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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민갑룡 경찰청장 후보자(53·경찰대 4기)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경찰 수사의 정치적 중립성이 도마에 올랐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인사청문회에서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의 골프 접대 의혹이 보도된 경위를 두고 민 후보자를 집중 공격했다. 윤재옥 자유한국당 의원은 “(프로암 골프 대회에) 총 108명이 참가했는데 왜 김 위원장만 수사 대상이냐. 비대위원장 지명 당일 (내사 사실이) 보도된 일은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민 후보자가 “(언론 보도 경위를) 확인 중”이라고 답하자 윤 의원은 재차 “(보도가 된 건) 잘못된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드루킹’ 김동원 씨 댓글 여론조작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부실했다는 질타도 이어졌다. 한국당 김영우 의원은 “진실을 밝히려는 건지, 진실을 가리려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바른미래당 주승용 의원은 “컨테이너 창고에서 증거물이 엄청나게 나오고 드루킹 일당이 이를 옮기는데도 수수방관한 것은 부실 수사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민 후보자는 “특검 수사를 지켜보고 있다”며 자세를 낮추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폭력조직의 유착 의혹도 공방의 소재가 됐다. 한국당 김영우 의원은 “의혹을 몰랐다면 경찰이 무능한 거다. 알고도 내사나 수사가 없었다면 말 그대로 직무유기”라고 민 후보자를 몰아세웠다. 민 후보자는 “방송 보도 내용에 범죄가 있는지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김민기 의원도 ‘경찰에게 돈을 주고 함께 지낸다’는 폭력조직원의 방송 인터뷰를 거론하며 진상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민 후보자는 “이전에 관련 사안으로 이미 처벌받은 경찰관이 있다. 추가로 징계할 대상이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했다. 경찰대 출신인 민 후보자가 경찰에 투신한 30년 중 절반 이상을 기획 부서에서 보내며 초고속 승진을 한 데 대한 지적도 나왔다. 청문보고서 채택 논의는 민 후보자와 문재인 대통령의 ‘사적인 관계’ 논란으로 24일로 미뤄졌다. 한국당은 이무영 전 경찰청장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2016년 경찰의날 당시 민갑룡 경무관이 누군가와 통화하는데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였다”고 언급한 것을 근거로 민 후보자와 문 대통령의 관계를 의심했다. 민 후보자는 “사적으로 모르는 사이다. 전화한 적이 없고 전화번호도 모른다”고 했다.장관석 jks@donga.com·조동주 기자}

‘보호관찰 2년.’ 지난해 9월 또래 여중생을 피범벅이 되도록 구타하고 이를 촬영한 이른바 ‘부산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 당시 만 13세로 촉법소년이었던 공범 A 양에게 최근 내려진 법원의 처분이다. 당시 A 양 등 4명은 부산 사상구의 한 공장 인근으로 피해자를 유인해 1시간 넘게 공사자재, 의자, 유리병 등으로 100여 차례 때렸다. 피를 흘리며 무릎을 꿇고 우는 피해자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오며 공분을 샀다. 하지만 A 양은 촉법소년이라 형사처벌 없이 2년 동안 보호관찰관과 정기 면담만 하면 전과도 남지 않는다.○ 어른 닮아가는 촉법소년 범죄 잔혹한 범죄를 저질러도 면죄부를 받는 10세 이상 14세 미만 촉법소년들의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현행법상 이들을 형사 처벌할 수는 없다. 지난달 26, 27일 여고생을 노래방과 관악산으로 끌고 가 집단폭행하고 성추행하는 데 가담한 청소년 10명 중 1명인 B 양(13)도 촉법소년이어서 형사 처벌을 피했다. 경찰에서 바로 서울가정법원으로 송치된 B 양은 향후 보호관찰 처분만 받을 가능성이 높다. 18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촉법소년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7.9%(3167명→3416명) 늘었다. 촉법소년 3416 명 중 65.7%가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 마지막 나이인 13세였다. 대부분 중학교 1학년인 13세의 범죄는 지난해보다 14.7% 늘어났다. 범죄 유형은 형사 처벌 대상인 14세 이상 청소년과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 단순 절도는 지난해보다 2.3% 줄어든 반면 폭력은 21% 늘었다. 인터넷을 이용한 중고물품 판매 사기 같은 지능사범은 33.7%나 증가했다. 촉법소년들의 범죄수법도 성인 못지않게 교묘하다. 수도권에 사는 중학교 1학년 C 양(13)은 4월 같은 학교 여학생의 평소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혼내줘야겠다며 치밀하게 계획을 짰다. 자신이 만나자고 하면 거부할 수도 있어 피해자와 친분이 있던 다른 친구를 이용해 전화로 피해자를 지하철역으로 유인했다. 이후 미리 공모한 중1 남학생 3명과 함께 피해자를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끌고 가 마구 때렸다. 가해자 모두 촉법소년이라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다. 성범죄를 저지른 촉법소년은 올 상반기 179명에 달했다. D 군(13)은 지난달 말 경기도의 한 학원 여자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또래 여학생을 몰래 찍다가 적발됐다. 최현아 경찰청 청소년계장은 “요즘 청소년이 신체와 정신 모두 조숙해지면서 어른의 범죄 방식을 따라하는 연령대가 점차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촉법소년 연령 13세 미만으로 낮춘다 만 9세 이하인 ‘범법소년’의 범죄도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14일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2학년 학생이 옆자리 학생을 연필로 찔러 연필이 요추에 5cm 박히는 사건이 벌어졌다. 피해 아동이 발표를 마치고 앉으려는 순간 짝꿍이 옆자리 의자에 연필을 갑자기 갖다댄 것이다. 피해 아동의 아버지는 “입원한 아이가 앉아 있을 수도 없을 만큼 크게 다쳤고 트라우마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범법소년의 범죄는 아예 사건 접수조차 되지 않아 수사를 할 수 없다. 촉법소년의 잔혹한 범죄가 잇따르면서 법무부는 올해 안에 촉법소년 연령을 14세 미만에서 13세 미만으로 낮추는 내용으로 소년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부산과 강원 강릉에서 벌어진 10대들의 집단 폭행사건을 계기로 청소년 범죄라도 혐의가 중하다면 구속 수사 등 엄중히 다루겠다는 방침을 세웠다.조동주 djc@donga.com·김은지 기자}

“지금도 점포를 운영해 버는 순이익이 주당 40시간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보다 적습니다. 최저임금이 여기서 더 오른다면 더 이상 편의점을 운영할 이유가 없어요.” 올해로 8년째 서울 강북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 씨(39)가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 편의점의 월 매출은 5000만 원 정도다. 평균 25% 마진을 감안하면 원가를 제외한 금액이 약 1250만 원. 가맹본사에 지급하는 수수료(350만 원)와 각종 세금 및 운영비(100만 원)를 제외하면 김 씨 통장에 찍히는 액수는 800만 원 정도다. 여기서 임대료(100만 원)를 내고 주중 및 주말에 각각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5명에게 주는 인건비 600만 원을 빼면 김 씨의 순이익은 100만 원에 불과하다. 김 씨는 “인건비를 아끼려고 하루에 나도 일할 만큼 하지만 아르바이트생들이 한 달에 받는 월급 120만 원보다 못한 돈을 벌고 있다”며 “폐점하고 싶어도 본사와 계약기간이 3년 더 남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 예고에 뿔난 편의점업계 최저임금위원회의 최저임금 인상 결정을 앞두고 직격탄을 맞게 되는 편의점주와 자영업자들이 “이렇게는 못 살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GS25와 세븐일레븐, 이마트24, CU 등 국내 편의점 가맹점주 3만여 명으로 구성된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전편협)는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 인상 결과에 따라 7만여 편의점의 동시 휴업까지 불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올해 최저임금이 오른 후 편의점 점주들은 스스로 근무시간을 늘리거나 심야 영업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인건비를 최소화했다. 하지만 지금이 한계상황이라는 것이다. 서울 동작구에서 아르바이트생 3명을 쓰며 편의점을 운영하는 조모 씨(56)는 “아내와 번갈아 가며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하루 15시간 일하지만 매달 150만 원밖에 못 번다”며 “9월 편의점 본사와 재계약을 앞두고 있는데 최저임금이 지금보다 더 오르면 가게를 접을 것이다. 차라리 다른 곳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뛰는 게 낫겠다 싶다”고 말했다. 서울 도봉구의 편의점주 김모 씨(64·여)는 내년도 최저임금이 오르면 매일 오후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편의점 문을 닫을 예정이다. 상대적으로 한적한 이 시간대에는 수익보다 야간 아르바이트생 인건비가 더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김 씨는 오전 시간대에 직접 편의점을 맡고 아들이 직장에서 퇴근한 뒤인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일을 해줘 한 달에 200만 원가량을 벌고 있다. 김 씨는 “최저임금이 1만 원이 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기사에 꼭 써 달라”고 강조했다. 전편협과 편의점업계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790원으로 올랐을 때를 가정해 편의점주와 아르바이트 직원의 월 수익을 비교한 결과 아르바이트 직원의 월급은 현재 143만9652원에서 206만2928원으로 오르는 반면에 편의점주의 월 수익은 130만2000원에서 26만3000원 적자로 돌아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편의점주들이 최저임금이 1만 원대가 되면 폐업하는 게 낫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 필요… 무인화 앞당겨” 요식업이나 카페, PC방 등을 운영하는 소규모 자영업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프랜차이즈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 씨(61)는 일주일 동안 오전 10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일하지만 수익은 매달 300만 원을 밑돈다. 그나마 아들과 며느리까지 식당에 동원해 아르바이트생을 6명까지 줄여서 이 정도다. 서울에서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 씨(55)는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가 10% 이상 늘어 직원뿐 아니라 영업시간까지 줄였는데 올해는 또 무슨 수를 써야 할지 막막하다”면서 “정부가 현장 목소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에만 혈안이 돼 있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물가 상승도 우려된다.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 직후 외식업계는 일제히 가격을 올렸다. 가격인상 부담으로 일부 프랜차이즈업체는 배달료를 추가로 받기 시작했다. 최저임금 후폭풍이 자영업자 부담과 고용 감소에 이어 소비자 피해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며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인건비 비중이 높아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타를 맞는 자영업자들의 목소리를 엄살로 치부해선 안 된다”면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무인화나 자동화 시기를 앞당겨 오히려 고용을 크게 감소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염희진 salthj@donga.com·강승현·조동주 기자박희영 인턴기자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과 졸업 이윤태 인턴기자 연세대 사학과 4학년}
제주에서 실시 중인 자치경찰제의 대상 분야가 확대된다.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의 전제조건인 자치경찰제 전국 시행 방침의 선제 조치다. 경찰청은 제주 전역의 자치경찰에 생활안전, 교통, 여성청소년 업무를 이관하기로 했다고 5일 밝혔다. 기존 동부경찰서 관할에 한해 자치경찰에 맡겼던 업무를 제주 전역으로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자치경찰제 시범모델이 됐던 동부경찰서는 기존 업무에 112 신고 처리까지 자치경찰단에 맡기기로 했다. 이로서 동부경찰서 관할에서 신고된 교통불편과 분실물, 소음 등 생활밀착형 112 신고는 자치경찰이 담당한다. 경찰은 전국 자치경찰의 실험모델인 제주 자치경찰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아야 경찰의 숙원 사업인 검·경 수사권 조정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내년으로 예정된 자치경찰제 광역단위 시범 시행을 앞두고 제주 자치경찰 실험 범위를 점진적으로 확대시키며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경찰은 올 4월 제주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 27명을 제주자치경찰단으로 파견해 폐쇄회로(CC)TV 관제센터와 교통 등 생활밀착형 업무 노하우를 전하고 있다. 경찰은 자치경찰제 확대 시행에 맞춰 7월 중 순찰인력과 112 상황실 요원 등 국가경찰 인력을 추가로 자치경찰단에 파견할 예정이다.조동주 기자djc@donga.com}

“평생 여왕벌만을 위해 죽도록 일하는 일벌 신세죠.” 서울지역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의 푸념이다. 순경 출신으로 현재 경위인 그는 경찰조직을 이렇게 비유했다. 순경 출신이 96%에 이르지만 불과 2.7%인 경찰대 출신이 총경 이상 고위직의 56.3%를 차지하는 현실 탓이다. 순경 출신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경찰의 꽃’인 총경으로 승진하기 어렵다는 한탄이 담겨 있다. 지난해 12월 단행된 총경 승진 인사자 86명 중에서도 순경 출신은 11명(12.8%)에 불과했다. 경찰대 출신은 45명(52.3%)이었다. 4일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 총경 이상 고위직 693명 중 순경 출신은 6.8%(47명)에 불과했다. 순경 출신 경무관은 76명 중 김해경 인천지방경찰청 1부장(59·여)뿐이다. 치안감 이상에서는 34명 중 한 명도 없다. 순경 출신이 어렵사리 총경이 돼도 주요 보직에서 배제되기 일쑤다. 서울지역 경찰서장 31명 중 순경 출신은 한 명도 없다. 대표적 승진 코스인 경찰청 과장 57명 중에도 순경 출신은 김원태 경찰청 범죄정보과장(49)뿐이다. 주요 보직에 순경 출신 간부가 없다 보니 경무관 승진 대상자를 찾는 건 더 어렵다. 보통 인사고과에서 5배수 인원을 정한 뒤 승진자를 선발한다. 순경 출신이 거의 없어 5배수에 포함만 되면 ‘입직경로 쿼터제’에 따라 승진이 유력하다. 하지만 대상자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총경의 경우 순경 출신은 정년을 앞둔 경정이 승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주요 보직에서 제외돼 경무관 승진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경찰 내부에서는 이런 실태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경찰조직의 입직 경로를 관리하는 기준 탓이다. 경찰은 입직 경로를 ‘경찰대’ ‘간부후보생’ ‘고시 출신’ ‘기타’로만 분류한다. 이에 따라 분류하면 전국 총경 583명 중 ‘기타’는 93명(16%)이다. 그중 경장∼경위 특채 출신을 빼고 순경 출신은 46명(7.9%)에 불과하다. 일종의 ‘착시효과’ 인 것이다. 경찰대의 고위직 독식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전국 총경의 54.9%, 경무관의 67.1%, 치안감 이상의 55.9%가 경찰대 출신이다. 청와대는 검경 수사권 조정 정부안을 발표하며 경찰대 개혁을 전제 조건으로 강조했다. 경찰대 4기인 민갑룡 경찰청장 후보자는 최근 균형인사와 인사절차 투명성 제고를 강조했다. 민 후보자가 입직 경로를 안배해 인사청문회 준비팀을 꾸린 것도 인사균형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라는 게 경찰 안팎의 해석이다.조동주 djc@donga.com·홍석호 기자}
2014년 6월 제1회 원가분석사 자격시험이 치러졌다. 원가분석사는 공공 또는 민간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위해 정확한 원가를 분석하고 산정한다. 국가공인 자격증을 따야 한다. 당시 건국대 산학협력단 A연구소 본부장이던 김모 씨(52·겸임교수)는 원가분석사 자격시험의 채점위원으로 위촉됐다. 해당 시험에는 김 씨의 친동생이 응시했다. 김 씨는 동생의 OMR 카드 답안지를 빼돌린 뒤 직접 정답을 적어 넣었다. 원가 분석에 문외한이었던 김 씨 동생은 무난히 합격했다. 김 씨의 비리는 기막힌 채점에서 그치지 않았다. 2일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따르면 김 씨는 2008년부터 9년간 연구 용역비를 빼돌리고 가짜 직원을 등재시켜 급여를 가로채는 방식으로 약 21억 원을 챙긴 혐의(사기, 배임 등)를 받고 있다. 대학 산학협력단의 경우 연구소 본부장이 직원 선발 등 실질적인 운영권을 갖게 되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김 씨는 자신이 사적으로 운영하는 연구소나 지인의 연구소를 통해 연구 용역을 받은 뒤 실제 연구는 A연구소 직원에게 무상으로 시키는 방식으로 대금을 챙겼다. 연구소에 가짜 직원으로 등록시킨 지인들에게 대학 산학협력단이 급여를 지급하면 이를 돌려받기도 했다. 김 씨는 또 자신의 연구소에 연구 용역을 계속 맡겨달라는 청탁과 함께 기상청 사무관 등에게 8년 넘게 뇌물을 바쳐 왔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2009년 2월∼2017년 5월 기상청 경리 담당자 2명과 특정 협회 직원 1명 등 3명에게 각각 2000여만 원씩 6000여만 원을 뇌물로 준 혐의도 받고 있다. 김 씨의 지시를 받은 연구소 팀장들은 1회당 100만∼200만 원씩을 봉투에 담아 직접 기상청을 방문하거나 퀵서비스를 이용해 전달했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스물다섯 철없던 청년이 경찰이 돼 어느덧 37년이 흘렀습니다.” 이철성 제20대 경찰청장(60)은 29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정년퇴임식에서 감회 어린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 청장은 1982년 순경 공채로 들어와 37년간 경찰 11개 계급을 모두 거치고 정년을 마친 첫 경찰청장이 됐다. 2016년 8월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그는 임기를 채우며 문재인 정부 첫 경찰청장으로도 이름이 남게 됐다. 이 청장은 이날 퇴임식에서 “청장으로 보낸 지난 22개월은 셀 수 없는 고비와 도전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취임 2개월 만에 대규모 촛불집회 사태를 맞은 그는 집회에 나온 시민들에게 보내는 해산 촉구 문구를 직접 써 일선에 전달했다. 문구에는 ‘불법 행위로 여러분의 주장이 퇴색되지 않도록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십시오’ 등이 담겼다. 이 청장은 최근 “민심의 큰 흐름을 경찰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6개월 넘게 전국에서 연인원 약 1000만 명이 참여한 촛불집회를 별다른 충돌 없이 마무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재인 정부에서도 유임됐다. 이 청장은 인권경찰을 표방하는 정부 기조에 따라 민간인 경찰개혁위원회를 출범시켜 내부 개혁에 착수했다. 경찰 인권의식을 향상시키고 검경 수사권 조정의 틀을 만들었다는 호평과 시민단체 인사들에게 경찰 조직이 휘둘려 공권력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이 엇갈린다. 이 청장은 탁월한 정무감각으로 경찰의 숙원인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8월 ‘민주화의 성지’ 발언을 둘러싼 강인철 전 광주지방경찰청장과의 갈등, 지난해 말 사의 표명 논란 등 여러 고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청와대 신임을 받으며 정년을 마치게 됐다. 이 청장은 재임 기간 경찰 조직 11개 계급의 통합 추진을 성공시키지 못한 것을 아쉬운 대목으로 꼽았다. 그는 이날 경찰청 정문에 깔린 레드카펫을 밟고 정든 조직을 떠났다. 그는 당분간 부인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제빵 및 요리를 배울 예정이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중국인 송모 씨(41·여)는 지난해 1월 관광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수도권의 한 공장에 불법 취업했다. 관광비자 유효기간인 90일 후에도 한국에 머물 방법을 찾던 그는 중국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올라온 글을 보고 솔깃했다. 중국 정부의 종교적 박해를 받던 ‘파룬궁’ 수련생으로 한국에 온 난민으로 꾸며주겠다는 거였다. 송 씨는 브로커 진모 씨(51)가 꾸며준 각종 가짜 서류로 출입국외국인청에 난민신청을 했다. 경찰은 올 4월 ‘가짜 난민신청자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수사한 끝에 송 씨와 진 씨 등을 붙잡았다. 진 씨는 300만∼500만 원을 받고 송 씨 등 중국인 4명을 파룬궁 수련생으로 둔갑시켜 가짜 난민신청을 한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청은 3월부터 100일간 가짜 난민신청과 제주도 무단이탈 등 불법 입·출국범죄, 국제 보이스피싱과 마약 밀반입, 해외 원정 성매매 등 각종 국제범죄를 집중 단속해 387건을 적발하고 868명을 붙잡았다고 26일 밝혔다. 적발된 피의자 중 49%(868명 중 425명)가 불법 입·출국 사범이었다. 대부분 일자리를 구하려 한국에 불법 입국하거나 가짜로 난민신청을 한 외국인이었다. 제주에 무비자제도를 이용해 입국한 뒤 본토로 밀항하려던 외국인과 브로커 15명도 포함됐다. 중국인 추모 씨(53)는 4월 제주에서 전남 여수항으로 향하는 화물선에 실린 감귤 운반차 트렁크에 숨어 밀항하다가 헬기와 함정을 동원한 경찰의 추적 끝에 붙잡혔다. 추 씨 뒤에는 “600만 원을 주면 한국 본토로 보내주고 더 좋은 일자리를 마련해주겠다”고 유혹한 한국인 브로커 임모 씨(43)가 있었다. 해외에 유령회사를 세우고 불법 입국을 원하는 외국인을 회사 소속 수입상으로 위장시켜 국내로 입국시킨 경우도 있었다. 한국에 유령회사를 세우고 해외에 있는 외국인에게 유령회사 명의로 초청장을 보내 입국시키는 방식이 노출되자 아예 외국에 유령회사를 세워 추적을 어렵게 하는 수법으로 진화한 것이다. 경찰은 최근 베트남과 아랍에미리트(UAE)에 유령 회사를 세우고 베트남 파키스탄 인도인들을 수입상으로 속여 국내로 입국시킨 한국인 브로커 2명을 구속했다. 경찰은 향후 불법 입국하거나 가짜 난민신청을 하는 외국인이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보다 평균임금이 낮은 중국과 동남아 사람들은 한국에 불법 입국했더라도 난민신청을 한 뒤 심사 결과에 불복해 재심사를 거치고 다시 대법원까지 소송을 진행하면서 2∼3년씩 버티고 있다. 그 기간만이라도 한국에서 일하면 본국에 있을 때보다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계산에 일단 한국에 들어오고 보자는 외국인이 늘고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활성화하고자 비자 발급 절차가 간소화되고 한국과 무비자협정을 맺는 국가가 늘어나면서 한국에서 벌어지는 국제범죄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현직 부장검사가 국민의 인권 보호를 위해 검찰의 수사지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수산나 청주지검 부장검사는 22일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수사지휘 사례를 통해 본 검사 수사지휘의 필요성’이란 제목의 글을 올려 검경 수사권 조정 정부 합의안을 반박했다. 강 부장검사는 “검찰의 수사지휘는 법률가인 검사가 적법 절차에 따른 인권 보호와 적정한 형벌권 행사를 하도록 만든 제도이므로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검경 합동 수사회의나 유기적인 수사지휘는 법률 적용을 잘못한 사안에 대해 제대로 된 수사 방향을 알려주고, 증거가 부족한 상태로 청구한 영장은 보완 지휘하는 등 효율적인 수사 성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강 부장검사는 적절한 수사지휘의 대표적 사례로 2016년 3월 화장실에 감금돼 표백제와 찬물 세례, 구타 등의 학대를 받다 숨진 경기 평택 신원영 군(7) 사건을 들었다. 당시 경찰은 피의자들의 진술에만 의존해 신 군의 시신을 찾지 못하는 등 수사가 난항에 빠졌다. 이에 검찰은 수사지휘를 통해 신용카드와 교통카드 사용명세 분석 등 수사 범위 확대를 지시했고 결국 신 군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검찰은 또 정부 합의안과 관련해 △사건관계인이 이의를 제기하기 전까지 경찰 수사 과정에서 인권침해 등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는 점 △공소시효가 짧은 선거사건 등에서 경찰이 시효가 임박해 송치할 경우 제대로 수사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우려하고 있다. 반면 경찰은 상급자의 수사지휘를 서면으로 적시하는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고 24일 밝혔다. 향후 수사권 조정이 현실화하면 1차 수사를 전담할 경찰의 수사지휘에 대한 책임과 공정성을 강화하려는 포석이다. 당초 상급자의 수사지휘 내용은 체포·구속, 영장에 의한 압수·수색·검증, 송치 의견, 사건 이송 등 4개 항목만 서면으로 남겨왔는데 앞으로는 범죄 인지, 법원 허가에 의한 통신수사까지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앞으로는 또 수사지휘자와 이견이 생겨 경찰관이 서면지휘를 요청한 사항도 반드시 서면으로 지휘 기록을 남겨야 한다. 김윤수 ys@donga.com·조동주 기자}

충북 보은의 A 소방대원은 1월 구급차에서 환자 보호자에게 폭행을 당했다. 교통사고 부상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던 중 그의 아버지가 갑자기 “구급차가 왜 이렇게 속도가 느리냐”며 주먹과 휴대전화로 머리와 목을 마구 때린 것이다. A 소방대원은 전치 3주 진단을 받았다. 또 경남 창원의 B 해양경찰은 지난해 4월 덕동항 부두에서 해삼을 불법 유통하는 어선을 단속하다 바다로 추락했다. 단속에 저항하며 배를 출발시키려던 어부가 바다로 밀어버린 것이다. B 해양경찰은 동료에 의해 구조됐다. 이렇게 공무를 집행하다 폭행을 당해 숨지거나 부상을 입는 경찰, 소방관, 해양경찰 등 ‘제복 입은 공무원’(MIU·Men In Uniform)이 최근 3년간 총 2048명으로 연평균 683명에 달한다. 지금까지 폭행 피해를 입은 제복 공무원들은 대부분 부당한 폭력에도 과잉 대응 논란을 우려해 적법 절차에 따른 정당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만약 경찰관이 폭행 대응 과정에서 상대편이 다치기라도 하면 사비를 털어 치료비를 물어줘야 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에는 경찰이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부상을 입히면 정부가 배상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한 20대 경찰관은 최근 “3년 동안 20번 이상 폭행을 당했다”며 제복 공무원 폭행에 적극 대처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렸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전북 익산소방서 강연희 소방경(51·여)이 병원으로 이송하던 취객에게 맞아 숨진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는 더 이상 폭행 피해를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4일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이철성 경찰청장, 조종묵 소방청장, 박경민 해양경찰청장이 함께 발표한 호소문은 김 장관의 제안으로 성사됐다. 이들은 호소문에서 “제복은 국민을 위한 다짐이자 국민을 위한다는 긍지, 그리고 부여받은 막중한 임무에 대한 명예”라며 “제복의 명예가 사라지고 사기가 떨어진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또 “제복 공무원도 똑같은 국민으로, 우리의 이웃이고 누군가의 존경하는 아버지 어머니이고 자랑스러운 아들딸이며 사랑스러운 친구 연인”이라며 “그들의 인권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장관은 “제복 공무원들에 대한 욕설과 폭력을 근절해 한국 사회가 한 단계 도약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제복 공무원에 대한 폭행을 중대한 범죄로 규정하고 엄중 처벌하기로 했다. 그동안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등 공무 집행을 방해하는 경우 훈방 처분을 많이 했지만 앞으로는 공무집행방해죄를 엄격히 적용해 형사처벌할 방침이다. 공무집행방해죄를 저지르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경찰은 현장 경찰관의 경고와 제지에 응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수갑을 채우기로 했다. 소방은 구급대원 폭행 시 전자충격기와 섬광 랜턴 등 자위 수단을 쓸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할 방침이다.서형석 skytree08@donga.com·조동주 기자}

정부가 4일 경찰, 소방, 해양경찰 등 ‘제복 입은 공무원(MIU·Men In Uniform)’에 대한 폭행과 언어폭력을 멈춰 달라는 대국민 호소문을 냈다. 지난달 베테랑 구급대원 강연희 소방경(51·여)이 병원으로 이송하던 취객의 폭행으로 숨지는 등 매년 제복 공무원 약 700명이 공무수행 중 맞아 부상을 입거나 숨지는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이철성 경찰청장, 조종묵 소방청장, 박경민 해양경찰청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제복 공무원이 자부심을 가지고 헌신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위해 국민들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했다.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제복 공무원들은 현장에서 일부 국민의 분노 표출과 갑질 행위로 고통을 받고 있다”며 “제복 공무원의 적법한 공무수행을 존중하고 격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또 “인권과 안전은 든든한 공권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며 “제복 공무원에 대한 폭행은 사회 안전을 약화시키고 국민 인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불법 행위로 판단해 엄중히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조동주 djc@donga.com·서형석 기자}
6·13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31일 시작됐지만 일부 이동통신사가 후보들의 문자메시지 발송량을 제한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이통사 측은 특별한 근거 없이 ‘고객 민원’을 이유로 하루 500건 이상의 문자메시지 발송을 금지하고 있다. 후보들은 선거비용을 줄일 수 있는 효율적인 운동이 가로막힌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경북지역 시의원 후보 A 씨는 최근 한 알뜰폰(MVNO) 업체에 휴대전화 개통을 신청하면서 “합법적 선거운동을 위해 문자메시지 일일발송 제한 조치를 해제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통신망을 빌려주는 KT가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불법 스팸이 아니라는 게 확인되면 하루 문자 500건 제한을 풀어줄 수 있다’는 내용의 약관도 확인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31일 지방선거 출마 후보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직선거법상 후보가 본인 이름의 휴대전화를 통하면 한꺼번에 최대 20명까지 선거 관련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정보기술(IT)을 활용해 ‘문자운동’을 하는 후보가 많다. 후보 측이 전화번호를 직접 20개까지 선택해 합법적인 문자를 쉽게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통사들이 합법적인 선거 문자 발송에까지 일일 제한 방침을 고수하면서 일부 후보와 마케팅 업체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선거 특수’를 기대한 마케팅 업체 B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 600여 명을 고객으로 유치했지만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31일 계약을 유지한 후보는 12명에 불과하다.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선거운동에 어려움을 느낀 후보들이 잇달아 계약을 해지한 것이다. B사 관계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합법이라는 유권해석을 받고 시작한 일인데 이통사가 아무 법적인 근거 없이 ‘갑질’을 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KT는 합법적인 선거 문자라도 제한 없이 발송되면 고객 민원이 늘어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일일 제한을 막을 법적 근거는 없지만 고객들이 ‘문자폭탄’에 시달릴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KT는 관할 부처에 수차례 관련 지침을 정확히 내려달라고 요청했지만 별다른 답변을 받지 못해 난감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아버지 사진이 여기 있네! 나도 여기 있어!”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56·사진)는 29일 수도권의 한 아파트 거실에서 이렇게 외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가 손에 든 갈색빛 낡은 사진에는 일곱 살 당시의 자신과 아버지 태형길 씨 등 가족 친지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는 사진 속 아버지와 친척들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태 전 공사에게 귀중한 선물을 준 주인공은 이날 기적처럼 상봉한 남한 내 혈육 A 씨였다. 북한 권력 핵심부의 비밀을 폭로한 태 전 공사의 증언록 ‘3층 서기실의 암호’ 470쪽에 ‘아버지의 이모의 아들’로 등장하는 A 씨는 태 전 공사의 5촌 아저씨뻘이다. A 씨는 최근 발간된 증언록을 사서 읽고 태 전 공사가 5촌 친척이라는 사실을 확신했다고 한다. A 씨가 태 전 공사의 전 직장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 전화를 걸면서 이날 만남이 성사됐다. 2016년 8월 가족과 함께 탈북한 그가 한국에서 혈육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탈북때 사진 못 챙겨왔는데…” 아버지 모습 어루만지며 눈물 ▼태 전 공사는 70년 가까운 세월을 건너 남한 땅에서 5촌 아저씨 A 씨를 만나자마자 부둥켜안고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혈혈단신으로 온 남한에서 혈육을 만났다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듯했다. 어느덧 80대가 된 A 씨에게 큰절을 올리곤 그리운 가족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6·25전쟁 당시 남한으로 내려왔다는 A 씨는 태 전 공사 아버지와의 추억과 친척들 이야기를 쏟아냈다. 태 전 공사는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와 일치하는 대목이 나올 때마다 탄성을 지르며 신기해했다. 태 전 공사는 A 씨에게 “아버지께서 생전에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하셨던 분이었는데 기적처럼 남한에서 뵙게 됐다”며 “아직도 남과 북이 혈육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A 씨는 “남한에 있는 가장 가까운 친척이 6촌인데, 오늘 그보다 더 가까운 5촌 조카뻘인 당신을 만나 정말 기쁘다”고 화답했다. A 씨는 자신의 고향인 함경북도 명천군 위성지도가 담긴 두루마리를 꺼내 태 전 공사에게 보여줬다. 통일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A 씨가 직접 만든 지도였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을 매일 꾼다는 A 씨는 지도 곳곳을 손으로 짚으며 태 전 공사 아버지와의 추억을 들려줬다. 그 직후 꺼내든 사진첩에서 태 전 공사는 생각지도 못한 아버지와 친지들의 사진을 발견해 낸 것이다. “오늘 큰아버님께서 저에게 아버지 사진을 찾아주셨습니다. 한국에 올 때 가족 사진 한 장 없이 왔는데 오늘 이렇게 온 가문의 사진을 받고 보니 저로서는 정말 기쁩니다.” 태 전 공사는 자신의 증언록에 이렇게 감사의 인사를 적어 A 씨에게 건넸다. 태 전 공사가 남한에서 만난 첫 혈육인 A 씨는 6·25전쟁 때 북진했다가 중공군에 밀려 다시 남한으로 후퇴하는 국군을 따라 월남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월남은 태 전 공사의 가족에게 큰 시련을 가져다줬다. 북한 조선노동당은 1967년 5월 25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4기 15차 전원회의를 통해 전국적인 주민등록 조사사업을 실시할 것을 결정했다. 당국은 A 씨와 가족이 월남했다며 태 전 공사의 아버지를 핵심계층이 아닌 기본계층으로 격하시켰다. 그 결과 건설대학 교수(교원)였던 태 전 공사의 아버지는 중앙과학기술통보사 건설편집부 기자로 좌천됐고 갖은 노력에도 노동당 가입 자격을 얻지 못했다. 태 전 공사는 “할머니는 몸이 아파 당에 보탬도 안 되는 할아버지의 당증을 아버지에게 주면 안 되느냐고 리(里)당위원장에게 물어보기도 했다”고 증언록에 적었다. 아버지는 평양시 건설 현장에 보내 달라고 부탁해 수년간 현장 기사로 일하고 나서야 입당할 수 있었다. 태 전 공사는 “아버지는 월남한 사촌 형을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고 통일이 돼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해왔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의 기적적인 혈육 상봉 현장에는 종친회 대표 태모 씨가 동행했다. 태 씨는 혼자 남한에 온 태 전 공사가 지난해 초 찾아간 태씨 종친회에서 처음 만난 집안 어른이다. 6·25전쟁 때 남한으로 내려온 태 씨는 태 전 공사 아버지와 고향이 같았다. 발해를 세운 대조영의 후손인 태씨 종친들은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북한에서 태 씨가 내려왔다”며 태 전 공사를 식구처럼 환대했다고 한다. 한국 생활을 시작하며 주변에 마음을 터놓고 의지할 친척이 없었던 태 전 공사는 종친 어른이자 아버지와 동향인 태 씨를 마음의 안식처로 여겨왔다. 태 씨는 “태 전 공사가 남한에서 혈육을 찾은 건 통일이 돼 고향 갈 날만을 기다리는 실향민들에게 큰 희망을 줬다”며 감격했다. 명절 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1시간 30여 분에 걸친 첫 상봉을 마친 태 전 공사는 “아직 생존해 계시는 실향민 1세들은 물론이고 탈북민들도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자유롭게 만나고 왕래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간절히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김경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드루킹’(온라인 닉네임) 김동원 씨(49·구속 기소)의 만남을 기록한 문건이 저장된 노트북이 경기 파주시 느릅나무출판사(일명 ‘산채’)에 있었지만 경찰은 3월 21일 이곳을 처음 압수수색할 때 확보하지 못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일지 형식으로 기록된 이 문건은 김 씨의 핵심 측근인 ‘둘리’ 우모 씨(32·구속 기소)의 개인 노트북에 저장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김 씨가 운영한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관계자에 따르면 경찰은 첫 압수수색 후 댓글 여론 조작 프로그램인 ‘킹크랩’을 조사하기 위해 우 씨에게 킹크랩에 접근할 수 있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추궁했다. 우 씨는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노트북을 갖다 주면 열어서 보고 알려 주겠다”고 했고, 경찰이 노트북을 가져왔지만 그 안에는 킹크랩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없었다. 경찰이 우 씨에게 갖다 준 노트북은 ‘산채’에서 댓글 작업을 할 때 썼던 노트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우 씨가 나중에 기억을 다시 더듬어본 결과 킹크랩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자신의 개인 노트북에 있었다고 한다. 경공모 관계자는 “경찰이 우 씨에게 킹크랩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물어볼 당시 우 씨의 개인 노트북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경찰은 이후 느릅나무출판사와 ‘서유기’ 박모 씨(30·구속 기소) 자택 등을 몇 차례 추가 압수수색했지만 현재까지 우 씨가 쓰던 개인 노트북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경찰이 우 씨의 개인 노트북을 확보하지 못한 것에 대해 초동수사 미흡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댓글 작업을 했던 우 씨 등 주요 경공모 회원들의 노트북은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줄 핵심 단서인데 경찰이 첫 느릅나무출판사 압수수색에서 중요한 증거를 놓쳤다는 것이다. 느릅나무출판사는 경공모 회원들이 ‘산채’로 부르는 댓글 작업의 아지트였다. 우 씨는 이곳에서 2016년 10월 김 씨가 김 전 의원에게 킹크랩을 보여줄 때 직접 시연을 맡았다고 김 씨의 측근이 전했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킹크랩 운영에 관여한 경공모 회원은 이들을 포함해 총 50여 명에 이른다. 경찰이 2일 초뽀 김모 씨(35)의 집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엔 킹크랩의 업무분장표가 ‘기존회원’과 ‘고정회원’ 각 8명, ‘신규회원’ 40여 명 등으로 저장돼 있었다. 현재 경찰은 기존회원과 고정회원을 피의자 신분으로 집중 조사하고 있다.정성택 neone@donga.com·조동주 기자}

‘드루킹’(온라인 닉네임) 김동원 씨(49·구속 기소)가 김경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만났던 사실 전체를 일지 형식으로 기록한 문서 파일을 김 씨 측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2일 김 씨의 핵심 측근 등에 따르면 이 파일은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에 들어 있으며 검찰과 경찰은 이 USB메모리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가 운영한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관계자는 “김 씨와 김 전 의원이 15차례 만나서 뭘 했는지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김 씨의 측근이 문서로 작성했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4일 경찰 조사에서 김 씨를 7, 8차례 만났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김 씨는 김 전 의원을 2016년 7월부터 올 2월까지 1년 6개월여 동안 15차례 만났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은 김 씨의 국회 의원회관 방문 기록 조사 결과 김 씨가 2015년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3년 동안 김 전 의원실에 5차례 이상 찾아간 것으로 확인했다. 여기에 다른 경공모 회원들이 방문한 횟수를 합치면 15차례 이상이다. 또 경공모 측은 댓글 조작 프로그램 ‘킹크랩’을 활용해 구체적으로 어떤 댓글 활동을 했는지 상세하게 정리한 문건을 만들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의 측근은 “경공모 활동을 김 전 의원에게 보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문건이 작성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문건이 실제 김 전 의원에겐 전달되지 않았다고 한다. 경공모 관계자는 “김 씨와 김 전 의원의 만남이 거듭되고 댓글 활동이 지속되면서 문건 내용을 업데이트했기 때문에 구버전과 신버전 문건이 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경공모 핵심 회원들은 이 문건을 암호로 부른 것으로 전해졌다.정성택 neone@donga.com·조동주 기자}
송인배 대통령제1부속비서관이 ‘드루킹’ 김동원 씨(49·구속 기소)와 김경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첫 만남을 주선한 것으로 확인됐다. 20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송 비서관은 2016년 제20대 총선에 출마했다 낙선할 무렵 자신의 선거를 도왔던 지인 A 씨의 소개로 김 씨와 처음 만났다. 김 씨가 이끄는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의 회원인 A 씨는 송 비서관에게 경공모 측과의 만남을 제안했고 “김 전 의원도 함께 보자”고 요청했다고 한다. 송 비서관은 A 씨의 제안을 받아들여 같은 해 6월 김 씨 등 경공모 회원들을 데리고 김 전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찾아갔다. 김 전 의원은 이날 송 비서관, 김 씨 등과 20분가량 인사를 나누었다고 한다. 이는 김 전 의원이 지난달 16일 기자회견에서 “2016년 중반 정도에 김 씨가 의원회관에 찾아왔다”고 밝힌 내용과 일치한다. 송 비서관은 그 후 2017년 2월까지 A 씨 등 경공모 회원들과 수차례 더 모임을 가졌다. 송 비서관은 2016년 11월에는 경기 파주의 느릅나무출판사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송 비서관은 경공모 측으로부터 여비 명목으로 약간의 사례비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민정수석실은 최근 송 비서관을 상대로 경공모와의 접촉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경찰은 김 씨의 측근 김모 씨(35·온라인 닉네임 ‘초뽀’)로부터 경공모의 댓글 작업 내용이 담긴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를 압수해 조사하고 있다. 문제의 USB는 ‘드루킹’ 김 씨의 또 다른 측근 ‘서유기’ 박모 씨(30·구속 기소)가 올해 3월 말 ‘초뽀’ 김 씨에게 맡긴 것이다. 경찰은 2일 ‘초뽀’ 김 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면서 컴퓨터에 꽂혀 있던 USB를 확보했다. USB에서는 드루킹 일당이 2016년 10월∼올해 3월 댓글을 조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기사의 인터넷접속주소(URL) 9만1800여 건이 나왔다. 또 김 전 의원에게 2700여만 원을 후원한 경공모 회원 200여 명의 명단도 발견됐다. 박 씨는 USB를 빼앗긴 사실을 알게 된 이달 중순부터 그간의 태도를 바꿔 수사에 협조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드루킹’(온라인 닉네임) 김동원 씨(49·구속 기소)는 18일 공개된 ‘옥중 편지’를 통해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전 의원의 기존 해명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 전 의원이 댓글 작업용 매크로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았는지, ‘작업 목록’을 보고받았는지, 공직을 제안했는지 등 그동안 제기된 여러 의혹이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황만 정리한 것으로 보이나 김 전 의원 접촉 상황이나 대화 내용, 전화 통화를 매우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A4용지 9장 분량의 편지는 김 씨 변호인이 구치소 접견 중 김 씨의 말을 받아 적은 것이다.○ “경공모 회원들, 김 전 의원과 저녁식사” 김 전 의원이 경기 파주시 느릅나무출판사를 찾은 건 2016년 10월. 김 씨는 당시 김 전 의원에게 매크로 프로그램을 ‘브리핑’한 뒤 작동 모습을 보여줬고 댓글 작업 진행을 위한 허락까지 받았다는 주장이다. 이날 방문은 김 전 의원도 지난달 중순 기자회견에서 “2016년 가을께 사무실을 찾아가 회원들 7, 8명과 인사했다”며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김 전 의원은 매크로 프로그램에 대해선 지난달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알았다고 주장했다. 김 씨 최측근 A 씨도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18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저녁 시간에 김 전 의원이 찾아왔다. 인사만 한 게 아니라 회원 10여 명과 함께 2층 식당에서 식사까지 했다. 꽤 오랜 시간 경공모 활동에 대해 대화했다”고 밝혔다. A 씨는 “이날은 경공모 회원 모임이 열리는 날이었는데 김 전 의원이 찾아온다는 얘기를 미리 들어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식사 자리에는 출판사 사무실에서 숙식하던 김 씨의 최측근 박모 씨(30·닉네임 ‘서유기’ ‘인생2방’)와 우모 씨(32·‘둘리’), 양모 씨(34·‘솔본아르타’) 등도 함께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편지에서 시연 장면을 목격한 회원도 있어 김 전 의원이 발뺌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김 전 의원의 ‘허락’ 아래 댓글 작업이 진행됐고 그 결과는 비밀메신저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해 매일 김 전 의원에게 보고됐다는 게 김 씨의 주장이다. 김 전 의원은 이를 확인하고 종종 ‘베스트 댓글’이 되지 않은 이유도 물었다고 한다. 실제로 경찰 수사를 통해 지난해 4월 김 전 의원이 대선후보 TV 토론회 기사 인터넷접속주소(URL)를 보내며 ‘네이버 댓글은 원래 반응이 이런가요’라는 메시지를 김 씨에게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의원이 ‘특1급’ 먼저 제안” 김 씨는 대선 직후 도모 변호사의 ‘주일본 대사’ 추천 가능성을 타진했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은 “대통령과 면식이 없어서 곤란하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얼마 뒤 김 전 의원은 보좌관 한모 씨를 통해 특1급 자리 추천을 제안했다는 게 김 씨의 주장이다. 당시 남은 특1급 자리는 주오사카 총영사뿐이라 자연스레 생각한 것일 뿐 김 씨가 먼저 그 자리를 요구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한 씨는 본보 기자에게 “오사카 총영사 건은 김 전 의원과 김 씨가 이야기한 것이다. 나는 인사 청탁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지난해 12월 28일 김 전 의원이 전화를 걸어와 “오사카는 외교 경력이 풍부한 사람이 가야 한다니 센다이 총영사 자리는 어떤가?”라며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거절했고 올 2월 20일 국회 의원회관을 찾아가 김 전 의원과 다퉜다고 한다. 김 씨는 3월 17, 18일경 “그동안의 불법 활동을 3월 20일 언론에 털어놓겠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더니 같은 달 21일 사무실 압수수색이 실시됐다고 주장했다. 김 씨의 옥중 편지 공개는 공범 박 씨의 진술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 씨는 10일경 검찰 조사 때 베일에 싸여 있던 킹크랩을 자세히 설명하며 대선 전부터 댓글 작업이 이뤄졌다고 진술했다. 새로운 의혹에 입을 닫았던 김 씨는 공범의 결정적 진술 직후 갑자기 담당 검사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옥중 편지를 공개했다.○ 검찰 “드루킹이 수사 축소 요구” 김 씨는 편지에서 “14일 다른 피고인 조사 때 모르는 검사가 들어와 ‘김경수와 관련된 진술은 빼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검찰은 14일에 다른 피고인을 조사한 바가 없다”고 반박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씨는 11일 검사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그리고 14일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 검사와 약 50분간 면담했다. 이때 김 씨는 검사에게 “현재 경찰에서 수사 중인 댓글 조작 사건에 대해 검사님께 ‘폭탄 선물’을 드릴 테니 요구 조건을 들어 달라”고 했다. ‘폭탄 선물’로는 “김 전 의원의 범행 가담 사실을 증언해 검찰에 수사 실적을 올리게 해 주겠다”는 내용이다. 김 씨는 그 대가로 △본인과 경공모 회원에 대한 수사 확대와 추가 기소를 하지 말 것 △재판을 빨리 종결시켜 바로 석방되게 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검사는 “수사 축소는 불가능하니 경찰에서 사실대로 진술하라”며 거부했다. 면담 과정은 모두 녹화 및 녹음됐다. 검찰은 영상 공개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조동주 djc@donga.com·허동준·김동혁 기자}
‘드루킹’(온라인 닉네임) 김동원 씨(49·구속 기소)가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전 의원의 ‘허락’을 받고 댓글 여론 조작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의원이 댓글 작업용 매크로 프로그램의 존재를 처음부터 알았다는 것이다. 김 씨는 18일 변호인을 통해 공개된 ‘옥중 편지’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편지에 따르면 2016년 10월 김 전 의원은 경기 파주시 느릅나무출판사를 찾았다. 김 씨가 만든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여기서 김 전 의원은 경공모가 자체 개발한 매크로 프로그램 ‘킹크랩’ 시연을 보고, 모바일 매크로가 작동되는 것도 직접 확인했다. 김 씨는 킹크랩을 통한 댓글 작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김 전 의원에게 요청했다. 김 전 의원은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고 이후 김 씨 측은 작업 내용을 매일 보고했다고 한다. 김 씨는 편지에서 김 전 의원을 사건의 ‘최종 지시자’ ‘주범’으로 표현하며 검찰이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검찰이 자신과 경공모에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며 축소 수사를 시도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검찰은 즉각 기자회견을 열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경공모 핵심 회원 A 씨는 당시 김 전 의원이 파주 출판사를 방문해 꽤 오랜 시간 머물렀다고 밝혔다. A 씨는 “김 전 의원이 온다는 걸 얘기를 들어서 미리 알고 있었다. 2층에서 다 함께 저녁식사도 했다”고 전했다. 김 전 의원은 이날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소설 같은 얘기”라고 일축했다. 편지 속 여러 내용에 일일이 해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이 초기에 매크로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았다는 구체적인 주장이 제기됨에 따라 경찰이 김 전 의원을 재소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조동주 djc@donga.com·배준우·장관석 기자}
‘남자는 불구속, 여자는 구속?’ 여성모델이 동료 남성모델의 나체 사진을 찍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이른바 ‘홍대 누드모델 몰래카메라(몰카) 사건’ 발생 후 온라인에선 이런 주장이 퍼졌다. 급기야 남녀 간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의견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와 35만여 명이 동의했다. 일상 속 몰카 범죄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던 여성들이 적극 호응하면서 성별 갈등으로 확산됐다. 하지만 실제 몰카 범죄 처리 결과를 보면 이런 주장과 차이가 크다. 몰카 범죄의 가해자는 대부분 남성,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지만 구속 여부에 성별은 큰 의미가 없었다. 16일 경찰의 몰카 사범 구속 사례를 분석한 결과 △단순 촬영을 넘어 온라인에 유포 △피해자가 다수 △범행을 부인하고 증거를 은폐 △몰카 설치 방식이 악의적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특히 이번 홍대 몰카처럼 몰래 찍은 사진을 온라인 등에 공개해 2차 피해가 발생하면 구속 수사를 피할 수 없었다. 그 대신 몰카범이 촬영만 하고 유포하지 않았다면 불구속 수사가 대부분이었다. 지난해 6월 여성 A 씨는 서울의 한 공원 여자화장실에 디지털카메라를 설치해 10대 여중생 5명의 모습을 몰래 찍었다. 경찰이 A 씨를 붙잡았지만 구속되지 않았다. 촬영한 사진을 유포하지 않았고 범행을 순순히 시인한 점이 참작됐다. 지난해 2월 여성 B 씨는 경기 의정부시의 한 찜질방에서 잠을 자던 고교 2학년 남학생을 스마트폰으로 몰래 찍었지만 우발적 범행이라 불구속됐다. 몰카 사진을 유포하지 않는 대신 가해자가 증거를 인멸했다면 구속된 사례가 적지 않다. 2016년 7월 남성 연구원 C 씨는 한 리조트 여자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해 여성 1명의 신체를 촬영한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이 자신을 찾자 카메라의 메모리카드를 삼켜 증거를 인멸한 것이 결정적 사유였다. 몰카 피해자가 남자라서, 가해자가 여자여서 경찰이 구속했다는 주장이 사실과 다른 건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2년∼2018년 5월 남성 몰카범의 2.6%(2만2155명 중 572명)가 구속된 반면 여성 몰카범은 0.9%(580명 중 5명)가 구속됐다. 피해자가 남자인 사건은 가해자의 0.2%(876명 중 2명)가 구속된 반면 피해자가 여자면 가해자의 1.8%(2만9194명 중 538명)가 구속됐다. 여성을 노리는 남성 몰카범의 죄질 수준이 더 나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경찰은 홍대 몰카 사건이 성별 갈등으로까지 번진 건 그만큼 여성들이 몰카에 대한 불안이 크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몰카 사건은 남성 가해자가 97%, 여성 피해자가 95%에 이른다. 경찰 관계자는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불법 촬영(몰카)을 중대한 범죄로 보고 성별과 무관하게 엄중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드루킹’(온라인 닉네임) 김동원 씨(49·구속 기소)의 최측근이 지난해 대선 전부터 댓글 여론 조작을 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검찰은 16일 김 씨 등의 공판에서 김 씨의 자금책 역할을 한 ‘서유기’(온라인 닉네임) 박모 씨(30·구속 기소)가 2017년 1월경 댓글 여론 조작 프로그램인 ‘킹크랩’을 구축해 같은 해 5월 대선 이후까지 댓글 작업을 해왔다고 진술한 사실을 공개했다. 킹크랩은 ‘명령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원하는 만큼 댓글에 공감 또는 비공감을 클릭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검찰은 또 김 씨 등이 댓글 작업을 하며 ‘작전’ ‘잠수함’ ‘탄두’ 등의 암호를 썼다고 밝혔다.○ “지난해 1월부터 댓글 순위 조작” 검찰이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김대규 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대선 당시 댓글 여론 조작을 진술했다고 밝힌 박 씨는 김 씨가 만든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의 핵심 회원이다. 박 씨는 김 씨가 경공모의 활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한 비누업체 ‘플로랄맘’ 대표를 지냈다. 이날 공판에선 댓글 여론 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경공모 회원 우모 씨(온라인 닉네임 ‘둘리’)의 범죄 사실이 공개됐다. 앞서 자유한국당은 김 씨가 우 씨 등이 포함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텔레그램 대화방 등에서 ‘문재인 정권과 어떤 연계가 있다고 티를 내서는 안 된다’, ‘문 대통령이 우리를 모르냐 하면 아비다’, ‘우리가 전해철을 밀면 경쟁 상대들이 광화문의 지시가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고 폭로했다. 검찰은 공판에서 “김 씨 등이 지난해 1월경 킹크랩을 구축한 후부터 뉴스 댓글 순위를 조작해 여론이 왜곡된 사태가 이 사건의 실체”라고 밝혔다.○ 암호 쓰며 댓글 작업 또 검찰은 이날 법정에서 킹크랩을 시연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씨 등은 아마존 웹서비스의 서버를 빌려 킹크랩을 설치했다. 이 사이트에 뉴스 기사와 댓글을 입력하면 사이트에 연결된 휴대전화로 명령이 전송됐다. 그 휴대전화는 자동으로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에서 로그인과 로그아웃을 반복하면서 해당 댓글의 공감이나 비공감 클릭 횟수를 늘렸다. 김 씨 등은 댓글 조작 작업을 ‘작전’, 여기에 쓴 휴대전화를 ‘잠수함’,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탄두’라는 암호로 불렀다. 킹크랩 사이트의 첫 화면에는 조작 작업 중인 뉴스 기사 목록이 표시됐다. 작업 중인 기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고, 여러 기사에 대한 동시 작업이 가능했다. 사이트의 ‘작전 관리’ 창엔 ‘작전’ 대상 기사와 댓글 키워드, 공감 또는 비공감을 입력할 수 있었다. ‘작전 배치’ 창은 ‘작전’을 수행할 ‘잠수함(휴대전화)’과 ‘탄두(아이디)’를 몇 개나 사용할지 입력하도록 설계됐다. 그 결과를 보여주는 창이 따로 있었다. 또 어떤 기사에 어떤 댓글을 적을 것인지 참고할 수 있도록 엑셀 파일 등을 올려두는 ‘지뢰 관리’ 창도 있었다. 검찰은 “김 씨 등이 ‘작전’을 위해 수백 대의 휴대전화와 유심 칩을 수집했고 아이디와 비밀번호 수백∼수천 개를 확보해 킹크랩 서버에 저장했다”고 밝혔다. 김 씨 등은 킹크랩을 사용해 올 1월 17일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팀 단일팀 구성’ 기사에 ‘이게 나라냐?’ ‘평양 동계올림픽 재앙’ ‘미쳤다’ 등 50개의 댓글에 2만3813차례의 공감 클릭을 했다. ○ 김경수 주센다이 총영사직 제안 여부 논란 김 씨에 대한 경찰 수사에선 김경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말 김 씨 측에 일본 주센다이 총영사직을 제안했는지가 논란이다. 김 씨는 수사 과정에서 “김 전 의원이 나에게 주센다이 총영사직을 제안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사실이라면 김 전 의원이 김 씨에게 지난해 대선 당시 댓글 작업에 대한 대가를 주려고 한 것 아니냐는 정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은 “사실이 아니다. 특검을 통해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경찰은 최근 김 씨의 핵심 측근에게서 압수한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 등에서 주센다이 총영사 관련 정보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해 김 전 의원을 찾아가 경공모 회원인 도모 변호사(61)를 주일본 대사에 앉혀 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한 뒤 도 변호사를 일본 주오사카 총영사로 보내 달라고 청탁했다. 경찰은 이후 김 씨와 김 전 의원 간에 주센다이 총영사직이 거론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구체적인 경위를 조사 중이다.김윤수 ys@donga.com·조동주·구특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