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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길거리 패션의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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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길거리 패션의 경쟁력

고미석 논설위원 입력 2019-06-18 03:00수정 2019-06-1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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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명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프는 지난해 서울 동묘 앞 시장을 찾았을 때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지를 끌어올려 입은 ‘배바지’에 전대를 찬 아저씨, 오렌지색 티셔츠에 연두색 점퍼를 걸친 어르신, 줄무늬 상의와 체크 바지를 조합한 할아버지 등. 혁신적 ‘코디’를 당당하게 소화한 ‘코리안 아재들’의 거침없는 파격에 완전히 반한 것이다. 기존의 패션 공식을 무너뜨린 ‘아재 패션’이 눈 밝은 디자이너 덕에 재발견된 순간이었다.

▷거리를 활보하는 어르신들의 독창적이고 무규칙한(?) 옷차림에 감명받은 코스타디노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동묘시장을 “세계 최고의 거리”라고 격찬하며 이런 평가를 남겼다. ‘스포티함과 캐주얼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감한 믹스매치 정신’이라고. 말하자면 ‘지금까지 이런 남성 패션은 없었다’는 찬사의 표현이지 싶다. 이후 그는 거리 패션의 통념 거부, 반전 매력을 소재로 신작 컬렉션도 발표했다. ‘촌스럽다’고 흉본 아재 패션의 대담함과 다양성이 첨단 감각의 패션 코드로 인증받은 결과다. 우리가 가진 것의 가치를 밖에서 인정받기 전에는 몰라보는 또 하나의 사례로 추가될지도 모르겠다.

▷세계가 주시하는 거리 패션은 중장년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지방시의 총괄 디자이너 클레어 웨이트 켈러가 선보인 ‘2020 봄여름 남성복 쇼’의 영감은 한국 청년들 옷차림에서 시작됐다. 타임지의 ‘2019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에 뽑힌 켈러는 디자인팀을 보내 젊은이들 옷차림을 분석하고 컬렉션에 녹여냈다. 외국 디자이너들이 거리 패션을 보기 위해 서울을 찾는 일이 드물지 않다. 우리 젊은이들이 최신 트렌드 수용에 민감한 동시에 이를 발 빠르게 재해석하는 데도 탁월하다는 점이 알려진 결과다.

▷고개 뻣뻣하기로 소문난 명품 브랜드가 ‘접속’을 시도할 만큼 길거리 패션은 21세기 패션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그 배경으로 1980년대부터 2000년대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이 거론된다. 미국 컨설팅 기업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2025년이면 이 세대가 세계의 명품시장 고객의 45%를 차지하게 된다. 이들과 소통하려면 참신한 접근 방법이 필요한데 그 과정에서 한국 길거리 패션이 주목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 경쟁력으로 획일적 유행을 좇기보다 뚜렷한 주관으로 나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능력이 꼽힌다. ‘남혐’이란 말이 나도는 요즘, U-20 월드컵 준우승과 더불어 한국 남성의 길거리 패션을 세계가 주목한다니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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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 코스타디노프#동묘#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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