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전쟁’은 현실의 축소판”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마당을 나온 암탉’ 작가 황선미… 그림책 ‘아무도 지지 않았어’ 출간
둘째 아들이 겪은 실제 일화 다뤄

황선미 작가가 9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 한옥들을 배경으로 자신의 그림책 ‘아무도 지지 않았어’를 들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황선미 작가가 9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 한옥들을 배경으로 자신의 그림책 ‘아무도 지지 않았어’를 들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책의 띠지에는 “‘마당을 나온 암탉’ ‘나쁜 어린이표’ 밀리언셀러 작가”라고 적혀 있다. 황선미 작가(57)는 “밀리언셀러라는 문구는 정말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럼에도 두 작품 모두 100만 부 넘게 읽힌 그에게 ‘밀리언셀러 작가’라는 표현은 어색하지 않다.

황 작가가 최근 ‘아무도 지지 않았어’(주니어김영사)라는 그림책을 냈다. 1999년 그의 단편동화 ‘전쟁놀이’에 백두리 작가가 그림을 그린, 새로운 시도다. 10일 서울 종로구 한 출판사의 고즈넉한 3층 한옥 서가에서 만난 그는 “실제 둘째 아들이 어렸을 때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며 웃었다.

지금 초등학생은 알지 못하는 오전·오후반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생긴 약 20년 전의 한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전쟁’에 돌입한다. 친구를 핍박하는, 한 살이 더 많다고 주장하는 동급생 무리와 한판 붙기로 했다. 색종이에 바둑알을 넣은 ‘바둑알 폭탄’, 은박지에 얼음을 넣어 만든 ‘얼음폭탄’도 준비했다. 무더운 결전의 날. 승부는 아이들의 전의(戰意)와는 무관하게 결정된다.

“얼음 얼리고 하는 걸 보니 우스웠는데 결전에 임하는 애들한테는 현실이고 세계였지요. 자기의 전부인 친구를 어떤 녀석이 괴롭힌다면 싸워야 하는 것이고요. 애들 눈으로 봐야 하는 거였어요.”

그는 이 ‘사건’의 전말이 하나의 상징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 전쟁이 싸울 사람도, 이유도 없어져 어그러지는 것을 보며 ‘애들이 우리에게 주는 게 많네’라고 생각했다. 현실의 전쟁도 결국 어른들이 이익을 놓고 다투는 일종의 장난 아닌가, 싶었던 것. 그 축소판을 아이들에게서 봤다.

2020년 현재 현실과는 다르다. 유튜브와 스마트폰, 학원의 쳇바퀴 속 아이들에게 이 책은 상상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황 작가는 “현실을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문학은 아니잖나. ‘서로를 이해하는 데 문제 해소의 길이 있다’는 제안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다. 아동문학은 2000년대 초반 전성기를 맞은 이래 하향세다. 황 작가도 ‘누가 읽는다고 글을 쓰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그는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다. 삶의 환기라는 기본 원칙, 현실을 다시 생각해볼 여지를 주는 책의 역할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확신했다. 1만2800원.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황선미#아무도 지지 않았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