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리포트]재보험사 순위 세계 11위-아시아 1위 코리안리의 성공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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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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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덩어리’ 구조조정… 문전박대 해외시장 노크 또 노크

‘환골탈태(換骨奪胎).’

금융권에선 재보험회사인 코리안리를 이야기할 때 이 사자성어를 빼놓지 않는다. 남이 입다가 버린 듯한 지저분하고 너덜너덜한 옷을 벗고, 유명 패션디자이너의 깔끔하고 세련된 옷으로 갈아입었다고도 말한다. 겉모양만 바뀐 것은 아니다. 온갖 속병에 시달리던 약골에서 매서운 추위를 견디는 강골로 체질을 바꿨다는 평가도 받는다.

처음부터 코리안리의 변신을 예상했던 이들은 없었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예상 손실액만 2800억 원에 이르러 파산 직전에 몰린 금융권의 ‘미운 오리 새끼’였다. 국내 1등이라고 했지만 세계 재보험업계 순위는 30위권 밖이었다.

13년이 흐른 2011년 코리안리는 ‘백조’로 부활했다. 코리안리는 연간 2000억 달러 규모의 세계 재보험시장에서 11위에 올라 있다. 아시아 시장에서는 이미 2002년 일본의 재보험사인 도아리를 2위로 밀쳐내고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대형 금융지주사들이 세계 5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것을 떠올리면 세계 재보험시장에서 코리안리의 발자취는 특별하다. 이젠 국내 금융회사 가운데 가장 성공적으로 해외에 진출한 사례로 꼽히며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위기를 벗어나 환골탈태하기까지

개인이나 기업이 예상하지 못한 사고로 인한 경제적 손실에 대비하기 위해 가입하는 것이 보험이라면 재보험은 보험회사의 보상책임을 분담해주는 제도다. 보험을 위한 보험상품인 셈이다. 1998년까지만 해도 코리안리는 재보험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초라했다. 최초 보험계약의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다시 보험에 가입시키는 업무를 하면서도 ‘리스크 관리’가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재보험사로서 갖춰야 할 기본기가 함량 미달이었던 셈이다. 당시 코리안리는 손쉬운 회사채 보증업무에 주력하다가 기업들이 줄도산을 하자 막대한 타격을 봤다. 1963년 정부투자기관인 대한손해재보험공사로 출범해 1978년 대한재보험으로 민영화된 지 20년이나 흘렀는데도 공기업 특유의 안일함이 조직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국내 재보험시장이 전면 개방된 탓에 독점적 지위가 무너졌는데도 별다른 대응 전략조차 없었다. 총체적인 부실 덩어리였다.

코리안리가 정신을 차린 것은 1998년 7월이었다. 이때 취임한 박종원 사장 등 경영진은 직전 7년간의 인사평가 자료를 바탕으로 전체 인원의 30%를 감축하는 등 파격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일단 회사에 들어오면 ‘잘릴’ 일이 없는 ‘원통형’ 인력구조가 소수정예의 피라미드 구조로 바뀐 것도 이 무렵이다. 느슨하던 조직에 긴장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 성장동력 찾아 국내에서 해외로

‘먹을 것’이 별로 없는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해외로 눈을 돌린 것도 이때부터였다. 1998년 코리안리의 매출에서 해외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3%에 불과했고 해외 영업을 위한 필수 조건인 기업 신용등급조차 없었다. 새로운 돈줄을 찾기 위해 해외 진출은 절박한 과제였다.
▼ 국내 금융회사들 벤치마킹 대상 떠올라 ▼

찾아가는 곳마다 문전박대를 당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보험계약 규모가 비교적 작고, 빠르게 개발이 진행되는 아시아 시장부터 공략했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선박 분야의 재보험시장에도 열중했다.

해외 재보험시장에서 자리를 잡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우수한 보험계약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A등급의 신용등급이 필요했지만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000년, 2002년 연거푸 BBB― 등급을 줬다. 2002년 글로벌 재보험사로 도약하기 위해 대한재보험을 현재의 코리안리로 개명하고 아시아 재보험시장 1위를 탈환했는데도 낮은 신용등급을 받자 야속하기만 했다. 박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2006년 미국 뉴욕의 S&P 본사를 찾아가 직접 담판을 벌였다. 자산이나 담보력은 작지만 리스크관리 역량만큼은 뛰어나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결국 A―라는 등급표를 받아 귀국했다.

이후 코리안리의 해외 실적은 탄력을 받아 급성장세를 보였다. 2007년 수재보험료가 전년보다 46.2% 늘어나며 6723억 원을 기록한 데 이어 2010년에는 9000억 원을 돌파했다. 국내 실적까지 합치면 훨씬 크다. 2009회계연도(2009년 4월∼2010년 3월) 기준 전체 수재보험료는 4조2600억 원, 순이익은 790억 원을 올렸다. 2010회계연도에는 4조6800억 원에 순이익이 1000억 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직원이 250명에 불과한 것을 떠올리면 놀라운 성적표다.

○ 2020년 세계 5위가 목표

세계 재보험시장에서 코리안리의 위상도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1998년 32위에서 2002년 20위, 2006년 12위, 2009년 11위까지 상승해 세계 10위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코리안리는 2010회계연도가 끝나는 올해 3월 말에는 세계 10위권에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올 1월 말 기준 영업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6.5%나 증가한 3조7567억 원을 보인 데 힘입어 회계연도 전체 기간으로는 전년보다 9%가량 성장한 4조6874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코리안리 관계자는 “10위권에 진입하면 국제 재보험시장에서 브랜드 가치가 상승해 영업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리안리가 최근 부쩍 국제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것도 지금까지의 성장세를 가속화하기 위한 포석이다. 올해 1월 영국의 글로벌 재보험사인 로이즈사와 업무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데 이어 일본의 도아리, 중국의 차이나리와 해외시장에 공동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박 사장은 “로이즈의 선진 보험기술을 활용하고 일본, 중국과 연합해 올해 해외 매출 1조 원을 돌파하는 게 목표”라며 “2020년 수재보험료 15조 원에 세계 5위가 우리의 비전”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9년간 써내려 갈 코리안리의 제2의 도약사(史)가 주목된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 재보험 ::

보험회사의 보상 책임을 분담해 주는 제도. 대형 화재, 선박 항공기 대형플랜트 사고,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손해는 위험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보험회사가 재보험을 활용해 위험을 분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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