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일사분란한 조직의 치명적 위험 ‘집단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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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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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합의나 의견 일치 중시… 리더의 선택 무조건 지지
단 한번의 비합리적 의사결정으로 ‘참사 수준’ 위기 발생

신사업 추진이나 인수합병 등으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제왕적 최고경영자(CEO)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일사불란한 조직은
‘집단사고(groupthink)’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특정 의견에 문제가 있어도 반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조직은 극단적으로
비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내려 큰 위기를 겪기도 한다. DBR 그래픽
신사업 추진이나 인수합병 등으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제왕적 최고경영자(CEO)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일사불란한 조직은 ‘집단사고(groupthink)’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특정 의견에 문제가 있어도 반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조직은 극단적으로 비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내려 큰 위기를 겪기도 한다. DBR 그래픽
일사불란한 조직은 최고경영자(CEO)의 ‘로망’이다. 대부분의 CEO들은 구성원 간 갈등이나 이견이 전혀 없어서 기름칠이 잘된 기계처럼 돌아가는 조직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일사불란한 응집력은 치명적인 위기를 낳을 수 있다. 잘나가던 기업이 갑자기 파산하는 것과 같은 위기는 오히려 응집력이 강한 조직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왜 그럴까.

정치심리학의 거장인 미국 예일대 어빙 재니스 교수는 ‘집단사고의 희생자들(Victims of Groupthink)’이라는 명저에서 강력한 응집력을 지닌 조직이 어처구니없이 붕괴되는 구체적 메커니즘을 명쾌하게 설명했다.

“응집력이 강한 조직은 전원 합의(consensus)나 의견 일치를 중시한다. 팀워크에 해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의견 대립이나 갈등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회피하려 한다. 또 특정 의견에 큰 문제가 있어도 이 의견에 동조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된다. 구성원 대부분이 이런 사고를 하면 비합리적 의견이 실행돼 참사(disaster) 수준의 위기가 발생한다.”

○ 최강 팀워크 케네디 행정부의 F학점짜리 의사 결정

한마디로 일사불란한 조직은 개인적으로는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극단적으로 비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내려 참사를 빚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재니스 교수는 대표적인 사례로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의 ‘피그만(Bay of Pigs) 침공’을 꼽았다.

1961년 4월 케네디 행정부의 국가안보회의(NSC). 참석자들은 공산화된 쿠바의 카스트로를 제거할 방안을 모색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묘안이 있다며 “카스트로에게 반감을 품은 쿠바 난민 등으로 이뤄진 암살 특공대를 구성해 카스트로를 제거하자”고 했다.

문제는 당시 미국의 쿠바 침공은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것. 쿠바는 초강대국 소련과 긴밀하게 협력하는 관계였다. 그런데도 NSC의 구성원들은 이를 열렬하게 지지했다. ‘파워 엘리트’로 이뤄진 NSC 구성원들이 케네디와 ‘코드’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던 것과 무관치 않다. 이들은 케네디와 비슷한 또래였고, 케네디처럼 미국 뉴잉글랜드 태생에 하버드대 동문이었으며, 케네디와 절친했다. 당연히 ‘일사불란한 팀워크’를 자랑했다.

결과는 미국의 완패(完敗)였다. 1965년 4월 카스트로 암살 특공대인 2056여단이 쿠바의 피그만을 침공했지만, 특공대 118명이 죽고 1189명이 포로로 잡혔다. 미국은 쿠바에 상당량의 의약품과 식량을 제공하겠다는 ‘굴욕적인 조건’을 제시한 끝에 나머지 포로를 석방시킬 수 있었다.

○ 기업서 나타나는 ‘집단사고’의 징후들

집단사고의 폐해는 기업에서도 무수히 발생한다. 최근의 금호 사태나 과거 대우 사태에서 볼 수 있듯 기업이 급성장하다가 갑자기 위기에 빠져 붕괴하는 과정을 분석해보면 집단사고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케네디 대통령처럼 강력한 리더십과 조직 구성원의 동질성이 결합되면 집단사고의 위험은 극에 달한다. 제왕적 권위를 지닌 리더의 의견은 합리성과 관계없이 구성원들이 무조건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리더의 선택이 잘못되면 조직 전체는 엄청난 위기를 맞게 된다.

이런 일사불란한 조직이 몇 번의 성공을 경험하면 집단사고의 위험은 더 높아진다. 안정된 상황에서는 일사불란한 조직의 효율이 높기 때문에 좋은 성과가 나온다. 하지만 성공 경험이 쌓일수록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화되면서 집단사고를 부추긴다.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반(反)조직 세력으로 매도되기까지 한다. 그러다 단 한 번의 비합리적 의사 결정으로 조직이 어이없이 무너지고 만다.

○ 집단사고 위험에 빠지지 않는 비결은

경영자들은 집단사고의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다음의 기준으로 조직을 진단해야 한다.

첫째, 회의에서 ‘침묵 현상’이 나타나면 일단 주의해야 한다. 집단사고의 경향이 강한 조직의 구성원들은 집단의 의견과 다를 것으로 예상되는 의견을 아예 표출하지 않는다. 이른바 ‘자기 검열(self censorship)’ 현상이다.

둘째, 조직이 ‘어떤 어려움에도 반드시 성공한다’는 ‘불패(不敗)신화’에 현혹되고 있지 않은지 살펴야 한다. 집단사고의 경향이 강한 조직은 의사 결정 과정에서 위험 요소를 거론하는 걸 금기시한다. ‘경영자의 오만(managerial hubris)’으로 불리는 자신감 때문이다. 이런 자신감은 리더가 합리적 의사결정을 했고 조직이 역량을 갖출 때에만 효과가 있을 뿐이다.

셋째, 조직이 특정 구성원을 ‘골칫덩이’로 낙인찍는 경향이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집단사고의 경향이 강한 조직은 이견을 제시하는 구성원에 대해 ‘충성심이 약하다’거나 ‘분열을 조장한다’는 ‘도덕적 비판(moral vindication)’을 한다.

○ 신사업이나 M&A 추진 시 집단사고 위험 따져봐야

불확실성이 높고 격변하는 초경쟁 환경에서 집단사고는 위험하다. 특히 리스크를 동반하는 신(新)사업이나 인수합병(M&A) 등 미래 전략을 추진할 때 일사불란한 응집력과 강력한 CEO를 가진 조직이라면 집단사고의 위험을 더욱 엄격하게 경계해야 한다. 불확실성이 높은 사업에 대해서는 설령 CEO의 의견에 문제가 있다고 느껴도 구성원들은 반대 의견을 구체적이고 자신 있게 표출하기 힘들다.

하지만 조직이 성과를 내려면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자유롭게 내놓고 이런 의견이 창조적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이게 바로 시너지다. 일사불란한 응집력을 자랑하는 조직에서 진정한 시너지는 없다. CEO의 의견을 메아리처럼 반복하는 임직원은 조직에 무익(無益)하다. 이들은 오히려 집단사고의 가능성을 높이는 위험한 존재들이다. CEO는 구성원들에게 ‘자신만의 독자적 의견을 내놓지 않으려면 조직을 떠나라!’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dshin@base.yonsei.ac.kr

정리=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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