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세계 명작동화 없나요” 헌책방-인터넷 뒤지는 어른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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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호인 카페 열어 정보교환… 절판책 복간 요청도

문선사의 ‘무지개의 전설’에 나오는 그림(위). 문선사 ‘로타와 자전거’의 영문판인 R&S Books의 ‘Lotta's Bike’.
문선사의 ‘무지개의 전설’에 나오는 그림(위). 문선사 ‘로타와 자전거’의 영문판인 R&S Books의 ‘Lotta's Bike’.
회사원 정희진 씨(26·여)는 매달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찾는다. 책방 주인들은 “그 책 아직 소식 없다”고 할 때마다 정 씨보다 먼저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정 씨가 찾는 책은 절판된 문선사의 ‘현대세계걸작그림동화 전집’ 총31권. 다섯 살 때 방바닥에 배를 대고 엎드려 즐겨 봤던 그림책이다.

어릴 적 읽던 동화책을 다시 찾는 어른은 정 씨만이 아니다. 인터넷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에는 ‘가격은 상관없으니 갖고 있는 분은 연락 좀 달라’는 마니아의 간곡한 게시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절판된 책을 찾아 서울 홍익대 근처 헌책방과 인터넷 중고서점 알라딘, 해외 아마존 사이트 등 온오프라인을 뒤지고 다닌다. 김민정 씨(30)처럼 7년째 인터넷 중고 사이트를 들락거리는 마니아도 있다.

추억의 그림책 마니아들에게 고전으로 통하는 그림책은 문선사의 전집 외에 계몽사의 ‘어린이 세계의 명작’ 총15권, ‘유리의 성’ ‘바벨 2세’ 등 클로버 문고, ‘말괄량이 쌍둥이’로 유명한 지경사의 순정만화들. 이 고전들은 1980, 90년대에 출간됐으며 지금은 절판된 상태다. 귀한 만큼 가격도 비싸다. 계몽사 ‘어린이 세계의 명작’은 중고 시장에서 50만 원대에 거래되기도 한다. 1983년 출간 당시 가격은 10만 원 미만이었다.

절판된 고전들을 구하지 못한 독자들은 인터넷에서 동호회를 만들어 복간 추진 운동을 벌인다. 네이버의 ‘문선사 현대세계걸작 그림동화 카페’의 회원은 300여 명, ‘클로버 문고의 향수’는 7500명이 넘는다. 출판사에 정기적으로 ‘복간해 달라’는 요구를 한다. 기존 출판사가 문을 닫았을 경우엔 새로운 출판사를 선정해 요청한다. ‘클로버문고 복간추진위원회’ 회원 250명은 독자들을 상대로 가상 주문을 받아 출판사를 압박하기도 했다. 계몽사는 최근 독자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어린이 세계의 명작’ 전집 15권을 3000세트 한정판으로 복간했다. 하지만 수익성이 낮고 재고 비용이 높아 실제로 복간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다 큰 어른들이 어릴 적 즐기던 동화책을 다시 찾는 이유가 뭘까. 문선사 전집 팬인 박세미 씨(26·여)는 한국어판을 구하지 못해 ‘별도둑’은 일본어판, ‘로타와 자전거’는 독일어판을 샀다. 박 씨는 “배송비까지 포함해 1980년대 가격의 5배 이상을 지불했지만 추억을 생각하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그림책의 탄탄한 스토리와 훌륭한 삽화는 추억을 간직하고 싶게 만드는 요인이다. 계몽사 ‘어린이 세계의 명작’에는 다테이시 슈지, 오바라 다쿠야 등 유명한 동화 일러스트 작가들이 참여했다. 요즘도 일러스트 작가나 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 어릴 적 문선사 ‘마법사 가자지씨의 뜰에서’를 좋아했던 송하은 씨(28·여)는 “서양식 정원이 그대로 재현된 삽화가 인상 깊어 대학 시절 유럽 여행길에 책을 다시 샀다”고 말했다. 이 책은 초현실주의 작가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대표작이다.

전집 복간은 드물지만 단권으로 재출간되는 경우는 있다. 문선사의 ‘마법사 가자지씨의 뜰에서’는 2002년 베틀북이 ‘압둘 가사지의 정원’으로, 같은 출판사의 ‘까마귀 도령’은 1996년 비룡소가 ‘까마귀 소년’으로 다시 내놨다. 비룡소 출판사 관계자는 “꾸준한 독자의 수요가 재출간 요인”이라고 밝혔다.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
#문학#동화#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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