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에게 길을 묻다]<2>김영기 전 KBL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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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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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의 생명은 스피드… 흐름 자꾸 끊기면 팬도 끊겨”

“선수들의 재주를 최대한 살려주는 감독이 좋은 지도자다.” 어느덧 머리에는 백발이 성성해도 김영기 전 KBL 총재의 농구에 대한 
열정은 여전했다. 김 전 총재는 “농구는 스피드가 생명이다. 묘기가 나오고 속공이 쏟아져야 관중이 즐거워한다”고 조언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선수들의 재주를 최대한 살려주는 감독이 좋은 지도자다.” 어느덧 머리에는 백발이 성성해도 김영기 전 KBL 총재의 농구에 대한 열정은 여전했다. 김 전 총재는 “농구는 스피드가 생명이다. 묘기가 나오고 속공이 쏟아져야 관중이 즐거워한다”고 조언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승리를 알리는 버저 소리가… 35도의 무더운 경기장에 울려 퍼진 순간 나는 할 일을 했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찌르르 온몸이 저림을 느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우리 선수들에 들려 공중 높이 추켜올려진 자신을 발견하고 이건 주인이 바뀐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 대나무 숲처럼 싱싱한 선수 하나하나를 내가 던져 올렸어야 했기 때문이다.’

1969년 12월 6일자 동아일보 6면의 70%는 수기로 채워졌다. 이 글의 주인공은 당시 33세의 농구 대표팀 감독이던 김영기 전 한국농구연맹(KBL) 총재(76)였다. 그는 그해 아시아선수권에서 사상 첫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선수단은 청와대 만찬에 초대돼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다. 한선교 현 KBL 총재는 이 모습에 반해 농구팬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30대 중반의 지도자였던 그는 어느덧 주름이 깊게 패고 백발이 성성한 70대 중반이 됐다. 그래도 코트가 마음의 고향이라는 그의 농구공을 향한 열정은 뜨거웠다. 매일 저녁 농구 중계를 시청하고 농구인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15일 학창 시절 뛰놀던 서울 청계천에서 만난 김 전 총재와의 대화를 키워드로 정리해 본다.

○ 재미

올 시즌 프로농구는 저득점 수비농구가 흥미를 반감시킨다는 지적이 많다. 올 시즌 평균 득점 1위 KCC는 78.8점. 프로 원년인 1997년 1위 나래는 104.9점이었다.

▽김영기 전 총재=농구는 스피드가 생명이다. 흐름이 자꾸 끊기면 팬들은 지루해한다. 묘기가 나오고 속공이 쏟아져야 한다. 심판도 플레이를 자꾸 중단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플래그런트 파울(비신사적이고 과격한 반칙)은 엄격하게 다스려야 한다.

○ 휘슬

판정 시비는 한국 농구의 고질이다. 그 역시 2003년 심판에 대한 불만 끝에 SBS가 일으킨 몰수게임 파문의 책임을 지고 KBL 총재에서 물러났다. 심판과 구단의 갈등은 여전하다.

▽김=감독과 선수는 발전했는데 심판의 자질이 쫓아가지 못했다. 심판들이 관료화되면서 정체됐다. 물갈이가 없었던 탓이다. 선수 출신 심판들이 많이 배출돼야 한다.

○ 외국인 선수

김 전 총재는 프로농구 출범의 산파였다. 용병 제도는 자주 바뀌어 혼선을 빚었다. 1명 보유, 1명 출전의 현행 자유선발이 다음 시즌 2명 보유, 1명 출전에 드래프트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김=선수 몸값을 끌어올리는 자유계약보다는 드래프트가 좋다. 외국인 선수를 1명만 보유하면 부상과 태업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엑스트라 보려고 극장에 가는 관객은 없다. 예전처럼 외국인 선수 2명의 신장 제한을 두고 뽑으면 아기자기한 볼거리에 득점력도 높아질 것이다.

○ 지도자

스타 출신 명장이 없다는 말은 김 전 총재에게는 예외다.

▽김=스타들은 개성이 강해 선수들을 가르치면서 부딪친다. 미국프로농구 명장 필 잭슨을 보면 성직자 같은 인상을 받는다. 자기 수양이 중요하다. 선수에게 존경받아야 한다. 자기 방식을 고집하기보다는 선수들의 재주를 최대한 살려줘야 한다.

○ 건강

김 전 총재는 한때 두주불사로 유명했다. 소주 8명을 마시고도 끄떡없었다. 골프도 고수다. 35년 구력에 베스트 스코어는 2005년 휘닉스파크GC에서 기록한 72타.

▽김=잘 먹고 몸을 잘 쓴다. 외출할 때 주로 전철을 이용한다. 하루에 8000보 이상 걷는다. 약속이 없으면 오후 5시에 저녁을 먹는다. 지난해 77타를 네 번 쳤는데 우리 나이로 에이지슛에 1타가 적었다. 뭔가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심신이 건강해진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 김영기 총재는


1970년 방콕 아시아경기에서 한국 농구를 우승으로 이끈 뒤 헹가래를 받고 있는 김영기 전 총재. 동아일보DB
1970년 방콕 아시아경기에서 한국 농구를 우승으로 이끈 뒤 헹가래를 받고 있는 김영기 전 총재. 동아일보DB
△생년월일=1936년 1월 7일 △고향=서울 △키=180cm △포지션=가드, 포워드 △농구 시작=1952년 배재고 1학년 △출신교=배재고-고려대 △소속팀=공군-기업은행(1965년 은퇴) △주요 경력=대표 선수(1956∼1964년·멜버른 도쿄 올림픽, 자카르타 아시아경기 출전) 지도자(1969∼1975년·방콕 아시아선수권과 방콕 아시아경기 한국 첫 우승, 테헤란 아시아경기 은메달) 금융인(1976∼1994년·기업은행 지점장, 신용보증기금 전무, 신보투자 사장) 스포츠 행정가(1980∼2003년·대한체육회 이사 부회장, 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대한농구협회 부회장, 한국농구연맹 전무 부총재 총재) TV 해설가(KBS 전속 1호) △가족 관계=부인과 2남 1녀(막내아들은 김상식 프로농구 전 오리온스 감독) △취미=골프(핸디캡 12), 독서(영문 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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