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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도시가 미래다]차로 없앤 英 트래펄가 광장, 관광객 넘치는 보행천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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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도시가 미래다]차로 없앤 英 트래펄가 광장, 관광객 넘치는 보행천국으로

황태호기자 입력 2016-10-05 03:00수정 2016-10-0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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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런던 심장부를 바꾼 역발상
영국 런던 시가 트래펄가 광장 북쪽의 도로를 차로에서 보행로로 바꾸기 전(위쪽 사진)과 바꾼 후의 모습. 사방이 차로로 막힌 ‘섬’이었던 광장이 보행로로 연결되면서 런던의 명소로 떠올랐다. 포스터앤파트너스 제공
 영국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은 서쪽으로 최대 상업지구인 피커딜리 서커스, 남쪽으로 총리 관저(다우닝 가 10번지)와 국회의사당, 동쪽으로 금융 중심지인 시티(city)와 연결돼 있다. 사통팔달의 도시 심장부다. 유서 깊은 국립미술관, 팔라디오 건축 양식의 백미로 꼽히는 성 마틴 교회와 가까워 런던을 방문하는 이들이 반드시 찾는 곳이다. 서울로 치면 광화문광장인 셈이다.

 지난달 초 찾은 트래펄가 광장은 오가는 행인과 각종 거리 예술가,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삼삼오오 모여 계단이나 분수대 난간에 걸터앉아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는 이도 많았다. 현지에서 만난 도시공학 전문가 톰 스토너 스페이스신택스 대표는 “불과 15년 전만 해도 광장은 텅 비어 있었고 행인은 대부분 광장 외곽 도로를 돌아서 다녀야 했다”고 말했다.

○ 차도를 보도로 바꿨더니


 그의 말대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트래펄가 광장은 지금의 ‘반쪽’에 불과했다. 모든 방향이 차도로 둘러싸인 ‘섬’ 같은 광장이었다. 행인들은 이곳을 오갈 일이 거의 없었다. 그저 트래펄가 해전을 승리로 이끈 허레이쇼 넬슨 제독을 기리는 관광지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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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처럼 ‘보행자 천국’으로 바뀐 건 1996년 시작된 ‘월드 스퀘어스 포 올(World Squares for All·모두를 위한 세계 광장)’ 프로젝트 덕분이다. 늘어난 교통량 탓에 ‘차 벽’으로 둘러싸인 런던의 심장부를 되살려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고, 영국 건축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프로젝트를 총괄했다.

 포스터가 제시한 방법은 단순했다. 국립미술관과 광장 사이의 차도를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는 보도로 바꿔 고립된 광장의 연결성을 높인 것이다. 처음 포스터의 이런 계획은 엄청난 반발을 샀다. 차도가 런던의 동서를 연결하는 핵심 구간이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앨런 펜 런던칼리지대(UCL) 건축대학장은 “당시 교통 기술자들은 이곳을 지나는 차량의 흐름을 바꿀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교통이 마비될 것이라 우려했다”고 말했다.

 해답은 ‘역발상’에서 나왔다. 차량의 흐름을 바꾸기 어려우면 아예 통행량을 줄이면 된다는 것. 2000년 취임한 켄 리빙스턴 런던시장은 강력한 정치력을 기반으로 지지부진하던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트래펄가 광장 인근 도로를 주행하는 차량을 대상으로 ‘혼잡통행료’를 부과하기 시작한 것이다. 펜 학장은 “혼잡통행료로 걷은 돈을 보행 환경 개선에 투자하니 차량을 두고 보행을 택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며 “2003년 지금의 모습으로 바뀐 뒤에도 우려했던 ‘교통마비’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 ‘보차 공존’ 실험 성공

2012년 보차 공존 도로로 바뀐 런던의 엑시비션 로드(Exhibition Road·전시관 거리). 런던 시 제공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보차(步車) 공존 도로로 바뀐 엑시비션 로드(전시관 거리)다. 이곳에는 자연사박물관, 빅토리아앤드앨버트(V&A)박물관 등 세계적인 전시관 17곳이 모여 있다. 길이는 약 800m. 원래 넓은 차도가 있고 양편에 좁은 보도가 있는 전형적인 자동차 중심 대로였다.

 하지만 지금은 철저히 보행자 중심이다. 폭 24m의 차도 중 절반은 온전히 보행자를 위해서만 쓰인다. 나머지 절반은 자동차가 다니거나 주차를 하는 용도로 쓰이지만, 보도와 차도 간 별다른 구분이 없어 보행자가 자유롭게 길의 모든 부분을 지나다닌다. 차량의 주행 속도는 철저히 보행자에게 맞춘다. 도로 위에는 차량 방향의 반대로 대각선 무늬가 그려져 있다. 자유로운 보행을 유도하면서 주행 중인 차량에 시각적 불편을 주는 요소다.

 엑시비션 로드 프로젝트의 실제 공사 기간은 2년 정도지만 첫 발표부터 완공까지는 7년이나 걸렸다. 워낙 반대가 심했던 탓이다. 긴 논의 끝에 결정된 ‘보행자 우선의 보차 공존’ 실험은 국가적으로 주목받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잦았던 무단 횡단 사고는 거의 사라졌고 주변 전시관을 찾는 사람들은 갑절로 늘었다.

 엑시비션 로드를 설계한 제러미 딕슨 딕슨존스건축사무소 대표는 “진짜로 걷기 좋은 도로는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는 철학이 가능한 한 담겨 있어야 한다”라며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인도의 턱이나 안전 펜스가 오히려 위험하게 달리는 차량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런던에서도 중심부인 트래펄가 광장과 엑시비션 로드의 성공은 런던 시가 보행자 중심 환경 조성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됐다. 현재 옥스퍼드 거리를 비롯한 중심부의 여러 지역을 대상으로 보행자 도로 전환 계획을 추진 중이다. 펜 학장은 “차량 통행이 많다고 차도를 늘릴수록 차량은 계속 늘어나 더 심한 교통 체증을 유발한다는 점을 수십 년간의 경험으로 알게 됐다”며 “미래의 도시는 결국 다시 걷는 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걷기#도시#영국#관광객#트래펄가#엑시비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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