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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9단은 3연성 포석을 선보였다. 세력 바둑에 알파고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이에 알파고는 참고 1도 백 3(실전 18)을 선보이며 인간의 고정관념을 또 한 번 무너뜨렸다. 백 3은 전형적인 속수로 꼽혀 왔다. ‘가’로 둬야 흑이 더 두터워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백 3은 선수를 잡기 위한 임기응변. 세력바둑에선 발 빠른 것이 더 필요한 만큼 일리 있는 행마라는 분석이다. 두고 나면 쉬운데 막상 떠올리지 못하는 건 그만큼 인간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우변에 침입한 백을 어떻게 공격하는지가 이 바둑의 승부처였다. 흑 59의 강수는 구리 9단다웠는데 흑 61이 지나쳤다. 백 전체를 공격하려고 할 게 아니라 참고 2도 흑 1로 끊어야 했다. 백 일부는 살려주더라도 백 두 점을 품에 안으면 충분한 형세였다. 알파고의 깔끔한 수습에 헛심만 쓴 꼴이 됐다. 여기서 한 번 밀리자 알파고는 완벽한 계산력으로 구리 9단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154수 끝 백 불계승.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로 반상 최대의 곳을 차지해서 백 우세는 변함없다. 흑 41, 43은 끝내기 맥이다. 알파고는 44로 물러난다. 흑이 2집 이득을 봤다. 인간 프로기사 같으면 일단 패를 한 번 따내고 볼 텐데 알파고는 유리할 땐 절대 패를 하지 않는다. 또 백 44 대신 참고 1도 1로 잇는 것은 좋지 않다. 흑 8까지 ‘흑이 한 수 늘어진 패’가 생긴다. 흑 45에 백 46을 생략해도 상변 백을 잡는 수는 없다. 참고 2도 흑 1의 붙임이 기발한 수인데 백 2가 좋은 대응으로 백 6까지 살아간다. 다른 수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알파고도 유리할 때 조금 찜찜한 곳이 있으면 가일수한다. 알파고는 최선의 수보단 이기는 수를 찾도록 세팅이 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흑 47, 49로 젖혀 이은 것은 선수가 아니다. 백이 손을 빼고 50으로 좌하 쪽 끝내기를 했고 이것으로 승부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덤을 받지 않아도 백이 앞서는 형세다. 알파고를 상대로 중반에 불리해지면 역전 기회는 0%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한판이었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18의 단수로 좌변은 흑백의 권리가 반반인 곳이 됐다. 이제 집 모양이 새롭게 생길 곳이 사라졌고 끝내기만 남은 상황. 흑 19로 참고 1도 흑 1처럼 나올 수는 없다. 백 2가 좋은 수. 흑은 3, 5로 좌변을 취할 수 있지만 백 6으로 중앙 흑이 잡히면 크게 밑지는 장사다. 구리 9단은 흑 19, 21로 최대한 버티는데 알파고는 백 22로 최대한 안전하게 두면서 우세를 지킨다. 구리 9단은 흑 31로 중앙 백 2점을 잡고 33으로 좌변 흑 돌을 살리며 동분서주하지만 ‘부처님 손바닥 위’라는 느낌이다. 백 34도 아픈 수. 흑 35가 최선인데 우상 흑 집은 양쪽 1선이 모두 터져 있어 바짝 쪼그라들 조짐이다. 백 36 때 흑 37은 생략할 수 없다. 참고 2도 백 1로 뚫고 나오는 수가 있어 중앙 흑이 잡히기 때문. 백 38의 두터운 자리가 또다시 알파고의 손에 들어왔다. 부드럽지만 묵직하고 효율적으로 상대를 밀어붙이는 백의 행마에 흑은 속수무책이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는 5의 곳을 끊겠다는 수인데 구리 9단이 잇지 않고 흑 ○로 반격에 나선 장면이다. 이때 알파고는 참고 1도 백 1로 끊는 수를 절대 두지 않는다. 유리할 때는 모험이 따르는 수를 두지 않는 것이다. 물론 참고 1도 백 1로 끊으면 13까지 하변 흑을 잡을 수는 있다. 하지만 흑 14로 붙여 흑 22까지 하변 흑을 사석으로 활용하며 우변에서 흘러나온 백을 엮으면 국면이 복잡해진다. 백이 불리한 싸움은 아니지만 굳이 이런 혼란을 택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전 백 2는 ‘안전 제일주의’를 내세운 수다. 흑이 어쩔 수 없이 5로 이어 하변을 살릴 때 백 6, 8로 흑 두 점을 품에 넣는다. 이렇게 집의 윤곽이 드러나자 백이 유리함이 선명하게 보인다. 흑 9는 선수다. 백이 손을 빼면 참고 2도 흑 1, 3이 있다. 이때 백 ‘가’로 받으면 귀가 잡힌다. 그래서 백 4가 최강의 버팀인데 이번엔 흑 5, 7이 있다. 이건 백이 망한 꼴이다. 실전 백 10이 침착한 보강. 흑 17로 큰 곳을 차지했으나 백의 우세는 여전하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는 지금이 타이밍이다. 백 86으로 참고 1도 백 1로 받으면 귀는 지킬 수 있다. 하지만 흑이 선수를 잡아 가장 시급한 곳인 4를 차지하게 된다. 귀에 흑 ‘가’로 두는 뒷맛도 있어 백이 좋을 게 없다. 알파고는 선수를 잡기 위해 백 86을 뒀고 구리 9단은 흑 93까지 귀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반상 전체의 집을 세어 보면 아직도 흑이 실리에서 앞섰다고 할 수 없는 형세. 중요한 선수를 백이 쥐고 있어 백의 우세는 여전하다. 백 94는 완전히 예상 밖이다. 인간이라면 참고 2도 백 1로 단수하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을 것이다. 이어 백 3으로 확실한 실리를 취한다. 그러나 이건 인간의 길일지 모른다. 참고 2도 흑 4, 6이면 반상이 복잡해질 가능성이 높다. 알파고는 이를 꺼린 것. 확실히 알파고는 인간이 보지 못하는 ‘달의 반대쪽’을 본다. 흑 99까지는 필연의 진행. 백 100으로 A로 이으라고 강요할 때 구리 9단이 흑 101로 반격에 나섰다. 알파고는 A로 끊을까.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71은 선수. 그런데 백 72, 74가 적시의 응수타진이다. 알파고가 어떻게 이런 응수타진까지 섭렵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흑 75는 기세. 흑 A로 이으면 나중에 백 B 등을 추가로 당할 수 있다. 흑 75는 이리저리 당하느니 한 곳만 당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귀를 제대로 지킬 수 없게 돼 또 한 번 알파고에게 잽을 허용한 셈이다. 백 76의 가일수는 필요하다. 참고 1도 흑 1로 치중하면 백 6까지 패가 발생한다. 흑 77에 백 78은 알파고가 형세를 좋게 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참고 2도 백 1로 큰 곳을 선점하면 실리로 확실히 앞설 수가 있다. 흑 2의 공격은 백 3으로 받으면 된다. 알파고는 형세가 유리할 때 철저하게 두텁게 둔다. 흑 79로 실리를 따라갈 여지가 생겼다. 백 80을 선수할 때는 이후 귀를 지킬 것으로 봤으나 백 82, 84로 돌이 중앙으로 향한다. 프로기사들이 크게 중요시하지 않던 중앙을 알파고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 대접(?)하고 있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의 날일 자 행마는 백 ◎ 한 점의 축머리도 겸하고 있다. 흑 55의 보강은 필수. 그러자 백 56, 58로 별로 힘 들이지 않고 우변에서 안정했다. 알파고는 이런 쉬운 수들을 잘 찾아낸다. 흑 59가 구리 9단의 기풍을 느끼게 하는 강수. 구리 9단에겐 확실히 사냥 본능이 있다. 그런데 백 60으로 내려뻗을 때 흑 61이 ‘심한’ 강수였다. 구리 9단은 백 전체를 공격하면서 국면의 주도권을 쥐려는 생각이었지만 너무 불확실한 투자였다. 참고도를 보자. 흑 1로 끊으면 백도 2, 4로 쉽게 살아간다. 하지만 백 2점을 잡은 흑 중앙의 두터움이 상당하고 흑 5로 실리도 어느 정도 챙길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유연한 그림이다. 간명한 국면 운영을 좋아하는 알파고라면 참고도를 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흑 61, 63으로 백 58 한 점을 잡으며 백 전체를 공격하는 형태여서 흑이 만족스러운 듯하지만, 실은 백 58이 확실히 잡힌 것도 아니고 백 66이 전체 모양의 급소여서 공격도 쉽지 않다. 백 70이 우변 변화의 방점을 찍은 수. 백이 훨훨 날아가는 듯하다. 결국 구리 9단이 손에 확실하게 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우변 변화는 구리 9단의 실패로 막을 내렸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로 끊어 국면이 복잡하게 얽히나 싶었는데 흑 47을 본 알파고는 백 48, 50으로 상변을 안정시키며 일보 후퇴한다. 백 48 대신 참고 1도 백 1을 두면 중앙 봉쇄는 가능하다. 그런데 상변 백의 생사가 불투명하다. 흑 2가 한눈에 들어오는 수. 이곳 변화는 수십 개나 될 정도로 복잡한데 참고 1도가 그중 하나다. 백 15까지 패가 나는데 흑이 이 패를 이용해 16, 18로 탈출하면 백이 손해를 본 모양이다. 백 48, 50과 같은 수를 보면 알파고가 사활이나 수상전에서 큰 모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흑 51까지 흑백 모두 불만 없는 타협이 이뤄졌다. 이제 우변 흑 세력이 깊어졌기 때문에 백 52의 침입은 시급하다. 흑 53으로 근거를 없애며 공격할 때, 백 54의 행마가 날렵하다. 알파고가 좋아하는 날일자 행마이기도 하고 흑이 참고 2도처럼 강하게 나오면 백 10까지 되받아치려는 것이다. “참 잘 둔다.” 이 바둑을 보던 한 기사가 중얼거렸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로 붙여간 것은 정수. 좌상 흑이 생각보다 허약하기 때문에 일종의 보강도 겸하고 있다. 알파고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백 32, 34로 죽죽 밀어 올린다. 여기서 흑이 참고도 1로 끊어 백 한 점을 잡는 건 너무 나약한 수. 백 6까지 백의 자세가 훌륭할 뿐 아니라 우변 흑 진을 지우는 모양이 돼 흑의 실패다. 이 바둑의 포인트는 흑 세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느냐이기 때문에 자잘한 실리에 신경 써서는 안 된다. 따라서 흑 37은 자신의 세력을 키우는 수이며 백 38도 흑 세력 견제를 위해 중앙으로 나아가려는 시도다. 흑 39는 평상시에는 악수. 이렇게 공배를 메우면 돌이 무거워진다. 그러나 지금은 흑 41로 들여다보는 수를 확실히 하기 위해 불가피한 수. 흑 41에 백이 그냥 이어주면 그 자체로 중앙으로 나오는 행마가 부자연스러워진다. 알파고는 우선 백 42로 상변 백이 언제든지 살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한 뒤 백 44로 흑의 엷은 곳을 끊어간다. 중앙으로 정처 없이 나가는 것보다는 아직 살지 못한 좌상 흑을 건드려 이 흑 말과 동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중앙으로 진출하겠다는 뜻이다. 알파고는 반격에도 능하다. 흑의 행마도 쉽지 않다. 우선 좌상 흑부터 살려야 하는데….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18을 본 구리 9단은 깜짝 놀랐을 것이다. 이렇게 치받는 수는 속수라고 해서 금기시하는데 알파고는 태연히 둔다. 참고 1도를 보자. 백 1이 인간 바둑 세계의 정수다. 여기서 흑은 손을 빼고 큰 곳인 2를 둔다. 백 3으로 젖혀 당장 싸움을 걸어도 흑 10까지 흑에게 불리한 모양은 아니다. 백 18, 20은 어떤 의미일까. 참고 2도 흑 1로 받는 것이 가장 강력한데 여기서 백은 손을 빼 확실한 선수를 잡겠다는 뜻이다. 다음에 ‘가’와 ‘나’가 맞보기여서 백의 생사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물론 흑이 두터워지긴 했으나 선수만 확실히 잡는다면 백도 둘 수 있다는 얘기이다. 알파고가 인간에게 숙제 하나를 추가했다. 구리 9단도 더 응수하지 않고 흑 21로 큰 곳을 선점했다. 알파고의 의도를 무산시킨 것인데 알파고의 계산속에 이미 들어 있는 그림일 것이다. 흑 23, 25는 커제 9단이 두면서 최근 유행하는 정석이다. 백 30을 눈여겨보자. A로 귀를 접히는 수와 B로 두 점 단수하는 수를 동시에 방비한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알파고의 상대로 구리 9단이 무대에 올랐다. 그는 커제 9단이 등장하기 전까지 중국의 1인자로 꼽혔다. 흑을 든 구리 9단은 평소 주특기인 3연성 포석을 펼친다. 흑의 세력 작전에 알파고가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지켜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백 10의 걸침 대신 참고 1도 백 1에 두면 흑 2를 선수하고 흑 4로 4연성을 펼칠 것이다. 흑이 바라는 포석이다. 백 10에 흑 11로 협공하자 백 12로 귀에 침입해 흑 15까지 정석 진행이 이어졌다. 이때 알파고가 둔 백 16이 색다르다. 이 수는 1980년대 중반까지 두어졌으나 이후 발이 느리다는 이유로 사실상 폐기된 수다. 그래서 백 16으로는 참고 2도 백 1로 선수를 잡고 3으로 걸쳐가는 것이 보통이다. 알파고가 예전에 쓰던 수법들을 종종 들고나오는 것이 흥미롭다. 흑 17은 당연한데 여기서 알파고가 또 한번 기사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수를 들고나왔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이 바둑은 승패를 떠나 초반 알파고의 좌하귀 삼삼 침입이 준 충격이 컸다. 참고도 흑 5(실전 흑 19)는 그동안 ‘인간의 바둑세계’에선 금기로 통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초반 삼삼침입은 그로써 얻는 실리에 비해 상대에게 너무 큰 세력을 내줘 이후 국면 운영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알파고는 수천만 번의 셀프 대국 끝에 ‘초반 삼삼으로 실리를 차지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간은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수많은 대결을 통해 인간이 갖고 있던 막연한 추측을 깨 버린 것이다. 실제 국면의 흐름은 알파고가 계산한 대로 흘러갔다. 흑의 초반 삼삼 침입으로 백은 세력을 쌓았고 하변의 요처인 백 44까지 차지했다. 하지만 흑 45의 침입에 이어 49, 59까지 진행되자 세력이라고 여겼던 백 대마가 오히려 곤마에 가까워졌다. 흑은 이후 백 대마를 적절히 압박하며 중앙에 20집이 넘는 흑 집을 지었다. 도중에 백 92로 99의 곳에 한 칸 뛰어 백 말을 보강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 외에는 백이 특별한 실수나 방향 착오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흑은 백에 한번도 주도권을 내주지 않고 완승했다. 88, 100=82, 91=85. 135수 끝 흑 불계승.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23의 건너붙임. 백 ○로 끊을 때 김정현 6단도 이미 예상한 수였다. 이른바 결정타다. 김 6단이 뻔히 흑 23을 알고 있으면서도 백 ○를 둔 심정이야 오죽했을까. 더 이상 승부를 겨룰 곳이 없으니 돌을 던질 명분을 찾기 위해 제 몸을 호랑이 앞에 던지는 것과 같다. 흑 23이 놓인 이후의 수순은 외길이다. 백 24 대신 참고 1도 백 1을 둘 순 없다. 흑 2로 백 석 점이 잡히면 백 ○로 끊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백 24로 흑 한 점을 잡았고 흑은 29까지 연단수를 하며 하변 백 말을 잡아버렸다. 물론 34로 치중하는 수가 있어 일종의 바꿔치기를 한 형국이지만 흑의 이득이 훨씬 큰 결과다. 더구나 우하 귀는 참고 2도 흑 1로 이으면 잘 잡히지 않는 모양이다. 알파고는 참고 2도를 결행하지 않는다. 흑 35로 둬 후환을 없애는 침착함을 보여준다. 여기서 백은 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더 둔다면 우하 귀에 한 수 가일수해 흑 말을 잡아야 하는데 그래도 반면 20집 이상 대차가 난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평범한 흑 ○이 왜 좋은 수인가 하면 참고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백이 참고도 1로 버티면 흑 2가 있다. 백 3으로 젖힐 때 4의 양호구로 흑 말이 연결된다. 이건 백 집이 너무 많이 깨진 모양이다. 그래서 실전 백 8은 불가피한 보강이다. 하지만 흑 9로 지키자 중앙 흑 집이 예상 밖으로 크게 났다. 알파고의 이런 운석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중반을 넘어설 무렵에 중앙에 이렇게 큰 흑 집이 나리라고 예상한 사람이 있었을까. 그냥 자연스럽게 반상을 정리한 것 같은데 마치 도깨비 방망이를 휘둘러 중앙 흑 집을 뚝딱 만들어낸 듯하다. 지금 계가를 해보면 반면 15집가량 차이가 난다. 덤을 제하고도 흑을 든 알파고가 7, 8집 앞선 상황이다. ‘어, 어’ 하는 사이에 형세가 확 벌어졌으니 김정현 6단으로선 낭패감만 들 뿐이다. 김 6단은 백 16으로 쳐들어간다. 딱히 뾰족한 수단이 있어서라기보단 이곳이 아직 변화의 여지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흑 17로 백 16을 살려가라고 요구할 때 김 6단은 두 눈 질끈 감고 백 18, 20, 22로 변화를 꾀한다. 이렇게 끊어 분란을 일으키지 않으면 흑의 실리를 따라잡을 수 없다. 백의 마지막 몸부림이자 여기마저 막히면 돌을 던지려는 것이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이 바둑은 김지석 9단이 아니라 김정현 6단이 알파고와 둔 대국입니다. 그동안 잘못 나간 점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흑 ●가 놓이자 좌하에서 중앙으로 뻗어 나온 백 대마에 비상이 걸렸다. 알파고는 흑 ●처럼 평범하지만 반상을 호령하는 수를 잘 찾아낸다. 알파고 스타일은 전성기 때 이창호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 백 96 때 흑 97은 정수다. 참고 1도 흑 1처럼 단수하면 백 2로 백 대마에 탄력이 생긴다. 현재 백 대마가 위험하지만 백 102는 놓칠 수 없는 반상의 급소다. 백 대마를 보강하다가 여기를 놓치면 중앙 흑 집이 너무 크게 부풀어 오른다. 백으로선 흑 103까지 놓인 마당에 백 대마를 더 방치할 수 없다. 만약 참고 2도 백 1로 버티면 흑 2의 한방이 아프다. 이어 흑 4로 끊을 때 대책이 없다. 안에서는 두 집을 내기 힘들다. 그래서 백 104가 눈물을 머금은 수인데 흑 105의 선수가 기막히게 좋고, 평범한 107의 한 칸 뜀이 백의 숨을 콱 막히게 만든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가 반상 최대의 곳. 정상적이라면 백은 위나 아래로 늘어 받아야 하는데 또 선수를 빼앗기기 때문에 그럴 기분이 나지 않는다. 김지석 9단은 백 80으로 붙여 교란작전에 나섰다. 백 82로 참고 1도 1로 끊는 게 흔한 맥점이지만 지금은 흑 4로 빵따냄을 하고 8로 지키면 백이 얻은 게 없다. 그래서 흑 85으로 패싸움이 벌어졌다. 이 패는 백에게 부담이 없어 흑이 이길 수 없는 패. 하지만 흑도 언제든 물러서면 그만이어서 일단 89의 기분 좋은 팻감을 쓰면서 패싸움을 진행한다. 그런데 백 92가 검토실의 도마에 올랐다. 이곳이 큰 자리이긴 하지만 지금은 좌하에서 흘러나온 백 대마의 안위를 돌보는 것이 더 시급했다는 얘기다. 참고 2도 백 1로 뛰면 흑 중앙의 두터움을 견제하며 백 대마도 안정된다. 이어 백 11까지 되면 백의 흐름도 나쁘지 않다. 흑 93이 놓이자 백 대마가 의외로 허약하다. 안에서 사는 수가 선뜻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백의 위기다. 88=82.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쉴 틈 없는 초읽기 와중에서도 김지석 9단은 의아함을 느낀다. 행마에 어긋남이 없었는데 주도권이 계속 흑에게 넘어가 있으니 말이다. 그만큼 흑이 완벽하게 두고 있다는 뜻일까. 커제, 박정환 9단을 연파한 실력자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답답할 줄 몰랐다. 흑 69같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점이 흑에게 유리한 흐름이라는 걸 보여준다. 하변 백이 곤마로 몰릴 수 있는 상황. 김 9단은 여기서 결단을 내린다. 하변 보강 대신 백 70으로 실리를 차지하며 버티는 것. 흑 71로 참고도 1, 3으로 두면 하변 백은 미생이다. 하지만 백 4로 터져 나오면 이 공격을 통해 흑이 과연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알파고는 손에 쥘 수 없는 미래의 큰 이득보단 작지만 확실한 현재의 이득을 좋아한다. 그래서 흑 71로 중앙을 봉쇄하고 하변을 살려주는 길을 택한다. 이걸로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흑 75, 77의 선수는 우변 백을 삭감하면서 중앙 흑의 두터움을 배가하는 효과가 있다. 이어 흑 79로 반상에서 실리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한다. 알파고는 두터움과 실리를 골고루 확보하며 절정의 균형감을 보이고 있다. 김 9단은 커다란 숙제를 안고 있다. 어떻게 알파고의 완벽함에 균열을 낼 것인가.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57은 기분 좋은 선수. 여기서 응수를 조심해야 한다. 모양이 좋다고 참고 1도 백 1을 두면 흑 2의 한 방이 아프다. 백 3으로 늦춰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 차후에 흑 ‘가’, 백 ‘나’, 흑 ‘다’로 두면 백이 미생이어서 부담이 크다. 알파고는 여기서 좌하 백을 공격하면서 실마리를 잡으려고 한다. 흑 59가 놓이자 백 말은 세력이 아니라 뻣뻣한 곤마가 된 느낌. 백 60 때 흑은 참고 2도 1로 공격하는 것도 유력한 수법. 흑 3으로 씌우면 백이 포위망을 벗어나기가 만만찮다. 그러나 이건 변수가 많다. 알파고는 흑 61부터 65까지 두텁게 밀어간 후 흑 67로 지켰다. 이건 형세가 유리할 때 선택하는 간명한 수순이다. 알파고는 자신이 유리하다고 보고 있는 것일까. 백 68을 두지 않더라도 잡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흑에게 봉쇄가 되면 안에서 살 수는 있어도 답답하기 그지없다. 콕 집어 얘기할 순 없지만 흑이 계속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느낌이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로 하변의 요처를 차지했다. 전보에서 보여준 대로 여기서 흑이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두면 안 된다. 이때 놓인 흑 45가 알파고의 실력을 웅변한다. 하변 백 진에 침투하지 않으면 균형을 맞추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백 46은 좁지만 놓칠 수 없는 수. 마음 같아선 하변에 침입한 흑 45를 공격하고 싶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참고도 백 1의 날일자로 씌우는 것. 그러나 지금은 흑 4, 6이 실전적인 행마. 흑 12까지 실리를 차지하면 하변 흑의 실리가 너무 커진다. 백의 두터움이 그에 비해 못하다는 평가. 따라서 실전 백 46처럼 자리를 잡아놓고 공격을 엿보는 것이 고수다운 수법이다. 흑은 47을 가볍게 선수하고 흑 49로 뛰어 보강했다. 세력이던 좌하 백에 대해 은근히 공격을 엿보고 있기도 하다. 물론 백도 50을 차지해 좋은 자세를 갖췄다. 백 54의 기분 좋은 선수에 이어 백 56으로 우변에 선착해 실리로 꿀릴 게 없다. 알파고는 어떻게 계산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인간이 보기엔 지금까지 흑백 모두 실수 없이 이끌어와 팽팽한 균형을 맞추고 있는 상황. 어디서부터 막상막하의 형세에 균열이 날까. 알파고의 의중(?)이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 이후 좌상 정석은 서로에게 뻔한 정석. 물론 수순을 바꿔 다른 정석으로 유도할 수 있지만 실전이 둘 다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다. 흑 35로 밀어 가는 것이 두터운 수. 이런 수는 전성기 때의 이창호 9단을 보는 듯하다. 발 빠르게 좌변을 전개할 수도 있으나 이처럼 느긋하게 두터운 곳을 차지한 뒤 상대의 움직임을 쫓아간다. 프로 기사들은 본능적으로 느린 걸 싫어했으나 이창호 이후엔 두터움의 가치를 새로 인식하게 됐다. 그걸 알파고가 또 한번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흑 35가 오면 백 36은 놓칠 수 없는 요처. 흑이 반대로 다가서면 실리로도 크고 백의 안형도 위협한다. 흑 37, 41은 권투로 치면 날카로운 잽. 지금 당장은 아무렇지 않아도 조금씩 충격이 쌓이는 것이다. 흑 43까지 알파고도 좌변에서 자세를 잡았다. 이로써 쌍방 요처인 하변은 백의 손에 들어갔다. 그런데 백이 원하는 걸 얻었지만 흑이 나빠 보이지 않는다. 특히 초반 좌하 삼삼 침입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백 44 다음 흑의 수가 중요하다. 평범하게 참고도 흑 1로 다가서는 수는 백 2로 응수 타진 후 4, 6으로 두어 하변 백 진이 견고해진다. 백 ‘가’로 젖히는 뒷맛도 남아 있다. 그렇다면 흑은 백 진으로 쳐들어가야 하는데….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