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층 배달기사 “빚 갚으려 시작…열심히 일했는데 논란돼 속상”

  • 동아닷컴
  • 입력 2022년 11월 19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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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에서 한 배달노동자가 배달업무를 하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뉴스1
서울 시내에서 한 배달노동자가 배달업무를 하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뉴스1
엘리베이터가 고장난 아파트 29층까지 걸어서 배달했다가 손님의 취소 요청에 회수하는 등 이른바 ‘갑질’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배달기사가 직접 말문을 열었다.

18일 배달기사 A 씨는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 장문의 글을 올려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A 씨는 “당일 음식을 픽업하고 배달지에 도착했다”며 “1층에서 들어가지 못한 채로 호출을 눌렀으나 응답이 없어 손님 B 씨에게 바로 전화했는데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에 저희(배달업체) 측 관리자에게 해당 사항을 보고한 뒤 옆 단지에 배달하러 다녀왔다”고 했다.

A 씨는 옆 단지 배달을 다녀온 뒤 한 입주민의 뒤를 따라 B 씨가 거주하는 아파트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후 엘리베이터가 고장난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B 씨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아 찜닭집 사장 C 씨에게 전화했다. C 씨는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마냥 전화를 기다릴 수 없었던 A 씨는 배달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A 씨는 “사실 너무 힘들었지만, 제 상황에서 B 씨에게 음식을 가져다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돼 계단을 올라갔다”고 했다.

계단을 오르던 도중 A 씨는 관리자에게 “손님이 계단으로 올라오라고 했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고 한다. 이에 그는 “올라가고 있다”고 말한 뒤 통화를 종료했다.

결국 A 씨는 29층 계단을 모두 올라 배달을 완료했다. 그는 걸어 내려오던 중 14층에서 B 씨로부터 “(배달 음식을) 취소했으니 가져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A 씨가 “네? 지금 내려가고 있는데…”라고 말하자 돌아온 답은 “취소했으니 다시 가져가라”였다고 한다. 이에 A 씨는 다시 29층으로 걸어 올라가 음식을 수거한 뒤 식당에 전달했다.

A 씨는 “여기까지가 그날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적은 내용”이라며 “B 씨가 어떤 사유로 음식을 취소했는지, C 씨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어 “전 그저 제가 픽업한 음식을 배달했고, 취소된 음식을 가게에 다시 가져다줬을 뿐”이라며 “책임감 갖고 열심히 일하려던 게 저까지 논란의 중심이 돼서 너무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이번 일이 알려지면서 A 씨의 본업에도 문제가 생겼다. A 씨는 “본업은 따로 있고, 제 개인적인 대출 빚을 갚기 위해 배달을 시작한 지 일주일 된 신입 기사”라며 “본업은 겸직이 안 돼 회사에서 징계를 기다리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B 씨 아파트 앞에서 진행된 라이더들의 시위에 대해선 “제가 소집한 적 없다. 이 일과 관련해 라이더 협회 측에 요청을 드린 적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해당 사건은 지난 14일 JTBC ‘사건반장’을 통해 알려졌다. 이후 B 씨는 지역 카페에 글을 올려 당시 엘리베이터가 고장난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C 씨와 통화하니 제가 전화를 받지 않아 음식이 식당으로 되돌아간 상태라고 했다. 아이들 먹일 음식인데 식고 불었을까 봐 취소를 요청했다”며 “이후 C 씨가 갑자기 말을 바꿔 배달기사가 옆 동에 배달을 간 상태라며 29층까지 배달할 테니 취소는 못해준다고 언성을 높였다”고 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C 씨는 커뮤니티를 통해 “사건 자체를 제보해 이슈가 되게 만든 건 제가 맞지만 이렇게 (B 씨의)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진 않았다”며 “B 씨와 저는 원만하게 화해했고 배달기사와도 좋게 이야기가 오고 갔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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