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고대 신화적 마력을 근대윤리로 재단…도살장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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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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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박감도 부족

사진 제공 극단 물리
사진 제공 극단 물리
파르마코스(pharmakos)라는 말이 있다. 인간 속죄양을 뜻하는 그리스어다. 고대 그리스에선 위기가 발생하면 공동체를 정화한다는 명분으로 그 구성원 중 한 명에게 모든 죄를 전가한 뒤 죽여서 신에게 바쳤다. 그 인신공양의 희생자가 파르마코스다.

문학평론가이자 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는 인류 문화의 기원에 이 파르마코스에 대한 집단살해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초석(礎石)적 살해다. 인간집단의 갈등수위가 폭발 직전으로 고조된 순간 집단 구성원 중 가장 연약하고 무고한 누군가를 택해서 집단 폭력을 가한다. 그러면 기적처럼 갈등수위가 낮아지고 다시 평화가 찾아든다. 그 평화는 축복처럼 느껴진다. 누구로부터 온 축복인가. 바로 집단폭력에 희생된 파르마코스가 준 선물이다. 집단평화를 위해 무고한 존재를 희생시켰다는 죄의식도 엄습한다. 그래서 살았을 때 돌팔매질을 당했던 파르마코스는 죽어서 신성한 존재로 기려진다. 바로 문화를 배태한 신화와 상징의 출발점이다.

극단 물리의 연극 ‘도살장의 시간’(극본 김지현, 연출 한태숙·사진)은 인문학의 죽음이 거론되는 시대에 인문학을 지키려는 단발마의 몸부림을 그린 작품이다. 이승우의 단편소설 ‘도살장의 책’이 원작이다. 옛 도살장 터에 지어진 지방 도서관을 무대로, 폐기될 운명에 처한 책과 문학을 구원하기 위해 도살꾼 천변이 도서관의 여자 사서를 납치한 뒤 고대의 희생제의를 치른다는 도발적 이야기다.

연극은 도서관을 연극자료실로 바꾸고 천변(박지일)이 도살꾼이 되기 전 연극배우였다는 설정을 가미해 멸종위기에 처한 연극을 지키려는 희생 제의로 초점을 옮겼다. 또한 천변의 극단적 선택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의 고통스러운 과거와 분열된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확장했다.

여기서 두 가지 균열이 발생했다. 첫째는 소설이 지닌 신화성과 연극성을 오히려 연극이 해체하려 한 점이다. 소설이 신화적인 역설의 어법으로 말하고 있는 것을 연극은 오히려 인과법칙에 충실한 소설의 문법으로 풀어내려고 했다. 그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소설과 달리 연극에서 천변이 끝내 사서를 죽이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둘째로 소설은 바로 이 시대 책의 운명을 말하고 있는데 연극은 모든 시대에 적용될 연극의 운명에 대해 말한다. 공연되는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영원히 잊혀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말이다. 보편적 불안에는 긴박감이 없다. 긴박감이 없으면 파르마코스에 대한 비이성적 폭력도 출현할 필요가 없다.

이런 균열은 고대의 희생제의가 지닌 마력을 근대적 선악의 윤리로 재단하려 했기 때문이다. “순결이 가장 빛을 내는 순간은 순결이 유지되고 있는 동안이 아니라 바로 순결을 잃는 순간이다”는 소설 속 역설적 문장을 이 연극은 좀 더 음미할 필요가 있다. 11월 8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02-762-0010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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