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희

조건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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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이 사건이 되는 지점을 자세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becom@donga.com

취재분야

2025-11-23~2025-12-23
칼럼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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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영참여 판단 기준이 ‘사회적 여론’… 전문가 “마녀사냥 우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특정 기업의 이사 선임이나 해임을 요구할 수 있는 경영참여권을 제한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연금 관치’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특히 기금운용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업 경영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 경우’를 경영참여권 행사의 전제조건으로 달아 재계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기업 경영 환경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려면 국민연금이 간섭할 수 있는 사례를 세부적으로 밝혀 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복지부는 이와 관련해 별도의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될 가능성” 박 장관은 30일 “한두 명의 주관적인 판단이 아니라 전체적인 심도 있는 토론을 거쳐서 경영 참여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섰을 때 제한적으로 (경영 참여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연기금의 수익을 희생하더라도 주주권을 행사한다는 뜻이냐”는 물음에 “기금운용위원회의 1차 목표는 연기금의 수익성”이라며 “수익성이 저해되는 방향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건 굉장히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경영 참여의 대상이 되는 ‘기업 경영가치 훼손’에 대해선 아무런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 박 장관이 “기업 경영가치 훼손으로 ‘사회적 여론’이 형성됐을 때 기금운용위원회가 의결하면 (경영 참여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라고 부연한 것이 전부다. 또 다른 복지부 관계자는 “경영 참여의 대상이 되는 사례의 구체적인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을 만들진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여론’을 언급한 것은 결국 정부의 입맛대로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기업의 성과를 주식과 무관한 다른 기준으로 판단하는 건 특정 기업에 대한 ‘마녀사냥’이 될 수 있다”며 “구체적 기준 없이 여론이 들끓으면 경영에 간섭하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 “기금운용 독립성-전문성 허약” 이런 우려의 배경엔 기금운용위원회가 경영권 참여를 할 만큼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기금운용위원 20명 중 8명은 관련 부처 장차관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국책연구원 원장 등 정부 인사다. 여기에 시민단체와 농협·수협이 추천한 지역가입자 대표 4명, 근로자 대표 3명을 더하면 15명으로 전체 인원의 4분의 3이 된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낸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국민연금의 의사 결정이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식견에 따라 이뤄지는지 되물어야 한다”며 “지배구조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9명)를 전문가 중심의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14명)로 확대 개편하는 내용도 스튜어드십 코드에 담겼지만 이 역시 현재의 지배구조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원을 결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추천을 받아 위촉하는 형태라면 정부 편향 인사 위주로 꾸려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최광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결국 지금처럼 정부의 영향력이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635조 원의 연기금을 굴리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의 최고위직 9개 자리 중 기금운용본부장(CIO)을 포함한 5개가 공석이라는 사실도 고민이다. 모든 의결권 관련 사안은 기금운용본부가 1차적으로 검토한다. 하지만 현재처럼 기금운용본부 조직이 불안정한 상황에선 특정 기업의 경영 활동이 ‘심각한 경영가치 훼손’에 해당하는지, 국민연금의 개입이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될지 제대로 분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10%룰’ 완화엔 신중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를 확대하려면 자본시장법의 ‘5%룰’과 ‘10%룰’을 손봐야 한다. 5%룰은 상장기업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투자자가 지분 1% 이상을 사고팔 때 5영업일 이내에 공시하도록 한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5%룰을 완화해 공적 연기금은 주식 보유 목적과 관계없이 약식 보고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10%룰 완화에 대해선 신중한 반응이다. 지분 10% 이상을 가진 투자자가 투자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전환한 뒤 6개월 이내에 생긴 해당 기업의 주식 매매 차익을 반환해야 한다는 규정인데, 이를 국민연금에 한해서만 완화하는 것은 일반 투자자와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 때문이다. 조건희 becom@donga.com·박성민·김하경 기자}

    • 2018-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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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여름 ‘앵~’ 소리 안 들리네… 모기도 폭염에 헉헉

    계속되는 폭염에 일본뇌염을 옮기는 ‘작은빨간집모기’ 개체 수가 지난해보다 크게 줄어들었다. 29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8주 차(8∼14일)에 채집된 작은빨간집모기 수는 평균 8마리로 지난해 같은 기간 28마리와 대비해 71.4% 감소했다. 평년 수치인 45마리를 기준으로는 82.2% 줄어 감소 폭이 더 컸다. 작은빨간집모기는 27주 차(1∼7일)에도 평균 5마리로 지난해 같은 기간(60마리) 대비 91.7%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본부는 매년 4∼10월 경기 부산 강원 등 10개 시도 각 한 개의 지점에서 모기를 채집해 밀도를 조사한다. 전문가들은 일본뇌염모기가 급감한 원인을 폭염으로 보고 있다. 날씨가 더워지면 물웅덩이가 마르는 등 산란지가 줄어드는 데다 수온이 올라가면 모기 유충의 성장속도는 빨라지지만 수명은 짧아진다. 이동규 고신대 보건환경학부 석좌교수는 “일본뇌염모기는 대개 논이나 논도랑에서 산란을 하는데 더운 날씨로 논이 마르게 되면서 유충이 많이 죽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폭염이 지속되면서 전체 모기 수도 감소 추세다. 26주 차와 27주 차일 때 전체 모기 수는 각각 평균 1933마리, 2404마리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1.4%, 68.2% 늘었지만 더위가 본격 시작된 28주 차에는 평균 971마리로 오히려 2.2% 줄었다. 모기와 달리 매미는 폭염이 반가운 듯 왕성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올해 폭염으로 꽃매미의 알이 평년보다 닷새가량 일찍 부화했다. 꽃매미 알이 발견된 지역도 지난해 77곳에서 올해 80곳으로 늘었다. 더 넓은 지역에서 더 일찍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기온이 높을수록 활발히 활동하는 아열대성 매미도 폭염 속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동남아 지역이 원산지인 말매미는 기온이 27도 이상일 때 75∼95dB(데시벨)로 운다. 대형집회와 시위 때의 소음 수준이다.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는 “30년 전만 해도 보기 힘들었던 말매미가 도시 열섬과 열대야 현상 때문에 지금은 국내에서 흔하다”고 말했다.김하경 whatsup@donga.com·조건희 기자}

    • 201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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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후 2시 39.3도… 車보닛 위 대패삼겹살, 1시간 지나자 ‘바삭’

    쏟아지는 햇볕에 노출된 팔은 누군가 잡아 비트는 것처럼 따가웠다. 폭염 제철을 만난 매미의 요란한 울음소리 탓에 옆 사람과 대화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24일 올여름 비공식 최고기온인 40.3도를 기록한 경북 영천시 신녕면은 25일에도 오후 2시 14분 39.3도를 나타내 경남 창녕군(오후 3시 13분)과 함께 이날 전국 최고기온을 찍었다.○ 65분 만에 바싹 익은 삼겹살 40도를 넘나드는 더위가 어느 정도인지 실험하기 위해 취재팀은 오후 2시경 자동기상관측장비(AWS)가 설치된 신녕초등학교 운동장의 한구석에 간이 태양열 조리기(햇볕을 은박지 한곳에 집중시켜 용기 속 음식을 가열하는 기구)를 설치했다. 그 안에 생라면을 담은 양은냄비와 날계란을 각각 넣었다. 취재차량의 보닛(후드) 위엔 랩을 깔고 냉동 대패삼겹살과 차돌박이를 올렸다. 햇볕으로 달궈진 보닛의 온도는 무려 70도였다. 20분이 흘렀을 때 타이머 대용으로 보닛에 올려둔 휴대전화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기기의 온도가 높아 실행 중인 앱을 종료합니다’란 메시지가 떴다. 황급히 휴대전화를 옮겼다. 목이 타 그늘에 둔 물컵을 흔들어 보니 30분 전만 해도 가득했던 얼음이 다 녹아 없어졌다. 1시간이 흐른 오후 3시경 태양열 조리기가 바람에 쓰러져 양은냄비가 엎어졌을 때 라면 면발은 부드럽게 익어 있었다. 물이 끓지는 않았지만 면을 삶을 정도로 냄비가 달궈져 있었다는 얘기다. 오후 3시 5분경 삼겹살과 차돌박이가 프라이팬에서 구운 베이컨처럼 바삭하게 변했다. 65분 만에 아무런 가열기기 없이 햇볕만으로 고기가 익은 것이다. 옆에 올려둔 젤리는 녹아서 원래 모양을 찾을 수 없었다. 모차렐라 치즈는 갓 화덕에서 꺼낸 것처럼 길게 늘어졌다. 1시간이 더 흐른 뒤 계란 껍데기를 깨 보니 계란은 반숙이 돼 있었다.○ “구십 평생 이런 더위 처음” 오후 4시경 신녕면 부녀 경로회관을 찾았다. 에어컨 바람을 쐬기 위해 모인 할머니 9명 중 4명이 찬물을 담은 물통을 벤 채 낮잠을 자고 있었다. ‘물통 베개’는 열이 오르는 목과 얼굴을 식히기 위한 ‘필수 아이템’이다. 한 할머니가 경로회관 미닫이문을 꼭 닫지 않자 다른 할머니가 “문! 문!”이라고 외쳤다. 순식간에 바깥 열기가 밀려들 수 있어서다. 신녕면 주민 3970명(주민등록 기준) 중 38.2%인 1516명이 65세 이상 고령자다. 초고령사회의 기준인 노인 인구 비율 20%를 훌쩍 뛰어넘는다. 신녕면에서 나고 자랐다는 80, 90대 어르신들은 “평생 이렇게 독한 더위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호수 할아버지(91)는 “숨이 턱 막힌다. 이러다 노인들이 큰일을 치를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신녕초교 전교생 84명 중 운동장에 나와 있는 어린이는 한 명도 없었다. 폭염경보가 발효돼 체육수업 등 야외 활동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현관이나 계단에 둘러앉아 수다를 떨었다. 정호엽 신녕초교 교감은 “자칫 학생들이 열사병에 걸릴까 봐 최근 교실 온도를 권고 기준(26∼28도)보다 낮춰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상인들은 울상이었다. 신녕공설시장에서 보리밥을 파는 류경숙 씨(59·여)는 “날이 더워 오늘 손님을 2명밖에 못 받았다”며 “에어컨 전기료를 감당할 수 없어 한 달 정도 식당 문을 닫을 생각”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 시장엔 점포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 반면 주민센터 인근 중형마트엔 아이스크림 봉지를 두 손 가득 든 손님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 대프리카 열기 흘러와 갇히는 ‘더위 저수지’ 신녕면은 남서쪽으로 팔공산(해발 1193m), 북쪽으로 보현산(1124m)과 아미산(737m)에 둘러싸인 협곡 지형이다. 그 너머로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있다. 산에 파묻힌 지형은 신녕면을 대한민국 최고 ‘핫(Hot) 플레이스’로 만든 주요 원인이다. 호남지방에서 달궈진 남서풍은 산을 넘어오면서 더 뜨거워져 이곳에 이른다. 남동쪽 방향엔 유일하게 산이 없지만 이곳은 숨구멍이 아니다. 오히려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로 불리는 대구의 뜨거운 공기가 협곡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입구다. 영천시와 함께 최고기온 전국 상위권인 경산시도 그 길목에 있다. 신녕면은 사방에서 모인 열기가 그대로 갇히는 ‘더위 저수지’인 셈이다. 전재목 대구기상지청 관측예보과장은 “이대로라면 경북 지역에서 올여름 최고기온 기록(40.3도)을 경신할 수 있다”며 “노인과 어린이 등 폭염 취약 대상은 열사병 등 온열 질환과 일광화상을 피하려면 물을 자주 마시고 외출을 삼가는 게 좋다”라고 조언했다.영천=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8-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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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3도 기록한 경북 영천서 직접 삼겹살 익혀봤더니…

    쏟아지는 햇볕에 노출된 팔은 누군가 잡아 비트는 것처럼 따가웠다. 폭염 제 철을 만난 매미의 요란한 울음소리 탓에 옆 사람과 대화가 힘들 정도였다. 24일 올여름 비공식 최고기온인 40.3도를 기록한 경북 영천시 신녕면은 25일에도 오후 2시 14분 39.3도를 나타내 경남 창녕군(오후 3시 13분)과 함께 이날 전국 최고기온을 찍었다.● 65분 만에 바싹 익은 삼겹살 40도를 넘나드는 더위가 어느 정도인지 실험하기 위해 취재팀은 오후 2시경 자동기상관측기기(AWS)가 설치된 신녕초등학교 운동장의 한 구석에 간이 태양열 조리기(햇볕을 은박지 한 곳에 집중시켜 용기 속 음식을 가열하는 기구)를 설치했다. 그 안에 생라면을 담은 양은냄비와 날계란을 각각 넣었다. 취재차량의 보닛(후드) 위엔 랩을 깔고 냉동 대패삼겹살과 차돌박이를 올렸다. 햇볕으로 달궈진 보닛의 온도는 무려 70도였다. 20분이 흘렀을 때 타이머 대용으로 보닛에 올려둔 휴대전화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기기의 온도가 높아 실행 중인 앱을 종료합니다’란 메시지가 떴다. 황급히 휴대전화를 옮겼다. 목이 타 그늘에 둔 물컵을 흔들어보니 30분 전만 해도 가득했던 얼음이 다 녹아 없어졌다. 1시간이 흐른 오후 3시경 태양열 조리기가 바람에 쓰러져 양은냄비가 엎어졌을 때 라면 면발은 부드럽게 익어 있었다. 물이 끓지는 않았지만 면을 삶을 정도로 냄비가 달궈져 있었다는 얘기다. 오후 3시 5분경 삼겹살과 차돌박이가 프라이팬에서 구운 베이컨처럼 바삭하게 변했다. 65분 만에 아무런 가열기기 없이 햇볕만으로 고기가 익은 것이다. 옆에 올려둔 젤리는 녹아서 원래 모양을 찾을 수 없었다. 모짜렐라 치즈는 갓 화덕에서 꺼낸 것처럼 길게 늘어졌다. 1시간이 더 흐른 뒤 계란 껍데기를 깨보니 계란은 반숙이 돼 있었다.● “구십 평생 이런 더위 처음” 오후 4시경 신녕면 부녀 경로회관을 찾았다. 에어컨 바람을 쐬기 위해 모인 할머니 9명 중 4명이 찬물을 담은 물통을 벤 채 낮잠을 자고 있었다. ‘물통 베개’는 열이 오르는 목과 얼굴을 식히기 위한 ‘필수 아이템’이다. 한 할머니가 경로회관 미닫이문을 꼭 닫지 않자 다른 할머니가 “문! 문!”이라고 외쳤다. 순식간에 바깥열기가 밀려들 수 있어서다. 신녕면 주민 3970명(주민등록 기준) 중 38.2%인 1516명이 65세 이상 고령자다. 초고령 사회의 기준인 노인 비율 20%를 훌쩍 뛰어넘는다. 신녕면에서 나고 자랐다는 80, 90대 어르신들은 “평생 이렇게 독한 더위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호수 할아버지(91)는 “숨이 턱 막힌다. 이러다 노인들이 큰일을 치를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신녕초교 전교생 84명 중 운동장에 나와 있는 어린이는 한 명도 없었다. 폭염경보가 발효돼 체육수업 등 야외활동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현관이나 계단에 둘러앉아 수다를 떨었다. 정호엽 신녕초교 교감은 “자칫 학생들이 열사병에 걸릴까봐 최근 교실 온도를 권고 기준(26~28도)보다 낮춰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상인들은 울상이었다. 신녕공설시장에서 보리밥을 파는 류경숙 씨(59·여)는 “날이 더워 오늘 손님을 2명밖에 못 받았다”며 “에어컨 전기료를 감당할 수 없어 한 달 정도 식당 문을 닫을 생각”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 시장엔 점포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 반면 주민센터 인근 중형마트엔 아이스크림 봉지를 두 손 가득 든 손님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마트를 운영하는 최재원 씨(55)는 “새벽에 아이스크림을 10박스 넘게 들여놔도 오후를 못 넘겨 동이 난다”라고 말했다.● 대프리카 열기 흘러와 갇히는 ‘더위 저수지’ 신녕면은 남서쪽으로 팔공산(해발 1192m), 북쪽으로 보현산(1124m)과 아미산(737m)에 둘러싸인 협곡 지형이다. 그 너머로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있다. 산에 파묻힌 지형은 신녕면을 대한민국 최고 ‘핫(Hot) 플레이스’로 만든 주요 원인이다. 호남지방에서 달궈진 남서풍은 산을 넘어오면서 더 뜨거워져 이곳에 이른다. 남동쪽 방향엔 유일하게 산이 없지만 이곳은 숨구멍이 아니다. 오히려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로 불리는 대구의 뜨거운 공기가 협곡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입구다. 영천시와 함께 최고기온 전국 상위권인 경산시도 그 길목에 있다. 신녕면은 사방에서 모인 열기가 그대로 갇히는 ‘더위 저수지’인 셈이다. 전재목 대구기상지청 관측예보과장은 “이대로라면 경북 지역에서 올여름 최고기온 기록(40.3도)을 경신할 수 있다”며 “노인과 어린이 등 폭염 취약대상은 열사병 등 온열질환과 일광화상을 피하려면 물을 자주 마시고 외출을 삼가는 게 좋다”라고 조언했다.영천=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8-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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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혼이혼 늘며 분할연금 수급자 8년새 6배로

    이혼한 배우자가 들어둔 국민연금을 나눠 받는 고령자가 8년 새 6배 가까이로 늘었다. 24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분할연금 수급자는 2만6820명으로 2010년(4632명)과 비교해 5.8배로 증가했다. 분할연금은 부부 중 한쪽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다가 이혼한 경우 연금 수급 시 일부를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다. 분할연금이 느는 것은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이어오다 갈라선 부부의 비율이 2010년 27.8%에서 지난해 33.1%로 높아지는 등 ‘황혼 이혼’이 많기 때문이다. 분할연금 수급자는 여성이 88.4%(2만3704명)로 남성(3116명)보다 훨씬 많다. 연금을 나누는 비율은 당사자 간 협의나 재판으로 결정한다. 다만 혼인 기간이 길수록 분할연금 수급액이 많아진다. 혼인 기간을 계산할 때는 △실종 기간 △거주 불명으로 등록된 기간 △이혼 소송이 진행된 기간 등은 뺀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다음 달 1일부터 건설 일용근로자가 한 현장에서 월 8일(또는 60시간) 이상 일하면 국민연금 직장가입자가 될 수 있도록 했다. 직장가입자가 되면 연금 보험료의 절반을 사업주가 내기 때문에 근로자 부담이 줄어든다. 그간 건설 일용근로자는 한 현장에서 월 20일 이상 일해야만 직장가입자가 될 수 있었다. 건설 일용근로자가 월 8일 이상 일했는데도 사업주가 연금 보험료의 절반을 내주지 않다가 적발되면 과태료 50만 원과 함께 밀린 보험료를 한꺼번에 물어야 한다. 다만 복지부는 건설사의 부담을 고려해 신규 건설 현장부터 새 기준을 적용하고 이미 진행 중인 현장은 2020년 8월까지 유예한다고 밝혔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8-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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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염 속 또다른 불청객…‘더위 먹은’ 모기 대신 ‘물 만난’ 매미

    “해 뜨기도 전에 매미 소리에 깼어요.”(김모 씨·40·서울 강서구) “매미 울음소리 때문에 이 더위에 창문도 못 열고 자요.”(윤모 씨·33·여·서울 종로구) 폭염으로 잠 못 이루는 밤, 또 다른 불청객이 찾아왔다. 바로 매미다. 24일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올해 폭염으로 나무의 수액을 빨아먹는 꽃매미가 평년보다 닷새가량 일찍 알을 깨고 나왔다. 꽃매미 알이 발견된 지역도 지난해 77곳에서 올해 80곳으로 늘었다. 매미가 더 넓은 지역에서 더 일찍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도심 소음의 주범인 말매미는 이달 초부터 이어진 폭염에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덥고 습한 동남아가 원산지인 말매미는 기온이 27도 이상일 때 울기 시작해 40도에 가까워질수록 활발해진다. 소리를 내는 근육이 더울수록 쉽게 늘었다 줄었다 하기 때문이다. 말매미의 울음소리는 75~95dB(데시벨)로, 가까이서 들으면 청각 이상을 초래할 수준이다. 원래 기온이 30도를 넘으면 잠잠해지는 동토 지역 출신의 참매미도 서울의 폭염에 적응해 소음에 한몫하고 있다.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가 서울 서초구 등 도심 열섬 현상과 열대야 현상이 심한 지역에서 참매미를 채집해 조사해 보니 열을 잘 견디게 하는 열충격단백질(HSP)이 더 많이 검출됐다.반대로 모기는 무더위에 맥을 못 추고 있다. 평균 기온이 27도에서 38도로 상승하면 유충의 성장 속도가 2배 빨라지지만 성충의 활동성이 부쩍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이동규 고신대 보건환경학부 교수는 “너무 빨리 성장한 모기는 수명이 짧다”며 “더위가 한풀 꺾이기 전까지 모기 활동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8-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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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터키에만 있는 ‘주휴 수당’… 왜 생겼는지 정부도 몰라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급 8350원(10.9% 인상)으로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두 자릿수 인상된 것을 두고 노사의 해석이 정반대다. 노동계는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이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 물 건너갔다고 비난한다. 반면 경영계는 이미 실질 최저임금이 1만 원을 넘었다며 자영업자들을 낭떠러지로 떠밀고 있다고 반발한다. 같은 수치를 두고 정반대 해석을 불러온 주범은 ‘주휴수당’이다. 내년도 최저임금만 놓고 보면 노동계의 주장이 틀리지 않다. 하지만 여기에 사업주가 의무적으로 줘야 하는 주휴수당 1680원을 합치면 사실상 최저임금은 1만30원으로 이미 1만 원을 넘은 게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드문 주휴수당이란 독특한 제도로 ‘최저임금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셈이다.○ 왜 도입했는지 고용부도 몰라 근로기준법 55조에선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1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하루 8시간씩 주 5일을 일하고 주말 이틀을 쉬어도 이 중 하루는 근무한 것으로 간주해 매주 일당(내년 최저임금 기준 6만6800원)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주휴수당은 1953년 근로기준법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보장했다. 당시 국회는 주휴수당을 보장한 일본의 노동기준법을 거의 그대로 베껴 근로기준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 제도를 왜 도입했는지는 관련 자료나 증언이 없어 고용노동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다만 과거에는 근로자의 임금이 낮아 임금을 조금이나마 높여주고자 주휴수당을 도입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시아 국가들이 근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근로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산업정책을 많이 활용했다”며 “그 대신 근로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 차원에서 주휴수당을 도입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휴수당을 도입한 나라는 일본 대만 한국 터키 등으로 모두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근로자의 임금 수준이 높아지고 근로시간이 점점 줄어들면서 일본의 경우 1990년대 주휴수당을 없앴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주휴수당이 법으로 보장된 나라는 한국과 터키뿐이다. 미국과 영국은 법정유급휴일이 아예 없고 노사 자율에 맡긴다. 프랑스는 노동절(5월 1일) 하루만, 독일 호주 캐나다 등은 국가공휴일을 유급휴일로 보장하고 있다.○ “주휴수당, 최저임금에 포함시켜야” 과거 최저임금이 낮았을 때는 주휴수당 논란이 거의 없었다. 주휴수당을 법대로 지급하는 사업장이 드물었고, 지급하더라도 부담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최저임금을 시급과 월급으로 고시하기 시작하면서 주휴수당 논란이 전면에 등장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도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추진했지만 경제 상황이 여의치 않아 매년 7∼8%밖에 올리지 못했다. 이에 노동계가 최저임금을 고시할 때 시급과 함께 주휴수당을 포함한 월급을 함께 고시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경영계와 고용부가 이를 수용했다. 주휴수당을 주지 않으면 불법이란 점을 널리 알려 사실상 최저임금이 오르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하지만 올해 최저임금(7530원)이 지난해보다 16.4%나 오르면서 주휴수당(1520원)을 합친 실질 최저임금(9050원)이 1만 원에 육박하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주휴수당 폐지 청원이 수백 건 올라왔다. 이에 소상공인연합회는 주휴수당도 임금인 만큼 최저임금 산입범위(최저임금 산정 시 포함되는 임금 항목)에 포함시켜야 한다며 고용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다음 달 10일 1심 선고가 나온다. 하지만 소상공인연합회가 승소하더라도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한국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대법원 판결 이전에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 교수는 “당장 주휴수당을 폐지하면 심각한 노사갈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며 “특례를 만들어 최저임금을 계산할 때 포함시키는 방안은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대만은 주휴수당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시키고 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에 당장 포함시키는 게 어렵다면 향후 몇 년부터 포함시킨다는 식으로 노사가 합의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주휴수당 ::주 15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가 결근을 하지 않고 한 주를 일했을 때 보장되는 휴일에 대한 유급수당. 1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다. 예를 들어 주 5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8시간씩 일하면 주말에 이틀을 쉬고도 이 중 하루는 8시간 근무한 것으로 간주해 임금을 받는다. 주 5일을 일하고 6일 치 임금을 받는 셈이다. 유성열 ryu@donga.com·조건희 기자}

    • 2018-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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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乙의 전쟁터’가 된 최저임금위… 독립성 없는 ‘사회갈등 기구’

    “을(乙)의 전쟁터가 돼버렸다.’ 지난 몇 달간 내년도 최저임금(시급 8350원) 결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극심해지자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안팎에선 이런 말이 유행했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사회적 대화기구인 최임위가 조정과 타협 기능을 상실한 채 저임금 근로자와 소상공인의 싸움터가 돼버린 상황을 빗댄 표현이다. 여기에 정부, 정치권의 외압과 양대 노총 정규직 노조의 정치투쟁까지 맞물리면서 독립적 의사결정 기구를 표방한 최임위의 수명이 다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특히 노사 간 극심한 갈등 속에 정부가 위촉한 공익위원 8명이 노동시장의 미래를 결정한 데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와 같은 최임위를 없애고 최저임금을 합리적으로 결정할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싸움터로 전락한 최임위 1987년 고용노동부 소속 기관으로 출범한 최임위(최저임금은 1988년부터 시행)는 32년째 극심한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으면서 정권의 정책을 구현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반대로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은 최임위를 정치투쟁의 장으로 활용해 왔다. 사회적 대화기구가 아니라 ‘사회적 갈등기구’가 돼버린 셈이다. 최저임금법에서 노사 대표와 공익위원 각 9명씩 모두 27명으로 최임위를 구성하도록 한 것은 노사가 서로 양보하고, 전문가들이 이를 중재해 합리적 수준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라는 취지였다. 같은 방식을 운영 중인 독일과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은 이런 취지가 잘 구현되는 편이다. 하지만 한국은 공익위원을 고용부가 위촉하다 보니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이행하는 ‘거수기’ 역할에 그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고용 충격이 심각한 상황에서 공익위원들이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률을 밀어붙인 것이 단적인 예다. 근로자위원 9명을 정규직 중심의 양대 노총이 추천하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정작 최저임금에 생존권이 걸린 비정규직과 저임금 근로자를 대표하는 위원은 2명뿐이다. 사용자위원 9명 중에서도 소상공인 대표는 2명에 불과하다. 저임금 근로자와 소상공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을 사실상 정부와 기득권 세력이 결정하는 셈이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임위의 모양은 협의의 장이지만 실제로 협의가 이뤄진 적이 거의 없다”며 “사실상 정부가 최저임금을 결정하면서 싸움만 붙여놓는 구조다. 최저임금과 무관한 대기업 노사 간 기(氣) 싸움 장으로 변질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금융통화위처럼 독립시켜야” 최저임금 협상이 매년 극심한 갈등을 일으키면서 이번 기회에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대폭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익위원을 정부가 임명하고 대기업 노사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처럼 정치적 외압을 차단한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정부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국회에서 여야가 동수로 전문가들을 추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통위처럼 독립적, 중립적인 기관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게 부작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최임위가 제도 개선을 위해 만든 전문가 태스크포스(TF)는 ‘최저임금 구간설정위’와 ‘최저임금 결정위’로 최임위를 나누는 방안을 제시했다.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의 상·하한선을 설정하면 그 안에서 노사가 협상을 통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처럼 정부가 공익위원을 위촉하는 구조에서는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이나 뉴질랜드처럼 의회가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한국은 여야가 매년 극심한 대립을 반복하는 데다 국회의원들이 ‘표심’의 영향을 더 많이 받기 때문에 오히려 합리적 결정을 내리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유성열 ryu@donga.com·조건희 기자}

    • 201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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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용한파 감안했다면서… ‘노동계 협상참여 배려분’까지 챙겨줘

    예상대로 정부가 위촉한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안(시간당 8350원)대로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대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을 달성하려면 내년과 후년 15% 이상씩 올려야 했다. 하지만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10.9%에 그쳤다. 공익위원들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으로 치닫는 ‘고용 쇼크’를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류장수 최저임금위원장은 14일 최저임금 결정 직후 “고용 사정이 좋지 않은 걸 반영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경영계의 주장대로 동결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두 자릿수 인상률을 고집했다. 결국 노동계의 압박과 고용 악화 사이에서 10%대 초반 인상이란 ‘정치적 타협’을 택한 셈이다.○ 공익위원 ‘정치적 선택’ 한 듯 14일 최저임금위원회 전체회의는 사용자위원 9명 전원과 근로자위원 9명 중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추천 위원 4명이 불참한 가운데 열렸다. 결국 공익위원 9명의 손에 내년도 최저임금액이 달려 있었다. 공익위원들은 근로자위원들이 제시한 8680원보다 330원 낮은 8350원을 중재안으로 제시했다. 올해 7530원과 비교하면 820원 올리는 안이었다. 공익위원들은 820원 인상의 근거로 △소득 분배를 위한 상승분(369원) △유사 근로자의 임금 인상 전망치(286원) △최저임금에 정기 상여금과 일부 복리후생비가 포함되는 데 따른 보전(75원) 등을 들었다. 또 마지막까지 표결에 참여한 노동계에 대한 협상 배려분이라며 90원을 추가했다. 그러나 공익위원들은 당초 8300원을 제안했다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5명의 요구로 50원을 추가로 올렸다. 결국 뚜렷한 인상 근거가 있었다기보다 10%대 초반 인상률을 정해놓은 채 노동계와 타협했다는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공익위원인 강성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익위원 중 한 자릿수 인상률을 제시한 위원도 있었다”고 전했다. 지난달 제조업 취업자 수가 1년 5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드는 등 일자리 쇼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공익위원들의 부담이 컸다는 의미다.○ 실질 최저임금은 1만 원 돌파 인상액으로는 지난해(1060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최저임금이 크게 올랐지만 노동계는 문 대통령의 공약이 사실상 무산됐다고 비판했다. 민노총은 “박근혜 정부 4년간 평균 인상률이 7.4%였다”며 “(문 대통령의) 공약 폐기 선언에 조의(弔意)를 보낸다”는 성명을 냈다. 반면 경영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이 사실상 1만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실제 최저임금 8350원에 의무적으로 줘야 하는 주휴수당(근로자가 일주일 개근할 때마다 지급해야 하는 유급휴일수당) 1680원을 포함하면 실질 최저임금은 1만30원이 된다. 월급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사업주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인건비까지 감안하면 실질적 최저임금이 1만1825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4대 보험료 사업주 부담분과 퇴직급여 적립액을 포함한 금액이다. 최근 2년간 최저임금 인상률 29.1%는 이명박 정부 5년 인상률(28.9%)보다 높은 수치다.○ 급격한 인상으로 ‘범법 사업주’ 속출할 수도최저임금 인상으로 영향을 받는 근로자는 최대 501만 명으로 추산된다. 전체 임금 근로자(약 2000만 명) 4명 중 1명이 최저임금 대상이라는 얘기다. 숙박·음식업은 내년에 해당 업종에 종사하는 근로자 중 62.1%의 임금을 올려줘야 한다. 편의점 등 도·소매업도 근로자의 37.3%가 임금이 오른다. 이는 역설적으로 최저임금을 주지 못하는 ‘범법 사업주’가 속출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올림으로써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영세 사업주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근로자가 1∼4인인 사업장에서는 절반 이상(51.8%) 임금을 올려줘야 하는 반면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임금을 올려줘야 하는 비율이 4.2%에 불과하다. 한계 상황에 다다른 영세업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최저임금을 주지 않거나 근로자를 해고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도 저도 안 되면 문을 닫아야 한다. 가뜩이나 어려운 고용시장에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기름을 붓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대로라면 자영업자가 줄도산해 최저임금 근로자의 일터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조건희 becom@donga.com·유성열 기자}

    • 201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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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년도 최저임금 8350원…올해보다 10.9% 인상

    2019년 최저임금이 올해(시급 7530원)보다 10.9%(820원) 오른 시급 8350원(주 40시간 기준 월급174만5150원)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이 8000원을 돌파한 것은 처음이다.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는 14일 새벽 4시 35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15차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이같이 의결했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10일 간 이의제기 기간과 고용노동부의 검토 절차를 거쳐 다음달 5일 확정 고시된다. 이날 회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4명과 사용자위원 9명 전원이 불참했다. 민노총 추천 위원들은 내년부터 시행되는 산입범위(최저임금 산정에 포함되는 임금의 항목) 확대에 반발해 심의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사용자위원들도 업종별 차등 적용이 부결된 것에 반발해 전날 14차 회의에서 이어 15차 회의에 불참했다. 이들은 13일 오후 3시부터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별도로 모여 복귀 여부를 다시 논의했지만 결국 마지막 회의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최임위는 전체 27명(사용자·근로자·공익위원 각 9명) 위원 중 공익위원 9명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추천 위원 5명 등 14명만 참석한 채 공익위원이 제시한 8350원(10.9% 인상)과 근로자위원의 8680원(15.3% 인상)을 투표에 부쳤다. 투표 결과는 ‘8 대 6’로 공익위원이 제시한 8350원으로 결정됐다. 노동 시장에 거대한 충격을 몰고 올 최저임금을 이번에도 정부가 위촉한 공익위원들이 사실상 결정한 셈이다. 최저임금이 처음으로 8000원을 넘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2020년까지 1만 원 달성’은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공약이 지켜지려면 내년에도 15% 인상된 8660원 이상으로 올려야 했다. 특히 친(親)노동계 성향의 공익위원들이 15% 이상 인상을 밀어붙일 거란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최저임금 ‘불복종 투쟁’을 선포한 소상공인들의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막판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정부 내부에서도 ‘속도 조절론’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공익위원들조차 15% 이상 인상에는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인상률은 예상보다 적었지만 파장은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동결을 주장해 온 경영계는 8350원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사용자위원은 “올해(시급 7530원) 16.4%나 오른 상황에서 또 다시 10% 넘게 올리는 것은 사업을 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세종=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2018-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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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저임금 8000원’… 또 고용충격 오나

    2019년 최저임금이 사상 최초로 시급 8000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는 13일 오전 10시 정부세종청사에서 ‘14차 전원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업종별 차등화가 부결된 것에 반대한 사용자위원 9명이 전원 불참함에 따라 35분 만에 정회됐다. 사용자위원들은 이날 오후 3시부터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별도로 모여 복귀 여부를 논의했지만 결국 불참을 결정했다. 사용자위원들이 여전히 서울에 머물러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최임위는 오후 3시 50분 회의를 재개해 밤늦도록 심의를 이어갔다. 이날 회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추천 위원 4명도 불참했다. 이로써 전체 27명(사용자·근로자·공익위원 각 9명) 위원 중 공익위원 9명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추천 위원 5명 등 14명만 회의에 참석했다. 노동 시장에 거대한 충격을 몰고 올 내년 최저임금을 공익위원과 한국노총이 결정하게 된 셈이다. 이에 따라 내년 최저임금은 시급 8000원을 처음으로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 7530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대로 2020년까지 1만 원을 달성하려면 내년에도 15% 인상된 8660원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 그러나 최저임금 ‘불복종 투쟁’을 선포한 소상공인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고,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정부 내부에서도 ‘속도 조절론’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어 8∼9% 인상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소 7%만 올려도 8060원으로 8000원을 돌파한다. 그러나 동결을 주장해 온 경영계와 소상공인들은 8000원대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파장이 만만찮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친(親)노동계 성향의 공익위원들이 15% 이상 인상을 밀어붙일 거란 관측도 있다. 류장수 최저임금위원장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최임위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잃으면 남는 게 없다”며 최저임금 논의와 관련한 외부 발언에 불만을 드러냈다. 김 부총리 등 정부 인사들이 ‘속도 조절론’을 제기하고 나선 것을 강하게 비판한 셈이다.유성열 ryu@donga.com / 세종=조건희 기자}

    • 2018-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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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용자측 “노동계 편향 공익위원 결론 뻔해”… 의결거부 초강수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가 결국 ‘반쪽 회의’로 파행했다. 노동계와 경영계가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아간다는 본래 취지와 달리 양쪽의 갈등만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최임위 전원회의는 전체 위원 27명 중 공익위원 9명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5명만 참석해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으로 구성된 사용자위원 9명은 불참했다.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하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안’이 10일 최임위에서 부결된 것에 대한 항의 표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4명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반발해 아예 한 번도 최저임금 심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근로자위원 측은 오전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사용자위원이 돌아오지 않으면 나머지 위원만으로 최저임금을 정하자”고 공익위원들을 압박했다. 이성경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오전 모두발언에서 “회의에 와서 주장을 표현해야지, 언론 플레이를 하는 건 비겁하다”며 “사용자 측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결과를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류장수 최임위 위원장은 사용자위원들이 일부라도 오후 회의에 복귀할 것이란 기대감을 나타냈다. 류 위원장은 “오늘은 축구 경기로 치면 ‘연장 후반전’에 해당하는 매우 중요한 날”이라며 “사용자위원들이 오후엔 참석할 것으로 기대와 예상을 해본다”고 말했다. 오전 회의를 35분 만에 마친 뒤에도 일부 최임위 관계자들은 “사용자위원들이 세종시 모처에서 모일 것으로 보이는데, 모임 후 회의에 복귀하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며 상황을 낙관했다. 하지만 사용자위원 9명은 이날 오후 3시부터 저녁까지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대책회의를 연 끝에 “올해 최저임금 심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확정했다. 내년도 최저임금으로 시급 1만790원을 제시한 근로자위원과 협상을 벌인들 견해차를 좁히지 못할 것이 확실시되고, 공익위원의 중재안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경총 관계자는 “(첫 제시안대로) 동결(7530원)이 원칙이다. 인상해도 2∼3%를 넘어서는 수준은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회의를 속개했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며 사용자위원 측의 입장 변화를 기다리던 공익 및 근 로자위원은 이 같은 소식을 접한 뒤 14일 위원 총수 27명 중 공익위원 9명과 근로자위원 5명 등 14명만으로 과반(법정 의결 정족수)을 채워 내년도 최저임금을 의결하기로 했다. 노사 양측이 10일 첫 제시안을 내놓은 뒤로 서로 한 발짝도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정부가 추천한 공익위원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게 된 것이다. 과거 최임위에선 노사가 각자 이듬해 최저임금을 처음 제시한 뒤에도 통상 3, 4차례 더 회의를 열어 2∼4차 수정안을 내며 최종 금액을 정했던 것과 대비된다. 한 사용자위원은 “공익위원이 완전히 노동계에 편향적인 상황에서 회의에 참석해봤자 결과가 달라지는 게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 경영단체 관계자는 “최임위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결국 인상이 될 텐데 그 책임을 나누긴 힘든 상황”이라며 “공익위원이 조금이라도 중재 역할을 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조건희 becom@donga.com / 유성열·이은택 기자}

    • 2018-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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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국내 제약사, ‘발암물질 고혈압약’ 정부에 늑장보고 의혹

    중국 제약사가 혈압약 원료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된 사실을 지난달 유럽 제약사에 알린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제약사도 이 같은 사실을 통보받았지만 정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카멜리아 에나치오유 유럽의약품청(EMA) 공보관은 11일 동아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지난달 중국 제지앙화하이가 혈압약의 원료의약품 발사르탄에 2A군(인체 발암가능) 물질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섞인 사실을 유럽의 제약사들에 알렸고, 제약사들이 이를 곧장 보고하면서 조사에 착수했다”라고 밝혔다. EMA는 이에 따라 이달 5일 해당 의약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반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EMA가 회수를 시작한 뒤에야 문제를 파악했다. 제지앙화하이로부터 발사르탄을 공급받은 국내 제약사 42곳 중 불순물 검출 사실을 보고한 업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알고도 일부러 보고하지 않았는지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제지앙화하이의 발사르탄을 수입해온 S제약 측은 “해당 문제를 미리 인지했는지 확인해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제약사가 의약품의 안전성과 관련된 사안을 식약처에 보고하지 않으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다만 문제를 인지한 분기가 지나고 1개월 내에만 보고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어, 절차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발암물질이 섞인 혈압약 원료는 2012년부터 국내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 EMA에 따르면 제지앙화하이는 “2012년 제조 공정을 바꾼 뒤 발사르탄에 발암물질이 섞인 것으로 보인다”는 자체 조사결과를 보고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국내 고혈압 환자들이 NDMA가 섞인 혈압약을 6년 넘게 복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문제가 된 의약품을 복용한 국내 환자는 17만8536명이다. NDMA는 훈제 요리 등 음식물을 통해서도 섭취할 수 있다. 다만 혈압약처럼 장기간 매일 복용하는 의약품에는 적은 양의 NDMA가 섞여도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식약처가 지난해 12월 번역 발간한 국제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ICH)의 가이드라인에는 “NDMA는 발암성이 매우 강해 복용 허용치를 일반적인 불순물보다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언급이 있다. 일반적인 불순물의 복용 허용치는 하루 1.5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이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한성희 인턴기자 한양대 경영학부 4학년}

    • 2018-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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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저임금위 사실상 勞 18 대 使 9… 민노총 불참에도 勞 절대우위

    올해 최저임금(시급 7530원)을 16.4%나 올리면서 고용 충격이 사상 최악으로 치닫는 가운데 내년도 최저임금이 이르면 13일, 늦어도 14일 새벽에 결정된다. 주 52시간제 시행과 맞물려 노동시장의 혼란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또다시 대폭 오르면 고용시장의 충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경영계에선 동결을 강하게 주장하지만 최저임금 결정 권한을 가진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구성상 8000원대 인상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 ‘노동계 18 vs 경영계 9’ 1988년부터 시행된 최저임금은 근로자, 사용자, 공익위원(위원장, 상임위원 포함) 각각 9명씩 총 27명(임기 3년)으로 구성된 최임위가 매년 협상을 통해 결정한다. 이 중 근로자위원은 양대 노총이, 사용자위원은 사용자단체(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연합회 등)가 추천하면 고용노동부 장관이 위촉한다. 공익위원은 관련 분야 전문가 중 고용부 장관이 직접 선정해 위촉한다. 최임위를 이렇게 구성한 건 노사가 서로 양보해 최저임금을 합리적으로 결정하라는 취지다. 노사의 금액 차가 좁혀지지 않으면 공익위원이 중재안을 제시해 합의를 유도한다. 지금까지 30년 동안 최임위 협상 가운데 노사 합의로 최저임금을 의결한 것은 7번뿐이다. 거의 매년 노사가 극심한 갈등을 겪다 협상이 결렬됐고, 막판에 공익위원의 중재안을 표결에 부쳐도 어느 한쪽이 표결에 불참하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사실상 노사위원이 아닌 공익위원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최저임금을 결정하게 된다. 공익위원이 노사 중 어느 쪽 성향이 강하느냐에 따라 인상 수준이 정해지는 셈이다. 문제는 고용부 장관이 위촉하는 공익위원들은 정권 성향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는 점이다. 사실상 청와대가 공익위원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혹도 지속적으로 나온다. 정부가 제시한 지침을 공익위원들이 충실히 따르면서 최저임금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올해 공익위원 8명이 진보 성향 또는 현 정부와 가까운 인사들로 물갈이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류장수 위원장은 중도보수 성향이지만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다. 지난해 교육부 대학구조개혁위원장을 맡는 등 현 정부와 가깝다. 사실상 위원장을 포함한 공익위원 9명 전원이 친노동계로 분류된다. 강성태(한양대 교수), 백학영(강원대 교수), 박은정(인제대 교수), 이주희(이화여대 교수), 오상봉 위원(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진보 성향이고, 권혜자 위원(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한국노총 출신으로 사실상 근로자위원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혜진 위원(세종대 교수)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활동하는 등 현 정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용자위원들은 최임위 구성이 ‘노동계 18 대 경영계 9’라고 지적한다.○ 매년 극심한 진통 속 표결 처리 내년 최저임금 결정의 법정 시한은 14일이다. 시한을 눈앞에 두고 노사의 간극은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다. 경영계는 최저임금 동결을, 노동계는 1만790원으로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타협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13일 바로 표결을 할 수도 있지만 여러 차례의 중재와 진통이 거듭되면서 법정 시한인 14일 새벽까지 협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2014년과 2015년의 경우 최저임금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음에도 노사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2016년(공익위원 중재안 통과)과 2017년(사용자안 통과) 최저임금 역시 법정 시한 당일 오전 1∼4시경 표결처리했다. 당시 근로자위원은 물론이고 일부 사용자위원도 표결에 불참했다. 특히 올해 최저임금은 사상 처음으로 근로자위원(7530원)과 사용자위원(7300원)의 제시액이 동시에 표결에 부쳐져 15 대 12로 근로자위원의 안이 확정됐다. 공익위원 9명 중 6명이 노동계에 표를 던진 결과다. 결국 최근 5년간 단 한 번도 노사 합의가 없었던 셈이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막판 협상은 13일 오전 10시에 시작된다. 이날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14일 0시부터 바로 다음 협상을 진행한다. 결국 14일 새벽쯤 표결을 통해 최종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때 공익위원들이 합리적 중재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올해도 노사 중 어느 한쪽은 표결에 불참할 가능성이 높다. 사용자위원 9명이 전원 불참하더라도 현재 공익위원 9명, 근로자위원 5명(민노총 위원 4명은 불참 중)만으로도 27명의 과반이 되기 때문에 내년 최저임금 의결이 가능하다. 문 대통령이 공약한 시급 1만 원을 2020년까지 달성하려면 올해도 15%(8660원) 이상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 정부 안팎에서는 공익위원들이 15% 이상 인상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속도 조절론이 강하게 제기되는 것이 막판 변수”라며 “결국 청와대의 뜻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유성열 ryu@donga.com·조건희 기자}

    • 2018-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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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저임금 차등화 부결… 경영계 “협상 보이콧”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하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안’이 10일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에서 부결됐다. 이에 차등 적용을 강하게 주장해 온 경영계가 14일 내년도 최저임금 확정을 나흘 앞두고 회의 불참을 선언했다. 한동안 노동계의 불참으로 파행을 빚다가 이달 3일 가까스로 정상화된 최임위가 또다시 극심한 파행 국면으로 치닫는 것이다.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임위 전원회의에는 ‘최저임금의 사업(업종)별 구분 적용안’이 상정됐다. 이는 업종마다 천차만별인 영업이익과 소상공인의 비율을 고려해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조업 등 생계형 근로자와 편의점·PC방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등은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업종별로 최저임금이 차등 적용되는 방안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으로 구성된 사용자위원 9명은 차등 적용을 강하게 주장했지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추천 인사로 구성된 근로자위원 5명은 “취약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최저임금 제도의 취지와 다르다”며 맞섰다.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최임위는 표결을 실시했다. 차등 적용 반대가 14명, 찬성 9명으로 부결됐다. 익명 투표였지만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 9명이 모두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사용자위원들은 11일 예정된 전원회의 불참을 선언했다. 사용자위원들은 “지금도 소상공인 근로자 3분의 1 이상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관행만을 내세워 단일 최저임금제를 고수하는 것은 한계에 직면한 소상공인의 현실을 회피하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사용자위원 간사인 이동응 경총 전무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최저임금 차등화 무산에 따른 경영계의 충격을 해결할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후 회의에 복귀할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강훈중 한국노총 대변인은 “경영계가 최저임금 업종 구분을 고집하며 근로자 간 차별과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경영계가 끝내 불참한다면 근로자위원과 공익위원만이 참여한 가운데 내년도 최저임금이 정해지게 된다. 최임위는 14일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시한을 앞두고 11일에 이어 13일 회의에 나선다. 최임위 위원은 모두 27명으로 공익위원 9명, 근로자위원 5명만 참여하면 과반이 된다.조건희 becom@donga.com·유성열 기자}

    • 201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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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使측 “최저임금 동결시키기 위해 최대한 싸울것”

    올해에 이어 내년 또다시 큰 폭으로 최저임금이 오를 경우 직격탄을 맞을 경영계가 10일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불참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여기엔 사용자위원과 근로자위원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해야 하는 공익위원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이날 최임위 전원회의에서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하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안’에 반대표를 던진 위원은 모두 14명이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안은 사용자위원(9명)들이 강하게 주장해온 내용으로 이들은 찬성표를 던졌다. 이에 맞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추천한 근로자위원 5명은 애초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여기에 공익위원 9명이 전원 근로자위원 편에 선 것이다.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 9명은 모두 진보 성향이거나 친정부 인사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의 캐스팅보트를 쥔 공익위원들이 결국 근로자위원의 손을 들어줄 것’이란 경영계의 위기감이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경영계가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폭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배수의 진을 쳤다는 해석도 나온다.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최저임금 제도가 시행된 1988년부터 경영계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사안이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최저임금 제도개선 연구 태스크포스(TF)는 “업종별 차등 적용은 중장기적 논의가 필요하지만 현 시점에서 (적용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올해도 업종별 차등 적용안이 최임위를 통과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럼에도 ‘불참 카드’를 꺼낸 건 경영계가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사용자위원 측 관계자는 “업종별 차등 적용안이 부결된 만큼 정부가 이에 상응하는 대책을 내놓을 수 있도록 최대한 싸우겠다”고 말했다. 최임위로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4명이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반발해 회의에 불참하는 상황에서 사용자위원마저 빠진 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다. 결국 14일 내년도 최저임금 최종 결정을 앞두고 경영계는 ‘복귀 명분’을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위원이 13일 회의에 복귀해도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은 순조롭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5일 회의 당시 사용자위원 측은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와 같이 7530원으로 동결하자고 주장한 반면에 근로자위원은 3260원(43.3%) 인상한 1만790원을 제시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유성열 기자}

    • 201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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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년 색조화장품서 허용치 10배 중금속

    청소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문구점 등에서 판매하는 중국산 색조화장품에서 허용치의 10배가 넘는 중금속이 검출됐다. 10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은 2∼4월 경기의 문구점과 편의점 6곳에서 팔고 있는 색조화장품 49종과 눈 화장품 10종을 수거해 중금속 안전성 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중국에서 생산된 미니소코리아의 볼 터치 화장품 ‘퀸 컬렉션 파우더’ 오렌지와 핑크 두 종에서 제품 1g당 중금속 안티몬이 96∼106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 검출돼 해당 제품을 전량 회수·폐기하고 판매중지 조치했다. 화장품 속 안티몬의 허용치는 제품 1g당 10μg이다. 안티몬이 과다 검출된 두 제품은 올해 초 중국의 한 공장에서 생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안티몬에 과다 노출되면 구토나 설사 등을 유발할 수 있고 심각하게는 심장이나 콩팥의 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화장품은 피부에 오래 남아있어 유해물질이 섞이면 그 피해가 커질 수 있다”며 “특히 피부가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청소년기엔 자극이 강한 색조화장품을 가급적 쓰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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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멋으로 용가리 연기? 폐가 더 멍들어요

    “셋, 둘, 하나!” 사회자가 구령하자 두 흡연자가 일제히 입에서 하얀 증기를 내뿜었다. 마치 드라이아이스가 나오듯 뿌연 공기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구경꾼들이 환호하며 증기를 더 많이 내뿜은 흡연자를 승자로 지목했다. 니코틴 용액 제조업체 N사가 3월 서울 용산구의 한 술집에서 신제품 출시를 기념해 개최한 ‘무화량(증기량) 토너먼트 대회’의 한 장면이다. 행사가 열린 장소는 금연구역이지만 행사 동영상 속 참가자들은 이를 의식하지 않는 듯 끊임없이 전자담배의 증기를 내뿜었다.○ ‘굴뚝 증기’로 과시욕 충족 일부 액상형 전자담배 애호가들 사이에서 담배연기처럼 뿜어져 나오는 증기량을 크게 늘린 ‘굴뚝 전자담배’가 유행하고 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가열된 코일이 니코틴 용액을 끓인 뒤 여기서 나오는 증기를 흡연자가 들이마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대용량 배터리를 사용해 전류량을 늘리면 순간적으로 코일의 온도를 급격히 올려 한번에 많은 양의 니코틴 용액을 기화시킬 수 있다. 일반 전자담배에 쓰는 배터리의 용량은 650mAh이지만 굴뚝 전자담배는 3000mAh짜리 2개를 쓴다. 정격(定格)전력은 일반 전자담배가 10∼15W 수준인 데 비해 굴뚝 전자담배는 225W에 이른다. 유튜브에선 ‘무화량’이라는 키워드로 6600여 건에 이르는 동영상이 검색된다. 주로 발열이 용이한 코일을 따로 구해 기존 기기를 개조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현행 담배사업법상 니코틴 용액은 일반인의 제조 및 판매가 금지돼 있지만 전자담배 기기는 누구든 개조해도 문제가 없어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다. 전자담배 커뮤니티에선 기기 성능을 과시하는 글을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주로 “커피숍 흡연실에서 ‘용가리 증기’를 뿜었더니 일반 담배 흡연자들이 도망갔다”라거나 “방에서 피웠더니 경비원이 불이 난 줄 알고 쫓아 올라왔다”라는 내용 등이다. 양재웅 W진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다른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켜 ‘과시욕’을 충족하려는 행태”라고 분석했다.○ 증기 늘리면 유해물질 농도도 높아져 액상형 전자담배는 통상적으로 일반 담배보다 유해물질 함량이 적다고 알려져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15∼2016년 국내에서 많이 팔린 제품의 니코틴 함량을 비교 실험해보니 일반 담배 한 개비의 연기에선 0.4∼0.5mg이, 액상형 전자담배 한 개비 분량(10회 호흡)의 증기에선 0.3∼0.7mg이 각각 검출됐다. 반면 두통을 유발하는 유해물질인 아세톤의 검출량은 일반 담배가 104.5∼127.4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에 이르는 반면 전자담배는 0∼1.5μg으로 훨씬 적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굴뚝 전자담배를 통해 들이마시는 증기가 일반 담배 연기보다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번에 많은 양의 증기를 만들기 위해 코일의 온도를 급격히 올리는 과정에서 유해물질의 농도도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미국심장협회 산하 담배규제중독센터(A-TRAC)가 지난해 3월 실험한 결과 정격전력이 11.7W인 액상형 전자담배에선 1군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129.6μg 검출된 반면 16.6W인 제품에선 6배인 819.8μg으로 나타났다. 2군 발암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의 검출량은 두 제품에서 각각 22.7μg, 532.1μg이었다. 담배 기기의 전압이 높을수록 유해물질도 많이 생성되는 것이다. 이들보다 정격전력이 최소 5배가량 높은 ‘굴뚝 전자담배’에선 훨씬 많은 유해물질이 나올 수밖에 없다. 8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정격전력이 80W인 전자담배를 사용해보니 세 모금 만에 10m²(약 3평) 남짓한 흡연실이 증기로 가득 차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정격전력이 10W인 일반 전자담배는 10차례 이상 들이마시고 내쉬어도 증기가 금세 흩어져 사라졌다. 일반 담배의 연기와 궐련형 전자담배(아이코스)의 증기도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었다. 신호상 공주대 환경교육과 교수는 “일부 전자담배 애호가들은 무화량을 과시하기 위해 폐에 가득 증기를 채웠다가 내뿜는 식으로 흡연하는데 이때 유해물질이 폐 속 깊은 곳까지 도달해 건강에 더 해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8-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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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흡연실서 ‘용가리 증기’ 뿜었더니, 일반담배 흡연자들이…”

    “셋, 둘, 하나!” 사회자가 구령하자 두 흡연자가 일제히 입에서 하얀 증기를 내뿜었다. 마치 드라이아이스가 나오듯 뿌연 공기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구경꾼들이 환호하며 증기를 더 많이 내뿜은 흡연자를 승자로 지목했다. 니코틴 용액 제조업체 N사가 3월 서울 용산구의 한 술집에서 신제품 출시를 기념해 개최한 ‘무화량(증기의 양) 토너먼트 대회’의 한 장면이다. 행사가 열린 장소는 금연구역이지만 행사 동영상 속 참가자들은 이를 의식하지 않는 듯 끊임없이 전자담배의 증기를 내뿜었다.● ‘굴뚝 증기’로 과시욕 충족 일부 액상형 전자담배 애호가들 사이에서 담배연기처럼 뿜어져 나오는 증기량을 크게 늘린 ‘굴뚝 전자담배’가 유행하고 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가열된 코일이 니코틴 용액을 끓인 뒤 여기서 나오는 증기를 흡연자가 들이마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대용량 배터리를 사용해 전류량을 늘리면 순간적으로 코일의 온도를 급격히 올려 한번에 많은 양의 니코틴 용액을 기화시킬 수 있다. 일반 전자담배에 쓰는 배터리의 용량은 650mAh이지만 굴뚝 전자담배는 3000mAh짜리 2개를 쓴다. 정격(定格)전력은 일반 전자담배가 10~15w 수준인 데 비해 굴뚝 전자담배는 225w에 이른다. 유튜브에선 ‘무화량(담배에서 나오는 연기의 양)’이라는 키워드로 6600여 건에 이르는 동영상이 검색된다. 주로 발열이 용이한 코일을 따로 구해 기존 기기를 개조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현행 담배사업법상 니코틴 용액은 일반인의 제조 및 판매가 금지돼 있지만 전자담배 기기는 누구든 개조해도 문제가 없어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다. 전자담배 커뮤니티에선 기기 성능을 과시하는 글을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주로 “커피숍 흡연실에서 ‘용가리 증기’를 뿜었더니 일반담배 흡연자들이 도망갔다”라거나 “방에서 피웠더니 경비원이 불이 난 줄 알고 쫓아올라왔다”라는 내용 등이다. 양재웅 W진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다른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켜 ‘과시욕’을 충족하려는 행태”라고 분석했다.● 증기 늘리면 유해물질 농도도 높아져 액상형 전자담배는 통상적으로 일반담배보다 유해물질 함량이 적다고 알려져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15~2016년 국내에서 많이 팔린 제품의 니코틴 함량을 비교 실험해보니 일반담배 1개비의 연기에선 0.4~0.5mg이, 액상형 전자담배 1개비 분량(10회 호흡)의 증기에선 0.3~0.7mg이 각각 검출됐다. 반면 두통을 유발하는 유해물질인 아세톤의 검출량은 일반담배가 104.5~127.4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에 이르는 반면 전자담배는 0~1.5μg으로 훨씬 적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굴뚝 전자담배를 통해 들이마시는 증기가 일반담배 연기보다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번에 많은 양의 증기를 만들기 위해 코일의 온도를 급격히 올리는 과정에서 유해물질의 농도도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미국심장협회 산하 담배규제중독센터(A-TRAC)가 지난해 3월 실험해보니 정격전력이 11.7w인 액상형 전자담배에선 1군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129.6μg 검출된 반면 16.6w인 제품에선 6배인 819.8μg로 나타났다. 2군 발암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의 검출량은 두 제품에서 각각 22.7μg와 532.1μg였다. 담배기기의 전압이 높을수록 유해물질도 많이 생성되는 것이다. 이들보다 정격전력이 최소 5배가량 높은 ‘굴뚝 전자담배’에선 훨씬 많은 유해물질이 나올 수밖에 없다. 8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정격전력이 80w인 전자담배를 사용해보니 세 모금 만에 10㎡(약 3평) 남짓한 흡연실이 증기로 가득 차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정격전력이 10w인 일반 전자담배는 10차례 이상 들이마시고 내쉬어도 증기가 금세 흩어져 사라졌다. 일반담배의 연기와 궐련형 전자담배(아이코스)의 증기도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었다. 신호상 공주대 환경교육과 교수는 “일부 전자담배 애호가들은 무화량을 과시하기 위해 폐에 가득 증기를 채웠다가 내뿜는 식으로 흡연하는데, 이 때 유해물질이 폐 속 깊은 곳까지 도달해 건강에 더 해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조건희기자 becom@donga.com}

    • 201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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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식탁마저 위협하는 방사능… 세슘 초과 유통식품 6kg → 480kg

    주부 손모 씨(35)는 먹거리에 혹시 남아있을지 모르는 농약 성분을 피하기 위해 마트에서 유기농 제품만 찾는다. 그런 손 씨가 4월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대형마트에서 산 유기농 블루베리 분말에서 허용치보다 많은 방사성물질인 세슘이 검출돼 회수 조치가 내려졌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방사성물질인 라돈이 침대에서 검출돼 생활 속 방사능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먹고 마시는 제품 중에도 방사능이 허용치 이상 검출된 사례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확인돼 우려가 커지고 있다. 8일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유통식품 방사능 검사 현황’에 따르면 국내에서 유통 중인 식품 중 세슘이 허용치(1kg당 100베크렐·Bq)를 초과한 제품은 올해 5월 말 기준 18개로 나타났다. 세슘 허용치 초과 식품이 2015년과 2016년엔 각 1개, 지난해엔 5개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급격한 증가세다. 1Bq는 1초당 방사성 붕괴가 1회 일어난다는 뜻이다. 수치가 높을수록 강한 방사능을 내뿜는다. 세슘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고 원자력 발전이나 핵 실험 때 생겨나는 방사성물질로 과도하게 노출되면 인체 곳곳에서 암을 일으킬 수 있다. 올해 방사능 허용치 초과 제품 중 3개는 다행히 마트 등 소매점에 넘어가기 전 도매 단계에서 걸러졌다. 하지만 P사의 블루베리 분말은 이미 22.5kg이나 각 소매점에 팔린 상태였다. 이처럼 소비 단계로 넘어간 방사능 검출 제품은 올해 15개, 480kg이다. 2015년 6kg에 비해 소비 단계로 넘어간 양이 80배로 늘었다. 베리류를 가공한 제품에서 세슘이 가장 자주 검출됐다. 최근 4년간 세슘 허용치 초과로 적발된 제품 중 베리류는 빌베리 분말 10개, 링곤베리 분말 6개 등 총 22개다. 중국 등에서 수입한 건조능이버섯 등 버섯류를 제외하면 전부 베리류다. 특히 폴란드산 베리 분말에서만 올해 18건 적발됐다. 전문가들은 폴란드산 베리류에서 세슘이 자주 검출되는 이유가 1986년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가 일어난 체르노빌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탓(약 200km 거리)으로 보고 있다. 진영우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장은 “베리류는 방사선을 많이 흡수하는 성질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다만 이미 유통된 세슘 검출 제품에 대해선 “소화기 내부 피폭을 심각하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강건욱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는 “세슘 검출량이 허용치의 1000배인 제품을 자주 먹어도 인체에 큰 영향이 없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면서도 “다만 특정 국가의 제품에서 자주 방사능이 검출된다면 정부 차원에서 수입 단계 검사를 강화하는 등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01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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