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미들섹스'…남자의 몸-여자의 감성 가진 兩性인간

  • 입력 2004년 1월 30일 1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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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인간 칼리는 혼란스러운 성(性) 정체성을 극복하고 스스로를 찾아간다. ‘미들섹스’ 스페인어판 표지로 치마 아래 바지를 입은 여자아이를 통해 칼리를 표현했다.사진제공 민음사
양성인간 칼리는 혼란스러운 성(性) 정체성을 극복하고 스스로를 찾아간다. ‘미들섹스’ 스페인어판 표지로 치마 아래 바지를 입은 여자아이를 통해 칼리를 표현했다.사진제공 민음사
◇미들섹스(전 2권)/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이화연 송은주 옮김/1권 400쪽, 2권 384쪽 각권 9000원 민음사

“나는 두 번 태어났다. 처음엔 여자아이로, 유난히도 맑았던 1960년 1월의 어느 날 디트로이트에서. 그리고 사춘기로 접어든 1974년 8월 미시간주 피터스키 근교의 한 응급실에서 다시 한 번 남자아이로 태어났다.”

그리스계 이민3세 칼리오페(칼리)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나고 자란 ‘소녀’였다. 그러던 어느 날 트랙터에 부딪혀 병원으로 실려 간 칼리는 느닷없이 뉴욕의 저명한 성의학자에게 보내진다. 그를 통해 칼리가,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헤르마프로디토스(Hermaphroditos)처럼 자웅동체(雌雄同體)라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이 소설은 칼리가 ‘5알파 환원효소 결핍증’이라는 희귀한 유전인자를 갖게 되기까지, 근친간의 결혼으로 맺어진 3대(代)의 가족사를 촘촘히 엮어낸다.

1920년대 터키의 지배 아래 있던 소아시아 스미르나에서 누에를 치며 살아가는 남매 레프티와 데스데모나는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다. 이들은 미국행 선상에서 근친이라는 죄의식을 떨쳐내기 위해 각자의 정체성을 새로 만들어내고서 결혼한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밀턴은 육촌에게 반하고, 그들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칼리.

이민 2세부터는 부모의 고향과 언어를 잊고 살아가지만, 칼리의 유전자는 조상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저자는 지난해 주간지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유전자뿐 아니라) 다른 종류의 것들도 모두 전해 내려온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라고 말했다.

칼리는 여자아이로 자랐으나 유전학적으로 XY염색체를 가지고 있었다. 칼리는 남성으로 살겠다고 선택했지만 내면에는 여성의 감성이 깃들어 있는 ‘복합적’ 인간인 것이다. 그는 ‘생물학적으로 서로 통한다’는 동성들 간의 연대의식도 새로 익혀야 했다.

“여자들은 육체를 지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 육체가 얼마나 다루기 힘들며 얼마나 연약한지를, 또한 육체로 말미암은 영광과 기쁨도 잘 알고 있다. 남자들은 육체를 자신만의 것으로 여긴다. 그들은 사람들이 보는 데서도 슬쩍 자기 몸에 손을 댄다.”

존재의 혼란을 겪은 뒤 칼리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그 모든 질문들에 대해 나는 진부한 이치로 답을 대신하겠다. 이 세상에 우리가 적응하지 못할 것은 없다는….”

작가는 남성과 여성이 아닌 ‘양성(兩性)’의 주인공을 통해 성정체성과 사회생물학적 결정론, 환경 결정론에 의문을 던진다. 세대간의 의식차, 이민자들이 겪는 인종갈등 등의 문제를 짚으며 작품을 풍성한 아름드리나무로 키웠다. 20세기 초 자동차산업 태동기의 디트로이트와 당시 노동자들의 삶, 금주법시대의 밀주 산업 등도 세밀하게 그려진다. 2003년 퓰리처상 문학부문 수상작.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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