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전통한옥은 지진에 강한 '과학의 집'

  • 입력 2002년 9월 10일 18시 03분


“윙∼”하는 소리와 함께 지진이 난 것처럼 커다란 한옥이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무 기둥은 한 뼘이나 옆으로 빠져나왔고, 벽에는 수많은 균열이 생겨나며 흙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흔들림이 심해지자 한옥 뒷벽이 “쿵”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실제 전통 한옥(기와집)을 이용한 인공 지진 실험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도됐다.

서울대 지진공학연구센터 김재관 교수와 유혁 씨(박사과정)는 최근 대전 한국기계연구원에서 ‘지진 시뮬레이터’ 위에 목재와 기와로 지은 전통 한옥을 올려놓고 지진을 일으키는 실험을 수행했다. 가로 2.4m, 폭 1.9m 크기의 이 기와집은 조선 고종의 내시였던 김병호의 생가(경기 양평)를 복원한 것으로 실제의 절반 크기로 제작됐다.

실험 결과 전통 한옥이 상당히 지진에 잘 견디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리히터 규모로 6.5∼7.0의 강한 지진에서도 집이 무너지지 않았다”며 “이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결과”라고 밝혔다.

시뮬레이터를 작동시키자 기와집은 수㎝씩 좌우로 흔들렸다. 지진 세기를 높이자 벽이 기둥에서 떨어지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진 세기가 원자력발전소의 내진 기준인 지진가속도 0.20g(g는 중력가속도 9.8m/초²)에 이르자 지붕이 수십㎝씩 흔들리며 흙조각이 많이 떨어졌다. 0.36g가 되자 뒷벽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기와집은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피해를 우려해 실험은 이 단계에서 중단됐다.

전통 가옥에 대한 지진 실험은 98년 한국원자력연구소 서정문 박사팀이 흙으로 지은 ‘초가집’을 대상으로 한 바 있다. 당시 실물의 ¼크기로 만든 초가집은 지진 세기 0.25g에서 완전히 붕괴됐다.

전통 한옥이 지진에 강한 것은 기둥과 보, 도리 등 수평 수직 목재들이 서로 떠받치는 등 독특한 가옥 구조 때문이다. 서울대 전봉희 교수(건축학과)는 “주춧돌과 분리된 기둥이 미끄러지며 지진의 충격을 분산하는 데다, 수평 목재들이 기둥 사이에서 이중삼중 집을 받치고 있어 지진에 강하다”며 “특히 목재가 휘거나 변형되면서 지진의 운동에너지를 많이 흡수한다”고 설명했다. 무거운 기와지붕을 받치기 위해 만들어진 튼튼한 한옥의 목재 구조가 자연스럽게 ‘내진 설계’ 역할까지 한 것이다. 그러나 기와지붕이 없는 일반 나무집은 지진에 그리 튼튼한 편은 아니다.

역사 기록을 봐도 전통 한옥은 지진에 잘 견뎌 왔다. ‘땅이 흔들리고 민가가 무너져 깔려 죽은 자가 100인이나 되었다’(신라 혜공왕 779년)라는 삼국사기 기록처럼 초가집, 토담집 등이 무너진 역사 기록은 많지만 관공서나 사찰, 양반들이 살던 한옥이 무너진 공식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기와가 떨어진 기록이 몇 개 있을 뿐이다.

전통 한옥이 지진에 이처럼 강한데 비해 오히려 현대의 벽돌과 시멘트 블록 집 등 이른바 ‘조적조 건물’은 지진에 매우 취약해 대조가 된다. 조적조 건물은 위에서 누르는 힘에는 강하지만 옆에서 흔드는 힘에는 매우 약해 지진에 피해가 크게 날 수 있다.

김재관 교수는 “1978년 홍성 대지진 때도 한옥에 비해 벽돌집 등이 많이 훼손됐다”며 “특히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벽돌집 등은 지진에 매우 약해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지역은 보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김상연동아사이언스기자

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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