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

이지훈 기자

동아일보 디지털랩 전략영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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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뮤지컬, 무용 등 공연업계를 취재합니다.

easyhoon@donga.com

취재분야

2026-01-07~2026-02-06
문화 일반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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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CE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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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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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17%
  • 김정은, 하노이 회담前 “핵무력 공고히” 軍에 지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 3개월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핵 담판에 대해 “핵전력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서”라고 군부에 밝혔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한미 정상들을 잇따라 만나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에 놓고서도 내부적으로는 핵 포기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은 것으로,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놓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17일 미국의소리(VOA) 방송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조선노동당출판사가 작성한 대외비 문건 ‘강습제강’에서 김 위원장은 “(북-미 비핵화 협상은) 우리가 만난신고(천신만고)를 다 극복하면서 만들어낸 핵 무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세계적인 핵전력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는 최후의 결과를 얻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지시가 담긴 ‘강습제강’은 북한 지도자의 실제 생각과 계획을 전달하는 핵심 문건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해당 문건의 진위를 먼저 가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외비 문서를 당 출판사가 작성한 것도 이례적인 일인 데다 김 위원장의 말을 전하는 문서 곳곳에 오타가 있기 때문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일단 문건의 진위부터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19-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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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희호 여사 추모 ‘김정은 弔花’ 영구 보존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를 추모하기 위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보낸 조화(사진)가 영구 보존된다. 앞서 12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직접 ‘김정은 명의’ 조전과 조화를 판문점에서 전달한 바 있다.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는 1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조화가 갖는 상징성 등을 감안해 폐기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보존 방식에 대해선 “생화를 본뜬 조화(造花)를 제작하거나 조화에 붙은 리본만 떼어 보관하는 두 가지 방식을 두고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북측이 보낸 ‘김정일 명의’ 조화도 특수 처리해 김대중도서관이 보관 중이다. 김정일, 김정은 명의 조화를 영구 보존하는 이유는 남북관계의 상징성뿐 아니라 최고지도자의 상징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북측의 관례를 존중한다는 의미도 있다. 실제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당시 고속도로 요금소 인근에 내걸린 김정일 얼굴 현수막이 비에 젖은 것을 보고 북한 응원단과 선수단이 울면서 항의한 바 있다.이지훈 easyhoon@donga.com·강성휘 기자}

    •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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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어선 삼척까지 올 동안… 軍-해경 깜깜 ‘경계 구멍’

    북한 어선이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150km 이상 남하했는데도 우리 군과 해경은 이를 전혀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해상 경계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6일 군 당국 등에 따르면 15일 오전 6시 50분경 강원 삼척시 삼척항 인근 해역에서 조업 중이던 한국 어선은 표류 중인 북한 어선 1척을 발견해 관계 당국에 신고했다. 어선에는 북한 어민 4명이 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어선의 표류는 기관 고장으로 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어선이 NLL 이남 150km에 이르는 지역까지 표류해 올 때까지 군이나 해경이 사전 포착하지 못했다는 것. 표류해 온 북한 어선은 소형 목선으로 알려졌다. 소형 목선은 크기 탓에 해군이나 해경 함정이 운용하는 레이더나 육군이 해안에서 운용하는 감시 장비 등에 잘 포착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각에선 북한군 소형 함정이 경계를 뚫고 남하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말이 나온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군과 해경이 사전에 어선을 발견하지 못한 경위를 조사 중”이라면서도 “경비함을 수백, 수천 척을 배치한다고 해도 해상 특성상 경계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편 북한 선원들이 당국에 인계된 지 하루가 지난 16일 오후 현재까지도 북한에 귀환하지 않은 것을 두고 일부 선원들이 귀순 의사를 밝힌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는 11일 NLL 이남으로 표류했던 또 다른 북한 어선의 선원들은 발견 6시간여 만에 북측에 인계한 바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들이 (귀순하겠다는) 확정적인 답변을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귀환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 없다”고 답했다.손효주 hjson@donga.com·이지훈 기자}

    •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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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원’ 내달 창립 20년… 탈북민 정착 교육의 세계

    탈북민 정착 교육 시설인 ‘하나원’이 다음 달 8일로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1999년 경기 안성시에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라는 명칭으로 문을 연 하나원은 지금까지 3만 명 이상의 탈북민을 교육해 사회에 배출했다. 대다수 탈북민에게 하나원은 한국에서 첫발걸음을 뗀 ‘마음의 고향’으로 기억된다.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은 국정원 경찰청 등 관계기관의 합동신문을 거친 뒤 하나원으로 가서 12주간 문화적 이질감 해소, 심리 안정, 진로지도 상담 등 ‘사회적응교육’을 받는다. 이 기간에 정부는 탈북민의 가족관계를 등록하고, 집을 마련해 주는 등 이들의 사회 정착을 준비해 준다. 탈북민과 만들어가는 ‘작은 통일’의 입구에 선 하나원의 20년 역사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수많은 갈등과 화해가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하나원의 시작과 현재를 조명해 본다.○ 귀순자에서 북한이탈주민까지 하나원 설립은 김대중 정부 출범 초기 “한 해 수십 명 들어오는 탈북자도 돌보지 못하면서 무슨 통일을 운운하느냐”는 여론 속에 결정됐다. 하나원의 출범을 이해하려면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에 대한 정책이 어떻게 변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반공을 국시로 삼고 있던 1960년대부터 1993년까지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은 국가유공자 지위를 부여받고 엄청난 금전적 보상을 받았다. 1980년대엔 “의사, 변호사 위에 귀순자가 있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1990년대 접어들면서 이런 상황에 변화가 생긴다. 러시아 벌목공의 대규모 귀순이 시작되자 1993년 6월 ‘귀순북한동포보호법’이 제정되면서 탈북민은 생활능력이 결여된 생활보호대상자로 간주됐다. 주관 부처도 국가보훈처에서 보건복지부로 이관됐다. 경제적 지원이 급격하게 줄어들자 탈북민은 가난에 허덕였다. 김대중 정부는 1997년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을 만들고 탈북민에 대한 정착비와 주거지원비를 확대했다. 담당 부처도 보건복지부에서 통일부로 바뀌었다. 북한의 경제난으로 탈북민 수가 늘어남에 따라 이들에 대한 사회적응 교육 시설의 필요성이 제기돼 결국 하나원이 만들어졌다.○ “영감, 고기 잘 잡힙니까?” 하나원 초기 매달 입소하는 탈북자는 많지 않았다. 1기 20명, 2기 9명, 3기 32명, 4기 41명, 5기 27명…. 2002년 23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한 기수가 100명이 넘었다. 하나원을 만든 뒤에도 주관 부서인 통일부는 초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당장 1기부터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사회에 나가지 못하고 3개월 동안 하나원에 더 갇혀 있게 되자 탈북민들은 거칠어졌다. 이들을 다독이려고 공무원들은 수시로 함께 외박을 나갔다. 그런 가운데 밤에 저수지에 수영하러 나갔던 1기생 남성이 심장마비로 숨졌다. 총명하고 촉망받던 청년이었다. 게다가 탈북민 사이의 싸움과 연애 사건까지 끝없이 터졌다. 통일부는 이들을 졸업시킨 뒤인 2000년 1월에야 3기생을 받았다. 예정대로라면 3기는 1999년 9월에 입소했어야 했다. 고작 29명뿐인 1, 2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다른 탈북민을 합동신문 기관에서 4개월을 더 기다리게 했던 것이다. 무엇부터 교육할지도 몰랐다. 이런 가운데 사회에 배출된 1, 2기 졸업생들의 사고 소식이 잇따랐다. 지방에 간 청년이 낚시하는 노인에게 북한에서 하던 버릇대로 생각 없이 “영감, 고기 잘 잡힙니까”라고 했다가 큰 봉변을 당한 일도 있었다. 새파란 청년에게서 영감이란 말을 들은 노인은 펄펄 뛰었다. 어느 곳에선 한국 여성과 결혼한 청년이 너무 버릇이 없다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장모가 한 달 내내 김치와 반찬을 냉장고에 넣어주다가 “더 부족한 것이 없느냐”고 물었는데 탈북민 사위가 “일없습니다”라고 대답한 게 화근이 됐다. ‘괜찮습니다’라는 뜻이었지만 이를 오해한 장모는 다니던 교회 목사를 찾아가 “내가 어떻게 해주었는데 탈북한 사위가 나를 무시한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초기 하나원은 탈북민에게 언어와 정착 교육에 초점을 맞췄다. 1999년 9월부터 2002년 10월까지 하나원 원장을 지낸 김중태 전 통일부 기조실장은 “우리 역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탈북민에 대해 알아갔다”며 “환자가 그렇게 많을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초기 교육생들의 옷차림이 이상해서 살펴보니 운동복 위에 또 옷을 껴입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내복을 입는 북한의 습관을 몰라 속옷과 겉옷만 지급했던 것이다. 김 전 원장은 “내복을 살 예산이 책정되지 않아 천주교 단체의 후원으로 내복을 급히 구했다”며 “초기 영락교회, 정동제일교회 같은 교계에서 많이 후원했다”고 기억했다.○ “넌 하나원 몇 기니?” 대다수 탈북민은 서로 만나면 상대에게 “하나원 몇 기냐”고 인사처럼 묻는다. 하나원 기수는 탈북민에겐 대학교 학번과 마찬가지다. 매달 한 번씩 조사를 마친 탈북민이 하나원에 오면 순서대로 기수가 부여된다. 19일에 256기 교육생이 사회에 배출된다. 탈북민들이 기억하는 하나원에 대한 추억은 경기 안성 성남 시흥 양주시와 강원 화천군으로 각자 다르다. 2002년 8월까진 모든 탈북민이 안성시의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입국자가 늘어나자 통일부는 같은 해 9월부터 성남시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시설을 임차해 여성들을 따로 교육했다. 이때는 여성보다 남성 수가 많을 때였다. 이후 시설 포화와 임차 기간 만료 등의 이유로 하나원 분원은 시흥과 양주로 옮겨 다녔다. 2013년 화천군에 하나원 제2분원이 세워지고 남성 탈북민을 따로 교육하면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2009년 2914명에 이르던 탈북민은 2012년 1502명이 입국하며 절반으로 줄었다. 이후부터 계속 줄어 1년 평균 1200명 안팎 수준에 머물고 있다. 김정은이 권력을 잡은 뒤 탈북에 대한 단속이 매우 엄격해진 것과 무관치 않다. 탈북민 수가 줄어도 통일부의 탈북민 지원 업무와 예산은 크게 줄지 않았다. 통일부 공무원 500여 명 중 20%에 육박하는 100여 명이 하나원 업무에 종사한다. 제2분원만 해도 고작 수십 명의 남성 탈북민 교육을 위해 30여 명의 통일부 직원이 일한다. 반면 안성 하나원엔 빈방이 많다.○ “졸리고, 지루해요.”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하나원이 갈 길은 여전히 멀다. 12주의 하나원 교육 기간과 교육의 질 등은 과거나 지금이나 늘 논쟁거리다. 하나원이 탈북민의 정착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역시 의견이 엇갈린다. 20년이 지나도록 바뀌지 않는 일부 하나원 직원들의 불친절하고 고압적인 태도도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다. 탈북민이 한국 사회에서 처음 만나는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전문성 부족도 풀어야 할 숙제다. 하나원은 20년 동안 원장만 16명이 바뀌었다. 이 중 3년 정도 근무한 3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13명 원장의 재직 기간은 1년도 안 된다. 직원도 전문성을 따져 뽑지 않고 통일부 직원들이 돌아가며 순환근무를 한다. 탈북민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 훈련을 고민하기보다는 본부로 복직할 때까지 무난하게 시간이나 때우려는 경향이 적지 않다. 김 전 원장은 “하나원은 가장 공무원 같지 않은 공무원들이 있어야 하는 곳이며 직원들은 자신의 행동이 탈북민에게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늘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려면 하나원의 20년 역사 속에서 얻은 교훈이 전해져야 하는데 이런 과정이 누락된 채 매년 담당 공무원이 바뀌면서 똑같은 실수가 반복되는 일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하나원을 졸업한 탈북민이 가장 문제점으로 꼽는 것은 교육이다. 다양한 연령과 성별, 경력을 가진 탈북민이 모이다 보니 각자의 수준에 맞는 교육과정은 애초에 엄두를 내지 못한다. 무엇보다 지루하다는 불만이 제일 많다. 강사의 수준과 강의 내용도 늘 논란거리다. 19일 하나원을 졸업하는 한 탈북여성이 최근 지인에게 털어놓은 하소연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언니, 나 무서워서 사회에 못 나가겠어. 나가면 사기꾼들이 득실거린다고 귀가 아프도록 들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지 막막해.” ▼“식단-의료 훌륭… 개인 맞춤형 진로 지도 등 현실적 교육을”▼거쳐간 탈북민들이 되돌아본 하나원 생활탈북민들은 하나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무작위로 남녀 각각 5명을 선택해 좋았던 점과 싫었던 점을 두 가지씩 물었다. 한국 사회를 많이 알수록 더 객관적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해 오래전 졸업한 탈북민 위주로 선정했다. 괄호 안에 성별과 하나원을 졸업한 시기를 밝혔다.○ “나는 이래서 하나원이 좋았다” “있을 땐 몰랐는데 정작 사회에 나오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낸 그 시절이 그립고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된다.”(여·2012년) “식단도 좋았고, 의료 서비스도 좋았다. 무엇보다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운동도 마음껏 했다.”(남·2006년) “심성수련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약육강식의 사회인 줄만 알았는데, 따뜻한 마음도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여·2002년) “돌아보니 근심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었다.”(남·2006년) “전반적인 기억이 좋다. 의료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음식도 맛있었다.”(여·2012년) “탈북 과정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아무 생각 없이 편히 다스릴 수 있어서 기뻤다. 먼저 사회에 나간 탈북민이 와서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 시간이 좋았다.”(남·2004년) “드디어 안전하게 보호받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안온했다.”(여·2002년) “마음이 편했고, 현장학습을 나갈 때마다 너무 기뻤던 것이 기억난다.”(남·2016년) “지금 생각해 보면 한국 생활 중에서 하나원이 제일 좋았다. 의식주를 다 책임져 주고 골치 아픈 일도 없고, 쉬는 기분이었다. 다시 거기서 생활하다 오고 싶다.”(여·2008년) “시설이 깨끗했고, 무엇보다 체육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서 좋았다. 배고프지 않았던 것도 좋았다.”(남·2016년) ○ “나는 이래서 하나원이 싫었다” “배운 것이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특히 탈북민을 멀리하고 아무 사람이나 믿지 말라고 계속 교육받아서 한동안 주변을 불신하게 했다.”(여·2012년) “직업교육을 일률적으로 하지 말고 개인별 맞춤형 진로 지도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 외부활동이 너무 적은데, 자주 한국 사회를 경험했으면 좋겠다.”(남·2006년) “특별히 지적할 점은 생각나지 않지만 교육이 약간 아쉬웠다.”(여·2002년) “교육 내용과 수준이 맞지 않아 지루했다. 전문성을 갖춘 직원들이 부족하다.”(남·2006년) “수업이 너무 많은데 무슨 소리인지 몰라 졸렸고 기억에 남는 것도 없다.”(여·2012년) “하나원 직원들이 너무 거들먹거려 기분이 나빴다.”(남·2004년) “가족 해체를 겪으며 한국에 온 탈북민 가족을 하나원에서도 몇 달 동안 갈라놓아 이산가족을 만든다. 탈북민 대다수가 도시에서 사는데 산골에 가둬놓고 비현실적 교육을 한다. 하나원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여·2002년) “절실히 필요하지 않은 교육을 정리하고 심리상담을 강화해야 한다.”(남·2016년) “나오니 좋은 것을 알겠지만, 안에 있을 때는 지루하고 하루라도 빨리 사회에 나가고 싶었다. 나와 보니 정착은 책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치며 배우는 과정이었다.”(여·2008년) “교육이 형식에 그치는 것 같다. 음식이 단조로워 질렸다. 교육생 중에 난폭한 사람이 석 달 내내 분위기를 망쳐도 감싸기만 하고 대책이 없다. 큰 사건 없이 달래서 졸업만 시키면 그 후엔 자기 일이 아니라서 그러는 것 같다.”(남·2016년)주성하 zsh75@donga.com·이지훈 기자}

    • 2019-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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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J 조문단 파견했던 北, 이번에도 보낼까

    이희호 여사가 별세한 다음 날인 11일 오후까지 북한은 공식적인 조문 의사를 전하지 않았지만 발인(14일) 전까지는 어떤 식으로든 메시지를 내거나 조문단을 보낼 가능성은 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빈소에서 조문 후 기자들과 만나 “북한에 내가 (이 여사의) 부고장을 보냈으니까…”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이 여사 장례위원회 요청으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부음을 전달했다고 통일부는 전했다. 이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뒤 2011년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사망 때도 조문하러 방북했다. 당시 상주였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 여사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전문가들은 북한이 조문의 뜻을 전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정부가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 전 남북 원포인트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는 만큼 남북이 조문을 계기로 비핵화 협상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실제로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시 조문차 방남한 김기남 당시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당시 통일전선부장은 청와대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예방해 남북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타진했고, 이는 그해 싱가포르에서 김양건과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의 비밀 접촉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1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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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볼턴 “3차 북-미 정상회담, 전적으로 가능”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제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가능하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대북 초강경파로 북-미 협상에 부정적 인식을 보였던 그의 언급이 달라진 것이어서 주목된다. 11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볼턴 보좌관은 월스트리트저널(WSJ) 주최로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최고재무책임자(CFO) 네트워크’ 행사에서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은) 전적으로 가능하다(entirely possible)”며 개최 여부는 평양에 달려있다고 밝혔다. 그는 “그들(북한)이 준비되면 우리는 회담을 열 준비가 되어 있다”며 “그들이 일정을 잡고 싶을 때 (가능하다)”라고 덧붙였다. 볼턴 보좌관은 베트남 하노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 협상이 결렬된 이후 북한에 대한 강경 발언을 지속해 왔다. 4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는 “3차 북-미 정상회담 전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했다는 진정한 신호를 보고 싶다”며 북한이 실제로 핵 폐기를 하겠다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5일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는 11일 오후 대북 인도적 지원금 800만 달러(약 94억5000만 원)를 국제기구에 송금하는 것을 완료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제기구를 통한 정부 차원의 첫 인도적 지원이다. 같은 날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확인했다’고 말했다”며 “(남측이) 오늘의 난국을 타개할 것을 실천적 행동으로 보여주는 용단을 내린다면 북측의 화답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위은지 wizi@donga.com·이지훈 기자}

    • 201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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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년 롤러코스터 탄 北-美… “재시동 변수는 트럼프 재선 지지율”

    12일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첫 회담을 가진 지 1주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 두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하며 한껏 기대감을 높였으나 올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다시 만나선 진전을 보지 못하고 대화 침체기에 들어선 상황이다. 하지만 18일부터 재선 운동에 돌입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이런 상황을 이용하려는 김 위원장의 수 싸움이 본격화되면서 ‘북핵 2라운드’가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 정의에도 합의 못 한 北-美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은 완전한 비핵화란 원론적 합의만 공동성명에 담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비핵화 프로세스가 20% 정도 진행되면 불가역적인 순간이 올 것”이라며 “이 지점에서 대북 경제 제재를 해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북-미 관계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였다. 9월 평양 공동선언 이후 북-미 비핵화 대화가 촉진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미 국무부가 11월 7일 북-미 고위급 회담 연기를 발표하며 위기를 맞았다. 김 위원장은 당초 예상됐던 지난해 말 서울 답방을 건너뛰고 올해 신년사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며 압박했다. 이후 1월 18일 김영철 당시 통일전선부장이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하며 양 정상의 재회 밑그림을 그렸지만 스몰딜을 원한 북한과 빅딜을 강조한 미국이 하노이에서 ‘북핵 민낯’만 확인한 채 대화 정체가 이어지고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비핵화의 첫 단추격인 비핵화에 대한 개념, 북핵의 최종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 그간 대화만 이어져 결정적 성과를 내기 어려웠던 것”이라고 진단했다. 비핵화 방법론에 대한 극심한 견해차도 대화의 장애물이다. 북한은 기본적인 신뢰관계를 확인한 다음 단계적 합의와 이행을 선호하는 반면 미국은 포괄적 합의 이후 단계적 동시적 해법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은 제재 완화를 미국의 대북 신뢰 조치로 보는 반면 미국은 제재를 비핵화 관철을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 ○ 북핵에 ‘美대선 변수’ 본격화 트럼프 대통령은 18일(현지 시간)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2만 석 규모의 암웨이센터에서 재선 도전 출정식을 갖는다. 민주당도 26, 27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대선 후보 첫 TV토론회를 연다. ‘북핵 노딜’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대선 전까지는 미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과 같은 북한의 극단적인 추가 도발을 막는 상황 관리에 주력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이를 파고들면서 또 다른 변수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까지 지금의 북핵 관리 모드를 유지만 하기엔 남은 기간이 길고, 그동안 김 위원장이 이런 상황을 이용하려 할 수 있다. 이런 북핵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해결에 나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대선 전까지 비핵화 대화가 수면 아래에 있다가도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 추이에 따라 갑자기 나올 수 있다는 말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기에 북유럽 순방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슬로 포럼 연설에서 북한을 유인할 수 있는 제안을 내놓고, 북한이 이에 남북 원포인트 정상회담이나 특사 수용으로 화답할 경우 비핵화 시계가 다시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9일 한 방송 인터뷰에서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 전에 남북 정상회담을 바라지만 낙관을 하기엔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했다. 황인찬 hic@donga.com·이지훈 기자}

    • 20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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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작년 北에 병원 지어주려다 포기

    지난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이후 우리 정부가 북측에 병원 설립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병원을 지을 경우 돈과 기자재가 북한에 반입돼 대북제재에 저촉될 수 있는 만큼 나중에는 병원선(船) 파견을 논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평양공동선언문을 근거로 병원 설립을 추진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공동선언문은 ‘남과 북은 전염성 질병의 유입, 확산 방지를 비롯한 방역 및 보건·의료 분야의 협력 강화’(2조 4항)를 담고 있다. 실제로 현재 평양을 제외한 대부분의 북한 지역에는 설비, 의약품 등 의료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우리 정부는 북측에 병원 설립 지원을 검토했으나 첨단 장비 반입과 기술 이전을 금지하는 현행 대북제재 아래에선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냈다. 이후 관계 부처 회의를 열어 대북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배 안에 병원을 지어 북한으로 보내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헌법상 북한의 영해(領海)는 대한민국의 영토이므로 배 안에 병원을 지어 보내면 제재와 무관하다고 판단한 것. 하지만 북-미 교착 국면에서 현실성 없는 방안으로 결론 났고 ‘병원선 보내기’ 프로젝트는 성사되지 못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당국 차원에서는 (병원 관련은) 논의한 바 없다”며 “지난해 9월 보건·의료 실무협의를 진행했지만 전염병 방역체계, 백신 등을 우선적으로 논의했다”고 밝혔다. 병원 설립 및 병원선 파견이 무산된 후 북한은 기타 보건 및 의료 분야 남북 협력에는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해 말 추진하려다가 무산된 타미플루 지원이 대표적이다. 인도적 이유로 우리 정부는 한미 워킹그룹 제재 면제를 받아 타미플루 지원을 결정했으나 사실상 북측의 거부로 성사되지 못했다. 또 정부가 지난달 31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남하를 막으려고 방역 협조를 요청했으나 북한은 6일째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1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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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불호령에… 北 집단체조 공연 중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무책임한 일본새(일하는 태도)”라고 공개 질책한 대집단체조 ‘인민의 나라’ 공연이 10일부터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전문여행사인 ‘영 파이오니어 투어스(Young Pioneer Tours)’는 5일 트위터에 “개막공연에 대한 김정은의 불만 때문에 대집단체조가 10일부터 일시적으로 중단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북한 여행사 고려투어도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대집단체조 공연이 10일부터 며칠 또는 몇 주간 중단될 것”이라는 공지를 올렸다. 당초 올해 대집단체조는 6월 초부터 4개월간 공연될 예정이었다. 대집단체조는 VIP 티켓 가격이 100만 원에 이르는 북한의 대표 여행 상품이다. 앞서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2일 평양 5·1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 개막공연을 관람한 뒤 “그릇된 창작·창조 기풍, 무책임한 일본새에 대하여 심각히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정은은 선전, 선동, 예술 분야에서 선대와는 달리 ‘인민의 관점’을 강조해왔는데 이 기조를 관철시키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공연 중단으로 대집단체조에 동원되는 약 10만 명의 북한 주민들의 고통이 가중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 탈북자는 “집단 체조를 연습하느라 화장실도 못 가고 밥도 제대로 못 먹는데, 김정은의 불호령까지 떨어진 것”이라고 전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19-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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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청설은 잠재웠지만… 김정은 연일 ‘군기잡기’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 이어 오랜 기간 잠적했던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관영 매체가 이틀 연속 ‘숙청설’ ‘근신설’이 돌던 두 사람을 공개한 건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 여론 악화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노동신문은 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가 전날 평앙 5·1경기장에서 열린 대집단체조 ‘인민의 나라’ 개막 공연을 관람했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김여정도 행사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이후 금수산태양궁전 참배(4월 15일), 방러 환송행사(4월 24일) 등에도 나타나지 않은 김여정을 두고 그동안 근신설, 건강 이상설이 끊이질 않아 왔다. 오랜 잠적에도 김여정의 정치적 위상은 여전해 보였다. 김여정은 당 부위원장(8명)을 포함한 15명의 당·정 간부 중 10번째로 호명됐는데 제1부부장급으로는 조용원에 이어 두 번째로 불렸다. 이날 노동신문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김여정은 리설주 옆자리에 앉았다. 김영철도 전날에 이어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이날에도 당 부위원장 중 마지막에 호명돼 일각에선 부위원장직도 내려놓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으나, 통일부는 4일 “김영철이 당 부위원장직을 유지하고 있다”고 공식 확인했다. 북한 매체가 김영철과 김여정을 잇달아 공개적으로 노출한 것에 대해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미국 강경파 사이에서 북한의 협상 시스템, (비핵화) 의지에 대한 회의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처형, 숙청이 이뤄지는 북한 체제에 대한 미국 내 불신이 가중되는 걸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획한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 내 강경파의 입지 강화를 막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주변의 대화파에 힘을 실어 비핵화 기조의 끈은 유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한편 김 위원장은 재차 당 간부·일꾼들의 ‘일본새’(일하는 태도)를 공개적으로 질책하며 내부 기강 단속에 나섰다. 노동신문은 4일 “(김 위원장이) 대집단체조와 예술 공연 창조성원들을 불러 작품의 내용과 형식을 지적하며 그들의 그릇된 창작창조 기풍, 무책임한 일본새에 대하여 심각히 비판하시었다”고 전했다. 앞서 1일 청소년 교육시설의 관리 부실을 지적하며 당 근로단체부 간부 등의 ‘일본새’를 문제 삼은 데 이어 다시 한번 이를 거론한 것. 김 위원장의 공개 질책은 내년 ‘5개년 전략’ 목표 마무리를 앞두고 대북제재 등 악화된 대외적 여건을 타개하기 위해 내부 기강 단속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내년까지 가시적인 경제 성장을 보여줘야 하는데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총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실패한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홍 실장 역시 “비핵화 협상에 몰두하느라 경제는 신경 못 썼는데 벌써 4년 차에 접어들어 절박해진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19-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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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청설 돌던 北 김영철, 52일만에 공개석상 모습 드러내

    ‘하노이 노딜’ 이후 최근 숙청 보도가 나왔던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나란히 모습을 드러내며 건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노동신문은 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부인 리설주와 함께 ‘군인 가족 예술 소조 공연’을 관람했으며 이 행사에 김 부위원장도 참석했다고 3일 전했다. 김영철의 마지막 공개 행보는 국무위원회 단체 사진(4월 12일)이 공개된 이후 52일 만이다. 하노이 북-미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그동안 김영철 등 협상 라인은 문책설이 끊이질 않았다. 특히 김영철은 금수산태양궁전 참배(4월 15일), 방러 환송 행사(4월 24일) 등 그동안 중요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신병 이상설도 나왔다. 이에 북한이 하노이 회담 결렬의 원인·배경에 대한 총화(검열)를 하는 과정에서 북-미, 남북 협상을 주도한 김영철에게 책임을 물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 것. 그러자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 등 국제사회의 여론을 의식해 김영철을 2일 행사장에 호출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영철의 등장은 교화형에 처했다는 국내 언론 보도(5월 31일) 이후 이틀 만이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연내에 개최하겠다고 한 상황에서 미국과의 대화 실무를 맡았던 김영철에게 심한 문책을 한다면 미국이 ‘정상국가화에 대한 진정성이 없다’고 비난할 수 있고, 미국의 진의를 전달받기도 어렵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철은 이날 비록 건재함을 과시했으나 9명의 당 부위원장 중 맨 마지막에 호명됨으로써 이전보다 당내 서열이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2월 하노이 회담 이전만 해도 주요 행사에서 리수용 당 부위원장보다 먼저 호명됐으나 이날은 올 4월 새로 임명된 최휘(근로 단체), 박태덕(농업) 부위원장보다도 늦게 불렸다. ‘자리’도 밀려났다. 김영철이 이날 공개된 사진에서 주석단 끝부분(김 위원장 좌측 5번째)에 앉아 ‘예전만 못 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편 김영철이 악성종양 제거를 위해 한동안 입원을 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4월 말 김영철 부위원장이 신병 치료로 인해 북한의 봉화진료소 혹은 중국의 인민해방군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날 공연에도 김 위원장을 그동안 그림자처럼 수행했던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은 보이지 않았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3일 라디오에 출연해 “김여정이 지금 나타나지 않고 있는 건 (북한 내) 분위기가 나쁜데 조용히 좀 지내는 것이 좋지 않으냐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면서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자 백두혈통인 만큼 아무 문제가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이지훈 easyhoon@donga.com·신나리 기자}

    • 201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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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청설’ 김영철 재등장…호명 순서-자리는 밀려나 ‘예전만 못하다’?

    ‘하노이 노딜’ 이후 최근 숙청 보도가 나왔던 김영철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나란히 모습을 드러내며 건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노동신문은 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부인 리설주와 함께 ‘군인 가족 예술 소조 공연’을 관람했으며 이 행사에 김 부위원장도 참석했다고 3일 전했다. 김영철의 마지막 공개 행보는 국무위원회 단체 사진(4울 12일)이 공개된 이후 52일 만이다. 하노이 북-미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그동안 김영철 등 협상 라인은 문책설이 끊이질 않았다. 특히 김영철은 금수산태양궁전 참배(4월15일), 방러 환송 행사(4월24일) 등 그동안 중요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신병 이상설도 나왔다. 이에 북한이 하노이 회담 결렬의 원인·배경에 대한 총화(검열)를 하는 과정에서 북미, 남북 협상을 주도한 김영철에게 책임을 물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 것. 그러자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 등 국제 사회의 여론을 의식해 김영철을 이날 행사장에 호출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영철의 등장은 교화형에 처했다는 국내 언론 보도(5월 31일) 이후 사흘만이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3차 북미정상회담을 연내에 개최하겠다고 한 상황에서 미국과의 대화 실무를 맡았던 김영철에게 심한 문책을 한다면 미국이 ‘정상국가화에 대한 진정성이 없다’고 비난할 수 있고, 미국의 진의를 전달받기도 어렵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철은 이날 비록 건재함을 과시했으나 9명의 당 부위원장 중 맨 마지막에 호명됨으로써 이전보다 당내 서열이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2월 하노이 회담 이전만 해도 주요 행사에서 리수용 당 부위원장보다 먼저 호명됐으나 이날은 올 4월 새로 임명된 최휘(근로 단체), 박태덕(농업) 부위원장보다도 늦게 불렸다. ‘자리’도 밀려났다. 김영철이 이날 공개된 사진에서 주석단 끝부분(김 위원장 좌측 5번째)에 앉아 ‘예전만 못 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이 지난 4월 장금철을 새 통일전선부장으로 임명한 건 김영철을 숙청했다기보다는 대외 협상에서 배제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한편 김영철이 악성종양 제거를 위해 한동안 입원을 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4월 말 김영철 부위원장이 신병 치료로 인해 북한의 봉화진료소 혹은 중국의 인민해방군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날 공연에도 김 위원장을 그동안 그림자처럼 수행했던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은 보이지않았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김여정이 지금 나타나지 않고 있는 건 (북한 내) 분위기가 나쁜데 조용히 좀 지내는 것이 좋지 않으냐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면서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자 백두혈통인 만큼 아무 문제가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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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김혁철 처형설에 한미 정부 신중 모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실무라인’을 숙청하거나 처형했다는 일각의 보도에 대해 한미 정부는 지금까지 신중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김영철 전 통일전선부장은 ‘혁명화 교육’(강제노역 및 사상교육)을 받고 있으며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는 총살됐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에 대해 “정보 사안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역시 이날 독일에서 처형설 관련 질문에 “사실 확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답했다. 싱가포르를 방문 중인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도 이날 김 대표의 처형설에 대해 “모른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워싱턴 정가에서 최소 5주 동안 북한 측 협상자들의 숙청 및 처형 소문이 돌았지만 미국 관리 중 누구도 소문을 확인하거나 반박할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같은 스탠스는 청와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저희가 모든 관련 동향을 살펴보는데 (보도 내용이) 얼마만큼 확인된 사안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한미 정부가 김혁철 처형설 등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것은 실제로 처형이 이뤄졌을 경우 비핵화 대화 재개가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김혁철을 김정은이 처형했다면 트럼프 행정부를 겨냥해 ‘우리 갖고 장난치지 말라’는 메시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이지훈 easyhoon@donga.com·구가인 기자}

    •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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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미사일 도발후 첫 공개행보로 군수공장 방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고난의 행군’을 극복하기 위해 북한이 내건 구호인 ‘강계 정신’의 발원지인 자강도의 군수 공장 등을 공개 시찰하며 “자력갱생만이 살길”이라고 강조하고 나섰다. 김 위원장의 공개 행보는 지난달 9일 미사일 발사 이후 23일 만이다. 북한 내부 기강을 다잡는 동시에 미국의 태도 변화를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선중앙통신은 1일 김 위원장이 자강도 일대 군수·기계 공장과 학생 교육 시설 등을 집중 시찰하고 현지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먼저 강계뜨락또르(트랙터)종합공장을 찾아 “인민경제와 국방력 강화에 절실히 이바지하는 기계설비를 마음먹은 대로 생산하고 있다”며 “자력갱생만이 살길”이라고 강조했다. 포탄과 미사일 탄두 등을 생산하고 있는 이 공장은 2016년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 정부가 지정한 독자제재 대상에 포함된 곳이다. 김 위원장은 이어 강계정밀기계종합공장과 장자강공작기계공장, 2·8기계종합공장 등을 찾아 “유휴자재로 생활필수품 생산을 정성화해 가짓수를 늘리고 질을 높여야 한다”며 “이는 우리 당이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취한 조치이며 중요한 정책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특히 김 위원장이 교육시설을 방문해 “‘일본새(일하는 자세)’가 틀려먹었다”며 노동당 간부들에게 질타를 쏟아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강계 ‘배움의 천릿길 학생소년궁전’을 둘러보고 “설계를 망탕, 주인답게 하지 않았다. 형식주의, 날림식이 농후하다”며 “기분이 좋지 않다. 대단히 실망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이번 김 위원장의 현장 시찰에는 4월 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한 현송월이 동행해 눈길을 끌었다.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하노이 결렬’ 이후 자취를 감춘 가운데 현송월이 이례적으로 경제 시찰을 수행하고 나선 것. 한 대북 소식통은 “북-미, 남북 대화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 현송월이 김 위원장의 총애를 받으며 이른바 ‘심기 경호’를 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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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관계 악화에도 日젊은층엔 3차 한류 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일본의 ‘3차 한류 붐’은 한일 양국의 최근 민감한 정치적 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사히신문사 기자 출신의 프리랜서 칼럼니스트 나리카와 아야(成川彩·사진) 씨는 30일 서울 종로구 동서대 일본연구센터에서 열린 특별 강연에서 최근 한일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사히신문에서 문화 분야를 담당한 뒤 지금은 한국 영화 관련 글을 쓰는 나리카와 씨는 “강제징용 배상 등 양국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도 일본의 10, 20대 중심으로 3차 한류 붐이 일고 있다”면서 “정치와 문화의 분리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과거 일본에선 보지 못한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카라, 소녀시대 등 초창기 한국 아이돌 가수들이 이끌었던 한류 열풍은 2012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싸늘하게 식었다”고 진단한 뒤 “하지만 최근 일본의 10, 20대는 SNS보다 뉴스를 덜 본다. 양국의 정치적 관계가 어떤지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정치 역사 문제보다는 자신의 취향을 우선시하는 특성도 반영된 것”이라고도 했다. 정구종 동서대 일본연구센터 고문은 “일본에서 한류 재점화를 계기로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한 다양한 의견을 모아야 할 때”라며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19-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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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업무 맡겼으면 전쟁 4번은 치렀을 것”… 트럼프 사석에서 볼턴 강경론에 불만 토로

    북한, 이란 등 미국 외교안보 현안을 둘러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사진)의 시각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8일 보도했다. NYT는 행정부 소식통들을 인용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사석에서 “볼턴에게 모든 업무를 맡겼다면 미국은 전쟁을 네 번 겪었을 것이다. 그가 우리를 전쟁터로 끌어들일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NYT는 볼턴이 중동에 대규모 병력의 추가 파병을 검토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대규모 병력 파견에 반대했고,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실험에 대한 의미 부여도 낮췄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 보좌관의 간극이 최근 더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둘의 시각차는 25∼28일 일본 국빈 방문에서 두드러졌다.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에 대해 볼턴 보좌관은 25일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기자회견에서 “참모들은 위반일 수 있다고 여기지만 나는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란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체제 전환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현 체제 붕괴를 추진하며 중동에 대규모 파병을 추진한 볼턴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대통령과의 의견 차이에 좌절한 듯 볼턴 보좌관은 27일 나루히토 일왕이 주최한 국빈 만찬에도 불참했다. 또 대통령과 함께 귀국 비행기를 타지 않고 중동으로 향했다. 그는 30일 사우디에서 열리는 아랍연맹 정상회의 및 걸프협력회의에 참석한다. 미 정부 관계자들은 거듭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강조했다. 모건 오태거스 국무부 대변인은 28일 “북한의 전체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와 충돌하지만 미국의 초점은 북한의 WMD 프로그램을 평화롭게 종식시키기 위한 협상에 있다”고 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도 29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침착하게 잘 대응하고 있다. 계속 북한과 대화할 뜻을 밝혔다”고 했다. 대통령의 대북 유화 태도에 대한 미국 내 우려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존 브레넌은 28일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은 ‘제로(0)’”라고 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2019 오슬로 자유포럼’에서 “북한 내부로 외부 영상물 유입이 늘어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정권이 20년 이상 지속되지 못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전했다.최지선 aurinko@donga.com·이지훈 기자}

    • 20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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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앤드류 김 “‘北사람들, 美 어떻게 믿고 모든 걸 포기하냐’고 해”

    앤드루 김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은 29일 북한의 추가 미사일 도발 가능성에 대해 “한두 번 더 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김 전 센터장은 이날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개최한 ‘2019 글로벌 인텔리전스 서밋’ 미디어 세션에 참석해 “(최근 미사일 발사) 실험이 성공했다면 실험을 하지 않을 것이고, 성공하지 못했다면 한두 발 추가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미사일 도발 재개 배경에 대해선 “(북한은) 대화가 중지되면 미뤄뒀던 것을 시행한다. 미사일을 개발해서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 (테스트)한 것”이라면서 “이것이(미사일 성능 확인이) 끝나면 대화에 다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현직 때 경험을 언급하며 “북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 ‘72년 간 서로 불신의 상대였는데 어떻게 미국을 믿고 모든 걸 다 포기하냐’고들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국식으로 생각한다면 ‘새로운 친구가 되자’는 것인데, (북한처럼) 본인들이 원할 때만 소통해서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최근 미 국무부 등에서 ‘동시적·병행적’ 해법이 다시 거론되는 것과 관련해서는 “미국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처음부터 비핵화가 최종적 목적이고 북한이 비핵화라는 의지를 확실하게 보이면 그에 상응조치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개성공단 등 남북 경협 관련해서는 “미국은 북한을 상대하는 중심적 목표가 비핵화이고, 한국은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 목적이다. (한미가) 개성, 금강산을 바라보는 차이점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19-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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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널A 단독]자유조선 “김한솔이 먼저 구출 요청”

    “김한솔 구출은 그의 요청으로 인도주의 차원에서 단행했다.” 2017년 피살된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의 도피를 도운 것으로 알려진 반북단체 ‘자유조선’이 27일 채널A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구출 배경을 전했다. 자유조선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처음이다. 자유조선 측은 인터뷰에서 “우리는 평양을 포함하여 활동의 신속함과 정확성을 갖추기 위해 근 십 년 동안 세계 도처에 거점을 만든 국제적인 범위의 조직”이라고 자신들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규모와 실력을 가진 우리 조직이어서 김정남 암살 이후 김한솔의 다급한 구원 요청이 가장 먼저 우리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며 “김한솔 구출에 필요한 다국적 설득, 협력 속에서 당시 주변국에 머물던 크리스토퍼 안을 비롯한 몇 명이 긴급 동원됐다”고 설명했다. 자유조선이 김정은 정권 때부터 점조직처럼 구성된 글로벌 조직이며, 김한솔이 이 조직의 존재를 알고 먼저 도움을 요청해와 즉각 행동에 나섰다는 것. 일각에서 “자유조선이 김정남에게 망명 정부 수반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자유조선은 “김씨 세습을 반대하는 우리에게 ‘김정남·김한솔 지도자설’은 가장 치욕으로 간주된다”고 했다. 이어 “자유조선 내부의 그 어떤 관계자도 김정남을 만난 적 없으며 특히 김씨 일가의 혈통을 우리 조직의 일원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끔찍한 상상 자체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자유조선은 인터뷰에 응하면서 2017년 김한솔의 구출 직후 공개한 영상의 원본을 함께 전해주기도 했다. 당시 무음 처리됐던 부분이 원본엔 나와 있다. 영상에서 김한솔은 여권을 보여준 다음 “에이드리언 홍과 그의 팀에 감사하다”고 직접 언급한다. 현재 국제 체포영장이 발부돼 수배 중인 에이드리언 홍 창(35)이 김한솔 구출 작전의 주역이었음이 김한솔의 입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당시 무음 처리를 했던 것에 대해선 “조직 구성원의 노출이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동영상에서 관련 내용을 삭제해 공개했었다”고 설명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채널A=전혜정 기자}

    • 2019-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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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널A 단독]김한솔 도운 자유조선 “평양은 물론 세계 도처에 거점 있어”

    “김한솔 구출은 그의 요청으로 인도주의 차원에서 단행했다.” 2017년 피살된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의 도피를 도운 것으로 알려진 반북단체 ‘자유조선’이 27일 채널A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구출 배경을 전했다. 자유조선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처음이다. 자유조선 측은 인터뷰에서 “우리는 평양을 포함하여 활동의 신속함과 정확성을 갖추기 위해 근 십년 동안 세계 도처에 거점을 만든 국제적인 범위의 조직”이라고 자신들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규모와 실력을 가진 우리 조직이어서 김정남 암살 이후 김한솔의 다급한 구원 요청이 가장 먼저 우리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며 “김한솔 구출에 필요한 다국적 설득, 협력 속에서 당시 주변국에 머물던 크리스토퍼 안을 비롯한 몇 명이 긴급 동원됐다”고 설명했다. 자유조선이 김정은 정권 때부터 점조직처럼 구성된 글로벌 조직이며, 김한솔이 이 조직의 존재를 알고 먼저 도움을 요청해와 즉각 행동에 나섰다는 것. 일각에서 “자유조선이 김정남에게 망명 정부 수반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자유조선은 “김 씨 세습을 반대하는 우리에게 ‘김정남·김한솔 지도자설’은 가장 치욕으로 간주된다”고 했다. 이어 “자유조선 내부의 그 어떤 관계자도 김정남을 만난 적 없으며 특히 김 씨 일가의 혈통을 우리 조직의 일원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끔찍한 상상 자체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자유조선은 인터뷰에 응하면서 2017년 김한솔의 구출 직후 공개한 영상의 원본을 함께 전해주기도 했다. 당시 무음 처리됐던 부분이 원본엔 나와 있다. 영상에서 김한솔은 여권을 보여준 다음 “에이드리언 홍과 그의 팀에 감사하다”고 직접 언급한다. 현재 국제체포영장이 발부돼 수배 중인 에이드리언 홍 창(35)이 김 씨 구출 작전의 주역이었음이 김한솔의 입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당시 무음 처리를 했던 것에 대해선 “조적 구성원의 노출이나 의심을 피하기 동영상에서 관련 내용을 삭제해 공개했었다”고 설명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채널A=전혜정 기자 hye@donga.com}

    • 201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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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정철 “민감한 얘기 안 나눠” 해명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서훈 국가정보원장과의 만찬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에 “사적인 지인 모임이었을 뿐 민감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양 원장은 27일 입장문을 통해 “서 원장께 모처럼 문자로 귀국 인사를 드렸고, 서 원장께서 원래 잡혀 있었고 저도 잘 아는 일행과의 모임에 같이하자고 해 잡힌 약속”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양 원장은 이날 오후 추가 입장문을 통해 “대한민국 국정원장이 비밀 얘기를 할 장소가 없어 다 드러난 식당에서 누군가를 만났다는 가정 자체가, 정치를 전혀 모르는 (첫 보도) 매체의 허황된 프레임일 뿐”이라고 했다. 서 원장 외 참석자에 대해서는 “(식당에 참석한 다른) 지인들의 경우 공직자도 아닌 민간인 신분을, 프라이버시 고려 없이 제가 아무리 곤경에 처해도 일방적으로 공개할 생각은 없다”며 밝히지 않았다. 당시 식사를 마친 양 원장의 택시비를 식당 주인이 대신 내줬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내 식사비는 내가 냈다. 현금 15만 원을 식당 사장님께 미리 드렸다”며 “(식당 사장이) 오랜만에 식당을 찾은 제가 반갑고 (여전히 놀고 있는 줄 알고) 짠하다며 그중 5만 원을 택시기사에게 내준 것”이라고 했다. 이를 처음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서는 강한 불쾌함을 드러냈다. 양 원장은 “기자정신과 파파라치 황색 저널리즘은 다르다. 적당히 하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 서 원장은 이날 오전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개최한 학술대회에 축사하기 위해 서울 중구의 한 호텔을 방문한 뒤 기자들에게 “이 행사가 굉장히 의미 있는 행사이니 취재와 보도를 잘 부탁한다”며 비공개 만찬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고 호텔을 빠져나갔다.강성휘 yolo@donga.com·이지훈 기자}

    • 201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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