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조종엽 차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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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종엽 차장입니다.

jjj@donga.com

취재분야

2025-11-24~2025-12-24
문학/출판30%
역사21%
정치일반10%
문화 일반10%
사회일반10%
칼럼7%
검찰-법원판결3%
인사일반3%
산업3%
만화3%
  • [책의 향기]‘세티 프로젝트’ 60년, 인간 존재를 성찰하다

    외계 지성체 탐색, 즉 세티(SETI) 프로젝트가 2020년 60주년을 맞는다. 아직 성과는 없다. 그런데 왜 인류는 외계생명을 찾는가? ‘생명이 넘치는 지구가 여기 있소’라고 일부러 알릴 필요가 있는가. 하필 우리가 고대하던 외계인이 ‘타노스’ 같은 빌런(악당)일 수도 있지 않나! 이론물리학자로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이자 세티 연구에 깊이 관여해 온 저자는 “만약 밖에 선진 문명이 있다면 지구에 지적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구의 생명은 그들이 인지할 만큼 충분히 오래 활동해 왔고, 지구를 정복하고자 했다면 이미 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세티 프로젝트는 “우주의 거대한 진화와 연결된 우리 자신의 존재를 찾는 일”이라고 말한다. 세티 프로젝트를 통해 과학, 문명, 인간의 존재를 성찰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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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 실천 무애의 삶… 깊고 넓은 설악무산의 道

    “달자야, 봄날이 올 끼다.” 신달자 시인은 좌절해 있던 몇 년 전 오현 스님(1932∼2018) 앞에서 ‘봄날은 간다’를 서럽게 부르자 스님이 자신을 이렇게 격려했다고 한다. 시인은 이후 서서히 힘을 되찾았다며 “오현 스님의 그늘은 너무 신령스러워 사람이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 넓어지기만 했다”고 회고했다. 나눔을 실천하며 무애(無애)의 삶을 살았던 시대의 선승(禪僧) 오현 스님의 1주기(26일)를 앞두고 최근 출간된 ‘설악무산 그 흔적과 기억’(김병무, 홍사성 엮음·인북스)에 실린 얘기다. 스님과 평소 가까웠던 이들의 추억담을 모은 이 추모 문집에는 정래옥 전 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 이장의 회고도 있다. 백담사 조실(祖室)이었던 스님은 용대리 주민들과 각별하게 지냈다. 2007년 TV 선로와 장비가 노후해 용대리 주민들이 TV를 거의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스님이 “백담사에 범종을 만들어 달려고 모아놓은 돈”을 선뜻 건넸다고 한다. 정 이장은 종 없이 빈 종각을 보며 “고맙고 죄송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고 회고했다. 오현은 시조시인으로 활동할 때 쓴 속가 이름이고, 정식 법호와 법명은 설악 무산(雪嶽 霧山) 대종사다. 1주기를 앞둔 16일 스님이 조실로 추대됐던 설악산 신흥사(강원 속초시)에서는 설악 무산 대종사 추모 다례가 열렸다. 화암사 회주 정휴 스님, 전계대화상 성우 스님 등 조계종 원로 스님과 도반을 비롯해 정치인과 기업인, 용대리 식당 주인, 시인, 문인, 가톨릭 신자 등 각계각층에서 스님의 뜻을 기리는 300여 명이 모여들었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세민 스님이 이날 “어떻게 탁한 가운데 맑음을 가릴꼬. 구름이 없으니 산마루가 드러나고, 오직 밝은 달은 물결 위에 있음이로다”라는 진제 종정의 법어를 대독했다. 성우 스님은 추도사에서 “여기 모인 인연 있는 대중은 모두들 마음 한 자락을 잃어버린 듯하다”고 말했다. 한 용대리 주민은 “인사드리러 가면 ‘일은 쪼매만 하고 건강히 살라’고 하셨다”며 스님을 추억했다. 이날 추모 다례에는 주호영 국회의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김진태 전 검찰총장,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도 참석했다. 앞서 15일에는 스님이 설립해 동국대에 기증한 만해마을(용대리)에서 열반 1주기 추모 세미나 ‘설악무산, 그 흔적과 기억’이 불교평론 주관으로 열렸다. 이날 문학평론가 이숭원 서울여대 명예교수가 스님의 문학세계를 조명했다. 이 교수가 “스님의 시집 ‘심우도’(1979년)의 발문은 ‘영혼의 세척에 더 많은 시간을 몰입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손끝만으로는 각자(刻字)되지 않는 전신연소(全身燃燒)를 해내고 있다’고 감동적으로 설파했다”고 소개하자 청중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40년 전 이 발문을 썼던 이근배 시조시인은 “스님의 인간 사랑에 한 발자국이라도 가까이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썼다”며 “스님은 법명대로 ‘안개 산’ 같아서 모습을 보면서도 모두 헤아리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조병활 성철사상연구원장은 발표에서 “스님의 불학 사상에는 지혜와 방편이 융합돼 쉽게 불교를 설명하는 가르침이 지천(至賤)”이라고 말했다. 구중서 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오세영 서울대 명예교수, 김광식 만해학회 회장, 박시교 김지헌 시인 등이 세미나에 참석했다. 신달자 시인은 “스님이 아직도 금방 문을 열고 들어설 듯한 기분”이라고 말했다.속초·인제=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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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과 함께 먹고 대화하고 사랑하세요… 그게 행복의 길입니다”

    최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의 고성 수도원이 ‘아빠스(abbas)좌(座)’ 수도원으로 승격했다. 올 2월 이탈리아의 몬테 올리베토 총원이 승격 교령을 발표했고, 초대 아빠스로 수도원 원장인 유덕현 신부(58)가 선출된 것. 한국의 아빠스좌 수도원 탄생은 왜관 수도원의 전신인 백동 수도원이 1913년 아빠스좌로 승격된 지 106년 만이다. 아빠스는 아버지를 뜻하는 라틴어로 베네딕토 계열 수도회의 대수도원장을 일컫는다. 사제 서품 권한만 없을 뿐 주교에 준하는 권한을 갖는다. 유 아빠스를 13일 경남 고성군 대가면 수도원에서 만났다. “옛 은수자(세속을 떠난 수도자)들은 동굴에서 혼자 살았고, 사막으로 가기도 했습니다. 사막은 하느님을 만나는 고독의 장소입니다. 침묵하는 시간은 사막 대신 고독의 장소가 됩니다.” 수도원은 고속도로를 나와서도 백로가 서성이는 논을 지나 10여 km를 더 들어간 산자락에 있었다. 작은 간판이 달린 정문을 지나자 새소리만 가득했다. 수도자들은 낮에는 가능하면 작은 소리로 적게 말하는 ‘소침묵’, 밤에는 전화기도 끄고 큰일이 아니면 아예 말을 하지 않는 ‘대침묵’을 실천한다. 유 아빠스는 “통화가 잘 안 돼 답답해하는 외부 분들도 있지만 그러니까 수도원”이라고 했다. 크지 않은 규모임에도 고성 수도원이 아빠스좌로 승격한 건 수도 공동체의 저력과 위상이 반영된 것이다. 해마다 가톨릭 신자 등 약 1만 명이 고요를 찾아 고성 수도원으로 피정을 온다. “우리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삽니다. 매일 하느님께 의탁하고, 정성을 다해 기도하고 묵상하고, 형제를 사랑합니다. 우리의 소박한 삶이 하느님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가 됩니다.” 수도원에 신부와 수사 등 30명이 하루 기도 7번, 미사 1번, 성경 읽는 시간 2번, 오후 노동의 일과를 되풀이한다. 양봉, 액체 비누 제조와 함께 이탈리아의 연합회 총원에서 수입한 포도주와 올리브를 팔기도 한다. “이런 생활이 쉽지 않거든요. 내 존재도 없는 거 같고…. 고요해 보여도 내적으로는 이기적이고 헛된 생각을 물리쳐야 하니 영적 투쟁이 많지요.” 유 아빠스의 사목 표어는 ‘TOTUS TUUS’(온전히 당신의 것). 신부가 아니었다면 장군이 됐을지도 모른다. 1986년 유 아빠스는 화학공학을 전공한 학군단(ROTC) 출신으로 군수사령부에서 미사일을 담당하는 전도유망한 대위였다. 국방부가 무기 체계를 공부해 오라며 유학을 권유해 준비하던 중에 “하느님이 나를 이끄시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우연히 부산에서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가난한 동네에서 운영하는 ‘봉사의 집’에 갔다. 오토바이 마니아였던 그는 ‘할리 데이비슨’을 사려고 수년간 모았던 돈을 수술비가 없는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건넸다. 나중에 들른 수녀회 책장에서 산과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그려진 책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어딥니까.” 할머니 수녀가 답했다. “산속에 살면서 기도만 하는 곳이란다.” 유 아빠스는 1988년 7월 수도회가 한국에 진출할 때 창설 멤버로 입회해 1998년 사제품을 받았고, 2013년 고성 수도원 원장에 선출됐다. “부자는 더 큰 부자와 비교해서 불행합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더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해 불행합니다. 행복해지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말고는 길이 없습니다. 멀리서 찾지 마세요. 가족과 더 자주 밥 먹고 대화하고, 친구들과 함께하세요.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내 눈 앞의 사람을 사랑하세요.”고성=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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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사일 담당하는 전도유망한 군인이 아빠스좌 수도원 신부가 되기까지…

    최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의 고성 수도원이 아빠스(abbas)좌(座) 수도원으로 승격했다. 올 2월 이탈리아의 몬테 올리베토 총원이 승격 교령을 발표했고, 초대 아빠스로 수도원 원장인 유덕현 신부(58)가 선출된 것. 한국의 아빠스좌 수도원 탄생은 왜관 수도원의 전신인 백동 수도원이 1913년 아빠스좌로 승격된 지 106년 만이다. 아빠스는 아버지를 뜻하는 라틴어로 베네딕토 계열 수도회의 대수도원장을 일컫는다. 사제 서품 권한만 없을 뿐 주교에 준하는 권한을 갖는다. 유 아빠스를 13일 경남 고성군 대가면 수도원에서 만났다. “옛 은수자(세속을 떠난 수도자)들은 동굴에서 혼자 살았고, 사막으로 가기도 했습니다. 사막은 하느님을 만나는 고독의 장소입니다. 침묵하는 시간은 사막 대신 고독의 장소가 됩니다.” 수도원은 고속도로를 나와서도 백로가 서성이는 논을 지나 10여㎞를 더 들어간 산자락에 있었다. 작은 간판이 달린 정문을 지나자 새소리만 가득했다. 수도자들은 낮에는 가능하면 작은 소리로 적게 말하는 ‘소침묵’, 밤에는 전화기도 끄고 큰일이 아니면 아예 말을 하지 않는 ‘대침묵’을 실천한다. 유 아빠스는 “통화가 잘 안돼 답답해하는 외부 분들도 있지만 그러니까 수도원”이라고 했다. 크지 않은 규모임에도 고성 수도원이 아빠스좌로 승격한 건 수도 공동체의 저력과 위상이 반영된 것이다. 해마다 가톨릭 신자 약 1만 명이 고요를 찾아 고성 수도원으로 피정을 온다. “우리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삽니다. 매일 하느님께 의탁하고, 정성을 다해 기도하고 묵상하고, 형제를 사랑합니다. 우리의 소박한 삶이 하느님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가 됩니다.” 수도원에 수사 24명과 신부 10명이 하루 기도 7번, 미사 1번, 성경 읽는 시간 2번, 오후 노동의 일과를 되풀이한다. 양봉, 액체 비누 제조와 함께 이탈리아의 연합회 총원에서 수입한 포도주와 올리브를 팔기도 한다. “이런 생활이 쉽지 않거든요. 내 존재도 없는 거 같고…. 고요해 보여도 내적으로는 이기적이고 헛된 생각을 물리쳐야 하니 영적 투쟁이 많지요.” 유 아빠스의 사목 표어는 ‘TOTUS TUUS’(온전히 당신의 것). 신부가 아니었다면 장군이 됐을 지도 모른다. 1986년 유 아빠스는 화학공학을 전공한 학군단(ROTC) 출신으로 군수사령부에서 미사일을 담당하는 전도유망한 대위였다. 국방부가 무기 체계를 공부해 오라며 유학을 권유해 준비하던 중에 “하느님이 나를 이끄시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우연히 부산에서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가난한 동네에서 운영하는 ‘봉사의 집’에 갔다. 오토바이 마니아였던 그는 ‘할리 데이비슨’을 사려고 수년 간 모았던 돈을 수술비가 없는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건넸다. 나중에 들른 수녀회 책장에서 산과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그려진 책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어딥니까.” 할머니 수녀가 답했다. “산 속에 살면서 기도만 하는 곳이란다.” 유 아빠스는 1988년 7월 수도회가 한국에 진출할 때 창설 멤버로 입회해 1998년 사제서품을 받았고, 2013년 고성 수도원 원장에 선출됐다. “부자는 더 큰 부자와 비교해서 불행합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더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해 불행합니다. 행복해지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말고는 길이 없습니다. 멀리서 찾지 마세요. 가족과 더 자주 밥 먹고 대화하고, 친구들과 함께 하세요.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내 눈 앞의 사람을 사랑하세요.” 고성=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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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민-소수자 증오 확산… 한국도 국가인종주의 물들었다

    “한국은 이미 ‘국가인종주의’에 물들어 있습니다. ‘우수한 인종적 자질’을 가진 1%를 추려내는 것과 다름없는 교육·대입 제도도 그 단면입니다.” 서양 인종주의의 지적 기원을 탐구한 책 ‘증오하는 인간의 탄생’(역사비평사·2만5000원·사진)을 최근 발간한 나인호 대구대 역사교육과 교수(59)는 9일 전화 통화에서 “우리나라도 일상에서 인종주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은 18세기 말∼20세기 초 서양의 인종주의 사관과 역사철학을 다뤘다. 흔히 인종주의는 ‘일탈적 사상’이었고, 연합국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 이후에는 힘을 잃은 것처럼 인식된다. 그러나 나 교수는 “서양에서 인종주의는 자유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정교하고 체계적인 근대 핵심 사상이었다”라며 “오늘날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연합국은 ‘인종 청소’에 대해 “이게 다 히틀러 때문”이라고 몰아갔지만 인종주의는 연합국 내에서도 심각했다. 반유대주의 사상인 ‘유대인 세계지배 음모론’을 미국 전역과 세계에 유포한 핵심 인물 가운데 하나가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1863∼1947)였다. 나치가 이를 학습했다. 열등한 유전자를 없앤다는 미명 아래 단종법(斷種法)을 처음 도입한 곳도 미국이다. 최근 뉴질랜드 이슬람 사원 총격 테러 역시 일탈한 광인(狂人)의 범죄로만 보기 어렵다고 나 교수는 지적했다. 유럽에서 난민 포용에 반대하며 ‘전통 기독교 문화의 수호’를 강조하는 것 역시 ‘인종’이라는 단어만 쓰지 않을 뿐 제국주의 시대부터 이어지는 문화적 인종주의라는 것이다. 특히 민족주의와 제국주의가 결합해 등장한 국가인종주의는 국민 구성원 내부에도 폭력으로 작용했다. 국가인종주의는 국가를 효율적으로 바꾸고, 민족을 우수하게 개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집단 내 경쟁을 강화해 우수한 인종적 자질을 가진 이가 살아남도록 해야 하고,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들은 ‘청소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졌다. 나 교수는 최근 한국도 인종주의적 증오가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럽의 ‘난민 괴담’이나 반유대주의적 증오가 수입돼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널리 유포되는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 증오의 확산 역시 전형적인 국가인종주의라고 나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동성애, 조선족, 특정 지역 등에 대한 증오 발언이 차별 수준을 넘어 20세기 반유대주의나 유고 내전 당시에 비견할 수 있는 정도까지 이르렀다”라며 “국가인종주의의 진짜 무서운 점은 외부의 타자 차별뿐 아니라 새로운 내적 타자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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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은 이미 ‘국가인종주의’에 물들어 있습니다”

    “한국은 이미 ‘국가인종주의’에 물들어 있습니다. ‘우수한 인종적 자질’을 가진 1%를 추려내는 것과 다름없는 교육·대입제도도 그 단면입니다.” 서양 인종주의의 지적 기원을 탐구한 책 ‘증오하는 인간의 탄생’(역사비평사·2만5000원)을 최근 발간한 나인호 대구대 역사교육과 교수(59)는 9일 전화 통화에서 “우리나라도 일상에서 인종주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은 18세기 말~20세기 초 서양의 인종주의 사관과 역사철학을 다뤘다. 흔히 인종주의는 ‘일탈적 사상’이었고, 연합국의 2차대전 승전 이후에는 힘을 잃은 것처럼 인식된다. 그러나 나 교수는 “서양에서 인종주의는 자유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정교하고 체계적인 근대 핵심 사상이었다”라며 “오늘날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연합국은 ‘인종 청소’에 대해 “이게 다 히틀러 때문”이라고 몰아갔지만 인종주의는 연합국 내에서도 심각했다. 반유대주의 사상인 ‘유대인 세계지배 음모론’을 미국 전역과 세계에 유포한 핵심 인물 가운데 하나가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1863~1947)였다. 나치가 이를 학습했다. 열등한 유전자를 없앤다는 미명 아래 단종법(斷種法)을 처음 도입한 곳도 미국이다. 최근 뉴질랜드 이슬람 사원 총격 테러 역시 일탈한 광인(狂人)의 범죄로만 보기 어렵다고 나 교수는 지적했다. 유럽에서 난민 포용에 반대하며 ‘전통 기독교 문화의 수호’를 강조하는 것 역시 ‘인종’이라는 단어만 쓰지 않을 뿐 제국주의 시대부터 이어지는 문화적 인종주의라는 것이다. 특히 민족주의와 제국주의가 결합해 등장한 국가인종주의는 국민 구성원 내부에도 폭력으로 작용했다. 국가인종주의는 국가를 효율적으로 바꾸고, 민족을 우수하게 개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집단 내 경쟁을 강화해 우수한 인종적 자질을 가진 이가 살아남도록 해야 하고,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들은 ‘청소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졌다. 나 교수는 최근 한국도 인종주의적 증오가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럽의 ‘난민 괴담’이나 반유대주의적 증오가 수입돼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널리 유포되는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 증오의 확산 역시 전형적인 국가인종주의라고 나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동성애, 조선족, 특정 지역 등에 대한 증오 발언이 차별 수준을 넘어 20세기 반유대주의나 유고 내전 당시에 비견할 수 있는 정도까지 이르렀다”라며 “국가인종주의의 진짜 무서운 점은 외부의 타자 차별 뿐 아니라 새로운 내적 타자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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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1980년 5월, 뼈에 박힌 총탄처럼 아픈 기억을 꺼내다

    “처음에는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가 잠시 후 통증이 밀려왔다. 곧바로 쓰러져 버렸다.” 1980년 5월 광주, 계엄군이 쏜 총탄이 광주 서석고 3학년이던 전형문 씨의 교련복 허리띠 양철 판을 뚫고 허리에 박혔다. 총탄은 배 속을 온통 헤집어 놨다. 수술 뒤에도 골반 뼈에 박힌 총탄은 빼내지 못했다. ‘5·18…’은 서석고 5회 동창생(당시 고3)들의 생생한 광주 5·18민주화운동 체험담을 담았다. ‘광주’는 그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겼다. 한 학생은 중3쯤 돼 보이는 아이가 울며 가슴에 박힌 총알 파편을 빼달라고 했다. 파편이 작아 몇 번이나 빼려고 했지만 빼지 못했다. 거리에 쓰러진 시민의 머리를 받쳤는데, 이미 축 늘어져 힘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사복 차림으로 정보 수집과 선동 등을 했던 계엄군의 특수공작부대 ‘편의대’에 대한 중요 증언도 실렸다. 오일교 씨는 시위대원으로 위장한 군 편의대원에게 붙잡혀 상무대 영창에 구속됐다고 회고했다. 시위에 적극 참여한 이도, 그렇지 않은 이도 오래 죄책감에 시달렸다. 적십자병원에서 헌혈을 하려다 줄이 길어 그냥 돌아 나온 이는 “39년이 흐른 지금도 헌혈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아버지의 엄명으로 독서실에 머물렀던 학생은 “시위에 적극 참여하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시위에 나섰다가 시골로 내려간 이는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었지만 혼자 살아남은 죄책감으로 입을 닫고 살았다”고 했다. 한 학생은 시민들이 군 트럭과 지프를 차지한 걸 봤다. 소총을 트럭에 두고 간 일병이 문책 받을 것이 불쌍하다며 한 아저씨가 소총을 군인들에게 다시 갖다 줬다. 시위대는 그런 이들이었다. ‘녹두서점의…’는 5·18 당시 시민들의 상황실 역할을 했던 헌책방 주인과 그 가족의 기록이다. 5월 17일 보안부대로 끌려간 서점 주인 김상윤과 서점을 지킨 아내 정현애, 시민군에 뛰어든 동생 김상집의 시선으로 항쟁의 과정과 에피소드를 담았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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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문제는 이것이구나…걸으며 자신을 돌이켜보세요”

    수천 명이 함께 한강변을 걸어도 별로 시끌벅적하지 않다. 명상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 한국명상지도자협회는 지난해에 이어 6월 1일 오전 10시∼오후 3시 서울 한강여의도공원 물빛무대 일원에서 ‘2019 한강걷기명상’ 대회를 연다. 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금강선원(서울 강남구 개포로) 원장인 혜거 스님을 7일 선원에서 만났다. 혜거 스님은 조계종 중앙역경원 초대원장을 지낸 탄허 스님을 은사로 1959년 출가했고, 1988년 선원을 개원한 이래 31년째 도심에서 재가불자들의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지난해 조계종 포교대상을 수상했다. ―걸으면서 어떻게 명상을 할 수 있는지…. “명상은 어떤 생각에 깊이 몰입하는 훈련이다. 원인을 완전히 규명할 때까지 집중하는 것이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즉 걷거나 서거나 앉거나 누워서도 할 수 있다. 요즘 시간만 나면 걷는 이들이 많다. 그 시간을 명상과 함께 한다면 얼마나 유익하겠나. 절에서도 참선하다가 느린 걸음으로 걷는 포행(布行)을 한다. 선인들은 ‘걷는 명상’을 많이 가르쳤다. 요가에도 있고, 중국 당나라 때 도가 수행법인 ‘보두법(步斗法)’은 대만에서는 지금도 한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명상은 나쁜 습관을 고치기 위해 생겨났다. 업(業)이 특별한 게 아니다. 잘못된 습관이 쌓이면 그게 업이 된다. 명상으로 고칠 수 있다. 살아오며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찾아야 한다. 걸으며 이를 돌이켜보겠다는 마음을 내야 한다. ‘내가 그것을 놓쳐서 잘못했구나, 나쁜 버릇이 있는데 고쳐지지 않는 게 문제구나’ 하는 생각을 일으키면서 걸어야 한다. 시선을 집중하는 게 마음을 집중하는데도 굉장히 도움이 된다. 몰입하면 안정감이 생긴다. 무엇을 하든 허덕임이 없다. 세상의 본질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도 굉장히 편해진다.” ―명상의 장점은 무엇인가. “현대인들은 분노 조절이 잘 안 된다. 중독을 겪는 등 많은 문제가 있다. 이를 벗어나는 데 명상보다 더 좋은 게 없다. 지구력과 집중력도 기를 수 있다. 보고 듣고 배워 아는 마음 너머에는 듣지 않고,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그마저 벗어나면 인간 근본의 마음이 있다. 수행은 그 근본의 마음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명상 하면 불교지만 사실 종교를 초월한다. 마음을 닦는 일이고, 표현만 다르다. 방법은 수천 가지이지만 요약하자면 관찰하고 사유하는 훈련이다.” ―대중에 조언을 한다면…. “정치가든 기업가든 성공했다면 다시 공부를 더 하라. 정상에 오르면 내려갈 일밖에 없다. 내려오기 싫다면 공부밖에 없다. 나라도 한 단계 더 오르고자 한다면 종교와 철학 같은 사상이 깊어져야 한다. ―부처님이 오셔서 내린 가르침은 무엇인가. “신본주의(神本主義) 세상에 인본주의를 가르치셨다. 신이 네 운명을 어찌하는 게 아니라는, 네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가라는 큰 가르침이다. 일체중생이 평등하다는 것도 가르치셨다. 스스로도 몸소 탁발을 하셨다.” ‘2019 한강걷기명상’ 대회 참가는 홈페이지를 참고하거나 운영사무국에 문의하면 된다. 한국명상지도자협회는 6월 29일 오후 1시 불교역사기념관에서 ‘명상지도자 포럼’을 개최하며, 10월 2일에 개학하는 ‘제6기 명상전문지도자’ 신입생도 모집한다. 접수는 홈페이지로 할 수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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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제 스님 “만년토록 빛나는 것 어디서 찾을꼬… ‘참 나’를 바로 보세요”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5월 12일)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한국도 세계도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평화와 자비가 넘치는 세계를 차안(此岸)에서는 가질 수 없는 것일까. 한국 불교의 최대 종단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정인 진제 스님을 4월 29일 부산 해운대구 해운정사에서 만났다. 스님은 인터뷰 내내 ‘바른 참선 수행’을 강조했다. 그는 “수행을 하면 마음의 근본 상태, 억만년 전 내 마음의 전체, 우주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전체가 드러난다”며 “거기에는 나도 너도 없고, 죽음도 없다”고 말했다.》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는 무엇인지요. “부처님은 행복은 물질과 지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몸소 보이기 위해 사바세계에 나타나셨습니다. 중생계는 항시 탐(貪)·진(瞋)·치(癡)와 ‘나’라는 허세와 허욕을 좇아 온갖 번뇌가 그칠 날이 없어요. 부처님은 ‘중생이 이 갖가지 고통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나 쉴 수 있느냐’는 문제를 깊이 생각하시고 ‘모든 고통을 일시에 다 제거할 수 있으니, 참 나를 바로 보라’는 뜻에서 오셨습니다.” ―최근 스리랑카와 뉴질랜드에서 종교 테러로 많은 이가 희생됐습니다.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희생된 분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전합니다. 종교로 인해 사람이 고통 받는 건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지요. 종교마다 극소수의 극단 세력이 지구촌 전체의 문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인은 ‘생명 존중과 인류의 행복’이라는 공통 가치를 구현하도록 협력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세계는 한 집이고, 사람이나 동물, 돌이나 나무까지도 모두 한 몸입니다. 바른 진리를 알지 못하니 그런 비극이 벌어집니다.” ―정치가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점점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정치하는 이들이 국민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과 진영에 매몰돼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릴 것입니다. 상대와 더불어 살아가는 원리를 잊은 것 같습니다. 세계 곳곳의 갈등과 분쟁 모두가 마음이 원인입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의 마음이 불안한데 어떻게 사회가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사회도 갈등이 깊습니다. “유례없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정신세계는 등한시하고 물질에만 매몰된 금전만능 사회가 됐습니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으로 사람들은 항상 긴장과 갈등을 겪고, 마음의 여유가 조금도 없습니다. 사회가 경쟁과 비교, 분별심으로 가득합니다. 복잡다단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근원인 인간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마음의 갈등을 해소하는 길은 참선 수행밖에 없습니다. 참선을 꾸준히 하면 지혜가 열려 모든 시비와 갈등, 허세, 아집이 봄바람에 눈 녹듯이 없어집니다.” ―육체와 의식, 사회 속 관계를 넘어서는 ‘참 나’라는 게 있습니까. “중생이 ‘나’라고 생각하는 이 몸은 ‘참 나’가 아닙니다. 몸뚱이는 100년 이내에 썩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이 몸을 부모에게 받기 전 ‘참 나’, 우주가 다 멸해도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참 나’가 있습니다. ‘참 나’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까닭에 중생들은 나고 날 적마다 생로병사의 끝없는 고통의 바다에서 헤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인가’ 하는 화두를 들고 참선해야 합니다.” ―큰스님들이 진리를 두고 하셨다는 대화는 평범한 사람이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진리의 세계는 언어도단처(言語道斷處), 즉 말로 묘사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그러한 세계를 드러내려다 보니 그런 것이지요. 사람들이 이해한다는 것은 알음알이, 분별로 이해한다는 뜻인데, 그러한 분별이 끊어진 세계가 바로 진리의 세계입니다. 참선 수행을 꾸준히 해서 ‘참 나’를 바로 보게 되면 모든 진리가 그 가운데 다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어버리고 참구하다가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나면 억만년 전 자기의 참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러면 모든 성인의 대화 속 진리가 전광석화로 상통이 됩니다. 이해하기 쉬운 말이나 글은 진리의 문으로 안내하는 길잡이지요.” ―보통 사람도 그런 수행을 할 수 있습니까. “참선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화두를 참구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아주 고요한 마음, 한 생각만 흘러가다가 무르익으면 홀연히 해결이 됩니다. 생활하는 가운데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밥을 먹으나 산책을 하나, 일체 처 일체 시에 챙기고 의심해야 합니다. 누구라도 ‘참 나’를 밝히는 화두참선을 꾸준히 하면 위대한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캄캄한 밤중에 길도 없고 차도 없이 서울 가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라 밝은 지도자를 만나야 합니다. 서울에 도착하지 않은 이는 광대무변한 세계를 모릅니다. 대구쯤 가서 진리의 고향에 이르렀다고 하는 이가 부지기수입니다.” ―종정 재임 중 기억에 남는 일을 꼽는다면…. “2015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30만 사부대중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한 세계 간화선 무차대회’입니다. 한국 불교 1700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법회였습니다. 전국 사부대중이 운집하고 세계의 고승들도 참석해 불교의 저력을 만천하에 드러내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한국 불교의 정통 수행법인 간화선 수행이 한반도의 통일과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바닥만 한 나라를 남북으로 갈라 후손에게 넘기는 것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안타까웠던 일은…. “지난해 일부 지도부의 문제로 종단이 세인의 지탄의 대상이 돼 국민들의 신뢰가 추락한 것입니다. 신뢰 회복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하겠습니다.” ―최근에도 사업 관련 의혹 등 종단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의혹은) 나중에 흑백이 가려지겠지요. 먹물 옷을 입었다고 다 스님이 아닙니다. 출가하더라도 세속의 습기(習氣)는 남아있기에 계율을 엄격히 지키고 내실 있는 수행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참선을 안 하는 이는 껍데기만 중입니다. 부처님 앞에 부복하고 평생을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하여 살겠다고 한 서원대로 수행 정진해 청정 승가를 구현할 때 종단은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불교와 종단에 개혁이 필요한지요.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은 변할 수 없지만 2600년 불교 역사와 1700년 한국 불교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화해 왔습니다. 조계종의 종지가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인 바, 수행이 근본입니다. 승가 교육의 본질인 조사 스님들의 수행 전통을 복원해야 합니다. 편한 것을 찾는 세속의 풍습이 절집에 스며들어 만연하고 있습니다. 각자 직분에서 치열한 정진으로 지혜와 덕을 갖춰야 합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진리의 일구를 선사하겠다”며 종이에 쓴 게송을 건넸다. “만년토록 빛나는 것을 어느 곳에서 찾을꼬(萬古煇然何處覓·만고휘연하처멱)/두두물물이 옛 바람이 드러남이라(頭頭物物現古風·두두물물현고풍).”부산=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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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古下, 국제 승인까지 고려해 건국 구상”… 송진우 선생 탄생 129주년 추모식

    고하 송진우(古下 宋鎭禹·1890∼1945) 선생 탄생 129주년 추모식이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8일 엄수됐다. 이날 추모식은 고하 송진우 선생 기념사업회(이사장 김창식)가 주최하고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동아일보가 후원했다. 김창식 이사장은 추모사에서 “고하 선생이 중앙학교 숙직실에서 목숨을 걸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준비한 3·1운동이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며 “선생은 절망적이었던 일제 암흑기에도 광복의 밝은 미래를 직시하고 조국 광복을 위해 애국, 애족, 애민 운동을 실천한 선각자”라고 말했다. 오윤겸 서울 중앙고 학생회장이 선생에 대한 약전(略傳·간략한 전기)을 봉독했고, 박명수 서울신학대 교수가 ‘고하 송진우의 대한민국 건국투쟁’을 주제로 추모 강연을 했다. 박 교수는 “고하 선생은 진정한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1945년 9월 7일 국민대회 준비위원회를 열었고, 이 국민대회론을 발전시킨 결과가 1948년 5·10총선거를 통한 국회의 구성”이라며 “선생은 강렬한 민족주의자이면서 법률 정당성과 국제 승인까지 생각하며 건국을 구상한 지도자였다”고 강조했다. 고하 선생의 장손인 송상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은 “작은 추모 행사지만 혼란스럽고 논란도 많은 독립운동사와 대한민국 건국사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고하 선생은 일제강점기 중앙학교 교장을 지내며 국내외 지도자와 제휴해 3·1운동을 계획했고 동아일보 3대, 6대, 8대 사장을 지냈다. 광복 뒤 국민대회준비위원장, 한국민주당 수석총무로 활동하다 1945년 12월 극우 청년들에게 암살됐다. 1963년 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됐다. 이날 추모식에는 김유후 전 대통령사정수석비서관,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남시욱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이사장,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 윤주 윤봉길연구소 이사장,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 이용기 서울남부보훈지청장, 임숙자 3·1여성동지회장, 정구종 동서대 석좌교수, 정양완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조강환 동우회장, 조홍식 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 현병철 전 국가인권위원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황찬현 전 감사원장(가나다순) 등 약 300명이 참석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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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교, ‘2019 신통일한국 희망전진대회’ 킨텍스서 개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은 한반도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2019 신통일한국 희망전진대회’를 17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킨텍스에서 개최한다. 대회에는 세계 각국의 정치·종교지도자, 시민단체 및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시민 10만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앞서 16일에는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 제임스 울시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조지프 디트라니 전 6자회담 미국 차석대표, 댄 버튼 전 미국 하원의원, 알렉산더 제빈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극동문제연구소 소장, 오노 요시노리 전 일본 방위청 장관,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조태용 전 외교부 차관,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 등이 참석하는 국제지도자회의가 열린다. 주진태 대회 실행위원장은 “이번 대회는 한반도 평화가 세계 평화라는 취지에서 세계적 인사들이 참석해 한반도 평화통일을 적극 지지하는 축제의 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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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 신간 시집 발간

    “꽃밭을 여행했으면 사막으로 가라/사막을 다녀왔으면 다시 꽃밭으로 가라/꽃밭의 향기를 사막에 날리고/사막의 침묵을 꽃밭에 퍼뜨리라/꽃밭에는 사막의 별이 뜨고/사막에는 꽃밭의 꽃잎이 날리리니”(소강석, ‘꽃밭 여행자2’에서)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가 신간 시집 ‘사막으로 간 꽃밭 여행자’(샘터·사진)를 최근 출간했다. 1995년 월간문예사조로 등단한 그의 9번째 시집이다. 소 목사는 서문에서 “나의 시가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의 가슴에 바쳐지는 꽃 한 송이가 됐으면 좋겠다. 삶의 외로움과 고뇌로 인하여 밤새 잠 못 드는 이의 불 꺼진 창가를 비추는 달빛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승우 시인(인천대 명예교수)은 해설에서 “풀 한 포기 없는 모래 속에 숨은 전갈과 독사들이 인간의 생명을 노리는 사막에 꽃밭을 가꾸겠다는 믿음이 아름답다. 시로써 영혼의 잠을 깨우고 잠 깬 영혼들이 가무의 즐거움으로 날아오른다면 이것이야말로 영혼 구원의 완성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호승 시인은 추천사에서 “시집의 행간마다 십자가에 매달려 꽃씨를 뿌리는 한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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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책임지지 않는 집단, 사회의 위기 부른다

    “바보 지식인의 수는 20세기 중반부터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다. … 이들은 특히 평범한 계층의 사람들이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면 ‘무지하다’라고 비난한다. 사람들의 정치 참여가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면 ‘민주주의’라고 말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포퓰리즘’이라고 말한다.” 책 ‘블랙 스완’으로 이 이론을 널리 알린 미국 경영학자의 책이다. 저자는 각종 위기를 초래하는 건 ‘책임지지 않는 인간’이라고 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정부가 시티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지만 책임은 납세자가 졌고, 이라크나 리비아 등의 정권 교체를 추구한 개입주의자들도 그 결과에는 책임지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스킨 인 더 게임(Skin in the game)’은 “책임을 안고 현실에 참여하라”는 뜻.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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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년 3·1운동 당시 中 유력매체들 ‘조선의 독립운동’ 전격 보도

    “이번 조선의 독립운동은 위대하고 진실하며 비장했다. … 중국의 대학생과 기독교도들은 어찌하여 가만히 있기만 하는 것인가.” 중국 5·4운동의 총사령관 격이자 신문화운동의 기수로 일컬어지는 천두슈(陳獨秀·1879∼1942)는 시사 잡지 ‘매주평론(每周評論)’ 14호(1919년 3월 23일)에서 3·1운동에 대한 감상을 밝히며 중국인의 궐기를 이렇게 촉구했다. 3·1운동 당시 중국 유력 매체들이 한국인의 거족적 독립운동과 단호한 독립 의지를 상세히 보도했고, 이는 5·4운동 발발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학계는 분석한다. 강수옥 중국 연변대 교수는 논문 ‘근대 중국인의 한국 3·1운동에 대한 인식과 5·4운동’(‘한국근현대사연구’ 79집)에서 이를 조명했다. 논문에 따르면 베이징, 상하이, 톈진의 유력 언론 ‘신보(晨報)’ ‘민국일보(民國日報)’ ‘시사신보(時事新報)’ ‘동방잡지(東方雜誌)’ ‘신청년(新靑年)’ ‘신조(新潮)’ 등이 모두 3·1운동을 전격 보도했다. 상하이에서는 ‘신보(申報)’가 가장 먼저 3·1운동 소식을 전했고 톈진에서 창간돼 중국 각지에서 발행된 대공보(大公報)도 3월 6일부터 4월 초까지 ‘조선독립활동 더욱 불타오르다’ 등의 연속 기사를 게재했다. 강 교수는 “중국 각지 매체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전면적, 심층적 보도를 이어갔다”며 “3·1운동의 평화적인 운동 방법과 일제의 잔혹한 진압, 한국인의 두려움 없는 혁명정신을 자세히 다뤘다”고 밝혔다. 특히 중국인이 3·1운동에서 교훈을 얻어 한국과 같은 민족해방운동을 일으켜야 한다는 호소가 이어졌다. 천두슈는 ‘매주평론’에 쓴 논설 ‘조선독립운동의 감상’에서 “조선민족운동의 광영을 통해 우리 중국 민족의 치욕을 다시 맛보았다.…일반 국민은 명료하고 정확한 의식적 활동을 한 적이 없다…중국인을 조선인과 비교하면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다”고 썼다. 1919년 4월 3일 ‘민국일보’도 ‘조선독립에 대한 동정(同情)에서 “본래 조선에 일이 있으면 반드시 만주에도 변고가 생긴다.…결국 조선의 독립은 배일(排日) 문제가 아니고, 생존 문제이다. 또 조선만의 문제가 아니고, 동아시아 및 전 세계의 문제”라고 했다. 강 교수는 3·1운동이 중국 각계를 놀라게 해 5·4운동의 성숙, 발생, 진전에 매우 큰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그는 3·1운동이 △중국인의 반제반봉건 투쟁의식의 새로운 각성을 촉진했고 △반제구국 운동의 모델이 됐으며 △피압박민족 해방의 조류가 도달했음을 깨닫게 했다고 봤다. 광복 직후 동아일보는 3·1운동의 세계사적 의미를 “세계약소민족해방운동사에 자연히 빛나는 기록을 지었던 것”(1946년 2월 27일 ‘3·1운동의 회상’), “세계에서 비폭력주의의 원조”(1946년 3월 1일)라고 평가했다. 최근에는 3·1운동이 5·4운동이라는 하나의 사건뿐 아니라 중국의 ‘네이션 빌딩(nation-building)’에 참조 대상이 되며 지속적인 영향을 줬다는 연구도 나왔다. 리궁중(李恭忠) 중국 난징대 교수는 지난해 11월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3·1운동은 중국 독립국가 개념 형성에 중요한 촉매였다”고 밝혔다. 리 교수는 3·1운동 이후 약 30년간의 각종 자료를 검토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3·1운동과 한국 독립운동을 통해 일제에 맞선 중국인의 민족해방의식을 환기했다고 봤다. 3·1운동이 중일전쟁을 견디게 해준 긍정적인 본보기가 됐다는 것이다. 3·1운동 소재의 연극 ‘산하루(山下淚)’ 등이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리 교수는 “3·1운동은 5·4운동의 본보기와 전주곡이 됐을 뿐 아니라 20세기 전반까지 중국인이 국가 형성을 탐색하는 데 지속적인 영향을 줬다”고 평가했다. 역으로 일제강점기 한국에서는 5·4운동을 조선의 독립과 연결지어 조명했다. 동아일보는 1925년 3월 2일 1면 사설 ‘중국 5·4운동’에서 “기미년 우리 3·1운동에 곧이어 일어난 모든 민족운동 중에는 중국의 5·4운동도 그 하나”라며 “일본은…중국의 완전한 독립을 승인하며, 기타 모든 동아(東亞)에 있는 중국과 유사한 식민지국가의 독립을 조성하야”라고 썼다. 또 “중국 국민운동의 구체적 전개의 제1보를 지은 5·4운동이 일어난 것도…우리의 3·1운동이 있은 것도 모두 1919년이 생산한 역사적 장면”(1927년 12월 16일 칼럼)이라며 피압박민족 해방운동의 연계 차원에서 5·4운동에 주목했다. 한국과 중국에서 3·1운동과 5·4운동은 일제의 침략에 시달리는 양국 민중의 단결과 연대의 필요성을 환기하는 측면에서 기억됐던 것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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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국 18번 강조하며 ‘中 5·4운동 100주년’ 의미 되새긴 시진핑

    “(군벌) 정부의 수장은 청나라가 멸망한 뒤 스스로 황제라고 칭하고 봉건 전제정치를 계속했습니다. 이런 정부가 주권을 팔아먹었어요. 5·4운동은 (외세에) 주권을 넘기지 말라는 반제국주의 운동이자, (봉건적) 정부를 반대한 반봉건 애국운동이었습니다.” 중국의 5·4운동 100주년을 이틀 앞둔 2일 오전. 100주년 기념 전시인 ‘5·4현장’이 열린 베이징(北京)신문화운동기념관을 찾았다. 기념관은 톈안먼(天安門) 인근 옛 베이징대 건물인 베이다홍러우(北大紅樓)에 있다. 이곳에서는 5·4운동 사진 180여 장과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따가운 햇살로 무더웠던 이날 기념관은 매우 붐볐다. 이곳에서 기자와 만난 런(任)모 씨(50)는 “5·4운동은 민주주의와 독립을 각성시켰다. 학생들이 민중에 이런 의식을 일깨웠다”고 말했다. 산시(山西)성에 사는 그는 대학생 아들과 함께 기념관을 찾았다.● “구시대적 정부에 항거한 구국운동” 1915년 위안스카이(袁世凱) 정부는 일본과 타협해 독일이 확보했던 산둥(山東)반도의 이권 이양 등 일본의 권한을 대폭 허용하는 21개 조항을 수용했다. 1919년 1월 파리평화회의에서 산둥반도를 아예 일본에 넘기기로 결정하자 같은 해 5월 4일 베이징 대학생 등 3000여 명이 톈안먼 일대에서 반대 시위를 벌였다. 5·4운동의 시작이었다. 5·4운동은 주권을 위협하는 외세와 이들과 결탁한 정부에 저항하는 정치운동으로 민주주의와 자유 등 새로운 사상을 일깨운 신(新)문화운동이었다. 당시 군벌정부는 학생들을 탄압했다. ‘5·4현장’ 전시실에는 1919년 6월 11일 베이징시민선언과 관련된 복제 물품도 있었다. 선언은 △대일 외교에서 산둥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지 말고 일본과 1915~1918년 맺은 모든 밀약을 취소하라 △책임 있는 관료들을 퇴진시키고 베이징에서 추방하라 △베이징 군경 사령부를 없애라 △베이징 보안대를 시민 조직으로 바꿔라 △시민은 절대적인 집회와 언론 자유권을 가진다 등 5개 요구사항을 내세웠다. 런 씨의 말처럼 5·4운동은 국민의 주권을 팔아넘기면서 국민의 자유를 탄압한 정부에 대한 본격적인 항거였다. 전시는 5·4운동의 시발점인 5월 4일 시위에 대해 “(당시 군벌) 정부에 (일본과의) 조약을 체결하지 말라고 요구하던 분노는 일본과 밀약에 서명한 내각과 외교관으로 향했다”고 설명했다. 1919년 6월 많은 베이징 학생들이 거리에서 연설했고 정부는 군경을 동원해 학생 약 1000명을 체포했다. 초등학생 딸과 함께 기념관을 찾은 상하이(上海) 거주자인 리징 씨(李靜·39)는 “오랫동안 쌓여온 민중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리(黎)모 씨(40)는 “청년들이 민중을 자각시켜 생사의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한 애국주의 정신”이라고 평가했다.● 시진핑 “공산당에 복종하는 애당 애국주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3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5·4운동 10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5·4운동의 핵심으로 ‘애국주의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1시간 이상의 기념 연설 중 애국을 18번이나 강조하며 5·4운동이 애국운동이었다고 콕 집어서 강조했다. 하지만 전시를 찾은 중국 시민들이 5·4운동의 정신으로 거론하던 ‘애국’과는 뉘앙스가 달랐다. 시 주석은 ‘공산당에 복종하는 애국’을 강조했다. 그는 “신시대 중국 청년은 (공산)당의 말을 따라야 하고 당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애국하지 않고 조국을 속이고 배반하면 국가와 세계에 매우 창피한 일이고 발붙일 곳이 없게 된다”며 “모든 중국인에게 애국은 본분이고 책임”이라고도 했다. 시 주석은 “신시대 중국 청년에게 조국을 열렬히 사랑하는 것은 입신의 본분”이라며 “애국주의의 본질은 애국과 애당을 견지하는 것이며 고도로 통일된 사회주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기념식에는 어린 학생들을 포함해 3000여 명이 참석했다.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는 등의 노래도 제창했다. 기념식장에는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 주변에서 긴밀히 단결하자’는 붉은색 대형 현수막이 붙었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인 학자는 본보에 “5·4운동은 낡은 군벌과 정부답지 않은 정부로 인해 빠진 도탄으로부터 국가를 구해 인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애국이었다”고 지적했다. 5·4운동 정신에는 항일운동의 성격도 있었지만 시 주석은 연설에서 일본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미중 패권 경쟁에서 미국의 동맹인 일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중일관계를 개선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이어서 시 주석이 의도적으로 이를 거론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정부 학생운동 의미 축소 시 주석은 5·4운동에 대해 “청년 지식인이 선봉에 섰다”고 평가하면서도 현재 중국 청년들에게는 ‘당에 대한 복종’을 강조했다. 5·4운동이 가진 반(反)정부 학생시위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음달은 1987년 6월 4일에 일어난 톈안먼(天安門) 시위 30주년이다. 5·4운동 100주년과 톈안먼 시위 30주년이 겹치면서 이를 기념하는 시위가 벌어질 가능성을 중국 정부가 차단하려고 총력을 다 한다는 관측이 많다. 이 때문에 5·4운동 100주년이지만 대대적인 행사를 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2일 찾은 기념관의 또 다른 전시관에는 1919년 5월 4일 베이징대 등 13개 대학 학생들이 톈안먼에서 집회를 한 뒤 남쪽의 첸먼(前門)을 거쳐 톈안먼이 있는 구공(古宮·자금성) 동쪽의 차오루린(曹汝霖) 당시 군벌 정부 외교차장의 집으로 행진한 경로가 공개돼 있었다. 당시 분노에 찬 학생들은 일본에 각종 권리를 팔아넘긴 매국노로 지목된 차오루린의 집을 불태워버렸다. 베이징시 정부는 1~4일 1호선 천안문동역~천안문서역 구간과 2호선 첸먼 역을 임시 폐쇄했다. 3개 역을 일직선으로 이으면 톈안먼과 톈안문 광장을 둘러싼다. 베이징시는 3개 역을 폐쇄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정부가 1일 노동절 휴무를 하루에서 갑자기 4일로 연장한 게 바로 5·4운동 100주년과 톈안먼 사태 30주년 집회를 사전에 막기 위한 조치라고 보도했다. ▼“왜 우리는 가만히 있는 것인가”…3·1운동에서 교훈 얻은 中 5·4운동▼ “이번 조선의 독립운동은 위대하고 진실하며 비장했다.…중국의 대학생과 기독교도들은 어찌하여 가만히 있기만 하는 것인가.” 중국 5·4운동의 총사령관 격이자 신문화운동의 기수로 일컬어지는 진독수(1879~1942)는 시사 잡지 ‘매주평론(每周評論)’ 14호(1919년 3월 23일)에서 3·1운동에 대한 감상을 밝히며 중국인의 궐기를 이렇게 촉구했다. 3·1운동 당시 중국 유력 매체들이 한국인의 거족적 독립운동과 단호한 독립의지를 상세히 보도했고, 이는 5·4운동 발발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학계는 분석한다. 강수옥 중국 연변대 교수는 논문 ‘근대 중국인의 한국 3·1운동에 대한 인식과 5·4운동’(‘한국근현대사연구’ 79집)에서 이를 조명했다. 논문에 따르면 베이징, 상하이, 톈진의 유력 언론 ‘신보(晨報)’ ‘민국일보(民國日報)’ ‘시사신보(時事新報)’ ‘동방잡지(東方雜誌)’ ‘신청년(新靑年)’ ‘신조(新潮)’ 등이 모두 3·1운동을 전격 보도했다. 상하이에서는 ‘신보(申報)’가 가장 먼저 3·1운동 소식을 전했고, 톈진에서 창간돼 중국 각지에서 발행된 대공보(大公報)도 3월 6일부터 4월 초까지 ‘조선독립활동 더욱 불타오르다’ 등의 연속 기사를 게재했다. 강 교수는 “중국 각지 매체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전면적, 심층적 보도를 이어갔다”며 “3·1운동의 평화적인 운동 방법과 일제의 잔혹한 진압, 한국인의 두려움 없는 혁명 정신을 자세히 다뤘다”고 밝혔다. 특히 중국인이 3·1운동에서 교훈을 얻어 한국과 같은 민족해방운동을 일으켜야 한다는 호소가 이어졌다. 진독수는 ‘매주평론’에 쓴 논설 ‘조선독립운동의 감상’에서 “조선민족운동의 광영을 통해 우리 중국민족의 치욕을 다시 맛보았다.…일반 국민은 명료하고 정확한 의식적 활동을 한 적이 없다…중국인을 조선인과 비교하면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다”고 썼다. 1919년 4월 3일 ‘민국일보’도 ‘조선독립에 대한 동정(同情)에서 “본래 조선에 일이 있으면 반드시 만주에도 변고가 생긴다.…결국 조선의 독립은 배일(排日) 문제가 아니고, 생존문제이다. 또 조선만의 문제가 아니고, 동아시아 및 전 세계의 문제”라고 했다. 강 교수는 3·1운동이 중국 각계를 놀라게 해 5·4운동의 성숙, 발생, 진전에 매우 큰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그는 3·1운동이 △중국인의 반제반봉건 투쟁의식의 새로운 각성을 촉진했고 △반제구국 운동의 모델이 됐으며 △피압박민족 해방의 조류가 도달했음을 깨닫게 했다고 봤다. 해방 직후 동아일보는 3·1운동의 세계사적 의미를 “세계약소민족해방운동사에 자연히 빛나는 기록을 지었던 것”(1946년 2월 27일 ’3·1운동의 회상‘), “세계에서 비폭력주의의 원조”(1946년 3월 1일)라고 평가했다. 최근에는 3·1운동이 5·4운동이라는 하나의 사건 뿐 아니라 중국의 ’네이션 빌딩‘(nation-building)에 참조 대상이 되며 지속적인 영향을 줬다는 연구도 나왔다. 리궁중(李恭忠) 중국 난징대 교수는 지난해 11월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3·1운동은 중국 독립국가 개념 형성에 중요한 촉매였다”고 밝혔다. 리 교수는 3·1운동 이후 약 30년간의 각종 자료를 검토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3·1운동과 한국 독립운동을 통해 일제에 맞선 중국인의 민족해방의식을 환기했다고 봤다. 3·1운동이 중일전쟁을 견디게 해준 긍정적인 본보기가 됐다는 것이다. 3·1운동 소재의 연극 ’산하루(山下淚)‘ 등이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리 교수는 “3·1운동은 5·4운동의 본보기와 전주곡이 됐을 뿐 아니라 20세기 전반까지 중국인이 국가형성을 탐색하는 데 지속적인 영향을 줬다”고 평가했다. 역으로 일제강점기 한국에서는 5·4운동을 조선의 독립과 연결지어 조명했다. 동아일보는 1925년 3월 2일 1면 사설 ’중국5·4운동‘에서 “기미년 우리 3·1운동에 곧이어 일어난 모든 민족운동 중에는 중국의 5·4운동도 그 하나”라며 “일본은…중국의 완전한 독립을 승인하며, 기타 모든 동아(東亞)에 있는 중국과 유사한 식민지국가의 독립을 조성하야”라고 썼다. 또 “중국 국민운동의 구체적 전개의 제1보를 지은 5·4운동이 일어난 것도…우리의 3·1운동이 있은 것도 모두 1919년이 생산한 역사적 장면”(1927년 12월 16일 칼럼)이라며 피압박민족 해방운동의 연계 차원에서 5·4운동에 주목했다. 한국과 중국에서 3·1운동과 5·4운동은 일제의 침략에 시달리는 양국 민중의 단결과 연대의 필요성을 환기하는 측면에서 기억됐던 것이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9-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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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비와 희망의 등을 켭시다”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봉축 법어

    “나만이 아닌 우리를 위해 동체(同體)의 등을 켜고, 내 가족만이 아닌 어려운 이웃들과 자비의 등을 켜고, 국민 모두가 현재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희망의 등을 켭시다.”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사진)은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5월 12일)을 앞두고 30일 낸 봉축 법어에서 “우리 모두가 마음과 마음에 지혜의 등불을 밝혀 어두운 사바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또 다른 나를 위해 광명이 되고, 이 사회의 등불이 되자”고 말했다. 대한불교천태종 종정 도용 스님은 봉축 법어에서 “부처님오신날은 일체중생이 지혜로 태어나고 자비로 일어서는 날”이라며 “손에 등 밝히고, 마음마다 지혜를 밝혀 부처님 오신 뜻을 높이 기리고 대자대비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자”고 말했다. 한국불교태고종 종정 혜초 스님은 법어에서 “부처님의 자비광명은 하늘의 태양처럼 비치지 않는 곳이 없으며 만물을 평등하게 길러내는 대자대비의 무량한 법신불”이라며 “내가 옳다 네가 그르다고 시비하는 것은 사문의 본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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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日 재난·안전 공동체 구축 위한 협력토대 마련해야”

    “동아시아 재난·안전 대응의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한 한일 협력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가 도서 ‘한일 관계의 긴장과 화해’(한국일본학회 엮음)와 ‘일본, 야스쿠니’(김영근, 김용철 엮음)를 최근 발간했다. 김영근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는 책 ‘한일 관계…’에 실은 글 ‘한일 간 리스크 관리의 정치’에서 “한일 간의 비정상적 외교 부재 상황을 정상화하고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의 구축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중국발 미세먼지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유출, 백두산 화산 폭발 가능성 등 최근 동아시아의 환경 이슈는 한 나라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과 일본이 초국가적 재해와 안전 문제에 대응할 인재를 양성하고 공동 위기관리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며 “2011년 동일본대지진, 2016년 구마모토 지진에서 보인 일본의 재난 대응과 복구 노력 등에서 얻은 교훈을 한국식으로 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의 주장은 ‘파탄 직전’이라는 말까진 나오는 최근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그는 “한일 화해의 전제조건인 (과거사 등) 대립 구조는 엄연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면서도 “감정적 대응은 대일정책 기조를 흔들리게 하며 한일 협력을 추동하는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교정책 부재’와 ‘진전 없는 불신의 한일 관계’를 풀기 위해 재난 대응과 같이 협력할 수 있는 새로운 의제를 살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정경분리의 원칙 적용과 민간 문화 교류 확대가 한일 관계를 ‘윈윈 게임’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까지 축적된 한일 협력의 결과물들이 과거사에 완전히 파묻히거나 미래와 단절된다면 양국의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책 ‘한일 관계…’에는 이 밖에도 한일 관계의 현황과 과제, 분쟁 이슈와 사례 등을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한 여러 글이 실렸다. 한편 ‘일본, 야스쿠니’는 일본 사회가 야스쿠니 신사를 중시하는 바탕에는 천황제와 국가신도, 생사관, 국가주의와 같은 일본인의 여러 세계관이 있다고 분석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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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억울한 옥살이 뒤에도… 광부들의 시커먼 손 누구도 잡아주지 않았다

    “수사본부는 고문당하며 ‘살려 달라’ ‘차라리 죽이라’고 외치는 광부와 가족들의 아우성으로 가득 찼다. 우리를 고문하면서 그들은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책에서나 본 아비규환이 거기 있었다.”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는 26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에서 토크콘서트 ‘기억을 말한다―사북항쟁’을 열었다. 1980년 4월 광부들의 노동 항쟁인 사북사건 당사자들의 증언을 듣는 자리였다. 당시 협상 대표였던 사북항쟁동지회 회장 이원갑 씨(79)는 이날 “그때 고문을 받아 39년이 지난 지금도 병원에 다니는 분도, 억울한 징역살이로 가정이 파탄된 분도 많다”며 “석방된 뒤에도 광부들의 시커먼 손은 누구도 잡아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북항쟁은 국내 최대 민영 탄광이었던 동원탄좌 사북영업소 광부와 가족 6000여 명이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의하며 총파업과 지역 점거를 벌였던 사건이다. 신군부는 계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참여자들을 연행해 구타와 물고문을 자행했고, 이 씨 등 7명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어용’ 시비에 휘말린 노조 지부장의 부인이 정문 게시판 기둥에 전깃줄로 묶인 채 노동자들로부터 가혹한 린치를 당하기도 했다. 이 씨는 “힘없는 광부는 탄광에서 죽어도 회사의 과실을 다 뒤집어썼다”며 “사측의 ‘암행독찰조’가 광부들의 사생활을 감시했고, 노동자는 시멘트 바닥에 꿇어앉아 징계를 받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또 “자격이 없는 이가 당시까지 1년 넘게 노조 지부장 행세를 할 수 있었던 건 정권과 기업이 유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당시 항쟁지도부 신경 씨(77), 참여자로 ‘사북사태 진상보고서’를 낸 황인호 씨(63), ‘타오르는 광산’ 등을 낸 작가 안재성 씨(59) 등도 참석했다. 신 씨는 “광부와 가족들은 탄광 물이 섞인 개울물을 먹고, 베니어합판으로 지은 집에서 살았으며, 탄을 캐다가 죽는 게 예사였다”며 “노조 회의에 중앙정보부 요원이 동석해서 감시했다”고 말했다. 신 씨는 “사북항쟁은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몸부림이었다”고 말했다. 이 씨와 신 씨는 25년이 지난 2005년 민주화 운동자로 인정됐다. 황 씨는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받은 이는 이들뿐이고, 당시 연행된 149명 가운데 재판에 회부되지 않은 122명은 똑같은 고문을 받았지만 기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적 구제마저 쉽지 않다”며 “학생, 지식인들과 달리 광부들은 민주화운동의 기억에서도 차별받고 있다”고 말했다.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는 사북항쟁 구술 자료 테이프 26개를 디지털 아카이브로 구축할 계획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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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세균=질병’이란 인식, 미국 사회를 뒤바꾸다

    19세기 초반까지 보통의 미국인은 천연두나 페스트 같은 병을 앓는 이는 다른 사람을 아프게 만들 수 있는 무형의 물질을 발산한다고 생각했다. 환자의 숨, 피부, 배설물, 옷 등이 병의 ‘씨앗(seeds)’를 품고 있어 건강한 사람에게 옮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그러나 19세기 중반에 들어 세균이 질병을 야기한다는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였다. 의학사(史)를 연구하는 미국 뉴욕주립대 역사학과 교수가 1870∼1930년 미국 공중보건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세균이 알려진 뒤 두루마리 휴지가 호텔 화장실에서부터 쓰이기 시작했고 일회용 위생용품과 살균제도 등장해 오늘날까지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된다. 세균을 피해야 한다는 인식의 확산은 미국에서 거의 ‘복음의 전파’ 수준이었다고. 위생이 정치, 사회, 문화에 미친 영향이 풍부하게 담겼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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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주제 25일 고려대서 국제학술회의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소장 이종화)는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및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구축’을 주제로 25일 오후 2시 서울 성북구 고려대 백주년기념관에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다.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베트남 전문가들이 북핵 문제 협상에 대한 인식과 대응 방향을 살피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브라이언 마이어스 동서대 교수와 왕쥔성 중국 사회과학원 교수, 니시노 준야 일본 게이오대 교수, 응이엠뚜언훙 베트남 세계경제정치연구원 교수 등이 발표를 맡았다. 연구소는 “동아시아 지역은 미중 전략적 경쟁이 본격화되며 다양한 영역에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학술회의에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실현 방안을 탐색하려 한다”고 밝혔다. 발표한 논문은 연구소가 발간하는 영문저널 ‘이스트 아시안 커뮤니티 리뷰(East Asian Community Review)’에 수록할 예정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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