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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미국에서는 50년 전 개발된 약의 가격이 5000% 급등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스위스 제약회사 튜링이 기생충 감염병 톡소플라스마증 치료제로 쓰이는 다라프림의 미국 판권을 인수한 뒤 1알에 13.50달러(약 1만5200원)인 약값을 750달러(약 84만5200원)로 급격하게 올렸기 때문이었다. 이 약이 꼭 필요한 희귀병 환자들은 터무니없이 오른 약값 때문에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여론은 분노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건 보험약제관리회사인 익스프레스스크립츠와 2012년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창업한 조제약(약국에서 주문 조제하는 의약품) 회사인 임프리미스. 두 회사는 1달러짜리 대체 조제약 개발에 착수했다. 저가 대체약이 등장하자 튜링은 뒤늦게 ‘50% 가격 인하’ 등을 약속했다. 이 일을 계기로 저가 조제약이 ‘골리앗 제약사’의 횡포에 맞서는 ‘대항마’로 떠올랐다.○ 빈자(貧者)를 위한 ‘로빈후드 조제약’ 공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뇌종양과 호지킨림프종 치료약인 로무스틴 등 319개 약품은 특허 만료 이후에도 복제약이 생산되지 않고 있다. 제조시설 승인 등 시장 진입 비용이 만만치 않아 제약사들이 ‘돈이 되는 약’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미국 복제약의 40%가 독점 생산이다. 독과점이나 공급 부족으로 약값이 껑충 뛰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넥스트소스 바이오테크놀로지가 독점 판매하는 로무스틴의 경우 2013년 이후 가격이 1400% 올랐다. 50달러이던 약값이 9번 올라 768달러까지 상승한 것이다. 조제약이 이 틈새를 비집고 급성장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약품이 부족하거나 알레르기 치료 등의 의료적 필요성이 있는 경우 성분을 조정하는 조제약 생산을 허용하고 있다. 특허가 끝난 신약과 같은 성분의 약을 대량생산하는 복제약인 ‘제네릭’과는 이점에서 다르다.○ 대량생산 시스템 갖추고 약값 인하 주도 조제약은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하기 위한 임상시험 등 FDA 승인을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전통 제약회사들보다 생산비가 저렴하다. 최근엔 조제약 대량생산도 늘고 있다. 미국엔 대량생산이 가능한 70곳의 조제약 생산시설이 있다. 뉴욕주 버펄로의 조제약 회사인 애시넥스는 지난달 836달러짜리 엔도인터내셔널의 혈압약 바소스트릭트보다 35% 싼 대체 조제약 바소프레신을 내놨다. 켄터키대 소속 병원인 UK헬스케어가 지난달 첫 구매계약을 했다. 이 병원은 연간 35만 달러가 절감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벤처기업들도 조제약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콜로라도 리틀턴에서 창업한 오시스 어포더블 파마슈티컬스는 한 달에 2만1000달러가 드는 윌슨병 치료제 사이프린의 약값을 120달러로 낮출 수 있는 대체 조제약을 생산할 계획이다. ○ “안전성과 효능 검증 안 돼” 논란도 조제약 생산이 늘어나자 보건당국의 고민도 깊어졌다. 규제 완화로 의약품 가격을 떨어뜨려 환자의 접근권을 강화하는 것과 동시에 신약 특허에 대한 법적 보호와 의약품 안전성, 신약 승인 체계 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2년 매사추세츠주에서 조제약이 병원균에 감염돼 최소 64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전통 제약회사들은 법적 대응에 나섰다. 앨러건은 안구 건조증 치료약품인 레스타시스의 대체약을 조제하고 있는 임프리미스를 상대로 소송을 내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혈압약 바소스트릭트를 판매하고 있는 엔도인터내셔널은 “대량조제에 이용될 수 있는 성분을 삭제해 달라”며 FDA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FDA는 지난달 조제약 대량생산에 이용되는 의약품 성분 목록에서 바소프레신 등을 삭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FDA는 60일간의 청문 절차를 거쳐 최종 결론을 내릴 계획이다. :: 미국의 약값 급등 사례 ::△다라프림: 에이즈 환자, 임신부 등 면역체 계가 약화된 사람들의 톡소포자충 감염(톡 소플라스마증) 치료제. 2015년 말 튜링이 미국 판권 인수한 뒤 가격이 5000% 상승△로무스틴: 뇌종양, 호지킨림프종 치료제. 넥스트소스 바이오테크놀로지 독점 판매 이후 가격이 1400% 상승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지난달 17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 핫도그 회사 ‘네이선스페이머스’의 하워드 로버 회장의 자택. 로버 회장의 30년 지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행정부 각료, 공화당의 내로라하는 부자 후원자 등 60여 명이 모였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정원 앞마당 텐트에서 치킨 샐러드를 먹으며 자신이 임명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 대해 “‘저금리(Cheap money) 연준 의장’이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금리를 올리고 있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 달 전에도 “금리를 올리는 게 달갑지 않다”며 연준을 압박했다. 경제학자들은 세금을 거둔 곳간 열쇠를 쥔 정부와 금리 결정권을 가진 중앙은행의 관계를 술 좋아하는 주인과 충직한 하인에 비유한다. 주인은 정신이 말짱할 때 술 창고 열쇠를 하인에게 건네며 “내가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하게 창고를 단단히 지키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선거철 정치인처럼 만취하면 “술을 더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며 딴사람이 된다. 그래서 술 취한 주인을 막아서려면 충직한 하인에게 독립성을 보장해줘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와 2020년 재선에서 성공하기 위해 경제 성장의 군불을 계속 때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연준이 눈치 없이 ‘충직한 하인’을 자처하며 금리를 착착 올리며 돈줄을 죄니 밉상도 이런 밉상이 없다. 일각에선 경제가 침체될 때 술 창고를 열지 않은 책임을 연준에 돌리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있다. 13일 한국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부동산 문제와 함께 한국은행이 도마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금리가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의 딜레마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금리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할 때가 됐다”고 답했다. 세금 곳간을 풀어 경기 살리기에 매달린 건 이명박, 박근혜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다를 바가 없다. 선거 전엔 잠잠하다가 이제 와서 “창고 문을 왜 따줬느냐”고 하인 탓을 하는 건 술 깨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는 의심을 받기 딱 좋다. 부동산 거품이 부풀어 오르는 걸 보면서도 한은이 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진 건 경기가 살아나지 않아서다. 금리를 급하게 올리면 천문학적인 가계부채 부실과 서민의 금리 부담이 커질 텐데, 그 대책이나 마련해놓고 한은을 몰아세우는지도 걱정스럽다. 정부가 투기 대책을 쏟아내도 부동산 시장이 펄펄 끓는 건 다른 곳이 아프다는 신호다. 시중에 풀린 1100조 원의 부동자금이 다른 자산시장이나 생산적인 투자처로 흐르지 않고 왜 부동산 시장의 ‘똘똘한 한 채’로 직행하는지부터 탐구해야 한다.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에서 7번가를 따라 두세 블록을 올라가면 10년 전인 2008년 9월 15일 세계를 뒤흔든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나온다. 158년 역사를 가진, 당시 미국 4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본사가 있던 곳이다.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지는 날을 목격한 로런스 맥도널드 전 리먼브러더스 부사장은 저서 ‘상식의 실패’에서 “1주일에 두세 번 그곳을 지나가게 된다. 월스트리트가 있는 남쪽만 쳐다보며 걸어가려고 노력하지만 발길은 늘 그곳에서 멈추고 만다”고 적었다. 그는 2005년 부동산 호황기 이후 금융위기를 촉발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의 위험성에 대한 ‘충직한 하인들의 경고’가 9번이나 있었지만, 당시 경영진이 이를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세계를 뒤흔든 금융위기의 시작은 충직한 하인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상식의 실패’에서 비롯됐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미국이 북한의 새로운 돈줄인 정보기술(IT) 회사를 정조준해 독자 제재의 철퇴를 내렸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13일(현지 시간) 중국 지린성 IT 회사 ‘차이나실버스타’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차이나실버스타의 페이퍼컴퍼니 ‘볼라시스실버스타’, 차이나실버스타의 최고경영자(CEO)인 북한인 정성화(48)를 독자 제재 대상으로 추가 지정했다고 밝혔다. 제재에 따라 정성화와 두 회사의 미국 내 자산은 동결되고 미국인들은 이들과 사업할 수 없게 됐다. 재무부는 법무부가 6일 ‘소니픽처스 해킹 사건’의 용의자인 북한 해커 박진혁을 기소한 지 1주일 만에 북한의 돈줄인 IT 회사를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차이나실버스타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을 관리하는 조선노동당 군수공업부와 북한의 무기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조선구룡강무역회사와 관련이 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이번 제재에 대해 “북한으로 들어가는 불법 수익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며 “세계 IT업계와 기업, 개인에게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다시 경고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 이행을 위해 대북 제재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미국은 북-중 접경지대와 해상에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위반 행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며 대북 제재의 고삐도 바짝 당기고 있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마셜 빌링슬리 재무부 테러자금 금융범죄 담당 차관보는 13일 미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북-중 국경에서 이뤄지는 교역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으며 우려하고 있다”면서 “중국해에서 이뤄지는 선박 간 환적이 크게 우려할 부분”이라고 말했다.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미국 정부가 넉 달째 끌어오던 김성 신임 유엔 주재 북한대사(사진)에 대한 비자를 최근 발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는 한 달 넘게 이어지던 ‘대사 공백’을 해결하고 대사급 4명이 포진한 진용으로 18일(현지 시간) 개막하는 제73차 유엔 총회를 치르게 됐다. 11일 복수의 유엔 소식통은 “미국 국무부가 최근 비자를 발급해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가 유엔 총회 이전에 부임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는 전임 자성남 대사가 7월 25일 귀임한 뒤 현재 대사 자리가 공석으로 남아 있다. 김인룡 차석대사가 대리 대사로 일하고 있다. 미국의 비자 발급은 지난달 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취소 이후 북-미 관계의 진전을 보여주는 신호로 분석된다. 지난달 말 일본 교도통신은 “북한이 5월 말 중국 주재 미국대사관에 유엔 주재 대사로 김성이라는 인물의 미국 비자를 신청했지만 발급받지 못했다”며 “북-미 간 비핵화 교섭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어 미국이 북한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폼페이오 장관의 재방북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우리는 곧 비행기에 올라탈 계획도, 준비도 없다”고 말했다.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중국과 무역전쟁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이 이번엔 디트로이트의 자동차회사인 포드를 겨냥해 ‘미국 생산’을 압박했다. 전날 실리콘밸리 정보기술(IT) 회사인 애플에 대중 관세폭탄을 피하려면 “미국에 새 공장을 지어라”고 훈수를 둔 데 이어 이틀째 무역전쟁에 불만을 품고 있는 자국 기업 단속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 시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CNBC에 따르면 포드가 미국의 관세 인상 전망 때문에 중국에서 만든 소형차를 미국에서 판매하려던 계획을 갑자기 폐기했다”며 “이제 그 차는 미국에서 생산될 수 있다. 포드는 관세를 내지 않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포드는 지난달 31일 중국 현지 생산 소형차인 ‘포커스(Focus)’를 내년부터 미국에 들여와 판매하려던 계획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대한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 현지 생산 소형차의 수입 판매 계획을 철회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결정을 거론하며 ‘미국에서 차를 생산하면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며 포드를 압박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엔 중국산 제품 관세 부과로 가격 인상을 우려하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대표 IT 기업인 애플을 공격했다. 그는 “우리가 중국에 부과할 수 있는 엄청난 관세 때문에 애플 판매 가격이 상승할 수 있지만 무관세의 쉬운 해결책과 세금 우대가 있다. 지금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라”라고 트윗을 날렸다. 애플이 7일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산 제품 관세 부과에 대한 우려를 담은 서한을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전달한 것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자국의 대표 기업인 애플과 포드를 압박하며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중국산 상품 2000억 달러어치에 대한 추가 관세폭탄 부과를 앞두고 자국 기업을 압박해 전열을 정비하는 한편 공장 이전이라는 전리품까지 챙기려는 계산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포드를 압박하며 “미국이 중국에 자동차를 판매할 때 25%의 세금이 붙는데 중국이 미국에 자동차를 팔 때 세금은 2%”라며 또다시 중국 때리기에 나섰다. 포드는 이날 성명을 내고 “판매량이 5만 대 미만인 ‘포커스 액티브’를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은 수익성이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생산’ 트윗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미국에서 생산된 부품과 미국 근로자를 가장 많이 고용하는 회사”라고 트럼프 대통령의 공장 이전 압박에 항변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8일 오후 7시경(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패션 1번지인 소호(SOHO) 그린스트리트.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 매장 맞은편에 뉴욕에서 활동하는 패션디자이너, 모델, 바이어 등 300여 명이 모여들었다. 이날 한국 패션(K패션) 브랜드를 상설 전시하는 쇼룸 ‘더셀렉츠(The Selects)’가 이곳에 처음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레드벨벳입니다.” 이날 개관식은 더셀렉츠의 협업 파트너로 선정된 K팝 그룹 레드벨벳의 음악과 동영상으로 시작했다. 영상이 끝나자 매장 구석의 커튼이 순식간에 젖혀졌다. 한국 디자이너들의 옷을 입고 마네킹처럼 꼼짝하지 않고 전시 공간에 서 있던 모델들이 빠른 비트의 음악과 함께 일제히 걸어 나오자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실내에선 ‘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날 매장 한쪽 벽면에선 라이(LIE), 카이(KYE), 더센토르, 분더캄머, 허환 시뮬레이션, 히든 포레스트 마켓, 노앙(Nohant), 비욘드 클로젯, 비뮈에트, 소윙 바운더리스(SWBD) 등 10개 K패션 브랜드 옷을 선보였다. 라이의 이청청 디자이너는 “외국 디자이너가 뉴욕에서 바이어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며 “뉴욕의 패션 1번지 소호에 상설 전용 쇼룸이 생긴 것은 세계 시장 진출을 노리는 한국 디자이너들에게 큰 기회”라고 말했다. 더셀렉츠는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밀라노와 함께 세계 4대 패션위크로 꼽히는 뉴욕 패션위크 기간(6∼14일)에 문을 열어 뉴욕 패션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이날 개관식에 참석한 멘디 에릭슨 뉴욕 쇼룸7 대표는 “미국 소비자들은 창의적인 신진 패션에 목말라 있다”며 “한국 디자이너들은 매우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며 실용적이어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더셀렉츠는 앞으로 K패션 외에도 K팝, K뷰티, K푸드 등 한국의 창의산업(Creative industry)을 대표하는 복합 쇼케이스 거점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날 매장 입구엔 한국산 화장품(K뷰티)도 전시됐다. 정경미 한국콘텐츠진흥원 대중문화본부장은 “K팝을 비롯해 K뷰티, K푸드 등과의 콘텐츠 융합을 통해 한류를 전파하는 발판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패션디자이너들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뉴욕 패션위크 공식 행사로 선정된 한국 패션 디자이너 세계 진출 프로젝트인 ‘콘셉트 코리아’ 행사에선 한국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이세(IISE)’가 뉴욕 무대에 데뷔했다. 뉴저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인 2세 김인태(31) 인규(30) 형제는 2013년 한국을 방문한 뒤 전통건축과 문화에서 영감을 얻어 서울에서 이세를 창업했다. 미국에서 성장한 한인 2세가 K패션 브랜드로 뉴욕 패션시장에 ‘역진출’한 셈이다. 인규 씨는 “촛불집회 기간 서울 도심에서 매일 목격한 시위대와 전투경찰의 모습이 사회와 공동체의 진보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생각했다”며 “올해 한국 경찰 유니폼 등에서 영감을 얻은 스트리트 패션을 뉴욕에 소개했다”고 말했다. JFK 국제공항 면세점에 진출한 뉴욕의 한국계 패션 디자이너 유나 양 등도 자체 패션쇼를 열고 실력을 선보였다. 한국 패션 브랜드 구호는 맨해튼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0년 말 비핵화 완성 시간표’를 내놓은 가운데 미국의 ‘동시 행동’을 조건으로 김 위원장이 밝힌 ‘보다 적극적인 비핵화 조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청와대는 대북특별사절단 방북 결과를 미중일에 설명하면서 보폭을 넓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각각 중국과 일본에 특사로 파견해 이번 대북특사단의 방북 결과를 설명하도록 지시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춘추관 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정 실장은 8일 중국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과 면담할 예정이며 서 원장은 10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예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미국 특사 방문 일정은 아직 조율 중이다. 청와대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과의 일정을 잡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면담이 무산된 중국에는 특사를 파견하기로 한 만큼 미국이 김정은의 비공개 메시지에 대한 입장을 아직 정하지 못했기 때문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정 실장은 6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통화하고 김정은이 전달을 요청한 비공개 메시지를 전했다. 정 실장은 9일 볼턴 보좌관과 다시 통화해 김정은의 메시지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전달받을 예정이다. 김 대변인은 “북한의 메시지를 전달했으니 트럼프 대통령과 정책결정권을 가진 분들이 진지하게 숙의해 뭔가 조처가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의구심을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보다 적극적인 비핵화 조치’를 언급하면서 확실한 의지를 보였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다 적극적인 조치’는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핵시설 신고 이상의 조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2020년 말까지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밝힌 상황. 2년 남짓한 시일 안에 핵시설 신고와 폐기는 물론이고 검증 절차를 모두 완료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신속한 비핵화를 위해 핵무기 반출과 특별사찰 등 검증을 강조해 왔던 만큼 김정은이 미국의 요구를 일부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하려 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이날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공동합의문에 ‘첫 임기 내 비핵화’를 간절히 넣고 싶어 했다”며 “김정은이 밝힌 첫 임기 내 비핵화는 트럼프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미 법무부는 6일(현지 시간) 북한 정찰총국과 관련된 북한 해커 박진혁(34)을 컴퓨터 및 텔레뱅킹 금융사기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북한 정부가 지원한 사이버 범죄와 관련해 해커를 기소한 것은 처음이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평양 김책공대를 졸업한 박진혁은 북한의 해킹조직으로 알려진 ‘라자루스’그룹 소속이자 ‘조선엑스포 합작회사’ 소속으로 10년 넘게 일했다. 특히 2014년 김정은 국무위원장 암살을 다룬 영화 ‘인터뷰’ 제작사인 소니픽처스 해킹, 2016년 8100만 달러를 빼내 간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해킹 등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미 법무부의 북한 해커 기소 발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감사 트윗을 적은 지 몇 시간 뒤에 나왔다. 이에 대해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이행할 때까지 대북제재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한국 대북 특사의 방북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표적 ‘대북 매파’인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대사가 4일(현지 시간) “대북제재가 계속 유지될 것”이라며 북한을 압박했다. 헤일리 대사는 이날 유엔본부에서 안전보장이사회 9월 의장 자격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가 서로 악수를 하고 미소를 보였다고 해서 국제사회가 탄도미사일 개발을 용인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알렸다”고 밝혔다. 이어 “안보리 이사국들은 오늘 조찬 모임에서 이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견지하는 걸 확실히 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헤일리 대사는 “불행히도 제재가 북한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말과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9월 한 달간 안보리 순회 의장국을 맡는다. 헤일리 대사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패널 보고서의 공개를 반대한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해 “러시아와 중국이 규정을 지키지 않고 국제사회를 거스르고 있다. 계속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같은 날 미 상무부는 북한에 미국산 방탄차량을 들여보낸 중국 기업과 홍콩 기업 한 곳씩과 중국인 한 명을 수출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2016년 3월 공개된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의 전문가 패널 보고서는 2015년 10월 북한 열병식에 등장한 벤츠 차량이 유럽에서 만들어져 미국에서 방탄장치를 탑재한 뒤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갔다고 밝혔다. 수출 제재 명단에 오른 기업과 개인들은 미국과 수출입 거래를 할 수 없게 된다.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 주성하 기자}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는 6일 인촌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32회를 맞은 올해 인촌상은 교육, 언론·문화, 인문·사회, 과학·기술 4개 부문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4명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심사는 부문별로 권위 있는 외부 전문가가 4명씩 참여해 7월 초부터 8월 말까지 진행했다. 수상자들의 소감과 공적을 소개한다.》 ▼ 절망 딛고 교육현장 폭력추방 앞장… “버팀목 되어준 시민들 덕분에 가능” ▼[교육] 김종기 푸른나무 청예단 설립자“상 받으려고 일한 건 아닌데….” 김종기 ‘푸른나무 청예단(청소년폭력예방재단)’ 설립자 겸 명예이사장(71)은 수상 소감을 말하다 잠시 말을 멈췄다. 세상을 먼저 떠난 외아들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회사에서 촉망받던 직장인이었다. 해외 출장 중이던 1995년 6월 어느 날, 고등학교 1학년이던 아들 대현 군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를 접했다. 학교는 쉬쉬했고, 가해 학생 부모들은 제 자식을 챙기는 데 급급했다. “세상도, 신도 원망스러워 한국을 떠나려고 했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회의감과 자괴감이 밀려왔습니다.” 절망에서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아들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아들을 지키지 못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사회에 알리기 위해 언론 인터뷰를 자청했다. 더 나아가 학교폭력으로 자녀를 잃는 부모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체계적인 학교폭력 예방 활동을 구상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자비로 서울 마포구에 조그만 오피스텔을 빌렸다. 청예단의 시작이었다. 그는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빠듯한 운영비로 매달 직원 월급을 걱정해야 했다. 무엇보다 정부의 냉대와 무관심이 그를 힘들게 했다. 교육부 공무원들은 그가 찾아가면 피하기에 급급했다. “학교폭력이라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 때였습니다.” 이때 버팀목이 되어준 게 시민들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후원금이 모였다.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서명 운동에 시민 47만 명이 동참했다. 그 결실로 2004년 법이 제정됐다. “모든 게 선한 시민들 덕분이었습니다. 정부와 기업이 하지 못한 걸 시민사회의 힘으로 이룬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원이 5명이던 청예단은 지금 전국 14개 지부에서 직원 약 330명이 일하고 있다. 연간 학교폭력 관련 상담 건수가 6만 건이 넘는다. 아들의 이름을 딴 ‘대현장학회’를 만들어 학교폭력 피해자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있다. 그는 4년 전 명예 이사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쉬지 않고 학교폭력 예방 강연과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우리 사회의 극심한 갈등이 학교에서 나타나는 게 학교폭력이며, 이걸 줄이는 게 우리 기성세대의 책임”이라면서 “청예단이 설립정신 그대로 100년 이상 가는 게 제 꿈”이라며 입가에 시원한 팔자주름을 지으며 웃었다. 청예단 사무실에 걸린 사진 속 아들 대현 군과 꼭 닮은 웃음이었다. ● 공적삼성전자와 신원그룹에서 20년간 근무했다. 1995년 학교폭력으로 외아들을 잃고 난 뒤 직장을 그만두고 학교폭력 예방 활동에 뛰어들었다. 자비로 ‘푸른나무 청예단(청소년폭력예방재단)’을 설립하고, 국내 최초로 학교폭력 문제를 공론화했다. 특히 학교폭력을 일부 ‘문제아’의 일탈 행동으로 치부하던 정부의 인식을 바꾸는 데 앞장섰다. 청예단은 연간 6만여 건의 학교폭력 상담과 학교폭력 피해 학생을 위한 장학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유엔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 지위를 인증 받아 유엔 이사회 등 공식 모임에 참가하고 있다. ▼ 인간 내면 파고든 연출로 깊은 울림 “뜻밖의 큰상 놀라워… 부담감 크다” ▼[언론·문화] 한태숙 연극연출가“인촌상은 연극 분야와는 상관이 없는 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되다니 무척 놀랍습니다. 부담감으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한태숙 연출가(68)는 인간을 집요하게 파헤친 묵직한 연극을 통해 섬세하고 독창적인 연출 세계를 구현한 연출가로 꼽힌다. 40년 동안 연극 ‘레이디 맥베스’ ‘오이디푸스’ ‘서안화차’ ‘단테의 신곡’ 등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을 선보였다. 인간 내면의 흐름을 심도 있게 표현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한 연출가는 “심연의 바닥까지 내려가 봐야 비로소 ‘우리가 누구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이런 믿음은 작품을 선택할 때 적용하는 그만의 철칙이자 기준이다. 인간이 가진 깊은 불안과 그로테스크한 부분들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가 그의 작품에 담겨 있다. 그는 “자칫 고지식할 수 있는 이런 자세를 연극과 무대가 허락해 준다”며 “비록 참혹하게 무대에서 깨질지언정 그 지점까지 가는 것이 연극이 주는 힘이라는 것에 관객들도 공감을 해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한 연출가는 차분하면서도 강단 있는 카리스마로 배우들에게 엄청난 연습을 요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연극은 시간과 함께 지나가는 ‘현재의 예술’인 만큼 그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사적인 사투가 불가피하다는 신념 때문이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는 1998년 초연한 ‘레이디 맥베스’를 꼽았다. 그는 “오브제를 부각시키기도 하고 창극으로도 해봤지만 다른 실험도 가능했을 것 같다”며 “무대에 올린 지 20년이 됐으니 다시 해본다면 음악이나 미술적인 실험을 통해 더 일을 저지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게 된다”고 말했다. 2003년 초연한 연극 ‘서안화차’는 제40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출상을 비롯해 9개 연극상을 휩쓴 수작으로, ‘레이디 맥베스’와 함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한 연출가는 ‘레이디 맥베스’를 비롯해 창극 ‘장화홍련’ 등 여성 중심 서사에 강점을 보여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사회적으로 약자인 여성이 작품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강한 여성으로 새롭게 창조되는 것에서 가치를 느낀다”며 “특히 요즘은 연극계 여장사들의 존재감을 실감하고 있어 흐뭇하다”고 말했다. 한 연출가는 “연극은 언제나 시대정신이 중요하다”며 “큰 이야기를 하려는 연극인들의 투지가 문화 정책이나 환경의 사소한 불편 때문에 소모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 공적1976년 연극 ‘더치맨’으로 연출가로 데뷔한 뒤 1999년부터 극단 ‘물리’를 창단해 대표를 맡고 있다. ‘오이디푸스’ ‘리처드 3세’ ‘세일즈맨의 죽음’ ‘단테의 신곡’ 등 독창적이면서도 섬세한 연출로 인간 심연을 파헤친 무게감 있는 작품들을 주로 발표해 왔다. 철학적이고 사회성 짙은 문제를 다루면서도 극의 긴장과 묘미를 놓치지 않는 연출로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두루 사랑 받는 작품을 배출해냈다. 특히 연극 ‘레이디 맥베스’와 아동극 ‘엄마 이야기’,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를 다룬 연극 ‘하나코’ 등 여성 중심의 다양한 서사를 다룸으로써 양성평등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는 데 기여해 왔다는 평을 받았다. 동아연극상 연출상, 대한민국 연극대상 연출상, 한국여성연극인상 연출상, 이해랑연극상,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등을 받았다. ▼ 한국 근현대 정치사 연구 초석 마련… “사실 먼저 규명하는 게 학자의 자세” ▼[인문·사회] 이정식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이정식 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정치학과 교수(87)가 쓴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한국어판이 1970년대 서울에서 번역 출판됐을 때 한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근무하던 동명이인 교수는 이 책의 저자로 오인돼 경찰 조사까지 받았다. 이 교수는 “차이콥스키의 음악조차 러시아 작곡가라는 이유로 다방에서 틀지 못하게 했다는 말이 나오던 시대였다”며 “혼돈의 한국 정치사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 교수는 20세기 격변기에 청소년기를 중국에서 보내며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국공내전을 겪었다. 해방 후 돌아온 조국에선 6·25전쟁의 참화를 목격했다. 한국과 동아시아의 혼돈기를 직접 경험한 그는 엄격한 사실과 구체적인 증거에 입각해 서재필 이승만 김구 김규식 여운형 박정희 등 한국 근현대사 핵심 정치 지도자들의 자취를 추적하고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현대 정치사와 정치 인물 연구의 주춧돌을 놨다. 그는 “혼돈이 정리되면 시스템이 움직이지만 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지도자들의 역할이 각별히 크다”며 “해방 후 혼란기에 지도자들의 한마디, 행동 하나가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인촌 김성수 선생의 이름으로 주는 상이어서 영광입니다. 한국의 근대화와 독립운동 등 여러 면에서 인촌의 숨은 공로가 많습니다만 특히 중앙학교와 보성전문학교를 세워 한국 근대화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한국 근현대 정치 인물 연구의 대가인 그는 “훌륭한 스승 없이는 인재도, 나라의 미래도 없다”며 “인촌이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학교부터 세운 건 아주 대단한 일이었다”고 인촌상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 교수는 “중국 만주에서 15세에 부친을 잃고 소년 가장이 돼 하루 12시간씩 공장에서 일했고 평양에서는 19세까지 쌀장사를 했다”며 “내 삶이 여기까지 온 것은 기적”이라고 말했다. 동아시아 연구의 석학인 로버트 스칼라피노 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교수와의 인연을 거론하며 “훌륭한 스승을 만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UC버클리에서 스칼라피노 교수의 연구 조교로 들어가 12년간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를 함께 저술했다. 이 교수는 “독립운동, 해방 후 남북 관계 등 한국 현대사는 조금 깊이 들어가면 자료가 많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후학들에게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없는 자료를 갖고 무슨 이론, 추론을 앞세우면 사실 수집이나 해석이 왜곡되기 십상”이라며 “역사의 진실을 추적하는 탐정처럼 사실을 규명하는 걸 우선하고 다음에 해설을 하는 것이 학문하는 자세”라고 말했다. ● 공적 6·25전쟁 중인 1951년 부산에서 미군의 중국어 통역으로 일하며 신흥대(경희대의 전신)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 버클리)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한국과 동아시아 근현대 정치사 연구에 매진했다. 동아시아 연구의 석학인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와 함께 일제강점기 민족해방운동과 북한 체제를 분석한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로 아시아계 학자 최초로 미 정치학회가 그해 최고 저작물에 주는 ‘우드로 윌슨’상을 탔다. ▼ 반도체 외길… 연구년에도 후학 지도 “인재 양성 사명감에 준 상이라 믿어” ▼[과학·기술] 황철성 서울대 교수“황 교수, 한 우물 파는 건 좋은데 전체의 5% 정도는 반도체 말고 다른 유행 분야를 해보는 건 어때? 그래야 남들처럼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학술지에도 이름을 올리지.”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54)는 몇 해 전 총장으로부터 이런 권유를 받았다. 우직하게 반도체, 그것도 가장 ‘정통’이라고 할 수 있는 메모리와 로직(논리회로) 반도체 연구만 30년째 고수하고 있는 황 교수를 안타깝게 여긴 선배의 조언이었다. 반도체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대표적 분야지만, 기업들이 첨단 연구와 제품화까지 온갖 과정을 좌지우지한다. 대학에서 제자 수십 명을 데리고 연구하며 두각을 나타내기엔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황 교수는 그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메모리 반도체만 해도 해야 할 연구가 너무 많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지금도 뉴로모픽(신경모방) 등 새로운 반도체 소자와 함께, 제가 초창기부터 해오던 D램 연구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D램에 아직도 연구할 게 남았냐는 질문에 그는 “모르는 소리”라며 “선폭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등 해야 할 일이 넘쳐난다”고 답했다. 황 교수는 “우물을 파면 아래에 지하수가 보이고, 더 파면 지하수가 거대한 강을 이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며 “반도체도 이와 닮아서, 어렵더라도 누군가는 우직하게 계속 파내려가야 더 큰 세상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악에 받쳐 연구하고 있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대한민국 수출의 약 20%를 담당하는 반도체 분야 석학의 말로는 의외였다. 하지만 가장 밝은 곳에 가장 깊은 그늘도 있다는 말처럼, 적어도 지금 학계에서는 최신 유행하는 분야에 비해 반도체가 주목을 덜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많이 발전한 분야들이 그렇듯, 새로운 연구를 하기가 만만치 않다. 연구를 해도 소위 ‘티’가 덜 난다 황 교수는 이렇게 까다로운 반도체 판에서 무려 545편의 논문을 써 왔다. 11명의 제자 교수 등 후학도 많이 길렀다. 올해가 연구년인데도 국내에 머무르며 일주일에 이틀은 삼성종합기술원에 나가 강의하고, 나머지 시간은 55명의 대학원생을 지도한다. 학계와 산업의 괴리가 커져 ‘전자산업의 쌀’ 반도체의 대가 끊길까 염려돼서다. 그는 “반도체가 멈추면 자동차, 미사일 모두 멈춘다”며 “지금 기업들이 잘해주고 있지만, 대학에서 뒷받침할 인력을 키우지 못하면 반도체의 미래는 불투명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인촌상은 나의 이런 사명감에 준 상으로 믿는다”며 “더욱 우직하게 반도체라는 한 우물을 깊게 파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 공적서울대에서 학사와 석사, 박사를 모두 마친 보기 드문 ‘토종’ 공학자다. 1994년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1998년부터 서울대 재료공학부에서 강의와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산업을 견인한 D램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소재와 함께, 새로운 메모리 소자인 저항 스위칭 메모리의 작동 원리를 연구해 미래 메모리 소자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2014년 영국왕립학회 펠로로 선정됐고 2014∼2015년에는 대한민국 반도체 연구의 산실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을 지냈다. 2004년 제7회 젊은과학자상 대통령상, 2016년 과학기술진흥 대통령표창, 2018년 제2회 강대원상 등 굵직한 상을 수상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 제32회 인촌상 심사위원 ▽교육 △위원장 정진곤 한양대 명예교수 △위원 김경성 서울교대 총장, 김성훈 동국대 교무부총장, 신현석 고려대 사범대학장▽언론·문화 △위원장 윤영철 연세대 원주부총장 △위원 왕은철 전북대 교수, 우찬제 서강대 교수, 최맹호 전 동아일보 부사장▽인문·사회 △위원장 박찬욱 서울대 총장직무대리 △위원 김준영 전 성균관대 총장, 이재열 서울대 교수, 주경철 서울대 교수▽과학·기술 △위원장 국양 서울대 명예교수 △위원 김승환 포스텍 교수, 유명희 KIST 책임연구원, 전호환 부산대 총장}

“70일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100번도 더 들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생각하면 페달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6월 23일 한국에서 온 20대 청년 두 명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샌타모니카 해변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이들은 섭씨 40도가 넘는 폭염과 싸우며 동쪽 끝 뉴욕을 향해 달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미국에 알리기 위해 애리조나, 뉴멕시코, 오클라호마, 캔자스, 미주리, 일리노이, 펜실베이니아주를 거쳐 워싱턴, 뉴욕으로 향하는 지그재그 코스의 6600km 대장정이었다. 자전거 동호회 웹사이트에서 이들의 사연을 접한 30대 미국 고교 교사도 시카고부터 합류해 함께 달렸다. 한국 청년 백현재(25·백석대 졸업), 이호준 씨(22·인천대)와 미국인 교사 안토니우 나바로 씨(34)는 지난달 31일 뉴욕에서 자전거 대장정을 마쳤다. 4일(현지 시간)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뉴욕 맨해튼 한인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그들의 구릿빛 얼굴이 험난했던 여정을 보여주는 듯했다. 백 씨는 “온전히 인간의 힘을 이용해 달리는 자전거가 그나마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에 가깝게 다가가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며 “취업을 하면 더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아 1년을 준비해 도전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하루 대여섯 시간씩 자전거를 타고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사막지대, 동부 산악지대를 달렸다. 폭염에 주저앉아 고속도로 순찰대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고, 교통사고를 당해 생명의 위험을 느낀 적도 있었지만 페달을 멈추지 않았다. 이들이 여행 중 만난 미국인의 90%는 위안부 문제를 몰랐다. 이 씨는 “미국인들에게 설명해주면 ‘위안부 문제는 한일관계를 넘어 전 세계 여성의 보편적 인권의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고 말했다. 한국 청년 두 명과 동행한 나바로 씨(시카고고교 스페인어 교사)는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강간과 같은 전쟁 범죄가 벌어지고 인신매매가 발생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이번 경험이 남은 삶과 교육자 경력에 큰 영향을 줄 것 같다”고 말했다. 백 씨와 이 씨는 일본 정부가 여성들에게 성노예 역할을 강요한 것을 ‘인정하고(Admit)’, 인권 유린 범죄에 대해 사과하며(Apologize), 위안부 피해자들과 ‘동행할(Accompany)’ 것을 촉구하는 ‘트리플에이(3A)’ 프로젝트 4기 멤버다. 2015년 시작된 트리플에이 프로젝트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한국 대학생 모임이다.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르면 다음 주 2000억 달러(약 222조 원)어치 중국산 수입품에 ‘초대형 관세폭탄’을 부과하는 계획을 강행할 의지를 드러냈다. 2000억 달러는 중국 대미 수출액의 약 40%에 해당해 실제 부과된다면 전면전으로 번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예상보다 빨리 강공책을 사용하려는 것은 압도적 힘의 과시를 통해 미중 무역협상에서 중국의 양보를 얻어내고 교착 상태에 빠진 북한 비핵화 협상의 걸림돌까지 제거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중국 매파’가 장악한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라인은 동맹국들과 세계무역기구(WTO)를 압박해 ‘반(反)중 전선’을 형성하고 환율조작국 지정 등의 전방위 압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관세폭탄 강행 “완전히 틀린 건 아냐” 블룸버그통신은 30일(현지 시간) 6명의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주 공청회가 끝나는 대로 중국산 수입품 2000억 달러어치에 관세를 부과하려는 계획을 진전시키길 원한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미 무역대표부(USTR)에 2000억 달러어치 중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율을 10%에서 25%로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관련 공청회는 다음 달 6일 끝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백악관에서 가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내용에 대한 확인을 요청받자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라며 웃었다”고 이 통신은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관세 부과 대상 상품 목록과 관세율(10~25%)을 두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초대형 관세폭탄을 부과하더라도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 ‘선(先) 발표, 후(後) 시행’으로 협상 시간을 벌 것으로 보인다. 단계별 부과 방식으로 대중국 압박 강도를 높여갈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동맹국들은 물론이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무역 질서의 근간이 된 세계무역기구(WTO)를 움직여 ‘반중 전선’을 형성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30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그들(WTO)이 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나는 WTO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런 가운데 유럽연합(EU)과 일본 관리들이 최근 워싱턴을 방문해 중국에 대한 공동 대응 등 WTO의 변화에 대해 미국 측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번지면 환율조작국 지정 카드 등을 꺼낼 것으로 보인다.● 대중 무역전쟁 지렛대로 북한 비핵화 압박 데이비드 멀패스 미 재무차관과 중국 왕서우원(王受文) 상무부 부부장이 22일부터 이틀간 워싱턴에서 차관급 협상을 벌였지만 별 소득 없이 끝났다.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비핵화 협상에 대한 중국의 협조가 부족하다고 느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협상을 중단시켰다”고 전했다. 미국이 2000억 달러어치 중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강행할 경우 중국도 600억 달러어치 미국산 상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1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의 모든 강경한 압박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며 “중국이 이런 위협, 협박, 아무 근거 없는 비난에 굴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서 깨어나야 한다”고 비판했다. 무역 분야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 해군은 31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서해 북부 해역에서 훈련을 한다고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잇단 중국 압박에 대한 무력시위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인내심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관계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진 않는다”며 “(관계는) 바뀔 수 있다. 모든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구글에서 ‘트럼프 뉴스’를 검색해 보라. 가짜 뉴스(fake news) 미디어들만 나온다. 이건 조작이다. 이 결과를 통해 우리는 거의 모든 뉴스가 ‘나쁜’ 뉴스임을 알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미디어업계를 겨냥해 위협의 칼을 빼들었다. 이번에 표적으로 삼은 대상은 세계 최대 포털 업체 구글이다. 28일 자신의 트위터에 위와 같은 글을 올린 트럼프 대통령은 구글이 반박 성명을 낸 뒤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과의 백악관 면담 자리에서 ‘퇴장’을 뜻하는 레드카드를 들며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는 조심하는 게 좋다. 그들은 공정하지 못하다”며 공격을 이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이 ‘좌(左) 편향성’을 감추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 글에서 “구글의 ‘트럼프 뉴스’ 검색 결과의 96%가 좌파 미디어들의 콘텐츠다. 이건 매우 위험한 현상이다. 보수적인 목소리는 억압되고, ‘좋은’ 뉴스와 정보는 숨겨진다”고 지적했다. 자신을 지지하는 우익 성향 매체의 글이 검색 결과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구글 뉴스에서 나를 검색한 결과의 96%가 좌파 미디어 콘텐츠’라는 주장의 근거는 밝히지 않았다. 미 정보기술 전문매체 더버지(the verge)는 “보수 성향 뉴스 사이트인 PJ미디어 기자인 폴라 볼리어드가 이 같은 분석 결과를 내놓으며 ‘구글이 보수적 사이트의 콘텐츠를 감추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구글과 다른 회사들이 사용자의 시선을 통제하고 있다. 이건 매우 엄중한 상황이다. 내가 이것을 해결하겠다!”고 적었다. 구글과 함께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 회사들에도 경고장이 날아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면담 자리에서 구글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은 심각한 문제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한 거대 플랫폼 업체들에 사전 경고를 날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CNN의 가짜 뉴스만 잘 보이고, 공정한 보수적 미디어가 차단되는 건 불법 아닌가?”라며 포털과 소셜네트워크 업체들에 대한 조사와 규제 가능성도 내비쳤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구글에 대해 일정한 조사와 분석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글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이 이어지자 성명을 내고 “우리의 검색 엔진은 정치적 의제를 설정하는 데 이용되지 않는다. 검색 결과는 정치적으로 편파적이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어 “우리는 검색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으며, 정치적 감정을 조작할 의도로 검색 결과의 순위를 매기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최근 페이스북의 사용자 정보 유출 사건 등으로 실리콘밸리 정보기술 업체들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미디어 플랫폼 견제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치전문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이 보수주의자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검색 알고리즘을 조작한다는 의혹이 있지만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최근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업체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인 극우 성향 라디오 진행자 앨릭스 존스의 계정을 폐쇄한 데 대한 보복성 공격이라는 시선도 있다. 메르세데스 번즈 영국 킹스칼리지 디지털기술 선임지도원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구글의 뉴스 검색 결과는 ‘사람들이 많이 본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를 정치적 성향에 의해 조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정보기술 전문지 와이어드는 “구글이 뉴욕타임스 CNN 등 대형 매체의 기사를 검색 결과 앞쪽에 내놓는 것은 틀림없지만,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정치적 편향성에 의해 조작되지 않은 데이터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해병대 4성 장군 출신인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내 대북 강경파의 간판 중 한 명. 야전사령관 시절 적진을 향해 “도발하면 모두 죽여버리겠다(If you f××× with me, I will kill you all)”고 해서 ‘미친 개(Mad Dog)’로 불린 살아있는 미 해병대의 전설이다. 그런 매티스가 또 다른 해병대 4성 장군인 조지프 던퍼드 미 합참의장과 함께 28일(현지 시간) 브리핑에 직접 나서 군사적 압박 카드를 꺼내든 것은 트럼프의 대북 기조가 협상 모드에서 초강경 압박으로 선회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미친 개’ 매티스가 꺼낸 군사적 압박 카드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이행을 촉구하며 선제적으로 내놨던 핵심 유인책 중 하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평창 겨울올림픽 전인 1월 전화통화를 갖고 “올림픽 기간 연합 훈련은 안 하겠다”고 합의했고, 트럼프는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전쟁게임(war game)”이라며 중단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 결정을 사실상 뒤집은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현재의 북-미 교착 국면을 해소하기 위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초강경 대응을 통해서라도 북한의 비핵화 이행 조치를 끌어내지 않으면 협상이 실패로 끝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북한은 올해 비핵화 논의 과정은 물론이고 최근 몇 년간 한미 연합 훈련을 ‘도발 책동’이라며 강하게 비난해 왔다. 5월 한미 연합 군사훈련의 하나인 ‘맥스선더’에 반발하며 남북 고위급회담의 무기한 연기를 통보한 게 대표적이다. 매티스 장관의 발언으로 당장 12월 예정됐던 ‘비질런트 에이스’의 정상 진행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 훈련은 한미 연합 공군훈련 중 가장 큰 규모이다. 한미 군사당국은 지난해 이 계획을 수립한 뒤 예산까지 편성해뒀지만, 북-미 협상 기류가 이어지면서 “미 국방부가 훈련을 취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만일 트럼프 행정부가 비질런트 에이스를 실시한다면 이는 곧 북-미 관계를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더 나아가 2월 평창 올림픽 이전으로 되돌릴 수도 있다는 최후통첩이고 북한은 이를 비핵화 협상 결렬 선언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지난해 비질런트 에이스 훈련의 경우 F-22 6대를 비롯해 스텔스 전투기 총 24대가 참가해 미 스텔스 전투기의 한반도 전개 역사상 가장 많은 대수가 한꺼번에 투입됐다. 한미 공중 전력 투입 대수는 수송기 등 지원전력까지 포함해 260여 대에 달했다.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B-1B 전략폭격기 편대도 투입됐다.○ 매티스 뒤에서 또 다른 카드 준비하는 폼페이오 다만 한미 군사당국이 이런 고강도 훈련을 당장 재개할지는 미지수다. 매티스 장관은 내년 대규모 훈련 재개에 대해 “현재 시점에서 결정된 건 없다. 국무부와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볼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따져보겠다”며 협상 추이를 지켜보며 훈련 재개 카드를 꺼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데이나 화이트 미 국방부 대변인도 “미래 훈련 중단이나 훈련에 대해 어떤 결론도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핵화 협상을 주도해 온 국무부는 이날 매티스 장관의 발표와는 별개로 대북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이 이날 대독한 성명에서 “미국은 김 위원장(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지킬 준비가 돼 있다는 게 분명할 때 관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이행할 준비가 됐을 때 협상에 복귀하겠다는 신호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이 합의한 대로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의 목표는 세계의 목표”라며 “미국은 다른 나라들처럼 김 위원장이 국민들에게 밝은 미래를 제공할 수 있도록 북한이 이 결의를 이행하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워트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폼페이오 장관과 매티스 장관은 많은 대화를 나누며 매우 긴밀하게 조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지금까지 몇 개월간 비핵화 논의의 주역이 폼페이오였다면 트럼프가 잠시 주연을 매티스로 바꿔 김정은의 생각을 떠보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 회담 전 벌어졌던 북-미 정상 간 ‘세기의 밀당’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이정은 lightee@donga.com·손효주 기자 / 뉴욕=박용 특파원}

23일 오전 미국 뉴욕 브루클린 무어스트리트. 오래된 가게들 틈에 ‘아쿠아포닉스(수경복합재배) 농장’이라는 나무 간판이 걸린 철망문을 밀고 들어서자 삭막한 거리와 전혀 딴판인 세상이 펼쳐졌다. 232m² 규모의 터에 쌀, 바질, 무, 수수 등 다양한 채소와 꽃이 자라고 있었다. 벌과 나비까지 날아드는 영락없는 시골 텃밭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채소가 자라는 곳이 땅이 아닌 수조라는 점이다. 물 위에 뜬 스티로폼 사이로 식물이 줄기를 내밀고 쑥쑥 자라고 있었다. 이곳은 2013년 문을 연 아쿠아포닉스 농장 오코팜(Oko farm). 나이지리아 이민자 출신인 농장 공동창업자 예미 아무 씨(38)는 “처음 이민을 와 도시에 사는 미국인들이 어디서 재배됐는지도 모르는 먹거리를 먹는 것이 무척 낯설었다”며 “2013년 시 소유의 공터를 빌려 도심 농장을 창업했다”고 말했다. 아쿠아포닉스는 물고기와 식물을 동시에 수확하는 방식이다. 물고기 배설물은 수조 속 식물의 영양분이 되고, 식물이 질소를 흡수하고 남은 깨끗한 물은 수조로 다시 돌아간다. 물 소비량이 일반 농장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오코팜 한쪽 구석엔 물고기를 키우는 작은 양어장이 있었다. 금붕어와 비단잉어 250마리와 메기 60마리가 자라고 있었다. 물고기가 자라면 내다팔기도 한다. 브루클린산이라는 원산지 표시까지 붙어 금붕어는 마리당 20∼50달러, 비단잉어는 500달러에 팔린다. 아쿠아포닉스가 친환경 도시농법으로 주목받으면서 브루클린엔 에덴웍스, 버티컬처팜스 등 스타트업이 생겼다. 루프톱 온실에서 역돔(tilapia)을 키워 무, 근대 등의 채소를 재배하는 에덴웍스는 2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또 다른 아쿠아포닉스 벤처인 버티컬처팜스는 2만4000달러의 크라우드펀딩을 받아 설립됐다. 문제는 수익성이다. 온실에서 물고기와 채소를 키우려면 투자비와 운영비가 만만치 않다. 특히 채소는 고급 유기농식당에 비싸게 팔리지만 물고기 양식이 어렵다. 50센트 역돔 치어를 사다가 1파운드의 살코기를 얻으려면 1달러어치 이상의 사료를 먹여야 한다. 지역 마트에서 역돔 1파운드는 1∼2달러에 팔리니 남는 게 별로 없다. 오코팜이 관상용 물고기를 키우고 자연 상태의 야외 아쿠아포닉스 실험을 시작한 이유다. 아쿠아포닉스 등 도시 창농(創農)은 침체된 도심을 살리고 저소득층 청년 일자리도 만들어낸다. 월마트에서 일하다 실직한 폴 필팟 씨(24)는 지난해 비영리단체인 그린시티포스에서 도심 창농 교육을 받은 뒤 수경재배 농장을 세웠다. 브루클린 주차장에 있는 자신의 컨테이너 농장에 매일 출근해 케일, 근대, 상추 등을 키워 고급 유기농 식당에 재배 비용의 배를 받고 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도심 창농프로그램 수료자의 95%가 재취업했다”며 “뉴욕시의 공공주택 단지 청년 실업률이 75%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훌륭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아쿠아포닉스(Aquaponics · 수경복합재배) ::물고기 양식(Aquaculture)과 수경재배(Hydroponics)의 합성어로 물고기와 작물을 함께 기르는 방법.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23일(현지 시간) 오전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 무어스트리트. 오래된 가게들 틈에 ‘아쿠아포닉스(수경복합재배) 농장’이라는 나무 간판이 걸린 철망문을 밀고 들어서자 삭막한 거리와 전혀 딴판인 세상이 펼쳐졌다. 232㎡ 규모의 터에 쌀 바질 무 수수 등 다양한 채소와 꽃이 자라고 있었다. 벌과 나비까지 날아드는 영락없는 시골 텃밭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채소가 자라는 곳이 땅이 아닌 수조라는 점이다. 이곳은 2013년 문을 연 아쿠아포닉스 농장 오코팜(Oko farm). 나이지리아 이민자 출신인 농장 공동창업자 예미 아무 씨(38)는 “처음 이민을 와 도시에 사는 미국인들이 어디서 재배됐는지도 모르는 먹거리를 먹는 것이 무척 낯설었다”며 “2013년 시 소유의 공터를 빌려 도심 농장을 창업했다”고 말했다. 아쿠아포닉스(Aquaponics)는 ‘물고기 양식(Aquaculture)’과 ‘수경재배(Hydroponics)’의 합성어로 물고기와 식물을 동시에 수확하는 방식이다. 물고기 배설물은 수조 속 식물의 영양분이 되고, 식물이 질소를 흡수하고 남은 깨끗한 물은 수조로 다시 돌아간다. 물 소비량이 일반 농장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오코팜 한쪽 구석엔 물고기를 키우는 작은 양어장이 있었다. 금붕어와 비단잉어 250마리와 메기 60마리가 자라고 있었다. 물고기가 자라면 내다팔기도 한다. 브루클린산이라는 원산지 표시까지 붙어 금붕어는 마리당 20~50달러, 비단잉어는 500달러에 팔린다. 아쿠아포닉스가 친환경 도시농법으로 주목받으면서 브루클린엔 에덴웍스, 버티컬처팜스 등 스타트업이 생겼다. 루프톱 온실에서 역돔(tilapia)을 키워 무, 근대 등의 채소를 재배하는 에덴웍스는 2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또 다른 아쿠아포닉스 벤처인 버티컬처팜스는 2만4000달러의 크라우드펀딩을 받아 설립됐다. 문제는 수익성이다. 온실에서 물고기와 채소를 키우려면 투자비와 운영비가 만만치 않다. 특히 채소는 고급 유기농식당에 비싸게 팔리지만 물고기 양식이 어렵다. 50센트 역돔 치어를 사다가 1파운드의 살코기를 얻으려면 1달러어치 이상의 사료를 먹여야 한다. 지역 마트에서 역돔 1파운드는 1~2달러에 팔리니 남는 게 별로 없다. 오코팜이 관상용 물고기를 키우고 자연 상태의 야외 아쿠아포닉스 실험을 시작한 이유다. 아쿠아포닉스 등 도시 창농(創農)은 침체된 도심을 살리고 저소득층 청년 일자리도 만들어낸다. 월마트에서 일하다가 실직한 폴 필팟 씨(24)는 지난해 비영리단체인 그린시티포스에서 도심 창농 교육을 받은 뒤 수경재배 농장을 세웠다. 브루클린 주차장에 있는 자신의 컨테이너 농장에 매일 출근해 케일, 근대, 상추 등을 키워 고급 유기농식당에 재배 비용의 갑절을 받고 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도심 창농프로그램 수료자의 95%가 재취업했다”며 “뉴욕시의 공공주택 단지 청년 실업률이 75%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훌륭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한번 한반도와 주변국을 뒤흔들고 있다. 이번 주 예정됐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계획을 전격 취소하면서 북한 비핵화 논의는 물론이고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도 급제동이 걸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9월 평양에서 열릴 예정인 북-중, 남북 정상회담 등 연쇄 ‘빅 이벤트’의 출발점이던 폼페이오의 방북을 돌연 중단시킨 것은 비핵화 조치를 내놓지 않고 있는 북한과 이를 부추기고 있는 중국에 대한 강력한 압박 메시지로 해석된다. 동시에 이런 북한과 경협 사업에 속도를 내면서 워싱턴과 이견을 드러내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도 “미국 주도의 비핵화 프로세스에 협조하라”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일각에선 당장 이번 주 예정됐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개소 일정이 연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 시간) 트위터를 통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 사실을 알리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충분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처음으로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난관에 봉착했음을 인정하며 현재로선 폼페이오 장관의 평양행 성과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중국이 무역에 대해 터프해진 우리의 방침 때문에 과거와 달리 비핵화 과정을 돕지 않고 있다”며 다음 달 초 평양 방문을 앞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사실상 겨냥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가까운 장래에 북한에 가길 기대한다”면서도 그 시점을 “중국과 우리의 무역 관계가 해결된 이후”로 못 박기도 했다. 비핵화 이슈를 레버리지 삼아 중국과의 무역 분쟁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인 만큼 한동안 관련 논의가 지지부진해질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따뜻한 안부와 존경의 인사를 보낸다. 곧 만나길 고대한다”며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여지는 남겨 놨다. 문 대통령은 26일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 외교안보팀 핵심 멤버를 청와대로 소집해 관련 대책을 논의했다. 정부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개설 및 9월 남북 정상회담을 예정대로 추진할 방침이지만 폼페이오 방북 취소 결정 후 사무소 개소 시점을 놓고는 다소 신중해진 기류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한미 정부가 상황 인식을 위해 긴밀히 소통·협의하고 있다”며 “그런 구도 속에서 남북 연락사무소 문제도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현지 분위기는 강경하다. 공화당 소속 코리 가드너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태소위원장은 폼페이오 방북 취소 결정에 대해 “옳은 일이다. 북한은 평화적 비핵화 의도는 거의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을 진행하면 한미 공조 균열이라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이정은 lightee@donga.com·한상준 기자 / 뉴욕=박용 특파원}

금요일인 24일(현지 시간) 미국 백악관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이틀 뒤면 평양으로 떠날 예정이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앤드루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이 이날 오전 대통령 집무동인 웨스트윙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CNN과 ABC 등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포착됐다. 북한과 관련한 모종의 논의가 진행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모종의 논의에 대한 의문은 이날 오후 1시 40분경 트럼프 대통령의 ‘깜짝 트윗’을 통해 풀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 3개를 연달아 올렸다. “폼페이오 장관에게 북한에 가지 말 것을 요청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충분한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은) 중국과 무역관계가 해결된 이후에 될 가능성이 높다” 등 북한 비핵화 협상의 판을 흔드는 내용을 쏟아냈다. 폼페이오 장관은 전날 스티븐 비건 신임 대북정책특별대표까지 대동하고 기자들 앞에 나타나 방북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하루 만에 뒤집혔다. 국무부 고위 관리들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반전’이었다. 로이터통신은 국무부 일부 관리들은 대북 협상에 대비하는 회의 도중 TV 뉴스를 통해 방북 취소 사실을 알았다고 전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이 올라오기 10분 전까지도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동맹국에 브리핑한 국무부 관리도 있었다는 내용을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소개했다. 이날 결단의 순간은 댄 스커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국장이 “트럼프 대통령이 오후에 오벌오피스(집무실)에서 북한 관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며 ‘#BehindTheScenes(막후 장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트위터에 공개한 4장의 사진을 통해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용 책상인 ‘결단의 책상’에 앉아 대북 정책 핵심 브레인들과 회의를 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사진 속에선 트럼프 대통령을 마주보고 오른쪽부터 마이크 펜스 부통령, 판문점 실무회담 미국 측 대표인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 폼페이오 장관, 비건 특별대표, 앤드루 김 센터장이 부채꼴처럼 펼쳐 앉았다. 존 켈리 비서실장은 이들 뒤 소파에 기대서서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전에도 회담 취소 선언을 하도록 조언한 것으로 알려진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우크라이나 출장 중이어서 스피커폰을 통해 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편지처럼 보이는 문서 한 장을 들고 이야기하고, 참석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돌돌 말린 서류를 손을 쥐고 있었다. 소파에는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등 4명의 참모가 앉아 회의 내용을 메모하거나 노트북에 받아 치고 있었다. 또 다른 사진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들고 있던 문서를 책상에 올려놓고 펜을 들고 정독하고 있었다. 입을 앙다물거나 의심에 찬 눈초리로 핵심 참모들을 쏘아보는 모습도 있었다.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은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의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하루 만에 방북은 없던 일이 됐고, 협상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폼페이오 장관과 트윗 문구를 가다듬은 것으로 알려졌다. 샌더스 대변인은 CNN 방송에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을 올릴 때 폼페이오 장관도 그 방에 함께 있었다”고 밝혔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미국에선 집 근처에서 레모네이드를 파는 아이들을 종종 본다. 용돈을 버는 경험을 스스로 해볼 수 있어 학교나 부모도 크게 말리진 않는다. 동네 어른들도 이런 뜻을 알기에 맛이 있건 없건 흔쾌히 사준다. 뉴욕주 볼스턴스파의 7세 꼬마 브렌던 멀베이니도 이런 ‘레모네이드 꼬마’였다. 브렌던은 지난달 집 앞에 레모네이드 가판을 차렸다. 75센트(약 840원)짜리 레모네이드를 팔아 꼭 가고 싶었던 디즈니랜드 여행비를 제 손으로 벌 생각이었다. 5세 때부터 매년 지역 축제에 나가 레모네이드를 판 경험을 살려 올해는 1달러짜리 생수와 빙수까지 메뉴에 추가했다. 그런데 이 충만한 사업가 정신 때문에 사달이 나고 말았다. 근처를 지나던 주 위생국 검사관은 주변 노점상인들의 민원을 이유로 브렌던의 ‘무허가’ 레모네이드 판매를 중단시켰다. 브렌던은 어린 나이에 정부 규제의 혹독함을 체험하고 가판을 접었다. 아버지 숀이 이 사연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미국 전역에서 “국가가 아이들 레모네이드 판매까지 간섭하고 규제해서 되겠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엘리스 스테파니크 연방 하원의원은 “‘가혹한 규제’의 대표적 사례”라고 개탄했다. 앤드루 쿠오모 주지사는 브렌던의 가판 허가비 30달러를 대신 내주겠다는 성명을 냈다. 난처해진 위생국은 브렌던에게 사과하고 레모네이드만 판다면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물러섰다. 짐 테디스코 주 상원의원은 16세 미만이 판매하는 레모네이드 가판대는 주 위생국의 허가를 받지 않게 하는 ‘레모네이드 법안’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이 경직된 규제를 만들고 관리한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얘긴 하지 않았다. 공화당 의원들 사이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를 본떠 만든 ‘레모네이드 가판대를 다시 위대하게’라는 정치 선전 구호까지 등장했다. 브렌던은 어른들의 호들갑 때문에 유명세를 탔지만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웠다. 18일(현지 시간) 새러토가 카운티 축제에서 레모네이드 가판대를 열어 946달러를 번 브렌던은 그 돈을 꼭 가고 싶었던 디즈니랜드 여행 대신 더 값진 데 쓰기로 했다. 성장 장애로 다리가 휘는 병을 앓고 있는 12세 매디 무어의 치료비에 보탰다. 뉴욕타임스(NYT)는 “브렌던은 내년에 다시 사업에 도전할 것”이라며 “이번에는 레모네이드만 팔 계획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국가가 시민 사생활에 깊숙이 개입해 규제하는 ‘보모국가(Nanny state)’ 논쟁을 촉발시킨 브렌던 사례는 미국만의 일은 아니다. 영국 유럽 등 사회복지 선진국일수록 논란이 뜨겁다. ‘규제 강국’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에 따르면 20대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1만3704건의 법안 중 2391건이 규제 법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에서 제정되는 법률의 약 90%가 의원발의 법안인데도 모범규제 의제는 국회에서 제한적으로 다뤄지거나 전혀 다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원 입법도 정부 입법처럼 엄격한 규제 심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늘 나오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5년 소상공인의 매출 대비 규제 비용 비율은 11.2%로, 중견기업의 약 5배다. 정치권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의지가 있다면 대기업, 카드 수수료, 임대료 등 남 탓만 할 게 아니다. 당장이라도 직접 할 수 있는 의원 입법 규제 심사 논의부터 시작하는 게 도리다. 대통령은 규제 개혁을 외치고, 국회는 열심히 규제를 만들어 내는 보모국가의 ‘정치 코미디’는 이제 끝낼 때가 됐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가 대북 제재는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주인론’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비핵화 촉진 의지를 강조한 것과 분명한 온도 차를 보인 것이다. 미국 국무부는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개소에 대해 “제재 위반 여부를 틀림없이(certainly) 살펴볼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 시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북한에 대해 매우 무거운 제재를 부과하고 있다”며 “우리는 추가로 (제재를) 더 부과했다. 북한이 보다 빨리 움직이길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 재무부의 대북 추가 제재 사실을 언급하며 대북제재에 비난 공세를 퍼붓고 있는 북한에 선(先)비핵화 후(後)제재완화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미 국무부는 이날 개성 남북연락사무소의 제재 위반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연락사무소 운영을 위한 한국의 석유와 전력 공급이 대북제재 위반 아니냐’는 질문에 “모든 것을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얼마 전 남북 관계의 개선은 북핵 해결에 앞서 나갈 수 없다는 것이 자신의 견해와 입장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개성 연락사무소는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강행 의지를 밝혔다. 청와대는 27일경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북으로 핵시설 리스트 제출과 종전선언 체결에 돌파구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방북에 어느 때보다 무게가 실려 있다”고 말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다음 주초 네 번째 방북을 통해 비핵화 조치를 늦추고 있는 북한과 담판에 나선다. 최대 관심사는 북한과 미국이 핵시설 신고와 종전선언 채택의 접점을 찾아내느냐다. 비핵화에 대한 ‘양보’를 조건으로 종전선언을 요구하던 북한은 대북제재로 공세의 초점을 옮겨가며 ‘몸값 높이기’에 나선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전담할 대북정책특별대표에 스티븐 비건 포드자동차 부회장을 임명하는 등 비핵화 장기전 준비에 들어갔다. ○ 트럼프 “北에 준 선물은 제재뿐” 폼페이오 장관은 23일(현지 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 주초 북한을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 옆에는 새로 임명된 비건 특별대표가 뒷짐을 지고 섰다. 비건 특별대표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 비핵화(FFVD)가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라고 밝혔다. 비핵화 이행 속도보다는 완전하게 검증된 북핵 폐기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미 국무부도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헤더 나워트 대변인은 “비핵화를 향한 작업이 특별히 빠르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과거 10여 년간 거의 접촉이 없었던 북한과의 만남과 대화를 정례화해가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며 “비건 특별대표가 장관을 수행해 회담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앞두고도 북-미가 핵 신고·사찰 수용과 종전선언을 맞바꾸는 문제에 아직 돌파구를 찾지 못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 당국자는 “종전선언이 북한 말대로 ‘정치적 선언에 그치는 정도’라면 핵 보검이라고 주장하는 핵물질, 핵무기 신고나 핵시설 사찰과 맞바꿀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북한이 핵 신고와 사찰 리스트를 단계적으로 수용하는 대가로 ‘종전선언+알파(α)’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북한이 요구할 ‘플러스알파(+α)’로 가장 유력한 것은 대북제재 완화다. 이달 들어 세 차례 독자 대북제재를 발표한 트럼프 행정부는 틈만 나면 제재만이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 유일한 수단임을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내게서 얻어낸 유일한 것은 만나서 대화한 것뿐이고, 나는 제재 말고 아무것도 준 게 없다”며 “추가 제재는 (비핵화를) 빨리 진전시키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비핵화-종전선언 빅딜 가능성 신중한 트럼프 행정부의 기류에 대해 북한과의 협상을 앞두고 기대치를 낮추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종전선언과 핵 신고·사찰의 빅딜이 성사되는 게 현재로선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지난달 세 번째 방북에 이어 또다시 ‘빈손’으로 귀환하게 되면 거세지는 대북강경론을 잠재우기 쉽지 않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일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폼페이오 장관이 사적인 자리에서 북한과의 협상이 실패했으며(doomed)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의도가 없다고 했다. 이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공유하는 평가”라고 전했다가 몇 시간 뒤 기사를 수정했다. 사실이라면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북한의 진정성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탄핵론이 고조되자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이번 방북에서 가시적인 비핵화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북-미 대화의 판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방북에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도 집중 논의될지 주목된다. 다만 국무부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공식화하면서도 김 위원장과의 만남에 대해서는 일단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비핵화 협상의 큰 그림은 결국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몫으로 돌린다는 의미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