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일제가 만든 중국의 꽃… 말년엔 모국 일본서 정치인으로 산 ‘야래향’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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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turday Music Salon- 중국인 사로잡은 가짜 중국 여가수 리샹란

일본 제국주의는 일본 여인 야마구치 요시코를 완벽한 중국인 리샹란으로 둔갑시켰다. 자서전 표지에 나온 그의 사진.
일본 제국주의는 일본 여인 야마구치 요시코를 완벽한 중국인 리샹란으로 둔갑시켰다. 자서전 표지에 나온 그의 사진.
달 아래 꽃들은 모두 꿈에 빠져 있는데(月下的花都入夢)
야래향만 홀로(只有那夜來香)
향기를 퍼뜨리고 있네(吐露着芬芳)

영화 ‘댄서의 순정’(2005년)에서 옌볜 처녀로 분한 배우 문근영(극중 장채린)은 순정을 품은 박건형(극중 나영새) 앞에서 간드러지게 중국 노래를 부른다. 타국어로 된 낯선 가사는 알아듣기 힘들지만 그 멜로디만큼은 ‘아리랑’만큼이나 익숙하게 귀에 들어온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 노래 이름은 ‘야래향(夜來香·예라이샹)’, ‘밤에 오는 향기’라는 뜻으로 꽃 이름이기도 하다. 야래향은 햇빛이 비칠 때면 꽃잎을 한껏 오므려 봉우리를 만들었다가 밤이 되면 제 몸을 활짝 펼쳐 진하면서도 그윽한 향기를 가득 뿜어낸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노래를 대만이 낳은 세계적 가수, 덩리쥔(鄧麗君·1953∼1995)이 부른 것으로 알지만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야마구치 요시코(山口淑子)라는 이름도, 자신이 일본인이라는 사실도 모두 숨겨야 했던, 일본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완벽한 가짜 중국인. 식민 지배의 피해자들 앞에서 철저히 중국인 행세를 하며 그들의 마음을 훔치고 선동하는 운명을 짊어져야 했던 여인 리샹란(李香蘭·1920∼)이다.

○ 만주가 낳은 일본인

태어난 곳이 만주가 아니었더라면 운명이 달라졌을까. 1920년. 야마구치는 일본이 노리던 이권의 땅이었던 만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러일전쟁(1904∼1905)이 끝난 뒤 중국으로 이주해 만주에 정착한 친중파였다. 아버지의 친구인 중국인 퇴역장군 리지춘은 친구의 딸 야마구치를 양녀로 삼았고, 자신의 필명이었던 샹란(香蘭)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1933년, 13세가 된 야마구치는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이탈리아 성악가에게서 노래를 배웠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실력이 크게 늘자 스승은 그에게 기모노를 입혀 독일 가곡과 러시아 민요를 부르게 했다.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어린 소녀의 놀라운 모습은 펑톈(奉天)라디오방송국 간부의 눈에도 쉽게 띄었다. 이 방송국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뒤 다음 해 만주국을 세운 일본이 장악하고 있었다.

방송국 전속 가수가 된 소녀는 그해 ‘만주신가곡(滿洲新歌曲)’이라는 노래로 전격 데뷔했다. 일본 제국주의를 선전하기 위해 만주국이 만든 국책 가요였다.

○ 일본인을 사랑한 가짜 중국인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났다. 일본군의 괴뢰정부였던 만주국은 일본의 중국 침략을 정당화하고 일본 제국주의 식민정책을 미화하기 위해 영화를 선전 도구로 이용하기로 했다. 곧 만주영화협회(만영)가 설립됐다.

만영의 눈에 띈 것은 다시 야마구치 요시코, 즉 리샹란. 일본어와 중국어를 모두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그는 조국 일본을 가장 잘 이해하고 대변하면서도 중국인으로 완벽하게 둔갑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영화 속에서 일본을 찬양하는 중국인 여성 역할을 하기에, 그리고 중국인들이 그를 실제로 중국인이라 믿게 하기에 완벽한 조건이었다.

리샹란은 1939년부터 일본이 패망한 1945년까지 ‘백란의 노래’, ‘지나의 밤’, ‘열사의 맹세’ 등 수많은 영화에 등장했다. 이들 영화는 조선, 대만 등 일제 치하에 있던 다른 나라에서도 개봉됐다. 그는 영화 주제곡을 직접 불렀고, 그 와중에 ‘야래향’ ‘소주야곡(蘇州夜曲)’ ‘하일군재래(何日君再來)’ 등 중국 대중 가요사에 길이 남을 명곡이 탄생했다.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제목만 다를 뿐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중국 소녀가 중국에 온 일본인 남성과 항일 감정을 초월한 사랑에 빠지거나 중국 여성이 항일 운동을 하다 전향해 일본인이 되는 꿈을 꾼다는 내용 등이었다. 중국인들은 그를 최악의 매국노라 여겼다. 당시 그는 중국인들에게 “왜 중국인이면서 중국인을 모욕하는 영화에 출연하느냐”라며 규탄받으면서도 일본인임을 밝힐 수 없어 “용서해 달라”며 고개 숙여 사과만 해야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당시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피해 국가에서는 중국인인 줄만 알았던 리샹란에게서 ‘식민지 2등 국민’으로서의 동병상련을 느끼고 영화에 동화돼 “리샹란은 내가 잃어버린 누이”라거나 “그는 내 혈육”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 리샹란이었던 삶…부끄럽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중국 정부는 매국 행위를 한 그를 상하이에서 체포해 기소했다. 일본 선전 영화 속 그의 중국인 연기는 완벽했고 중국인으로 둔갑한 실제 삶 역시 빈틈이 없었기에 그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는 수개월이 걸렸다. 가까스로 야마구치의 호적등본을 찾아내 총살은 피했지만 국외 추방 명령을 받았다.

일본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1946년 2월 상하이에서 일본으로 떠나는 여객선 안. 그녀를 발견한 승객이 “중국인 매국노가 도망간다”고 소리쳤다. 재판 결과를 이야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시 수감된 야마구치는 10여 일이 지나서야 일본으로 떠날 수 있었다. 또다시 수감될까 두려워 화장실에 숨어 있다 배가 출발한 뒤 겨우 화장실 밖으로 나오자 우연인지 필연인지 배에서 야래향이 울려 퍼졌다.

귀국 후 그는 일본 영화계에서 본명으로 활동하다 미국과 홍콩으로 활동 무대를 넓혔다. 1969년 연예계를 은퇴한 뒤인 1974년에는 자민당 참의원에 당선돼 1992년까지 정계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두 권의 자서전과 인터뷰를 통해 “리샹란으로 출연했던 영화를 다시 보니 정말 부끄럽다”며 끊임없이 자신의 과거 행각을 반성했다. 그 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내적 갈등과 양심의 가책에 대해서도 솔직히 털어놨다.

야마구치 요시코와 리샹란 사이에서 시대의 모순을 고스란히 겪어야 했던 그는 이제 90세가 넘는 노인이 됐다. 하지만 밤이 돼서야 제 향기를 뿜어내는 야래향처럼 더욱 빛난다. 잘못을 정당화하려 하지 않고 수십 년간 진심으로 참회하며 살았기에 인생의 밤에 더 진하고 그윽한 향기를 낼 수 있는 건 아닐까.

(참고서적=재일조선인 1세가 겪은 20세기-조선사람, 백종원 지음, 만주영화협회와 조선영화, 김려실 지음)

※취재에 도움을 준 2012년 동계 대학생 인턴기자 한재희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리샹란#야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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