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최고의 음악은 ‘하여가’… 20년내 후계감 없을것”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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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20년… 대중음악전문가 20명에게 묻다

디데이(D-day)가 밝으면 세상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당일 오전까지 앨범 타이틀 곡은 물론이고 음악 장르 역시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아침부터 레코드점 앞에는 젊은이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음악평론가들마저 아침부터 부랴부랴 앨범을 구해 들어야 했다. 청취자들은 처음으로 이 음악의 ‘정체’를 찾아 나섰다. 평론가들은 이내 들이닥칠 기자들의 전화 세례를 감당해야 했다. 젊은이들은 스타일과 영혼을 위한 정답지라도 받아보려는 듯 들썩였고 기묘한 축제일이 만들어졌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새 앨범을 내놨던 날들의 얘기다. 이 모든 ‘디데이들의 디데이’가 된 날이 20년 전, 1992년 3월 23일 ‘서태지와 아이들 1집’ 발매 일이었다.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 아이돌을 전부 쌓아놓는다고 해도 그때의 기이한 바람이 재현될까? 서태지 현상의 중심에 새로운 음악이 있었다. 그에 대한 얘기는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사의 빛과 그림자에 대한 스케치에 가깝다. 불완전하고 불가능하지만 거대한….

○ ‘처음 들어봤지만 한 번에 꽂힌’

1992년 3월 당시 MBC TV PD로 새 예능프로그램을 기획하던 송창의 현 CJ E&M 방송부문 프로그램개발 센터장은 고심에 싸여 있었다. 파격적이고 젊은 감각을 지향하는 프로그램의 콘셉트에 걸맞은 신인가수를 찾는 것이 그의 숙제였다. 그날따라 평소엔 잘 듣지 않고 쌓아두던 책상 위의 카세트테이프 더미에 눈이 갔다. 우연히 잡힌 테이프에서 랩과 록, 댄스가 결합된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장중한 신시사이저 화성이 서막을 알린 뒤 육중한 힙합 비트와 펑키한 샘플이 뛰어들었다 다시 신시사이저 코드가 리듬을 타며 폭격하듯 내리꽂히면서 ‘난 알아요!’로 시작하는 랩이 등장하는 43초의 긴 인트로 이후 분방한 베이스 라인은 1절의 한국말 랩을 부각시켰고 난데없이 터져나온 금속성의 메탈기타 리프가 네 마디를 지배한 뒤 연결부를 거쳐 낙차 큰 멜로디의 후렴구가 폭발했다. ‘이건…뭐지? … 얘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렇게 TV 앞에 처음으로 나타났다. 4월 11일 MBC TV ‘특종! TV연예’ 1회의 신인 소개 코너에서 ‘난 알아요’를 부르며.

○ ‘포스트 서태지는 없었다.’

동아일보는 대중음악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에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들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서태지(또는 서태지와 아이들)는 ( )이다’라는 설문의 괄호 안에 ‘분기점’ ‘전환점’ ‘이단아’ ‘문화 혁명가’ ‘파급의 아이콘’ 등을 적어 넣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음악적으로 훌륭했을 뿐 아니라 뛰어난 마케터였고, 시대의 아이콘이었다”며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절정이자 완전체였다”고 했다.

“지난 20년 새 가요계에서 ‘포스트 서태지’에 가장 가까운 인물은 누구였냐”는 질문에는 빈칸이 쏟아졌다. 13명이 ‘없었다’고 했다.

한편에서는 그에 대한 냉정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최민우 웹진 웨이브 편집장은 “장르 수입과 새로운 시도에 대한 그의 강박적 집착을 단지 음악적 다양성의 추구나 천재적 재능의 발로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 최고의 노래는 ‘하여가’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3년 ‘하여가’라는 뇌관을 들고 돌아왔다. 강일권 웹진 리드머 편집장은 “서태지가 한국 대중음악계에 안긴 충격과 환희가 모두 담긴 곡”이라며 “많은 뮤지션이 원하는 음악성과 대중성의 황금조합을 실체로 보여줬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서태지 최고의 노래’를 꼽아달라고 하자 9명이 ‘하여가’를 꼽았다. 서태지 최고의 앨범에 대해서는 전문가 20명 중 7명이 ‘하여가’가 담긴 2집을, 6명이 ‘난 알아요’의 1집을 꼽았다. 3집과 4집이 복수로 지목됐고 1992년과 95년 라이브 앨범을 선택한 전문가도 있었다.

○ 비밀은 초인적 관리와 음악적 센스

서태지는 2009년 8집을 내놓고 하루에 4∼8시간, 공연에 임박해서는 10시간 넘게 밴드 멤버들과 몸을 부대끼며 연습했다. 현장에 있었던 서태지 밴드 멤버들은 ‘초인적인 집중력과 완벽주의자적 기질’에서 그는 다른 뮤지션과 차원이 달랐다고 입을 모았다.

서태지 밴드 기타리스트 탑 씨는 “편곡 방식을 설명할 때의 논리력이 뛰어났고 곡이 완성되면 그가 그런 주장을 했던 이유가 한번에 이해가는 상황이 계속됐다”며 “집중력과 정신력도 놀라웠다”고 했다. 서태지 밴드 드러머 최현진 씨는 “음 하나하나까지 어떻게 표현하면 좋은지를 일일이 설명해줬다”고, 베이시스트 강준형 씨는 “서태지와 작업한 뒤 ‘최선’과 ‘노력’의 개념을 바꿔야 했다”고 했다. 키보드 연주와 프로그래밍 작업을 함께한 김석중 씨는 “많은 시간을 함께했지만 대화 주제의 80% 이상이 음악이었다”며 “8집 ‘모아이’의 뮤직비디오를 찍으러 칠레 이스터 섬에 도착한 순간 음악에서 떠올린 이미지가 풍경과 정확히 겹쳐져 놀랐다”고 했다.

‘미래의 서태지’에게 기대하는 음악 장르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악 재즈 아트록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운신의 폭이 좁을 것’이라는 분석과 ‘오랜만에 초기 서태지의 파격과 실험으로 돌아와 달라’는 주문이 교차됐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대중문화#데뷔20년#서태지#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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