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BT…이젠 CT]<下>한국의 리더들

  • 입력 2006년 1월 24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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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술(CT·Culture Technology)은 아직도 생소한 개념이다. 이 분야의 선구자들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캐릭터, 애니메이션, 영화 분야에서 앞서가는 CT 리더들은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제작기법이나 관리 기술을 개발해 문화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CF나 애니메이션(원더풀데이즈), 영화(웰컴 투 동막골) 특수효과 제작사인 인디펜던스의 박영민 본부장은 최근 애니메이션 제작관리 프로그램인 ‘나즈카 라이너’의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나즈카 라이너’는 분업으로 제작되는 애니메이션의 파트별 진행 단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한 프로그램. 이 회사가 본업과 무관한 프로그램 개발에 뛰어든 건 2004년 개봉된 ‘원더풀데이즈’ 제작 당시의 경험 때문이다. 2D와 3D를 섞는 독특한 기법 때문에 한 팀의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몰라 다른 팀은 손을 놓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한쪽에서 만든 것이 다른 쪽과 일치하지 않아 새로 만들기도 했다. 1년 반으로 예정된 제작 기간은 3년으로 늘어났고 제작비도 70억 원에서 100억 원이 됐다.

제작 공정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은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모두 절감했지만 이렇다 할 프로그램이 없었다. 박 본부장은 한때 할리우드의 드림웍스나 픽사가 자체 개발한 제작관리 프로그램을 쓰려 했지만 한 프로그램을 내려받는 데 300만 원의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는 말에 손을 들고 말았다. 박 본부장은 아예 자체 개발을 마음먹고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기로 했다. “CT가 정보기술(IT)과 다른 것은 IT 기술자가 알아서 문화기술을 개발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문화 현장에 있어야 어떤 CT가 필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문화콘텐츠진흥원은 이 프로그램이 올봄부터 업계에 보급되면 애니메이션당 약 18% 이상 제작비가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업계 전체로 보면 연간 약 352억 원의 수익이 발생한다.

캐릭터 ‘뿌까’를 만든 부즈의 김유경 부사장은 ‘캐릭터=동물’이라는 인식을 바꾸고 캐릭터에 스토리를 부여하는 새로운 개념으로 성공을 거뒀다. ‘뿌까’는 올해 1000억 원대 매출을 바라보며 유럽 중국 등 72개국에 250여 품목을 수출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키티, 마시마로 등 동물류 캐릭터가 주류인 세계 캐릭터 시장에 차별화된 상품으로 승부수를 던지기 위해 ‘사람’을 내세웠다. 사람의 얼굴이 주는 입체감을 줄이고 동물 캐릭터처럼 두루뭉술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눈은 극단적인 실선으로 표현했다.

화면에서 부드러운 천의 질감 효과를 내는 애니메이션을 개발한 오콘 고봉기 부사장도 CT의 선구자로 꼽힌다.

“기존 3D 애니메이션의 질감은 차갑기 때문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봉제 인형처럼 따뜻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고 부사장은 2003년부터 2년 동안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찾기 어려운 컴퓨터그래픽 기법을 개발해 애니메이션 ‘디보’를 만들었다. 현재 ‘선물 공룡 디보’를 제작 중이며 11월 EBS TV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인사이트비주얼 강종익(36) 사장은 영화 특수효과의 전문가. ‘태극기 휘날리며’ ‘청연’ ‘태풍’의 특수효과는 모두 그의 작품이다.

강 사장은 “영화 특수효과를 제대로 만들려면 컴퓨터그래픽 기술 이전에 미술, 촬영기법, 화면 구성 등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CT 분야 중 하나인 디지털 스토리텔링 전문가로는 최혜실(국문학) 경희대 교수가 꼽힌다. 최 교수는 최근 경기 양평군에 황순원 소설 ‘소나기’의 테마파크를 조성 중이다. 소설 속의 주요 이미지와 공간을 실제로 재현하는 것으로서 문학과 건축공학의 만남이라고 볼 수 있다. 최 교수는 “하나의 이야기가 만화 영화 게임 또는 테마파크의 이야기로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이야기 구조를 각 매체에 적합하게 바꾸는 것이 곧 스토리텔링”이라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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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국내 첫 CT대학원, 10년간 석박사 700명 양성▽

CT 활성화를 위해서는 관련 인재 양성이 필수다. 대표적인 교육기관으로는 지난해 9월 국내 최초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생긴 CT대학원을 꼽을 수 있다. 문화관광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CT대학원은 앞으로 10년에 걸쳐 석사급 인력 약 600명, 박사급 인력 약 100명을 배출할 예정이다.

KAIST CT대학원에서는 △문화경제론, 문화콘텐츠 산업론 등 CT 마케팅을 다루는 문화 경영 △콘텐츠를 생산하는 CT 창작 △창작과 관련된 테크놀로지 등 CT 연구 등 3개 분야로 나누어 교육한다. 교수진은 전임교수 6명, KAIST 내 타 학과 교수 20여 명과 게임기획자, 미디어 아티스트, 정보심리학자 등 외부 전문가 10여 명으로 이루어졌다.

CT대학원 임창영(디자인 전공) 교수는 “예를 들어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자체는 정보기술(IT)이지만 DMB에서 상영되는 콘텐츠를 제대로 만드는 것은 CT”라고 말했다.

지역 CT 관련 학과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클러스터를 만들어 실무인력을 키워 내는 전략도 모색하고 있다. 부천(만화, 애니메이션) 부산(영화, 게임) 청주(에듀테인먼트) 목포(해양문화콘텐츠) 전주(모바일 콘텐츠) 등 10개 지역은 지난해부터 지역의 대학, 문화산업 연구기관, 기업 등이 연계해 CT를 개발하는 연구센터인 CRC(Content Research Center)를 구성했다.

CT 전공자들의 앞날이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CT 교육기관은 늘어나는 추세지만 관련 인재의 취업률은 오히려 떨어지는 등 CT 전공자를 수용할 사회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CT가 발전하기 어려운 학계 풍토도 지적한다. KAIST CT대학원 원광연 원장은 “이공계와 비이공계의 단절이 심해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CT 연구가 원활하지 않고 새로운 학문에 대한 배타도 심하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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