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비담은 왜 돌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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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9일 16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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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방영된 MBC드라마 \'선덕여왕\' 51회에서 선덕여왕이 신라 제 27대왕으로 즉위식을 가졌다. 여왕을 사이에 두고 유신(엄태웅)과 비담(김남길)이 나란히 서 있다. 출처 : MBC ‘선덕여왕’
16일 방영된 MBC드라마 \'선덕여왕\' 51회에서 선덕여왕이 신라 제 27대왕으로 즉위식을 가졌다. 여왕을 사이에 두고 유신(엄태웅)과 비담(김남길)이 나란히 서 있다. 출처 : MBC ‘선덕여왕’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담(김남길 분)이 왕위를 향한 야망의 발톱을 드러내며 미실(고현정)의 죽음 이후 새로운 갈등의 축으로 '급하게' 부상했다. 마지막 방영분까지 10회 밖에 남겨두지 않아 급할 법도 하다. 하지만 요 며칠간 어머니 미실이 죽고 조용하던 비담이 느닷없이 악당으로 돌변하자 당황하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다.

비담은 원래 선덕여왕(이요원) 치세 말기에 최고위 관직인 상대등에 오른 뒤 다른 귀족들을 이끌고 크게 난을 일으킨 인물이다. 반란의 와중에 선덕여왕이 죽고 진덕여왕이 즉위했으며 김춘추(유승호)와 김유신(엄태웅)은 난을 평정한 공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역사적 결말은 이렇게 정해져 있지만 드라마에서 비담은 선덕여왕이 덕만공주이던 시절부터 목숨을 걸고 그녀를 지켜온 충성스러운 인물로 나온다. 그래서 그의 마음이 어떤 단계를 밟아가며 어둡게 변해갈지가 애초부터 관심사였다.

비담의 변신은 51회(16일 방송)에서 '초특급 속성'으로 이뤄졌다. 방송 말미에 미실 일파의 반란을 모두 제압한 덕만이 아버지 진평왕(조민기)의 뒤를 이어 신라 27대 왕이자 최초의 여왕으로 즉위하자, '폐하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빼앗겠다'며 '비담의 난'을 암시한 것. '아낌없이 모든 것을 드리겠다'는 유신의 독백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날 방송 전반부만 해도 덕만과 비담은 군신 관계를 넘어선 훈훈한 모습을 보였다. 그간 비담이 혼자 연모해오던 덕만공주 마마가 그의 마음을 알고 친히 어깨를 감싸 안아주기까지 한 것. 지금까지 덕만공주 품에 안겨본 사람은 언니 천명공주가 남긴 조카 춘추뿐이다.

미실은 비담에게 “사람을 죽이고 웃음이 나더라도 입꼬리만 살짝 올려라. 그래야 더 강인해 보인다”고 조언한다. 비록 “내가 네 어미다”라고 거창하게 말하지는 않지만, 이런 소소한 미실과의 추억은 비담을 '다스베이담(다스베이더+비담)'으로 만든 것일 수도… 출처 : MBC ‘선덕여왕'’
미실은 비담에게 “사람을 죽이고 웃음이 나더라도 입꼬리만 살짝 올려라. 그래야 더 강인해 보인다”고 조언한다. 비록 “내가 네 어미다”라고 거창하게 말하지는 않지만, 이런 소소한 미실과의 추억은 비담을 '다스베이담(다스베이더+비담)'으로 만든 것일 수도… 출처 : MBC ‘선덕여왕'’


덕만은 미실의 임종 순간을 지킨 비담에게 "무슨 관계냐"며 멱살잡이까지 하며 집요하게 캐물었고, 마침내 비담은 눈물을 흘리며 "내가 필요 없어지자 버린 엄마" 라고 진실을 털어놨다. 똑같이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상처가 있는 덕만은 비담에게 동정과 연민을 느끼며 "많이 힘들었을 것인데…"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함께 울었다.

덕만은 또한 비담이 정변을 일으킨 어머니 미실을 찾아가 '미실을 죽이라'는 내용이 담긴 진흥왕의 칙서를 세상에 공개하겠다고 위협해 결국 항복을 이끌어 낸 것을 알고 감동해 비담을 요직에 등용했다. 국왕 직속으로 사량부(감찰부서)를 신설해 비담을 수장으로 임명하고 미실파를 통솔토록 한 것.

'일편단심 민들레' 비담이 '참 좋으신' 여왕님을 배신하게 된 계기는 설원공(전노민)으로부터 전해들은 뜻밖의 이야기였다. 미실이 자신의 대의를 이을 자로 비담을 택했고, 비담을 왕으로 만들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 진흥제의 칙서를 태우지 않은 것도 정변이 실패할 경우 비담에게 칙서를 주어 공을 세우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시간 관계상 '30초' 동안 짧고 굵게 고뇌하던 비담은 '사랑이란 아낌없이 빼앗는 것이다. 덕만을 사랑하거든 그리해야 한다'는 미실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며 모종의 결심을 한다. 대본에선 미실과의 짧은 추억을 떠올리며 수차례 고민하지만 실제 방영분에선 편집됐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사랑을 위해 혈육에게까지 등을 돌렸던 비담이 갑자기 어머니의 대의를 이어간다는 전개가 다소 억지스러웠다는 평이 많았다. 그동안 애태우며 멀리서 바라만 보던 지존이 이제는 손수 챙겨주는데, 뭔가 가능성(?)이 보이는 데, 애가 왜 이렇게 엇나가는 것이냐며 안타깝다는 반응들이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드라마의 개연성을 누더기처럼 기웠다' '갑툭(갑자기 툭 튀어나온) 비담' '널뛰기 전개다' 등의 비판들도 올라와 있다.

상당수 드라마 골수팬들은 비담의 감정선을 이해하기 위해 대본을 사서 자습에 돌입, 심화 학습의 결과물을 게시판에 쓰고 있다. 분석이 깊이나 양의 면에서 거의 '논문' 수준에 가깝다. 방송 직후부터 디시인사이드와 드라마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수 천 건의 글이 올라와 '갑툭 비담'을 이해하려는 토론이 한창이다.

특히 '아낌없이 빼앗는다'는 말의 의미를 두고 말은 말이 오가고 있다. 팬들이 추리 분석한 몇 가지 재미난 해석을 소개하면 이렇다.

미실은 죽기 직전 비담에게 “사랑이란 아낌없이 빼앗는 것이다. 덕만을 사랑하거든 그리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설원의 안내로 미실의 방에 당도한 덕만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비담과 의자에 꼿꼿이 앉아 눈을 감고 있는 미실의
모습을 발견한다. 출처 : MBC ‘선덕여왕’
미실은 죽기 직전 비담에게 “사랑이란 아낌없이 빼앗는 것이다. 덕만을 사랑하거든 그리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설원의 안내로 미실의 방에 당도한 덕만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비담과 의자에 꼿꼿이 앉아 눈을 감고 있는 미실의 모습을 발견한다. 출처 : MBC ‘선덕여왕’


버려지지 않기 위해서 강해진다.

비담은 항상 누군가에게 부정당하고 버림받는 운명이었다. 부모에게는 방해가 되는 과거사였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스승 문노는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자신을 나무라는 스승에게 비담이 했던 말도 "한 번쯤 따뜻하게 안아주실 수도 있었잖아요"였다.

비담은 죽음에 이르러서도 어미는 자신을 인정하진 않았다고 믿었다. 덕만에게도 내침을 당할까 두려워했지만 공주는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줬다. 생전 처음 자신을 받아준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덕만에 대한 집착이 생겨난 것이다.

이제 비담은 덕만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더 강해지려고 하는 것이다. 덕만이 왕이 된 이상 덕만보다 더 힘이 있는 자로 성장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덕만의 세상을 깨서 덕만이 자기만을 보도록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은 본래 받아 본 자들만이 베풀 수 있는 법인데, 안타깝게도 그는 베푸는 사랑을 배울 기회조차 없었다. 가지지 못하면 빼앗아야 하는 것이 그가 생존하며 몸소 터득한 사랑법이다.

덕만도 왕좌도 '내 것'

'아낌없이 모든 것을 빼앗겠다'는 남자의 대사는 사랑하는 여자를 내 것으로 하겠다는 뜻이다. 비담은 원래 욕망에 충실한 인물이다. 또 자신이 먹던 닭고기를 밟았다고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내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문노의 죽음으로 잠시 욕망을 자제했지만 미실의 죽음으로 그 봉인이 해제됐다.

덕만을 연모하는 마음이 커갈수록 타인에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마음 역시 커질 것이다. 덕만이 곧 신국이라는 비담의 말을 떠올려 보면 덕만을 독점한다는 것은 곧 신라를 내 것으로 만든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덕만이 신국이고, 삼한일통이고, 그의 꿈이 된 것이다. 또한 왕좌도 부친 진지왕이 미실을 왕후로 삼았다면 자신에게 돌아왔을 것이다. 비담이 난을 일으키는 이유도 왕위 찬탈 보다는 원래 '내 것'을 되찾는다는 판단 때문일 수도 있다.

화랑의 우두머리를 뽑는 풍월주 비재 결승에서 맞붙은 비담과 유신. 비담은 스승 몰래 익힌 비장의 무술을 선보이며 비재 결승에
올라 유신과 맞붙게 됐으나, 유신이 풍월주가 되길 바라는 덕만을 위해 일부러 져준다. 하지만 승부조작은 금새 들통나게 된다.
출처 : MBC ‘선덕여왕’
화랑의 우두머리를 뽑는 풍월주 비재 결승에서 맞붙은 비담과 유신. 비담은 스승 몰래 익힌 비장의 무술을 선보이며 비재 결승에 올라 유신과 맞붙게 됐으나, 유신이 풍월주가 되길 바라는 덕만을 위해 일부러 져준다. 하지만 승부조작은 금새 들통나게 된다. 출처 : MBC ‘선덕여왕’


비담은 원래 예측불허다.

다중인격으로 불릴 정도로 비담의 행동은 극단적이다. 또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감정의 기복도 심한 편이다. 캐릭터가 널뛴다기보다는 비담이 원래 그런 인간일 뿐이다. 이런 비담을 덕만이 안고 간다는 것은 그녀로서도 보통 일이 아니다.

현재 비담의 칼은 유신을 겨누고 있다. 시간은 초스피드로 흘러 52회(17일 방송)에선 선덕여왕 즉위로부터 가뿐히 10년을 건너뛰었고 유신은 상장군이 돼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의 일곱 성을 쳐서 크게 이기고 돌아왔다.

아마도 이때는 642년 가을~겨울 즈음인 듯하다. 당시 백제의 윤충에게 대야성 등 40개성을 빼앗긴 신라는 보복을 하고자 백제의 7성을 공략했었다.

비담은 복야회(가야 부흥 운동)를 소탕한다는 명목 하에 유신을 제거하려 들고 있다. 비담이 수장으로 있는 사량부는 검찰중수부, 국정원, 감사원 등을 합친 모습으로 나오는데 비담은 여왕의 적을 소탕한다는 명목 하에 슬쩍 정적을 치려는 것으로 보인다.

비담의 라이벌은 유신과 춘추다. 황실의 좁은 혼맥 상 비담은 선덕여왕의 오촌 당숙이고, 유신은 고종 사촌동생, 춘추는 조카다. 왕의 신임도 그렇고 후계문제를 생각해도 비담에겐 걸림돌이다. 다음 화살은 춘추에게 돌아갈 것이 뻔하다.

앞으로 남은 10회 동안 박상연 작가의 말처럼 '천년의 이름과 신국, 덕만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역사 속에 무명인 채, 난의 주모자로만 남아야 하는 비담이 사랑받고 사랑을 잃고, 권력을 얻고, 권력을 잃고, 사람을 얻고, 사람을 잃고, 무너지고 깨져 산화하는 모습'을 얼마나 밀도 있게 그려낼지 궁금하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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