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석 감독 “개별 범죄보다 惡을 키우는 사회 시스템에 초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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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파’ 사건 다룬 다큐영화 ‘논픽션 다이어리’의 정윤석 감독

이번 작품을 5년간 준비했다는 정윤석 감독은 “지존파 사건을 학술적으로 연구한 논문이나 자료가 거의 없다. 많은 이들에게 엄청난 기억으로 남아있으면서도 누구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이번 작품을 5년간 준비했다는 정윤석 감독은 “지존파 사건을 학술적으로 연구한 논문이나 자료가 거의 없다. 많은 이들에게 엄청난 기억으로 남아있으면서도 누구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지존파’를 연결고리로 1990년대의 초상을 그리고 싶었어요.”

20년 전 지존파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가 17일 개봉한다. 정윤석 감독(33)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1990년대에 대한 향수가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 시기의 다른 이면을 봐야 한다”고 했다.

“1990년대는 자본의 영향력이 급격히 커지다 외환위기로 마무리된 시기입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소비의 즐거움과 자본에 대한 공포를 동시에 가지고 있죠. 오늘날 한국 사회의 여러 모순이 그때부터 시작됐다고 봤어요. 지존파에 주목한 것은 이들이 범행 동기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내세운 최초의 집단이었기 때문이고요.”

지존파 사건은 농촌 출신 청년 6명이 1993년 7월∼1994년 9월 5명을 연쇄 살인한 사건이다. 영화는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사고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도 살피며 지존파가 기소 후 1년 만에 사형이 집행됐으나 삼풍백화점 회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받은 사실에 의문을 제기한다. 정 감독은 “지존파 사건을 개인의 엽기적인 살인 행각으로 다루고 싶지 않았다. 악을 키우는 사회적 시스템에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트루먼 카포티의 소설 ‘인 콜드 블러드’를 보면 연쇄살인범에 대해 ‘나와 같은 집에서 태어났는데 나는 앞문으로, 그 친구들은 뒷문으로 나왔다’는 대목이 있어요. 지존파에 대한 제 느낌도 비슷해요. 이들의 죄를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에요. 저는 지존파 자체보다 ‘지존파적’인 게 더 나쁘다고 봐요. 지존파적인 것이란 결국 사람 목숨을 돈으로 생각하고, 그 죽음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거죠.”

현대미술을 전공한 정 감독은 “이번 다큐가 국가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큰 얘기를 했다면 앞으로는 악을 주제로 한 미시적인 부분에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말했다.

“사회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 특정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세태는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봐요. 빠르게 변하면서도, 하나도 변한 게 없는 거죠. 작가로서 그런 기억들을 잡아줘야 하는 사명을 느껴요.”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지존파#논픽션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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