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

이지윤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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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mail@donga.com

취재분야

2026-02-23~2026-03-25
역사25%
문화 일반23%
미술21%
인사일반15%
문학/출판6%
음악4%
요리/음식4%
언론2%
정치일반0%
  • [책의 향기]도시에도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 청계천은 점심 때가 되면 주변 직장인과 주민들로 활기를 띤다. 1년 365일, 인간은 물론이고 청둥오리의 쉼터가 돼주는 청계천은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차들이 달리는 복개도로였다. 당시 청계천은 대기오염의 발원지이자 역사유적이 함몰된 공간, 노후화된 상업지로 인식됐다. 그랬던 청계천이 2005년 ‘걷고 싶은 거리’로 돌아왔다. 시민에게 ‘도시에 살 권리’를 돌려준 것이다. 책은 도시의 조건을 다시 정의하는 데서 출발한다. 저자가 말하는 도시란 구역 내 어디에 살든 집, 일자리, 상점, 병원, 학교, 문화시설 등 6가지 사회적 필수기능건물에 도보 및 자전거로 15분 내에 이동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도시 속 중심축을 늘리고 하나의 건물에 여러 기능을 부여하면 도시로서의 조건을 갖출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사람과 동식물이 숨쉴 수 있도록 무분별한 개발을 멈추고 자연을 돌려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프랑스 파리시 도시정책고문이자 파리 제1대학 팡테옹-소르본의 교수다. 세계 대도시들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구성한 협의체인 ‘C40 도시기후리더십그룹’이 감염병과 기후위기를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전략으로 채택한 ‘15분 도시, 30분 영토’ 개념을 창안한 인물이다. 그는 주거 양극화, 자원 고갈 등 각종 문제가 곪아터진 세계 도시들이 이타주의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고민한 결과를 책에 담았다. 유엔 경제사회국(DESA)은 2050년까지 지구상에 거주하는 83억 인구 중 약 60억 명이 도시에 살 것으로 예측한다. 세계는 대부분 도시화됐고 도시생활 관련 문제는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가 됐다. 지구에서 도시들이 차지하는 표면적은 2%에 불과하지만 그곳에 인구 절반이 모여 살며 전 세계 에너지의 78%를 소비한다. 저자는 “살아있는 도시를 만든다는 것은 물과 공기, 성찰과 침묵 등 공동의 자산을 되찾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구 밀도가 높은 수도권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다수의 현대인에게 좀 더 건강한 생활을 위해선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이웃과 소통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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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 챙기기 엄마처럼…”

    “공연은 종합예술이에요. 엄마처럼 두루두루 잘 챙기고 섬세하게 다루는 게 중요합니다. 그 지점에서 제가 빛을 발한 게 아닐까요.”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13일 만난 김미혜 샘컴퍼니 대표(53)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남성 공연제작자들이 넘쳐나는 공연계에서 손에 꼽는 여성 프로듀서다. 지난달 열린 제7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선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로 박명성 신시컴퍼니 예술감독, 신춘수 오디뮤지컬 대표 등 쟁쟁한 남성 후보들을 제치고 박민선 스튜디오 선데이 대표와 함께 창작부문 프로듀서상을 받았다. 지난달 막을 내린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1996년 국내 초연 이후 서울 공연 기준 역대 최고 매출을 냈다. 김 대표는 1991년 뮤지컬 ‘넌센스’로 데뷔한 배우 출신이다. 계원예고와 성균관대 무용과를 졸업한 뒤 ‘넌센스’의 발레리나 수녀 역으로 공연계 첫발을 뗐다. 배우로 활약하던 그는 고교 동창이던 배우 황정민(53)과 2004년 결혼한 뒤 ‘같이 무대를 직접 만들어보자’는 꿈을 꾸준히 키워나갔다. 그리고 2010년 공연 제작사 겸 연예기획사를 세웠다. “우리가 만든 공연으로 신인 배우를 키워 영화, 드라마로 진출시키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던 신인 시절에는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고 싶단 꿈도 있었지만 좌초됐거든요. 방법을 몰랐고 기회도 없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회사를 꾸렸습니다.”‘천만 배우’의 아내이지만 무엇 하나 쉽게 이룬 것은 없었다. 2004년 결혼 당시 그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여주인공 페기 소여를 맡아 연기했다. 결혼식 이틀 전, 그는 부산에서 낮 공연과 저녁 공연을 모두 끝낸 다음 날에야 서울로 돌아왔다. 임신 6개월 차엔 출연 배우의 사정으로 지방 공연이 펑크 났을 때 대역을 서기도 했다.“프로듀서로서 첫 작품은 ‘넌센스’ 시리즈였어요. 그땐 홍보 전단을 아파트 꼭대기에서부터 집집마다 붙이면서 내려왔어요. 경비원에게 의심받지 않으려고 비싼 모피코트를 입고 뛰어다녔죠. 전화로 티켓을 예매하던 시절이라 제법 성공률이 높았습니다. 하하.” 차기작은 다음 달 31일부터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연극 ‘파우스트’다. 괴테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배우 유인촌, 박해수가 주연을 맡았다. 그는 “어려운 글도 배우들의 대사로 들으면 이해가 잘 되고 금세 애정이 생긴다”며 “가장 아름다운 희곡이라고 생각하는 ‘맥베스’를 무대에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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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 늦어져도… 배우 바뀌어도… ‘나 몰라라’ 뮤지컬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 뮤지컬 ‘베토벤’이 배우 사정으로 시작 시간이 20분 지연됐다. 이날 공연은 오후 2시 반에 진행될 예정이었다. 결국 관객들은 좌석에서 멍하니 20분간 대기해야만 했다. 제작사는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별도의 보상은 없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소비자분쟁해결 기준상 공연의 경우 ‘30분 이상 지연 시 보상’이라고 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EMK 관계자는 “초과 주차비는 현금으로 지급했다”고 밝혔다. 최근 국내 뮤지컬 제작사들이 공연 지연, 캐스팅 당일 변경 등이 발생해도 관객에게 제대로 배상하지 않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엔데믹으로 접어들며 공연계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각종 사고가 발생하는 데다 이에 대한 대책도 부실해 관객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사과문만 덩그러니 게재 지난해 성탄절에는 뮤지컬 ‘물랑루즈’가 기계 결함으로 공연이 중단됐다. 2막 공연 중반 크리스티안과 사틴이 넘버 ‘크레이지롤링’을 부르던 중 갑자기 노래가 끊기고 공연장 불이 켜진 것. 결국 “기계 결함으로 잠시 공연을 중단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 뒤 3분간 기기를 정비한 후 공연이 재개됐다. 제작사인 CJ ENM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불편을 끼쳐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사과문만 올렸을 뿐 별도의 보상은 없었다. 관련 게시물엔 항의성 댓글 80여 개가 달렸다. 주연 배우가 갑작스럽게 교체돼도 보상은 취소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데 그친다. 뮤지컬 ‘스위니토드’는 지난달 17일과 이달 9일 각각 러빗 부인 역과 토비아스 역의 배우가 건강상의 이유로 공연에 참여하지 못해 공연 당일 배우가 변경됐다. 보상은 예매 환불·취소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건 소비자분쟁해결 기준상 제작사의 보상 기준이 ‘자율’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공연이 30분 이상 지연·중단되면 티켓 값 110%를 배상해야 하지만 30분 미만일 경우 제작사가 자율적으로 보상안을 결정한다. 주요 출연자가 바뀔 때도 자율적으로 110%를 돌려주게 돼 있다. 지난달 13일 음향기기 오류로 공연이 30분 지연된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경우 1막까지만 본 후 환불을 요청한 관객에게 제작사 쇼노트 측이 티켓 값의 110%를 돌려줬다.●해외에선 ‘프리뷰 공연’으로 완성도 높여 제작사들은 사고가 날 때마다 관객에게 배상할 경우 손실이 클 뿐 아니라 사고의 유형과 규모가 천차만별이라 범주를 정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쇼노트 관계자는 “초연은 회당 들어가는 제작비가 막대하다. 전석 매진돼도 남는 게 많지 않아 환불까지 해주면 부담이 크다”고 밝혔다. 또 다른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무대장치 결함, 배우 컨디션은 예측이 어렵고 사고의 경중을 계량화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해외 역시 환불이 수월하진 않지만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는 ‘프리뷰 제도’를 운영해 사고에 대비한다. 프리뷰는 본공연 전에 미리 문제점을 파악해 보완하기 위한 시범공연으로, 관객은 대신 저렴한 가격에 공연을 볼 수 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파이더맨’은 2010년 초연 당시 안전을 이유로 프리뷰만 무려 7개월간 진행됐다. 국내에서는 일부 작품의 경우 프리뷰를 2∼4일 정도 하고 티켓을 할인해주고 있다. 원종원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프리뷰를 통해 모든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사고 유형을 파악하고 완성도도 높일 수 있다”며 “국내는 시장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탓에 단기공연 위주로 열려 제작사들은 프리뷰에 관심이 없고 치열한 티켓 예매 전쟁에 지친 팬들은 이해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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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비원 의심 피하려…모피코트 입고 전단지 붙이러 다니기도 했죠”

    “공연은 종합예술이에요. 엄마처럼 두루두루 잘 챙기고 섬세하게 다루는 게 중요합니다. 거기서 제가 빛을 발한 게 아닐까요.” ‘남초’ 공연계에서 손에 꼽는 여성 프로듀서인 김미혜(53) 샘컴퍼니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올해 열린 제7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그는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로 박명성, 신춘수 등 쟁쟁한 남성 후보들을 제치고 박민선 스튜디오 선데이 대표와 함께 창작부문 프로듀서상을 받았다. 지난달 막을 내린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1996년 국내 초연 이후 서울 공연 기준 역대 최대 매출을 냈다. 13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운이 좋았다”며 소탈하게 웃었지만 그 뒤엔 쉼 없는 뜀박질이 숨어있었다. 김 대표는 1991년 뮤지컬 ‘넌센스’로 데뷔한 배우 출신 프로듀서다. 계원예고와 성균관대 무용과를 졸업해 ‘넌센스’의 발레리나 수녀 역으로 첫발을 뗐다. 공연예술에 대한 애정은 서울 종로구 대학로 근처에서 학교를 다니며 자연스럽게 깊어졌다. 그는 “극장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기본으로 갔다”며 “나중에 직접 출연까지 하게 된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은 당시 한 시즌에만 30번을 봤다”고 했다. 배우로 활약하던 그는 2010년 공연 제작 겸 배우 매니지먼트 회사를 차리게 된다. 샘컴퍼니는 배우 박정민과 강하늘, 김도훈 등을 발굴해낸 소속사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배우 황정민과 2004년 결혼한 뒤 이들은 ‘같이 무대를 직접 만들어보자’는 꿈을 꾸준히 키워나갔다. “우리가 만든 공연으로 신인 배우를 키워 대중매체로 진출시키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뮤지컬 배우 초반에는 TV나 영화에 진출하고 싶단 꿈도 있었지만 좌초됐거든요. 방법을 몰랐고 기회도 없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회사를 꾸렸습니다.” 유명인의 아내지만 무엇 하나 쉽게 이룬 것은 없었다. 2004년 결혼 당시 그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열연하는 중이었다. 결혼식 이틀 전, 그는 부산에서 낮 공연과 저녁 공연을 모두 끝내고 다음날에야 서울로 돌아왔다. 예식장에서 ‘딱 한 가지’ 준비해달라던 흰색 스타킹을 살 시간조차 없어 동네 편의점에서 급하게 구했다. 임신 6개월 차엔 지방 공연이 펑크났을 때 대역을 서주기도 했다. 2010년 회사 법인을 설립한 뒤엔 몸으로 뛰었다. “작품 홍보 전단지를 아파트 꼭대기에서부터 집집마다 붙이면서 내려왔어요. 경비원에게 의심받지 않으려고 비싼 모피코트를 입고 뛰어다녔죠. 전화로 티켓을 예매하던 시절이라 제법 성공률이 높았습니다(웃음)” 프로듀서로서 첫 작품은 데뷔작인 ‘넌센스’ 시리즈였다. 가장 잘 아는 작품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고, 오래된 작품이지만 시대에 꼭 맞게 바꾸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작품 기획 단계부터 배우를 염두에 뒀다. 배우를 작품에 끼워 맞추는 대신 그에 맞게 작품 색깔을 조정했다. 그는 “배우로 키워준 조민 뮤지컬컴퍼니대중 대표가 2009년 별세 직전 ‘같이 넌센스 연출해보자’던 제안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한 게 마음의 빚이 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제작사 대표임에도 불구하고 수익성보단 작품 완성도에 무게를 둔다. 라이선스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원작 제작사를 1년간 설득한 끝에 무대를 재창작했다. 코미디 장르 특성상 한국어 대사와 넘버를 현지화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무대 회의만 54번, 각색 회의는 20번 가까이 했다. 온갖 작품 레퍼런스를 휴대폰에 저장해둔 탓인지 최근엔 고장이 났다. 그는 “여러 변수 때문에 작품은 예상보다 잘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지만 잘 만든 작품은 언젠간 통한다”고 했다. 차기작은 다음달 31일부터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파우스트’다. 괴테 희곡이 원작으로 배우 유인촌, 박해수 등이 주역을 맡는다. 사람들이 연극을 통해 좋은 작품에 더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선정했다. “어려운 글도 배우들의 대사로 들으면 이해가 잘 되고 금세 애정이 생겨요. 가장 아름다운 희곡이라고 생각하는 ‘맥베스’를 무대에 올려보는 것이 목표입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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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라이맥스서 멈췄는데 사과문이 전부?…뮤지컬업계, 배상 ‘나몰라라’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 뮤지컬 ‘베토벤’은 배우 사정으로 공연이 예정보다 20분간 지연됐다. 이로 인해 공연을 보러온 관객들은 좌석에서 멍하니 20분간 대기해야만 했다. 심지어 제작사측의 공연 지연 안내는 예정됐던 본 공연을 고작 10여분 앞두고 이뤄졌다. 지방에서 온 일부 관객은 돌아갈 차편 시간 등의 이유로 커튼콜을 못 본 채 뛰어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보상은 없었다. 제작사측의 사과문이 전부였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상 ‘30분 이상 지연 시 보상’이란 이유에서다. EMK 관계자는 “초과 주차비는 현금으로 지급했다”고 했다.최근 국내 뮤지컬 제작사들이 공연 지연, 캐스팅 당일 변경 등 사고가 벌어져도 관객에게 제대로 된 배상 없이 ‘나 몰라라’ 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VIP석 장당 20만 원에 육박하는 고가의 티켓 값을 감수하면서도 공연을 관람하는 팬덤 수요 덕분에 팬데믹 이후 회복된 시장의 호황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실한 대책 탓에 불만이 커지고 있다. ●공연 클라이맥스서 멈췄는데 사과문만 덩그러니공연이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사고는 부지기수다. 지난해 성탄절에는 뮤지컬 ‘물랑루즈’가 기계 결함으로 공연이 중단되기도 했다. 2막 공연 중반부쯤 갈등이 절정으로 치달은 크리스티안과 사틴이 넘버 ‘크레이지롤링’을 부르던 중 갑자기 노래가 끊기고 공연장 불이 켜진 것. 결국 공연은 중단됐고 “기계 결함으로 잠시 공연을 중단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 뒤 3분간의 기기 정비 끝에 공연이 재개됐다.제작사인 CJ ENM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불편을 끼쳐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사과문만 올렸을 뿐 이날 이후 보상은 없었다. 관련 게시물엔 항의성 댓글 80여 개가 달렸다.주연 배우가 갑작스럽게 교체됐을 때도 취소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수준에 그친다. 뮤지컬 ‘스위니토드’는 이달 9일과 지난달 17일 각각 러빗부인 역과 토비아스 역 배우가 건강상의 이유로 공연 당일 변경됐다. 보상은 예매 환불·취소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오디컴퍼니는 “별도 보상이 없는 데 대한 공식 입장은 없다”고 했다.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배경에는 소비자분쟁해결기준상 제작사의 보상 기준이 ‘자율’에 맡겨져 있다는 점이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공연이 30분 이상 지연·중단되면 티켓 값 110%를 배상해야 하지만 30분이 지나지 않았다면 제작사가 자율적으로 보상안을 결정한다. 주요 출연자가 바뀔 때도 자율적으로 110%를 돌려주게 돼있다. 지난달 13일 음향기기 오류로 공연 시작이 30분 지연된 쇼노트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경우 인터미션까지 환불을 요청한 관객에게 티켓 값의 110%를 돌려줬다.●해외에선 ‘프리뷰 공연’으로 관객과 합의제작사들은 사고마다 일일이 관객에게 배상할 경우 손실이 클 뿐 아니라 실시간 공연 특성상 사고의 유형과 규모가 천차만별이라 범주를 나누기도 힘들단 입장이다. 쇼노트 관계자는 “특히 초연일 경우 회당 들어가는 제작비가 막대하다”며 “해당 회차 티켓을 전부 팔아도 남는 게 많지 않아 환불까지 해주면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무대장치 결함, 배우 컨디션 등은 예측이 어렵고 사고의 경중을 계량화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며 “이는 해외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다만 국내 공연계의 수익 창출의 큰 축이 스타캐스팅을 토대로 한 두터운 팬덤이란 측면에서 철저한 관객 보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스타캐스팅, 해외 라이선스 등에 지불하는 막대한 비용을 값비싼 티켓으로 충당한다. 2000여 석 안팎 규모 대극장에서 열리는 뮤지컬의 VIP석 가격은 15~19만 원까지 치솟았다. 해외 역시 환불이 수월하진 않지만 ‘프리뷰 제도’를 운영해 사고에 대비한다. 본공연 전에 미리 문제점을 파악하고 보완하기 위한 시범공연으로 관객은 대신 저렴한 가격에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파이더맨’은 2010년 초연 당시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자 프리뷰만 7개월을 했다. 원종원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프리뷰를 통해 모든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공연은 실시간 예술’이라는 암묵적 합의를 이끌어낸다”며 “수익성 높은 단기공연 위주라 초장부터 티켓을 팔아야 하는 국내 공연계는 프리뷰에 관심이 없고 ‘피켓팅’에 지친 팬들은 이해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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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낙서로 상상해보는 타인의 삶이란

    헌책방 한구석, 1984년 출간돼 누렇게 바랜 시인 김수영의 시집이 있다. 사람으로 치면 불혹 가까운 책의 맨 뒷장에 누군가 까만 잉크로 단정한 손글씨를 적어 놨다. “춥다. 에피날(Epinal), 역전. 겨울에 집에 가야 하는지 이곳에 남아야 하는지 결정할 수가 없다. 15일간 난 과연 무얼 할 수 있을까. 1984년 12월 3일.” 보통 사람이라면 ‘헌책에 낙서가 있다’며 투덜댈 일이다. 그러나 ‘헌책 낙서 수집광’은 과거 책 주인이 남긴 작은 흔적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책 주인은 왜 프랑스 북동부의 작은 도시 에피날에 갔을까….’ 40년 전 프랑스에선 국내 도서를 구하기 어려웠으니 한국에서 책을 사갔을 것이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한겨울 기차역에서 우리말로 된 시를 읽었던 걸까. 서울 은평구에서 17년째 헌책방을 운영 중인 저자가 헌책 속에서 발견한 낙서와 편지의 사연에 관해 상상한 책이다. 저자는 대형 중고서점에서라면 훼손도서로 규정돼 매입조차 안 될 흔적 많고 사연 많은 책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 속엔 비록 유명인은 아닐지라도 평범해서 더 값진 우리들의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며 “흔적은 앞서 책을 읽은 사람을 상상하게 만들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고 말한다. 이름 모를 옛 주인이 책 여백에 남긴 메모는 책 본문의 어느 대목보다도 개인적이고 고백적이다. 책 내용과 당시 자신의 삶을 결부해 ‘그 순간’ 느낀 감상을 간직한다. 헌책 읽기가 남의 일기를 몰래 보는 듯한 재미를 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1987년 출간된 권정생 작가의 ‘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 속지에 남아있는 독후감이 그렇다. 독후감은 “권정생의 동화를 읽다가 문밖에도 나가지 못한 채 울면서 하루를 보내버렸다. 삶의 바닥이 가장 맑은 물이 흐를 수도 있는 지하수로임을 그의 삶을 통해 맛본다”고 했다. 겉보기에 낡아빠진 책들이 “책을 읽고 흔적을 남기며 하루를 위로했을 평범한 사람들”을 증언한다고 생각하면 생생한 역사책처럼 다가올 것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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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설서 한국인들 도와준 美부부에 한국여행 ‘선물’

    지난해 말 폭설에 갇힌 한국인 관광객들을 도운 미국인 부부가 한국관광공사의 초청으로 우리나라를 찾는다. 한국관광공사 뉴욕지사(지사장 박재석)는 한국인 관광객 9명에게 2박 3일 동안 집을 내어준 알렉산더 캠파냐 씨(41) 부부를 초청한다고 6일(현지 시간) 밝혔다. 미국 뉴욕주 윌리엄즈빌에 사는 이 부부는 지난해 12월 눈 쌓인 도로에 갇힌 한국인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한식 마니아였던 부부는 한국인들과 함께 제육볶음을 비롯한 한식을 만들어 먹으며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캠파냐 씨 부부는 5월 14일부터 일주일간 한국을 여행할 예정이다. 자신들이 도운 한국인 9명과 다시 만나고 한국의 주요 관광지를 방문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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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수 이승기-배우 이다인 4월 결혼

    가수 이승기(36)와 배우 이다인(31)이 4월 결혼한다. 이승기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사랑하는 이다인 씨와 이제 연인이 아닌 부부로서 남은 생을 함께하기로 했다”고 7일 밝혔다. 자필로 쓴 글에선 “이다인 씨는 마음이 따뜻하고 사랑이 많은, 영원히 제 편에 두고 싶은 사람”이라고 했다. 결혼식은 4월 7일 열린다. 이다인은 배우 견미리(58)의 딸이자 배우 이유비(33)의 동생이다. 2014년 드라마 ‘스무 살’로 데뷔해 드라마 ‘앨리스’ ‘닥터 프리즈너’에 출연했다. 이승기와 이다인은 2020년 말부터 만남을 이어왔고, 2021년 5월 열애 사실을 인정했다. 이들은 공통된 취미인 골프를 통해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졌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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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설에 갇힌 韓 관광객 도운 美 부부에 ‘한국 여행’ 선물

    지난해 연말 폭설에 갇힌 한국인 관광객들을 도운 미국인 부부가 한국관광공사의 초청으로 우리나라를 찾는다. 한국관광공사 뉴욕지사는 한국인 관광객 9명에게 2박3일간 집을 내어준 알렉산더 캠파냐 씨(41) 부부를 초청한다고 6일(현지 시간) 밝혔다. 미국 뉴욕주 윌리엄즈빌에 사는 이들 부부는 지난해 12월 눈 쌓인 도로에 갇힌 한국인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한식 매니아였던 부부는 한국인들과 함께 제육볶음을 비롯한 한식을 만들어 먹으며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캠파 냐 씨 부부는 5월 14일부터 일주일간 한국을 여행할 예정이다. 자신들이 도운 한국인 9명과 다시 만나고 한국의 주요 관광지를 방문한다. 한식 요리 강좌도 들을 계획이다. 박재석 관광공사 뉴욕지사장은 “위기에 처한 한국인 관광객들을 구해준 일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한국 여행을 마련했다”고 말했다.이지윤기자 leemail@donga.com}

    • 202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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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고 싶어도 참았다”… 엔데믹 ‘보복 관람’에 공연계 훈풍

    공연계에 훈풍이 불고 있다. 공연 관람에 제약이 컸던 팬데믹 시국을 지나 지난해부터 엔데믹 국면으로 전환되며 공연 시장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 치열한 ‘티케팅’전이 벌어지며 몇 년간 잠잠했던 암표시장마저 진화(?)되고 있다. ●브로드웨이보다 빠른 회복세6일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공연 티켓 판매액은 총 5589억 원으로 팬데믹 이전인 2019년보다 43% 증가했다. 성장세는 뮤지컬이 견인했다.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전체 76%를 차지했다. 클래식(12%)과 연극(8%)이 뒤를 이었다. 국내 공연시장 회복세는 글로벌 공연 강국으로 꼽히는 미국, 영국보다 가파르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한국 공연시장의 회복세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와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가 저조한 티켓 판매로 고전하는 것과 대비된다”고 평가했다. 국내 제작사들은 ‘맘마미아’처럼 흥행이 보장된 인기 작품을 내놓고 있다. 세계 유명 공연 단체도 한국 공연시장의 회복세에 주목하며 올해 잇달아 내한공연을 펼친다. 30년 만에 내한하는 파리오페라발레단(BOP)과 6년 만에 한국을 찾는 베를린필하모닉이 대표적이다. 이런 배경에는 코로나19로 공연을 장기간 취소했던 해외와 달리 한국 시장은 강한 방역 조치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이어온 영향이 크다. 2020년 뮤지컬 ‘캣츠’ 공연은 한국에서만 열렸다. 올해 뮤지컬 ‘기대작’ 중 하나인 ‘오페라의 유령’ 역시 2020년 한국에서만 공연했다. 반면 뉴욕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은 팬데믹의 타격을 회복하지 못해 4월 ‘오페라의 유령’을 폐막할 예정이다. 1988년 초연 후 35년간 공연된 ‘오페라의 유령’은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 작품이다. ●‘보복 관람’에 암표시장도 진화관객들의 보복 관람이 늘어난 것도 공연시장 회복에 큰 영향을 미쳤다.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표가 매진되자 한동안 잠잠했던 암표 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해 뮤지컬 ‘레베카’의 옥주현, ‘웃는 남자’의 박효신 등 스타 배우들의 대표작은 VIP석 티켓조차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최근 암표상에게 관객이 티켓 판매처 ID와 비밀번호를 모두 제공하는 형식의 암표 거래가 활개를 치고 있다. A가 티켓을 취소하는 순간 B가 티켓을 낚아챌 수 있도록 매크로를 쓰는 ‘아옮(아이디 옮기기)’이 대표적이다. 암표상이 표를 대거 사들여 웃돈을 얹어 파는 행위가 빈발하자 공연 제작사들이 관객의 티켓 구매 계정과 신분증을 확인해 암표 거래가 변화된 것이다. 회사원 임모 씨(30)는 “뮤지컬 ‘물랑루즈’ 홍광호 공연 회차를 예매하는 데 실패해 발만 동동 구르다 온라인에서 5만 원을 주고 ‘아옮’을 했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모 씨(26) 역시 지난해 8월 ‘더 보이즈’의 콘서트에 가기 위해 13만 원짜리 표를 암표상에게 맡겨 33만 원에 예매했다. 전문가들은 개인정보를 통째로 넘기는 거래 방식이 2, 3차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춘식 아주대 사이버보안학과 교수는 “거래 직후 비밀번호를 변경한다 해도 ID와 이름을 알면 다른 웹사이트의 비밀번호까지 파악할 수 있다”며 “보이스피싱, 해킹에 연루될 가능성이 있고 본인이 직접 제공했기에 개인정보보호법상 보호를 받기도 힘들다”고 경고했다. 이에 공연업계가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원종원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브로드웨이에서 취소 표를 살 수 있는 매표소를 운영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뮤지컬협회를 중심으로 티켓 되팔기 시장을 공식적인 시스템으로 흡수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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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XT ‘빌보드 200’ 정상… K팝 가수 다섯 번째

    보이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사진)가 다섯 번째 미니앨범 ‘이름의 장: 템프테이션(TEMPTATION)’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1위에 올랐다. 한국 그룹이 빌보드 200 1위를 차지한 건 방탄소년단(BTS·2018년), 슈퍼엠(2019년), 스트레이 키즈, 블랙핑크(이상 2022년)에 이어 다섯 번째다. 빌보드는 5일(현지 시간)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빌보드 200 1위에 올랐으며 미국에서 16만1500여 장의 음반이 판매됐다고 밝혔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다섯 명의 멤버인 연준, 수빈, 범규, 태현, 휴닝카이로 구성됐다. 방탄소년단의 소속사인 빅히트뮤직이 선보인 두 번째 보이그룹으로 2019년 데뷔 때부터 주목받았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6일 빅히트뮤직을 통해 “소식을 듣고 놀랐다. 꿈에 그리던 목표였는데 이뤄질 줄 몰랐다. 응원하고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름의 장…’은 피터팬처럼 소년으로 남고 싶은 유혹에 맞서는 청춘의 이야기를 담았다. 타이틀곡 ‘Sugar Rush Ride’를 비롯해 ‘Devil by the Window’ ‘Happy Fools’ ‘Tinnitus’ ‘네버랜드를 떠나며’까지 총 다섯 곡이 담겼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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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이 희곡 읽으며 타인-세상과 마주하길”

    “4, 5년 전 ‘어린이용 희곡을 써달라’는 출판사 제안에 손사래를 쳤어요. 써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자 노래 부르듯 즐거워 며칠 만에 끝을 봤습니다.” 지난달 어린이용 희곡 그림책 ‘훨훨 올라간다’(비룡소)를 출간한 극작가 배삼식(53)의 목소리는 나직해서 한적한 호수를 마주한 것 같았는데, 때론 세찬 여울처럼 흘렀다. 말의 음악적 요소를 강조해 노래극에 가까운 희곡 ‘훨훨 올라간다’와도 닮아 있었다. 1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배 작가는 “우리말은 풍부한 음악성이 특징”이라며 “판소리 사설을 읽거나 식당, 지하철에서 대화를 들으며 살아있는 단어를 꾸준히 수집한다”고 했다.‘훨훨 올라간다’는 전북 진안의 마이산 설화를 재창작한 동화다. 먼 옛날 큰 죄를 지은 하늘나라의 부부가 이 땅으로 추방돼 오랜 세월 마이산으로 살았다. 다시 하늘로 돌아가려던 순간 마을의 아가씨에게 목격돼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배 작가는 이 설화를 ‘태초의 남매’가 하늘로 떠나려는 산을 붙잡는 이야기로 탈바꿈시켰다. 집필의 동기는 고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고향인 전북 전주에서 주말이면 시외버스를 탔고, 마이산에 올라 숨통을 틔웠다. 그는 당시 들은 마이산 설화에 매료돼 오래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즈음 지역 대학 동아리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통해 연극을 처음 접했다. 배 작가는 “무대 장치는 허술했지만 그 공백을 상상으로 메우며 환상적인 경험을 했다”며 “연극은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한 장르인 만큼 아이들이 일찍, 쉽게 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했다. 25년간 번역극과 창작극, 마당놀이 등 영역을 넘나들었고 동아연극상을 비롯해 각종 희곡상을 휩쓴 그이지만 처음으로 쓰는 어린이용 책은 만만찮은 도전이었다고 한다. ‘쉽고 분명하면서도 울림을 잃지 않아야’ 하기 때문. 그는 “집필 준비 기간 북유럽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등의 동화책을 읽으면서 존경스럽다고 느꼈다”고 했다.‘수백 개의 단어를 품은 단 하나의 단어’를 고르는 배 작가의 스타일은 이번 책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책 속엔 “나무들은 푸른 이불 잠든 산을 덮어주네” 등 직관적이면서도 아름답고,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함의를 담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들판 가득 웅성웅성 수런수런 두런두런” 등 의성어와 의태어를 다채롭게 썼고, 책 뒤편에는 아이들이 연극을 할 때 쓸 수 있는 종이인형 부록을 실었다.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도 QR코드로 담았다.‘훨훨 올라간다’는 작곡가와 협의를 거쳐 1년 후 노래극으로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방방곡곡 학교를 찾아 공연하는 것이 목표다. 배 작가는 타인과 부대끼는 경험이 적어진 요즘 아이들이 희곡을 소리 내 읽으며 세상과 마주하길 바란다고 했다.“사람은 태생적으로 다른 존재를 흉내 내면서 자기 자신과 세상을 인식합니다. 점점 외로워지는 아이들이 역할놀이를 통해 세상과의 관계를 미리 경험하고 단단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해요. 희곡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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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판 가득 웅성웅성 두런두런’…말의 음악적 요소를 강조했어요”

    “4, 5년 전 ‘어린이용 희곡을 써달라’는 출판사의 제안에 손사래를 쳤어요. 써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자 노래 부르듯 즐거워 며칠 만에 끝을 봤습니다.”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광화문사옥에서 1일 만난 극작가 배삼식(53)은 나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출간된 그의 희곡 그림책 ‘훨훨 올라간다(비룡소)’는 25년간 번역극과 창작극, 마당놀이 등 영역을 넘나들며 각종 희곡상을 휩쓴 그가 처음으로 펴낸 어린이용 희곡이다. “초장부터 아이들이 노래하며 노는 극을 구상했다”는 그의 말은 때론 세찬 여울처럼, 때론 적막한 호수처럼 흘렀다.‘훨훨 올라간다’는 전북 진안의 마이산 설화를 재창작한 동화다. 먼 옛날 큰 죄를 지은 하늘나라의 부부가 이 땅으로 추방돼 오랜 세월 마이산으로 살았다. 다시 하늘로 돌아가려던 순간 마을의 아가씨에게 목격돼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단 이야기다. 배 작가는 이를 ‘태초의 남매’인 송동이와 백단이가 하늘로 떠나려는 산을 붙잡는 이야기로 탈바꿈했다. 책의 기원은 그의 고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고향인 전주에서 주말이면 시외버스를 타고 마이산에 올라 숨통을 틔웠다. 그즈음 처음 연극을 접했다. 지역 대학교 동아리가 공연한 ‘고도를 기다리며’를 본 것. 그는 “비록 무대장치는 허술했지만 그 공백을 상상으로 메우며 환상적인 경험을 했다”며 “연극과 희곡은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한 장르인 만큼 아이들이 일찍, 쉽게 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말했다. 국내를 대표하는 극작가지만 어린이용 책은 도전이었다. 쉽고 분명하면서도 울림을 잃지 않아야 하기 때문. 그는 “좋은 어린이 책은 시적(詩的)이어야 하기에 까다로웠다”며 “북유럽 작가인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등의 동화책을 읽으며 존경을 느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 개의 단어를 품은 단 하나의 단어’를 고르는 배삼식의 스타일은 간결하면서도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이용 책을 쓸 때 더욱 빛을 발했다. 책 속엔 “나무들은 푸른 이불 잠든 산을 덮어주네” 등 직관적이면서도 아름답고,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함의를 품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그는 “산도, 거기 사는 동물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며 “환경, 역사 등 깊은 주제를 ‘아이들은 이해 못 한다’며 모조리 표백하기보단 아이들이 넌지시 감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각자 역할을 맡아 희곡을 소리 내 읽으며 세상과 마주하길 바라는 마음도 컸다. 그에게 역할놀이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은 말의 음악적 요소를 강조해 노래극에 가까운 것이 특징이다. “들판 가득 웅성웅성 수런수런 두런두런” 등 이전 작품과 비교해 의성어·의태어가 다채롭게 쓰였다. 책 뒤편에는 아이들이 실제 연극을 할 때 쓸 수 있는 종이인형 부록이 실려 있고, 배우들이 실감나게 읽어주는 목소리 연기도 QR코드로 담겨 있다.“제가 어릴 때만 해도 술래잡기, 말뚝박기 등 장난감은 ‘서로의 몸’이었어요.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부대끼는 경험이 적습니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다른 존재를 흉내 내면서 자기 자신을 인식해요. 위험한 발상일 수 있지만 문학이라는 안전장치 속에서 (아이들이) 인생의 잔혹동화를 미리 경험하고 단단해질 수 있게 도와줘야 합니다”. 앞으로는 오페라나 노래 가사 등 음악적 글쓰기에 더욱 집중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물결처럼 출렁이는 판소리 사설(辭說)을 읽거나 술집 등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대화를 들으며 생생한 단어를 꾸준히 수집한다”며 “살아있는 우리말 보물창고”라고 웃었다. 이번 작품은 작곡가와 협의를 거쳐 1년 후 노래극으로 무대에 올린다는 계획이다.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 기념 창작 오페라도 이르면 내년 선보일 예정이다. “아이들이 능동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무대를 꾸리고 싶어요. 산간지역을 포함한 전국 학교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이지윤기자 leemail@donga.com}

    • 2023-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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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유정 등 스타 캐스팅… ‘턴테이블 무대’도 볼거리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인공처럼 누군가를 사랑했다면…. 개막 전부터 화려한 스타 캐스팅과 10만 원이 넘는 티켓 가격으로 이목을 끈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 작품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셰익스피어의 실제 사랑 이야기에서 비롯됐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셰익스피어가 연극배우를 꿈꾸는 여성 비올라와 애절한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녀와의 추억을 바탕으로 걸작 ‘로미오와 줄리엣’을 써내려 간다는 이야기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지난달 28일 개막한 ‘셰익스피어…’는 동명의 영화(1998년)를 원작으로 한다.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이 연극으로 제작해 2014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했다. 국내 초연되는 이번 공연의 특징 중 하나는 TV 드라마, 영화에 출연한 유명 배우들이 다수 출연한다는 점이다. 셰익스피어 역에 정문성 이상이 김성철, 비올라 역에 김유정 정소민 채수빈이 발탁됐다. 특히 아역배우 출신인 김유정(24)은 이 작품이 연극 데뷔작인데도 20년에 달하는 연기 내공으로 당차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표현해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원작으로 한 연극이어서 관객의 웃음을 유도하는 장면이 많다. 셰익스피어가 한밤중 비올라의 집을 찾아가 시를 읊는 로맨틱한 상황에서 시상이 바로 떠오르지 않자 친구인 키트가 대신 구절을 불러주며 투덕거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다만 필요 이상으로 익살스러운 대사가 많아 전달력을 떨어뜨리고 부산스러운 느낌을 주는 점은 아쉽다. 무대 세트도 관람 포인트 중 하나다. 2013년과 2016년에 동아연극상 시청각디자인상을 받은 박상봉 디자이너가 꾸민 무대에는 회전문 형태로 돌아가는 대형 턴테이블이 설치됐다. 턴테이블을 통해 무도회장부터 극장, 집안까지 생생하고 다채롭게 보여준다. 무대 바닥 아래 숨어있다 위로 솟아올라 술집으로 사용하는 리프트도 공간의 입체감을 더했다. 작품 곳곳에 치밀하게 숨겨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찾는 것도 흥미롭다. “나 그대를 여름날에 비교할까요?”라고 말하는 셰익스피어의 대사에는 그의 대표작인 소네트 18번이 녹아있다. 고리대금업자 페니맨이 극장주 헨슬로에게 “돈을 갚지 않으면 코를 베겠다”고 위협하는 장면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과 연결된다. 작품 속 등장인물인 4명의 연주자는 클래식 기타, 아코디언, 바이올린 연주를 통해 때론 흥겹고, 때론 애달픈 음악을 선보이며 귀를 즐겁게 만든다. 3월 26일까지, 5만5000∼11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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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만원 넘는 연극티켓 화제…캐스팅만큼 화려했던 볼거리

    셰익스피어는 사실 자신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인공처럼 사랑했던 게 아닐까. 개막 전부터 화려한 캐스팅과 기록적인 티켓 가격으로 이목을 모은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이 같은 상상에서 출발한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지난달 28일 막을 올린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의 사랑을 재창작한 동명의 영화(1998년)에 기반한다. 이듬해 제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등 7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를 영국 극작가 리 홀이 희곡으로 제작했다. 2014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 후 미국, 일본 등 각국으로 진출했다. 국내 연극 중 티켓 가격이 10만 원을 넘긴 건 ‘셰익스피어…’가 처음이다. CJ 토월극장 내 가장 저렴한 3층 좌석도 5만5000원으로 다른 연극의 VIP석 가격에 맞먹는다. 주로 TV 드라마, 영화 등에 출연하며 스타덤에 오른 배우들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 셰익스피어 역에 정문성·이상이·김성철, 비올라 역에 김유정·정소민·채수빈이 캐스팅됐다. 아역배우 출신인 김유정(24)은 이번이 연극 데뷔작이지만 20년에 달하는 연기 내공으로 당차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잘 표현해냈다. 비싼 티켓가격은 스타 캐스팅 외에도 정교한 의상, 뮤지컬에 버금가는 무대세트 등으로 설득력을 높였다. 2013년과 2016년에 동아연극상 시청각상을 수상한 박상봉 디자이너가 무대를 꾸몄다. 무대 안쪽에서 회전문 형태로 돌아가는 대형 ‘턴테이블’이 무도회장부터 극장, 집안까지 생생하고 다채롭게 보여준다. 무대 바닥 아래 숨어있다 위로 솟아올라 술집으로 활용되는 리프트도 공간 활용도를 강화했다. 조명은 동화 같은 분위기와 무대 깊이감을 더했다. 완성도 높은 무대의상은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국립 무대의상 자격증(DMA Costume)을 획득한 도연 디자이너가 맡았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황금색 궁중 드레스와 비올라가 입는 초록·분홍·연노랑 드레스 3종은 작고 섬세한 비즈와 자수로 장식돼 제작기간이 기존 계획보다 길어지기도 했다. 조연 배우들의 의상은 유사한 색상을 조합한 톤인톤으로 디자인돼 통일감을 준다. 작품 곳곳에 치밀하게 숨겨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찾는 것도 감상 포인트다. “나 그대를 여름날에 비교할까요?”라고 말하는 셰익스피어의 대사에는 그의 대표작인 소네트 18번이 녹아있다. 고리대금업자 페니맨이 극장주 헨슬로에게 “돈을 갚지 않으면 코를 베겠다”고 위협하는 장면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과 연결된다. 연극에 입문하는 관객에겐 ‘셰익스피어…’의 뮤지컬적 요소가 친숙함을 준다. 클래식 기타 와 아코디언, 바이올린 등 4명의 연주자로 이뤄진 악단은 실제 악기를 연주하며 때론 흥겹고, 때론 애달픈 배경음악을 선보인다. 따뜻한 음색이 목재로 만든 무대 세트와 잘 어우러지는 것은 물론 16세기 영국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한다. 3월 26일까지, 5만5000~11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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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민해 고통받는 베토벤에 빠져 일상도 온통 예민”

    “베토벤 역을 제안받고 정말 기쁘면서도 음악사에서 베토벤이 갖는 의미를 잘 알고 있기에 중압감이 컸어요.” 올 상반기 뮤지컬 중 기대작으로 꼽힌 창작 뮤지컬 ‘베토벤’에서 베토벤 역을 맡은 배우 카이(본명 정기열·42)가 말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12일부터 초연되고 있는 ‘베토벤’은 뮤지컬 ‘엘리자벳’ 등에서 합을 맞춘 작사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러베이가 7년 만에 완성한 작품이다. 굴곡진 삶을 산 상처받은 음악가 베토벤이 연인 안토니 브렌타노를 만난 후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교향곡 5번(운명)’, ‘피아노 소나타 14번(월광)’ 등 베토벤의 주요 곡 멜로디 일부를 넘버에 녹여 재탄생시켰다. 서울 강남구 EMK 사옥에서 27일 만난 카이는 이번 작품이 그의 17번째 뮤지컬 출연작이라고 했다. 박효신, 박은태와 함께 베토벤을 연기하는 그는 “작품에서 베토벤은 예민하고 고통받는 영혼으로 표현된다”며 “캐릭터에 몰입하다 보니 실제 생활에서도 많이 예민해졌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날 말 한마디 한마디를 할 때마다 가장 알맞은 단어를 고르느라 신중을 기했다. 배역에 대한 고민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카이는 작품 넘버를 소화할 때 악보에 적힌 음정과 박자를 그대로 살리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다. “노래할 때 완벽한 음악을 그저 바라보는 베토벤의 심정으로 불러요. 배우들이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박자 등을 일부 변형하는 애드리브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엔 전혀 시도하지 않았어요.” 그는 “연출가 길 메흐메르트가 ‘러베이와 쿤체가 원하던 음악’이라고 인정했다”고 말했다. 카이와 베토벤의 인연은 10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이는 베토벤 역에 함께 발탁된 배우들 중 유일한 성악 전공자다. 서울예고 음악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성악과에서 학사와 석·박사까지 마쳤다. “베토벤 가곡은 평이 갈리는 편이에요. 학창시절 친구들이 베르디와 슈베르트를 노래할 때 저는 베토벤 가곡을 사랑했습니다. 고전적인 구성에서 느껴지는 여백은 사람을 사색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그는 성악 전공자로서 팝페라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귀족과 대중 모두의 취향에 맞추면서 자신의 음악적 세계관까지 지켜야 했던 베토벤에게 묘하게 애정이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성악을 전공한 제가 크로스오버 음악을 택한 것 역시 돌이켜보면 제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은 것이면서도 한편으론 세상과의 타협이기도 했거든요.” ‘베토벤’이 개막한 후 관객들 사이에선 서사가 매끄럽지 않고 귀에 꽂히는 넘버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극 초반 ‘사랑은 욕망일 뿐’이라던 베토벤이 돌연 사랑에 빠지는 장면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그는 “베토벤 교향곡 9번(합창)이 그랬듯 위대한 시작은 늘 이질감에서 온다”며 “초연을 거치며 작품이 꾸준히 발전할 거라 믿는다. 베토벤이 그랬듯 더 나은 연기와 노래를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3월 26일까지. 8만∼17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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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베토벤’ 카이 “베토벤은 악성(樂聖)이기 전에 인간(人間)”

    ‘인간(人間) 베토벤’. “음악과 사랑 앞에서 베토벤은 악성(樂聖)이기 전에 누구보다 겸손한 인간이었다”는 배우 카이(본명 정기열·42)를 27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서 만났다. 말 한마디마다 가장 알맞은 단어를 고르느라 신중한 모습에선 맡은 배역에 대한 고민의 무게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음악을 얘기할 때의 눈동자는 극중 사랑하는 여인에게 빠져 ‘미쳤다’고 말하는 베토벤처럼 환히 빛났다. 12일 EMK 창작뮤지컬 ‘베토벤’이 전 세계 초연으로 개막했다. 뮤지컬 ‘엘리자벳’ 등에서 합을 맞춘 작사·작곡가 콤비 미하엘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가 참여해 장장 7년 끝에 완성됐다. 굴곡진 삶을 산 상처받은 음악가 베토벤이 ‘불멸의 연인’ 안토니 브렌타노를 만난 후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교향곡 5번(운명)’, ‘피아노 소나타 14번(월광)’ 등 베토벤 작품의 짧고 강렬한 모티브를 뮤지컬 넘버로 탄생시킨 것이 특징이다. 뮤지컬만 17번째 작품인 정상급 배우지만 카이는 이번 작품에서 스스로에게 더 가혹해졌다. “배역을 제안 받고 정말 기뻤지만 베토벤이 음악사에서 갖는 의미를 잘 알기에 중압감도 컸습니다. 특히 극중 고통 받는 영혼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이전 배역들보다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리허설 영상을 본 그는 “내 고민이 이것밖에 안 됐나 하는 실망감에 고통스럽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고심 끝에 그는 ‘완벽한 음악을 가만히 바라보는 심정으로’ 노래하기로 했다. 통상 뮤지컬 배우들이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곡을 조금씩 변형하는 것과 달리 베토벤이 원곡 악보에 써둔 음정과 박자를 그대로 살리고자 노력한 것. 그는 “대사 전달에 아쉬움이 있을지언정 작곡가의 의도를 최대한 반영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연습 한 달 후 노래를 들은 길 메머트 연출이 ‘르베이와 쿤체가 원하던 음악’이라며 인정해주기도 했다”고 웃었다. 카이와 베토벤의 인연은 10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카이는 박효신, 박은태 등으로 이뤄진 베토벤 역 캐스팅에서 유일한 클래식 성악 전공자다. 서울예고 음악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성악과에서 학사와 석·박사까지 거쳤다. “베토벤 가곡은 평이 갈리는 편이에요. 학창시절 모두가 베르디와 슈베르트를 노래할 때 저는 베토벤 가곡을 사랑했습니다. 고전적인 구성에서 느껴지는 여백은 사람을 사색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최근 가장 즐겨듣는 건 베토벤 연가곡 ‘멀리 있는 연인에게(op.98)’라고. 괴팍하면서도 다감했고, 오만하면서도 겸손했던 베토벤의 모순을 카이는 ‘인간적’으로 받아들이며 소화했다. 그는 “귀족과 대중 모두의 취향에 맞추면서 자신의 음악적 세계관까지 지켜야 했던 베토벤에게 음악은 ‘결코 좋아서 한 일만은 아니었다’는 데 애정을 느꼈다”며 팝페라 가수가 되기로 결심한 시절을 떠올렸다. “성악을 공부한 뒤 크로스오버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은 건 나만의 길을 찾은 것인 동시에 세상과의 타협이기도 했죠”. 초연인 만큼 서사가 매끄럽지 않고 귀에 꽂히는 넘버가 부족하단 평도 나온다. 극 초반 ‘사랑은 욕망일 뿐’이라던 베토벤은 돌연 사랑에 빠진다. 덜컥이는 감정을 그는 “어찌할 수 없는 인간적인 면모”라고 봤다. 카이는 괴테 원작에 기반한 뮤지컬 ‘베르테르(2020년)’에서도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연기했다. “베르테르는 권총 자살을 했고 베토벤은 여생을 사랑 없이 음악으로만 채웠어요. 이뤄질 수 없음에 굴복한 게 아니라 둘 다 자기 방식대로 영원한 사랑을 쟁취한 거죠. 현실에서 괴테를 싫어한 베토벤도 인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번 작품을 하늘에 있는 베토벤이 본다면 “21세기 한국에선 내 음악을 이렇게 기려주는구나 박수칠 것”이라고도 했다. “베토벤 교향곡 9번(합창)이 그랬듯 위대한 시작은 늘 이질감에서 와요. 작품은 초연을 거치며 꾸준히 발전할 겁니다. 베토벤이 그랬듯 더 나은 연기와 노래를 보여드리고자 고군분투 하겠습니다”. 3월26일까지, 8만~17만 원. 이지윤기자 leemail@donga.com}

    • 202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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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설원 가르듯 스릴 넘치는 추리극

    일본 다이호대 의과학연구소로 한 통의 메일이 날아왔다. 메일 속 사진엔 곰 인형과 스키 리프트뿐…. 범인은 사진 속 배경인 스키장에 생화학무기를 숨겨 놨다. 주인공 구리바야시는 이 사진 한 장을 단서로 전국 수백 개의 스키장 중 한 곳에 묻힌 무기의 행방을 알아내야 한다. 주어진 시간은 단 일주일. 무기를 찾지 못한 채 날이 따뜻해지면 탄저균이 공기 중에 퍼져 온 마을이 초토화된다. 설산에서의 ‘화이트 러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학창 시절부터 스키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저자는 총 4권으로 구성된 ‘설산 시리즈’를 펴냈다. 그중 ‘화이트 러시’는 ‘백은의 잭’을 잇는 두 번째 작품이다. 2013년 현지에서 출간된 지 일주일 만에 100만 부 넘게 팔리며 인기를 모았다. 시리즈는 작중 등장인물인 구조요원 네즈와 스노보드 선수 지아키를 공통분모로 ‘눈보라 체이스’, ‘연애의 행방’으로 이어진다. 추리물로서 ‘화이트 러시’는 저자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용의자 X의 헌신’, ‘가면산장 살인사건’ 등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크다. 치밀한 추론 과정보다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개인의 양심과 보신 사이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며 휴머니즘을 강조한다. 결말의 완성도 역시 떨어지는 편이다. 감동을 기대한 듯한 반전은 앞서 쌓아올린 서사와 이질감을 빚어 다소 생뚱맞기까지 하다. 다만 설원을 가르듯 속도감 있는 전개가 주는 스릴은 확실하다. 이야기 곳곳에 불필요한 미끼를 심어두는 대신 생화학무기가 파묻힌 곳을 향해 모두가 달려 나가는 명쾌한 서사로 해방감을 선사한다. 작가 특유의 간단명료한 문장과 백색 비탈길에서 벌어지는 추격 장면은 속도감을 배가한다. 스키어들의 눈에 담길 아름다운 설경을 묘사한 문장들도 감상의 묘미다. ‘온통 은빛 세상’에 둘러싸인 구리바야시는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기분으로 스키장을 활보한다. 높다랗게 자란 너도밤나무 사이로 보드라운 파우더 스노가 흩날리는 대목은 당장이라도 눈밭을 거닐고 싶게 만든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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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택에 따라 바뀌는 2가지 인생, 영상으로 몰입감 살려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나는, 우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혼 후 10년 만에 미국 뉴욕으로 돌아온 39세 여성 엘리자베스. 앞으로 먹고살 길을 고민하던 중 매디슨스퀘어파크에서 대학원 동창 루카스와 새 이웃 케이트를 만난다. 케이트는 그를 ‘리즈’라 부르며 브루클린에 기타 연주를 들으러 가자고 한다. 루카스는 ‘베스’라고 그를 부르며 뉴욕시 주거환경 개선 운동에 동참하자고 제안한다. 선택의 기로에서 리즈는 사랑을 중심으로, 베스는 커리어를 중심으로 나아간다.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이프덴’이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 중이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로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수상한 작사가 브라이언 요키와 작곡가 톰 킷 콤비가 참여했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OST ‘Let It Go’를 부른 배우 이디나 멘젤이 엘리자베스 역을 맡아 2013년 미국 워싱턴에서 초연했고, 이듬해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이프덴’은 ‘만약 …했다면(if)’을 주제로 순간의 선택이 가져온 결과(then)를 속도감 있게 풀어낸다. 리즈와 베스의 삶이 번갈아 펼쳐질 때마다 바뀌는 시공간이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구현됐다.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쉼 없이 바뀌는 시공간을 배우의 등장, 퇴장과 의상 교체 등으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며 “자칫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구조를 ‘극 전개를 따라잡는 재미’로 바꿔놨다”고 평가했다. 분홍 등 화사한 색상의 옷을 입은 리즈는 베스가 될 때 안경을 끼거나 무채색 재킷으로 갈아입는다. 화려한 뉴욕 풍경을 생생하게 담아낸 무대 영상도 눈을 즐겁게 만든다. 눈부신 야경과 덜컹이는 지하철, 열기 오른 야구장 등 뉴욕을 상징하는 다채로운 배경이 무대 위에 고스란히 펼쳐진다. 지혜원 뮤지컬 평론가는 “누구나 영화, 미국 드라마에서 봤을 법한 뉴욕 특유의 분위기를 물리적 세트가 아닌 영상으로 표현해 생동감을 높였다”며 “엘리자베스의 선택에 따라 바뀌는 결과를 영상이 효과적으로 나타내 몰입감을 살렸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출산 후 약 1년 6개월 만에 무대에 복귀한 배우 정선아를 비롯해 박혜나, 유리아가 번갈아가며 연기한다. 정선아는 ‘혼자가 되는 법’ 등 주요 넘버를 부를 때 특유의 시원한 고음과 폭넓은 성량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다만 깊이감 없는 연기력은 다소 아쉬웠다. 지 평론가는 “다른 길을 걷게 된 리즈와 베스의 삶에서 온도 차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2월 26일까지. 6만∼12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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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 vs 커리어…한 여자의 두 가지 인생 이야기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나는, 우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혼 후 10년 만에 뉴욕으로 돌아온 39세 커리어우먼 엘리자베스. 앞으로 먹고 살 길을 고민하던 중 매디슨 스퀘어 파크에서 대학원 동창 루카스와 새 이웃 케이트를 만난다. 케이트는 그를 ‘리즈’라 부르며 브루클린에 기타 연주를 들으러 가자고 한다. 루카스는 ‘베스’라고 부르며 뉴욕시 주거환경 개선 운동에 동참하자 한다.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에서 리즈는 사랑을 중심으로, 베스는 커리어를 중심으로 나아간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이프덴’이 지난달 6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됐다. 시대극이 주를 이루는 국내 공연계에선 흔치 않은 21세기 동시대물이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로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수상한 브라이언 요키와 톰 킷 작사·작곡 콤비가 참여했다. 2013년 미국 워싱턴DC에서 배우 겸 가수 이디나 멘젤이 엘리자베스 역으로 초연한 이듬해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이프덴’은 ‘만약 ~했다면(if)’을 주제로 순간의 선택이 가져온 결과(then)를 속도감 있게 풀어냈다. 리즈와 베스의 삶이 번갈아 펼쳐질 때마다 바뀌는 시공간이 무대 위 자연스럽게 구현된 것이 감상 포인트.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는 “쉼 없이 바뀌는 시공간을 배우의 등·퇴장과 의상 교체 등으로 관객이 받아들이기 쉽게 풀어냈다”며 “자칫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구조를 오히려 ‘극 전개를 따라잡는 재미’로 바꿔놨다”고 평가했다. 리즈는 베스가 될 때 안경을 끼거나 무채색 재킷으로 갈아입는다. 화려한 뉴욕 풍경을 생생하게 담아낸 무대 영상도 ‘이프덴’의 백미다. 눈부신 야경과 덜컹이는 지하철, 열기 오른 야구장 등 뉴욕을 상징하는 다채로운 배경이 무대 위 고스란히 펼쳐진다. 지혜원 뮤지컬 평론가는 “누구나 영화나 미드에서 봤을 법한 뉴욕 특유의 분위기를 물리적 세트가 아닌 영상으로 표현해 생동감을 높였다”며 “선택에 따라 바뀌는 결과를 영상이 효과적으로 표현해주면서 작품 전체의 결과 몰입감을 살렸다”고 설명했다. 독보적인 주인공 엘리자베스 역은 배우 정선아가 맡았다. 지난해 5월 출산 이후 약 1년 6개월 만의 복귀작으로 배우 박혜나와 유리아가 같은 배역을 번갈아 연기한다. 변화무쌍하던 무대가 암전되고 ‘혼자가 되는 법’ 등 홀로 부르는 넘버에서도 무대를 장악하는 ‘뮤지컬 디바’의 명성은 그대로였다. 반면 연기의 깊이는 부족했단 평도 나온다. 지 평론가는 “다른 길을 걷게 된 리즈와 베스의 삶에서 온도차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며 “극 중 아이를 낳게 된 이후라면 목소리와 제스처 등 세부적인 요소까지 바뀌었어야 하는데 아이를 낳기 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2월 26일까지.이지윤기자 leemail@donga.com}

    • 20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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