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면 안된다’ 설악산 실종 70대 사흘간 어떻게 버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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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10월 16일 17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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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터리 아끼며 영하권 강추위에 밤새
통신 신호 잡히자 119에 구조 문자

산악구조 대원들이 15일 오후 10시경 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에서 A 씨(77·남)를 구조해 이송하고 있다. (사진=강원도소방본부 제공)
산악구조 대원들이 15일 오후 10시경 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에서 A 씨(77·남)를 구조해 이송하고 있다. (사진=강원도소방본부 제공)
홀로 설악산 산행에 나섰다가 실종 사흘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70대 남성 A 씨는 체온 유지를 위해 깊은 잠을 자지 않고 챙겨온 도시락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버틴 것으로 파악됐다.

강원 소방당국은 지난 13일 새벽 설악산 산행에 나섰다가 길을 잃은 A 씨(77·서울)를 실종 3일만인 15일 찾아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A 씨는 13일 새벽 시외버스를 타고 홀로 설악산을 찾았다. 장수대를 시작으로 귀때기청봉을 넘어 한계령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했다. 건장한 성인 남성도 당일 산행으로 소화하기 쉽지 않은 코스였다.

결국 일몰 전 하산하지 못한 A 씨는 산에서 길을 잃은 채 헤맸고, 가족들은 A 씨가 돌아오지 않자 같은 날 저녁 9시경 실종신고를 했다.

이튿날 소방당국은 특수구조단 산악구조대원과 소방헬기 등을 현장에 투입해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찾지 못했다.

수색에 어려움을 겪던 중, 3일째인 15일 오후 5시 24분경 ‘현재 계곡에서 탈진상태로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도와주세요’라는 구조요청 문자가 119에 접수됐다.

산속에서 밤낮으로 헤맨 A 씨가 사흘째 간신히 통신 신호가 잡히는 곳에서 문자를 보낸 것이다.

119구조대와 설악산국립공원 구조대, 경찰 등 약 70명은 기지국 신호를 바탕으로 수색을 벌인 끝에 4시간여 만(15일 9시 48분경)에 귀때기청봉 인근에서 A 씨를 찾아냈다.

발견 당시 A 씨는 심한 탈진 증세를 보였으나 다친 곳은 없었다. 부축을 받아 스스로 내려올 정도로 비교적 건강이 양호한 상태였다.

평소 산행 경험이 많았던 A 씨는 넥워머와 패딩, 모자, 헤드랜턴, 보조배터리 등 각종 등산 장비를 꼼꼼히 챙기고, 생존 수칙을 지킨 덕에 최저기온 1~2도의 추운 날씨 속에서도 사흘이나 버틸 수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A 씨는 비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각종 등산 장비를 잘 챙겼고, 복장도 제대로 갖춰 입은 상태였다”며 “휴대전화 예비 배터리도 충분히 가지고 있었고, 등산용 랜턴 등 생존 도구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통신 신호가 잡히지 않으면 전원을 꺼 배터리를 아끼고, 보조배터리도 사용을 최대한 자제했다. 체온이 떨어질 것을 염려해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쉼 없이 움직였다.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 재난안전과 관계자는 “연세는 많으셨으나 평소에 자기관리를 열심히 하신 것 같다. 체력도 좋고, 정신력도 좋으셨다. 헤드랜턴과 보조배터리를 소지하고 계셨던 게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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