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보 「수사외압메모」정체 뭔가

  • 입력 1997년 4월 20일 20시 08분


난데없는 메모 한장이 검찰의 한보사건 수사에 대한 외압(外壓)의혹을 증폭시키며 파장을 몰아오고 있다. 문제의 메모는 전직 청와대 경제수석들의 사법처리나 은행장들에 대한 배임혐의 처벌을 그만 두도록 강도높게 지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검찰수사의 독립성과 엄정성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어서 충격이 크다. 무엇보다 메모의 정체부터 조속히 밝혀 공개하는 일이 시급하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 메모가 한보사건을 수사중인 대검중수부에서 유출된 배경이 무엇인지, 작성자가 누구이며 작성경위는 어떤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청와대측의 외압 또는 간접 작용설, 검찰 수뇌부의 지시설, 단순한 검찰내부 갈등 정리설 등 추측만 무성하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측은 중수부 회의나 검찰총장의 확대간부회의에서 나온 검찰 내부 메모일 것이라며 관련설을 강력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야권은 文鐘洙(문종수)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외압의 장본인으로 못박고 그의 즉각 해임을 촉구하고 나섰다. 어느 경우든 진상을 철저히 가려 공개하지 않으면 앞으로 검찰이 무슨 수사를 어떻게 하든 국민들은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잖아도 세간에는 검찰수사에 외압이 작용한다는 의구심이 적지 않다. 때문에 이번 메모파문은 바로 검찰의 신뢰성과도 직결돼 있다. 특히 이번주에는 정치인 수사가 마무리되고 賢哲(현철)씨에 대한 청문회가 열리는 등 향후 정국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 고비가 된다. 곧 현철씨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도 시작되는 만큼 검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때다. 검찰은 머뭇거리지 않고 앞만보는 수사를 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그럼에도 투명하고 엄정한 수사 대신 정치적 배려나 복선 또는 검찰내부의 갈등과 혼선 때문에 수사의 정도(正道)를 벗어난다면 그로 인한 혼란과 책임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사회도 이젠 내부고발자가 많아지는 등 비밀없는 사회로 가고 있다. 모든 것은 원칙에 따라 법대로 처리해야지 이번에도 제도외의 압력이나 영향력 때문에 일을 그르친다면 검찰은 존립자체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만의 하나 성역없는 수사를 강조해 온 청와대가 겉다르고 속다르게 검찰에 축소수사 외압을 행사했다면 국민들의 배신감과 분노는 엄청날 것이다. 정권의 도덕성에 대한 시비로 번질 수 있다. 청와대 외압설이 낭설이라면 더더구나 진상은 밝혀져야 한다. 「국면전환」 「사표운운」한 메모내용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번 압력의 주체가 청와대에 있든 검찰수뇌부에 있든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검찰수사에 대한 부당한 간섭과 월권이자 검찰권 자체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배경과 경위가 어떻든 외압의 실체를 규명하고 극복해야 할 책임은 일차적으로 검찰에 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