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땐 ‘개고기포’도 공물이었다… ‘13세기 타임캡슐’ 마도 3호선서 유물 287점 인양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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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중엽 어느 날, 한 척의 배가 전남 여수항을 출발해 인천 강화도로 향했다. 배는 전복젓갈, 말린 생선, 개고기포, 사슴뿔 등 권력자에게 보내는 물품으로 가득했다. 선원들은 조약돌로 장기를 뒀고 구석에 놓인 볏섬에서는 쥐가 낟알을 갉아먹고 있었다.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해역에서 2009년 9월 발견된 ‘마도 3호선’은 고려시대 생활유물의 보고였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성낙준)는 5월부터 최근까지 실시한 마도 3호선 발굴 조사 결과를 6일 발표했다.

발굴단은 지금까지 목간(木簡) 32점, 항아리 28점, 볍씨 조 등 곡물류, 사슴뿔, 쥐뼈, 장기돌 등 총 287점을 인양했다. 특히 목간을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고려사회의 단면과 삼별초의 조직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마도해역 일대는 물길이 험하고 짙은 안개로 선박 난파가 잦은 곳. 2009년 마도 1호선, 2010년 마도 2호선에 이어 올해 조사한 마도 3호선은 현재까지 발굴한 고려시대 선박 가운데 상태가 가장 양호하다. 길이 12m, 너비 8m, 깊이 2.5m. 그동안 발굴된 적이 없는 선수와 선미, 돛대가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어 고려시대 선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마도 3호선은 몽골 침략기에 임시 수도로 삼은 강화도에 거주하던 권력자들을 위해 지금의 전라도 일대에서 거둔 물품을 싣고 여수를 출발해 북상하다 마도 인근에서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항지는 목간에 나오는 여수(呂水)라는 지명에서 단서를 찾았다. 여수는 지금의 전남 여수(麗水)다.

목간에는 화물의 수취인으로 시랑(侍郞·4품으로 장군과 같은 품계)인 신윤화(辛允和)와 유승제(兪承制)가 적혀 있다. 유승제는 성이 유 씨이고 승제라는 관직에 있는 사람으로, 옛 문헌에 따르면 유천우(兪千遇)가 유일하다. 이들이 해당 관직을 지낸 시기를 감안했을 때 마도 3호선의 침몰 시기는 1260∼1268년으로 보인다.


또 ‘김영공(金令公)에게 홍합 젓갈과 날것 40항아리 합 51항아리’를 보낸다는 내용도 목간에 쓰여 있다. 김영공은 무신정권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은 김준을 이른다. ‘영공’은 고려시대 왕실 사람들에게만 붙이던 극존칭인 만큼 그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삼별초에 대한 새로운 사실도 밝혀졌다. ‘우삼번별초도령시랑(右三番別抄都領侍郞)’이라는 목간 기록을 통해 삼별초가 좌우 각 3번으로 나뉘어 있었고 별초의 지휘관이 4품의 시랑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동안 별초의 지휘관은 7∼8품의 하급 무반으로 알려져 있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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