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 지우고 한옥과 어우러진 ‘열린 성당’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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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미사 열린 서울 북촌마을 가회동성당

서울 북촌 한옥마을 대로변에 새로 지은 가회동성당. 자그마한 주변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건물을 세 덩어리로 나누어 한옥은 가로변에, 덩치 큰 양옥 두 채는 뒤쪽에 감추듯 배치했다. 밖에서는 사제관 건물 꼭대기에 세워둔 십자가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종교색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 됐다. 한옥과 양옥이 이미지상 충돌하지 않도록 성전이 있는 건물의 외부를 화강암과 함께 붉은 고동색 나무로 마감했다. 윤준환 사진작가 제공
서울 북촌 한옥마을 대로변에 새로 지은 가회동성당. 자그마한 주변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건물을 세 덩어리로 나누어 한옥은 가로변에, 덩치 큰 양옥 두 채는 뒤쪽에 감추듯 배치했다. 밖에서는 사제관 건물 꼭대기에 세워둔 십자가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종교색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 됐다. 한옥과 양옥이 이미지상 충돌하지 않도록 성전이 있는 건물의 외부를 화강암과 함께 붉은 고동색 나무로 마감했다. 윤준환 사진작가 제공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에서 가회동성당을 찾기란 쉽지 않다. 지난해 11월 완공된 가회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의 첫 미사(1795년 4월 5일)가 열린 북촌을 관할하는 성당으로 서울 천주교 순례길 제2코스의 시작점이다. 20일 부활절에는 염수정 추기경이 명동성당이 아닌 이곳에서 예수부활대축일 미사와 성당 봉헌식을 집전했다. 하지만 가회동성당은 종교적 역사적 의미를 물리적 존재감으로 과시하는 대신 북촌 특유의 풍광에 녹아드는 선택을 했다.

건축사사무소 오퍼스의 김형종 조성기 우대성 공동대표(왼쪽부터).
건축사사무소 오퍼스의 김형종 조성기 우대성 공동대표(왼쪽부터).
“종교 건축이어도 동네와 어울려야죠. 새것처럼 반짝이기보다 오래전부터 이곳에 있었던 듯 북촌을 닮은, 그리고 개발붐으로 사라져가는 옛 한옥과 골목길의 정겨움을 살리는 성당을 짓고 싶었습니다.”(우대성 건축사사무소 오퍼스 공동대표)

원래 성당은 강모래에 시멘트를 섞어 지은 고딕 양식의 낡은 건물이었다. “진동 때문에 건물이 무너질까 봐 종을 못 친다” “미사 드리다 순교하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붕괴 위험이 컸다. 그래서 건축가 출신인 송차선 신부가 2010년 2월 가회동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해 재건축을 주도했다.

송 신부는 설계 공모를 하면서 ‘단아하게 한복 입은 선비와 벽안의 외국인 사제가 어깨동무 하는 형상’을 콘셉트로 제시했다. 북촌에선 가장 넓은 4차로 도로변에 있는 가회동성당은 반드시 한옥을 지어야 하는 자리는 아니다. 하지만 송 신부도 건축가도 점차 사라져가는 큰길가의 한옥을 살려내는 데 동의했다. 그래서 도로 쪽엔 나지막한 한옥을 배치하고 그 뒤로 덩치 큰 성전과 사제관 양옥을 숨겨두었다.

가회동성당은 크고 작은 마당 5개를 중심으로 건물이 배치돼 있는데 이것도 한옥마을의 특징을 반영한 것이다. 성당은 총면적이 3738.34m²(약 1130평)인 대형 건물이다. 건축가는 올망졸망한 주변 건물들과 어울리도록 성당을 세 덩어리로 나누고, 차진 암반을 깨고 건물의 상당 부분을 지하로 묻었다. 그래서 지하 3층, 지상 3층이 됐다.

가회동성당은 성당 같지 않다. 옛 성당 건물에 있던 십자가도 길가에서 한참 들여다 지은 사제관의 꼭대기에 자그마하게 세워두었다. 종교색을 지우고 문턱을 낮춰놓은 성당에는 관광명소인 북촌이 그러하듯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한옥 앞의 널찍한 앞마당과 성큰가든 형식의 지하마당, 한옥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하늘마당이 모두 개방돼 있다. 한옥은 사랑방으로 내놓았고, 성당을 들어서자마자 돌담으로 가려놓은 화장실도 누구든 쓸 수 있다.

“북촌은 평일에도 관광객이 가득하지만 카페나 상점을 제외하고는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공중화장실도 부족하고요. 성당은 공공의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관리의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우 대표)

미사를 올리는 성전은 번잡한 마당을 지나 계단을 오른 뒤 뒤를 돌아 문을 열어야 나온다. 조용한 기도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성전 입구를 건물 뒤로 돌려놓았다. 300석 규모의 성전은 종교적 깨우침으로 무릎을 꿇리는 대신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공간이다. 국내 성당에선 보기 힘든, 연주할수록 소리가 좋아지는 기계식 파이프오르간이 놓여 있다.

“음악 하는 분들이 음악회 장소로 쓰실 수 있어요. 성당의 모든 시설을 종교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내어드릴 겁니다. 예수님은 목숨도 내놓으셨잖아요.”(송 신부)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북촌#가회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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