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유윤종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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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 분야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푸치니: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등의 책을 썼습니다.

gustav@donga.com

취재분야

2024-04-23~2024-05-23
음악57%
인사일반17%
문학/출판13%
칼럼10%
문화 일반3%
  • [유윤종의 클래식感]시월 하늘, 거대한 空으로 영혼을 빨아들이는

    시월의 푸른 하늘은 그 거대한 공(空)으로 사람의 영혼을 빨아들인다. 하늘이 푸르고 대기가 청명한 날, 높은 건물의 창가에 서 있으면 150년 전 태어나 80년 전 타계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 피날레가 들려오는 것 같다. 피아노 솔로가 깊은 저음으로부터 두둥실 떠오르고, 금관악기들이 코끼리 떼의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낸다. 나도 그 소리들과 함께 떠오른다. 지금 날아가고 있구나. 이윽고 빌딩 숲이 시선 아래 깔리고, 옥상마다 헬리포트 표시가 보이고, 저 멀리 산들이 무릎 아래로 내려오고, 고개를 들면 성층권을 벗어나기 시작하는지 깊고 어두운 청색이 시야를 채운다. 보라, 나는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계절의 맑은 대기는 천금을 주고라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이른 퇴근길, 차창 밖으로 조금씩 불 켜지는 강 건너의 빌딩들까지 너무나 가까이 보여서, 도시 전체가 내 것 같은 들뜬 착각이 든다. 이럴 때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6번 ‘대관식’의 3악장을 듣는다. 그 명징한 리듬과 화음에 알 수 없는 기대가 깃든다. 버스 정류장에서 활짝 웃으며 집으로 뛰어가던, 어린 어느 날의 내가 겹쳐진다. 이런 날에는 청명한 북유럽의 늦여름이나 초가을을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20여 년 전 처음 가본 핀란드의 헬싱키와 에스토니아의 탈린도 그랬다. 핀란드 작곡가 시벨리우스는 청년기에 크리스티안 2세 왕이라는 연극을 위한 음악을 썼다. 16세기 스칸디나비아의 왕을 그린 작품이다. 모음곡 중에서 사랑의 장면을 나타내는 첫 곡 ‘녹턴’이다. 현의 쓸쓸한 노래가 따끔따끔하니 선뜻한 청량감으로 옷 속을 간지럽힌다. 센티멘털리즘의 대가인 북방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콥스키는 관현악 모음곡 3번의 첫 악장 이름을 엘레지(슬픈 노래)라고 붙였다. 쓸쓸한 가을날의 아련한 회상, 기억 저편에서 몰려오는 후회와도 같은 슬픈 노래다. 그 주선율은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인 차이콥스키의 초기 가곡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를 변주한 것과 같다.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안다/내가 무엇을 괴로워하는지/홀로, 모든 기쁨에서 떨어져 나와/나 먼 창공을 바라보노라.’ 그 차이콥스키의 피아노곡 ‘사계’는 일 년 열두 달의 서정을 한 곡씩의 피아노곡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그 10월은 문호 톨스토이의 사촌인 알렉세이 톨스토이의 시를 표현했다. ‘가을, 우리의 가련한 정원이 떨어져 내린다. 노랗게 변한 잎들이 바람에 흩날린다.’ 시월도 끝을 향하면 차츰 어두운 날이 많아진다. 코트 깃은 점차 높아지고, 마음의 눈은 자꾸만 자신의 안쪽을 들여다본다. 하염없이 걸으며 그곳에 깃든 그림자를 지워보려 하지만 때로 세상은 뭔가 불길한 일을 준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떤 면에서는 예언서 같고 묵시록 같은, 쇼팽의 발라드 1번을 듣는다. 그 어두운 하늘의 정경 아래 베토벤으로부터 100년 후의 교향악 대가 말러의 교향곡 6번의 느린 악장이 겹쳐진다. 말러는 이 악장에서 알프스 산속 마을의 산책과도 같은 고요한 정경을 그린다. 언뜻 생각하기에 너무도 평화로운 정경이지만, 이 곡은 놀랄 만한 반전과 경악을 숨겨두고 있다. 이 교향곡의 제목을 말러는 ‘비극적’이라고 붙였던가. 점차 해는 짧아지고, 일찍 땅거미가 진다. 따뜻한 사람들의 사이에서 위안을 찾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마음속에 일어난 거스러미와 딱정이를 혼자 다독여야 하는 저녁도 있다. 푸치니 오페라 ‘수녀 안젤리카’ 중에서 간주곡을 들어본다. 내년에 탄생 100주년을 맞는 푸치니는 한밤에서 새벽에 이르는 정적의 시간을 사랑했고, 이를 자주 자신의 극에 밀도 높게 표현한 작곡가였다. 기분 좋게 몸을 간질이던 공기는 어느덧 선뜻함으로, 다시 옷깃을 여미게 하는 추위로 다가온다. 푸름을 자랑하던 들판은 노랗게 변했고, 한해살이들은 다음 해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거둘 준비를 시작한다. 성경 전도서의 구절에 곡을 붙인 브람스 독일 레퀴엠 2악장을 듣는다. “모든 육신은 들의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아,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나니….” 저 들판은 곧 마른 풀들로 뒤덮일 것이다. 저 엄숙한 소멸을, 부활을 기다리는 긴 시간을 묵상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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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보엠, 나비부인, 토스카… 푸치니 선율로 물드는 가을

    2024년은 이탈리아 근대 오페라의 완성자이자 세계 오페라 프로덕션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서거 100주년이 되는 해. 전 세계에서 관련 행사와 축제들이 예고되는 가운데 올가을 전국에서 푸치니 오페라가 막을 올린다.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한문연)는 10월 6일 전남 장흥문화예술회관을 시작으로 13, 14일 경기 광주 남한산성아트홀, 20, 21일 전남 순천문화예술회관에서 푸치니의 대표 흥행작 ‘라보엠’을 공연한다. 공연 기획 제작사 할마씨네토끼가 공동 제작에 참여했다. 여주인공 미미 역에 소프라노 윤정난 이다미, 남주인공인 시인 로돌포 역에 테너 신상근 김효종, 로돌포의 친구인 화가 마르첼로 역에 바리톤 강형규가 참여한다. 제작총감독을 맡은 장길황 할마씨네토끼 대표는 18일 열린 간담회에서 “빔프로젝터와 미디어아트 기술을 활용해 무대 뒷면과 객석 좌우 벽면에 영상을 송출해 19세기 파리의 분위기를 연출할 예정이다. 최근 오페라 공연에 빔프로젝터를 활용하는 일이 많지만 3면을 활용해 관객을 둘러싸듯 몰입감을 높이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소개했다. 장 대표는 “1막, 4막의 다락방과 2막의 카페, 3막의 눈 오는 파리 외곽이 공연장에 재현된 듯이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성남아트센터는 10월 12∼15일 푸치니 ‘나비부인’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한다. 공연과 패션을 넘나드는 연출가 정구호가 원작 무대인 19세기 일본을 서기 2576년의 우주로 바꾸는 파격적인 연출을 시도한다. 정구호는 20일 열린 간담회에서 “원작의 제국주의적 요소와 핑커톤과 초초상의 계급 차이를 없애기 위해 배경을 바꿨다”고 밝혔다. 초초상 역에 임세경 박재은, 남성 주역인 핑커톤 역에 테너 이범주 허영훈이 출연한다. 서울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에서는 10월 13, 14일 ‘가장 남성적인 푸치니 오페라’로 꼽히는 나폴레옹 전쟁기 배경의 ‘토스카’가 공연된다. 오페라 가수 토스카 역을 김라희 서선영, 연인인 화가 카바라도시 역은 테너 박성규 신상근, 로마 경찰총감 스카르피아 역은 바리톤 박정민 정승기가 맡는다. 경기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는 푸치니 최후의 걸작 ‘투란도트’가 11월 11, 12일 공연된다. 서울시오페라단이 10월 26∼2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투란도트’ 프로덕션을 이어받는 손진책 연출가의 ‘투란도트’다. 투란도트 공주 역에 소프라노 이윤정 김지은, 목숨을 걸고 그에게 구혼하는 칼라프 왕자 역에 테너 신상근 박지응, 그의 도전으로 목숨을 잃는 시녀 류 역에 소프라노 신은혜 박소영이 출연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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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노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화음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부터 현역 대표 피아노 거장 중 한 사람인 언드라시 시프(사진)까지, 솔로 리사이틀부터 피아니스트 30명의 ‘피아노 오케스트라’까지…. 피아노의 다양한 모습을 맛보는 축제가 열린다. 경기 수원시 경기아트센터가 ‘모두의 기회, 모두의 피아노’라는 주제로 10월 4∼7일 여섯 개의 무대를 마련한 ‘2023 경기 피아노 페스티벌’이다. 피아니스트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예술감독을 맡았다. 축제 첫 무대는 4일 ‘오프닝 콘서트: 피아노 오케스트라’다. 제목처럼 피아노 15대, 피아니스트 30명이 출연한다. 미국 피아니스트 아서 그린이 솔로 연주하는 쇼팽 발라드 1번으로 시작해 차츰 인원을 늘려가며 피날레 곡인 베토벤 교향곡 5번 편곡판까지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하는 웅장한 화음을 빚어낸다. 둘째 날인 5일에는 ‘마이 페이버리트 소나티네’ ‘피아노 콜라보의 밤’ 공연이 차례로 열린다. ‘마이 페이버리트 소나티네’는 수원시 음악협회의 공모를 통해 선정된 일반인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들이 피아노 입문자들에게 익숙한 쿨라우, 클레멘티 등의 소나티네(작은 규모의 소나타) 곡들을 릴레이로 연주한다. ‘피아노 콜라보의 밤’에는 피아니스트 8명과 영재 피아니스트 2명의 콜라보 무대가 마련된다. 생상스 ‘죽음의 무도’, 거슈윈 ‘랩소디 인 블루’ 등을 연주한다. 6일에는 바흐와 베토벤 음악의 현역 최고 해석자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 헝가리 출신 피아노 거장 언드라시 시프의 무대가 펼쳐진다. 공연 프로그램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기로 유명한 시프는 이번 공연에서도 즉흥적인 선곡으로 연주를 선보이며 해설을 함께 곁들일 예정이다. 7일에는 ‘장애인과 함께 하는 모두의 콘서트’와 피날레 콘서트가 이어진다. ‘장애인과 함께 하는 모두의 콘서트’에서는 발달장애인 단원들로 구성된 ‘하트하트 오케스트라’가 김대진 피아니스트 협연으로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3번 1악장 등을 연주한다. 피날레 콘서트에서는 성기선 지휘의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피아노 듀오인 신박듀오가 풀랑크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협연하고, 피아니스트 임동민이 협연하는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1번으로 마지막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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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코 필하모닉 “드보르자크와 시즌 시작합니다”

    파리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드레스덴 젬퍼오퍼와 쾰른 방송교향악단 수석지휘자를 지낸 러시아 출신 지휘 명장 세묜 비치코프(71)가 처음 내한한다. 2018년부터 수석지휘자를 맡고 있는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10월 2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7번, ‘사육제’ 서곡과 일본의 25세 ‘피아노 신성’ 후지타 마오가 협연하는 피아노협주곡 등 ‘올 드보르자크’ 프로그램을 꾸민다. 그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2001년 동아일보사 주최로 체코필과 함께 내한했던 당시 수석지휘자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에게 체코필의 특징에 대해 물었더니 ‘옛 동구권 악단 특유의 짙고 어두운 색채가 있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동의하시는지요. “체코필의 짙은 음색은 공산주의 시대에 생겨난 게 아니라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던 것입니다. 반면 밝고 민첩한 특징도 갖고 있죠. 체코필은 체코의 전통 음악을 연주하며 시작했고, 이 나라의 노래와 춤 등 여러 요소가 그 음색에 섞여 있습니다.” ―이번에 드보르자크만으로 프로그램을 꾸민 이유는 뭔가요. “지금 가장 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기에 택했죠. 체코필은 이번 시즌을 3주간의 드보르자크 프로그램으로 시작합니다. 교향곡 3곡, 협주곡 3곡, 서곡 3곡을 연주하죠. 해외 연주를 할 때는 그 시즌 체코필의 ‘집’인 프라하 루돌피눔에서 연주한 곡을 택합니다. 1896년 체코필이란 이름으로 처음 이 악단을 지휘한 분도 드보르자크였어요.” ―소련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서 당시 소련의 유대인 억압 분위기를 겪은 뒤 서방으로 이주해 활동해왔습니다. 이런 점이 당신의 음악에 영향을 미쳤습니까. “음악가는 자신이 경험한 것만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소련에서 음악 교육을 받은 것은 내게 주어진 특권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엔 자유가 없었고, 나는 자유가 필요했습니다.” ―외가의 성(姓)을 쓴 동생 야코프 크라이츠베르크(1959∼2011)도 지휘자였습니다. 어떤 분위기에서 성장했는지 궁금합니다. “어머니는 직업 음악가는 아니셨지만 피아노를 치셨고, 어머니의 할아버지는 오데사 오페라 하우스의 지휘자셨죠. 나는 어릴 때 곧잘 드럼 치는 흉내를 냈는데, 어머니는 내가 음악적 소질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레닌그라드 과학자 협회의 피아노 교실에 데리고 가셨습니다. 6세 때 첫 공개 연주를 했죠.” ―부인이 피아니스트인 마리엘 라베크(71)입니다. 집에서도 음악에 대한 대화가 오가는지요. “물론이죠. 나는 ‘피아니스트 라베크’와 결혼했고, 집에서도 음악 얘기를 합니다. 우리는 그녀가 태어나 자란 프랑스의 바스크 지방에 집이 있고, 그곳에서의 삶을 사랑합니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다음 날 ‘악 앞에서 침묵하는 것은 악의 무리와 공범이 되는 것이다’라며 러시아 비판 성명을 냈습니다. “침략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삶과 죽음, 인류의 실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힘없는 사람이 얻어맞는 걸 보면 누구라도 최소한 경찰에 신고는 하겠죠. 나도 그런 일을 했을 뿐입니다.” 7만∼28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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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필 차기 예술감독에 김선욱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김선욱(35·사진)이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차기 예술감독으로 선임됐다고 경기아트센터가 20일 밝혔다. 임기는 내년 1월부터 2년. 김선욱은 내년 1월 경기도예술단 신년음악회를 시작으로 1년에 10여 차례 경기필을 지휘할 예정이다. 김선욱은 2006년 리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이 콩쿠르 40년 역사상 최연소로 우승했으며 영국 왕립음악원 지휘과에서 수학했다. 영국 본머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서울시립교향악단, KBS교향악단을 지휘했고, 올해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에서 경기필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지휘한 바 있다. 피아니스트로서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로열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등 세계 정상급 악단과 협연해 왔다. 런던 위그모어 홀과 퀸 엘리자베스 홀 등에서 정기적으로 리사이틀을 열고 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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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년 인연’ 첼로 제자와 스승… 이젠 지휘자 - 연주자로

    “열 살 꼬마였던 제게 미샤 마이스키 선생님은 ‘악보란 단순히 음표가 아니라 살아 있던 인격이 쓴 것이며 혼이 들어간 것’이라는 가르침을 주셨죠.”(장한나) “장한나는 열정, 직관, 지성, 에너지를 갖추고 있습니다. 관객의 귀와 눈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만져주는 지휘자라고 생각합니다.”(미샤 마이스키) 각각 43세, 9세에 처음 만난 첼로 사제(師弟)가 32년이 흘러 솔리스트와 지휘자로 한국 무대에 선다. 라트비아 출신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75)는 이달 23,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장한나 & 마이스키 with 디토 오케스트라’ 콘서트에서 지휘자 장한나와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 B단조를 협연한다. 두 사람이 한국에서 호흡을 맞추는 건 2012년 성남아트센터 ‘앱솔루트 클래식’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돈키호테’를 협연한 이후 11년 만이다. 15일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아트홀에서 열린 두 사람의 기자간담회에서 장한나는 처음 마이스키를 만난 순간을 회상했다. “아홉 살 때 선생님 독주회에 갔어요. 공연 후 사인회에서 제 순서가 됐을 때 아버지께서 제가 연주한 모습이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마이스키 선생님께 건네셨죠. 며칠 뒤 ‘이탈리아 키자나에서 열리는 마스터클래스에 초대하고 싶다’는 편지가 왔어요.” 장한나는 “장난기 많은 꼬마였지만 마스터클래스에선 잔뜩 ‘얼어서’ 선생님과 사진 한 장 함께 못 찍었다. 지금은 선생님께서 ‘셀피 퀸(selfie queen)’이라고 부를 정도로 만나면 사진부터 찍는 등 친구처럼 지낸다”며 웃었다. 마이스키는 “처음 한나의 첼로를 들었을 때 압도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환생을 믿지 않지만 (다른 음악가의 환생이라고 생각할 만큼)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훌륭했다”고 회상했다. 지휘자가 된 제자를 보는 심경은 복잡하다고 했다. “한나가 첼리스트로서의 경력을 희생한 점은 아쉽습니다. 하지만 지휘자로서 완벽성을 추구하기 위한 그 결정에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언젠가 한나가 다시 첼로를 잡게 된다면 첼로 두 대가 들어가는 슈베르트의 현악5중주 C장조를 함께 연주하고 녹음하고 싶어요.” 스승의 제안에 장한나는 “나도 기회가 되면 슈베르트의 5중주를 함께 연주하고 싶다. 14세쯤에 마이스키 선생님,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76), 비올리스트 유리 바슈메트(70) 등과 멋모르고 함께 연주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팬데믹 기간에 일정들이 취소되면서 첼로를 다시 잡았다가 ‘아이구 내 손가락아…’ 했어요. 다시 만족스럽게 연주할 수 있게 될 때 말씀드리겠습니다.”(웃음) 장한나는 2017년 노르웨이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가 됐고 2022년부터 독일 함부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객원지휘자도 맡고 있다. 지난해에는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마이스키와 차이콥스키 ‘로코코 변주곡’, 생상스 첼로 협주곡 1번 등을 협연했다. 장한나는 “마이스키 선생님은 자신만의 확신과 강한 색채의 틀 안에서 매번 자유로움을 표현하고 즐기고자 하신다. 11년 전에 이어 이번 연주를 보시는 분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스키는 “오리지널에 가까운 연주를 하고 싶다. 최대한의 경지까지 끌어올리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협연곡인 드보르자크의 첼로협주곡 외 23일 베토벤 교향곡 5번, 24일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를 연주한다. 장한나는 “음악가로 살면서 정말 중요했던 분들은 마이스키 선생님을 비롯해 작곡가 드보르자크와 베토벤”이라며 “드보르자크의 곡으로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 출전한 뒤 연주자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됐고, 베토벤은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강한 불을 지펴줬다. 세 분이 이번 콘서트에 모인 셈이기에 감사하고 영광스럽다”고 감회를 밝혔다. 장한나는 디토 오케스트라에 대한 기대도 나타냈다. “디토 오케스트라는 굉장히 뜨겁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다른 오케스트라는 역대 지휘자나 연주 시즌 편성을 통해서 개성을 대략 알 수 있지만, 이 악단에 대한 정보는 백지 상태였죠. 11일부터 연습을 함께 하며 ‘살아 있는 오케스트라’라고 느꼈습니다. 서로를 알아가고 함께하는 모든 과정이 진심으로 즐겁고 기대가 큽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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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재 혹은 광인… 밀착 취재한 일론 머스크의 삶[책의 향기]

    “나는 전기차를 재창조했고, 사람들을 로켓에 태워 화성으로 보내려 합니다. 그런 제가 차분하고 정상적일 거라고 생각했나요?”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여러 행성에 인류를 정착시키겠다는 스페이스X의 창업자, 지구를 초고속 위성 인터넷으로 뒤덮는 스타링크의 창안자, 뇌와 디지털을 연결하는 뉴럴링크의 창업자, 트위터의 후신 ‘X’의 오너 .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후 세계는 전방위적 재능을 가진 인물의 부활을 기다려 왔지만 이런 사람을 상상하지는 못했다. 미래에 대한 비전과 뛰어난 경영 능력으로 찬사를 받는 그는 임직원에 대한 착취와 소셜미디어에서의 기이한 언행으로 눈총을 받고 자신의 기업까지 위험에 노출시키는 장본인이다. 일론 머스크는 전인(全人)적 선구자인가, 초인(Superman)인가, 광인인가, 빌런인가. 헨리 키신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려놓은 저널리스트 월터 아이작슨은 2년 넘게 머스크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주변 사람들 130여 명을 밀착 인터뷰해 이 책을 내놓았다. 연대기적으로 서술된 이 책에서 머스크의 어린 시절에 대한 묘사는 충격적이다. 아버지는 한 시간 넘게 아이들에게 폭언을 퍼붓기 일쑤였고, 또래 소년들에게 매일 두들겨 맞는 야생 생존 캠프에 보내기도 했다. 이런 유년기는 머스크의 특유한 성격을 형성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에게는 친절이나 따뜻함,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없다는 것이다. 머스크도 자신을 공감 능력이 부족한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로 정의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알아도 느낌이 아니라 분석해서 알아내는 것이었다. 자신이 만난 여인들과 아이들에게도 그랬다. 이런 성격은 성공에 동력으로 작용했다. 공감을 배제한 결정은 그를 ‘위험을 감수하는 혁신가’로 만들었다. 머스크는 자신을 밤낮없이 일하도록 채찍질했고 다른 임직원들도 그러도록 종용했다. 위험을 증폭시키고 물러설 수 없이 몰아붙여 강을 건넌 뒤 ‘배를 태워버리는 데’ 몰두했다. 당연히 위기의 순간도 많았다. 스페이스X를 창업한 뒤 세 번이나 로켓 발사에 실패했을 땐 글로벌 금융위기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닥쳤다. 포기하라는 종용에 머스크는 “그러면 인류는 영영 ‘다행성(多行星·여러 행성에 거주한다는 의미)’ 종이 될 수 없어”라고 맞섰고, 네 번째 발사는 성공했다. 그의 직관에 손을 들어주는 것은 ‘결과’였다. 출간과 동시에 세계 언론이 이 문제적 전기를 조명했다. 이미 머스크의 소생으로 알려졌던 뉴럴링크 임원 질리스의 아이들이 머스크의 ‘사랑 없는’ 정자 기증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머스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핵전쟁을 우려해 크림반도 인근의 스타링크 접속을 일시 차단했다는 내용 등이 헤드라인에 올랐다. 머스크는 “크림반도는 원래 스타링크가 연결되지 않았다”고 해명했고 아이작슨은 오류를 인정했다. 출간 전 내용에 관해 사전 논의가 없었음을 시사하는 이 일화는 책의 객관성을 의심하는 소리들로부터 일종의 보호막을 제공한다. 그러나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는 서평에서 “기술 거대 기업이 사회에 입힌 피해나 노동 착취 같은 것들이 책에 생략됐다”고 지적하며 머스크와 저자의 암묵적 약속을 의심했다. 머스크는 결국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 저자는 결론을 유보한다. “위대한 혁신가들은 ‘어른아이’일 수 있다. 무모하고,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때로 해를 끼칠 수도, 미치광이일 수도 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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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흐마니노프’ 들고 찾아온 선우예권, “가슴 끓게 만드는 작곡가에 나를 투영”

    “라흐마니노프는 가슴이 끓게 만드는 작곡가입니다. 광활한 대양 위를 저공비행하는 느낌이랄까, 대자연의 모습을 상상하게 해주죠.” 2017년 한국인으로는 처음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34·사진). 올가을 그의 선택은 탄생 150주년을 맞은 러시아의 거장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다. 12일 데카 레이블로 새 앨범 ‘라흐마니노프, 리플렉션’을 내놓은 선우예권은 23일부터 10월 20일까지 라흐마니노프와 바흐의 작품들로 전국 리사이틀 투어를 연다.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1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아쉬움도 털어놓았다. “6월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녹음할 때 호흡기 염증으로 아팠어요. 수액을 맞고 와서 레코딩에 임했죠. 마음이 아파서 녹음 편집본도 안 듣고 ‘잠수를 탔는데’…. 다시 들어 보니 200%는 아니더라도 만족도 있는 연주가 됐습니다.” ‘리플렉션’이라는 앨범 제목에 대해서는 “이 앨범이 저를 투영하는 점도 있고, 통영 밤바다에 비친 달빛을 바라보며 간절한 소망을 되새겼던 기억도 담았다”고 말했다. 앨범과 리사이틀의 교집합은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쇼팽 주제에 의한 변주곡’ 등 라흐마니노프가 남긴 두 곡의 변주곡이다. 앨범엔 라흐마니노프가 단골 앙코르곡으로 삼았던 전주곡 C샤프단조 등 전주곡 2곡, 피아니스트 볼로도스가 편곡한 첼로 소나타 3악장, 라흐마니노프 자신이 편곡한 크라이슬러의 바이올린곡 ‘사랑의 슬픔’도 수록했다. 라흐마니노프에게 초점을 맞췄으면서 다른 다양한 음악가들의 체취가 깃든 선곡이다.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16세 때 미국에 가서 커티스 음악원의 세이모어 리프킨 교수께 처음 배운 곡이죠. 1948년 라흐마니노프 콩쿠르 우승자셨는데, 라흐마니노프에게 필요한 감성과 표현을 온전히 전달해 주셨어요. 무섭기로 유명했지만 전화를 드리면 ‘바빠도 네게 줄 시간은 있다’고 하시는 분이셨죠.” 리사이틀 전반부에는 브람스가 피아노 왼손만을 위해 편곡한 바흐 ‘샤콘’과 바흐 파르티타 2번 등 바흐의 두 곡을 연주한다. “하노버 음대의 베른트 괴츠케 선생님이 우스개로 라흐마니노프는 ‘바흐마니노프’다고 하셔요. 구조적이고 건축적인 느낌에서 두 작곡가는 비슷한 면이 있죠.” 밴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에서 그에게 우승을 가져다 준 곡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이었다. “라흐마니노프는 수많은 음색의 물감으로 다양하게 섞어 낼 수 있는 재료들을 만들어냈죠. 그 대신 피아니스트들에게 더 많은 고충도 안겨주었어요. 저는 한 손으로 10도(도에서 다음 옥타브 미까지)를 간신히 짚는데, 라흐마니노프는 네 음을 더 크게 짚을 수 있었다고 하죠. 하지만 어떤 부분들에선 신기하게 손에 잘 맞는 느낌도 듭니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는 그가 우승한 뒤 다음 회차인 2022년 임윤찬이 우승을 거머쥐며 2회 연속 한국인이 우승했다. “한국인들의 음악성과 음악에 대한 헌신은 해외에서 모두 인정하는 점이죠. 윗세대에 본받을 점이 많은 분들이 계셨고, 그 덕에 저희가 빛을 볼 수 있는 계기가 생겼습니다. 콩쿠르에서 우승하면 수많은 연주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고갈될 수도 있어요. 음악에 대한 시각을 늘 신선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하죠.” 서울 리사이틀은 10월 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4만∼10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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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클래식感]“클래식 음악을 신청해 듣는 카페가 한국에 있다고요?”

    “당신이 어릴 때부터 접한 음악이 서양의 클래식 음악이란 말이죠? 한국 사람들이 클래식에 친숙한가요?” “맞아요.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클래식 음악을 듣는 카페들도 있어요. 종이에 원하는 음악을 적어 내면 음악을 틀어주죠.” “아하, 말하자면 ‘클래식 디스코텍’ 같은 거로군요?” 나이 든 남성과 앳돼 보이는 동양인 여성이 TV 카메라 앞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남자는 영국 배우 마이클 플랜더스, 여자는 23세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다. 1971년 영국 BBC 화면. 정경화는 앙드레 프레빈 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와 함께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방송을 앞두고 영국 시청자 앞에서 소개의 시간을 가졌다. 전쟁이 끝나고 불과 18년이 흐른 아시아의 먼 나라에서 서양 음악을 듣는 광경을 묻는 대담자의 눈빛이 흥미롭다. 그 무렵엔 많은 일이 있었다. 1년 앞선 1970년, 정경화는 프레빈 지휘 LSO와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하며 런던 무대에 데뷔했고 바로 유명 음반사 데카에서 차이콥스키와 시벨리우스의 협주곡을 담은 데뷔 음반을 내놓았다. 이듬해인 1971년, 이 음반은 해외 대형 음반사와의 계약에 따라 국내에서 생산된 최초의 라이선스 클래식 음반이 됐다. 1971년 5월 6일 서울 시민회관(현재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동아일보사 주최로 런던 심포니 내한공연이 열렸다. 당시 소련의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일본의 도쿄 오사카 나고야를 거쳐 서울로 이어지는 무대였다. 시민회관에서 정경화는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다. 동아일보 기사는 ‘정 양은 팬들의 열광 속에 다섯 번이나 커튼콜에 응했다’고 뜨거운 분위기를 전했다. 3년 뒤인 1974년, ‘동토의 땅’ 소련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정경화의 동생인 21세의 피아니스트 정명훈이 차이콥스키 콩쿠르 공동 2위에 오른 것이다. 그는 대회 후 김포국제공항에 내려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펼쳤고 박정희 대통령이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이후 반세기가 지났다. 이달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정 트리오’ 콘서트가 열렸다. 트리오(3중주단)의 맏이인 첼리스트 정명화는 연주 현장에서 은퇴했고 75세가 된 정경화, 70세가 된 정명훈과 함께 중국 첼리스트 지안 왕(55)이 앉았다. 세 사람이 호흡을 맞춘 차이콥스키 피아노 3중주 A단조는 이들의 전성기처럼 예각(銳角)이 살아있는 연주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어떤 연주보다도 호흡은 자유로웠고 푸근했으며 피날레로 치닫는 절정은 처연했다. 많은 청중이 눈물을 글썽였다. 정명훈이 서울에서 카퍼레이드를 펼치고 2년 뒤인 1976년, 초등학생과 중학생 형제는 1950년대 동숭동 클래식 다방의 단골이었던 부모님과 함께 명동에 있는 백화점의 음반 코너에서 라이선스 음반 세 장을 샀다. 자신들이 고른 첫 클래식 음반이었다. 막냇동생은 지금 1971년 국내 최초로 발매된 라이선스 음반을 들고 있다.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굉장한 추억이군요! 한 음악 사랑꾼(music lover)이 또 다른 음악 사랑꾼에게, 정경화, 2002년 4월 19일.” 기자가 서울 서초구의 호텔에서 바이올리니스트를 인터뷰하며 받은 메시지다. 음반을 언제 샀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다시 20여 년이 흘렀다. 그들의 나라는 조성진과 임윤찬, 그 밖의 수많은 클래식 스타를 배출한 나라가 되었다.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주최하는 벨기에의 국영방송은 이 수수께끼의 나라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두 차례나 제작했다. 그 모든 일의 씨앗은 이 나라가 전쟁의 잿더미에서 비로소 일어나기 시작한 1970년대 초반에, 아니 그 이전에 마련되고 있었다. 반세기 전의 음악다방에서 커피 한 잔을 놓고 정경화가 연주하는 차이콥스키의 협주곡을 듣고 있었을 청년들을 생각해 본다. 그들의 모습 위에, 지난 세기말 보도자료를 들고 신문사 편집국을 찾아다니던 ‘정 패밀리의 어머니’ 모습이 겹친다. “어떻게 직접 다니십니까?”라고 물으면 “재주 있는 젊은 애들 일이라서…”라고 했다. 그가 들고 다니는 자료는 어린 유망 음악가들의 콘서트를 알리는 것이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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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바로티도 벌벌 무대공포증 예방-치유법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2007)는 생전 공연 전 눈에 띄게 떨곤 했다. 무대 밖에서 못을 발견하면 행운이 온다는 그의 믿음 때문에 공연 관계자들이 일부러 못을 흘려두기도 했다. 국내 한 바이올리니스트는 쾅쾅 소리가 날 정도로 등을 때려줘야 무대로 나가는 습관이 있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은 무대 공포증의 원인과 해결 방안을 살펴보는 패널 토크 ‘나를 만나는 시간―무대, 설렘과 공포 사이’를 16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이강숙 홀에서 연다. 윤동욱 YD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무대 공포 극복을 위한 근거 기반의 인지행동 치료 기법과 사례를 소개한다. 강경선 성신여대 음악치료학과 교수는 ‘빅파이브’ 이론(성격 요소를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친화성, 신경증으로 나눠 평가)을 바탕으로 성격에 맞는 치료 방법을 설명한다. 김수연 AT자세움직임연구소장은 바른 동작과 자세로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는 보디 매핑 학습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무용가 김다애, 한국무용가 김서량, 피아니스트 정지원도 참여한다. 조주현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장은 “실효성 있는 무대 공포증 치유 및 예방 방법과 정책 지원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선착순 200명 사전 등록 및 현장 등록이 가능하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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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휩쓸 K클래식의 미래 주역들

    제7회 동아주니어음악콩쿠르 본선 경연이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 종합문화관에서 9, 10일 열렸다. 동아일보사가 주최하고 서울교대와 라율아트홀이 후원한 이번 콩쿠르는 초·중·고등부의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부문으로 치러졌다. 8월 30일~9월 1일 예선을 거쳐 64명이 본선에 올라 각 부문 1위 12명 등 33명이 수상했다.중등부 피아노 부문에서 1위를 한 최지웅 군(15·선화예중 3년)은 “본선에서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 3번을 브람스답게 치는 데 노력했다. 관객에게 감탄과 감동을 주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올해 초등부 바이올린 1위 김민하 양(12·광명 광성초 6년)과 2위 김소현 양(12·부산 해강초 6년)에게는 바이올리니스트 고 이종숙(전 서울대 교수)을 기려 고 이종숙 교수 장학재단(회장 김광군 가천대 교수)이 수여하는 장학금 300만 원이 각각 지급된다. 입상자 중 일부는 서울 서초구 라율아트홀이 제공하는 무료 독주회 특전을 받는다.12일 오후부터 동아주니어음악콩쿠르 홈페이지(www.donga.com/concours/juniormusic)에서 채점표를 확인할 수 있다. 심사평도 함께 게재된다. 본선 연주 동영상은 10월 말경 유료로 서비스한다.다음은 수상자 명단.◇고등부 ▽피아노 △1위 장준호(18·홈스쿨링) △2위 민경배(17·선화예고 3년) △3위 최주니(16·서울예고 1년) ▽바이올린 △1위 권하나(15·서울예고 1년) △2위 정연우(17·서울예고 2년) 3위 장하윤(16·홈스쿨링) ▽첼로 △1위 조이한(17·서울예고 3년) △2위 안정빈(15·서울예고 1년) △3위 조수아(16·서울예고 2년) ▽플루트 △1위 박혜령(16·홈스쿨링) △2위 이채영(17·경북예고 2년) △3위 이효민(17·홈스쿨링) ◇중등부 ▽피아노 △1위 최지웅 △2위 강희지(15·예원학교 3년) △3위 황하준(14·부용중 2년) ▽바이올린 △2위 강하임(15·예원학교 3년) △3위 임주호(15·홈스쿨링) ▽첼로 △1위 박이준(14·예원학교 3년) 김태희(15·예원학교 3년) △3위 안준희(15·예원학교 3년) ▽플루트 △1위 홍희명(15·예원학교 3년) △2위 강예서(15·예원학교 3년) △3위 박지인(14·예원학교 2년)◇초등부 ▽피아노 △1위 유하람(11·광교초 5년) △2위 조승언(11·인천 송일초 5년) △3위 김하민(10·예일초 4년) ▽바이올린 △1위 김민하 △2위 김소현 △3위 이노아(12·숭의초 6년) ▽첼로 △1위 유채원(11·경기초 5년) △2위 고채원(10·내발산초 5년) △3위 배소율(12·서울서강초 6년) ▽플루트 △1위 이서현(12·내정초 6년)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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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은 햇빛-갈라진 땅의 질감… 오르간 협주곡에 담았어요”

    “매끄럽고 선명한 화음이 뿜어져 나오는 오르간의 색깔에 매혹돼 오르간 협주곡을 쓰기 시작했죠. 작업하면서 보다 다양한 음색들을 알게 됐고, 더욱 재미를 느끼게 됐습니다.” 작곡가 겸 지휘자 최재혁(29·사진)이 자신의 오르간 협주곡을 스스로 지휘해 선보인다. 최재혁은 10월 6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매일클래식 3―시간과 공간’ 콘서트에서 자신이 이끄는 실내악단 앙상블블랭크를 지휘한다. 초연곡인 오르간 협주곡 외 찰스 아이브스 ‘대답 없는 질문’, 스티브 라이시 ‘여덟 개의 선’ 등 20, 21세기 곡들과 이호찬이 협연하는 비발디 첼로 협주곡도 연주한다. 그는 2020년부터 오르간 협주곡을 구상했다. 작곡을 할 때 이 곡이 초연될 롯데콘서트홀의 음향을 상상했다. “롯데콘서트홀은 울림이 긴 편이어서 여러 소리를 섞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곡을 쓰고 싶었던 그 음향을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케스트라 버전도 함께 작곡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앙상블블랭크를 위한 실내악 버전을 선보인다. 20대 초반에 쓴 곡과는 다소 결이 다를 거라고 그는 말했다. “예전엔 비슷한 게 반복되면서 영원할 것처럼 느껴지는 음악을 썼습니다. 다른 걸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화가 마르코스 그리고리안(1925∼2007)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죠.” 가뭄이 와서 땅이 갈라진 듯한, 울퉁불퉁하고 금이 간 질감의 그림이었다. “폭력적일 수도 있는 이 텍스처를 음악으로 풀어보자는 생각에서, 속도감 있고 다양한 화성과 소음까지 곡에 집어넣게 됐죠. 예전에 가졌던 미학과 잘 섞어보자는 마음으로 작곡을 했습니다.” 시끄럽고 ‘폭력적’이기만 한 곡은 아니다. “이 곡을 쓰던 중 이탈리아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날씨도, 경치도 좋았어요. 그때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쳐 나왔죠. 화려하고 약간 붉은빛을 띤 그 빛을 소리로 나타내고 싶었어요. 그런 부분도 들어 있죠.” 최재혁은 미국 줄리아드음악원에서 석사를 취득했고 베를린 바렌보임-사이드 아카데미 아티스트 디플로마를 받았다. 2017년 제네바 국제 콩쿠르 작곡 부문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이자 역대 최연소로 우승했다. 지휘자로서 2018년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객석을 세 개로 나뉜 악단이 둘러싸는 슈토크하우젠의 ‘그루펜(그룹들)’을 유명 지휘자 사이먼 래틀 경 등과 함께 지휘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새로운, 익숙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표방하는 앙상블블랭크를 21세 때인 2015년 창단해 이끌고 있다. 2만∼5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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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인 러 피아니스트 아르세니 문, 伊 부소니콩쿠르 1위

    이탈리아 볼차노에서 3일(현지 시간) 폐막한 제64회 페루초 부소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아버지가 한국계(고려인)인 러시아 피아니스트 아르세니 문(24·사진)이 1등상인 부소니 상을 수상했다. 아르세니 문은 15년 동안 수상자를 내지 못한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상도 수상했다. 부소니 콩쿠르는 1949년 창설됐으며 한국인으로는 2015년 문지영, 2021년 박재홍이 우승한 바 있다. 미켈란젤리 상은 이탈리아의 세계적 피아니스트인 미켈란젤리를 기린 것으로 심사위원 전원이 합의해 수여한다. 아르세니 문은 “절반은 한국인으로 생각하지만 한국에 가본 적이 없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꼭 한국을 방문하고 연주도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6세 때 피아노를 시작했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거쳐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에 재학 중이다. 2016년 베르비에 페스티벌 특별상을, 2017년 폴란드 루빈스타인 추모 콩쿠르 1등상을 수상했다. 2019년부터 악기 제작사 야마하의 공식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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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결 닿을듯한 공간서 듣는 최정상 연주자들의 실내악

    연주자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공간에서 최고 연주자들의 실내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공연이 열린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인 ‘랑데부 드 라 무지크 페스티벌’(음악감독 김혜진 피아니스트)이 5∼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100석)과 리사이틀홀(354석)에서 네 차례 공연으로 펼쳐진다. 피아니스트 이진상 원재연 손정범,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 김유은 김재원, 비올리스트 김상진, 첼리스트 임재성 이호찬, 클라리네티스트 채제일, 호르니스트 김홍박과 현악 4중주단 리수스 콰르텟, 이든 콰르텟 등이 출연한다. 올해 페스티벌 주제는 ‘LIFT:비상(飛上)’. 김 감독은 “국내 초연 작품과 친숙한 실내악 작품까지,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를 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첫째 날인 5일에는 인춘아트홀에서 오프닝 콘서트 ‘랑데부 살롱’이 열린다. 18세기 프랑스 바이올리니스트 볼로뉴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로 시작해 손정범과 이든 콰르텟이 협연하는 슈만의 피아노 5중주로 문을 닫는다. 둘째 날인 9일 리사이틀홀에서 열리는 콘서트는 ‘슈베르트와 말러: 그리움’이 주제다. 말러의 학창 시절 작품인 피아노 4중주, 현악과 관악이 어우러진 슈베르트의 8중주 D.803 등을 선보인다. 셋째 날인 12일은 인춘아트홀에서 국내 초연곡인 캐럴라인 쇼의 ‘천 번째 오렌지’ 피아노 4중주를 포함해 모차르트의 피아노 4중주 1번, 브람스의 4중주 2번 등 세 곡의 피아노 4중주를 연주한다. 마지막 날인 13일은 ‘경이로운 환상’이 주제다. 인춘아트홀에서 이호찬의 첼로와 원재연의 피아노로 연주하는 베토벤 ‘헨델 변주곡’으로 시작하며 리수스 콰르텟이 국내 초연곡인 폴 비앙코의 현악 4중주 ‘리프트’를 선보인다. 5, 12, 13일 전석 5만 원, 9일 3만∼5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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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 이유로 차이콥스키 배척하는 건 파괴적 포퓰리즘”

    “전쟁이 터진 날, 저는 볼로냐에서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를 리허설했습니다. 두 번째 악장은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경의입니다. 그때 나는 음악이 휴머니즘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지휘자 옥사나 리니우(45)가 처음 한국을 찾는다. 이탈리아 볼로냐 시립극장 음악감독으로 재직 중인 그는 1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 등을 연주한다. 리니우는 뮌헨 바이에른 국립오페라에서 키릴 페트렌코의 보조지휘자로 일했고 오스트리아 그라츠 오페라와 필하모니 수석지휘자를 지냈다. 2021년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바그너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지휘하며 이 축제 145년 역사 최초의 여성 지휘자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그는 잇따라 전쟁의 참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며 세계인의 여론을 환기했다. 학교 합창단 지휘자로 일하며 폭격에 대비해 위장망을 만드는 자신의 아버지, 크레인을 운전하고 바리케이드를 만드는 남자 형제의 모습도 전했다. 그의 발언은 전쟁의 참상을 종식시키자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토론과 교류, 국가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유럽식 연대에 있기를 바랍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에 수립한 것 같은 경찰 독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한때 러시아 음악을 배척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그는 간명한 표현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화학자 멘델레예프가 러시아인이라고 해서 원소 주기율표를 폐기하자는 사람은 없죠.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이 더 손쉬운 희생제물일 겁니다. 파괴적인 포퓰리즘 아닌가요?” 리니우는 볼로냐 시립극장 연주와 뮌헨, 베를린 등 서방 도시의 객원지휘를 맡는 한편으로 전쟁 중인 고국을 오가며 우크라이나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다. 그가 2016년 창단한 악단이다. “전쟁이 터지자 서방에서 활동 중인 러시아 음악가들을 비롯해 여러 예술가들이 도움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예전보다 더 많이 서방 음악가들과 교류하고 있죠.” 이번 내한 연주 첫 곡은 우크라이나 작곡가 예브게니 오르킨의 ‘밤의 기도’다. 전쟁 희생자들을 기리는 곡으로 간명한 선율에서 시작해 긴장감을 쌓아가며 장대한 절정을 이룬다. 올해 3월 리니우가 지휘하는 우크라이나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도이치 오퍼 베를린에서 세계 초연했다. 두 번째 곡으로는 아르메니아 작곡가 아람 하차투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2000년 시벨리우스 콩쿠르, 200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인 세르게이 하차투랸이 협연한다. ‘바이올리니스트 하차투랸’은 이 곡의 가장 열정적인 해석가로 꼽히지만 작곡가와 인척관계는 아니다. 끝곡으로는 ‘러시아인’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이 연주된다. 진한 러시아 감성이 묻어나는 ‘가을 교향곡’으로 인기를 끄는 작품이기도 하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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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살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 티보르 버르거 콩쿠르 우승

    열네 살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이 2일 스위스 시옹에서 폐막한 2023 티보르 버르거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1위와 주니어 심사위원상, 위촉곡 최고 해석상을 수상했다. 김서현은 1위 상금 2만 스위스 프랑(약 2984만 원)과 특별상 상금 3500프랑(약 522만 원)을 받는다.티보르 버르거 콩쿠르는 1967년 창설됐으며 한국인으로는 고 김남윤(1974년)을 시작으로 박지윤(2004년), 양정윤(2005년), 송지원(2015년)을 우승자로 배출했다.이번 콩쿠르의 최연소 본선 진출자인 김서현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대부분의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는 연령 제한으로 지원할 수 없는데 티보르 버르거 콩쿠르는 만 26세 이하 누구나 지원할 수 있어 도전하게 됐다. 훌륭한 음악가들을 직접 만나고 함께 연주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밝혔다.예원학교에 재학 중인 김서현은 2022년 토머스 앤 이본 쿠퍼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했다. 2020년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했고, 2023년 금호영재오프닝콘서트에서 연주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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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외모서 취향까지 ‘정상’ 강요하는 사회는 정상일까

    추석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친지들의 갖가지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이 기다릴 것이다. “관리 좀 해서 ‘정상 체중’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니?”, “남들처럼 (정상적인) 취직, 결혼 안 할 거니?” …. 그런 ‘정상’이란 무엇일까? 영국의 여성 의료사학 박사인 저자는 ‘정상이란 만들어진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불과 두 세기 남짓 전인 1800년 이전에 ‘정상(normal)’이란 단어는 직각을 가리키는 수학 용어였을 뿐 다른 의미는 없었다. 1835년 벨기에 통계학자 케틀레는 천문학에서 행성 궤도 예측에 사용되던 종(鐘)형 곡선의 정규분포 개념을 인체 측정치에 적용했다. 그는 “이상(정상)적 신체에는 도덕적 정신이 수반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인 골턴의 우생학은 백인 상류 계급을 이상화하며 노동자 계급과 유대인 등에게는 출산을 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세기 초 미국 보험사들은 수익을 높이기 위해 ‘정상’ 체중과 혈압 등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표준은 주요 고객인 부유한 미국 백인이었다. 이런 사정은 한 세기가 지나도록 달라지지 않았다. 2010년, 미국 과학자 세 명은 오늘날의 과학 규범이 소수의 ‘괴상한(weird)’ 집단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바로 교육 수준이 높고 산업화된 부유한 민주주의 세계의 구성원들이다. 이들은 세계 인구의 12%에 불과하지만 심리학 연구 대상의 96%, 의학 연구 대상의 80%를 차지하며 거의 모든 경우 백인 남성으로 가정된다. 백인 남성에게 ‘정상’인 체질량지수(BMI)나 혈압을 아시아인에게 적용하면 당뇨병과 심장병 위협에 노출되기 쉬워진다. BMI 자체가 두 세기 전 케틀레가 고안한 방정식에 기초한 것이었다. 저자의 연구는 의학사와 신체 통계에서 시작하지만 정상을 강요받는 것이 몸만은 아니다. 심리상태나 성욕부터 가족관계까지 특정 집단의 표준이 ‘정상’으로 지배력을 행사한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좋은 계급의 남자는 자제력을 가진다’고 선언되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건 하류 계급과 여성의 것으로 천시됐다. 19세기 말 영국에서는 한 여성이 모자 쓰기를 거부하자 ‘정신병’으로 치부됐다. ‘정상적인’ 성생활은 결혼과 이성애를 의미했고 여기서 제외되는 행위는 늘 금기로 탄압을 받았다. 백인처럼 ‘정상적으로’ 머리를 펴지 않은 흑인 여학생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여러 나라에서 지금도 발생한다. 학창 시절 말 없는 ‘왕따’였다고 스스로 밝히는 저자는 과거 두 세기 동안 세계에서 벌어진 ‘표준화’가 보건과 복지 전반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했음을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상’의 강조가 울타리 밖의 ‘비정상’을 배제시키고 소외시킨다는 그의 주장은 되돌아볼 가치가 크다. 옷차림부터 차량 색깔, 미용법, 자녀의 학원까지 남에게 맞춰야 한다는 강박이 훨씬 큰 우리 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지적일지도 모른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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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스톤 밸브 없는 ‘바로크 트럼펫’ 매력 느껴보세요

    공연 포스터에 나온 그의 트럼펫은 지금까지 흔히 보던 트럼펫과 다르다. 오른손으로 누르는 세 개의 피스톤 밸브가 없다. 중간 부분만 구부려 둘둘 만 기존의 트럼펫과 달리 몸통 전체가 클립처럼 말려 있다. 벨(소리가 나오는 부분)도 더 작다. 국내 무대에서 보기 힘든 바로크 트럼펫의 매력을 알리는 리사이틀이 열린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29일 열리는 정인기 귀국 바로크 트럼펫 독주회다. “바로크 트럼펫은 바로크 이전 음악들을 연주하기 적합하게 개발된 트럼펫이죠. 바로크 시대의 ‘내추럴 트럼펫’과 모양이나 음색이 비슷하지만 3, 4개의 구멍이 뚫린 점에서 실제 바로크 시대에 사용된 악기와는 약간 다릅니다.” 트럼페터 정인기(33)의 설명이다. 대학에서 트럼펫을 전공한 그는 트럼펫 온라인 카페에 가입하면서 바로크 트럼펫의 매력을 알게 됐다. 독일 트로싱엔 음대에서 바로크 트럼펫을 배웠고, 이 학교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바로크 트럼펫이 개발된 것은 밸브 없는 내추럴 트럼펫의 음정이 정확하지 않은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였죠. 현대의 피스톤 트럼펫보다 연주하기 어렵지만 더 둥글고 따뜻한 소리를 냅니다. 바로크 음악 특유의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어요.” 기본음도 현대의 트럼펫보다 한 옥타브 낮다. 같은 음역에서 밸브 없이 더 많은 음을 내기 위해서다. 그는 입술을 대는 마우스피스에 바로크 시대와 현대 악기 마우스피스의 특징을 조합해 제작한 것을 쓴다. 이번 독주회에서는 비버의 소나타 C장조와 코베트의 소나타 C장조 등 바로크 트럼펫 연주 외에 베르디의 ‘아다지오’와 고전주의 시대 체코 작곡가인 피알라의 ‘디베르티멘토’를 19세기 악기인 ‘키 트럼펫’으로 연주한다. 정인기는 키 트럼펫으로 연주하는 피알라의 곡을 특히 귀 기울여 들어보길 권했다. “키 트럼펫은 내추럴 트럼펫에서 밸브 트럼펫으로 가는 과도기에 실험적으로 만들어진 악기죠. 오늘날 보기 드문 이 악기로 낼 수 있는 모든 기교를 다 활용한 곡입니다.” 그는 “국내에 현악기를 비롯한 다른 바로크 악기 연주는 많이 보급됐지만 바로크 금관악기 연주는 드물다. 앞으로 독주와 앙상블 활동을 통해 바로크 트럼펫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반주는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최현정 등 바로크 현악연주자들과 바로크 건반악기 연주가 최현영이 맡는다. 트럼페터 김낙영이 프란체스키니의 ‘두 대의 트럼펫을 위한 소나타’에, 소프라노 김정인이 갈루피의 ‘명예의 나팔소리에’에 함께 한다. 전석 2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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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 음악가 감성 넣은 ‘돈조반니’… 콘서트 오페라 색다른 무대 펼쳐져

    “젊은 성악도들은 대체로 무대에 설 기회를 얻기가 힘든데, 이 과정을 통해 지휘 연출 등 여러 분야의 교육생과 협업해 볼 수 있었죠. 다양한 성격의 레슨을 집중적으로 들을 수 있었던 점도 매우 유익했습니다.”(바리톤 홍지훈) 국립오페라단이 운영 중인 국립오페라스튜디오에서 교육받은 성악도 등 젊은 음악가들이 모차르트 오페라 ‘돈조반니’를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공연한다. 29일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장천홀. 국립오페라스튜디오는 국립오페라단이 음대 졸업생 이상의 젊은 음악인을 대상으로 성악 지휘 음악코칭 연출 등을 매주 20시간 이상씩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2021년 1기를 모집해 문을 열었고 올해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부문 우승자인 김태한이 거쳐 간 코스로 주목받았다. 이번 콘서트 오페라 ‘돈조반니’에는 올해 3월부터 8월까지 국립오페라스튜디오 3기 과정을 이수한 16명이 참여한다. 연출 과정을 밟은 3명이 장면별로 각각 개성 있는 무대를 펼친다. 서울시 오페라단장을 지낸 연출가 이경재가 총괄연출을 맡았고, 김봉미가 이끄는 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았다. 국립오페라스튜디오 지휘 과정을 함께 이수한 김리라가 부지휘자로 참여한다. 이번 공연의 연출 3명 중 한 사람인 연출 과정 김진휘 씨는 “교육 이후 국립오페라단이 지방에서 공연하는 모차르트 ‘마술피리’에 조연출로 참여하면서 여러 극장의 상황에 따라 진행 상황이 바뀌는 멋진 경험을 했다. 스스로 부쩍 성장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서상화 국립오페라단 교육문화팀장은 “성악 레슨뿐 아니라 오페라 코칭, 외국어 딕션, 연기법 등 실제 무대에서 필요한 전문 강좌를 비롯해 오페라 인문학 등 교양강좌까지 운영해 전문 공연 예술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4대 보험과 교통비, 식대를 포함해 교육비를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는 8월부터 12월까지 4기 과정이 진행 중이며 내년부터는 기간을 늘려 1년씩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서 팀장은 올해 3기 과정을 이수했던 김태한에 대해 “실력도 실력이지만 너무도 성실하게 전 과정을 이수한 학구적인 성악가였다”고 말했다. 올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등으로 입상하고 김태한과 함께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참가해 5등을 한 베이스 정인호도 지난해 2기 과정에 참여했다. 29일 콘서트 1만∼2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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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국 팬 앞에서 연주 때마다 설레… 잔잔한 슈베르트, 함께 만나시죠”

    윌리엄 윤(William Youn). 피아노 음악에 관심 있는 세계의 음반애호가들을 설레게 하는 이름이다. 이 이름으로 피아니스트 윤홍천(41)이 2017년 독일 음반사 욈스에서 발매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음반은 음반전문지 그래머폰의 ‘편집자의 선택’에 오르며 ‘천부적이고 지적이며 정직하고 맹렬할 정도로 음악적인 연주’라는 격찬을 받았다. 지난해 2월에는 세 장으로 구성한 슈베르트 소나타 전곡 음반을 소니 레이블로 내놓으면서 독일 음반전문지 포노포룸으로부터 ‘결함 없이 완벽하게 구현된 자연스러움’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최근 평창대관령음악제와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클래식 레볼루션’에 출연하며 고국 팬들과 접촉면을 넓힌 그가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 ‘M 소나타 시리즈’ 무대에 혼자 선다. 23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슈베르트의 소나타 15번으로 시작해 슈베르트의 소나타 18번으로 프로그램을 닫는다. 그를 지난달 25일 리사이틀이 열리는 아트홀 맥 무대 위에서 만났다. ―슈베르트의 소나타는 대체로 느긋하고 장대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이번에 연주할 두 곡에 대해 설명해 주시죠. “소나타 D. 894(18번)는 마치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 같은, 시골의 소박한 풍경을 보는 것 같은 곡이죠. 천상에서 멜로디가 떨어지는 것처럼 정말 아름답습니다. 렐리크(유작) 소나타로 불리는 D.840(15번)은 어떤 사람들은 미완성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이게 완성된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다른 음악이 붙여질 수 없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죠. 음악이 베토벤에게 종교 같은 것이었다면 슈베르트는 삶을 그냥 얘기처럼 풀어나가는 것 같아요.” ―리사이틀 중간에는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와 레날도 안의 가곡을 편곡한 작품들을 넣었습니다. “네, 저는 낭만주의 후반의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를 사랑합니다. 마침 내년이 포레의 서거 100주년이자 레날도 안의 탄생 150주년이죠. 올해 초 안의 피아노 협주곡을 녹음했어요(발렌틴 우류핀 지휘,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협연·2024년 1월 소니 발매 예정). 그런데 앨범에 시간이 10분 정도 남아서 이 곡들을 편곡해 넣었죠.” 흔히 그렇듯 그가 피아노를 시작한 계기도 우연이었다. “유치원 때 피아노를 치는 선생님 모습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 노는 시간에 제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대요. 선생님이 어머니께 그 얘기를 하셔서 배우게 됐죠.” 그렇게 인연이 된 피아노로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와 예원학교를 수석으로 들어갔다. 열세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뉴잉글랜드음악원에서, 다시 유럽으로 옮겨 독일 하노버 음대와 이탈리아 코모 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지금은 독일 뮌헨의 대학가 슈바빙에 산다. ―해외에서 연주하는 것과 고국에서 연주하는 건 느낌이 다르겠죠. “한때 한국에서 연주하는 데 부담이 있었어요. 외국에서는 청중이 마음 편하게 듣는데 한국 청중은 우선 비교를 많이 하거든요. 예전에 외국인 친구와 함께 고국에서 연주하면서 무대 뒤에서 제가 ‘한국 청중은 달라, 빨아들이는 에너지가’ 하고 말했죠. 그 친구가 첫 곡을 치고 들어오면서 ‘정말 그래!’ 하더군요. 하지만 지난해 40대가 되면서 고국 무대에 대한 갈망이 커지는 걸 느끼고 있어요. 연주 때마다 설레고 기쁩니다.” 3만3000∼5만5000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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