌 미국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공화당 경선 주자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 등은 성명을 통해 “미국에 IS 요원이 침투할 수 있는 난민 수용 계획에 대해 즉각 중단 선언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럽 각국은 수십 년 동안 유럽 통합의 상징과 같은 ‘솅겐조약’(국경 통행 조약)에 따라 육로의 국경 통과가 자유롭고 검문이나 경비를 거의 하지 않았지만 이번 테러 다음 날부터 이를 무시하고 일제히 차량 검문검색을 하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이번 파리 공격은 첫 번째 폭풍에 지나지 않는다. 다음은 로마, 런던, 그리고 워싱턴이다.” 파리를 강타한 이번 동시다발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공식 발표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14일 온라인에 공개한 성명에서 이렇게 다음 목표를 적시했다. IS는 자신들의 입장을 밝혀 온 소셜미디어 ‘텔레그램’ 계정에 아랍어 등 여러 나라 언어로 “폭탄 벨트를 매고 기관총을 든 형제가 매춘과 음란의 수도 파리의 목표물을 신중하게 선택해 공격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여객기 참사는 물론 1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경계경비를 강화했을 파리가 다시 무방비로 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서방 국가들은 IS의 위협이 더는 빈말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하고 주요 도시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정보당국도 속수무책? 이브라힘 알자파리 이라크 외교장관은 프랑스를 겨냥한 테러와 관련된 정보를 이번 파리 도심 테러 이전에 입수해 프랑스 정부에 통보했다고 14일(현지 시간) 밝혔다. 15일 이라크 국영 이라키야에 따르면 알자파리 장관은 14일 시리아 사태 해결을 위한 국제회의에 참석한 뒤 취재진에게 “이라크 정보 당국이 유럽 국가들, 특히 프랑스가 곧 표적이 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말했다. 이라크 정부는 지난달 초 이란, 시리아, 러시아와 함께 IS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공동기구를 설립했었다. 그는 “프랑스뿐 아니라 미국과 이란에 대한 공격 정보도 수집했다”며 “이들 정부에 이 같은 정보를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정보’가 이번 파리 테러와 연관된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IS의 다음 테러 목표가 미국과 이란일 가능성도 커진다. 하지만 현재까지 알자파리 장관 발언 외에 프랑스를 비롯한 서방 정보당국이 이번 파리 테러에 대해 사전 인지를 했는지 하지 못했는지를 전하는 외신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1월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가 있었음에도 다시 파리가 IS에 뚫린 것에 IS가 다시 허를 찔렀다는 분석이 높다. 특히 이번 테러는 현지의 ‘외로운 늑대’형 극단주의자들과 중동에서 파견한 IS 조직원이 합세해 벌인 것으로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이다. 그동안 프랑스 정보당국이 내부 위협(외로운 늑대)과 외부 위협(IS 또는 알카에다)을 각각 경계해 왔는데 이 둘이 서로 협력해 테러를 벌였다는 점에서 충격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미국 안보 분야 컨설팅회사인 수판그룹의 패트릭 스키너는 14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파리 테러는 일반적인 ‘외로운 늑대’형 테러와 많이 다르다”며 “사전에 잘 계획된 테러”라고 말했다. 그는 “정보당국의 능력이 뛰어난 파리에서 동시다발 테러가 발생했다는 것은 IS가 ‘어딘가에 있는 구멍’을 포착해 테러를 감행하는 조직력과 정보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제임스 코미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지난달 “국내 자생적 테러리스트와 IS의 연계를 찾아내는 것은 덤불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고백했다. 프랑스 정보당국은 지난 몇 달 동안 6건의 테러 음모를 적발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번 테러는 낌새를 못 챘던 것으로 보인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프랑스 정보기관인 해외안전총국(DGSE)의 전직 관계자는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테러 공격에 대비하고 있지만 모든 음모를 적발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프랑스 싱크탱크 전략연구재단의 카멜 그랑 국장은 “이번 테러는 프랑스 대테러 노력의 한계를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프랑스는 좋은 분석관들과 집중된 정보력을 갖추고 있으나 이들 사이에는 항상 틈이 존재한다”며 “이는 모든 감시와 첩보활동에도 불구하고 IS가 제멋대로 테러를 꾸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 중동을 넘어 글로벌 무대로 종횡무진 IS는 지난해 6월 29일 국가를 선포한 지 불과 1년 반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전 세계를 넘나들며 주요 국가의 심장부를 타격하고 있다. 시리아와 이라크가 주요 무대였지만 지난 보름 동안 아프리카, 아시아(중동), 유럽 등 3개 대륙을 넘나들며 대규모 테러를 자행한 것이다. 지난달 31일엔 러시아 여객기에 미리 시한폭탄을 장착해 아프리카 이집트 시나이 반도 상공에서 추락시켜 승객과 승무원 224명 전원을 숨지게 했다. 서방은 처음엔 반신반의했으나 IS 대원 간 교신 내용 등 각종 정보가 거의 모두 IS 테러 가능성으로 나오고 있어서 거의 IS 소행으로 굳어지고 있다. 파리 테러 전날인 12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지역에서도 IS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한 자살폭탄 테러 2건이 연속으로 일어나 43명이 숨지고 200여 명이 다쳤다. 터키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인 14일에도 경찰이 은신처를 습격하자 자폭해 경찰관 5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IS 이전 가장 위험한 테러 조직으로 꼽혔던 알카에다도 2001년 9·11테러나 1993년 케냐와 탄자니아 미국대사관 동시 테러를 일으키긴 했지만 대륙 간 경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주성하 zsh75@donga.com·전주영 기자}

평양의 부잣집 아들이 데이트 코스를 정한다면? 선택 확률이 높은 곳은 평양 중심부인 중구역 보통문동이 아닐까 싶다. 이곳엔 북한 최대 실내 체육관인 평양체육관이 있는데, 비싼 유료 탁구장, 정구장, 당구장 등이 갖춰져 있다. 땀을 뽑고 길 건너 창광원에 가면 수영으로 몸을 식힐 수 있다. 이곳은 여름엔 사람들로 미어터질 정도지만 토요일은 외화만 받는 ‘외화봉사’의 날이라 조용하다. 토요일 창광원 수용장을 찾는 사람은 부자가 분명하다. 수영하고 난 뒤 시원한 맥주가 생각난다면 창광원 바로 맞은편 외화상점 락원백화점에 가면 된다. 이곳 식당은 비싸기로 유명한데 오스트리아에서 수입한 설비로 만드는 생맥주가 최고 인기다. 식당엔 개별칸, 대중칸 등 룸도 많은데 방마다 가라오케장(노래방) 시설이 설치돼 있다. 먹고 마시면서 노래도 부르는 것이다. 북한의 고급 식당은 대개 룸마다 노래 부를 수 있는 시설을 구비해 놓고 있다. 남쪽 사람이 북한에서 ‘역시 우리는 한겨레구나’ 하는 감정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런 식당이 아닐까 싶다. 모였다 하면 술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은 수천 년간 형성된 우리 민족의 특징이다. 3세기에 쓴 중국 역사책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도 “동이 사람들은 하늘에 제사를 지낸 뒤 며칠을 계속해서 술을 마시고 밥 먹고 노래 부르고 춤춘다”고 기록돼 있다. 식당에서 배를 채운 뒤 락원백화점을 돌며 달러 명찰표가 붙은 옷까지 몇 벌 선물해 주면 여자 친구는 정말 ‘낙원의 이브’가 된 느낌이 들지 않을까. 물론 이 커플이 백화점을 나온 뒤 진짜 아담과 이브로 변신할 만한 곳은 평양엔 거의 없다. 그 점에선 평양이 “좋다, 나쁘다”란 평가가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쇼핑은 빼고 운동과 음주가무만 선택한다면 대동강 주체사상탑 옆 평양볼링관이 좋다. 이곳은 이성을 찾는 부잣집 자식들이 넘쳐나는 사교무대로 활용된다. 볼링관 옆 청년중앙회관엔 1990년대 초반 만들어진 북한 최초의 가라오케장이 있는데 1990년대 후반 북한을 떠들썩하게 했던 ‘최룡해 부화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당시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비서였던 최룡해가 이곳에서 산하 예술단 여성들과 부화방탕한 생활을 하던 중 김정일에게 들켜 노동자로 강등돼 ‘혁명화’를 해야 했다. 청년중앙회관 가라오케장과 맞먹을 정도로 인기가 있는 곳은 중구역 윤이상음악당에 있는 민족식당 가라오케장이다. 2000년대 초반 평양엔 대중 가라오케장 전성시대가 펼쳐졌다. 하지만 약 10년 전 김정일의 “꼴 보기 싫다”는 말 한마디에 가라오케장은 식당 룸에 숨어들었다. 운동도 싫고, 먹고 놀기만 하겠다면 선택의 폭은 훨씬 넓어진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평양에선 민족식당이나 고려호텔 지하식당 정도가 유명했지만 지금은 그와 비슷하거나 더 급수가 높은 고급 식당이 각 구역마다 한 개 이상은 생겨났다. 김정은 등장 후 식당과 상점 노래방 찜질방 수영장 운동시설이 한 건물 안에 있는 ‘종합봉사소’ 전성시대가 열렸다. 평양 중심구역마다 벌써 여러 개씩 생겨났다. 이 중 으뜸은 2013년 문을 연 해당화관이다. 지하 1층, 지상 6층에 용지 면적만 1만 ㎡가 넘는 해당화관은 요리 종류만 200가지가 넘는다. 다만 둘이서 먹는 데 보통 50∼100달러는 쉽게 쓰기 때문에 부자 아니고선 가기 어렵다. 음식량도 많지 않은데, 한 관광객은 중국에선 두 명이 요리 두 개만 놓고 먹어도 배가 부르지만 해당화관에선 요리 열 개를 먹어야 배가 찼다고 말했다. 해당화관 이전엔 2012년 10월 고려호텔 주변에 문을 연 해맞이식당이 북에서 최고 고급 식당이었다. 음식 가격이 제일 비싼 것은 물론이고 봉사원들도 5과 대상으로 선발된 여성들이었다. 중앙당 조직지도부 5과는 전국에서 제일 미모가 뛰어난 여성들을 뽑는 조직이다. 해당화관은 부유층의 외화를 털어내기 위해 장성택이 온갖 정성을 들여 만든 곳인데, 이걸 짓고 반년 뒤 장성택은 처형됐다. 아마 그가 살아 있다면 5과 여성들을 해당화관에도 뽑아 갔을 것이다. 평양도 이젠 달러만 있으면 갈 곳이 참 많아졌다. 그 대신 달러가 없는 사람은 더욱 불행해졌다. 이러니 평양 사람들이 달러에 쌍심지를 켤 수밖에 없다. 요즘 북한 암시장 환율은 1달러에 북한돈 8000원 이상. 벤저민 프랭클린의 초상이 새겨진 100달러 지폐 1장을 사려면 김일성 초상이 인쇄된 북한 최고액권인 5000원 지폐를 최소 160장 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혁명의 수도’ 평양 사람들은 요새 이렇게 수군거린다. “미국 할아버지 사려면 우리 할아버지를 160번 팔아야 한다. 미국 할아버지 최고!”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의 해외 ‘외화벌이 전사’들이 지금처럼 죽겠다고 아우성친 적은 일찍이 없었다. 반면 북한에선 외화벌이에 파견해 달라고 자원한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 모순적 풍경이다. 북한은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행사를 ‘성대히’ 치르느라 기진맥진해 있다. 외화보유액은 바닥이 났고, 사람들도 워낙 들볶여 반쯤 얼이 나가 있다. 행사가 끝났으니 한숨 돌릴 법도 하지만 외화벌이 일꾼들에겐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제부터 2차 외화벌이 전투에 돌입한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당 창건 행사용 상납금을 못 채운 사람은 12월까지 마저 받아내겠단다. 빚 독촉에 시달리는 셈이다. 김정은은 10일 연설에서 인민을 97번이나 되풀이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 인민의 형상은 사람이 아닌 건축물인 것 같다. 인민을 위해 제도를 개조하기보단, 화려한 건물이나 놀이장, 주택을 많이 짓는 데 정신이 팔려 있으니 말이다. 정작 인민은 각종 건설에 동원돼 진이 빠져 쓰러진다. 이 역시 괴이한 모순이다. 김정은이 앞으로 인민 사랑을 보여준다고 뛰어다니는 것과 비례해 필요한 돈도 늘어날 것이다. 외화벌이 전사들이 젖 짜는 암소 신세를 면하긴 어려워 보인다. 해외 외화벌이 일꾼의 신분은 다양하다. 무역일꾼, 단순노동자, 의사와 정보기술(IT) 근로자 등의 기술 직군은 물론이고 외교관도 돈벌이에 나서야 한다. 당 창건 기념일을 맞은 올해 ‘충성의 자금’을 바치라는 압박은 사상 최고로 커졌다. 해외 파견자들은 지역과 업무에 따라 차별된 할당량을 부과받고 있다. 노동자를 제외하면 보통 한 사람이 연간 5000달러에서 많게는 수십만 달러까지 부과받는다. 수백만 달러씩 내야 하는 법인도 많다. 특히 중동이나 동남아에서 활동하는 무기 밀매상이 돈을 많이 벌어들인다. 물론 따로 숨기는 돈도 제일 많지만 인맥을 대신할 사람이 없어 소환되지도 않는다. 북한의 외교행낭이 면책특권을 활용한 밀수행낭이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다. 외교관들은 마약 금괴 등 각종 금지품을 운반하며 돈을 번다. 올 3월 현지 범죄조직을 위해 140만 달러어치의 금 27kg을 운반하다 체포된 방글라데시 북한대사관 1등 서기관, 5월 코뿔소 뿔을 중국에 넘기다 체포된 남아공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18일에도 쿠바산 고급 시가 3800개를 밀반입하려던 북한 외교관이 브라질에서 체포됐다. 북한 외교관들은 흡사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조직적 밀매단을 닮았다. 수단과 방법을 불문하고 돈을 잘 벌면 가족까지 데리고 나와 부러움 없이 잘살지만 이런 사람은 극소수다. 과거엔 돈 좀 못 벌어도 윗간부들에게 뇌물만 잘 주면 오래 있을 수 있었지만 올해부터 상황이 확 바뀌었다. 할당량을 못 채우면 관용도 거의 없다. 벌써 숱한 외화벌이 일꾼이 돈을 못 벌어 ‘충성심이 부족하다’는 죄로 소환됐다. 북에서 지긋지긋한 조직생활에 시달릴 생각을 하면 목숨 걸고 외화벌이 과제를 수행하고 싶지만 갑자기 돈이 잘 벌리긴 만무하다. 도망이라도 치자니 북에 남은 혈육이 발목을 잡는다. 그럼에도 2013년부터 지금까지 해외 주재관 46명이 한국으로 왔다니 꽤 많다. 돈 벌라는 압력이 커지는 것과 비례해 망명자는 더 많아질 것이다. 해외 노동자들도 올해 들어 월급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 거의 없다. 간부들은 “조국에선 당 창건 행사를 위해 밤잠도 못 자는데 외국에서 이밥이라도 먹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라”고 큰소리친다. 집에 가겠다고 하면 “가서 편히 살 줄 아느냐, 강제노동을 시키겠다”고 협박받기 일쑤다. 진퇴양난의 노예 신세가 된 셈이다. 그럼에도 북한 내에선 해외에 나가겠다고 뇌물을 싸들고 간부를 찾아다니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무능력자’들이 대거 소환되면서 빈자리가 많아진 까닭이다. “저를 파견해 주시면 돈을 더 벌어 바칠 자신이 있습니다”고 말은 하지만 속내는 따로 있다. 외국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데다 돈을 벌어도 좋고 못 벌어서 나중에 소환돼도 본전이기 때문이다. 해외 파견권을 쥔 간부만 요즘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뇌물에 살판이 났다.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이라면 북한에서 요즘의 해외 외화벌이만큼 치열하게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된 전례는 일찍이 없었다는 것이다. 돈 버는 능력을 입증하면 북한 여권을 갖고 해외에서 가족과 함께 잘살 수 있는 반면 능력이 없으면 곧바로 도태된다. 나중에 북한이 개혁·개방되면 해외에서 능력을 발휘한 무역일꾼 중에서 부자들이 대거 탄생하지 않을까. 물론 거액의 현상금이 내걸릴 밀수업자도 여럿 나오지 않을까 싶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요즘 북한 귀순자가 기자회견장에서 만세를 부르는 장면은 보기 어렵다. 최근 탈북자들은 귀순 자체를 비밀로 하고 싶어 한다. 국가정보원이 20일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최근 3년간 탈북해 한국에 입국한 북한 해외주재관이 46명에 이른다고 밝히자 많은 사람이 숫자에 놀랐다. 해외주재관의 탈북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2013년 8명에서 2014년 18명, 올해는 10월까지 20명이다. 이들 중에서 얼굴을 드러낸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왜일까. 해외주재관을 비롯한 고위급 탈북자들의 변화된 트렌드를 짚어 본다.○ 다양해지는 탈북 동기 중국에 외화벌이를 위해 나온 북한 간부 A 씨는 기자에게 보낸 e메일에서 “새파랗게 어린 김정은이 올라서니 정말 미래가 막막하다. 지금까지 우리도 잘살 날이 있을 줄 알고 견뎠는데, 이제 또 몇십 년 더 고생할 게 뻔하니 목숨 걸고 자유세상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탈북한 북한 엘리트들은 이구동성으로 미래를 이야기한다. 부패가 드러날까 처벌이 두려워 탈북하는 경우가 많았던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진 점이다. A 씨는 “해외에 나온 북한 엘리트들은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북한에서 제일 깬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도 간접 체험한 이들은 북한의 문제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앞으로도 탈북 사례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수년 전 탈북한 북한 외교관 출신인 B 씨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 체제를 비판하다 들킨다든지 중한 범죄를 저질러 탈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다르다”며 “자식에게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주기 위해 탈북했다는 외교관도 있고 해외에서 김 씨 일가의 실체를 알게 돼 환멸감 때문에 탈북했다는 사람도 봤다”고 했다. 최근 귀순하는 해외주재관들의 사례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외화벌이’ 과제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리다 탈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김정은 체제 들어 각종 치적 공사가 크게 늘면서 매년 당국에 바쳐야 하는 달러 액수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간부로 있다가 탈북한 C 씨는 “과제를 수행하지 못해 본국으로 소환될 위기에 처해 탈북을 선택하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꽁꽁 숨어라” 최근 입국하는 탈북 엘리트들의 경우 대다수가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히 꺼리고 있다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요즘은 국정원이 과거처럼 귀순자들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 기자회견장에 내보내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원할 경우 얼마든지 노출을 피할 수 있다. 최근 탈북한 고위급 탈북자 D 씨는 “북한에 남은 가족 친척 때문”이라고 했다. 귀순 사실이 알려지지 않고 해외에서 사라지면 북한 당국은 관례적으로 행방불명자로 처리하는데, 이 경우엔 가족에 대한 처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설사 한국으로 간 사실이 드러난다고 해도 조용히 숨어 사는 사람들에 대해선 가족에 대한 처벌이 매우 경미하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최근 들어 국제사회에서 제기하는 인권 문제 때문에 탈북한 엘리트들의 가족을 쉽게 처벌하지 않는 것도 이들이 탈북을 결심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탈북자 E 씨는 “해외주재관들의 경우 친인척 중에 고위 간부가 많아 집안 배경이 좋은 사람이 대부분인데 이 중에서 탈북자가 생겼다고 가족까지 처벌하면 숱한 간부를 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또 다른 탈북자는 “북한 당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것은 남쪽으로 간 탈북자들이 북한 인권 문제를 건드리는 것인데 이것만 건드리지 않으면 가족들이 피해 보지 않고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많은 고위층 탈북자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와 김덕홍 노동당 부실장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었다. 기자와 접촉한 적잖은 탈북 엘리트들은 “북한 체제를 바꾸겠다고 남한에서 아무리 참상을 고발하고 노력해봐야 성과도 별로 없고 오히려 피해만 보니 그냥 남한에 숨어서 조용히 사는 게 최고”라고 했다.○ 탈북 대신 남쪽에 정보 제공 요즘은 탈북 대신 남쪽에 정보를 제공하면서 사는 북한 엘리트가 많은 것도 달라진 변화다. 여기에는 한국 정부가 고위급 탈북자를 환대하거나 이들에게 직업을 알선해주는 등 생활을 돕는 일을 더이상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게 이유로 꼽힌다. 한 탈북자는 “탈북해서 정보를 제공해도 어느 정도의 보상은 받지만 많아야 수천만 원 선”이라며 “남한 정부에서 직업을 알선해주는 ‘특혜’는 소수에게만 돌아간다. 그것도 국책연구기관 정도다. 북한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았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해 막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은 국정원도 북한 고위급의 탈북을 적극 유도하지도 않고 오히려 북한에 남아 있으면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을 더 선호하는 편”이라고 했다. 한편 해외에서 외화벌이를 하다 탈북한 사람들의 경우 그동안 몰래 숨겼던 돈을 고스란히 갖고 오는 사람도 적지 않아 탈북자 사이에도 빈부격차가 생기고 있다. 한 탈북자는 “북한에서 직책이 비슷했더라도 얼마를 갖고 왔느냐에 따라 한국에서 월세 사는 사람, 전세 사는 사람,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으로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고 말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이란이 8년 동안 꽁꽁 묶여 있던 경제제재라는 굴레에서 풀려나는 길에 들어섰다. 유럽연합(EU)은 18일 핵관련 이란 제재 완전 해제를 발표할 예정이며 같은 날 미국도 이란에 대한 제재를 해제한다는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7월 20일 타결된 이란 핵 합의안은 90일 뒤인 10월 18일을 적용일(adoption day)로 정해뒀다. 이때까지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란의 핵 활동 투명성을 검증하고 12월 15일 IAEA 집행이사회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최종 보고서를 낸다. 또 내년 상반기로 예상되는 ‘이행일’(Implementation Day)‘까지 유럽과 미국은 대이란 경제·금융 제재 해제를 위한 법적·실무적 준비를 한다. EU는 2007년부터 이란을 제재해오다 2013년 11월 ’제네바 핵합의‘에 따라 지난해 1월부터 제재의 일부를 잠정적으로 해제했다. 서방의 한 소식통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검증 작업을 끝내면 EU는 핵관련 모든 제재를 해제하기 위한 입법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며 “실제 제재 해제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EU는 그동안 이란 기업과 개인에 대해 자산 동결과 비자 제한 등의 제재를 가해왔다. 이 때문에 수십억 달러의 이란 자산이 해외에 묶이고 이란 경제도 어려움을 겪어왔다.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러시아가 자국의 주력 전차인 T90의 무인(無人)화에 착수한다. 전차 조종석에 원격 조종 시스템을 설치해 전장에 투입한다는 것이다. 공중에서는 무인기가, 지상에서는 무인 탱크가 본격적으로 도입될지 주목된다. 드미트리 로고진 러시아 부총리는 최근 트위터에 “앞으로 우리에게는 탱크 조종사가 필요 없는 시대가 온다. ‘월드오브탱크(월탱)’ 게이머가 필요할 뿐”이라는 글을 남겼다. 월탱은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온라인 탱크 게임으로 유저가 7500만 명이 넘는다. 그의 말처럼 전쟁이 게임처럼 바뀌게 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도 전차 무인화 방침을 재확인했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13일 보도했다. 러시아는 최근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신형 전차 아르마타 개발을 완료했다. 아르마타는 3명이 탑승하는 유인 전차이지만, 탱크 내부에 승조원용 강화 격실이 따로 있어 생존율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는 아르마타의 실전 배치와 동시에 도입 20년이 넘어 은퇴가 불가피한 T90을 무인화해 전력 축소를 막겠다는 계획이다. 러시아 국방 관계자들은 “방어력과 효용성이 떨어지는 전투로봇 개발보다는 이미 실전에서 검증된 탱크를 활용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다. T90 생산업체인 ‘우랄바곤자보드’ 관계자도 정부의 계획을 확인하면서 “현재 T90 무인화를 이루는 데 큰 기술적인 어려움은 없다”고 주장했다. 개조된 T90은 최소 3마일(약 5km) 밖에서 조종할 것으로 보인다. 탱크 무인화 방침에 ‘월탱’ 유저들은 “실내에 앉아 전쟁을 벌이는 날이 앞당겨진 것 아니냐”며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영화 007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던 대니얼 크레이그 유엔지뢰제거 특사(47)가 13일(현지 시간) 키프로스에서 첫 임무를 수행했다. 올 4월 지뢰제거 특사로 임명된 크레이그는 임기인 3년 동안 세계 곳곳을 방문해 지뢰 제거 캠페인과 희생자 돕기 등의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키프로스 일간 키프로스메일 등에 따르면 크레이그 특사는 이날 유엔지뢰대책기구(UNMAS)와 함께 유엔이 설정한 키프로스의 완충지대를 방문했다. 그는 캄보디아 평화유지군이 지뢰를 제거하는 작업을 지켜보고 해제한 지뢰를 손에 쥐고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크레이그 특사는 성명을 통해 “이 아름다운 섬나라에서 지뢰밭을 보는 처음이자 마지막 특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수년 전 캄보디아에서 영화를 촬영해 캄보디아의 지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캄보디아 지뢰제거 전문가들이 키프로스의 평화를 돕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였다. 크레이그 특사는 올 4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서 특사 임명장을 직접 받았다. 당시 반 총장은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는 ‘살인면허’를 갖고 있지만, 오늘부터 우리는 그에게 ‘구조면허’를 부여한다”며 “유엔 8대 사무총장인 나는 ‘008’로 통한다”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6대 제임스 본드인 크레이그는 지금까지 ‘007 카지노 로얄’ ‘007 퀀텀 오브 솔러스’ ‘007 스카이폴’에 이어 곧 개봉될 ‘007 스펙터’에도 주연을 맡았다. 유엔은 1963년 지중해의 섬나라 키프로스에서 남부의 그리스계와 북부의 터키계 주민 사이에 무력충돌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평화유지군을 파병했다. 유엔은 10년 전부터 남북 완충지대에 매설된 지뢰 해제를 시작해 지금까지 9.7㎢에 묻힌 지뢰 2만7000여 개를 제거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열병식은 북한의 쇠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수십 년 동안 전해 내려오는 행사 조직력은 여전했지만 동원된 사람들은 허약했고 장비는 낡아 보였다. 주석단에 등장한 외국 사절은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유일했다.○ 허약한 병사들 열병 행사 시작 전 교도통신을 통해 북한 군인들이 행렬을 지어 행사장에 입장하는 한 장의 사진이 공개됐다. 드디어 고생이 끝났다고 생각해서인지 군인들의 표정은 밝았다. 하지만 대열 속 곳곳에선 영양실조에 걸린 것으로 보이는 병사들의 모습이 포착됐다. 키가 160cm도 안돼 보이는 병사도 적지 않았다. 북한군의 현재 상황을 백 마디 말보다 더 잘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이었다. 씩씩한 열병식과는 별개로 북한군의 영양 공급이 여전히 열악하다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김일성광장 앞을 꽃다발을 흔들며 지나가던 평양 시민들의 얼굴엔 아직도 햇볕에 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꽃다발로 광장에 여러 글씨를 만드는 훈련도 보통 3개월 동안 진행된다. 평양시민들은 유달리 가물고 더웠던 올여름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하루 종일 신호에 따라 색깔별로 꽃다발을 올리고 내리는 훈련을 했을 것이다. 김정은은 열병식 시작 전에 한 연설에서 ‘인민’이란 단어를 97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인민은 이번 열병식을 위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지나가는 대열마다 말해주는 듯했다. 그래서였을까. 꽃다발을 흔들며 지나가는 대열에서 과거처럼 눈물 흘리는 시민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이 든 간부들 불안에 떨 듯 이번 열병식에서 또 하나 눈에 띄었던 점은 제일 마지막 대열이 소년단 학생들이었다는 점이다. 소년단은 14세 미만의 학생이 가입하는 소년 조직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열병식에서 소년들을 동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소년들을 등장시켜 만주에서 시작된 혁명 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여주려 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연설을 통해 ‘인민중시, 군대중시, 청년중시’라는 노동당의 3대 전략을 제시했는데 청년중시를 노동당 전략에 포함시킨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김정은이 자기의 나이에 맞게 노동당의 세대교체를 단행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젊음’을 강조한 김정은의 연설을 들은 수많은 노(老)간부들은 당에서 나이 든 간부를 몰아내고 젊은 간부로 세대교체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을 것으로 보인다. 열병 행렬 마지막에 나타난 소년단은 그야말로 ‘세대교체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으로 최근 ‘장마당세대’의 등장과 더불어 청년들 속에서 김정은에 대한 인기가 크게 떨어지는 것도 북한 당국이 청년 계층을 다독이고 내세워야 하는 이유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눈길 끌지 못한 무기들 이번 열병식은 과거 북한이 진행했던 다른 열병식에 비해 규모나 장비 면에서 눈길을 끌지 못했다. 1985년 광복절과 1992년 김일성 80회 생일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이 규모와 장비 면에서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동원된 군 장비는 300mm 방사포와 미사일을 제외하면 30년 전 열병식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열병식에 등장한 무인기는 몇 년 전 김정은이 직접 발사 장면을 지켜보는 모습이 공개된 바 있다. 당시에도 형태만 무인기이지 발사돼 그냥 앞산까지 날아가 들이박히는 포탄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공군이 벌인 에어쇼 역시 북한의 현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1940년대 개발된 구식 야크기와 AN-2 항공기들이 노동당 마크와 70이란 숫자를 새기며 날개를 기우뚱기우뚱 흔들며 날았다. 2년 전엔 고려항공 수송기에 군용 얼룩무늬를 새로 칠해 군용기로 둔갑시키기도 했지만 이번엔 그런 성의조차 없었다. 북한 공군은 이번 열병식을 통해 에어쇼조차 할 능력이 없다는 것, 또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군용기도 거의 없다는 것을 드러낸 셈이다. 탱크와 자주포 같은 다른 군용 장비도 과거에 비해 많지 않았다. 수개월 동안 훈련을 하려면 막대한 연료가 필요한데 열악한 북한의 사정을 감안하면 기계화 장비를 대규모로 동원할 연료도 부족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지난달 미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사진)이 전세기에서도 평소와 다름없는 소탈한 행보로 승무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텍사스 지역신문인 ‘포트워스 스타 텔레그램’은 7일 교황이 미국 방문 기간 중 이용했던 아메리칸항공 전세기 승무원들이 느낀 소감을 소개했다. 이들은 “인생이 바뀔 만한 경험을 했으며 강력한 영감을 받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며 교황이 내린 축복을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추억했다. 교황은 축복과 축성을 바라는 승무원들의 요청을 모두 들어주면서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요청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조지 그리핀 기장은 필라델피아 공항에 내릴 당시 교황에게 착륙을 축복해 달라고 빌었고, 교황은 축복을 내리면서 그에게 필라델피아 행사를 잘 마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교황은 귀국 직전에는 기내 승무원들을 모두 불러 모아 직접 감사의 뜻을 건네기도 했다. 아메리칸항공 기술 전문가인 톰 하워드 씨는 “교황은 어떠한 특별대우도 원하지 않았으며 비행기에 탄 모든 이들과 같은 대우를 받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또 “교황은 추가로 돈이 들 수 있는 전세기 개조도 바라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교황의 전세기는 일등석에 커튼을 치고 교황청 깃발과 휘장만 추가로 달았을 뿐 아무런 개조도 하지 않았다. 전세기는 교황의 로마 귀국까지 함께한 뒤 곧바로 다른 노선에 투입됐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이보게, 젊은이. 여기가 헬조선 맞나. 목숨 걸고 찾아왔더니 하필 지옥이라니…. 왓다헬!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음(끄덕끄덕)…. 듣고 보니 참말 같구먼. 그럼 나와는 반대로 헬조선을 탈출해 북조선에 한번 가보실 텐가. 아무렴 지옥보다 못하려고. 한번 들어나 보고 판단해 보시게나. 일단 헬조선 탈출금 5만 달러만 준비하시게. 그 정도도 없다면 그냥 지옥살이 할 운명인 거야. 요샌 동남아 사람들도 몇 년이면 그 정돈 벌어 간다고 하더구먼. 서울선 방 한 칸 얻기 힘들어도 북조선에선 결혼도 할 수 있고, 집도 살 수 있고, 취직도 할 수 있다네. 북조선에 가면 ‘면죄부’부터 사시게. 올 7월부터 파는 건데, ‘김일성, 김정일 기부금’이라고도 하지. 돈줄 마른 당국이 10일인 노동당 창건 70돌 기념일을 맞아 주민 돈주머니 털어먹느라 만든 것이네. 가격은 북조선 최고액권인 5000원권으로 2만 장, 즉 1억 원이네. 그리 놀라지 말게. 북에선 1달러가 8300원이니 한국 돈 1원이 북조선 돈 7원 정도라네. 1억 원은 1만2000달러쯤 되네. 돈을 바치면 ‘이 동무는 김일성(김정일) 기부금을 냈음을 증명합니다’ 따위의 글과 기부액수가 적힌 ‘애국상장’이란 종잇장 하나 줄 걸세. 김 씨 일가 우상화 사업에 기부하면 김일성 기부금 증서를, 김정은이 지시한 중요 공사에 기부하면 김정일 기부금 증서를 준다네. 효력은 같다니 아무거나 고르시게. 그리고 남쪽 주민등록증 크기의 휴대용 애국상장도 주는데, 이걸 꼭 갖고 다니시게. 이것만 보여주면 웬만한 죄는 다 용서가 되니까. 물정을 잘 몰라 좌충우돌 사고 치는 정도는 눈감아 주지. 다만 김정은을 욕한다거나 홧김에 사람 죽여도 효력이 있는 건 아니니 명심하시게. 기부금 3000만 원(약 3600달러)을 내면 ‘애국’자가 빠진 그냥 ‘상장’이라는 면죄부도 주는데, 약발은 많이 떨어지니 이왕 살 거면 1억 원짜리 사시게나. 어려서부터 훈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평양에선 살기 위험하네. 지방 도시라면 8000달러로 3칸짜리 집은 살 수 있네. 가자마자 역사책에서 배웠던 가렴주구(苛斂誅求)란 것부터 바로 알게 될 걸세. 다음 날부터 인민반장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와 문을 두드릴 거네. 아침엔 “동상 건설 지원금 내라”, 점심엔 “발전소 건설 지원금 내라”, 저녁엔 “수해복구 지원금 내라”라고 독촉할 걸세. 그게 북조선 일상이니 빨리 적응하게나. 이걸 견디다 못해 도시에서 그나마 수탈이 덜한 깊은 산골로 도망가는 사람들이 요새 급증한다니 도시엔 빈집이 많아지고 집값도 떨어져서 좋은 기회일세. 자넨 돈이 많으니 걱정할 필요 없네. 걷으러 올 때마다 1달러 정도 주면 되네. 면죄부 사고 집 사도 3만 달러는 남아 있지 않은가. 그 정도 조건이면 괜찮은 짝을 골라 결혼하는 것도 전혀 어렵지 않네. 물론 밤이면 암흑 세상에서 살아야 하고 목욕조차 하기 힘들 거네. 허나 어차피 TV를 봐야 욕만 나올 거고 샤워 좀 못해도 지옥보단 낫지 않겠는가. 그리고 취직이 필요하면 적당한 간부 자리 하나 사시게나. 면죄부 파는 세상인데 매관매직이 없겠나. 아직은 구한말처럼 군수 5만 냥, 관찰사 20만 냥 이런 식으로 딱 정해져 있진 않네. 머잖아 그리 되겠지만 자네에게 권할 자리는 높은 간부가 아니라네. 너무 높이 올라가면 처형되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갈 확률이 높다네. 헬조선에서 열심히 학원만 다녔다면 남을 갈구고 돈 뜯는 실력은 어림도 없을 터. 양심이나 자책감 같은 게 남아 있다면 높은 자린 넘보지도 마시게. 안정적인 게 싫고, 도전을 해보겠다면 장사밖에 할 게 없네. 허나 3만 달러면 북조선 금수저하곤 비교가 안 되니, 자기 푼수 정도는 아시게. 금수저 쳐다봐야 제 명만 줄어드는 건 남이나 북이나 똑같다네. 장사 종목 고를 땐 헬조선 체험이 큰 도움이 될 거네. 치킨도 좋고 편의점도 좋네. 다만 휴대전화 가게는 허가가 까다롭네. 장사가 잘될지는 모르겠네. 북조선도 요즘 지독한 불황이라네. 경제는 마비됐는데 모두들 장사판에 뛰어드니, 판다는 사람은 많은데 산다는 사람이 없다는군. 3만 달러 날리는 건 일도 아닐세. 반드시 명심할 건 1만 달러는 꼭 남기시게. 거기가 더 지옥 같다면 다시 도망칠 비상 탈출금은 있어야 하니까. 어떠신가. 5만 달러로 꿈꿔보는 북조선 은수저급 삶이. 그것도 끔찍하다면 해줄 말이 없구먼. 금수저 되는 법은 하늘이 알지 나는 모르네. 물론 희망이 전혀 없는 건 아닐세. 요즘 남북이 통일하면 대박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더구먼. 그거나 한번 꿈꿔 보세나. 둘이 합치면 대박반도가 될지, 지옥불반도가 될지 난 모르겠네. 그래도 뭐가 두렵겠나. 더 떨어질 곳이 있다면 여기가 헬조선이 아닌 거지.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중국이 121년 전 청일전쟁 당시 침몰했던 북양(北洋)함대 소속 ‘치원(致遠)’함을 랴오닝(遼寧) 성 단둥(丹東) 앞바다에서 발견했다. 관영 중국중앙(CC)TV는 29일 지난해 10월 해저 진흙층에서 발견한 침몰선이 고고학자들의 검증 결과 치원함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 함선은 발견 당시 선체 대부분은 수 m의 두꺼운 진흙층 속에 묻혀 있었고, 현장에서는 주포, 탄약, 포탄, 총구 10개가 있는 기관총 등이 나왔다. 고고학자들은 “이런 기관총은 당시 치원함에만 설치됐다”고 설명했다. 일부 고고학자는 “치원함 갑판이 커다란 돌덩어리로 눌려 있었다”며 “일본군이 중국 풍수를 훼손할 목적으로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았다. 치원함은 중국에서 외국군의 침략에 최후까지 항거하는 투쟁정신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역사교과서에도 실리고 영화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한 함선이다. 등세창(鄧世昌) 함장을 비롯한 장병 240여 명은 1894년 9월 17일 벌어진 ‘황해해전(일명 압록강해전)’에서 탄약이 떨어질 때까지 싸우다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같이했다. 당시 등 함장은 부하들에게 “우리가 죽더라도 국가의 명성을 높이게 될 것”이라고 독려하며 일본 전함 요시노(吉野)와 충돌하기 위해 돌진했다. 하지만 이 군함은 일본군이 쏜 포탄에 맞아 폭발하면서 순식간에 침몰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청일전쟁 120주년을 기념해 3700만 위안(약 69억 원)을 들여 치원함을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길이 81m, 배수량 2300t의 장갑순양함인 치원함은 최고속력 18노트의 증기기관과 210mm 주포 5문 등을 장착하고 있었다. 청나라는 해군력을 강화하기 위해 1885년부터 1887년 사이 영국에서 2000∼7000t급의 최신예 대형 장갑군함 7척을 사들였다. 이런 군함들을 거느린 북양함대는 당시 아시아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수병들의 사기 저하와 훈련 부족, 부패로 인한 불량 포탄 공급 등으로 일본 함대와의 전투에서 주력 전함 5척이 줄줄이 격침됐다. 청나라는 이처럼 해전에서 연패한 뒤 일본에 백기를 들었다. 중국은 1996년 국가문물국 산하에 황해해전 침몰 군함 인양사업 추진 기구를 설치하고 침몰된 함정의 위치를 추적해왔다. 중국 정부가 1985년 산둥(山東) 성에 세운 ‘갑오전쟁박물관’ 내부에는 ‘갑오(청일)전쟁 패전이라는 굴욕적인 역사는 낙후되면 곧 당하게 된다는 도리를 다시 입증하였다’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친필을 새긴 동판이 붙어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지난 주말 경기 안성시 탈북자 정착교육시설인 하나원에서 흥겨운 남한 유행가가 울려 퍼졌다. 하나원을 졸업한 탈북자 60여 명이 참가한 ‘하나원 방문의 날’ 행사에서 탈북 예술단이 교육생 170명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다. 졸업생이나 교육생이나, 추석을 앞두고 실향의 아픔을 서로 달래자는 행사였다. 이날 하나원은 1999년 개원 이래 두 번째로 외부인들에게 내부를 공개했다. 하지만 교육생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선배’ 탈북자들로 구성된 예술단 공연에 함께 웃으며 박수를 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도 공연 도중 눈물을 훔치거나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이들이 보였다. “한국에 와서 첫 추석을 이곳에서 맞으니 마음이 착잡하단 말입니다. 고향을 떠나 처음으로 맞는 추석인데, 북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에 맘이 아픕니다. 북한 가족들도 저를 생각하면서 아파할 겝니다.” 고향이 함북 청진이라고 밝힌 여성 탈북자 김지원(가명) 씨가 이렇게 말하자 옆에 있던 다른 교육생들도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떠올리며 격한 목소리로 한마디씩 거들었다. 이들의 꿈은 판에 박은 듯 똑같았다. “헤어진 가족과 다시 만나고 싶다”였다. 하지만 이들의 꿈이 이뤄질 날은 점점 더 먼 미래로 잡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요즘은 북한에서 사람 빼오기가 너무 힘들어요. 이젠 한국까지 오는 데 한국 돈 1200만 원을 부른단 말입니다. 그 돈 언제 다 모으겠어요. 게다가 요즘엔 국경에다 철조망 다 둘러친단 말입니다. 중국에 나왔다 잡히면 가족이 한국에 있는 경우엔 무조건 정치범수용소행이지 뭡니까.” 함북 무산이 고향인 20대 여성 최수민(가명) 씨의 말이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고향에서 아버지와 오빠를 데려오고 싶어 했다. “8년 전 제가 탈북할 때는 북한 국경경비대에 중국돈 100위안만 주면 안전하게 건너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안전한 루트가 없어요. 부모 형제를 영영 다시 보지 못하는 건 아닌지 너무 걱정이 됩니다.” 특히 2015년은 탈북자들에게 감회가 깊은 해다. 1995년 북한이 ‘고난의 행군’에 들어가면서 탈북자가 급증했다. 북한을 빠져나와 중국으로 넘어가는 인원이 한 해 수만 명에 육박하던 대규모 탈북 사태였다.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란 말이 본격 사용된 시기도 바로 1995년이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것이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2010년 이후 탈북자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추석을 앞둔 탈북자들의 팍팍한 현실과 최근 탈북 추세를 심층 취재했다. ▼ “달님 달님, 北에 두고온 어머니 소식 좀 전해주오” ▼그리움에 사무친 탈북자들, 일부는 “추석 쇠는 법도 잊어” 올해 한국에서 처음으로 추석을 맞는 탈북자 김지선(가명·29·여) 씨와 박선아(가명·28·여) 씨는 추석 명절이 반갑지 않다. 22일 기자와 만난 김 씨는 “추석 연휴가 표시된 달력을 볼 때마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요즘 들어 잠을 설친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 씨와 박 씨는 먼 친척 사이. 지난해 여름 비슷한 시기에 탈북한 이들은 중국에서 우연히 만났다. 이들이 탈북을 결심한 계기는 가족의 억울한 죽음 때문이었다. 장사를 하던 김 씨의 어머니는 보위부에 잡혀 들어가 고초를 겪은 뒤 풀려난 지 3개월 만에 숨졌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2년 동안 남몰래 탈북을 준비하던 김 씨는 지난해 7월 당시 네 살배기 딸과 함께 압록강을 건넜다. 박 씨도 아버지가 사업 문제로 보위부에 끌려갔다가 숨진 직후 탈북을 준비하다가 김 씨와 비슷한 시기에 두만강을 건넜다. 추석을 앞둔 이들은 한결같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놓았다. 김 씨는 2년 전 북한에서 보낸 마지막 추석 때 모친 산소 앞에 새 비석을 세운 일을 떠올렸다. 그는 목멘 소리로 “어머니 산소에 갈 수 없어 너무 안타깝다”며 말을 이어갔다. 박 씨도 “병든 어머니를 북한에 남겨둔 게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형제들에게는 탈북 계획을 미리 귀띔했지만 어머니에게는 끝까지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행여 걱정을 끼쳐드려 병세가 악화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박 씨는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엄마 목소리를 꼭 듣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탈북자들은 요즘 가족을 그리워하며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1999년 입국한 장인숙 씨(75·여)는 명절만 되면 북에서 사별한 남편과 탈북 과정에서 붙잡힌 둘째 아들 생각이 난다고 했다. 1978년 세상을 떠난 장 씨 남편의 산소는 평양 인근 공동묘지에 있다. 장 씨는 “아무도 돌보지 않아 망가져 있을 남편의 산소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아들들에게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간직했다가 통일 뒤 남편 묘에 같이 묻어 달라고 신산당부를 해놓았다”고 말했다. 1999년 함께 탈북하다가 보위부에 붙잡힌 둘째 아들은 아직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원에서 만난 한 탈북 여성은 “하나원은 그래도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있어 덜한데 사회에 나가서 혼자 쓸쓸히 추석을 맞으면 서러워 눈물이 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중국 국경을 넘은 뒤 남한으로 입국하기까지 북한과 중국 당국의 눈길을 피해 장기간 접경지대에서 지낸 일부 탈북자는 추석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지도 못했다. 지난주 하나원에서 만난 탈북 여성 4명은 “우린 추석 쇠는 법을 잊어버렸다”며 “중국에서 오랫동안 살다 보니 추석에도 특별히 마음이 아프지도 않고 그저 무덤덤하다”고 했다. 장기간 이국에서 숨어 지낸 결과 추석에 대한 기억이나 공동체 의식도 거의 사라졌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요즘은 이것도 점점 옛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날이 갈수록 탈북자 수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격감하는 탈북자, 브로커도 일감 떨어져 통일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는 614명이다. 이는 지난해 전체 1397명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 규모는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간 계속 늘었다. 그야말로 대규모 탈북 사태였다. 2001년 1043명이 입국해 연간 입국 탈북자가 처음으로 1000명을 넘어섰다. 2006년 입국한 탈북자는 2028명이었고, 2009년엔 2914명에 이르렀다. 당시까지만 해도 “조만간 연간 입국 탈북자가 5000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다. 그렇지만 2009년 정점을 찍고 점차 하향 추세를 보이다가 최근에는 급작스레 줄었다. 탈북자 규모가 갑자기 줄자 이들의 정착교육을 맡은 하나원도 놀라는 기색이다. 9월 현재 안성시 하나원에서 정착교육을 받는 여성 탈북자는 17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강원 화천군에 있는 제2하나원에서 생활하는 남성 탈북자까지 다 포함해도 200명 남짓이다. 하나원 교육 일정을 감안하면 최근 3개월 동안 한국에 입국한 규모도 200명 수준으로 짐작할 수 있다. 9월에 하나원에 들어간 탈북자는 30명 정도다. 하나원 측은 몇 년 전 500명 이상 수용이 가능하도록 시설을 확장했다. 하지만 막상 확장하고 나니 탈북자가 크게 줄었다. 화천의 제2하나원은 더 난감한 표정이다. 통일부는 안성 하나원의 수용능력 500명이 부족하다고 보고 2009년 화천에다 새로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제2하나원 건물 건설에 들어가 2012년 12월 완공했다. 제2하나원은 7만7400m² 땅에 예산 349억 원을 투입했다. 그렇데 막상 시설 운영에 들어간 시점에서 이용률이 예상치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고 있다. 현재 제2하나원에서 교육받는 남성 탈북자는 30∼40명 수준. 제2하나원은 요즘 사회에 정착한 일부 전문직 탈북자를 대상으로 직업교육 등 맞춤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 시설을 착공했던 2009년 당시 탈북자 규모가 이렇게 급속히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요즘은 탈북자를 도와주며 수수료를 챙기는 브로커 중에서도 “일감이 없다”며 다른 일자리를 찾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중국의 한 브로커는 “6년 전만 해도 탈북자가 워낙 많아 한꺼번에 8명 정도씩 데리고 3국 국경까지 가 돈을 벌 수 있었다”며 “최근 중국에서 1, 2명씩 움직이다 보니 수중에 남는 돈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탈북자 입국 증가세가 꺾인 2010년부터 북한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 의문을 알아보기 위해 탈북자와 구출 활동가 50여 명을 만나거나 전화로 접촉했다.휴전선처럼 변해 가는 북-중 국경 흔적선, 대못 판, 무인카메라, 철조망, 비상벨…. 올해 탈북해 한국에 입국한 김창민(가명·35) 씨는 이런 말을 나열하며 북-중 국경을 넘던 아찔한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우선 철조망을 넘은 뒤 모래를 말끔하게 깔아놓은 ‘흔적선’을 건너뛰어야 한다. 땅에 묻어놓은 대못 판을 밟을 위험도 피해야 한다”며 말을 꺼냈다. 북한 철조망을 넘어도 안심할 수 없다. 강을 건너 중국에 도착해도 무인카메라가 달린 철책과 탈북자 신고 체계가 또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요즘에는 중국 철책을 넘어 국경의 중국 가옥에 들어가 도움을 청하기도 두렵다”며 “집집마다 중국 공안이나 변방 부대와 연결된 비상벨이 있는데, 주인이 몰래 누르면 체포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다중 경계는 모두 김정은 집권 이후 생겨난 것이다. 요즘도 북한과 중국은 국경의 감시망을 겹겹이 쳐놓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은 올해 3월 김정은이 국경경비대에 “국경연선의 ‘3대 장벽’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최근 보도했다. 3대 장벽은 ‘물리장벽’ ‘감시장벽’ ‘전파장벽’을 뜻한다. 물리장벽은 북-중 경계의 압록강과 두만강에 설치된 물리적 장애물이다. 전기철조망과 함정, 대못을 박은 판자 등이 포함된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6월 초부터 러시아에서 철조망을 대량으로 수입했다. 높이 1.6m의 러시아산 철조망 위에 10cm 간격의 전기선 4개가 설치됐다고 한다. 물론 전력난 때문에 아직 전기는 통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 국경 철조망은 2006년부터 설치가 시작됐지만 그동안 진척이 지지부진했다. 하지만 러시아 철조망이 들어온 뒤 탈북이 가장 빈발한 압록강 상류 양강도 지역은 현재 철조망 공사가 끝났고, 지금은 함경북도 두만강 유역 공사가 한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역시 대규모 탈북 사태를 막는다는 목적에서 2009년경부터 국경 주요 탈북 및 밀수 루트를 철조망으로 차단하는 작업에 들어가 지금 대부분 마무리됐다. 북한은 국경 전역에 철조망과 함께 너비 4m, 깊이 3m의 함정을 파놓는 계획도 세워 뒀다. 하지만 함정 몇 곳에서 물이 자꾸 스며 나와 이 계획이 흐지부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목함지뢰 수만 개를 설치한다는 소문이 국경 지역에 퍼지고 있다. 감시장벽은 국경에 설치된 최신 감시 장비들이다. 복수의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탈북을 막기 위해 군사분계선에 설치했던 야간 감시 장비까지 뜯어 북-중 국경에 설치했다. 탈북이 주로 밤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과거 압록강과 두만강 옆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강에 나가 빨래도 하고 물도 길어 먹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미리 허가를 받은 뒤 정해진 통로로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통행을 허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가안전보위부, 보안서, 국경경비대, 지방 적위대, 인민반 등 각 기관과 조직에서 차출된 인원이 4중, 5중으로 국경을 순찰한다. 이들은 의심이 가는 사람을 단속해 탈북자인지 조사하고 있다. “몇 년 전 수입해 온 독일산 전파탐지기가 얼마나 (성능이) 좋은지 통화를 하다 붙잡혀 처형된 사람이 많다. 통화 위치가 잡히면 10분도 지나지 않아 수색대가 현장을 둘러싸기 때문에 무서워서 전화를 못하겠다.” 지난달 통화한 북한 주민의 말이다. 최근 북한은 외부 세계와의 휴대전화 통화나 대북 라디오 방송 수신을 막기 위해 전파장벽 구축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전파 방해 장비도 중국이나 독일에서 들여와 국경과 인접한 도시와 마을에선 중국과 통화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통화가 어려워지면 탈북도 쉽지 않아진다. 이제는 북-중 국경을 넘기가 남북 군사분계선을 넘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진 것이다.“북조선 최대 적은 남조선 아닌 탈북자” 지난해 탈북한 최준호(가명·36) 씨는 “김정은 체제 들어 달라진 것이라면 탈북하다 체포되면 무조건 민족 배반자로 간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서 체포되면 무조건 한국으로의 도주를 기도한 것으로 여긴다. 본인이 정치범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정치범관리소로 끌려간다. 뇌물을 많이 주어 판결을 잘 받아내도 최소 3년은 교화소에 갇혀 있어야 한다”고 북한의 살벌한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만난 탈북자들도 탈북자 격감의 주요 요인으로, 과거에 비해 탈북자 처벌이 훨씬 가혹해진 점을 많이 꼽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탈북자들에게 내려지던 처벌과 크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 대규모 아사 사태가 시작되자 최소 수십만 명의 탈북자가 중국으로 탈출했다. 중국에서 체포돼 북송된 사람도 수만 명에 이른다. 당시 북한은 북송된 탈북자를 조사한 뒤 정상을 참작하며 처벌 수위를 조절했다. 특히 경제난으로 인한 단순 탈북자에 대해선 처벌이 비교적 가벼웠다. 대다수 탈북자는 3∼6개월 노동교화형(강제노동) 판결을 받았다. ▼ 데려오고 싶어도… 강 건너는 비용 500배나 뛰어 ▼하지만 지금은 처벌 수위가 크게 올라갔다. 요즘 체포되는 일반 탈북자는 대개 정치범수용소에, 국경에서 떠도는 꽃제비의 경우도 교화소에 들어간다. 정치범수용소와 교화소엔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정치범수용소의 경우 과거 1970, 80년대 수용됐던 정치범들이 거의 다 숨졌다. 최 씨는 “수용소 안에서 정치범이 줄다 보니 수용소 내 탄광이나 농장 등이 돌아갈 수 없다. 과거 정치범의 자리를 지금은 탈북을 기도했다가 체포된 사람들이 메우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실 때문에 북한에선 “탈북하다가 잡히면 인생이 완전히 끝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목숨을 건다는 각오를 해야 탈북을 감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2008년 11월경 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은은 김정일에게 “탈북자를 없애겠다”는 계획을 첫 약속으로 내걸었다. 그 후 김정은은 “우리 체제의 최대의 적은 미제나 남조선이 아니라 탈북자”라고 선언하고 “도주하는 탈북자를 즉각 사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지시 이후 북-중 국경에서 탈북자가 사살되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지금도 김정은은 주요 탈북 사건에 대해 직접 보고를 받고 대책을 지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9일에도 함경북도 무산군에서 2세대 8명이 집단 탈북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바로 다음 날 김정은이 “당장 무산 지역을 철조망으로 완전히 봉쇄하라”는 불호령을 내렸다고 북한 전문 인터넷매체 ‘데일리NK’가 보도했다. 이 지시에 국경경비대가 하계훈련도 급히 단축하고 철조망 공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천정부지로 뛰는 탈북 비용 지난해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하태민(가명) 씨는 최근 북한에 있는 어머니를 모셔오기 위해 탈북 브로커에게 한국 돈 1000만 원을 건넸지만, 얼마 전 어머니가 탈북 도중 체포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모은 돈인데, 돈이 모자라 어머니 목숨을 빼앗겼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탈북자에 대한 처벌 수위와 함께 탈북 비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한 탈북 브로커는 “북-중 국경을 넘는 데만 700만 원 정도 써야 한다. 들키면 경비대원 자신들도 총살되기 때문에 웬만한 금액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경비대가 돈을 받으면 자기만 아는 통로로 강을 건너게 해주는데, 우리가 중국 쪽에서 대기하다가 즉시 차에 태우고 번개같이 도시로 달아난다. 그런데 변수가 너무 많아 우리도 옛날보다 훨씬 더 몸을 사린다”고 말했다. 2000년대 후반만 해도 탈북자들이 국경 경비대원에게 중국 돈 100위안(약 2만 원) 정도만 주면 강을 건널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비용이 불과 6∼7년 사이 1000만 원 이상으로 올랐다. 500배 넘게 치솟은 것이다. 그런데도 탈북자들은 “정확한 탈북 비용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지금은 성공을 장담하며 북한에서 사람을 빼오겠다는 브로커가 거의 없다고 했다. 가장 큰 불안 요인은 국경 경비대원에게 많은 돈을 주어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처음엔 국경경비대와 단속 초소를 몇 배로 늘리고 탈북자와 탈북 방조자를 엄벌에 처하는 등 고전적인 방지책에 매달렸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래도 뇌물이 통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김정은은 2010년경 “경비대원이 탈북자를 신고하면 받은 뇌물을 절대 빼앗지 않고 오히려 노동당 입당과 승진, 대학 추천을 해준다”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내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조치는 근래의 북한에선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이 같은 파격적인 조치가 내려진 뒤부터 경비대원이 돈을 받고 나서 탈북자를 신고하는 현상이 빈발해졌다. 탈북자와 국경경비대원 사이에 불신이 팽배한 결과 돈 보따리를 싸들고 가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뇌물을 주고 탈북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니 국경경비대의 ‘소득’도 떨어졌다. 탈북자들은 “국경경비대도도 결국 손가락만 빨게 됐으니 자업자득인 셈”이라고 입을 모았다. 탈북자가 국경을 넘어 중국 도시로 가도 곳곳에 위험이 도사린다. 중국 당국자들은 최근 기차표를 살 때도 신분증을 검색하고 있다. 이 때문에 탈북자들은 승용차나 버스를 타고 중국 대륙을 횡단한다. 중국 당국은 최근 이슬람 위구르족이 중동의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하기 위해 중국을 탈출해 태국 등 동남아로 가는 일이 빈발하자 남쪽 국경 통제를 강화했다. 위구르족의 탈출 루트는 탈북자들이 동남아로 이동하는 길과 겹친다. 지난해 3, 4월에도 중국은 남부 지역에서 350여 명의 밀입국 브로커를 체포했다. 이 중엔 탈북자들을 동남아 지역으로 넘겨주던 브로커가 대거 포함돼 있었다. 이 같은 사건도 탈북비용 상승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됐다. 하나원에서 만난 탈북자들은 “대다수 북한 주민은 탈북의 꿈을 점차 접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정말 목숨을 내걸 만큼 위급한 상황에 처한 주민이나 남한에 사는 가족이 브로커 비용을 대줄 수 있을 때만 탈북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내년에도 탈북자가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생계형’ 탈북에서 ‘이민형’으로 바뀔 조짐도 나타나 “가족을 데리고 오는 것은 포기했어요. 돈을 북에 보내 장사를 하도록 하는 게 훨씬 낫지요. 서로 얼굴을 못 보고 사는 건 안타깝지만, 그 편이 최선인 것 같아요.” 1년에 몇 차례씩 북에 있는 오빠에게 돈을 보낸다는 한 탈북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이어 “오빠가 와봐야 낯선 땅에서 외롭게 힘든 직업을 전전할 게 뻔한데, 차라리 내가 돈을 보내면 고향에서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사업가로 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매년 좋아지고 김정은 체제가 주민 경제활동에 대한 통제를 대폭 완화한 것도 탈북자가 감소하는 이유로 꼽힌다. 최근 ‘돈주’라고 불리는 신흥 부유층이 소규모 기업 경영에 뛰어들면서 노동력만 팔아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주민층이 두꺼워지고 있다. 죽을 각오로 탈북을 결심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탈북 비용을 댈 수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올해 탈북한 이종만(가명) 씨는 “1만 달러가 넘는 브로커 비용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왜 탈북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북한에선 1만 달러 정도의 자본이 있으면 여러 명을 고용해 사장이 될 수 있는데 목숨을 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월 30달러만 주면 인력은 얼마든지 고용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도 북한의 가족에게 많은 돈을 들여 성공 확률이 낮은 탈북길에 오르게 하기보단 돈을 보내는 사람이 점차 늘고 있다. 남한에 먼저 온 가족이 보내준 돈을 받고 중국에서 체류하지 않고 곧바로 남한으로 오는 ‘직행’ 탈북자도 거의 늘지 않고 있다. 하나원 관계자는 “하나원 입소자 중 직행 탈북자의 비율은 오래전부터 20∼30%로 고정돼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자식의 미래를 위해 탈북했다는 주민도 가끔 눈에 띈다. 지난 주말 하나원에서 만난 한 여성의 탈북 이유는 중학생 딸 때문이었다. “이 애가 외국어를 공부하고 싶어 하는데, 북에선 김일성대나 외국어대를 가고 싶어도 못 가지 않습니까. 또 배워도 쓸 데가 별로 없고요. 북에서 우리도 잘살았지만 고민 끝에 올봄 딸의 꿈을 위해 탈북했습니다.” 이는 과거 남한이 가난했던 시절 미국 등 선진국으로 자녀를 위해 가족 전체가 이민을 떠나던 상황과 흡사하기도 하다. 앞으로 탈북 양상이 ‘생계형 탈북’에서 가족의 미래를 위한 ‘이민형 탈북’으로 바뀔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주성하 zsh75@donga.com·김호경·권오혁 기자}

추석이면 저도 모르게 구글어스를 엽니다. 10년 전쯤부터 그랬던 것 같습니다. 상업적으로 도움이 안 돼서인지 북쪽 지도는 몇 년에 한 번 업그레이드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은 고향인데…. 위성지도에서 추석 때마다 가던 아버님 산소를 찾아봅니다. 여기 아니면 여긴데, 안타깝게도 점을 찍을 수 없습니다. 기약 없는 탈북의 길에 오르기 전 허름한 묘비가 맘에 걸렸습니다. 장마당에서 제일 좋은 시멘트를 사오고 철근도 구해 제가 직접 하나 든든하게 만들었습니다. 마감 미장도 직접 하고, 아버님과 제 이름을 한 글자 한 글자 깊게 파 넣었습니다. 탈북하기 3일 전쯤 그 묘비를 메고 산소에 올랐습니다. 하산 길에 ‘내가 돌아와 저 묘비 앞에 다시 설 날이 올까’ 생각해 보니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지금도 추석이면 그때가 생각납니다. 그런데 나중에 들으니 그 묘비가 뽑혀 산소 앞에 누워 있다고 합니다. 2002년에 김정일이 나무 없는 산에 묘지들만 가득한 것이 보기 싫다고 묘비를 눕히고 봉분은 20cm 이하로 깎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위성으로 아버님 봉분을 찾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입니다. 봉분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랬던 김정일이 죽어서 세상에서 제일 화려하고 으리으리한 무덤에 누워 있으니 화가 납니다. 위성으로 본 고향은 늘 저를 아프게 합니다. 여전히 산은 앙상하고 들은 헐벗었습니다. 매일 지나다니던 다리는 6년 전부터 위성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다리가 없으면 마을 사람들은 강을 어떻게 건너다닐까…. 제가 고향에 돌아가면 다리만큼은 놔 주고 싶습니다. 욕심 같아선 학교도 세워 주고, 병원도 세워 주고 싶지만, 그럴 능력이 아직은 없습니다. 물론 고향사람들끼리 모으면 불가능하진 않겠죠. 그렇지만 그럴 날이 과연 올까요. 한 해 두 해 빠르게 세월이 흘러가니 점점 두려운 생각이 납니다. 남쪽에 갓 왔을 때 임진각 망배단에서 북녘 하늘을 향해 제를 올리는 실향민들을 봤습니다. 그땐 “나는 젊었으니 고향에 꼭 갈 수 있을 거야”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나 점점 세월이 덧없이 흐르다 보니 망배단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훔치던, 지금은 살아 계신지도 모를 그분들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문득문득 듭니다. 이달 초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탄생 100주년 세미나에 참가해 토론했습니다. 소 떼를 몰고 고향에 간 이야기, 평양에 류경정주영체육관을 세운 이야기를 들으며 부러웠습니다. 저도 비록 돌아가지 못해도 고향을 위해 뭔가 하고 싶었습니다. 남쪽에 살면서 내일이라도 죽게 되면 가족도 없는 제 유산은 어떻게 될까 늘 궁금했습니다. 그러니 서울에서 집 살 생각도 없고, 돈을 모아 놓을 미련도 없어집니다. 믿을 곳만 있다면 “제 재산을 처분해 나중에 고향에 제 이름을 딴 다리를 좀 놓아 달라”라고 유언장이라도 미리 써 놓고 싶습니다. 지금은 방법이 없습니다. 실향민들의 유지를 받들 재단이 없습니다. 유산을 아무 곳에나 맡길 수도 없습니다. 지금 북한에 무턱대고 돈을 보내면 대부분이 어느 부패 관료의 주머니에 들어갈 것이 뻔합니다. 유언을 확실하게 집행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때까지 수십 년 기다려 줄 수 있으면서도 마무리까지 신뢰할 수 있는 재단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일은 국가 차원에서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통일항아리가 별건가요. 이런 생각 저만 하고 있을까요. 매년 수천, 수만 명의 실향민이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분들 중에 저 같은 생각 가진 분이 없었을까요. 아직도 수십만 명의 실향민이 남아 있습니다. 물론 내년이라도 고향 방문 길이 열린다면 꿈만 같겠죠. 미국 교포는 30년 전부터 고향을 방문했는데 남쪽 실향민이라고 안 될 게 뭐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 정부가 북한에 제안했다는 기억조차 없습니다. 어차피 남쪽이 잘산다는 것은 이미 북한 사람들도 알고도 남았는데 운신도 어려운 실향민들이 체제에 무슨 그리 큰 위협이 되겠습니까. 김정은을 설득해 북한이 만든다는 19개 경제특구 지역에 고향을 둔 실향민부터라도 고향에 가 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게 당장 안 된다면 비록 북녘 고향에 육신은 돌아가지 못해도 이름 석 자만이라도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주영체육관이 평양에 세워졌듯이 말입니다. 어제 오늘 생각이 아닙니다. 10년 넘은 생각입니다. 더 늦기 전에 실향민들의 유지를 받들 수 있는 재단 설립을 박근혜 대통령께 정중히 요청드립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 정찰총국 소속 해외 암살 및 납치 공작조가 올 3월 중국 지린(吉林) 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에서 한국인을 납치해 북한으로 끌고 가려다 중국 당국에 체포된 것으로 밝혀졌다. 17일 옌볜의 정통한 소식통은 “정찰총국 요원 5∼8명이 한국인 납치를 시도하다가 현재 지린 성 모처에 구금돼 있으며 소속과 직책, 관련 작전 내용을 전부 중국 측에 자백했다”고 말했다. 한국인 납치는 정찰총국과 국가안전보위부의 충성 경쟁에서 비롯된 것으로 관측됐다.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김영철이 총국장으로 있는 북한 정찰총국과 김원홍이 부장으로 있는 국가안전보위부가 지난해부터 중국에서 한국인들을 경쟁적으로 납치하고 있다”며 “이번 일도 김영철이 김정은에게 납치 공적을 보고하기 위해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북한 간부 출신의 한 탈북자는 “김영철과 김원홍 모두 중국에서 한국인을 납치한 뒤 김정은에게 ‘공화국에 대한 적대행위를 하던 간첩을 잡았다’고 과장 보고해 공을 인정받으려 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2013년부터 중국에서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 등 한국인을 납치 또는 북한으로 유인해 억류했다. 이들은 모두 몇 달 뒤 북한 TV에 출연해 한국 정보기관의 첩보원으로 활동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번에 납치될 뻔한 한국인도 선교 활동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의 납치 사건은 북한과 중국 간 외교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 옌볜 소식통은 “북한은 이번에 공작원들의 존재를 부인하며 방치하고 있지만, 이 사건은 중국 지도부에 보고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과거 자국 내에서의 북한 공작조의 활동을 눈감아 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작조 전원 체포를 통해 ‘더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분명히 보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냉랭해진 북-중 관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 “김영철 ‘한국간첩 납치’ 공 쌓으려 무리수” ▼북한이 중국에 보내는 납치 요원들은 최정예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공작원은 국경 지역에서 한국인과 탈북자를 상대로 위압감을 조성하는 이른바 ‘위세조’와 암살 또는 납치를 전문으로 하는 ‘납치조’ 등 크게 두 부류다. 이번에 중국 당국에 체포된 이들은 납치조다. 요원 대다수가 특수훈련을 받고 조를 짜서 그림자처럼 움직이고 있다고 전해졌다. 대북 소식통은 “이번 사건으로 북한 요원들이 중국에서 한국인들을 납치해 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잡혀 김영철이 큰 어려움에 빠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영철(사진)은 김정일이 통치하던 당시 인민군 정찰국장으로 지내며 김정은에게 군사 관련 개별 교습을 해준 인연으로 그의 눈에 들었다. 그 후 정찰국이 노동당 35호실과 작전부를 흡수해 정찰총국으로 되던 2009년 5월 당시에는 정찰총국장을 맡았다. 당시 대북 전문가들은 군 정찰국이 노동당 소속의 거대 해외 공작조직을 흡수한 것은 의외라고 분석했다. 노동당 35호실은 1978년 최은희 신상옥 씨 납치, 1987년 KAL 858기 공중 폭파를 기획한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작전부 역시 대남공작과 해외공작 모두를 담당해 왔다. 김영철은 정찰총국장으로 임명된 뒤 김정은의 신임을 받기 위해 크고 작은 도발을 일으켜 북한의 대표적 강경파 인물로 분류돼 왔다. 하지만 그는 2013년부터 지금까지 세 번 승진하고 두 번 강등당하기도 했다. 특히 김영철은 승진한 뒤엔 남한에 대한 도발을 기획해온 인물로 알려져 왔다. 2009년에는 정찰총국 소좌급 공작원 2명을 직접 만나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암살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보당국은 천안함 폭침의 배후로 김영철을 지목했다. 김영철은 2010년 10월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하고 한 달 뒤 연평도 포격 도발을 주도했으며 2013년 2월에는 개성공단 폐쇄를 주도했다. 지난달 21일에는 평양에서 외신기자들을 불러 지뢰 도발과 남한 확성기 포격 사실을 부인하고 남측을 위협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대북 소식통은 “8월 초 군사분계선(DMZ) 목함지뢰 도발도 김영철이 공작조 체포 사건을 수습하지 못해 궁지에 몰리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영철은 8월 기자회견 이후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