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빛낸 장정구 "나를 망친 두 여자, 일으킨 한 여자"

  • 입력 2008년 12월 22일 16시 38분


장정구가 22일 오후 강남구 논현동의 한 음식점에서 '나는 파이터다!-영원한 챔피언'이란 자서전 출판 기념식을 갖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
장정구가 22일 오후 강남구 논현동의 한 음식점에서 '나는 파이터다!-영원한 챔피언'이란 자서전 출판 기념식을 갖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
“순간, 상대의 주먹이 내 얼굴로 들어왔다. 피할 새도 없는 연타였다. 아득해지며 내가 넘어졌다. 내가 무너지고 있었다. 오지 말아야했다. 이 자리에 다시 서지 말아야했다. 나를 무너뜨린 건 상대의 주먹이 아니라 절망감이었다.”

1991년 5월18일. WBC가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복서’ 장정구는 몰락했다. WBC 라이트 플라이급 세계타이틀을 15차례나 방어했던 그였지만 태국의 무앙차이 카티카셈에게 처참한 KO패를 당했다.

장정구는 15차 방어전을 치른 뒤 타이틀을 스스로 반납했다. 더 이상 권투가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치른 재기 전에서 처참하게 무너진 것이다.

무엇이 권투를 하기 싫게 만들었을까. 그 것은 ‘사랑’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그는 두 여자로 인해 무너졌다고 돌이켰다. 그 두 여자란 다름 아닌 그의 전 부인과 장모였다.

2008년 12월22일. ‘짱구’ 장정구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그는 한 때 웃음을 잃은 사람이 되었다. 어두운 표정 속에 쏘아보는 눈빛만이 남아있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자서전 ‘나는 파이터다’를 펴내면서 당시의 사건을 소상하게 밝힌 것이다.

‘그 일’이란 장정구의 전 부인이 장정구가 매 맞으며 번 전 재산을 가로채 간 사건이었다. 그는 책에서 “내 인생의 한 부분을 지울 수 있다면 그 시간은 아귀처럼 달려들던 도까시키(일본)와의 난전도 아니고 무앙차이에게 KO를 당해 링 바닥에 뒹굴던 굴욕의 시간도 아니다. 그 것은 바로 전처와 지낸 3년간의 결혼생활이다… 두 여자. 그들이 저지른 일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치명타였다. 나를 인생의 바닥에 KO시키고 깊은 낭떠러지로 밀어 뜨린 사람들”이라고 썼다.

전 처와의 사이에 둔 자녀들 때문에 이 일을 밝히길 망설였다는 장정구는 장모와 전처가 자신의 돈을 빼내간 과정을 밝혔다. 장정구의 명의로 돼 있던 각종 가게와 부동산을 명의 변경을 해가면서 가로채 갔다는 것이다.


▲동아닷컴 정주희 기자

전성기였던 80년대 초중반 장정구의 파이트머니는 경기당 7000만원. 프로야구선수의 최고연봉이 2000만원이었고 강남 35평 아파트 한 채 값이 7000만원이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경기당 아파트 한 채 씩 벌었으니 작은 돈은 아니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강남 아파트 15채 값을 날렸다”고 돌이키곤 한다.

1988년 매맞아 번 돈을 잃은 뒤 이를 되찾기 위해 소송을 준비하던 그는 극심한 배신감과 상실감에 시달렸다. 결국 돈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상처가 문제라는 걸 안 그는 소송을 취하했다. 소송 끝에 돈을 되찾는다 해도 마음의 상처는 보상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후 권투고 인생이고 모든 일에 흥미를 잃어 버린 그는 매 맞으며 돈 버는 것이 싫어 권투계를 떠났다. 모든 것에 염증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그는 권투밖에 몰랐다. 여러 회사에 취직을 했으나 적응이 쉽지 않아 곧 그만두고는 했다. 결국 또다시 권투로 인생을 재기하려했다. 무일푼이 된 그가 다시 할 수 있었던 일은 또다시 권투뿐이었다. 그 재기전에서 그는 처참하게 무너진 것이다.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역설적이게도 또 다른 ‘사랑’이었다. 그의 지인이 소개시켜준 현 부인 이숙경씨를 만나면서 그도 조금씩 일어설 수 있었다. 유명대학을 나온 일등 신부감이었던 이숙경씨가 초등학교 밖에 졸업못하고 빈털터리가 된 장정구와 사귄다고 하자 주변의 모든 이들이 뜯어말리려했다. 그런 과정에서 이숙경씨는 단식투쟁까지 해가며 장정구와의 결혼을 성사시켰다.

그는 자신의 소원은 다시 태어나도 이숙경씨와 결혼하는 것이라 했다. 몸과 마음을 추스린 그는 자신의 명의를 빌려주며 체육관도 열었고 트레이너로도 나섰다. 최요삼과의 만남은 이 때 이루어졌다. 고 최요삼이 세계챔피언에 재도전하기 위해 땀을 흘릴 때 그가 트레이너로 나선 것이었다. 그러나 그 최요삼은 링위에서 쓰러져 올해 초 싸늘한 주검이 됐다.

그는 링 위에서 수많은 상대를 쓰러뜨렸다. 38승(17)KO 4패를 기록하는 동안 수없는 난전을 펼쳤다. 그러나 링밖의 세상은 링위보다 무서웠다. 어디가 더 힘들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쓰게 웃으며 “링 밖이 당연히 더 힘들지요”라고 말했다.

한국 권투의 침체기. 선수들은 파이트머니로 생계를 해결하기조차 힘든 시절이 왔다. 그 속에서 그는 글러브를 놓지 않고 또 다시 재기를 꿈꾼다. 최근엔 부산에 ‘장정구 복싱클럽’도 열었고 복싱 에어로빅 등을 가르칠 수 있는 스포츠센터 건립을 추진 중에 있다.

부산의 가난한 동네 골목에서 빈 주먹으로 일어섰던 유년기, 지옥 같았던 체중감량을 거치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냈던 그였지만 이 사회의 모진 한파에 한 때 쓰러졌다. 그러나 다시 일어설 수 밖에 없는 것이 파이터의 숙명이다. 그는 그러한 근성으로 다시 일어서고자 한다.

그는 자서전 말미에 이렇게 썼다.“세상에는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치열한 경쟁으로 살아남는다. 지하철역의 노숙자들조차도 하룻밤 잠자리를 위해 다툼을 하는데 하물며 최고의 자리는 무엇하겠는가? 당신이 원하는 자리가 어디이든 그 경쟁은 60억대 1이다.”

책 제목 “나는 파이터다”는 따라서 생존경쟁에 나선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응원구호이기도 하다. 그는 “나의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됐으면 하는 바램에서 책을 썼다”고 말했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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