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은 이름 하나, 기업을 먹여살린다?

  • 입력 2007년 5월 4일 02시 51분


코멘트
‘고문실’로 불리는 덴마크 뱅앤드올룹슨사의 품질 테스트실. 사진 제공 뱅앤드올룹슨
‘고문실’로 불리는 덴마크 뱅앤드올룹슨사의 품질 테스트실. 사진 제공 뱅앤드올룹슨
기업 ‘네이밍’ 선점 경쟁

시인 김춘수는 ‘이름’을 불러 주면 ‘꽃’이 되고 ‘잊혀지지 않는 의미’도 된다고 했다.

전자 정보기술(IT) 업계에서도 이름은 중요하다. 톡톡 튀는 부서 명칭이나 제품 이름 하나하나에 회사 나름의 철학과 갖가지 사연이 담겨 있다.

○ 기업 철학이 함축된 네이밍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97년 동아일보사에서 발간한 자신의 에세이집에서 이름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삼성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하청업체’가 아닌 ‘협력업체’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조직 내에 널리 인식시키려는 의도에서였다.”

삼성전자는 올해 2월 이들 협력업체를 ‘파트너’로 격상시켰다. 매년 열리는 협력업체 초청 행사의 명칭을 기존 ‘서플라이어스 데이(Supplier's Day)’에서 ‘파트너스 데이(Partner's Day)로 바꾼 것.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양측이 진정한 상생의 파트너로 초일류의 길을 함께 개척해 나가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모토로라는 마케팅팀과 디자인팀 이름 앞에 ‘소비자 체험(Consumer Experience)’이라는 표현을 꼭 붙인다. 마케터나 디자이너의 생각보다 고객의 체험과 의견을 우선순위에 놓아야 한다는 회사의 철학이 담겨 있다.

덴마크에 본사를 둔 홈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뱅앤드올룹슨’은 제품 개발 회의실을 ‘아이디어 랜드’라고 이름 붙였다. 품질 테스트실의 공식 명칭은 ‘고문실(The Torture Chamber)’. 최고의 품질을 위해 제품을 고문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 실제로 리모컨 같은 제품에 음료수나 뜨거운 물을 붓는 ‘물고문’이 수시로 이뤄진다.

전자부품회사인 삼성전기의 인재개발센터 직원들은 ‘상상지기’라고 불린다. 창조적 사고를 강조하기 위한 것. 이 센터의 세미나실은 ‘상상플러스’, 영화감상실은 ‘상상발전소’란 문패가 걸려 있다.

소니코리아는 최근 영업팀 이름을 ‘(소비자)요구창출팀(Demand Creation Team)’으로 바꿨다. 이에 맞춰 서울 시내 롯데백화점 8곳의 소니 대리점을 본사 직영점으로 바꿨다. 소비자의 요구를 직접 파악하고 새로운 제품 수요를 이끌어 내겠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 “네 이름을 불러 주니 대박 상품이 되었다”

LG전자 ‘초콜릿폰’의 개발 초기 이름은 ‘슈퍼 슬림 슬라이드폰’이었다. 초콜릿은 ‘싸구려 같다’는 이유로 내부 반발이 컸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작명(作名)의 산고 끝에 세상에 나온 초콜릿폰은 1000만 대 넘게 팔리는 ‘텐밀리언 셀러’가 됐다.

린나이코리아의 히트 상품인 음식물처리기 ‘비움(VIUUM)’도 ‘제로클(Zero+Clear)’이란 이름과 끝까지 경합하다 시장에 나왔다.

쿠쿠홈시스의 ‘쿠쿠(CUCKOO)’ 밥솥은 요리(Cook)와 뻐꾸기시계 소리를 합성한 것. 쿠쿠홈시스 관계자는 “요리(음식)에 대한 기대와 정확한 시간에 밥이 된다는 의미가 함축된 것”이라며 “밥솥이 총 1300만 대 이상 팔리는 데는 ‘쿠쿠’란 이름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말했다.

기업의 철학이 담긴 이름 사례
삼성전자-파트너스 데이(Partner’s Day): 협력업체 초청 행사 명칭. 예전 이름은 ‘서플라이어스 데이(Supplier’s Day)’. ‘진정한 상생 파트너가 되자’는 의미.
삼성전기-상상지기(인재개발센터 임직원) 상상플러스(세미나실) 상상발전소(영화감상실): 창조적 사고를 강조하기 위한 표현.
모토로라-소비자 체험 마케팅팀, 소비자 체험 디자인팀: 마케터나 디자이너의 생각보다 고객의 체험과 의견을 우선시한다는 뜻.
뱅앤드
올룹슨
-아이디어 랜드(제품 개발 회의실) 고문실(품질 테스트실) 황금의 귀(전문 음질 감정단): 고문실은 최고의 품질을 위해 제품을 고문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
소니
코리아
-Demand Creation Team(소비자요구창출팀): 최근 바뀐 영업팀의 새 명칭. 소비자의 요구를 직접 파악해 새로운 수요를 이끌어 내겠다는 전략을 반영함.
자료: 각 회사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