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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영국 위그모어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지난해 스위스 루체른 음악축제 데뷔 무대를 가진 현악4중주단 에스메 콰르텟이 전 세계 대상으로는 첫 음반을 내놓았다. 알파 클래식스 레이블로 나온 이 음반에는 베토벤 현악4중주 1번, 영국 작곡가 프랭크 브리지의 ‘현악4중주를 위한 노벨레텐’, 진은숙의 ‘파라메타스트링’이 담겼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머무르고 있는 이 사중주단 멤버 배원희 하유나(이상 바이올린) 김지원(비올라) 허예은(첼로) 씨를 메신저로 만났다. ―베토벤은 후기 4중주들이 더 높이 평가받는데 1번을 실은 이유는…. “젊은 콰르텟으로서 첫 음반을 내놓는 만큼 저희에게 특별한 작곡가들의 현악4중주 첫 작품만 세 곡을 실었어요. 고집스럽지만 유머러스한 베토벤의 모습은 저희가 표현하기에 가장 자연스럽죠.” ―베토벤 현악4중주는 음반이 많죠. 비교 대상도 많을 텐데…. “베토벤이 이 곡의 2악장을 쓸 때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덤 장면을 그리며 썼다고 합니다. 저희는 저희만의 스토리 전달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2악장에서는 절절히 사랑하는 남녀가 울부짖고 가슴 아파하며 그리워하는 모습, 다른 악장에서는 청년 베토벤의 자신감과 그만의 독일적 유머를 저희 색깔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번 음반의 책임 프로듀서 자우어 씨는 저희 음반 녹음 몇 달 전에 유명한 카살스 콰르텟의 베토벤 전곡 녹음을 맡으셨는데요, 저희의 연주를 들으시고는 ‘너희만의 색깔이 담긴 패기 넘치는 해석이 매우 좋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브리지의 ‘노벨레텐’은 한국 음악팬들에게 친숙한 작품은 아닙니다만…. “위그모어 콩쿠르 우승 이후 영국 연주회가 많아져 영국 작곡가의 작품을 담고 싶었어요. 작품을 찾아보다가 빅토리아 양식을 기반으로 한 이 작품의 낭만적이고 감각적인 분위기에 매료됐죠.” ―지난해 8월 독일 베를린에서 음반을 녹음했는데, 베를린에 거주하는 작곡가 진은숙 씨가 현장에 와서 조언하지는 않았나요. “진 선생님의 해외 일정 때문에 스튜디오에 모시지는 못했어요. 대신 준비 과정에서 뵐 기회가 있었는데, 다정하고 꼼꼼하게 여러 조언을 해주셨죠. 편집 과정에서도 모니터링을 해주셔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파라메타스트링’은 작품에 미리 설정된 소리에 맞추기 위해 헤드폰으로 신호를 들으면서 연주를 했는데, 신호가 너무 조용하면 안 들리고 잘 들리면 마이크에 들어가고요. 헤드폰을 낀 상태에서 서로의 소리를 듣는 것도 힘든 점이었어요. 여러 번 시도 끝에 성공했죠.” ―앞으로의 중요한 일정이나 계획을 소개해 주신다면…. “지난해 영국 위그모어 홀이 2021년과 2023년 연주에 다시 초청했어요. 또 저희가 지난 2년간 오스트리아 에스테르하지 궁전 상주음악가로 활동했었는데요, 올해는 헝가리에 있는 에스테르하지 궁전에서 연주를 하게 됐습니다.” 에스메 콰르텟은 6월 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파라메타스트링’과 슈만 현악4중주 1번, 슈베르트 현악4중주 14번 ‘죽음과 소녀’를 연주할 예정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예정됐던 유럽 연주와 아시아 투어가 취소됐어요. 하루속히 이 상황이 잠잠해져서 저희와 관객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공연장에서 음악을 나누기를 기원합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소련은 1922년 12월 30일부터 69년간 존속했다. 1991년 12월 26일 사망선고가 내려지던 순간, 소련은 이미 오래 중병을 앓아온 말기 환자였다. 워싱턴포스트의 모스크바 지국장을 지낸 저자는 폴란드 자유노조와 군중이 운집한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광장, KAL기 격추 직후의 사할린을 돌아다녔고 소련 보수파 쿠데타에 맞서 옐친이 탱크 위에 올라간 순간 그 아래 있었다. 또 소비에트와 동구권 붕괴를 촉발하고 저지한 거의 모든 주인공을 만났다. 소련의 죽음이 시작된 시기를 그는 1980년 5월 유고슬라비아 지도자 티토의 장례식에서 찾는다. 이날 어떤 역사적 사건도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각국 공산당 지도자들의 경직된 모습에서 곧 무너질 세계질서를 직감한다. 석 달 뒤 폴란드에서 자유노조가 허용되었다. 그리고 1982년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사망, 노쇠한 후계자들의 잇단 사망, 1983년 KAL기 격추, 1985년 고르바초프의 등장,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이 모두는 앞선 사건들의 결과이자 뒤에 일어날 파국의 원인이었다. 소련이라는 노쇠한 거인을 병상에 눕게 한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경직된 계획경제의 모순, 낮은 인권수준과 자유에의 동경 등은 다 아는 얘기다. 저자가 의도적으로 부각하려 하지 않지만 석유는 이 드라마에서 주요 결정요인으로 등장한다. 1960년대 시베리아 유전이 개발되면서 소련은 복권을 맞았다. 농업 생산성이 떨어져 곡물을 수입하는 지경이 되었는데도 석유를 팔아 서방에서 곡물을 사고 제3세계 동맹국을 지원했다. 1985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도로 유가가 폭락했고 4년 뒤 석유 수출은 반 토막이 났다. 제국은 버틸 힘이 바닥났고 변화를 피할 수 없었다. 새 지도자 고르바초프는 중재에 능했고 자신의 줄타기를 믿었지만 소련의 체제 내 개혁이 가능하다고 오산한 점은 한계였다. 신문에 보수파 옹호 기고가 실리자 위기를 느낀 그는 소련 최초의 민주 선거와 인민대표회의 설치로 저울추를 돌려놓았다. 그러나 봇물 터진 ‘입’은 ‘고르비’를 방어하기는커녕 무너뜨렸다. 옐친 역시 보수파 견제를 위한 균형추로 허용한 카드였지만 지나치게 커질 카드였다. 과거에 특권 사수를 위해 절대적 충성을 보였던 엘리트층은 그럴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경제체제의 모순을 이용해 한몫 챙기는 게 훨씬 쉬웠기 때문이다. 결국 당이 해체되던 순간 막겠다고 나서는 ‘당원동지’는 없었다. ‘공산주의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 패배한 것이 아니라 자멸했던’ 것이다. 러시아인의 영원한 사랑인 ‘술’이 붕괴의 도미노에 한몫한 점도 흥미롭다. 고르바초프가 강요한 금주 운동은 민중이 그로부터 등을 돌리는 데 큰 이유가 되었다는 것이다. 서독 소년이 경비행기를 몰고 붉은광장에 내린 ‘루스트 사건’도 소련의 마지막에 기여했다. 화난 고르바초프는 장성들의 목을 날렸고 이는 보수파 쿠데타의 빌미 중 하나가 됐다. 모든 사람에게는 아니더라도, 이 봄은 많은 사람에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크고 무거운 책을 읽기 좋은 때다. 이 책은 집중적인 독서에 필요한 교훈과 효용성, 재미, 정보량 모두를 갖췄다. 다만 교열에는 시간이 부족했던 듯하다. 1996년 영어 원서가 나온 만큼 최신의 정보를 기대할 수는 없다. 원제 ‘Down with big brother: The fall of the Soviet Empire’.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최근 발매된 첼리스트 이정란 앨범, 지난해 피아니스트 임동민, 2018년 서울시향 애국가 음원, 2016년 롯데콘서트홀 개관기념 앨범…. 톤마이스터(녹음감독) 최진(47)의 손을 거친 음반과 녹음이다. 함께 작업한 ‘한국인’ 음악가만 한번 꼽아보라고 했다. 조수미 정명훈 백건우 손열음….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동안 작업한 게 많아서…. 누군가를 잊고 얘기 안 하면 실례가 될 것 같아서요.” 그는 9일 경남 통영으로 향했다.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진행 중인 피아니스트 손민수의 베토벤 소나타 전곡 녹음을 위해서다. 이어 첼리스트 김민지,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슈만, 테너 김세일의 슈만 가곡 등 빈틈없이 일정이 잡혀 있다. 지난주에는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의 녹음을 위해 프랑스 파리에 다녀왔다. 최진은 서울대에서 호른을 전공했고 지휘를 공부하러 20대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톤마이스터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방향을 바꿔 뒤셀도르프 슈만 음대에서 레코딩 엔지니어링을 전공했다. 2002년 그가 녹음을 맡아 음반사 헨슬러에서 내놓은 존 피오레 지휘 뒤셀도르프 교향악단의 슈트라우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음반이 여러 음악 전문지의 찬사를 받으면서 자신을 얻었다. 10년 동안 독일을 거점으로 활동하다가 2012년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스튜디오를 열었다. 녹음은 전 세계를 다니며 하고 믹싱, 편집 등 녹음후(後) 과정을 여기서 진행한다. “1960, 70년대에는 큰 음반사가 녹음 장비를 개발하고 유명 톤마이스터들이 음반사에 소속됐죠. 오늘날에는 장비가 비슷해졌고 톤마이스터가 프리랜서로 활동합니다. 그래서 음반사가 가진 고유의 색깔은 적어졌죠.” 그는 도이체 그라모폰(DG), 워너 클래식스 등 세계 최대 음반사들과 작업하고 있다. 톤마이스터는 악보에 대해 지휘자만큼, 때로 지휘자 이상 알아야 한다. 배워야 할 것도 많다. “관현악법, 화성학 등 음악 지식은 물론이고 모든 악기의 특성을 알아야 녹음이 난관에 부딪쳤을 때 바르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수학과 전자공학에도 능통해야죠. 하지만 이론에 앞서 이 모든 것이 몸에 배어야 합니다.” 그는 녹음도 매년 발전한다고 말했다. “3D(입체음향) 녹음 발전을 위해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와 함께 작업하고 있어요. 소리가 몸을 감싸듯이 들립니다. 2018년 말에는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열린 송년음악회 녹음에서 녹음 총괄을 맡았죠. 당시 100개 넘는 마이크로 녹음했습니다. 데이터도 100개 멀티채널로 저장합니다.” 국내에서 녹음하기 좋은 공간을 귀띔해달라고 했다. 실내악에서 작은 오케스트라 규모의 경우 통영국제음악당이 최고라고 그는 말했다. 서울 롯데콘서트홀은 잔향이 충분해서 큰 손질 없이 좋은 소리를 잡아낼 수 있다.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공간이 커서 큰 규모의 곡을 잘 들려준다. 성당이나 교회 중에도 좋은 음향으로 알려진 곳들이 있지만, 자동차 소리 같은 외부 소음을 차단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고 한다. 오늘날 무명 연주자들도 유튜브 등을 통해 자유롭게 연주를 공개하는 시대가 됐다. 프로 연주자들의 녹음도 스트리밍 서비스로 많이 소비된다. 톤마이스터의 역할은 어떻게 될까. “3D 녹음을 비롯해 고품질 다중채널 녹음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아마존닷컴이 3D 서비스를 시작했고, 거실에 놓는 스마트스피커로 3D 음향을 구현하는 기술도 나오고 있습니다. 고품질 녹음의 수요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겁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음악대학 학생들이 만든 유튜브 채널로 알려진 ‘또모’에서는 최근 1주일 만에 23만 뷰(조회수)를 기록한 레슨 영상이 화제가 됐다. 피아노 전공자인 음대생에게 리스트의 ‘타란텔라’를 레슨한 주인공은 피아니스트 윤아인(22·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 박사 과정). 영상 댓글에는 ‘모든 음에서 감정이 달라진다’ ‘연주 장소의 공기까지 폭발한다’는 찬사가 줄을 이었다. 피아노계 거장 엘리소 비르살라제를 함께 사사하는 드미트리 시시킨(26)이 그와 함께 피아노 두 대로 연주하는 루토스와프스키의 ‘파가니니 변주곡’ 영상도 댓글 ‘순례객’을 모으고 있다. “시시킨은 말이 필요 없이 음악에서 잘 통하는 사이죠. 존경스러울 정도로 진지하게 음악을 대하는 피아니스트예요.” 윤아인과 시시킨은 다음 달 9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듀오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윤아인에게는 교향악단 협연을 제외하면 10년 만의 고국 무대다. “러시아의 자연과 같은 서정을 전하고 싶어요. 시시킨과 함께 연주할 라흐마니노프의 모음곡 1번이 바로 그런 작품이죠.” 윤아인은 2011년 13세의 나이로 독집음반을 냈고 2015년 불가리아 블라디게로프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이번 무대에서는 리스트 ‘스페인 랩소디’와 쇼팽의 왈츠 두 곡을 솔로 연주하고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편곡판과 라흐마니노프 모음곡 1번을 시시킨과 두 대의 피아노로 연주한다. 두 사람의 스승인 비르살라제도 내한 연주마다 눈부신 테크닉과 구조적 완결미를 갖춘 해석으로 환호를 일으켜 왔다. 올해도 19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리사이틀을 할 예정이었지만 취소됐다. “선생님도 아쉬워하셨지만 ‘너희(제자들)에게 더 시간을 낼 수 있잖니’라며 웃으셨어요.” 클래식계에선 4월 예정된 공연들의 취소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한 시간 뒤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매 순간 진지해야 하는 존재가 연주자죠. 멋진 곡들을 연습하며 많은 것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보람 있는 시간이에요.” 그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 모스크바에서 촉촉했다. “그렇지만 고국 관객들을 너무 만나고 싶어요!” 3만5000∼8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세상에는 가르칠 수 없는 특성이 세 가지 있는데, 이것이 없으면 훌륭한 편집가로 기능할 수 없다. 그것은 판단, 취향, 그리고 공감이다.” 이 책은 ‘책에 관한 책’이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책 만들기에 관한 책’이다. 책 만들기도 기본적인 얼개는 다른 생산품과 다르지 않다. 원재료를 확보하고, 일정한 공정을 거쳐 완성품으로 만들며, 그 뒤 마케팅이 이뤄진다. 이 모든 과정에 개입하는 사람이 편집가(Editor)다. 이름만으로는 중간 생산 과정만을 책임지는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모든 과정의 지식이 긴밀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 편집자가 아니라 편집‘가’인가. 책 ‘편집’이 지식과 감각과 경험을 총동원하는 일이며 전문성과 헌신이 반드시 요구되므로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가(家)’를 호칭에 넣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번역자는 말한다. 미국 출판계에서 활동해온 편집가 27명의 글이 이 한 권에 모였다. ‘원재료 수급’에 해당하는 ‘확보(기획 및 섭외)’, ‘생산’에 해당하는 ‘편집’, ‘마케팅’에 해당하는 ‘발행’까지가 앞쪽 절반을 차지하고, 소설 아동서 전기 학술서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체득한 세부를 설명한다. 편집가는 기본적으로 중간에 선 존재다. 저자를 상대로 독자를, 독자를 상대로 저자를 대변한다. 때로는 저자에 대한 사랑이 그를 맹목으로 이끈다. 자기 집까지 집필 공간으로 제공했다가 필자를 경쟁사에 빼앗긴 편집가의 일화는 웃고만 넘어가기 힘들다. 적절한 거리는 필수다. 그럼에도 발행 부분을 맡은 한 저자는 ‘편집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타인을 끌어들일 만한 확신을 품어야 한다는 뜻이다. 책 시장에서 얕볼 만한 분야란 없다. 어린이책 편집가로 오래 활동해온 한 저자는 이 분야에서도 ‘독자를 얕잡아보거나 저자가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면 틀림없이 실패한다’고 말한다. ‘도판(圖版)’ 서적 분야를 맡은 저자가 ‘나도 이 원고 마감을 한 달이나 넘겼다’고 고백하는 데는 웃음이 피식 나온다. 이 ‘책 만드는 사람들을 위한 책’을 보통의 독자도 읽어야 할까. 책을 사랑하는 독서가들에게도 그 산물이 세상에 나오는 과정은 분명 이 신비로운 제품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 단, 수많은 저자가 각자의 조언과 경험담을 쏟아 놓는 만큼 상당한 정도 내용의 중복은 피하기 힘들다. 이 책 원서의 편집가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오늘날 개인 콘텐츠의 시대가 심화되고 있다. 앞으로 편집가의 역할은 줄어들까. ‘변화하는 출판계에서 편집가의 역할’ 장을 맡은 저자는 ‘자기 출판의 성장이 편집에 대한 필요를 오히려 증대시킬 것’이라고 내다본다. 콘텐츠의 숫자가 폭발할수록 시간을 소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을 가려 보려는 독자도 더욱 늘어나며, 이에 따라 전문적인 편집자가 콘텐츠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낼 필요도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파리에서 잘 꾸려 가져온 선물 꾸러미 같다. 첼리스트 이정란(37)이 최근 내놓은 앨범 ‘랑데부 인 파리’가 그렇다. 꾸러미 속엔 무게 나가는 명품 셋(생상스 소나타 1번, 드뷔시 소나타, 풀랑 소나타)이 먼저 눈에 띈다. 작지만 빛나는 소품들 (생상스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 열리고’, 포레 ‘시실리엔’ ‘나비’, 드뷔시 ‘달빛’, 풀랑 ‘사랑의 오솔길’)이 그 사이사이를 채운다. “저를 음악가로 키워준 파리를 음반에 담아보겠다는 게 스스로와의 약속이었죠.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만이 가득했던, 그 시절과의 만남이기도 합니다.” 이정란은 청춘의 빛나는 시절 7년을 파리에 살며 파리국립고등음악원 학사 및 최고연주자 과정과 실내악 전문사 과정을 졸업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도 이번 음반의 콘셉트에 영향을 끼쳤다. “주인공이 평소 동경하던 작가들을 만나듯이, 저도 음악을 통해 동경하던 작곡가들을 직접 만나는 걸 상상했어요.” 프랑스 현악 전통의 우아함을 내면 깊이 각인한 그는 2010년대 음악의 경계를 넘어 미술 문학 무용으로 탐험을 확산하는 ‘첼로미학’ 시리즈를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진지함을 보여주었다. 2015년부터는 바흐 무반주 첼로 전곡 연주, 베토벤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작품 전곡 연주, 2019년 슈베르트와 멘델스존 연주 등을 이어 나가면서 한 시대와 그를 대표하는 정신에 꾸준히 천착했다. 이번 음반 연습과 녹음 과정 내내 그는 파리 생활 동안 마주쳤던 센강의 반짝임, 공원에서 만난 나비의 날갯짓, 작은 산책길, 밤하늘을 비추는 달빛을 머릿속에 그렸다. 그 빛나는 프랑스의 ‘에스프리(정신·정수)’가 자신의 연주를 통해 전달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파리 학창 시절의 친구였던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시콥스키(성신여대 초빙교수)가 반주자로 호흡을 함께했다. 아쉬운 일도 있다. 이달 서울, 대구, 광주에서 음반 발매 기념 콘서트를 열려고 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미뤄졌다. 8월 27일 광주 유·스퀘어문화관, 8월 28일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연주회를 열 계획이다. 서울 공연은 새 날짜를 알아보고 있다. 유윤종 문화전문 기자 gustav@donga.com}

당초에 한국인 성악가들의 공연만 찾을 계획은 없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오스트리아 빈에 이르는 오페라 여행을 계획하다 보니 유럽 무대를 주름잡는 한국인 스타들의 무대가 저절로 ‘걸려’ 들어왔다. 22일 베네치아의 유서 깊은 라 페니체(불사조) 극장.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바리톤 김주택이 출연했다. 순진한 농부 네모리노의 사랑에 걸림돌이 되는 장교 벨코레 역이다. 공명점이 다소 높이 위치하고 지적인 품격이 느껴지는 김주택의 노래결은 배짱 좋고 여유 넘치는 기존의 벨코레 상에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이 극장의 팬들에게 그는 2018년 출연한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의 노신사 제르몽 역으로 가장 먼저 기억되어 왔다. 그러나 극의 마지막, 네모리노의 승리를 쿨하게 인정하는 뒤끝 없는 벨코레의 모습에는 김주택의 온화한 노래가 오히려 더없이 들어맞았다. 주역들과 합창단을 쉴 새 없이 춤추고 흔들거리게 한 연출가 안드레아 치니의 구도 속에서 각 잡힌 그의 연기는 무대 위에 강한 한 점을 만들어냈다. 사흘 뒤인 25일 빈 국립오페라극장(슈타츠오퍼). 마스네 오페라 ‘마농’에 이 극장 전속가수인 베이스 박종민이 남주인공 데그리외의 부친인 데그리외 백작 역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냉정함과 사려, 야비함을 함께 갖춘 복합적 인물이다. 박종민은 정면과 무대 뒷면을 동시에 울리는 깊은 저음으로 이 역할을 그려 맞춘 듯이 소화했다. 이날을 장악한 최고의 스타는 넉넉한 볼륨의 여유를 갖고 호소력 있는 피아니시모까지 정밀하게 소화한 데그리외 역의 테너 장프랑수아 보라스였지만, 관객들은 그에게 뒤지지 않는 커다란 ‘브라보’를 박종민에게 보냈다. 다음 날인 26일 빈 국립오페라극장 무대를 ‘훔친’ 주인공은 푸치니 ‘나비부인’ 타이틀롤을 소화한 소프라노 임세경이었다. 2015년부터 같은 역을 맡아 이 극장 팬들에게는 낯익은 ‘초초상’(나비부인의 여주인공)이다. 아담한 체구의 임세경은 파바로티를 연상시키는 거구의 테너 파비오 사르토리와 대등한 볼륨으로 풍성하기 그지없는 1막 신혼의 이중창을 함께 뿜어냈다. 2막 자결 직전의 극적인 아리아 ‘하늘에서 내려온 내 아이야’에서 극장 천장을 찌르는 듯한 강력한 고음의 포르티시모는 관객들의 숨을 한동안 멈추게 만들었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독일을 중심으로 강력해지는 한국인 성악가들의 파워는 사흘 동안 마주한 현장 관객들의 자연스럽고도 열렬한 반응에서 확인되었다. 빈 관객들은 기자에게 먼저 다가와 “한국인이냐”고 물으며 “박종민과 임세경은 친숙하고도 안정감을 갖춘 빈 문화의 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김주택이 22일 장교 벨코레로 열연한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은 이탈리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속에 이틀 뒤인 24일부터 휴관에 들어갔다. 가면 분장으로 유명한 베네치아 카니발도 23일부터 중단되었다. 기자로서는 운이 따른 일정이었다. 빈·베네치아=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이한 세계 클래식계 또 하나의 주제어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100주년’이다. 모차르트와 카라얀의 고향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시작된 이 축제는 오페라와 관현악 콘서트뿐 아니라 실내악과 독주회, 연극을 아우르는 종합 예술제로 전 세계 유일의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제1차 세계대전의 포연이 채 가시지 않은 1920년, ‘평화를 위한 예술가들의 행동’이라는 뜻을 담아 극작가 후고 폰 호프만슈탈,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의 주도로 시작됐다. 1956년 이 도시 출신의 지휘 거장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축제의 명성과 규모는 한층 뛰어올랐다. 가장 오랜 기간 세계 오케스트라계의 최고봉으로 군림해온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이 축제의 실질적 ‘상주 악단’ 역할을 맡는다. 100년을 기념하는 올해는 7월 18일부터 8월 31일까지 약 200개 공연이 펼쳐진다. 1960년에 카라얀의 주도로 설립된 대축제극장, 바위를 파서 조성한 독특한 분위기와 음향으로 유명한 ‘펠젠라이트슐레’(전 승마학교 공연장) 등 잘츠부르크 전역의 다양한 공간이 공연장으로 활용된다. 올해 오페라 분야의 화제작으로는 4월 내한 예정인 ‘지휘계의 악동’ ‘클래식계의 구원자’ 테오도르 쿠렌치스가 지휘하고 그의 악단 ‘무지카 에테르나’가 반주를 맡는 모차르트 ‘돈조반니’와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 부부가 남녀 주연으로 출연하는 푸치니 ‘토스카’가 꼽힌다. 관현악 콘서트로는 축제의 얼굴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안드리스 넬손스 지휘 말러 교향곡 3번, 리카르도 무티 지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크리스티안 틸레만 지휘 브루크너 교향곡 7번, 구스타보 두다멜 지휘 스트라빈스키 ‘불새’ 등 황금 지휘자 진용과 함께 콘서트를 꾸린다. 슈트라우스 ‘알프스 교향곡’을 지휘할 예정이던 마리스 얀손스가 지난해 타계하면서 그의 자리는 프란츠 벨저뫼스트가 대신 맡는다. ‘손님 악단’으로는 키릴 페트렌코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바렌보임 지휘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등이 무대에 오른다. 쿠렌치스와 무지카 에테르나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고르 레빗이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시리즈와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그리고리 소콜로프, 아르카디 볼로도스, 다닐 트리포노프, 바이올리니스트 아네조피 무터, 르노 카퓌송 등 굵직한 리사이틀 무대도 마련된다. 동아일보는 8월 4일부터 15일까지 12일 일정으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100주년 현장을 돌아보는 클래식 투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안드리스 넬손스 지휘 빈 필하모닉의 말러 교향곡 3번(7일),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8일), 쿠렌치스 지휘 모차르트 오페라 ‘돈조반니’(9일), 아네조피 무터의 베토벤·바흐 리사이틀(10일)을 감상하고 11일 호반의 정교한 무대로 유명한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를 만난다. 체코 프라하, 말러의 생가가 있는 칼리슈테, 역사와 풍광이 숨쉬는 체스키크룸로프, 오스트리아 할슈타트와 장크트길겐을 비롯한 잘츠카머구트 일대, 인스부르크, 이탈리아 알프스의 돌로미티 일대와 밀라노까지 돌아보는 여정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거문고는 우리 민족만의 것이고, 선비의 악기죠. 집집마다, 학교마다 거문고 소리가 울리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거문고 연주의 명인과 제작의 명인. 이름도 같은 70세 동갑내기 두 사람이 마주앉았다. 국악기를 제작하는 조대석 민속국악사 대표와 거문고 연주가 겸 작곡가인 정대석 전 서울대 국악과 교수. 서울 강남구 민속국악사에서 만난 두 사람은 42년 전인 1978년 처음 만난 때를 회상했다. “조 대표가 자기가 제작한 거문고를 가져와서 봐달라고 하더군요. 그때는 손볼 점들이 눈에 띄어서 이런저런 조언을 했죠. 자신도 국악 연주(가야금)를 배운 분이라 바로 소리가 달라지곤 했어요.”(정 전 교수) 조 대표는 당숙 조정삼 명인으로부터 거문고를 비롯한 국악기 제작을 배웠다. 열세 살 때 악기 제작에 입문했고 24세 때 독립했다. 청년 거문고 명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정 전 교수를 찾아간 것이 그 4년 뒤였다. 솜씨를 인정받으면서 7남매 중 세 동생에게도 악기 제작을 전했다. 막내 조준석 명인은 충북도 무형문화재로 충북 영동에서 난계국악기 제작촌을 이끌고 있다. 두 동생은 각각 경기 용인과 충북 청주에서 국악기 제작으로 솜씨를 뽐내고 있다. 정 전 교수는 어려운 형편 때문에 음대에 가지 못했지만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과 KBS국악관현악단 창단 수석을 거쳐 2007년 서울대 국악과 교수로 임용되며 화제가 됐다. 거문고 협주곡 ‘수리재’ 등 여러 사랑받는 작품을 쓴 작곡가로도 인정받고 있다. 조 대표는 “젊을 때부터 정 선생 연주를 들으면 꿈속을 걷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2014년부터 동아국악콩쿠르 일반부 및 학생부 최고등위 수상자에게 1000만 원 상당의 거문고 1대씩을 부상으로 수여하고 있다. 제15회 동아국악콩쿠르 거문고 1위 수상자이면서 이 콩쿠르에 심사위원과 자문위원 등으로 기여해온 정 전 교수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올해 콩쿠르는 6월 8일∼7월 1일 서울 중앙대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다. “동아국악콩쿠르가 있는 한 계속해서 악기를 수여하려 합니다. 제가 만든 악기가 재능 있는 미래 명인들의 손에서 사랑받고 소리를 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으니까요.”(조 대표) 정 전 교수는 “가야금 아쟁 해금은 다른 나라 악기들과 공통점이나 교류의 역사가 있지만 괘(현을 거는 고정 받침)가 있고 술대로 치는 거문고는 우리만의 독특한 악기”라고 했다. 두 사람은 입을 모아 말했다. “좌서우금(左書右琴·왼쪽에 책을, 오른쪽에 거문고를 놓다)이라는 말처럼 거문고는 예로부터 선비의 필수 교양이었죠. 이 악기의 깊은 매력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기 바랍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다음달 10~12일 대전 서울 춘천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이 코로나 19 확산에 대한 우려로 순연되었다. 홍콩 필하모닉의 베네딕트 포어 대표는 19일 “한국과 일본 투어를 연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깊이 유감이다. 세계가 현재의 상황을 빨리 극복하기를 기원하며 다시 내한공연 일정을 잡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에는 미확진 보균자로 인해 비행 중 발생할 수 있는 코로나 19 확산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필하모닉 내한공연 주최사인 프레스토아트 관계자는 “이번 공연은 취소가 아니라 연기임을 홍콩필 측이 약속했다”며 “일정을 새로 잡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gustav@donga.com}

왜 ‘새로운’ 대중일까. 21세기에 세상의 중심은 대중에서 영향력 있는 개인, ‘인플루언서’에게로 옮겨가는 듯했다. 유행보다 취향이 더욱 존중받는 듯했다. 그러나 대중은 위력적으로 다시 살아났다. 이른바 아랍 혁명에서뿐 아니라 홍콩에서 우리는 부활한 대중의 힘을 본다. 지난해 이후 서울 중심부와 서초동에서 일어난 대중‘들’ 사이의 대결에서도 마찬가지다. 독일 철학자인 두 저자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양상이 기존의 조밀하고 위계질서로 짜여진 대중 대신 느슨하게 결속된, 개방적인 대중을 낳았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소수의 통로가 아니라 유튜브 채널만큼이나 다양한 경로에서 영향을 받는다. 이들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집단 속에서도 자아를 잃지 않는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 새로운 대중은 오히려 참여 속에서 ‘이것은 바로 나의 사건’이라는, 자아의 강화를 체험한다. 균질적이지 않은 다원화된 집단들로 움직이지만 그 바탕이 되는 사회 자체가 과거보다 다양하기 때문에 각각의 참여자들은 오히려 더 높은 동질감을 갖게 된다. 옛 독재자들이 깔보고 이용했던 ‘의식 없는’ 대중은 사라진 것이다. 새로운 속성이 부여된 오늘의 대중에 대한 분석에 그치지 않고 프랑스 혁명으로 처음 존재를 드러냈던 대중에서부터 ‘자발성을 갖춘 대중’으로 변화하는 대중의 역사를 따라가며 조감할 수 있도록 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질병과 불안에 맞서는 동아시아인들의 연대를 드러내는 신호일까. 홍콩필하모닉 오케스트라(홍콩필) 내한공연이 다음 달 10~12일 대전 서울 춘천에서 ‘예정대로’ 진행된다. 베네딕트 포어 홍콩필 대표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한국과 일본이기에 동아시아 투어를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국내 연주가와 악단들의 공연도 취소가 잇따르는 가운데 들려온 소식이기에 더욱 값지다. 이 악단은 지난달 31일 홍콩문화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던 공연을 취소한 바 있어 ‘한국 일본 투어 취소설(說)’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홍콩필은 세계 최고 권위 클래식 음악 저널인 영국 그라머폰 선정 ‘2019 올해의 오케스트라’에 선정되면서 아시아 악단으로서 뚜렷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여기에는 2012년부터 이 악단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네덜란드 출신 지휘자 야프 판즈베던의 역량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바이올리니스트로 출발해 18세 때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최연소 악장을 맡은 판즈베던은 안트베르펜 교향악단 수석지휘자를 거쳐 2012년 홍콩필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홍콩필과 연주한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전곡은 음반으로 발매돼 큰 호평을 받았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그는 2018년부터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명성을 가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겸하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KBS교향악단을 지휘해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을 연주했으며 올해도 다음 달 26일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지휘하는 등 세 차례 KBS교향악단과 화음을 맞출 예정이다. 이번 홍콩필 내한연주는 다음 달 10일 대전 예술의전당 아트홀, 1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2일 춘천 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열린다. 협연자 없이 베토벤 교향곡 5번과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 운명에 맞서는 인간의 의지와 고귀한 정신에 대한 찬가로 알려진 작품들이다. 홍콩의 최근 정치적 상황이 어쩔 수 없이 겹쳐 보이는 부분이다. 3만∼10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음악학자인 저자는 두 사람의 삶을 기록한다. 한 사람은 올해 탄생 250주년을 맞은 ‘음악의 성자’ 베토벤. 한 사람은 저자의 아내 바버라다. 두 사람 모두 계속 심해지는 청력 상실로 고통을 받았다. 바버라는 뇌종양을 극복한 뒤 한동안 이상이 없다가 차차 청력이 나빠졌다. 어느 날 오른쪽 청력을 잃고 3년 뒤 왼쪽 귀마저 듣지 못하게 된다. 6개월이 지난 뒤 소리를 청신경에 전해주는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받는다. 그의 신경과 뇌는 생경한 신호를 과거의 경험과 연결시키는 기적을 일으킨다. 바버라는 이윽고 남편의 목소리를 구분하고, 음악을 즐기게 된다. 대음악가의 청력 상실이라는 큰 주제를 다루기 위해 ‘말랑한’ 사생활을 끌어들인 것으로는 읽히지 않는다. 이 개인적 경험을 통해 저자는 베토벤의 작업과 정신의 행로를 이해할 풍성한 단서를 얻는다. 베토벤은 ‘음악을 잃었다’고 탄식하지 않았다. 사람들과의 소통을 잃는 데 슬퍼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음악을 만드는 새 방법들을 개발한다. 유명한 5번 교향곡의 서두에서 알 수 있듯 리듬과 짧은 동기를 강조하게 된다. 점차 베토벤의 작업에는 귀보다 악보를 구성하는 ‘눈’이 큰 역할을 했다. 초고 작업이 길어졌고, 눈이 작곡을 주도하면서 베토벤은 우아한 ‘갈랑’ 스타일로 대표되던 이전 시대의 음악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지의 음악을 창조했다. “베토벤은 난청으로 영혼의 바닥까지 내려가 그 척박한 땅에서 새싹을 틔웠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사족. 최근 외신을 인용해 베토벤이 만년까지 ‘완전히’ 청력을 잃지는 않았다는 분석이 전해진 바 있다. 이 책에 인용된 문헌들에서 보듯 그 자체로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2020년, 세계 피아노계에 빅매치가 펼쳐진다. 이른바 ‘세계 3대 음악콩쿠르’ 중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콩쿠르만을 제외하고 바르샤바 쇼팽 피아노콩쿠르(5년마다 개최)와 브뤼셀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피아노 부문(4년마다 개최)이 한꺼번에 개최된다. 3년마다 열리는 텔아비브 루빈슈타인 콩쿠르와 위트레흐트 프란츠 리스트 콩쿠르, 서울에서 열리는 유일한 국제음악콩쿠르인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 피아노 부문도 올해 영예의 우승자를 가린다.○ 쇼팽 작품만 연주하는 쇼팽 콩쿠르 폴란드가 낳은 피아노음악 거장 쇼팽을 기리기 위해 창설된 이 콩쿠르는 예선부터 결선까지 모든 연주를 쇼팽의 피아노음악만으로 치른다. 한국인에게는 2015년 조성진을 우승자로 배출한 대회로 친숙하다. 2005년에는 임동민 임동혁 형제가 공동 3위를 차지했다. 1927년 창립되었고 5년마다 열린다. 지금까지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당타이손, 스타니슬라프 부닌, 조성진 등의 피아노 거장을 배출했다. 올해는 10월 18∼20일 결선 경연이 열리고 21∼23일에는 1위부터 3위까지의 입상자가 위너스 콘서트를 갖는다.○ 길고 험난한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1937년 바이올린 부문으로 시작되었고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성악 부문을 4년마다 개최한다. 2015년 임지영이 바이올린 부문에, 2011년 홍혜란(소프라노)과 2014년 황수미(소프라노)가 성악 부문, 2008년 조은화, 이듬해 전민재가 작곡 부문에서 우승했지만 피아노 부문은 아직 한국인 우승자를 내지 못했다. 결선 진출자는 ‘뮤직샤펠(음악의 성)’이라는 시설에 갇혀 주최 측이 제공하는 신작 악보를 연습해 결선을 준비해야 한다. 이 때문에 ‘체력 고갈 콩쿠르’로 악명이 높다. 올해 대회는 5월 4일부터 열린다. 25∼30일에는 매일 한 사람씩이 출연하는 결선 경연이 열리고 6월 16, 18일에 수상자 콘서트가 개최된다.○ ‘음악영재 천국’ 한국 대표 콩쿠르 3월 15∼28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 16회 대회가 열린다. 3년마다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부문을 번갈아 개최한다. 올해는 피아노의 세계적 명인인 파스칼 로제(프랑스)와 작곡가로 더 유명한 미국의 로웰 리버먼, 임종필(전 한양대 교수) 유영욱(연세대 교수)과 이 대회 첫 우승자인 아비람 라이케르트(서울대 교수)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 첫 대회 2위를 수상한 이탈리아의 알레시오 백스, 4위 핀란드의 안티 시랄라, 2008년 3위 김태형, 2011년 우승자 게오르기 그로모프, 2014년 1위 한지호, 3위 캐나다의 샤를 리샤르 아믈랭 등은 국내외 피아노 연주계 선두 그룹에 자리 잡았다. 입상자에게는 1위 5만 달러 등 상금과 서울 예술의전당 교향악 축제 협연을 비롯한 특전이 제공된다. 2차 예선에서 베토벤의 소나타를 가장 잘 연주한 참가자에게는 피아니스트 신수정(서울대 명예교수)이 제공한 기금으로 시상하는 특별상을 시상한다. 올해 결선 경연은 3월 27,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는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 후 한국 사회의 반응에서 나타나듯 피아니스트 한 사람이 몇 개의 오케스트라를 상회하는 가치를 지닐 수 있다. 올해 여러 콩쿠르를 통해 ‘대어’가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2020년, 세계 피아노계에 빅매치가 펼쳐진다. 이른바 ‘세계 3대 음악콩쿠르’ 중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콩쿠르만을 제외하고 바르샤바 쇼팽 피아노콩쿠르(5년마다 개최)와 브뤼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피아노부문(4년마다)이 올해 한꺼번에 개최된다. 3년마다 열리는 텔아비브 루빈슈타인 콩쿠르와 위트레흐트 프란츠 리스트 콩쿠르, 서울에서 열리는 유일한 국제음악콩쿠르인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 피아노 부문도 올해 나란히 영예의 우승자를 가린다.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의 낭보가 재현될지 음악계와 클래식 팬들은 일찌감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쇼팽 작품만 연주하는 쇼팽 콩쿠르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는 10월 2~23일 열린다. 폴란드가 낳은 피아노음악 거장 프레데릭 쇼팽을 기리기 위해 창설된 이 콩쿠르는 예선부터 결선까지의 모든 연주를 쇼팽의 피아노음악만으로 치른다. 한국인에게는 2015년 조성진을 우승자로 배출한 대회로 친숙하다. 2005년에는 임동민 임동혁 형제가 공동 3위를 차지했다. 1927년 창립된 이 대회는 1955년부터 5년마다 열린다. 1955년부터 2015년까지 아담 하라셰비츠,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 개릭 올슨,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당타이손, 스타니슬라프 부닌, 리윈디, 라파우 블레하츠, 율리아나 아브데예바, 조성진 등 이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세계 피아노계의 정상 반열에 오르지 않은 피아니스트는 단 한 사람도 없다. 1990, 95년은 1위 입상자를 내지 못했다. 10월 18~20일 결선 경연이 열리고 21~23일에는 1위부터 3위까지의 입상자가 위너스 콘서트를 갖는다.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협연한다. ●길고 험난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1937년 바이올린 부문으로 시작되었고 2017년 첼로 부문이 추가된 후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성악 부문을 4년마다 개최한다. 2015년 임지영이 바이올린 부문에, 2011년 홍혜란(소프라노)과 2014년 황수미(〃)가 성악 부문, 2008년 조은화, 이듬해 전민재가 작곡 부문에서 우승하는 등 한국인 우승자만 5명이 배출되었지만 피아노 부문은 아직 한국인 우승자를 내지 못했다. 1991년 백혜선 4위, 1995년 박종화 5위, 2007년 임효선 5위, 2010년 김태형 5위, 2016년 한지호 4위 등의 입상자를 냈다. 2003년에는 임동혁이 3위에 올랐으나 2위 수상자의 성적에 의문을 표시하며 수상을 거절했다. 이 콩쿠르 결선 진출자는 ‘뮤직샤펠(음악의 성)’이라는 시설에 전화기도 빼앗기고 감금(?)되어 주최 측이 제공하는 신작 악보를 처음부터 연습해서 결선을 준비해야 한다. 신작은 기교적으로도 극한을 요구해 ‘체력을 고갈시키는 콩쿠르’로도 악명이 높다. 올해 대회는 5월 4일부터 열린다. 25~30일에는 매일 한 사람씩이 출연하는 결선 경연이 열리고 6월 16, 18일에 수상자 콘서트가 개최된다. ●‘음악영재 천국’ 한국 대표 콩쿠르 세계 음악계 스타들의 새로운 배출기지로 주목받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는 3월 15~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 16회 대회가 열린다. 3년마다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부문을 번갈아 개최한다. 지금까지 피아노 부문 심사위원으로 정진우, 신수정, 이경숙, 한동일, 김대진, 강충모, 문익주, 문용희, 임종필, 이대욱, 장형준, 김영호 등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와 존 오코너, 도미니크 메를레, 아리에 바르디, 미셀 베로프, 얀 케펠렉 등 현대 세계 피아노계의 빛나는 별들이 참여했다. 올해는 피아노의 세계적 명인인 파스칼 로제(프랑스)와 작곡가로 더 유명한 미국의 로웰 리버만, 임종필(전 한양대 교수) 유영욱(연세대 교수)과 이 대회 1회 우승자인 아비람 라이케르트(서울대 교수)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 첫 대회 2위를 수상한 이탈리아의 알레시오 백스, 4위 핀란드의 안티 시랄라, 2008년 2위 수상자인 우크라이나의 알렉세이 고를라치, 3위 김태형, 2011년 우승자 게오르기 그로모프, 2014년 1위 한지호, 3위 캐나다의 샤를리샤르 아믈랭 등은 국내외 피아노 연주계를 끌고 가는 선두그룹에 자리 잡았다. 입상자에게는 1위 5만 달러 등 상금과 서울 예술의전당 교향악 축제 협연을 비롯한 특전이 제공된다. 2차 예선에서 베토벤의 소나타를 가장 잘 연주한 참가자에게는 원로 피아니스트 신수정(서울대 명예교수)이 제공한 기금으로 시상하는 특별상을 시상한다. 올해 결선 경연은 3월 27,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피아노 스타는 음악계의 블루칩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열리는 루빈슈타인 콩쿠르는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을 기리기 위해 1974년 시작됐고 3년마다 열린다. 에마뉴엘 액스, 게르하르트 오피츠, 다닐 트리포노프 등의 우승자를 배출했고 1998년 박종경, 2005년 손열음, 2014년 조성진이 각각 3위에 올랐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 열리는 프란츠 리스트 콩쿠르는 리스트 서거 100주년인 1986년 시작돼 3년마다 열린다. 올해는 3월 17~28일 열린다. 2017년에는 홍민수가 2등상을 수상했다.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는 “피아노는 클래식 음악 산업의 ‘블루칩’이다.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 후 한국 사회의 반응에서 나타나듯 피아니스트 한 사람이 몇 개의 오케스트라를 상회하는 경제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 올해 수많은 콩쿠르에서 ‘대어’가 나오기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많은 곡을 알아도 더 잘하는 몇 곡이 있어야 한다고 피아니스트 미켈란젤리가 말했죠. 제겐 베토벤의 이 소나타들이 가장 가까운 작품입니다.” 피아니스트 원재연(32)은 3년 동안 ‘소문’이었다. 2017년 이탈리아 부소니 콩쿠르에서 2등상과 청중상을 받으며 ‘개성이 뚜렷한 연주’라는 평가를 받은 그가 서울 관객 앞에 선다.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베토벤 소나타 13번 ‘환상곡풍’, 소나타 30번, 모차르트 환상곡 C단조, 베토벤 소나타 32번을 연주한다. “꾸준히 연마해온 베토벤을 콩쿠르 이후 첫 본격 고국 무대에서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13번 소나타만 해도 15년째, 다른 곡들도 10년 이상 익혀온 작품이죠.” 서울에서 보기 힘들었던 기간에 그는 자신의 피아노 세계를 더 공고히 해줄 ‘사부’를 찾아다녔다. 지난해엔 포르투갈 산속에서 사는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르스를 찾아갔다. “다른 젊은 피아니스트 네 명과 함께 지내며 가르침을 받았죠. 어떻게 치라는 기술보다는 세상과 예술을 더 넓게 보는 눈을 배웠습니다.” 이번 프로그램 중 베토벤의 소나타 13번은 연주되는 기회가 적다. “베토벤이 중기로 넘어오면서 과감한 표현을 시도한 곡이죠. 고전 소나타로는 처음으로 환상곡풍의 부분을 집어넣었어요.” 환상적 분위기는 모차르트의 환상곡 C단조와 연결하고, 이어 베토벤 소나타 32번과 연결시킨다. “모차르트 환상곡과 베토벤 소나타 32번 모두 감 7도 화음으로 시작하는 어두운 분위기가 인상적이거든요.” 그는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 32번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향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앞부분이 지옥과 같이 격렬하고 중간 부분 G장조는 둘 사이에 놓인 사다리 같죠. 이를 넘어 영원한 구원으로 가는 느낌이에요. 함께 느끼실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 음반 발매도 계획돼 있다. ‘어쿠센스’ 레이블로 리스트의 잘 연주되지 않는 곡인 ‘발현(Apparitions)’ 1번, 버르토크의 ‘문 밖(Out of Doors)’ 등을 담았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작곡가 바그너와 드뷔시는 여러 여성을 헌신짝처럼 저버렸다. 지휘자 카를 뵘은 나치 추종자였다. 이런 이유로 이런 예술가들의 업적까지 싫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선(善)과 미(美)는 다른 영역으로 고대에 이미 규정됐다’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대상이 인류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려 한 정신의 스승들이었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자신의 주변에도 빛을 주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인간의 앞길을 비춰 줄 수 있다는 말인가”라는 생각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스스로 인류의 행복을 증대시킬 통찰력을 지녔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세탁부 테레즈를 유혹해 결혼식을 치른 뒤 줄곧 아내를 ‘천하고 무식한 계집종’이라며 멸시했다. 테레즈와의 사이에 아이 다섯 명을 낳았지만 모두 고아원에 ‘내다버렸고’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당시 고아원에 들어가 성년까지 살아남는 비율은 5%에 불과했다. 불로소득자에게 잔인할 정도로 증오심을 보였던 마르크스는 생애 마지막 15년을 연금을 비롯한 불로소득으로 살아갔다. 군주제를 혐오한 입센은 군주국들이 주는 훈장들에 ‘수집하듯’ 집착을 나타냈다. 톨스토이는 청년기부터 세상의 도덕적 사부가 되고 싶었지만 매춘부를 찾아다니고 소작농 여인들을 유혹하는 데 골몰했다. 이런 식으로 사르트르와 촘스키에 이르는 ‘정신의 거인’들이 이 책에서 자신의 ‘벽장 속 해골’들이 꺼내지는 수모를 겪는다. 이 책의 원서 ‘Intellectuals’는 1988년 처음 출간돼 지식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영국의 대표적 우파 논객인 저자는 마거릿 대처 총리의 고문 겸 연설문 작성가로 활동했다. ‘성직자의 역할을 대체한 지식인들’의 역사적 과업에 눈을 흘기고, 마르크스주의를 ‘태생부터 과학과 거리가 멀다’고 질타하는 데 그의 정신적 배경이 읽힌다. 한국 사회는 좌우를 떠나 유난히 지식인과 학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올해 대대적인 검증의 계절도 예고돼 있다. 많은 정치인과 정치 지망생들이 ‘한때의 실수’에 대해 사죄의 눈물을 흘린 뒤 접근해 올 것이다. 그 전에 한 번 이 책을 펼쳐볼 만하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으로 공연이 중단되고 방청객 없이 생방송을 진행하는 등 문화계로 여파가 확산되고 있다.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2월 6, 7일 열릴 예정이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이 취소됐다. 이번 공연은 서울에서 시작해 대만 타이베이, 홍콩, 중국 상하이에서 각각 2회씩 모두 8회의 공연이 예정돼 있었다. 이에 앞서 경기 부천시는 1월 31일 부천시민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부천시립합창단 정기연주회를 취소했다. 지난해 12월 17일 시작한 뮤지컬 ‘위윌락유’도 예매 취소율이 높아지자 공연이 잠정 중단됐다. 1월 31일 홍콩문화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던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취소됨에 따라 3월 10∼13일 대전, 서울, 강원 춘천, 광주에서 열릴 이 악단의 내한 연주회 취소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공연기획사 프레스토 아트는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한 폐렴의 영향이 적은 한국과 일본에서 공연하기 때문에 일정대로 진행한다고 홍콩필 측이 밝혔다”고 전했다. 1월 31일 KBS 2TV ‘뮤직뱅크’는 생방송 무대를 방청객 없이 진행했고 MBC ‘쇼! 음악중심’(1일), SBS ‘인기가요’(2일)도 방청객 없이 진행하기로 했다. KBS는 ‘열린음악회’와 ‘불후의 명곡’ ‘유희열의 스케치북’ ‘가요무대’ ‘개그콘서트’도 방청객 없이 제작한다고 밝혔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정성택 기자}

동아일보사와 서울시가 공동 주최하는 ‘LG와 함께하는 제16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피아노 부문)’ 1차 예선 경연에 참가할 8개국 57명이 가려졌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에서 28, 30일 열린 참가자 제출 영상 예비심사에는 박숙련 순천대 교수, 유영욱 연세대 교수, 윤철희 국민대 교수, 임종필 전 한양대 교수, 장형준 서울대 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 심사위원들은 12개국 138명의 지원자가 제출한 연주 영상을 보며 예선 출전 가능 여부를 ○×로 표시하는 방식으로 채점한 뒤 합산해 예비심사 합격자를 정했다. 합격자 57명의 국적은 한국이 37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국 6명, 미국 5명, 대만 3명, 러시아 일본 각 2명, 캐나다 폴란드 각 1명이다. 심사위원들은 “국내외 참가자 모두 기량이 예년보다 향상되었으며 당장 무대에 올라도 강렬한 인상을 남길 참가자가 여럿 눈에 띄었다”고 입을 모았다. 예비심사 합격자들은 3월 17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1차 예선에 참가한다. 예비심사 결과는 31일 콩쿠르 홈페이지에 공지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오스모 벤스케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사진)의 첫 시즌을 시작하는 주제어는 ‘부활’이다. 서울시향 최고의 시대를 재구축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핀란드가 낳은 지휘계 큰 별 중 한 사람인 벤스케가 올해 6차례 지휘할 정기공연의 첫 순서로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을 선택했다. 2월 14, 15일 롯데콘서트홀. 말러가 34세 때 쓴 교향곡 ‘부활’은 연주 시간 1시간 20분이 넘고 4관 편성의 큰 악단 규모와 합창단,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 솔리스트까지 등장하는 5개 악장의 대곡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 이후 처음으로 성악이 대대적으로 등장하는 야심작이기도 하다. 지휘자 한스 폰 뷜로의 장례식에서 합창으로 들은 고틀리프 클롭슈토크의 시 ‘부활’을 5악장 피날레의 가사로 삼아 인간이 죽음 후에 신의 사랑 속에서 부활한다는 확신을 표현했다. 벤스케는 자신이 음악감독으로 있는 미국 미네소타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지난해 2월 이 교향곡을 스웨덴 BIS 레이블의 음반으로 내놓은 바 있다. 이 음반에 대해 클래식 전문 리뷰 웹사이트 ‘클래시컬 리뷰’는 ‘악보를 면밀히 연구해 멋진 효과를 낳았으며, 다양한 색깔이 소리의 캔버스에 펼쳐진다’고 평가했다. 이번 연주에는 영국 메조소프라노 카트리오나 모리슨과 호주 소프라노 시오반 스태그가 솔로를 맡는다. 벤스케 음악감독은 서울시향 음악감독 첫 시즌인 올해 6개 프로그램으로 콘서트 10회를 지휘한다. 그가 지휘하는 다음 콘서트는 5월 21, 2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르 칸토로프 협연으로 열린다. 드물게 연주되는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2번과 루토스와프스키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등을 선보인다. 벤스케의 장기곡인 시벨리우스 교향곡은 8월 20, 21일 연주한다. 시벨리우스가 50회 생일 기념으로 위촉받은 기념비적 작품인 교향곡 5번이다. 서울시향 2020 ‘올해의 음악가’인 트럼페터 호칸 하르덴베리에르가 코플랜드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르’ 등에서 솔로를 맡는다. 2월 14, 15일 콘서트 1만∼9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