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가요LP 수집 붐…음반 한장에 150만원

  • 입력 2000년 6월 29일 19시 27분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70년대 여가수의 LP(Long Play) 한 장. 촌스럽기 그지없는 앨범 재킷에 지직지직하는 LP 특유의 잡음까지 나는 음반 한장이 150만원에 팔렸다면? 그나마 이것도 없어서 못 파는 형편이라면?

가요LP 수집붐이 일고 있다. 중년층이 향수를 느끼기 위해 LP 한두장을 사는 정도가 아니다. 20, 30대 ‘반(半) 전문가’들과 일본인 마니아들이 ‘수집광’이라 해도 좋을 정도의 열성을 갖고 가요판을 사는 바람에 가격도 치솟았다.

70년대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했던 ‘방의경’의 유일한 음반인 ‘불나무’는 가요LP 수집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음반 수집가 간에 거래가 이뤄져 정확한 가격을 확인할 수 없지만 서울 청계천 중고레코드가게들에서는 ‘150만원 거래’가 사실로 통하고 있다. 서울 황학동 승인레코드의 김승경씨는 “한국의 한 소장가가 방의경의 ‘불나무’ 앨범을 한 일본인 수집가에게 넘겼다”면서 “지금도 판만 있다면 100만원에라도 사겠다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방의경과 비슷한 시기에 함께 활동했던 가수 양희은은 “이화여대 미대출신인 방의경은 아주 순수하고 맑은 음색으로 독특한 음악세계를 지녔다”면서 “내가 부른 ‘아름다운 것들’의 가사도 그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방의경은 그 뒤 결혼해 미국으로 이민을 가 사업을 하고 있다.

이밖에 신중현 김정미 오세은 김의철 마그마 등의 음반이 수집가들이 선호하는 대표적 희귀반들. 특히 65년 데뷔한 신중현의 인기가 높아 그의 60년대 앨범들 뿐 아니라 그가 노래를 만들어준 김정미의 앨범, ‘김상희의 최신가요’ 앨범 등이 모두 고가다. 보통 중고 가요LP가 만원 수준에 거래되고 김민기의 앨범이 10만원 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00만원 대의 이 희귀반들은 엄청난 고가인 셈.

가요LP 수집붐은 일본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음반 중개인들의 설명이다. 부산 중구 신창동 필하모니레코드의 김원식씨는 “20대 후반이나 30대의 일본인들이 우연히 우리 가요를 접하면서 가요LP를 사모으기 시작했는데 주로 록을 선호해서 마그마 백두산 등 그룹이나 한대수 신중현을 찾는다”며 “일본 사람들이 가요LP 가격상승을 주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서 한국 수집가들은 70년대 포크앨범을 선호하는 편. 김민기의 초기작들과 ‘현경과 영애’ 등이 인기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희귀성과 자료가치’를 수집붐의 요인으로 꼽는다. 가요는 팝이나 클래식과 달리 CD로 복각된 것이 거의 없는데다 90년대 말 들어 단편적이나마 한국대중음악사의 정리가 이루어지면서 자료가치도 인정받고 있다는 것. 그런가하면 김원식씨는 “일단 음악이 좋기 때문에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수집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인터넷 중고레코드점 그라모폰의 김귀남씨는 “희귀반 문의가 너무 많아 가격을 알아봤더니 지나치게 비싸더라”면서 “일종의 유행에다 조금만 두고 보면 골동품이 돼 지금보다 더 비싸지리라는 기대심리도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임진모씨는 “지금의 기술로는 LP의 소음을 다 제거하고 완벽한 CD로 복각할 수 있는만큼 자료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으로 수집돼야지 몇몇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돌아다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김명남기자>star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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