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처녀이장의 고로쇠 된장… “피아골 새 명물 됐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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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골영농조합법인 김미선 대표

지리산피아골식품영농조합법인 김미선 대표(31)와 직원들이 고로쇠 된장, 고로쇠 고추장을 들고 해맑게 웃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 대표, 동생 애영 씨, 직원 박은선 씨. 구례=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지리산피아골식품영농조합법인 김미선 대표(31)와 직원들이 고로쇠 된장, 고로쇠 고추장을 들고 해맑게 웃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 대표, 동생 애영 씨, 직원 박은선 씨. 구례=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산 좋고 물 좋은 관광 명소 전남 구례군 피아골.

최근 이곳에 명물이 하나 더 생겼다. 고로쇠 수액으로 담근 ‘고로쇠 된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 된장으로 끓인 찌개는 조미료를 쓰지 않아도 감칠맛이 난다. 두부만 넣어도 입맛을 돋우는 된장찌개가 소문이 나며 전국 각지의 주부들이 이 된장을 찾는다.

된장을 만든다면 나이가 지긋한 장인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고로쇠 된장을 만든 이는 31세의 피아골 이장 김미선 씨다. 그는 2006년 전북 전주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이 된장을 상품화했다.

그는 지리산 기슭에서 나는 천연 재료로 만든 ‘곰취 장아찌’ ‘오미자 발효액’ ‘지리산 무공해 벌꿀’ 등도 함께 판매한다. 그가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는 지리산피아골식품영농조합법인을 통해서다. 영농조합은 지난해 연매출 5억 원을 올렸다.
○ 100% 지리산 고로쇠 수액 된장

집안에서 장녀인 김 대표는 어린 시절 식당과 민박집을 하던 부모를 돕는 효녀였다. 고추장, 된장을 담가 팔기도 하는 부모를 돕느라 친구들과 놀러도 다니지 못했다. 그래도 김 씨는 피아골이 좋았다.

1990년대 후반 구례 지역의 경제는 급격히 기울었다. 주요 수입원이던 지역 특산품 고로쇠 수액이 경기 양평군 일대에서도 생산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주민들은 값이 떨어진 수액을 내다버리기도 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 가세까지 기울었다. 김 대표와 어머니는 살 길을 찾아 나섰다. 버려지는 고로쇠 수액의 활용 방법을 생각하다가 된장이 눈에 들어왔다. 고로쇠 특유의 감칠맛이 나는 된장이라면 인기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로쇠 수액으로만 된장을 담그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물을 섞지 않으면 된장에 거품이 끓어오르며 쉬어버리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김 대표의 어머니는 수액으로만 된장을 만들어야 감칠맛이 나고 상품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김 대표가 손을 보태 3년간 500만 원어치의 된장을 쓰며 실험을 거듭한 끝에 100% 수액으로 만든 된장을 개발했다. 김 대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고로쇠 된장은 식당을 찾는 손님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며 식당 매출에도 크게 도움이 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김 대표는 된장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주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김 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능력이 없어 시골로 돌아가는 아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귀농·귀촌에 대한 시선이 10년 전에는 더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된장만 맛있다고 사업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가격을 낮추고 균일한 품질을 유지해야 했다. 5년간 전북 순창군 등 된장으로 유명한 지역을 찾아다니며 연구를 거듭했다. 정부 지원을 받아 초기 자본금 2억5000만 원을 마련했다.

2011년 공장 설립 후 이른 아침부터 자정까지 앞만 보고 일한 덕에 이제야 사업이 자리를 잡았다. 김 씨는 “몸은 힘들었지만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도 고로쇠 된장을 팔려면 앞으로 할 일이 많다”며 해맑게 웃었다.

현재 영농조합 직원은 김 대표를 포함해 4명이다. 김 대표의 두 여동생 지혜 씨(27)와 애영 씨(21)도 영농조합에서는 일한다.
○ “스쿠터 타는 미녀 이장님은 일등 신붓감”

김 씨는 피아골의 최연소 이장이다. 스물한 살이던 2006년 주위에서 이장직을 처음 제안했을 때는 거절했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릴 적 평화롭던 마을이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인심이 나빠지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어요. 마을 공동체를 살리고 싶어서 2011년 여름부터 이장 일을 하기로 결심했죠.”

50, 60대도 청년이라고 부르는 시골에서 젊은 여성 이장이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이장회의에 처음 갔을 때는 다른 이장들과 공무원들이 “아버지 대신 왔느냐”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김 씨는 이제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소소한 민원부터 시설 보수, 개발 사업 등 마을 일이라면 나서지 않는 일이 없다. 면사무소와 군청 공무원의 말을 어른들이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도 김 씨의 몫이다. 스쿠터를 타고 주민들의 민원을 척척 해결하는 그를 보고 주민들은 “미녀 이장님은 일등 신붓감”이라고 입을 모은다.

손녀뻘 이장이 마을을 살리려 궁리하는 모습을 본 주민들은 스스로 화합하기 시작했다. 서로 언쟁하지 않고 이장에게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그 결과 김 씨가 이장이 된 이후로 군청에 접수된 마을 민원은 단 한 건도 없을 정도다. 이제 김 씨는 다른 고참 이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3선 이장’이 됐다.

김 씨에게는 피아골을 창업·관광명소로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농촌에서 사업을 꿈꾸는 청년들을 위해 교육시설을 짓고, 피아골에 ‘발효식품 테마공원’을 세우는 게 목표다. “피아골을 찾는 이들에게 농촌에도 꿈과 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요. 고로쇠 된장으로 농민, 소비자, 청년이 함께 웃는 세상을 만들어야죠.”

이호재 기자 ho@donga.com
#처녀#이장#고로쇠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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