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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진영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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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6~2025-12-06
칼럼100%
  • [횡설수설/이진영]美 국방부 보도지침에 위헌 소송 낸 NYT

    언론 자유를 수정헌법 1조로 보장하는 미국에서 정부 및 고위 공직자와 언론 간 소송은 매우 드문 편이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경우 지난 1기 때부터 현재까지 대통령 개인이 언론사를 상대로 낸 소송만 30건이 넘고 올해 제기한 소송만도 6건이나 된다. 미국 역사상 최다 기록일 것이다. 언론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5일엔 뉴욕타임스(NYT)가 국방부를 상대로 새로운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NYT가 문제 삼은 것은 국방부가 10월 발표한 보도지침으로 ‘기밀이든 아니든 모든 보도는 사전 승인을 받으라’는 내용이다. NYT는 “이 보도지침은 정부가 공식 발표한 내용 이외의 정보를 취재해 국민에게 전달하는 기자들의 역량을 제한하는 것으로 수정헌법 1조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또 보도지침을 어기면 출입을 금지하는 일방적 처벌 규정도 적법 절차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5조 위반이라고 했다. 사전 검열이나 다름없는 보도지침 시행 후 40여 명의 기자들이 출입증을 자진 반납하고 펜타곤 밖에서 취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수정헌법 1조와 5조는 언론이 정부의 언론 통제에 맞서 법정 다툼을 벌일 때 꺼내 드는 핵심 방패다. AP 기자는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으로 표기하라는 행정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백악관 출입을 금지당하자 수정헌법 1조 위반으로 소송을 냈고, 1심 승소 후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트럼프 1기 때는 CNN 백악관 출입기자가 날 선 질문을 한 후 출입증을 빼앗겼으나 수정헌법 1조와 5조 덕에 되찾은 적도 있다. 공영방송 PBS와 NPR은 ‘논조의 편향성’을 이유로 연방 자금 지원이 끊기자 수정헌법 1조에 근거해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언론 입막음용으로 트럼프 정부가 활용하는 무기는 거액의 소송 폭탄이다.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에게 보낸 ‘외설 편지’를 보도한 월스트리트저널엔 100억 달러(약 14조7000억 원), “수십 년간 트럼프와 가족, 미국 전체에 거짓말을 퍼뜨려온 최악의 신문”이라 부른 NYT엔 150억 달러짜리 손해배상 소송을 낸 상태다. ABC뉴스(1500만 달러), NBC뉴스와 CBS(각 1600만 달러)엔 명예훼손 소송을 취하하는 대가로 거액의 합의금을 받아내기도 했다. ▷언론 자유와 관련한 기념비적인 판결로,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 여부는 원고가 ‘실제적 악의’를 입증해야 성립한다는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1964년), 국가기밀이란 이유만으로 언론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는 ‘뉴욕타임스 대 미국 정부’(1971년)가 꼽힌다. 모두 NYT가 당사자였다. 이번에 국방부를 상대로 낸 NYT 소송도 그 효력은 모든 언론에 미칠 것이다. 세계 언론자유지수 순위를 57위까지 추락시킨 트럼프 정부에 맞서 언론 자유를 지켜내는 또 하나의 판례가 나올지 기대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17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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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영 칼럼]떨어지는 감도 못 받아먹는 국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어록 중에 “정치는 상대가 자빠지면 이긴다”는 명언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인용해서 새삼 유명해진 말이다. 그런데 상대가 자빠지는데 이기기는커녕 지는 바보도 있다. 여당이 부동산 대책으로 자빠지고, 대장동 항소 포기로 비틀대는 동안 여당과 대통령 지지율이 오르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내려가고 있다. 떨어지는 감도 못 받아먹는 게 요즘 국힘의 정치력이다. 이탈리아 경제사학자 카를로 치폴라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법칙’에서 인간을 현명한 인간, 순진한 인간, 영악한 인간, 어리석은 인간 네 종류로 나누었다. 개인의 행동이 본인과 집단에 득실이 되는지가 기준인데 이는 정치에도 유용한 분류법이다. 첫째, 나와 공동체 모두에 득이 되는 ‘현명한 정치’가 있다. 둘째, 사회엔 득이 되는데 난 손해를 봤다면 ‘순진한 정치’다. 노동개혁으로 독일 경제 부활의 초석을 놓고 실각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노동정책이 순진한 정치다. 셋째, 개인이나 정파의 이익을 채우려 나라에 막대한 손해를 주는 ‘영악한 정치’가 있다. 여당의 사법 정치는 개인적 사법 리스크 해소를 위해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영악한 정치다. 넷째, 자신은 어떠한 이득도 못 얻거나 심지어 손해를 보면서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어리석은 정치’다.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고 패가망신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정치가 딱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요즘 국힘이 ‘1호 당원’ 못지않은 어리석은 정치를 하고 있다. 장동혁 대표를 가리켜 ‘멍청한 윤석열이 가고 나니 더 멍청한 장동혁이 왔다’고들 혀를 찬다. 1년 전 계엄의 밤 국힘 의원 18명이 없었더라면 신속한 계엄 해제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계엄 극복에 정치적 지분을 주장하기는커녕 계엄 옹호 세력과 절연하지 못한 채 여당이 놓은 ‘내란 정당’의 덫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나라는 폭주하는 권력에 위태롭게 내어주고 당은 위헌 정당으로 해산될 위기에 처했으니 이보다 어리석은 정치도 없다. 최근 부동산 대책 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국면에서 국힘이 구사한 전략은 1사 만루의 기회를 병살타로 날려 먹은 야구팀 수준이다. 역대 진보 정부의 아킬레스건인 부동산 문제는 국힘엔 ‘우리 싸움터’에서 싸워 볼 기회였지만 장 대표가 윤 전 대통령 면회 다녀온 사실을 공개하면서 싸우기도 전에 힘이 빠져버렸다. 대장동 일당에 수천억 원의 부당 이득을 챙겨준 항소 포기에 국힘은 규탄대회까지 열어 놓곤 “우리가 황교안이다” 하고 헛발질하는 바람에 “우리가 김만배다” 세력의 기만 살려줬다. 결정적 위기 때마다 지지율 방어에 나서주는 국힘이야말로 ‘찐명’ 아닌가. 어느 나라든 현명한 정치나 순진한 정치는 어렵고, 흔한 것이 영악한 정치다. 영악한 정치끼리 만나면 서로 견제가 돼 큰 탈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악한 정치와 어리석은 정치가 만나면 ‘헌법 존중 TF’와 ‘사법 정상화 TF’ 같은 기만적 이름의 조직이 헌정 질서를 유린해도 속수무책인 한국처럼 파국으로 치닫기 쉽다.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민주주의의 유산이 자동적으로 우리를 (폭정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제도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체제 위기를 겪었던 20세기 유럽 민주주의 국가들을 연구한 결과 사람들이 새로운 질서에 저항하기보다 놀랍도록 잘 적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정부가 죄 없는 사람 휴대전화 들여다보고, 내 편이면 상 주고 아니면 벌주는 엉터리 신상필벌에 입법권과 예산권을 남용하는데도 별 저항 없이 안정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새로운 질서에 놀랍도록 순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스스로 보호하지 못하는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지켜낼 수 있을까. 영악한 정치보다 나쁜 것이 어리석은 정치다. 영악한 사익 추구 정치는 정당하진 않아도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해 방어할 수 있다. 그런데 자기도 큰 손해 봐가며 공동체에 해코지하는 어리석음은 비합리적이어서 예측도 반격도 어렵다. 국힘이 왜 여당의 내란 몰이가 극에 달할 계엄 1주년이 다가오도록 선제적 사과와 청산을 하지 않는지, 여당을 긴장케 하는 대안 세력으로 거듭나려 하지 않는지 이해하려 애써 봐야 소용없다. 그저 그들이 “신들도 두 손 두 발 다 들 정도”로 어리석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정당이 해산된들 뭐가 아쉽겠나. 어리석은 정당 탓에 나라가 비가역적 치명상을 입게 될까 걱정되고 분통 터질 뿐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아직도 윤 어게인을 외치는 자가 있다면 모두 모자란 사람들이다. 암적 존재들이다”라고 했다. 폭정의 여당 대표가 할 말인가 싶지만 이 말만큼은 동의할 수밖에 없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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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죽은 엡스타인, 산 트럼프 잡나

    폭주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1년도 안 돼 대형 장애물을 만났다. 트럼프 정부가 공개 반대를 고수해 온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의 수사 기록에 대해 상하원이 사실상 만장일치로 공개하라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 엡스타인은 미성년자들을 동원해 정·관·재계 인사들에게 성접대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2019년 구치소에서 자살했는데, 그의 ‘고객’으로 의심되는 명단엔 전현직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거물들이 망라돼 있다. 트럼프가 19일 법안에 서명하면서 한 달 내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게 됐다. ▷엡스타인 사건을 스캔들로 키운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과 경쟁한 대선을 앞두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해 “엡스타인 때문에 큰일을 겪게 될 것”이라며 성접대를 받았음을 암시했다. 이즈음부터 부정선거론과 함께 극우 보수세력의 2대 음모론인 딥스테이트(deep state), 즉 좌파 엘리트 소아성애자들로 구성된 비밀 조직이 세계를 조종한다는 음모론이 퍼지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에선 엡스타인 파일을 공개해 배후 세력인 딥스테이트를 척결하겠다고 공약했다. ▷대선 승리 후엔 피해자 정보 보호를 명분으로 비공개로 선회했는데, 이후로는 트럼프에게 불리한 정황이 담긴 자료가 유출되며 거꾸로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2000년대 중반 무렵 ‘역겨운 변태’와 절연했다고 했지만 엡스타인은 2011년 지인에게 보낸 메일에서 “트럼프와 피해자가 내 집에서 몇 시간을 보냈다”고 했고, 죽기 직전 메일에선 “트럼프는 소녀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아직까지 트럼프가 성범죄에 연루됐다는 결정적 증거는 없는 상태다. ▷트럼프 정책의 ‘거수기’ 역할을 하던 공화당은 이번 표결에선 하원의원 1명을 빼곤 모두 공개 찬성 쪽에 섰다. 그만큼 엡스타인 음모론은 마가 진영을 결집시키는 핵심 이슈다. 마가를 지탱하는 6개의 기둥이 있는데 미국 우선주의가 중심이고, 나머지가 국경 문제, 반(反)세계화, 표현의 자유, 나라 밖 전쟁 개입 금지, 그리고 ‘우리 국민(we the people)’이다. 마가 진영이 워싱턴 아웃사이더 트럼프를 선택한 건 엡스타인 파일에 나오는 딥스테이트에 맞서 ‘우리 국민’을 보호할 적임자로 봤기 때문이다. ▷클린턴, 오바마 행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래리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은 얼마 전 엡스타인과 연애사를 공유하는 사이임이 드러나 모든 공적 활동을 중단했다. 엡스타인으로부터 미성년자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동생 앤드루 왕자도 왕실 작위와 칭호를 포기했다. 미국 국민은 판도라의 상자에서 또 어떤 이름이 나올지 못지않게 왜 트럼프가 감추고자 했는지 궁금해한다. 죽은 엡스타인이 산 트럼프를 잡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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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하루에 책 12권 쓰는 ‘괴물 작가’

    다작(多作)하는 작가들이 있다. 프랑스의 발자크는 26년간 125편의 소설과 희곡을 완성했다. 하루 15시간씩 커피를 50잔 마셔가며 썼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76)는 46년간 107편의 소설과 에세이집을 냈다. 달리기와 수영으로 다져진 몸으로 매일 새벽 5시부터 7시간 동안 4000자씩 쓴다. 다산 정약용은 전남 강진 유배 시절 19년간 500편의 저작을 남겼다. 연평균 26.3권으로 제자 18명과 협업한 덕분이다. 세계적인 다작의 명수들이 울고 갈 괴물 작가가 나타났다. ▷요즘 출판계에선 1년 새 9000권 넘는 책을 낸 무명의 출판사가 화제다. 하루 평균 20여 권씩 찍어낸 셈인데 ‘작가 회원’에게 ‘AI 툴’을 제공한다는 홍보 문구로 보아 인공지능(AI)을 적극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 작가는 이곳에서 4개월간 137권을 냈다. 철학 예술 공학 경제 입시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많이 쓴 날엔 하루 12권도 냈다고 하니 AI가 다 쓴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AI의 등장으로 급변하는 분야 중 하나가 출판이다. 편집, 교열, 디자인을 맡기는 수준을 넘어 목차 구성부터 본문 집필까지 전 과정을 AI로 하는 경우도 많다. 글쓰기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서 전자책 시장엔 AI ‘유령작가’들 책이 쏟아진다. 한 작가는 AI를 ‘글쓰기 파트너’로 받아들인 후 2년 걸리던 책을 2개월 만에 완성했다고 했다. AI가 초안을 쓰면 이를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낸다는 것이다. 이 작가는 ‘챗GPT’를 공저자로 표기하지만, 관련 표기 기준이 없어 양심 없는 저자들이 AI로 써놓고 아닌 척해도 확인할 길은 없다. ▷AI의 기여도를 판별하는 ‘문해력’ 기술도 진화 중이다. 무엇을 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썼느냐를 본다. 구문 패턴과 어휘의 다양성 등 AI가 남긴 ‘문체적 지문’을 분석하거나, 문자 입력 속도가 규칙적이고 수정 없이 입력됐다면 AI가 쓴 것으로 판별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39번 고쳐 썼는데, AI라면 한 번에 좌르륵 썼을 것이다. 문자를 입력하는 동안 심박수와 뇌파를 측정하는 기술도 있다. 슬프거나 분노가 느껴지는 대목을 타이핑하면서 생리 신호에 변화가 없다면 AI가 쓴 것으로 본다. 앞으론 집필 과정의 이런 정보를 보관했다가 ‘AI로 썼느냐’는 의심을 받을 때 반박 근거로 사용하게 될지 모르겠다. ▷AI 덕분인지 지난해 발간된 신간 종이책만 6만4300종으로 10년 전보다 42% 늘었다. 하지만 1030 청년들의 독서량은 14년 새 반 토막이 났다. 책보다 재밌는 게 많아진 데다 “끔찍하고 기진맥진한 투쟁”(조지 오웰) 같다는 글쓰기가 하루에 12권을 너끈히 쓸 정도로 가벼워진 탓이다. 출판의 풍요 속 지적 빈곤을 느끼는 AI 시대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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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새벽 3시 출근한 다카이치

    성공한 사람들 중엔 ‘새벽형 인간’이 많다.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은 새벽 3시 45분이면 일어나 직원들에게 보낼 메일을 준비한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새벽 5시에 눈을 떠 1시간 동안 독서하는데 “출근도 전에 내 하루가 성공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새벽에 폭풍 트윗을 날려 참모들 잠을 설치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을 압도할 새벽형 인간이 화제다. ▷얼마 전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로 당선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7일 새벽 3시 4분에 출근해 국회 중의원 예산위원회 답변 준비 회의를 3시간 했다. 다카이치 내각 출범 이후 첫 예산위원회인 만큼 “정성스럽고 치밀한 준비가 필요”했으나 전날 밤까지 답변 자료를 완성하지 못해 새벽 회의를 소집했다고 한다. 야당에선 “총리가 3시부터라면 직원들은 1시 반, 2시부터 대기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윗사람이 일찍 출근하면 아랫사람 여럿이 힘들어진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새벽 1시에도 회의를 소집해 참모들이 하루 24시간 대기 상태였다. 수면 장애를 겪는 북한 김정은은 ‘새벽 시찰’이 잦은데 그때마다 사진 속엔 보고하고 지시받는 간부들이 한가득이다. 민주적인 조직에서 리더의 새벽 출근이 드문 이유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오전 6시 30분 출근해 안보 브리핑을 받아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다카이치 총리도 새벽 출근에 대해 “도와준 비서관, 경호원, 운전사들께 폐를 끼쳤다”며 사과했다. ▷새벽형 인간은 적게 자는 편이다. 나폴레옹은 “남자는 6시간, 여자는 7시간, 바보는 8시간 잔다”고 했는데 남자의 전유물이던 지위에 오른 여성들도 적게 잔다. 다카이치 총리의 롤모델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재임 시절 3∼4시간 자고 새벽 5시면 일어나 농부용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출근 준비를 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16년의 재임 기간에 많이 자도 하루 5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그러고도 버티는 비결에 대해선 “(밤새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기질이 있다”고 했다. ▷적게 자야 성공하는 건 아니다. 빌 게이츠는 7시간, 제프 베이조스는 7∼8시간, 워런 버핏은 8시간 이상 잔다. 미국 국립수면재단은 “세계 인구의 5%는 4시간 미만을 자고도 버티지만 5%는 10∼12시간을 자야 한다. 규칙적으로 잘 자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도 같은 값이면 열심인 게 좋아 보인다고 여기는 걸까. 백악관 대변인은 3∼4시간만 자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잠도 자지 않고 일하는 근면한 지도자”라고 홍보했다. 다카이치 총리가 취임 일성으로 “워라밸이란 말을 버리겠다.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해 나갈 것”이라고 한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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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맘다니 쇼크

    뉴욕은 무슬림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도시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유대인이 사는 곳인 데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이슬람 공포증까지 더해졌다. 역대 뉴욕시장 110명 가운데 흑인 시장은 2명 있지만 무슬림 시장은 없었다. 민주당 텃밭인 뉴욕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조란 맘다니(34)의 당선이 이변인 이유도 그가 미국 시민권을 얻은 지 7년밖에 안 되는 무슬림이어서다. 더구나 뉴욕은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인데 맘다니는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다. ▷우간다의 인도계 가정에서 태어나 7세에 미국으로 이민 온 맘다니는 뉴욕주 하원의원을 지낸 정치 신예다. 돈도 조직도 없는 그가 뉴욕 주지사를 지낸 무소속의 거물 정치인 앤드루 쿠오모(68)를 꺾은 데는 살인적인 생활비 해결을 일관되게 주장한 것이 주효했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걷어 공공주택 임대료 동결, 무료 버스, 무상 보육을 실현하겠다는 포퓰리즘 공약이 심각한 빈부 격차에 분노하는 표심을 사로잡았다. ▷맘다니는 1892년 이래 최연소 시장 당선인이다. 진보 언론들도 그의 경륜 부족을 문제 삼았지만 그는 ‘고인 물을 갈아보자(drain the swamp)’며 자신이 좌우 기득권을 청산할 적임자라고 반격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딥스테이트(deep state·기득권 세력)’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과 비슷한 전략이다. 뉴욕의 인구 구성이 라틴계와 남아시아계 이민자들 위주로 변화하는 추세도 맘다니에게 유리했다. ▷1970년대 석유 파동으로 재정 위기를 겪은 이후 월가의 암묵적 지지 없이 당선된 뉴욕시장은 없다고 한다. 그가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자 월가가 수천만 달러를 들여 맘다니 저지 작전을 짜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월가와 각을 세우며 인지도를 높인 맘다니는 민주당 후보가 된 후엔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를 비롯해 월가 거물들과 물밑 접촉을 하며 ‘부자세는 대안이 있으면 철회 가능하다’고 설득했다. 그가 컬럼비아대 교수 아버지에 유명 영화감독 어머니를 둔 ‘캐비아 좌파’인 점도 부자들과의 소통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맘다니의 승리는 반(反)이민, 친(親)이스라엘인 트럼프의 패배다. 트럼프는 ‘공화당 찍으면 맘다니 된다’며 무소속 쿠오모 지지를 호소했다. 반면 극우 세력에 밀리던 유럽 진보 정당들은 맘다니 승리에 고무된 표정이다. 하지만 맘다니의 급진적 좌파 공약은 민주당조차 거리 두기를 할 정도다. 뉴욕시 세수 기반이 붕괴되고, 임대료 동결은 도심 인프라 투자 동결로 이어져 슬럼화가 진행될 것이라는 우려다. 그가 인구 850만에 연간 예산이 1160억 달러(약 168조 원)인 뉴욕 시정을 제대로 이끌어갈지, 어두운 트럼프 시대를 밝힐 빛이 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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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트럼프 당선 1년… 불확실성 늪에 빠진 세계

    5일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지 1년이 된다. 그는 최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해 “1년 전만 해도 미국은 매우 심각한 곤경에 처해 있었지만 내가 취임한 후 힘을 되찾았다”며 “취임 후 9개월 만에 18조 달러 규모의 투자를 확보해 미국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경제력을 갖게 됐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자국 내 민심의 평가는 트럼프의 자평과는 거리가 있다.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이 트럼프 당선 1주년을 앞두고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 지지율은 41%로 2021년 미 의사당 습격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구호와 달리 ‘미국의 세계적 리더십이 약해졌다’는 평가가 ‘강해졌다’보다 우세했고, ‘경제가 나빠졌다’는 응답은 절반이 넘었으며, 특히 관세 정책에 대한 부정 평가가 65%로 높았다. 휘발유 가격 인하에도 상호관세로 물가가 오름세인 것이 악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야당인 민주당이 반사이익을 보는 것도 아니다. 민생에 무관심하기로는 트럼프나 여당인 공화당보다 민주당이 더하다는 평가다. 내년 중간선거가 오늘 당장 치러진다면 민주당 후보를 찍겠다는 답변(46%)과 공화당 쪽을 찍겠다는 답변(44%) 간 별 차이가 없었다. 트럼프의 실점이 민주당의 득점으로 이어지지 않는 주요 요인으로는 정치적 양극화가 꼽힌다. 미국 동서부 해안은 파란색(민주당), 그 사이 지역은 빨간색(공화당)이다시피 해 나라가 두 쪽 난 상태이고, 트럼프 지지율도 공화당원 사이에선 86%, 민주당원의 경우 5%로 극과 극이다. ▷국내에선 전직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비롯해 정적들을 줄줄이 보복 기소하고, 진보 성향의 대학과 비판적인 보도를 하는 언론을 상대로 연일 거친 싸움을 벌이면서도 해외에선 평화 중재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8개의 전쟁을 끝냈다”는 자평과는 달리 트럼프의 귀환 이후 세계는 위험해지고 있다. 대외 원조 축소로 수백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전염병이 확산되면 미국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최근엔 “중국 러시아 북한 모두 핵실험을 하고 있다”며 33년간 중단했던 핵실험 재개까지 명령하면서 핵 군비 경쟁 우려까지 나온다. ▷고인이 된 헨리 키신저는 “트럼프는 역사상 한 시대가 종언을 고할 때 등장해 그 시대의 가식을 벗겨 내는 인물일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막을 내리고 각자도생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극우 세력의 발호와 정치적 양극화를 겪고 있는 것도 트럼프 영향이 크다. 전 세계를 유례없는 불확실성으로 던져넣고 있는 트럼프의 임기가 아직 39개월 남았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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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영 칼럼]“나는 되고 너는 안 된다”

    올해 국정감사 시즌은 ‘김현지’에서 시작해 ‘김현지’로 끝나나 했더니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이다. 최 위원장은 입법부 권세의 서슬이 가장 시퍼럴 때인 국감 기간에 국회에서 딸 결혼식을 치러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식장에는 과학기술, 정보, 방송, 통신 분야 피감 기관과 기업에서 보내온 화환 100여 개가 즐비했다고 한다. 이른바 ‘최민희 이슈’가 하루이틀 뜨겁다 식나 했는데 결혼식 후 일주일쯤 지나 축의금 목록이 담긴 최 위원장의 텔레그램 메시지가 공개되면서 다시 불이 붙었다. 한 신문사 카메라 기자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포착한 휴대전화 화면엔 축의금을 낸 사람의 소속과 최소 20만 원, 최고 100만 원인 축의금 액수가 나온다. 최 위원장 측은 피감 기관에서 냈거나 과하게 들어온 축의금을 돌려주라고 보좌진에게 지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야당은 경조사비 한도를 5만 원으로 제한한 김영란법 위반이라며 위원장직 사퇴를 촉구했고, 여당에선 “최민희처럼 이해충돌 축의금을 돌려준 사람이 있느냐”며 감싸고 있다. 경조금엔 받는 만큼 돌려주는 상호부조의 원칙이 작용한다. 최 위원장이 주거니 받거니가 가능한 상대에게서 축의금을 받았다면 위법 여부와 관계없이 윤리적으론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선출직 공무원은 공직선거법에 따라 친족이 아닌 사람에게 경조금을 주면 불법 기부행위로 처벌받는다. 한 선출직 공직자는 장남 결혼식을 조용히 치렀는데 “대단한 미담이랄 것도 없다”고 했다. “선거법 때문에 지인들 경조사에 가서 부조 안 하고 말로 때운다. 나는 안 하면서 어떻게 그걸 받나.” 최 위원장네 혼사가 공개된 때가 한 달 전이다. 결혼식 시기와 장소, 모바일 청첩장에 카드 결제 기능까지 넣은 게 알려지면서 갑질 논란이 제기됐지만 카드 결제 기능만 삭제했을 뿐 화환과 축의금을 사절한다는 얘기는 없었다. 그래 놓고 문제가 커지자 “피감 기관에 청첩장 돌린 적 없다. 허위 정보 유포에 대응하겠다”며 오히려 화를 내더니, 보좌관에게 ‘축의금 반환’이라는 사적 업무를 시키고, 여당은 “환급한 것도 잘못이냐”며 거들고 있다. 애초에 받지 않았으면 될 일이다. 갚지도 못할 경조금 챙기고 반성은커녕 큰소리치니 사태가 커지고 여론이 나빠지는 것이다. 권력을 쥐면 뇌 구조가 바뀌어 ‘나는 일반적 도덕준칙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예외적 존재’라고 착각하게 된다는데 자신에게만 관대한 이중 잣대 중독증은 여당이 특히 심하다. 난 전세 끼고 대출받아 집 사도 되고, 네가 전세 끼고 대출받아 집 사는 건 ‘공익을 위해 억눌러야 할 욕망’이라고 훈계하는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이다. 국민의힘 회의실 걸개 문구를 인용하면 매사에 ‘나는 되고 너는 안 된다’는 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혐중 시위에 대해 ‘특단의 대책’을 주문하자 여당 의원들이 혐오 표현 시 처벌하고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혐오 표현은 ‘멸시, 모욕, 위협 등의 표현 행위’란다. 피감 기관 관계자에게 “그따위” “발악” “추태” “부모에게 못 배운”이라 퍼붓는 건 어떤가. 야당도 예외가 아니다. 정청래 대표와 추미애 법사위원장을 향해 “막 사는 광기 남매”라 했다. 남들 다 보는 국회에서 상욕 주고받으면서 어떻게 국민들에겐 혐오 표현 쓰면 처벌하겠다 하나. 여당은 허위 조작 정보를 보도 유포하는 언론과 유튜버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배상금을 물리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불법 허위 정보를 악의적 반복적으로 유통하면 최대 10억 원의 과징금까지 물리겠다고 한다. 여당 의원들은 근거 없는 ‘조희대 한덕수 회동설’을 제기하고선 아니라는 증거를 대라고 큰소리치고 있다. 나는 가짜 정보 말해도 되고 너는 안 된다는 식이다. 여당은 이런저런 개혁 입법 과제를 쏟아내고 있는데 가장 시급한 개혁은 국회 개혁이다. 윤리규정 강화하고 면책특권 포기하라. ‘조요토미 희대요시’라 해놓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의원, 밑도 끝도 없이 음모론 제기해 놓고 책임도 안 지는 의원은 퇴출시킬 수 있어야 제대로 된 국회다. 야당은 피감 기관에서 경조사비를 못 받게 하는 ‘최민희 방지법’ 운을 띄우고 있다. 3년 전 민주당도 “줄 수 없다면 받지도 못하게 하자”며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었다. 경조금 들어오고 나가는 규모를 양심껏 ‘똔똔’ 비슷하게라도 맞출 자신이 없다면 법으로 강제하는 것도 방법이다. 난 되고 넌 안 된다는 양심 불량의 오만한 의원들을 보며 “저런 사람들이 국회에 앉아 있으니 나라가 큰 걱정”이라며 혀를 차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정신 차려야 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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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기자들은 못 막는다

    국가 안보와 언론의 자유는 때론 충돌한다. 197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펜타곤 보고서’ 보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정부가 감춰 왔던 베트남전의 실상을 담은 정부 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했고, 정부는 국가 안보를 위협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다. 국가 기밀이란 이유만으로 언론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는 기념비적인 판례의 나라에서 때아닌 보도 통제 논란이 뜨겁다. 이번 논란의 진앙도 국방부 청사 펜타곤이다. ▷‘전쟁부’로 문패를 바꿔 단 국방부 청사에서 15일 짐을 챙겨 나오는 출입 기자들 사진이 전 세계 주요 언론에 실렸다. 국방부는 최근 ‘기밀이든 아니든 모든 보도는 사전에 국방부 승인을 받으라’는 내용의 보도지침을 통보하고 이를 준수한다는 서약서에 서명해야 출입을 허락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전 검열이나 다름없는 보도지침에 항의하는 뜻에서 기자 40여 명이 출입증을 반납하고 제 발로 걸어 나온 것이다. 서약서에 서명한 매체는 강경 보수 원아메리카뉴스 한 곳뿐이라고 한다. ▷폭스뉴스 앵커 출신인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45)은 취임 이후 정례 브리핑을 중단하고, 주요 언론의 지정석을 없애고, 기자들의 청사 내 이동을 통제해 왔다.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지만 올해 3월 예멘 후티 반군 공습 정보 유출 사건이 적대적 언론관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그는 정부 고위 각료들이 모인 단톡방에 기자가 초대된 줄도 모르고 공습 계획을 공유했다. 또 아내와 남동생 등이 있는 다른 단톡방에도 공습 계획을 올린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 경질될 뻔했다. ▷펜타곤 보도지침은 갈수록 험악해지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언론 통제 실상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정부에 비판적인 AP통신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하고, CNN 기자에게 “개처럼 쫓겨나야 한다”며 막말을 퍼붓고, 자신을 풍자한 토크쇼를 내보낸 ABC방송에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고 겁박했다. 백악관 풀기자단에 껄끄러운 기자를 빼고 극우 팟캐스트 진행자를 넣기도 했다. 비판 언론은 겁주고 우호적 매체는 우대하며 갈라치기를 하는 건 독재자들의 전형적인 언론 통제 수법이다. ▷눈엣가시 같던 출입 기자들이 사라졌으니 펜타곤은 조용해질까. 펜타곤 보고서 특종은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양심적인 전문가와 용기 있는 기자의 청사 밖 만남에서 시작됐다. 1961년 미국 정부가 감추려던 쿠바 피그스만 침공 사건이 알려진 건 늦은 밤 정부 청사의 중남미 담당 사무실에만 불이 환히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지나치지 않은 기자 덕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부 보도지침을 두둔하면서도 별 효과는 없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기자들은 못 막는다(Nothing stops reporters).”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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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영 칼럼]이재명도 못 말리는 정청래, 추미애

    여당이 주도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조희대 대법원장 대선 개입 의혹’ 청문회에 대법원장이 불참했다. 법사위는 곧 열리는 대법원 현장 국정감사를 청문회 삼아 조 대법원장을 다시 부르겠다고 한다. 어찌 되든 ‘조희대는 사퇴하라’는 여당 요구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조희대 청문회는 이름만 청문회일뿐 결론이 이미 정해진 중세 유럽의 종교재판 같다. 이단이라서 재판받는 것이 아니라 재판받기 때문에 이단이 된다는 재판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얼마 전 유엔 총회 연설에서 “유엔이 이룬 성취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대한민국 80년 역사를 바라보라’ 대답하겠다”고 했다. 누군가 더불어민주당이 이룬 성취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국회 법사위로 가보라’고 하겠다. 민주당 의원들이 연일 떠들썩한 소동을 주도하는 법사위는 집권 여당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먼저 화력 높은 비호감 의원들이 득세하고 있다. 추미애 위원장부터가 그렇다. 추 위원장은 온건파인 전임자 이춘석 의원이 주식 차명 거래 의혹으로 제명된 후 ‘원자폭탄으로 불을 끄자’는 전략에서 내세운 인물이라고 한다. 의도대로 이춘석 불은 껐는데 화력 조절이 안 돼 여당에서도 “추미애 전쟁의 결과가 좋았던 기억이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상식적인 이들에겐 스트레스 지수 높이는 밉상이지만 강성 지지층엔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 복덩이다. 요즘 여당 의원들의 의정 활동은 야당에 한 방 먹여 개딸들 정치적 효능감을 충족시키는 격투기로 변질됐다. 정청래 대표도 법사위원장 시절 누구 못지않은 전투력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개딸이 새롭게 주목하는 선수가 서영교 의원이다. 사기 전과만 9범인 전과자를 검찰개혁 입법청문회 증인으로 부르고, ‘조희대-한덕수 회동설’이라는 가짜 녹취를 국회에서 틀어 정치생명 끝나나 했는데 모 서울시장 적합도 조사에선 오히려 상위를 차지했다. 민심이 아닌 개딸 눈치만 살피니 의원들이 일할수록 나라는 나빠지는 듯하다. 막말과 선동으로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맹목적인 사법부 흔들기로 삼권 분립을 위협한다. 노란봉투법부터 경제 부처 개편과 검찰청 폐지법까지 여당의 속도전에 제동을 걸어야 할 법사위가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기업을 밖으로 내쫓고, 경제 위기에 대응할 경제사령탑은 실종되고, 서민 범죄 피해자들만 피눈물 흘릴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되면 어떻게 책임지려 하나. 이 대통령도 중요한 뉴욕 순방 기간에 초유의 대법원장 청문회 의결이라는 폭탄이 터지길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KTV가 제작한 ‘유엔 무대를 뒤흔든 한국의 귀환. 이 대통령이 뉴욕에서 이뤄낸 놀라운 성과’ 영상은 비슷한 시기에 올라온 ‘추추 트레인은 멈추지 않는다!’ 같은 쇼츠에 묻혀버렸고, 한국갤럽의 9월 마지막 주 대통령 지지율은 집권 이후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추의 전쟁은 대통령도 못 말리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는 걸까. 대통령의 당 장악력은 상당 부분 공천권에서 나온다. 법으론 안 되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친문 친윤 인사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곽상언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요즘 당내 경선은 개딸 동원력이 있는 ‘보이는 손’ 유튜브 권력이 좌우한다. 이 대통령 취임 직후 치러진 당 대표 선거도 개딸들이 좋아하는 정 대표 승리로 끝났다. 유튜브 권력은 벌써 내년 6월 지방선거 출마 후보자를 결정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해결해 줄 핵심 열쇠도 여당이 쥐고 있다. 배임죄 없애고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면 대통령은 대장동, 백현동, 성남FC, 허위사실 공표 사건 모두 ‘면소’ 판결을 받게 된다. 검찰청은 폐지됐어도 국회는 입법권으로 수사와 기소를 모두 할 수 있는 특검 체제를 가동할 수 있다. 대통령으로선 ‘잘 드는 칼’이 필요하면 국회에 부탁해야 하는 입장이다. 여당의 힘자랑이 위험 수위를 넘었는데도 정부는 국정과제 1호로 헌법 개정을 제시하며 더 강한 국회를 예고했다. 감사원 국회 소속 이관, 대통령 거부권 제한, 비상계엄 선포 시 국회 통제권 강화,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도입, 중립성이 요구되는 기관장 임명 시 국회 동의 의무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탄핵 남발과 입법 독주를 견제할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 도입이나 불체포특권 폐지는 언급도 없다. 이 대통령은 정 대표와 추 위원장을 못 말리는게 아니라 안 말리는 것일지 모른다. 민주당에 유리한 유권자 지형과 지리멸렬 국민의힘을 감안하면 대선은 몰라도 20년 의회 권력 장악은 꿈이 아니다. 국회에 권한을 몰아주면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제왕적 국회, 제왕적 민주당으로서 권력을 누릴 수 있다. 못 말리든 안 말리든 폭주하는 정청래, 추미애 시대가 윤석열, 김건희 시대보다 더 험한 것을 예고하고 있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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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사무장 병원과 면허대여 약국, 내부 고발 포상금 20억

    일반인 500만 원, 내부 종사자 20억 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최근 의사와 약사 면허를 빌려 불법 개설한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면대)약국 신고 포상금으로 내건 최고 액수다. 금융당국이 자본시장 불공정거래와 담합 신고자에게 주는 포상금(30억 원)보다는 적지만 간첩 신고 포상금과 같고 로또 1등 평균 당첨금(21억 원)에 맞먹는다. 그만큼 국민 건강을 해치고 건강보험 재정을 좀먹는 사무장병원과 면대약국 문제가 심각하다.▷법적으로 병원은 의사나 의료법인 등이, 약국은 약사나 한의사만이 개설할 수 있다. 그런데 사무장병원은 의사 면허를 월 1000만 원 내외, 면대약국은 약사 면허를 수백만 원을 주고 빌린 뒤 의사와 약사를 고용해 운영한다고 한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적발된 사무장병원은 치과와 요양병원 등 196곳, 면대약국은 89곳이다. 이들 285개 기관이 건보공단에서 타낸 돈이 837억 원. 기간을 14년으로 늘리면 이들이 건보 곳간에서 빼간 금액은 3조4000억 원에 이른다.▷하지만 이 중 환수에 성공한 금액은 7%도 안 된다. 보건당국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면 수사 결과를 통보받기까지 1년 가까이 걸린다. 그동안 사무장병원과 면대약국은 폐업 후 증거물을 없애고 잠적하면 그만이다. 애초에 보건당국이 찾아내기도 어렵다. 사무장병원은 개원하고 평균 6년 5개월, 면대약국은 개국하고 평균 7년 9개월이 지난 다음에야 적발된다. 보건당국에 걸릴 때까지 35년간 불법으로 운영한 병원도 있다.▷이윤 극대화가 목적인 사무장병원과 면대약국은 항생제와 수면제를 과다 처방하고 불필요한 입원을 강요하는 비율이 일반 병원과 약국보다 훨씬 높다. 최근 광주에선 가짜 입원 환자 20여 명의 진료 기록을 조작해 건보 급여 2억 원을 타낸 사무장병원이 경찰에 입건되기도 했다. 사무장병원의 폐해를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사건이 2018년 47명이 숨지고 112명이 다친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다. 이 병원은 병상을 늘리고 환자 유치에 열을 올리면서도 안전 시설은 부실하게 관리하다 대형 인명 피해를 냈다.▷건보공단은 해결책으로 공단에 수사권(특별사법경찰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경우 수사를 3개월 만에 마쳐 연간 2000억 원의 건보 재정 누수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회엔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지만 민간인에게 수사권을 주기보다 이미 수사권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담당 부서를 확대 운영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수사 장기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각자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병원 원장이나 개설 약사가 수시로 바뀌면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단골 환자 때문에 병원이나 약국 이름은 잘 안 바꾼다고 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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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토론은 말로 하는 것”

    독일 연방의회 율리아 클뢰크너 의장(53)이 최근 연방의원 전원에게 편지를 보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사용을 “적당하고 방해되지 않는 수준으로” 자제하고, 노트북 같은 기기에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스티커 부착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편지를 받아 든 의원들 사이에선 “신임 의장의 시시콜콜한 군기 잡기”라는 불만과, 토론의 장이 돼야 할 의회가 온갖 구호가 난무하는 “서커스장”이 돼가고 있어 자제가 필요하다는 옹호론이 나온다. ▷중도 보수 기독민주당 소속인 클뢰크너 의장은 올 5월 취임 이후 ‘국가 상징물 외의 다른 정치적 상징물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회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을 규탄하는 뜻에서 ‘팔레스타인’이라 적힌 티셔츠를 입은 의원에게 퇴장하라 명령하고, 올 7월 베를린 퀴어축제 기간에는 관행을 깨고 의회 건물에 성소수자 상징인 무지개 깃발을 못 걸게 했다. 의원들이 소셜미디어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선동적 구호와 옷차림, 소품에만 신경 쓰면서 의회가 양극화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독일 의회 규칙을 한국 국회에 적용하면 무사할 의원이 있을까 싶다. 국회만 열리면 여야 가리지 않고 ‘OUT’이나 ‘STOP’이 들어간 피켓을 회의장과 노트북 곳곳에 붙여놓고 세 과시를 한다. 국회 앞 여의도엔 20개가 넘는 피켓 인쇄소가 성업 중인데 주문이 시도 때도 없이 밀려들어 24시간 영업하는 곳도 있다.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튀고 보자”는 심리에 태권도복이나 급식 조리사복을 입은 의원들과 가스통, 성인용품 ‘리얼돌’, 벵골고양이에 구렁이까지 소품으로 등장한다. 이 정도는 돼야 ‘서커스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선거운동은 시(詩)로, 국정은 산문으로’란 말이 있다. 선거 캠페인은 귀에 쏙 들어오는 선명한 구호를 쓰더라도 복잡다단한 국정을 처리할 땐 차분하고 논리적인 언어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국회 어디에서도 깊이 있는 논쟁을 보기는 어렵다. 간단명료하고 데시벨 높은 낙인찍기와 들춰내기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의원들의 활약상은 맥락 없이 짧은 영상들로 편집돼 ‘의원 팩폭에 넋 나간 장관’ 같은 아전인수식 제목으로 소셜미디어에 유통된다. 뉴미디어가 정치를 죽이고 있다. ▷독일 의회 의장은 “스티커나 티셔츠는 어떤 일도 하지 못한다” “토론은 말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불완전하나 평등한 사람들끼리 설득하고 설득당하며 지혜를 모아 현안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다. 민주국가 국회 본회의장이 모두 고대 그리스 시대 토론 광장에 원형을 두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가장 정제된 토론 문화를 보여줘야 할 국회가 말로 토론하지 않고 소품과 구호로 싸우고 있다. 어떤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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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폭력적 포퓰리즘의 시대”

    1993년생 찰리 커크는 미국에서 가장 힘 있는 청년 우파 논객이었다. 18세에 보수 청년 단체 ‘터닝포인트 USA’를 설립해 진보가 주도하는 대학가에 3500개 지부를 두고 ‘트럼프 시대’를 예고한 뒤 트럼프 시대의 총아가 됐다. 그가 10일 한 대학교 야외 행사장에서 학생들과 토론하다 180m 떨어진 건물 옥상에서 날아든 총탄에 숨지자 미국 사회가 충격에 빠진 이유다. 연방수사국(FBI)은 현상금 10만 달러를 내걸고 총격범을 쫓고 있다. ▷그는 트럼프 정부의 고위직 인사에까지 개입하는 실세였다. 트럼프 1기 때 백악관 방문 횟수가 약 100번이다. 트럼프 재선 땐 ‘킹메이커’로 불렸다. 터닝포인트를 통해 수천만 달러의 자금을 끌어모아 트럼프에게 젊은층 득표율 45%를 안기는 데 기여했다. J D 밴스를 부통령으로 추천한 이도 그다. 트럼프 취임식 전날 터닝포인트가 주최한 축하 행사엔 젊은 실세에게 눈도장을 받으려는 1500여 명이 최소 입장료 5000달러를 내고 몰려들었다. ▷2020년 트럼프가 패배한 후엔 대선 불복 시위를 주도했고, 2021년 트럼프의 극렬 지지자들이 선거 결과에 불복해 의회에 난입한 1·6사태 땐 이른바 ‘애국자’들을 태운 버스 7대를 보냈다. 그의 입도 트럼프만큼 거칠었는데 유대인, 동성애자, 흑인들이 주요 타깃이었다.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에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쓰레기”라 불렀다. 커크가 피살되자 진보 매체 논객이 “끔찍한 말을 내뱉으면서 끔찍한 행동이 일어나지 않길 바랄 순 없다”고 논평했다가 해고되는 일도 있었다. ▷미국 언론은 그의 피살 소식에 “정치 폭력이 좌우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며 ‘폭력적 포퓰리즘의 시대’로 진입했다는 진단을 내놨다. 정치적 폭력이 빈발했던 1960년대와 비슷하게 가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 의사당 난입 사태 후 지난 대선까지 정치 폭력은 300여 건 발생했다. 올 5월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지지자의 40%가 ‘트럼프를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무력 사용에 찬성한다’고 했고, 공화당 지지자의 25%는 ‘반정부 시위 진압을 위한 군 투입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커크는 보수가 낳고 극우가 키운 운동가였다. 보수적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극우 논객 러시 림보의 라디오를 듣고 자랐다. 고교 시절 극우 인터넷 매체인 브라이트바트 뉴스에 ‘(진보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교과서에 너무 많이 나온다’는 칼럼을 기고해 폭스뉴스에 소개됐고, 이를 본 보수 운동단체 ‘티파티’ 관계자에게 발탁됐다. 폭력적 주장을 쏟아내는 양극단의 매체와 단체들이 청년들을 정치적으로 고양시키기보다 싸움닭으로 키워 사회 곳곳에 화약고를 만들고 있지 않은지, 아내와 두 자녀를 남기고 떠난 젊은 논객의 안타까운 죽음이 보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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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유튜브 권력에 머리 조아리며 정치할 생각 없다”

    ‘노무현의 사위’라는 점을 빼고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더불어민주당 곽상언 의원이 뉴스의 중심에 섰다. 여권의 실력자 김어준 씨를 비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다. 초선인 곽 의원은 ‘올해 8월까지 1년간 김어준 유튜브 방송에 한 번도 출연하지 않은 여당 의원은 65명에 불과하다’는 주간지 보도를 인용하며 “그 65명 중 한 명이 저 곽상언이다. … 저는 유튜브 권력에 머리를 조아리며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김어준의 유튜브 채널은 민주당과 좌파 정치인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출연하고 싶어 하는 미디어 권력이다. 주간경향 집계 결과 1년간 여당 의원 106명을 포함해 119명의 국회의원이 832회 출연했다. 김민석 총리,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 강유정 대변인과 행정안전부 해양수산부 고용노동부 장관 등 현 정부 고위직 인사들도 두루 포함돼 있다. 보수 쪽에서는 전한길TV가 새로운 유튜브 권력으로 부상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선 당 대표가 되려는 이들이 줄줄이 전한길TV에 출연해 ‘면접’을 봤다. ▷정치 유튜브의 힘은 구독자 수, 그리고 강성 당원들의 귀를 잡고 있는 데서 나온다. 곽 의원은 “우리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출연하면 후원금도 모으고 좋은데 왜 출연하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여당 대표 선거는 여당 내 ‘보이는 손’이라 불리는 김어준 채널의 힘을 확인하는 계기였다. 정청래 대표의 이 채널 출연 횟수는 28회, 박찬대 의원은 2회였다.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뒷말이 나왔다. 전한길TV가 들었다 놨다 했던 국민의힘 전당대회도 ‘전심’의 승리로 끝났다. ▷한국처럼 정치 채널이 유튜브 실시간 방송 때 후원금 순위 상위를 장악하고 있는 나라도 드물다. 김어준이 ‘정치 무당’이라 불리듯 정치 채널 진행자들은 신생 교파를 이끄는 종교 지도자 같다. 선과 악이 분명한 세계관으로 복잡한 현실을 단순명쾌하게 해석하며 듣고 싶은 얘기만 듣고 싶어 하는 신도들을 모은다. 정치 채널 경쟁은 선명성 경쟁이다. 유튜브 권력이 커질수록 정치가 양극단으로 치닫고 온갖 음모론에 공론장이 난장이 되는 이유다. ▷정치 유튜버들은 유명 정치인들을 출연시켜 돈 안 들이고 쉽게 조회수 장사를 한다. 최근엔 화장품, 흑염소, 소갈비 광고 패널을 걸어놓고 정치인들을 부른다. 사회 갈등을 조율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인들이 유튜브의 적대적 진영정치에 편승하는 것도 모자라 돈벌이에까지 동원되고 있다. ‘다음 경선은 어려울 것’이란 악플 세례를 받고 있는 곽 의원의 소신 발언이 힘만 있고 책임지지 않는 유튜브 권력에 머리 조아린 정치 권력의 부끄러운 모습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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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급증하는 유괴 사건

    서울 서대문구 한 초등학교 근처에서 초등학생들이 유괴될 뻔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3시경 귀가 중이던 초등학생 4명을 상대로 중학교 동창인 20대 남성 3명이 차를 타고 접근해 “집에 데려다주겠다”며 3차례에 걸쳐 유인을 시도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겁에 질려 달아나면서 미수로 그쳤다. 하지만 경찰은 지난달 30일 최초 신고를 받고도 ‘오인 신고’라 했다가 추가 신고가 접수된 뒤 4일에야 이들을 긴급 체포했다. 피의자들은 “장난 치려는 의도였다”고 주장했다. 어린 자녀를 둔 전국의 학부모들 모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온 사방에 깔린 폐쇄회로(CC)TV 덕분에 오프라인 범죄는 줄어들고 있지만 어린이 유괴 범죄는 최근 들어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미성년자 약취·유인 사건이 2020년 210건에서 지난해 316건으로 급증했다. 피해자 10명 중 6명꼴로 여자 어린이들이다. 61세 이상 고령자 유괴범 비중(25%)이 큰 것도 일반 범죄와 다른 특징. 7월엔 서울 서초구와 경기 남양주시에서 70대 여성과 남성이 “도와달라” “간식 줄게” 하며 아이들을 유괴하려다 실패했다. ▷어린이 유괴는 대개 몸값을 요구하거나 성적 착취를 위해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보다는 양육을 목적으로 유괴하는 경우가 더 많다(대검찰청 2023년 통계). 양육권 분쟁 중에 친부모가 아이를 강제로 데려가거나, 불임 부부들이 아이 욕심에 유괴한다는 것이다. 별다른 이유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17년엔 10대 소녀 2명이 “엄마에게 전화해야 하니 휴대전화 빌려 달라”는 초등학교 1학년 여아를 유괴해 살해했다. 범행 동기는 “예쁜 손가락을 갖고 싶어서”였다. 범인들은 심신미약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괴범 중 여성 비율(27%)이 다른 범죄보다 높은 것도 특징이다. 1990년 6월엔 20대 여성이 “변심한 애인에게 고통을 주려고” 6세 여자 유치원생을 유괴해 살해했다. 유치원 우산꽂이에서 아이 이름을 확인하고 전화로 불러냈다. 1997년엔 만삭의 임산부가 목돈을 위해 서울 서초구 영어학원 앞에서 “재밌는 곳에 가자”며 초등 1년생을 꾀어 살해해 충격을 줬다. ▷유괴 사건은 언론의 주목도가 높아 검거율이 높은 편이었다. 유일한 미제 사건이 영화 ‘그놈 목소리’로 제작된 1991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 놀이터 유괴 살인 사건 정도다. 그런데 요즘은 사방에 CCTV가 있고 아이들 모두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는데도 2023년 검거되지 않은 사건이 10건이다. 경찰은 이번 유괴 미수 사건의 경우 피해 어린이들 진술이 정확하지 않아 오인 신고로 인지했다고 해명했다. 유괴 범죄의 민감성과 사회적 파장을 감안하면 너무 안일한 대응이고 해명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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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영 칼럼]왕비의 비극, 김 여사의 막장극

    역대 영부인으로는 처음으로 구속 기소된 김건희 여사의 극적인 인생은 드라마와 역사 속 인물과 비교되곤 한다. 강한 권력욕으로 남편을 왕위에 올려놓고 함께 몰락하는 셰익스피어 비극의 맥베스 부인 같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친정 식구들을 동원해 국정 전반을 주물렀던 명성황후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명품백 스캔들이 터졌을 땐 현대판 마리 앙투아네트로 불렸는데 남편과 동시에 수감돼 재판받는 요즘 처지는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가장 닮은 듯하다. 오스트리아 공주로 15세에 프랑스 왕가로 시집온 그녀에 대해서는 프랑스 혁명을 촉발한 희대의 악녀라는 혹평과 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한 마녀사냥의 희생자라는 동정론이 대립한다. 유럽 최고의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근거 없는 비방과 찬사들을 걷어내고 사실로 확인된 사료만 추려 가장 객관적이라 평가받는 전기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를 썼는데 이에 따르면 왕비의 참모습은 폄훼와 미화 양 극단의 중간쯤에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그러하듯 이 전기 작가는 프랑스 왕정이 몰락한 단초를 국왕이 왕비에게 ‘예속’된 관계에서 찾는다. 윤 전 대통령이 ‘V1’과 ‘V0’의 관계로 김 여사에게 예속된 내막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없다. 이와 달리 프랑스 국왕 부부의 경우 남편의 귀책 사유로 결혼 7년 만에야 첫아이를 낳을 정도로 원만하지 못했던 부부 사이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젊고 아름다운 왕비는 원하는 건 무엇이든 요구했고 무기력한 왕은 왕비가 해달라는 대로 해줬다는 것이다. 김 여사와 프랑스 왕비 모두 보석 욕심에서 그치지 않았다. 김 여사가 대통령과 동급의 비화폰을 쓰며 국정에 개입한 혐의를 받듯 왕비도 “국왕에 대한 자신의 엄청난 위력을 자기가 총애하는 사람들에게만 유리하도록 사용”하고 “아무 일에나 참견하고 서툴게 나서서 마구 결정”했다. 오빠인 오스트리아 왕자가 “네가 무슨 권리로 프랑스 왕국의 문제에 간섭하느냐”고 질책한 적도 있다. 전기 작가 말대로 ‘진실과 정치가 한 지붕 밑에 사는 일은 드물고, 선동을 목적으로 인물을 그릴 때는 정의란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 왕비의 낭비벽은 선정적 삽화와 부풀려진 일화를 담은 팸플릿으로 암암리에 유통되며 왕정 타도 여론에 불을 질렀다. 김 여사 특검의 수사 내용에 확인되지 않은 ‘전언’들로 살을 붙여 민심을 사납게 하고 조회수 장사를 하는 일부 유튜버들과 다를 것이 없다. 프랑스 왕비가 마지막까지 구명을 기대했던 상대는 친정인 오스트리아 황실과 혁명의 불온한 기운이 번질까 우려하던 이웃 나라 군주들이다. 하지만 국제 정치의 세계는 비정했다. 오스트리아 황제조차 폐위된 고모를 위해 나서지 않았다. ‘트황상(트럼프 황제 폐하)’의 ‘숙청’ ‘혁명’ 발언에 잠시 고무됐던 한국의 왕당파들이 떠오르지 않나. 마리 앙투아네트의 죄명은 남편의 왕위 회복을 위해 적군을 도운 반역죄다. 이를 입증하는 문서가 지금은 출판물로 남아 있지만 재판 당시엔 증거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배심원단 전원 일치로 유죄 결정이 났다. 여론 재판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역사는 왕비에게 더 무거운 죄를 묻는다. ‘국왕의 아내가 자신의 왕국을 헤아려달라는 국민의 여망에 단 한 번도 응한 적 없는 죄’ ‘베르사유 궁전 밖 수백만 백성이 굶주리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몰랐던 죄’다. 유럽을 600년간 호령했던 왕비의 친정 합스부르크 왕가가 ‘국민의 동의와 사랑’이 가져다준 지위를 정당하게 사용하지 않다가는 ‘값비싼 희생’을 치르게 될 것임을 거듭 경고했던 이유다. 절대왕정 시대에도 성난 민심에 배가 뒤집힐까 삼가고 경계했다니, 민주주의 시대 유한한 권력을 잠시 위임받은 대통령의 아내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명품 목걸이와 금거북에 관직 내주고 국정과 당무에까지 개입했다면 그 죄는 더욱 무겁다. 루이 16세 부부는 특별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평범한 시대를 만났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인상을 남겼으리라. 그러나 극적으로 격앙된 시기에 대처할 줄을 몰랐다. 무엇인가에 압도당해 쓰러지는 데에는 그 나름의 의미뿐만 아니라 죄과까지 있는 법이다.”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표현대로 ‘비범한 시대 높은 자리에선 평범함도 죄’가 된다. 민심의 벼락을 맞고서야 오만과 무관심에서 깨어나 뒤늦게 품위를 보여준 프랑스 왕비는 연민을 자아내는 비극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평범한 시대, 높은 자리에서, 평균치를 한참 밑도는 도덕성으로 추락한 후로도 상식 밖의 언행을 보여주는 김 여사 이야기는 환멸의 막장극으로 흘러가고 있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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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제가 죽어버려야 남편에게 살길이…”

    김건희 여사는 12일 구속된 후 두 차례 특검에 출석했지만 의미 있는 진술은 거부하고 있다. 대부분 질문에 진술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변으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사실 밖에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첫 출석일인 14일엔 변호인단을 통해 “내가 다시 남편하고 살 수 있을까. 다시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라는 감성적 소회를 전했다. 건강을 이유로 특검에 불출석한 20일엔 남편의 ‘멘토’ 신평 변호사를 통해 옥중 메시지를 냈다. ▷신 변호사가 19일 김 여사를 접견했다며 다음 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따르면 김 여사는 접견실 의자에 앉자마자 “제가 죽어버려야 남편에게 살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했단다. 신 변호사는 이후 한 언론 인터뷰에선 김 여사가 접견 당시 ‘그냥 (윤석열 전) 대통령은 풀어주고 내가 계속 여기 살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고 전했다. 당시 김 여사는 ‘너무나 수척하여 앙상한 뼈대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제가 죽어버려야 남편에게 살길이…”는 남편의 정치 인생을 끝장낸 자신의 과오를 뒤늦게나마 후회한다는 뜻에서 한 말일까. 김 여사는 2021년 허위 학력과 경력 기재에 대해 사과할 때도 “제가 없어져 남편이 남편답게만 평가받을 수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던 공언은 취임식 첫날부터 헛말이 됐다. 윤 전 대통령이 초청한 인사는 765명인데 김 여사 초청 인사는 849명이었다. ▷김 여사는 접견 당시 “한동훈이 어쩌면 그럴 수가 있느냐”며 “배신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앞길엔 무한한 영광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탄했단다. 윤 정부 ‘2인자’ 소리를 듣던 한 전 국민의힘 대표는 김 여사의 대외 활동 중단과 의혹 규명을 요구하면서 원수지간이 됐다. 계엄 실패와 탄핵이 모두 배신자 탓이란 말일까. 김 여사의 옥중 ‘한동훈 때리기’는 전당대회 개입용이란 말이 나온다. ‘반탄 진영’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라는 해석이다. 김 여사는 지난 전당대회 때도 ‘한동훈 영부인 문자 읽씹’ 사건을 흘려 한 전 대표를 방해한 적이 있다. ▷김 여사는 ‘나토 3종’ 보석을 주고 인사 청탁을 했다고 자백한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에 대해 ‘(이재명) 정부와 협력해 우리를 죽이려 한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한다. 주가 조작, 공천 개입, 매관매직 혐의로 ‘첫 영부인 구속’이라는 기록을 세운 참담함에 대해선 함구하면서 “12·3 계엄은 절제력 갖춘 힘의 행사”라 주장하는 지지자의 입을 빌려 희생양 행세를 하고 있다. 2평 독방에서 어떻게든 살길을 찾아보려는 안간힘이겠으나 입을 열수록 여론의 냉소를 부르며 스스로를 더 좁은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듯하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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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위고비 vs 마운자로… ‘모든 다이어트는 실패’ 법칙 깨지나

    식욕을 억제하는 비만치료제의 역사는 ‘삭센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4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최초의 비만치료제 ‘암페타민’을 비롯해 대부분의 비만약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감정 기복을 키우는 등 부작용이 작지 않았다. 그런데 2014년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출시한 삭센다는 음식을 먹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GLP-1)에 작용해 식욕을 조절하는 원리다. 이후 등장한 ‘기적의 비만약’들이 모두 같은 원리의 주사제이다.▷GLP-1은 인슐린 분비를 도와 혈당을 떨어뜨리고 위장 운동 속도를 늦춰 음식물이 장으로 천천히 이동하게 한다. 삭센다는 원래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는데 체중 감량 효과가 뛰어난 사실이 확인되면서 비만약으로 쓰이게 됐다. GLP-1은 작용 시간이 짧아 밥때가 되면 배가 고파지지만 삭센다를 주사하면 GLP-1 작용 시간이 약 13시간, 삭센다 후속으로 2021년 같은 제약사에서 나온 위고비는 170시간으로 길어진다. 삭센다는 하루 한 번, 위고비는 주 1회 주사로 식욕 억제 효과를 볼 수 있는 셈이다.▷위고비 독주 체제를 양강 구도로 재편하고 있는 제품이 효과는 더 좋으면서 값은 싼 ‘마운자로’다. 미국의 일라이릴리가 2023년 출시한 마운자로는 식욕 억제와 혈당 개선 효과를 동시에 볼 수 있다. 허리둘레 감소 효과가 위고비는 평균 13cm, 마운자로는 20cm 정도다. 마운자로는 최근 국내에도 출시됐는데 4주분이 용량에 따라 28만∼52만 원 선. 80만 원까지 치솟았던 위고비 가격도 40% 떨어졌다. 위고비 주성분에 대한 독점권이 2030년대 초 만료돼 복제약이 나오면 가격은 더 떨어질 전망이다.▷미국에선 식당 메뉴 사이즈가 줄어들 정도로 위고비와 마운자로 투약이 보편화되고 있다고 한다. 모두 주 1회 허벅지나 복부에 주사로 투약한다. 흔하게 나타나는 부작용이 구토, 복부 팽만, 변비다. 위고비 국내 판매가 시작된 지난해 10월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보고된 부작용 사례는 49건. 약물 투여를 중단하면 식욕이 돌아와 1년 이내 빠졌던 체중이 다시 늘어난다. 약물 투여 기간에 식습관을 개선하고 운동량을 늘려야 한다.▷비만은 암과 당뇨를 비롯해 수많은 질병을 유발하는 ‘관문 질환’으로 세계보건기구(WHO)는 1997년 비만을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공인했다. 비만 인구는 2035년 19억1400만 명으로 늘어나고 비만약 시장도 2040년엔 2800억 달러(약 389조 원)로 지금보다 10배 넘게 커질 전망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먹는 비만약, 근육은 그대로 두고 살만 빼주는 비만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모든 다이어트는 실패로 끝난다’는 경험칙을 깨는 꿈의 비만약이 나올지 모를 일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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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케데헌’, 세계가 만든 K팝의 확장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에서 가상의 걸그룹이 부른 ‘골든(Golden)’이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과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 톱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K팝 가수 중엔 BTS가 핫100, 싸이가 톱100 1위에 오른 적이 있지만 영미 차트 동시 석권은 처음 있는 일이다. 온라인에선 케데헌 세계관을 분석하고 캐릭터들의 춤과 노래를 따라 하는 영상이 줄을 잇고 있다. 케데헌 ‘현상’이라 할 만하다. ▷6월 20일 공개된 케데헌은 넷플릭스 역대 애니메이션 영화 흥행 1위 기록도 세웠다. 골든을 부른 3인조 걸그룹 헌트릭스가 몰래 악마 사냥꾼으로 활약하며 악령 보이그룹 사자보이스로부터 팬들을 지켜낸다는 줄거리로, 국적을 초월한 협업의 산물이다. 서구의 악마 사냥과 한국적 무속신앙이 결합된 세계관부터가 그렇다. 제작사는 미국 소니픽처스 애니메이션, 감독은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이며, 노래는 K팝 작곡가들이 만들고 K팝 가수와 미국인 가수들이 불렀다. ▷그럼에도 케데헌은 K팝 콘텐츠로 분류된다. 춤추며 노래하는 아이돌과 ‘떼창’으로 환호하는 팬들이 만들어 내는 K팝 특유의 에너지가 영화의 핵심이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에 ‘어두워진 앞길 속에’ ‘영원히 깨질 수 없는’ 같은 한국어 노랫말이 중간중간 나오는 것도 K팝 스타일. 케데헌의 주인공은 정체성 위기를 극복하고 악령들과도 끝내 화해하며 감동을 선사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영감을 주는’ 선한 영향력은 K팝을 다른 팝들과 구별 짓는 중요한 특징이다. ▷케데헌 속 캐릭터들은 영어로 말하고 노래하지만 하는 행동은 한국인 같다. 소파에 기대어 바닥에 앉고, 김밥과 순대와 라면을 먹고, 국밥집에선 수저 아래 휴지를 깐다. 힘들 땐 한의원과 목욕탕도 간다. 영화 배경으로 나오는 강남과 종로 거리가 정겹고, 남산 서울타워와 낙산공원 성곽길을 보면 서울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새삼 느끼게 된다. 한국과 적당한 거리감이 있는 한국계 외국인 제작진들, 그들만이 포착해낼 수 있는 낯설고도 친숙한 서울일 것이다. ▷아이돌 댄스 음악을 뜻하는 K팝의 시작은 1996년 H.O.T의 데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세 번의 기념비적 순간이 있었는데 첫째는 아시아의 뜨거운 한류 열풍을 실감케 했던 2000년 H.O.T의 중국 베이징 콘서트, 두 번째가 유럽 진출의 신호탄이 된 2011년 SM타운의 프랑스 파리 콘서트, 세 번째가 ‘K팝 인베이전(침공)’이라 불렸던 2020년 BTS의 K팝 최초 빌보드차트 핫100 1위 등극이다. 세계가 만들고 가상의 아이돌이 부른 골든의 영미 차트 석권은 K팝 30년 역사의 또 다른 기념비적 순간으로 기록될 만하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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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우크라 없는 미-러의 우크라 영토 주고받기 협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문제 해결을 위해 15일 미국 알래스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고 발표했다. 8일까지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추가 제재를 하겠다며 최후통첩을 날리더니 D데이가 지나자 대화 모드로 돌변한 것이다. 2021년 이후 4년 만에 열리는 미-러 정상회담은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푸틴이 국제 외교 무대에 처음 등장하는 행사다. 외신은 휴전 약속도 없이 열리는 양국 정상회담 자체가 푸틴에겐 외교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는 영토 협상이다. 전쟁 발발 3년 6개월이 지난 현재 러시아는 상대국 영토의 20%를 점령했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영토의 0.00007%를 확보한 상태다. 트럼프는 자신처럼 뉴욕 부동산업자를 러시아 특사로 보내 사전 협상을 맡겼는데 푸틴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핵심 광공업 지대인 돈바스 2개 주(루한스크, 도네츠크)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더해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금지도 주장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리 땅을 점령자에게 선물로 내주진 않을 것”이라고 반대하지만 알래스카 회담장에 그의 자리는 없다. 우크라이나 운명은 거래를 원하는 트럼프와 승리를 원하는 푸틴 사이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로선 우크라이나와의 광물 협정 체결로 군사 지원에 따른 ‘투자비 회수’를 했으니 경제적 정치적으로 부담되는 전쟁을 끝내고 ‘평화 중재자’의 공을 차지하고 싶을 것이다. 푸틴은 1년 6개월은 더 버틸 수 있다고 한다. 러시아 경제가 거덜나기 전에 우크라이나 병력부터 바닥날 것이라는 계산이다. ▷우크라이나 없는 정상회담 소식에 80년 전인 1945년 발칸반도의 휴양도시에서 열린 얄타 회담이 새삼 회자된다. 그때도 미영소 3국 정상들(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이 당사국들이 빠진 가운데 동유럽 국경선과 전후 독일 처리 문제 등을 결정했다. 회담장 안내 책자엔 회담 결과가 “공정했다”고 나오지만 “강대국 간 협상에 약소국 자유가 소모품으로 희생됐다”는 것이 역사적 평가다. 얄타 회담으로 냉전이 시작됐듯 15일 알래스카 회담 후 세계는 알래스카 체제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도 강대국 간 협상에 좌우돼 왔다. 얄타 회담 이후 열린 포츠담 회담에서 일제 패망과 한반도 분단이 결정됐고, 6·25전쟁 정전협정 원문엔 한국 대표 서명이 없다. 그래도 한국은 남들이 우리 운명을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전후 100여 개 신생국 중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성취한 유일한 나라로 우뚝 섰다. 알래스카 회담을 남 일처럼 보고만 있어야 할 절망적인 우크라이나가 한국의 성공 사례를 보고 희망을 잃지 않길 바란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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