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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검은 꽃' 작가 김영하 "애니깽의 삶 담담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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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검은 꽃' 작가 김영하 "애니깽의 삶 담담히…"

입력 2003-08-19 18:01수정 2009-09-2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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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옥기자

몇 다리를 건너 전해진 한 이민사 연구자의 잡담은 소설가 김영하(35)를 1905년으로 불러들였다.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 노예로 팔려간 조선인들의 삶과 조우하게 된 것이다.

최근 이들의 삶을 담은 장편 ‘검은 꽃’(문학동네)을 펴낸 작가를 18일 만났다.

“일제강점기 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팔려간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중남미로 떠나 그곳에 소국(小國)을 세웠지만 곧 멸망했다는군요…. 그런 얘기를 우연히 들었어요. 얼마 후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라는 책을 펼쳐 보고 깜짝 놀랐어요. 하와이가 아니라 멕시코였다는 것 외에는 사실이었던 거예요.”

작가는 소설 구상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대한제국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엑셀’ 프로그램을 이용해 연대표를 만들었다. 1905년 4월 제물포항에서 멕시코로 떠나는 영국 기선 ‘일포드호’에 몸을 실었던 신부와 무당, 양반과 내시, 농민과 황족, 걸인과 고아를 소설 속 인물들로 흩뿌려놓고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모험이었죠. 당시를 잘 모르는 데다 참조할 만한 것들이 많지 않았고 지금껏 써온 것과 완전히 다른 소설이었으니까요. 모든 재능을 쏟아 부어야 했어요. 이젠 소설적 실수나 미숙함에 대해 용서받거나 변명이 가능하지 않을 때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올해 2월 그는 멕시코를 비롯해 조선인들이 마지막에 도달한 곳, 과테말라를 답사했다. 의무계약 기간이 끝난 뒤 조선인들 중 일부는 멕시코 혁명과 내전에 휩쓸렸고 일부는 과테말라 반정부군에 가담해 ‘신(新)대한’이라는 국호를 걸고 작은 나라를 세우기도 했다. 작가는 과테말라 남부의 고도 안티과의 작은 호텔에서 소설의 후반부를 완성했다.

“말(馬)을 많이 두고 복잡하게 움직이는 것이 좋다”는 작가의 이번 신작에는 부각되는 주인공이 없다. 등장인물 각각이 하나의 주요한 구성요소가 돼 점묘화를 그려나간다. 김영하가 퍼즐처럼 맞춰가는 조선인들의 삶은 신산하거나 측은하지만은 않다.

“이 소설을 쓸 때의 원칙이 압축적이고 미니멀하게 간다는 것, 민족주의적 역사관에 기대지 않는다는 것, 특수성보다는 보편적인 욕망을 다루겠다는 것이었어요. 당시 시대상과 사건을 바탕으로 있었음직한 일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전설을 모티브로 삼은 두 번째 장편소설 ‘아랑은 왜’(2001)에 이어 다시 역사소설을 내면서 작가는 “역사는 도전해볼 만한 영역”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제 부모세대만 해도 한일회담 반대투쟁을 했었죠. 전 부채의식에서 벗어나 역사를 소설적 질료로 투명하게 바라보는 세대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왕조 중심의 역사소설보다는 미시사적인 부분들에 더 눈길이 갑니다. 일제강점기와 구한말 시기가 재미있어요. 부딪치고 뒤섞여 있는 시기잖아요. 황족, 사기꾼, 농부가 한데 뒤엉켜 있는 ‘일포드호’의 선실처럼요.”

김영하는 24일 미국으로 떠난다. 3개월 동안 아이오와대에 개설된 국제창작프로그램에 세계 각국 작가들과 함께 참여한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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