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그 때 그시절엔]<23>최은주 관장과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 입력 2005년 1월 16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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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많지 않았던 시절, 덕수궁현대미술관은 대표적 주류 미술공간이었다. 1976년 3월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회에는 교과서 도판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모네, 마네, 피사로의 그림들을 볼 수 있는 기회여서 장사진을 이뤘다. 사진 제공 조선일보
요즘처럼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많지 않았던 시절, 덕수궁현대미술관은 대표적 주류 미술공간이었다. 1976년 3월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회에는 교과서 도판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모네, 마네, 피사로의 그림들을 볼 수 있는 기회여서 장사진을 이뤘다. 사진 제공 조선일보
연일 섭씨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기온 때문인지 두꺼운 옷깃 속에 목을 자라처럼 숨기고 몸을 웅크린 채 걸어 다녀도 체감온도가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 요즘이다. 이렇게 추울 때면 설날이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도 마음속으로 ‘입춘’ ‘우수’ ‘경칩’ 같은 절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개나리, 진달래, 철쭉, 벚꽃이 앞뜰과 뒷마당에 흐드러지게 피는 덕수궁의 봄을 벌써부터 상상하는 것이다. 봄빛이 완연할 즈음이면 한 해도 빠짐없이 받게 되는 전화가 있다.

“뒷마당 화단에 모란이 피었나요? 꽃이 피면 꼭 한번씩 덕수궁에 가보거든요.”

석조전 동관 뒤쪽으로 난 오솔길을 걷다보면 이제는 겨우 흔적만 남은 작은 모란 화단을 만날 수 있다. 전화를 받은 후 부랴부랴 화단으로 달려가 모란의 화려한 자태를 바라보노라면 한편으로는 각박한 일상 속을 헤매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1년 동안 모란이 피기를 기다려온 중년 여인의 ‘그리움’이 직접 가슴에 와 닿는 듯한 감정의 동요를 느낀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을 덕수궁에서 보내고 있다.

한때 덕수궁은 해마다 봄이 되면 모란을 보기 위해, 또는 그리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진풍경을 그려냈다. 얼마 전 뵈었던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회고에 따르면, 1960년대 말부터 이어진 모란 풍경 현장 스케치는 70년대 김인승 박득순 손일봉 박광진 등 이름난 구상화가들에서 정점을 이뤄 80년대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우리나라 화가들에게 덕수궁은 언제라도 캔버스와 물감과 붓을 자연스럽게 꺼내 들 수 있는 편안한 안식처 같은 곳이었다.

마침, 국립현대미술관이 1973년 덕수궁으로 옮겨지면서, 그전까지 경복궁에서 치러지던 국전이 해마다 봄 가을 덕수궁에서 열렸다. 화가로 입문하기 위한 가장 확실하고 경쟁력 있는 등용문이었던 ‘국전’이 열리면 작품을 출품한 작가들뿐만 아니라 입상작을 보려는 일반인과 미래의 화가를 꿈꾸는 학생들의 인파가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길게 늘어섰다. 70, 80년대 외국과의 교류가 빈번하지 않았던 때 덕수궁은 교과서에 실린 작은 도판으로밖에 볼 수 없던 모네, 마네, 피사로의 인상파 그림들과 밀레의 목가적 풍경화, 로댕의 조각, 피카소의 그림 등을 볼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장소였다.

미술을 전공했어도 작가가 아닌 미술관 행정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80년대 덕수궁에서 그림 그리는 일은 언제나 즐거웠다. 화가로서의 꿈은 사라져 버렸지만 덕수궁과 함께해 온 여러 가지 추억을 나누면서 지낼 수 있으니 복 받은 사람이랄까!

○최은주 관장(42)은…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와 대학원을 마치고 1989년 국립현대미술관 여성 학예연구사 1호로 미술관 일을 시작해 1999년부터 덕수궁 분관장으로 일해오고 있다. 고야 판화전(2000년), 렘브란트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전(2003년), 고암 이응로전(2004년) 등 여러 전시들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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