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자가 분석한 ‘인류학자 4인의 글쓰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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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츠 저 ‘저자로서의 인류학자’

미셸 푸코와 롤랑 바르트는 작가(writer)와 저자(author)의 개념을 분리했다. 작가가 특정 주제에 대해 뭔가 말할 게 있어 책을 쓰는 기능인이라면 저자는 왜를 어떻게 쓰는가에 흡수해 다른 텍스트의 형성가능성과 규칙을 만들어내는 창조자다.

최근 번역된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1926∼2006·사진)의 ‘저자로서의 인류학자’(문학동네)는 저자의 반열에 오를 만한 20세기 인류학자 4인방의 글쓰기를 분석했다. 프랑스의 구조주의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2009), 영국의 사회인류학자 에드워드 에번스프리처드(1902∼1973), 폴란드 출신의 영국 문화인류학자 브로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1884∼1942), ‘국화와 칼’로 유명한 미국의 여성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1887∼1948)다.

레비스트로스는 남미 원주민 현지조사를 토대로 ‘슬픈 열대’를 썼지만 그들 속으로 직접 들어가기보다는 자신이 구상한 보편적 텍스트 속으로 그들을 끌고 오는 전략을 취했다. 반대로 북아프리카 소수민족을 연구한 에번스프리처드는 ‘그곳에 있기’에 충실한 실증적 글쓰기로 인류학적 슬라이드를 구축하려 했다. 파푸아뉴기니 소수민족을 연구한 말리노프스키는 아예 그곳의 일부가 되고자 했지만 정작 그의 일기는 ‘목격하는 나’에 대한 회의로 가득 차 있었다. 베네딕트는 현지조사 경험이 거의 없이 문헌조사만으로 낯선 것(일본)을 친숙하게 만들고 익숙한 것(미국)을 낯설게 만드는 글쓰기로 미국인은 물론이고 일본인까지 사로잡았다.

기어츠는 인도네시아 현지조사를 통해 극장국가 개념을 제시한 일급의 인류학자다. 그런 그가 1988년 발표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이 책은 20세기 인류학이 고수해온 과학의 신화를 무너뜨리고 문학적 글쓰기의 산물임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인류학에 새로운 전환점이 된 책이라 할 만하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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