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해킹, 침공… 참을인字 새기다 ‘차르’에 폭발한 24國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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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vs 러 新냉전]러에 반격, 외교관 추방 나선 서방

26일부터 시작된 러시아 외교관 추방 물결에 동참한 영국 외 23개 국가는 대부분 러시아의 이른바 ‘하이브리드 전투’에 당한 경험이 있는 나라들이다. 기존의 무력 충돌 외에 정보전과 사이버전, 심리전 등 비군사적 방법을 이용해 상대국을 뒤흔드는 전쟁을 말하는 ‘하이브리드 전투’는 이제 주요국 외교전의 대표적 작전이 돼버렸다.

이번 서방 세계의 단합된 행동은 단지 영국에 대한 연대 차원을 넘어서 그동안 러시아에 쌓여 온 불만이 폭발했다는 점에서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 러시아의 해킹에 치를 떨던 서방세계의 대반격

러시아 정부의 후원을 받고 있는 해킹 그룹 ‘APT 28’을 비롯해 사이버 범죄조직 스네이크 등 수많은 러시아 해킹 조직은 최근 몇 년 동안 전 세계를 들쑤셨다.

독일은 2016년 말부터 지난달까지 러시아 해커 조직이 독일 국방부와 외교부의 내부 통신망에 침투해 정보들을 빼내간 사실을 최근 발견하고 발칵 뒤집혔다. 이들은 독일 정부의 러시아 관련 외교정책에 대한 정보를 노렸다. 독일은 26일 러시아 정보부 소속 외교관 4명을 베를린에서 추방했다. 폴란드에선 지난 6개월간 1주일에 한 번꼴로 국방부에 러시아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해킹 시도가 있었다. 2016년 말 정부 부처 컴퓨터에서 러시아 스파이웨어가 대량 발견된 리투아니아에서는 아직도 러시아발로 의심되는 해킹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2016년 미 대선 이후 선거 때만 되면 전 세계는 ‘러시아 공포증(Russophobia)’에 치를 떨 정도다. 러시아는 친(親)러시아 후보를 돕기 위해 노골적으로 상대 후보에 대한 흑색선전이나 비방이 포함된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있다. 올 1월 체코 대통령 선거 때도 친서방 후보인 이르지 드라호시 후보는 대선 기간 내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공산정권의 첩자, 아동성애자, 무슬림 대량 이민 찬성자라는 등의 허위 정보 공격을 받았다. 이는 친러시아 후보인 밀로시 제만 대통령을 돕기 위한 러시아 사이버 세력과 비밀정보원의 합작품이라는 게 미 정보기관의 분석이다.

유럽에서 친러시아 성향의 후보는 주로 극우 포퓰리즘 정당 소속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네덜란드 총선과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 정당인 자유당과 국민전선을 돕기 위한 러시아의 개입이 계속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대선 내내 ‘동성애자이며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선거자금을 받고 있다’는 러시아 매체들의 보도에 시달렸다. 러시아 소행으로 의심되는 캠프 해킹도 이어졌다. 네덜란드는 러시아의 선거 개입을 우려해 전자개표를 포기하고 수(手)개표로 전환하기도 했다.

러시아가 2016년 이탈리아 개헌과 지난해 스페인 카탈루냐 독립 주민투표 때도 SNS에서 개헌 부결과 카탈루냐 독립을 지원하며 사회 혼란을 부추기자 이탈리아와 스페인 정부는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이 더욱 커졌다. 서방세계에서는 선거 때마다 개입하는 러시아를 ‘민주주의 파괴자’로 인식하고 있다.

○ “러시아의 적반하장이 더 큰 분노를 낳았다”

러시아의 소행으로 추정되어도 한 번도 인정하지 않고 발뺌하는 행태에 대한 불만도 극에 달해 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침공 때도 처음에는 훈련이라면서 부인하다 끝내 점령했다. 이번 영국의 이중 스파이 독살 시도 과정에서 러시아산 독극물이 검출되었는데도 또다시 부인으로 일관했다. 이에 영국을 중심으로 서방세계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푸틴이 러시아 국내 지지층 결집을 위해 고의로 국제사회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서방세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냉전 이후 군사력에서 미국이나 중국에 밀리는 러시아가 정보전을 중시하면서 각국에 스파이를 늘리는 것도 거슬리는 대목이다. 미국 뉴욕에 있는 러시아 유엔 대표부는 경제 분야의 스파이 양성소로 알려져 있다. 26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폐쇄 명령을 내린 주시애틀 러시아 영사관은 근처 미 해군본부와 항공사 보잉사의 정보를 캐는 것으로 전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외교관 60명 추방은 1986년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이 80명을 추방한 이래 가장 많은 수치다.

이번 러시아 외교관 추방 조치로 러시아의 해외 스파이 활동에 일정 부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더타임스는 “일단 한 번 해외에서 추방돼 신원이 드러날 경우 다른 국가에서도 파견을 받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활동하기가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스크바에서 근무했던 미중앙정보국(CIA) 출신 존 시퍼 씨는 “외교관을 처벌하는 것은 푸틴의 권력이나 돈에 직접적인 위협이 가해지는 게 아니며 과거에 외교관들을 쫓아내는 정도로는 크렘린궁의 행동을 거의 변화시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조치만으로는 푸틴의 큰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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