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결혼[횡설수설/이태훈]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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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객석 사이로 꽃길을 따라 신랑신부가 입장한다. 카메라가 뒤따르며 촬영한다. 신랑신부가 맞절을 하고 결혼반지를 끼워주는 모습이 유튜브로 생중계되고, 양가 부모님과 지인들은 각자의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지켜보면서 축하인사를 전한다….’ 최근 한 신혼부부가 유튜브로 결혼식을 진행한 모습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축가도 부르고 신랑신부는 지인들의 영상을 모은 대형 스크린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결혼식을 미루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지만 대면접촉을 최소화한 결혼식으로 백년가약을 맺는 신혼부부들도 있다. 전염 위험을 무릅쓰고 결혼식에 와야 하는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가까운 가족·친지들만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 조촐하게 치러도 비용은 여전히 든다. 음식을 먹을 일반 하객이 없어도 이미 오래전에 해놓은 결혼식장 예약 때 주문한 200∼300인분의 식사비를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밥값이 결혼식장 대관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용 구조 때문에 하객이 있건 없건 혼주가 예약한 음식값을 무조건 내는 식이다. 결혼식 연기에 따른 위약금 분쟁이 급증했다. 축의금은 온라인 송금으로 받는다.

▷가장 큰 애로는 기념촬영이다. 신랑신부와 하객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무덤덤한 얼굴로 사진을 찍거나, 사진촬영 대형을 갖출 때까지 마스크를 쓰고 있다가 찍는 순간에만 잠깐 벗었다 다시 쓰기도 한다. 평생 추억에 남는 순간인데 둘 다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해외 휴양지와 관광지들이 입국제한 조치를 취하면서 제주도가 신혼여행지로 다시 뜨고 있다. 제주도 호텔에선 3월 허니문 상품이 전달보다 많게는 두 배 이상 판매가 늘어나자 다양한 신혼부부 패키지를 내놓고 있다. 당초 4월까지였던 허니문 패키지 판매 기간도 6월까지로 연장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신혼여행지 대명사로서의 위상을 잃었던 제주도가 1970, 80년대의 명성을 되찾고 있는 것이다.

▷금반지 등을 파는 결혼예물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3, 4월이 결혼 성수기인데 매출이 작년보다 50% 이상 떨어졌다. 반면 혼수가전 수요는 여전해 지난달 전체 가전 판매량 신장을 견인했다. 결혼식은 미뤄도 이미 마련해 놓은 신혼집을 비워 둘 수 없어 혼수를 장만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예비부부들이 수난이다. 신데렐라를 꿈꾸며 결혼식을 손꼽아온 신부들의 속상함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저출산 상황인데 코로나19가 결혼까지 훼방을 놓아 출산율이 더 떨어지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다.
 
이태훈 논설위원 jefflee@donga.com
#코로나19#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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